'케빈의 이야기로 여는 성경'은 성경의 내용을 저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들을 가까이 대하듯 실감 나는 묘사를 통해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바울 시대의 역사적 배경
로마의 공화정 말기에 등장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는 로마 제정시대의 기초를 구축했다. 비록 그의 독재적 권력에 반기를 든 자들에 의해 암살되었지만, 그의 부하 장군이었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반란은 제압되었다.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동부를,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서부를 양분해서 통치하였으나 한 제국에 두 명의 황제는 존재(1) 할 수 없었기에 양대 세력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악티움 전투 에서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였고, 원로원의 추대로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로마의 황제가되었다.
악티움 전투 (사진: wiki)
이때 정치력과 처세술이 남달랐던 헤롯 안티파스 2세의 둘째 아들 헤롯은, 처음에 월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안토니우스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즉각 달려가 자신이 안토니우스의 친구였음을 인정하고, 안토니우스를 지지했던 것 이상으로 앞으로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였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어차피 유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헤롯이 필요했던 터라 헤롯을 유대의 분봉왕으로 신임해 주었다.
집정관이자 삼두정치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로마 시대 흉상, 바티칸 박물관
복원된 젊은 옥타비아누스 시절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기원전 30년경 작)
사실 헤롯 가문은 에돔 족속의 후손이었고, 헤롯의 어머니 또한 아람인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유대인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유대의 왕이 된 것이다. 이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신축을 시작했으나, 공사의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오히려 원성을 듣기도 하였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대한 충성과 감사의 표시로 갈멜산 남쪽의 대해 (지중해) 연안에 항구도시를 새로 건설하였고, 도시의 이름을 가이사랴 (시저)라 지어 헌정하였다. 나는 이 가이사랴 항구에서 배를 타고 다소로 온 것이다.
로마제국의 각 자치구를 연결하는 도로 및 항만 공사는 지금의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더욱 박차를 가했고, 로마의 총독부가 있는 대부분의 지역은 모두 다 연결되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로마제국의 가장 큰 도시였던 수리아의 안디옥은 로마의 동방 거점 도시였다. 처음 도시가 건설될 때 마게도니아, 헬라, 로마, 수리아, 유대 등등의 지역에서 인부들을 동원하여 동방과 서방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 다민족의 사회가 이루어졌다. 수리아 안디옥은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는 아니었으나 대해의 실루기아 항구까지 육로로 하루면 이동이 가능했고, 대해까지 연결되는 오론테스 강에 배를 띄워 물품 교역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믿는 자들이 대도시였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많이 몰려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안디옥에서 내가 살고 있는 다소까지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한데, 로마가 연결해 놓은 도로와 항구를 이용해서 이틀이면 올 수 있다.
다소에서 보낸 10여 년 동안 나는 성경과 조상들의 글을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에 관해서 생각했다. 기다림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세상의 역사를 다스림으로 어떻게 경륜하시는지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재해와 기근, 전염병, 전쟁 및 여러 징조들로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보여주시고 있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어리석어 목자 없는 양같이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생들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창조하신 세상을 사랑하사 반드시 회복시키려고, 때가 차매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셨다. 또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모든 민족과 만물이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렇다! 이미 오신 그리스도, 세상이 핑계할 수 없도록 가장 확실한 길을 주신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안디옥에서의 바울
바나바와의 해후는 그동안 내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부르심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찾아 다소의 여기저기를 헤맸던 바나바는 10년 전에 만났던 모습 그대로 여전히 인자한 얼굴이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내 모습을 본 바나바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반가움을 표시해 주었다. 아마도 그의 기억 속에 있던 혈기왕성한 젊은 사울에서 달라진 모습에 웃음을 보인 것 같다.
바나바는 안디옥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안디옥 곳곳에는 새롭게 공동체를 형성한 유대인 믿음의 형제들이 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한 가르침에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 생명의 도를 듣기 원하는 수많은 이방인이 있다고 했다. 안디옥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도 있고,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제자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 뜻으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살고 있었다. 바나바는 그들의 삶이 안디옥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안디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사 65:1)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마지막 때의 일이 시작되었다면서 기쁨으로 증거해 주었다. 또한 안디옥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몇 가지 어려움을 나누어 주었다. 그중 하나는 유대인 믿음의 형제들 대부분이 아람어만 사용해서 라틴어와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르게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을 풀어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이미 오신그리스도의 삶과 행적, 그리고 고난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의미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관해서 그들의 말과 언어로 증거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 중에서 이 일을 감당할 이를 찾기 어려워서 아람어를 할 수 있는 이방인을 통역으로 세워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안디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부흥의 소식과 어려움을 듣고는 너그러운 성품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신실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 공동체를 돌보는 일을 부탁한 것이었다.
바나나는 안디옥에 도착하여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을 방문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려 했지만, 도시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커서 유대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을 중심으로 먼저 가르치는 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열 명씩 스무 명씩 사는 구역별로 모임을 만들고, 같은 구역 안에서도 언어권에 따라 모임들을 따로 세워나가면서 제자들을 양육하는 체계는 잡혀갔지만,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성경에 비추어 증거할 수 있는 교사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었다.(2) 그러던 중에 길리기아 지역에서 온 한 사람이 안디옥 외곽의 아고라 광장에서 바나바가 여러 사람에게 예수님에 관해서 증거하는 것을 듣고는 ‘당신이 말하는 것과 똑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바나바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그 사람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고 ‘다소에 사는 사울’이라는 대답을 듣게 된 것이었다. 그 날 바나바는 안디옥 여러 지역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사울의 회심에 관해서 설명하고 본인이 그 일의 증인임을 말했다. 그리고 학식이 풍부한 사울을 데려와서 함께 공동체를 섬기는 것을 제안했다. 이 일을 위해서 몇 날을 함께 기도한 후에, 유대문화뿐만 아니라 로마와 헬라의 문화까지 익숙한 사울을 안디옥의 교사로 세우기로 결의하고 바나바가 직접 나를 찾아 이곳 다소까지 온 것이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사역을 시작하다
나는 1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게 내가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일 등을 대변해준 바나바의 손을 잡고, 그동안 정들었던 이웃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다소의 제자들이 말씀에 더욱 굳게 서기를 격려한 후에 옷가지 몇 개만 챙겨서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왔다. 동쪽에는 실피우스 산이 우뚝 서 있고 서쪽에는 오론테스 강이 흐르는 안디옥에 들어서 헬라 양식과 로마 양식의 화려한 건물들을 보면서 이 도시가 왜 ‘동방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벨론 종교
이곳에 처음 들어온 유대인들이 회당을 세우고 안식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경건한 삶(3)의 모습은 이방인들에게는 아주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다. 니므롯 이후에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시작된 바벨론 종교는 세상 신들을 만들어냈고, 형상을 지어서 경배하고, 때로는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철저하게 두려움으로 인한 행위론적 형식이 일반화된 종교였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대인들은 회당에 아무런 형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 또한 이방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종교였던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의 종교에 호감을 느낀 많은 이방인이 자연스럽게 회당의 안식일 모임에 참석을 원했지만, 할례와 음식의 장벽은 여전히 이방인들이 유대교를 믿는 것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후에 핍박을 피해 몰려든 믿는 유대인들은 마치 난민처럼 도시 외곽의 여기저기에 부락을 형성하고 회당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대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보다 복음에 훨씬 더 뜨겁게 반응하는 이방인 회심의 역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 바로 안디옥이었던 것이다.
내가 다소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해서 고민했던 주제 중의 하나는 회심에 관한 것이었다. 모세의 글과 선지서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을 유대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대하 30:6)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욥 6:29)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사 55: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렘 3:14)
범죄한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주권역사였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믿게 하시는 이 모든 과정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유대인들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단순하게 절기와 제사와 삶의 자세에 관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엘 선지자는 ‘돌아오라’는 말씀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요 올바른 회심에 관한 말씀이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욜 2:13)
해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을 지켜 제사를 지내며 회개를 부르짖었지만 진정한 회심의 역사를 경험한 유대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기에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서는 통렬하게 유대인들의 이중적인 종교 생활을 꾸짖으셨으며,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심한 자들을 찾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 3:16-18)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아브라함만을 위함도 아니요, 그의 후손들을 위함만도 아니요, 모든 족속을 위한 부르심이었다. 이는 모세를 택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었으며, 단순하게 아브라함의 후손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했기에 그들의 회개는 늘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경을 알고 있는 유대인에게 먼저 회심의 기회를 주셨고, 또한 알지 못하고 살던 시대에서 이제는 모든 사람들로 회개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라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주신 것이다.
바나바는 도시의 장로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고, 잠시 숨돌릴 틈도 없이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여러 모양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제들을 소개해 주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던 날 로마 군인들에 의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던 구레네 사람 시므온은 노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에서 하람(4)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인자하고 마음이 따뜻한 그의 부인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오직 사랑만을 보여주는 귀한 섬김의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나 또한 시므온의 부인에게서 마치 어머니가 아들에게 베푸는 것과 같은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시므온의 아들인 루포와 알렉산더도 순박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굳건하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시므온과 함께 구레네로부터 온 루기오는 헬라어에 능통한 자로 여러 이방 형제들에게 위로를 주는 귀한 선생이라고 바나바가 소개해 주었다. 또 헤롯의 젖동생으로 복음을 듣고 공동체에 입교한 마나엔 같이 특별한 이력을 가진 자도 만나게 되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여러 이방인 형제들과도 만났는데, 그중에 특별히 열정적이고 수려한 용모의 이그나티우스(5)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은 헬라인으로서 로마시민권을 가졌고 어렸을 때는 잠시 예루살렘에서 거주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미 안디옥 도시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섬기고 있던 여러 장로와 교사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내게는 이방인 공동체가 거주하는 지역을 돌보도록 부탁하였다. 주님께서 남기신 말씀들을 상고하고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는 안디옥의 교회들을 지켜보면서, 내게 주어진 책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순종하도록 교회들을 섬기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많은 이방인 형제들에게 그들의 말과 언어로 성경을 풀어 설명하면서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증거되기를 간절히 구하고 구하였다. 안식일이면 회당에서 나는 히브리인이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기록된 말씀으로 증거했다. 점점 더 많은 무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수에 더해지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주위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힘썼다. 믿지 않는 많은 자는 우리 공동체를 칭송하며 ‘그리스도인’의 무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바나바와 함께 칠십인 중의 한 사람으로 보내심을 받았던 아가보라는 형제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왔다. 얼마 전에 헤롯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는 소식에 안디옥 공동체가 모두 슬퍼하였지만, 또한 베드로가 옥에 갇혔다가 천사가 친히 옥에서 이끌어내어 자유롭게 했다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았다.
후에 아가보가 레반트(6) 지역의 흉년을 근심하면서 장차 아주 큰 기근(7)이 찾아올 것을 예언했다. 실제로 비가 내릴 때 내리지 않고, 더위와 추위 등 기후의 변화가 불규칙해 농작물의 작황이 좋지 않아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 넓어지고 있었다. 반면에 소아시아, 밤빌리아, 갈라디아, 길리기아 등의 지역은 천혜의 환경으로 사시사철 야채와 과일, 밀 등의 농작물이 풍부하였고, 목축 또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어 육류의 수급에도 문제가 없었다. 안디옥은 대도시의 이점으로 이런 지역에서 들어오는 풍부한 식료품들로 인해 먹고 사는 것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없는 곳이었다. 기근에 대한 근심이 깊어지면서 도시의 장로들은 여러 교사와 더불어 논의를 한 끝에 유대지역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 및 형제들을 위해서 부조를 하기로 결의하고 안디옥 각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각각 힘껏 모금하여 상당한 금액을 모았다. 다양한 형태로 모금된 물품들을 널리 통용되는 달란트 화폐로 교환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바나바와 내가 그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배편이 적당하지 않아 약 보름 정도를 걸어서 예루살렘 근처에 도착하니, 헤롯이 갑작스러운 복통이 시작되어 벌레들이 헤롯을 먹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헤롯이 어떻게 죽었던지 예루살렘 교회는 그가 사도였던 야고보를 죽이고 주님의 교회를 박해한 행위에 관한 징벌로 주님의 사자가 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헤롯이 교회를 박해한 것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친유대적인 정치 활동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핍박은 같은 뿌리를 내려야 할 동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참된 진리를 거부하도록 하는 실상 사단의 일인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안디옥 교회의 부조를 전달하고 주님의 동생인 야고보 및 교회들과 교제를 한 후에 우리는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라 하는 요한과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믿음의 공동체로 들어오면서 우리 모든 교사는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가르치고 돌보는 일로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로마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 복음을 믿는 무리에게 성령이 역사하면서 이 복음을 자기들이 떠나온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들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어야 할 것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을 것을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인지 모두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방인 형제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안디옥 교회가 이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금식하며 주님께 묻기로 결의하였다.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바나바와 나를 세우도록 인도하셨다. 우리가 증거해야 하는 복음이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것임을 알기에 바나바와 나는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이 여정에 동참할 신실한 몇 명의 형제들을 불러모았다.
일행 중에 가장 연장자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파송하셨던 70인의 제자 중의 한 명인 바나바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와 복음전파를 위해서 준비할 것들을 일행들과 논의를 하면서 그의 조카인 마가도 합류하게 되었다. 여정은 전적으로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의지하기로 하고 가장 먼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8)를 첫 번째 목적지로 결정하였다. 이에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나에게 안수하고 오론테스 강에서 배를 타고 실루기아로 출발하는 우리 모든 일행을 축복해 주었다.
선교 여정: 실루기아와 구브로
실루기아에서 구브로까지는 뱃길로 꼬박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구브로 섬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살라미는 본토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무역이 활발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살라미에 도착하니 평소에는 말도 아끼고 좀처럼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바나바도 고향에 왔다는 기쁨으로 흥분하여 도시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안내해 주었다. 안식일이 되어 바나바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박해를 피해 모여든 적지 않은 믿는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이미 들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찬양하며 계속해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구브로 섬을 횡단하여 총독부가 있는 바보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마가는 삼촌인 바나바를 수행하며 구브로가 초행인 우리 일행을 위해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바보에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여러 형제와 교제를 하며 복음을 증거하였다. 마침 총독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나바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듣고, 총독부에 있는 여러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러자 총독인 서기오 바울도 그 이야기를 듣고자 하여 우리 일행을 총독부로 초청하였다.
우리는 안디옥이나 다소보다 많이 왜소한 총독부에 들어가서 서기오 바울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하였다. 그는 역사에 조예가 깊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고, 바나바의 진솔한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경청하며 더 알고자 하였다. 총독의 옆에는 바예수라 불리는 유대인이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이 우리 일행에게 호의적인 것을 보고는 우리를 음해하며 마술을 부려 총독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엘루마 (마술사)로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며 거짓 선지자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 좋은 바나바는 엘루마의 방해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사울이었던 나 바울(9)은 그 순간 성령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그를 꾸짖고 정죄하였고 그가 장님이 되었다. 이를 보고 총독은 더욱더 예수님에 관해 알고자 하였고, 우리는 몇 날을 총독부에 머무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다. 총독은 복음을 믿고 우리에게 그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비시디아의 안디옥으로 가서 이 가르침을 베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 우리는 이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고 총독이 마련해 준 배편을 이용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기 위해 바보에서 밤빌리아 지역의 큰 항구도시인 버가(10)로 갔다.
선교여정: 버가와 비시디아 안디옥
마침 남풍이 부는 때라 배는 순풍을 따라 하루가 채 안 되어 버가에 도착했다. 버가에서 지체하지 않고 서기오 바울이 부탁한 대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곧바로 가려고 길을 확인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중에 우리 가운데 문제가 발생했다.
성령님의 역사로 바보에서 엘루마가 장님이 된 사건 이후부터 우리 일행들이 바나바가 계속 인도해 오던 매일의 경건회에서 은연중에 나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나바보다 내게 더 많이 묻고 기도를 요청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활발하게 우리를 잘 도와주던 마가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꽤나 신경이 쓰였지만 사려 깊은 바나바를 보니 우리 일행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듯했고, 심지어는 바나바조차도 암묵적으로 나를 앞세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마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동료들에게 불평하는 것도 심해졌는데, 버가에 도착해서 잠시 쉬지 않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곧바로 가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실상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는 길이 험준한 토로스 산맥(11)을 넘어 꼬박 열흘 이상을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기에 마가의 의견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갈 길을 정해 놓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이끄심에 맡기기로 기도하였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서기오 바울의 입을 통해 성령께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 것에 의지하여, 지체 않고 가는 것에 마가를 제외한 일행들 모두가 동의한 것이었다. 바나바가 마가를 따로 불러 타이르고 격려도 하였지만, 마가는 듣지 않았다. 나도 마가에게 조용한 말로 권면하였지만 더욱 화를 내면서 일정의 부당함을 항변하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우리 일행을 떠나버렸다. 마가가 떠난 후에 동료들의 어수선한 모습에 나도 마음이 상했지만,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겪을 고난과 박해의 징조 같은 것이었다.
비시디아 가는 길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일행들 모두가 한적한 곳에 모여서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시편으로 찬양하고 떡을 떼며 기도로 힘을 얻었고, 깎아지른 절벽들로 가득한 토로스 산을 넘기 시작했다. 이 산 곳곳에 강도들이 종종 출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버가를 출발한 지 수일이 안 되어 실제로 강도를 만나 우리가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겼고, 수중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오직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만을 바라게 되는 감사를 찾았다. 바닷가는 이미 훈훈한 봄기운이 완연한데 산으로 점점 더 깊숙이 그리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갈수록 추위가 심해졌다. 가지고 있는 옷가지로는 추위를 막을 수가 없었지만, 일행들이 서로를 안아주며 형제를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워낙 깊숙한 산길이라 민가를 찾을 수 없었고, 동굴이라도 보이면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화톳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돌아가며 산짐승들을 경계하면서 웅크린 잠을 잤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나 바다처럼 보이는 넓은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하룻길을 걸어서 드디어 비시디아 안디옥(12)에 입성을 하였다. 이곳은 아직 겨울 삭풍의 매서운 맛이 코끝을 얼얼하게 했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활기찬 도시에 들어오니 왠지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무래도 나는 도시 체질인 것 같다.
비시디아
하루 휴식을 취한 후에 서기오 바울로부터 부탁받은 대로 그의 형제들을 수소문하여 그들이 있다는 곳에 찾아갔으나 그들은 일이 있어 로마로 갔으며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로 구해왔기에 이곳에서 어떤 일을 예비해 놓으셨는지 우리 일행은 도시의 여기저기를 둘러 보기로 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수리아의 안디옥 만큼 규모가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밤빌리아 지경의 가장 북쪽이자 브루기아의 중앙에 있어 로마의 아나톨리아(13) 지역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항상 전쟁이 잦았던 동방지역을 지원하는 군사·행정 도시로 발전되어 왔다. 도시 건설을 위해 동원된 유대인들과 여러 민족도 소규모지만 많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
비시디아
안식일이 되어 도시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회당을 찾아 들어가니 외지에서 온 우리를 보고 회당장이 누구인지 물었다. 우리가 유대인 선생인 것을 알고는 규례대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우리에게 형제들에게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하였다. 이에 나 바울이 일어나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그리스도를 보내셨으 며,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에 대해 증거(14)하였다. 말을 마치고 모임을 파할 때가 되자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우리를 청하여 말씀을 더 듣기 원하였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교에 입교한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따르며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풀어 설명하였고, 그들 중에 일부는 세례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를 함께 기도하였다.
다음 안식일이 되니 우리의 소문을 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회당에 모였다. 이는 분명히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일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은 할례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정결 의식도 없이 회당에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였고, 심지어는 우리가 가르치는 것을 시기하고 반박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비방하는 것이 아닌가! 이방인들은 말씀에 뜨겁게 반응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받아들이고 세례도 받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이 이렇듯 몽매한 것을 보고는 바나바와 나는 작정하여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행 13:46)
하나님의 말씀이 그 지경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두루 전파되었다. 말씀을 듣고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수많은 자들이 믿어 세례를 받고 우리 일행이 보여준 대로 교회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유대인들은 더욱 시기하였고, 그들과 연관이 있는 시내의 유력자들과 학식이 높은 귀부인들에게 우리를 모함하고 박해하게 하여 우리 일행을 쫓아내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담대하게 기쁨과 성령이 충만해졌고 이고니온(15)으로 향했다.
선교 여정: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이고니온 가는 길
이고니온 가는 길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까지의 길은 잘 닦여져 있어 그리 험하지 않았다.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한가로운 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는 산을 넘어 점점 더 내륙으로 들어갔다. 건조한 기후가 만들어낸 황톳빛 토양의 끝없는 광야를 지나 그렇게 한 일주일을 걸어 이고니온에 도착했다. 오래된 작은 소도시로 넓은 평야에 세워진 이고니온은 갈라디아 지역의 남서쪽에 있으며 먼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쉼터 같은 곳이었다. 동방과 서방의 다양한 신들이 토착화되어 있었고 유대인 공동체도 형성되어 있었다. 바나바와 나는 일행을 둘로 나누어 도시의 곳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면서 더 듣고자 하는 이들의 요청이 있으면 그들의 집을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상세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하루는 헬라인 귀족의 초청을 받아 우리 일행들 모두가 그의 집이 있는 한 마을로 가서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모든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증거하였다. 모인 무리 가운데 이고니온 귀족 가문의 딸로 테클라 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몇 날 동안 진행된 헬라인 귀족 집에서의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모임의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증거한 복음을 믿는다면서 세례를 청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자 그녀는 우리 일행과 함께 여행에 동행하면서 자신도 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미혼인 젊은 여인의 당돌한 제안에 우리 모두는 적잖게 당황을 했지만 잘 다독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테클라(16) 자매가 우리와 헤어진 이후에 약혼자와 파혼을 선언하여 집안에 큰 문제가 되었고, 결국 우리에게까지 화가 미쳐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후에 이고니온의 여러 마을을 다니며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서 바나바와 번갈아 가며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하였고,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는 또 다른 유대인 무리가 있어 이방인들을 선동해 우리 일행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고, 또한 이고니온의 관리들도 우리를 모욕하며 박해하였다. 관리들까지 우리를 박해하는 것이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테클라 자매와 약혼을 했던 사람이 지역 관리였고 우리 때문에 파혼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군중들과 합세하였던 것이다.
루스드라
우리 일행은 박해를 피해 이고니온의 남쪽으로 걸어서 하룻길 정도 떨어져 있는 루스드라(17)로 갔다. 이미 한여름으로 들어선 계절은 돌산으로 둘러싸인 루스드라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었지만, 평지에 만들어진 작은 마을로 들어서니 뽕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청량감과 시원함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바나바가 뽕나무를 보더니,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여리고로 올라가던 길에 만났던 삭개오라는 한 유대인 세리에 관한 이야기(18)를 들려주었다. 키가 유난히도 작았던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꼭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군중들 틈에 있었다. 그러나 세리인 삭개오에게 아무도 길을 양보하지 않자 잎이 크고 가지가 낮아 오르기에 적당한 뽕나무 하나를 찾아 넓고 무성한 잎속에 자신을 숨기고 예수님을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한 남자를 예수님께서는 보셨고 주위에 있던 여리고 사람들은 그가 삭개오라고 하면서, 세리로서 로마인들의 힘을 빌어 동족인 유대인들을 얼마나 착취하고 나쁜 일들을 많이 했는지 주님께 고발했다. 삭개오의 등장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사람들은 동족을 핍박하는 세리를 예수님께서 따끔하게 충고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하룻밤 유하시겠다며 제자들과 함께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다. 모든 유대인들이 적대시하고 죄인이라고 부르는 세리의 집으로 들어간 예수님께서는 조금 전까지 메시아라 칭송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저주의 소리를 들으셔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날 삭개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아픔을 만져주셨다. 삭개오가 그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여 그가 폭리를 취하고 착취를 한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갚겠다는 약속을 했을 때, 주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는 말로 축복하셨다.(19) 그러면서 바나바는 덧붙여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고 위로해주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 은혜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께 약속한 대로 더는 이웃을 착취하지 않았고, 스데반 집사의 일로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형제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질 때 그들을 도왔고, 지금은 가이샤라 지경에서 교회들을 위로하는 소임을 감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결단을 했지만, 실제로 많은 일을 겪는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며, 지금까지 곳곳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앞으로 더 큰 핍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주님의 값진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으며, 믿는 자들에게 남기신 명령에 순종하여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의 회당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이고니온에서 했던 것과 같이 마을의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말할 기회를 얻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치유와 은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있어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눈에 간절한 소망이 있는 것을 보고 성령님께서 내게 주시는 확신으로 그에게 다가가 안수하며 기도한 후에 “일어서라”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 이 광경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바나바를 제우스로, 나를 헤르메스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왔다면서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제사에 사용하는 제물과 화환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가져와서는 우리 일행 앞에 두고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옷을 찢으면서 그들을 말렸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행 14:15)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흩어지게 하였지만, 신당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제사가 헛된 것이라는 나의 말에 화를 내며 우리를 대적하게 되었다. 앉은뱅이로 일어나 걷게 된 자가 감사하면서 바나바와 내가 유대인 것을 알고는 그 마을에 헬라인과 결혼한 유대인 여자에게서 난 사람을 알고 있는데 우리에게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디모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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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의 집으로 초청을 받아 아버지 부데(21),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유니게의 어머니인 로이스를 만났는데, 로이스는 유대교의 전통을 잘 지키며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 인자한 신앙인이었다. 그녀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가 걷는 것을 보고는 많이 놀라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묻고, 자세하게 예수님에 관해서 듣기를 원하기에 우리는 그 집에 유하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부데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에는 놀라워했지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경건한 로이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인 것을 믿고 딸 유니게와 함께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디모데는 그런 외조모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참으로 진실하며 신실한 청년으로 보였다.
우리 일행은 몇 날을 루스드라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들과 교제를 하고 있었다. 그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우리를 박해하던 자들이 이고니온에 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이고니온에서 우리를 핍박하던 무리와 함께 루스드라로 내려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이 루스드라 제우스 신당에서 일하는 사제들을 만나 모의하고 무리를 충동하여 나를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로 지목하여 내가 있는 곳으로 오더니,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다짜고짜 돌을 들어 나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돌에 맞아 나는 정신을 잃었는데, 내 안에 있는 영혼이 깨어나면서 성령에 이끌려 사람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간 곳은 셋째 하늘(21) 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곳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친히 계심으로 해가 필요 없는 곳이며 굶주림도 없고 슬픔과 눈물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장차 내가 겪어야 할 환난과 감당해야 할 수고에 관해 한 번 더 보여주셨고, 강하고 담대하며, 나의 달려갈 길에 믿음으로 선한 싸움에 임할 것을 계시해 주셨다.
내가 눈을 떠보니 바나바와 형제들이 나를 둘러싸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게 돌을 던진 무리는 내가 죽은 줄 알고 나를 성 밖으로 내던졌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가야 할 길과 앞으로 내가 어떻게 쓰임 받을지를 다시 보여주셨다. 나는 담대하게 일어나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간단히 치료를 받고 디모데의 집으로 가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 루스드라를 떠났다.
선교 여정: 더베에서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우리는 갈라디아 남쪽 지경과 길리기아 북쪽 지경의 경계에 위치한 더베로 이동하였다. 더베는 루스드라보다 더 작은 마을이라 유대인들이 없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크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로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하는지를 도우면서 짧지 않은 시간을 머물렀다. 사실 더베로 온 것은 겨울이 되기 전에 남쪽 길리기아 지방을 지나 다소를 경유하여 안디옥으로 내려갈 요량이었는데, 더베에 머무는 동안 이미 겨울이 시작되면서 어떻게 안디옥으로 돌아갈 것인지 우리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더베
안디옥을 떠난 지 일 년이 되다 보니 일부 형제들은 한 십여 일이면 안디옥에 도달할 수 있는 토로스 산맥을 넘어 길리기아를 통과하는 길을 택하여 서둘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우리가 지나온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동료들을 설득하였다. 바나바도 나와 같은 의견으로 우리가 만나고 세웠던 믿음의 형제들을 한 번 더 만나서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일행들이 동의하여 그동안 방문했던 도시들을 돌아서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루스드라 성에 가까워지니 불과 얼마 전에 돌에 맞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왜 이곳을 다시 오자고 했을까?’ 내게 돌을 던지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잠시 발걸음이 망설여졌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상기하면서 루스드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한겨울이 되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앉은뱅이로 고침을 받은 자를 만나서 교제하니, 우리가 떠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으며, 외조모 로이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젊은 디모데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디모데와 따로 만나 모세의 글과 선지서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었고, 바나바와 다른 형제들도 교회들을 위로하면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렇게 이고니온의 형제들과 비시디아 안디옥의 형제들도 만나 우리가 증거한 복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을 가르쳤다. 또한 각 공동체가 계속해서 소망을 붙들고 믿음에 거할 수 있도록 각 도시를 떠나기 전에 함께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께 그들을 위탁했다. 비시디아를 떠나면서 대략 일 년 전에 구원받을 기회조차 허락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곳에 들어섰는데, 짧은 시간 안에 믿음에 거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우리 모두는 고백하게 되었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은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토로스 산맥은 아직도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렇지만 올 때와는 달리 비시디아에서 밤빌리아로 가는 상인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수월하게 산을 넘을 수가 있었다. 몇 날이 지나자 산으로 가려져 있던 길들이 탁 트이면서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섬 출신인 바나바도, 바닷가 출신인 나도, 모든 일행이 바다를 보니 그동안 산으로 광야로 다니면서 지쳤던 심신에 새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일 년 전 비시디아로 가기 위해 잠시 들렸던 버가에 돌아오니 이곳에서 우리와 헤어졌던 마가의 일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마가의 행동이었다. 따뜻한 바람을 즐기면서 꽤 큰 도시인 버가에서도 아고라 등을 찾아 복음을 선포했다. 일행 모두가 빨리 안디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하여 배편을 알아보니 버가에서 바로 안디옥의 관문 항구인 실루기아로 가는 배는 없었다. 하지만 버가에서 가까운 앗달리아(22) 라는 항구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배가 있는데 그 배가 안디옥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앗달리아로 가서 배를 타고 닷새 만에 실루기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오론테스 강을 따라 계속 기항하여 드디어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안디옥 교회의 장로들을 기쁨으로 재회하고 지난 일 년 여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을 비롯한 수많은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였다. 안디옥의 모든 교회는 한마음으로 그 된 일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며칠 동안 푹 휴식한 후에 안디옥 형제들을 만나 여행 중에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여러 일들로 그들을 권면하고 우리가 받은 환난과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믿음을 전하였다. 나는 우리가 비록 환난을 당했으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가는 것임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안디옥 교회는 오래 참고 온유하여 이웃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풍성한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에서 어떤 믿는 자들이 안디옥으로 왔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 교회들과 교제를 하였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으로 인해 안디옥 교회에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행 15: 1-2a)
- 악티움 해전으로도 불리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과 옥타비아누스의 함대가 현재 그리스의 이오니아해에서 패권을 두고 벌인 해상전쟁.
- 고대 그리스 도시의 회의 장소, 로마 시대로 들어서면서 물물교환 등의 시장 역할을 하는 곳이 되었다.
- 창세기 10장 8-10절 참고
- 하나님이 내리신 소중한 사람
- 속사도 중의 한 사람. 폴리캅과 더불어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후 69년경부터 수리아 안디옥의 감독으로 섬겼다. 티라얀 황제 (재위 98~117) 때인 기원후 107년경 시리아 지방에서 일어난 국지적인 박해로 인해 체포되고, 108년 로마에 압송된다. 그는 안디옥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일곱 통의 편지를 쓰는데, 그중 네 통은 서머나로 가고 세 통은 드로아로 보내진다. 그가 쓴 모든 서신에서 자신의 별명을 '하나님을 지고 가는 자'라고 했으며, 로마로 압송된 이그나티우스는 108년 로마에서 순교한다.
- 레반트 (Levant)는 역사적으로 근동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이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재임 (기원후 41~54) 중에 로마 제국 내에 심한 기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바울의 고린도 전도 여행 시에도 글라우디오가 아직 황제로 있었으며 클라우디우스가 유대인들에게 로마에서 떠나라고 명한 것은 기원후 50~52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행 18:1-2).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 언급된 헤롯이 죽은 시기는 기원후 44년경이다. 만약 사도행전 11:28이 연대적인 순서를 철저히 따른 기록이라면 사도행전 11:27의 '그때'는 기원후 44년을 넘지 않는다. 특히 12:25에서 언급된 대로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시점과 헤롯의 사망 시기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언급된 기근은 기원후 44 년경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흉년을 가리키고 있다고 추측된다.
- 구브로는 지중해 동북쪽에 있는 섬으로 구약에 나오는 깃딤 (민 24:24)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의 키프로스 (Cyprus) 섬이다. 이곳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다는 전승이 있다.
-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 13:9).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이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 사울이 회개한 이후에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추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바울이라는 이름을 본래부터 갖고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을 만난 이후부터 사울을 헬라식 이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일부 유대인들은 유대식 이름 외에 헬라 또는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갖고 있었는데,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람으로 당연히 헬라식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가 바울이라는 사울의 로마식 이름을 이제야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비로소 사울이 이방 선교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즉 이방 지역에서는 로마식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고 복음전파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 터키 지중해의 휴양도시인 안탈리아와 인접해 있는 곳으로 로마 시대에 크게 번성한 도시
- 터키 남부의 산맥으로 이 산맥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의 기후대가 달라질 정도로 해발 2000~3000미터에 이르는 험준한 산지이다.
- 현재 터키 지명은 얄바치, 히타이트 제국 때부터 형성된 중부 아나돌루 지역의 도시로 헬라 시대에 번성하기 시작해서, 바울 일행이 이곳에 도착할 당시는 로마제국이 전략적으로 귀족들과 군사들을 주둔시켰다. 갈라디아 가장 서쪽 지역의 군사 및 교역 도시로 인구십만 명 이상이 사는 대도시가 되어 있었다.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 장소로 추정되는 유대인 회당터 및 바울기념교회 등이 발굴되어 있다.
- 고대 그리스에서 아시아라고 불렸던 지방으로서, 오늘날의 터키 영토에 속하는 반도이다. 과거에는 아나톨리아 전체를 아시아라고 불렀으나, 로마 제국 시기에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지역에 아시아 속주가 설치되면서 아나톨리아와 아시아가 구분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아나톨리아' 어원은 그리스어로 '동쪽'을 의미하는 '아나톨리'에서 비롯되었다. 북쪽으로는 흑해, 서쪽으로 에게해와 마르마라해, 남쪽으로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
- 사도행전 13장 16-41절 참고
- 이고니온 (현재 지명 콘야)은 터키 내륙 중남부 지역의 대도시로 셀주크 투르크 시대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신비주의 이슬람의 한 분파인 루미 메블라나의 거점도시로 유명하다.
- 이고니온에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터키의 남쪽지역 지중해 가까운 곳에 있는 실리프케라는 곳에 거처를 만들고 낮에는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돌보고 밤에는 기도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젊은 여자들이 모여들어 공동체를 형성했는데, 혹자는 이를 최초의 여자수도원으로 보기도 한다. "바울과 테클라 행전"이라는 외경이 전해지고 있다.
- 루스드라는 콘야에서 남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며 루가오니아에 속했던 곳으로 신약성경 전체에 6번 등장한다.
- 누가복음 19장 1-10절 참고
- 누가복음 19장 9-10 참조
- 디모데의 아버지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고대 전승에 부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고린도후서 12장 1-4절 참고
- 앗달리아는 버가의 외항 역할을 했던 곳으로 버가모의 왕이었던 앗달로가 만든 도시이다. 전승에 의하면 앗달로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과 같은 곳을 찾으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터키의 여러 곳을 다니다가 토로스 산을 넘어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천혜의 지경을 보고 이 곳이 바로 이 땅의 천국이라 생각하고 앗달로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왕의 이름을 따서 앗달리아라는 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지명은 안탈리아로 지중해의 가장 큰 휴양도시이며, 주위의 로마의 고대도시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터키 제1의 관광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