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순니 시아파 분포 (Ghibar derivative work: Keltorric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인 이슬람은 19억의 추종자와 함께 세계 인구의 24.9%를 차지합니다. 무슬림들은 중동,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 세계 50여국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오직 알라신 한 분만을 전능자로 믿습니다.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 (AD 570~632년)가 받은 계시를 적은 경전을 꾸란이라고 부르며, 하늘에서 내려온 기적의 책으로 여깁니다. 꾸란은 구어체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이슬람의 근본 신앙과 사상을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서는 꾸란을 읽고 외우며 의심 없이 내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디스는 꾸란의 설명서로 무슬림의 행동 지침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담은 책입니다.
이슬람은 크게 순니파, 시아파, 수피 (신비주의) 3개의 종파로 나뉩니다. 순니파는 무슬림 인구의 85% 이상을 차지하며, 16억 인구를 가진 가장 큰 종파로 정복자 칼리프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혈통을 따르는 시아파는 전체 무슬림의 13% 정도로 약 2억 3천 명입니다. 나머지 수피 이슬람은 대중에게 우회적, 간접적으로 다가가며 전통 음악, 춤, 그림 같은 것으로 이슬람을 표현합니다. 터키의 메블라나 형식의 춤은 수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모스크가 아닌 예배 장소 (젬 에브, Cem Evi) 같은 곳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교제합니다. 수피 이슬람은 여러 지역과 나라에서 배척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피 이슬람의 한 종파인 알레비 집단은 순니 이슬람으로부터 엄청난 박해와 핍박을 받은 역사가 있으며, 이들은 아직도 순니 무슬림 종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al-islām)은 ‘복종한다’라는 뜻으로 이슬람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 그리고 맹목적인 무슬림의 삶을 따르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는 “신은 오직 알라 한 분만이 존재하며 꾸란은 하늘에서 내려온 경전이며,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는 신의 메신저이다”라고 대중 앞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무슬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신앙고백인 샤하다 (Shahada), 하루 다섯 번 기도인 살라트 (Salat), 자선 행위인 자카트 (Zakat), 라마단 금식을 지키는 사움 (Sawm), 메카 순례 하즈 (Hajj)의 다섯 가지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의무는 경건한 무슬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에게 더 큰 믿음이 요구될 때는 ‘거룩한 전쟁 (지하드)’에 가담하여 이슬람의 정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슬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평화적인 종교임을 가장하려고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들은 19세기 근대화 이후 프랑스 법치주의를 준용하면서 헌법과 법률 체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샤리아법은 이슬람 사회에 지배적입니다. 이슬람의 샤리아 법은 꾸란에 근거한 엄격한 행동의 제한과 무자비한 처벌로 모두에게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했을 때 그 사람의 손을 절단하거나, 남녀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을 때는 여성을 투석으로 사형시키는 등의 극단적인 처벌을 합니다. 사건 사고의 전말을 시간을 두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지역 공동체의 관습과 전통에 의해 현장에서 바로 처벌하는 것은 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사실을 증언하는데 어려움을 줍니다. 또한 한 명의 남성이 두 명의 여성 증언과 같다는 논리를 내세움으로 특별히 나약한 무슬림 여성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여성의 존재감마저 상실하게 만듭니다.
이슬람은 1400년의 세월 동안 지역 공동체 안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왔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 공동체와 차별적인 성 역할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취약한 무슬림 여성의 권리와 역할을 향상시켜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며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게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슬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점점 향상되어가고 그들의 활동 범위가 늘어나는 가운데서 함께 동등한 역할을 담당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슬람은 전 세계의 인구 증가와 함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이며, 앞으로 세계 변화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슬람 사회를 좀 더 깊게 연구하고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글에서는 이들의 전통과 삶 그리고 가정에서 모든 가사와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여성의 위치와 권리에 대하여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1. 무슬림 여성의 기본 신앙
1) 무슬림 여성의 정체성
무슬림 여성의 복장
이슬람을 국교로 신봉하는 나라의 무슬림 여성은 자라면서 배운 관습적인 행동 양식과 맹목적인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슬람 우월주의와 함께 강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본 신앙을 가지고 다른 종교에 배타적 태도를 취합니다.
무슬림 여성은 전능자 한 분은 오직 알라신이며,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하여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이슬람만이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자신의 장래와 가족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이슬람의 다섯 가지 의무를 잘 따르는 것이 정숙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그럴 때 알라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만약 이들에게 헌신적인 깊은 신앙을 요구한다면 여섯 번째 의무인 지하드에 가담한 자의 신부가 되어 알라의 뜻을 이루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1)
무슬림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은 전통 의상인 차도르나 부르카를 입어 자신의 몸 전체를 가리거나, 히잡을 머리에 둘러 공중 앞에서 종교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부분 무채색이나 짙은 색의 외출복으로 꾸란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남성이 성적으로 유혹당하지 않도록 여성의 몸을 감추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초경이 시작될 무렵부터 남자를 유혹하게 만드는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여 히잡으로 가리는 것을 시작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차도르나 부르카를 입어서 결혼 전까지 남성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순결을 지키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무슬림 여성이 전통 복장으로 신체를 가리거나 머리에 히잡을 쓰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강요에 의한 것이 지배적입니다.(2)
“하티제는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터키 여성입니다. 그녀가 10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히잡을 쓸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녀가 히잡을 쓰고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녀는 터키의 삼촌 집으로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티제는 여성으로서 히잡을 쓰지 않고 밖에 나가는 것은 마치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무슬림 여성에게 전통 의상을 입도록 권유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가족이 어떤 불이익을 당하거나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파트마는 교사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유롭게 표현하길 원했으며 형식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형식적인 종교 모습이 필요치 않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 휴가에서 그녀의 남동생이 심장마비로 혼자서 죽어갔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히잡을 쓰지 않아서 알라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가족에게 불행이 오지 않도록 히잡을 쓰고 다닙니다.”
경건한 무슬림 여성은 꾸란에서 요구하는 히잡이나 차도르를 입어야 알라신의 노여움을 피하고, 가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회의 불건전한 퇴폐를 막는 것도 남성들을 성적 유혹으로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꾸란에서 요구하는 무슬림 의상을 입음으로써 해결된다고 믿고 있습니다.(3)
2) 무슬림 여성의 헌신적 신앙
무슬림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최고의 신앙적인 헌신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지난 2월 영국 고등법원에서 샤미마 베굼에 대한 시민권 거부 관련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녀는 2015년 당시 15세로 런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거룩한 전쟁에서 이슬람의 정의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 무슬림 남성들을 위해 ‘지하드 신부’가 될 것이라 선언한 후에, 두 명의 학교 친구들과 함께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들어가 IS에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IS 대원과 결혼을 해서 3명의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녀가 시리아 IS 캠프에 있는 동안 여러 차례 영국 정부와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본국으로 되돌아올 것을 명령받았지만 무시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IS 캠프에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으며, 그녀의 세 번째 아들이 죽었을 때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난민보호소에서 인권 변호사를 통해 런던의 가족 품으로 다시 돌아오려는 절차를 밟았지만, 최종 판결에서 그녀의 시민권은 거부되었습니다.
샤미마 베굼과 같이 유럽에 이주해 사는 많은 무슬림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함께 유럽 사회의 생활 구조에 심각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무슬림 가정과 지역 공동체에서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믿는 십 대들은 심각한 정체성 혼란과 함께 이슬람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보입니다. 유럽 사회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거룩한 충성심과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4)
이슬람 테러 집단 IS는 이슬람의 정의를 위한 거룩한 전쟁에 관한 수많은 동영상과 홍보물을 젊은이들에게 전달하여 감정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무슬림 여성에게 최고의 헌신적 신앙심을 보일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동참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샤미마 베굼과 같은 십 대 무슬림 여성은 꾸란에서 요구하는 차도르나 히잡으로 신체의 일부를 가리는 것보다 최고의 헌신적 신앙으로 거룩한 전쟁의 지하드 신부(5)가 되는 것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충성심과 공동체 단결의식이 맞물려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쉽게 보여줄 기회가 되고, 헌신적인 무슬림 여성으로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십 대 무슬림 여성을 자극하는 ‘지하드의 신부’가 신앙의 헌신적 최고의 단계라면 과연 꾸란에서는 무슬림 여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2. 꾸란에서 언급하는 무슬림 여성
1) 꾸란에서 신앙의 본이 되는 여성
꾸란에서 묘사하는 무슬림 여성은 누구이며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무슬림 여성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첫째 부인이자 든든한 재정 후원자인 카디자를 전설적인 인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무함마드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미망인으로 무함마드의 정신적, 경제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맹목적인 충성과 무함마드에 대한 절대 복종은 이슬람의 여성의 근본 신앙이 되었지만, 사실 꾸란에서 그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꾸란은 오히려 예수의 탄생에 등장하는 동정녀 마리아를 알라에게 칭찬받은 거룩한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꾸란 19장은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마리아의 이름이 신약성경보다 더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의 내용은 신약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다르게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와 섞여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꾸란의 19: 20~22에서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그녀는 “어느 남자와도 접촉하지 아니했고 또한 부정을 저지르지 아니했는데, 제가 어떻게 아들을 가질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천사는 그녀에게 알라신에게는 쉬운 일이며 “그 아들은 백성을 위한 징표가 될 것이다. 너는 알라의 은총을 입은 자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6) 라고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미흐랍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향해 동쪽으로 세워진 기도 처소)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천사가 다가와 그녀의 순결과 함께 신의 영이 그녀의 몸에 생기를 넣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계시했습니다. 또한 “이슬람은 유일한 종교이며, 나는 너희의 유일신 알라이니, 나만을 경배하라”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은 동정녀 마리아가 알라로부터 “영 (ruh)과 계시 (Kerem 케렘)”를 받은 최초의 여성으로 선지자가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남성의 권위에 보호를 받아야 할 연약한 여성으로 남게 합니다.
꾸란의 4: 34에서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알라신이 남성에게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에” 여성은 반드시 남성의 지배와 보호 아래 있어야 합니다. 알라는 남성을 여성보다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었으며, 대부분의 여성은 사회적 적응력이 떨어지고 남성보다 무지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정녀 마리아가 무슬림 여성 사이에 존경을 받고, 새로 태어난 여자아이들의 이름으로 선호되는 것은 오직 그녀만이 꾸란에서 알라신에게 칭찬받은 유일한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알라의 은총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꾸란 수라 19:21)
마리아는 여러 번 꾸란에서 알라의 은총을 받은 자로 나타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 그녀는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선지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꾸란에서 요구하는 선지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일에 참여하여 만나는 사람들과 거침없이 논쟁하고 이슬람을 설득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남성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2) 꾸란에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
무슬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꾸란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꾸란 4장은 ‘여성의 장’으로 불립니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은 이슬람의 알라신 앞에서 절대적으로 동등함을 보이며,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는 남자나 여자는 낙원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7)또한 꾸란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영을 가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성의 영은 남성의 영과 같아서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이 가사를 돌보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특별히 여성의 출산은 자손을 번성시키는 중요한 것이므로 이것을 실행한 여성은 남성과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부모의 자격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8)
무슬림 여성이 이슬람 공동체의 인구를 증가시키고 물질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며, 그 의무를 다한 여성만이 지위를 인정받습니다.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하는 것도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며, 자녀가 할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도 무슬림 여성의 의무입니다. 할례는 주로 십 대가 되기 전 남자아이에게 이루어지며 이것은 전통예식과 함께 무슬림으로 거듭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에게도 할례를 요구하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순종적인 무슬림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의식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순종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무슬림 여성이 이슬람의 모든 의무를 따르고 난 뒤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는 수 있을까요? 무슬림 여성이 낙원에 들어가는 숫자는 아주 제한적이며, 그곳에서 여성은 남성의 존재를 높이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무슬림 여성이 세상에 살 동안 평생 가사를 돌보고 양육하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에덴의 낙원에 갈 수 있는 여성은 77명의 아름다운 처녀들 입니다.
“에덴의 낙원은 바로 남성들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나니 남성들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풍성한 과일과 달콤한 술로 즐길 것이며, 같은 나이의 눈을 내리감은 순결한 여성들이 남성들 옆에서 시중을 들것이다” (꾸란 수라 38:50-52)
무슬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권리를 나타내며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관습과 사회 구조는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여기고 언제나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무슬림 여성이 밖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 남성은 십 대의 소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여성은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상실하기 쉬우며 성의 불균형을 느끼게 됩니다. 꾸란에 의해 알라가 창조한 남성은 여성보다 항상 강하고 존경의 대상이 되며 여성을 반드시 지배해야 합니다. 이에 여성은 자아 존중이 낮은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아 존중이 낮은 여성들이 있는 사회는 결국 불균형적인 구조를 이룰 것이며, 무조건 강한 자 남성에게 의존하는 모순된 공동체를 만들 것입니다. 이슬람 사회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하여 여성들이 동등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며,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전통적인 구조 형태를 먼저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스크의 한 공간을 무슬림 여성을 위한 기도 처소로 지정하여, 그곳에서 여성들이 금요일마다 행하는 예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등 모든 여성이 알라신이 만든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대의 젊고 활기찬 무슬림 여성이 사회 곳곳에 진출하여 성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도록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무슬림 여성의 명예와 희생
1) 명예살인과 일부다처제
이슬람 사회에서 무슬림 여성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여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에 수치를 안겨준다면 그녀는 가차 없이 가족의 남성으로부터 명예살인을 당할 수 있습니다.
“꿈 많은 십 대 소녀 하잘은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홀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으며, 마을을 뛰어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남자를 모르는 순진한 소녀였던 그녀는 집에 처음 방문한 사촌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하잘의 사촌은 그녀에게 마을을 떠나 함께 결혼해서 살 것을 요구했으며, 그녀는 사촌을 믿고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잘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친척들에게 알렸고, 하잘은 친척 남자들의 손에 의해 다른 지방의 호텔 방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명예살인이 일어나는 이유는 남성의 성적 호기심과 유혹을 자극하는 것을 무조건 여성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족과 공동체에 수치심을 안겨준 여성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 여성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족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희생을 치러야 그녀의 명예가 회복되며, 마을 공동체에 안겨준 수치심과 소문을 잠잠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인해 남은 가족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관습으로 이어온 명예살인은 많은 여성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많은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런 일이 서슴없이 행하여지고 있는 것은 남성 중심의 지배적 공동체에서 여성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구조에 따른 것입니다. 강한 힘은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세워주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무슬림 여성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희생은 꾸란에서 허용하는 일부다처제입니다. 무슬림 여성은 15세가 지나면 서둘러 결혼을 합니다. 이들은 일찍 결혼하여 여성의 역할인 출산을 감당하고 남성의 보호 아래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식 전날까지도 신랑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원하지 않는 남성과 결혼해 평생을 함께 살아가며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무슬림 여성은 남편이 원할 때 언제든 이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남성은 능력에 따라 여러 명의 부인을 두어 한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여러 부인과의 결혼은 종교 지도자 이맘에 의해 간단하게 이루어지며, 결혼하는 여성들에 대한 법적 보호나 책임을 묻지도 않습니다. 일부다처제는 여러 가지 취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가족의 신뢰를 파괴하는 근본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많은 여성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생명의 위협과 사회 불신을 가져오기 때문에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2) 무슬림 여성의 문맹률과 폭력의 정당성
무슬림 여성의 기본 권리 가운데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것은 여자아이들을 문맹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무슬림 여성이 동등한 의무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문맹 및 경제적, 사회적, 법률적인 무지가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7명의 자녀를 둔 무슬림 여성 아이세는 한 번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어릴 적부터 부모의 강요에 의해 가사를 돌보는 일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녀는 16세가 되었을 때 부모가 정해준 친족과 결혼을 하여 자녀들을 출산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딸 아이세가 생활고를 면할 수 있도록 재산을 남겨 주었는데, 아이세는 남편이 건넨 이름 모를 증명서에 서명을 한 후 이혼을 당했습니다. 아이세는 아무런 기술도 없었으며, 법적인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니는 일터에서도 정당한 권리 청구를 할 수 없었으며, 그녀의 일곱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필요한 증명서를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정부 보조금을 신청해 도움을 받고 싶어도 글을 모르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이슬람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계 교육 센터의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151개국 가운데 이슬람 여성은 다른 종교 집단의 여성보다 교육 수준이 낮습니다. 무슬림 여성의 교육 수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낮은데, 여성의 2/3 정도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9)꾸란 96장 3~5절을 보면 “읽으라 알라는 자비로운 분으로 연필로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노라” (10)고 합니다. 전능자 알라신은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기에 필요한 '읽기'를 가르쳐주어 인간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종교적으로는 알라의 가르침을 읽고 깨달아 진정한 무슬림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역시 문맹이었습니다. 그가 메카 근처 히라산 동굴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광명의 천사가 나타나서 계시의 책을 읽으라고 합니다. 무함마드가 읽지 못한다고 말하자, 천사는 기적을 베풀어서 꾸란을 줍니다.(11) 그러나 무슬림 여성이 지식을 배우기 위해 히잡을 쓰고 혼자서 집을 떠나 다른 남성들과 얼굴을 맞대고 배우는 것은 꾸란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여성을 가르치는 남성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가 아닌 경우에는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슬림 여성은 오직 여성 교사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여성이 사무를 보는 곳에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구조는 남녀가 함께 모여서 바쁘고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는데, 오직 성별로 구분지어서 사회 구조를 만든다면 여러 부분에서 불균형이 초래될 것입니다. 물론 부유한 이슬람 국가나 일부 중동에서는 여성 교육에 많은 변화를 보이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문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의 수는 간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슬림 여성으로 살아갈 때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꾸란에서 언급하는 신체적 폭력입니다. 꾸란 4:34을 보면, 만약 여성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면, 남성은 여성에게 먼저 충고하고 잠자리를 같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도 순종하지 않으면 가볍게 때려 주라고 합니다.(12) 이 구절을 해석하는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별히 얼굴이나 손 등 신체의 일부가 밖으로 드러나는 곳을 제외한 부분에 학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정 폭력은 무슬림 여성의 존재감과 권리를 상실시키는 큰 이유입니다. 강한 남성들로부터 자행되는 폭력과 구타는 약한 여성을 원하는 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불균형적인 구조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남성 중심의 이기적인 행동을 방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계속해서 반복될 때는 이슬람 사회에서 원하는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찾는 데 많은 방해 요소가 될 것입니다.
“25년간 지체 장애를 지닌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는 셀마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그녀의 작은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하게 뼈가 휘어지는 척추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그녀는 작은 아들이 학교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매일 아들을 업고 등교했으며,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도록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감당해야 할 병원비와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족 전체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녀는 파출부로 일하면서 온종일 고된 노동으로 살림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원하는 요구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그녀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학대와 폭력 그리고 욕설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작은 아들이 병을 가지고 태어난 원인은 셀마에게 있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셀마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꾸란에서 요구하는 순종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남성의 폭력도 감당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슬림 여성은 가정의 모든 가사와 함께 육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고 양육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며,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도 여성이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녀 양육에 많은 심적 부담을 안고 있는 한편 남성의 감정 변화에 따라서 행해지는 폭력에 노출되어 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무슬림 여성이 이와 같은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격려하고 협력하여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성의 존재가 인정된 가정과 사회 공동체에서 여성들은 더 지혜롭고 풍성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정과 사회 공동체를 이룰 것입니다. 성의 권위와 지위를 넘어서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가정에서 근절되어야 하며 모두가 함께 신의 창조물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4. 무슬림 여성과 복음
1) 무슬림 여성이 믿는 예수
무슬림 여성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는 단지 선지자 중의 한 분이며,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지 않고 하늘로 바로 승천했다고 믿습니다. 어떤 이들은 알라신이 예수를 대신해 가룟 유다를 세워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고 주 장합니다.(13)2천년 전 예수를 박해하는 무리와 집행관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예수와 비슷한 형상의 다른 사람 (가룟 유다)을 세워 대신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를 대신해 다른 사람을 세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면 알라신은 사람들을 속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2천 년 전 로마의 집행관들과 예수의 죽음을 원하는 군중들을 속이고 굳이 선지자 예수의 죽음을 막아야 할 뚜렷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이를 증명하려면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 꾸란의 학자들이 명확한 근거와 이론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주장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만큼 오랜 시간 달리지 않았고,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꾸란에서 언급하는 십자가의 사건과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꾸란은 명확하게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았다”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꾸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은 금기이며, 신실한 무슬림의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믿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알라에게 맡기고 가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2) 무슬림 여성의 간증과 복음의 능력
무슬림 여성이 주위에서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인정하고 주님께 나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들의 신앙고백은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오는 핍박과 따돌림, 생명의 위협까지 감당해야 할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과 함께 모든 것을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주님을 따르는 무슬림 여성을 향해 주님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명보다 죄인 한 명이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14)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은 한 번도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주님의 말씀을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좋은 선지자이며 죄없이 거룩하게 살아온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만, 그의 가르침을 적은 성경은 변질되었기에 읽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 건물을 제대로 본 적도, 공식적인 주일 예배에 참석해본 적도 없는 이들은 기독교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기독교인들은 사회를 혼동시키고 젊은이들의 사고를 문란하게 만들며,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항상 저주의 모습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가끔 미디어에 비치는 교회 건물의 예배나 결혼식을 담은 동영상은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교회를 악의 거처로 더 많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무슬림으로 살아온 휴리는 어느 날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그녀의 거실에 찾아온 눈부신 빛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밝고 따뜻하여 그 빛이 주님인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휴리는 세 딸과 남편을 깨웠으며,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그 후 휴리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으며, 그녀는 어디를 가든지 주님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휴리가 방문하는 마을 곳곳마다 기적들이 일어났으며, 병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치유가 일어나고,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개종은 마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마을 공동체는 그녀의 가족을 추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에 정착하여 텐트를 치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복음 전도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고, 마침내 지역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무슬림 여성은 환상이나 꿈을 통하여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그들에게 귀한 복음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병든 자가 일어나고, 억압받고 갇힌자들이 악한 영에서 놓여 자유함을 얻습니다. 또한 그들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자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를 간증합니다. 이들의 변화된 삶을 지켜본 가족이나 이웃들 역시 주님의 이름 앞에 큰 능력이 있음을 믿고 두려워합니다. “양치는 목축업을 하는 하리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로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그녀는 버스 정류소에서 한 여성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죗값을 치렀다고 전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영생으로 옮겨진 산 제사이며, 더 이상 양을 죽여서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녀는 복음을 듣고 감격했으며 자기 아들을 위하여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하리의 목장에 가서 아들의 치유를 위해 속죄 제물인 어린양을 살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우리의 필요는 물질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영혼의 자유함을 얻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된 삶을 통해서 복음과 함께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제이네프는 첫 번째 남편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그녀는 친구 집에 머물면서 한 남성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이네프의 두 번째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녀는 배 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으로 지적 장애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낙심하여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출산을 앞두고 제이네프는 복음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처음으로 간절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그녀의 친구 집에 찾아온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 정식으로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며, 자신의 아이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제이네프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아주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들을 출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학교에서 유일하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불리는 곳마다 권능이 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과 함께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야살의 어머니는 16세에 결혼을 하여 자녀를 키울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딸을 출산했습니다. 야살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경험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야살의 부모는 그녀를 폭력적으로 키워왔으며 종종 화장실에 가두는 등 끊임없이 학대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울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녀는 부드럽고 인자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사는 지역에 단 하나의 교회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2시간 거리의 가정교회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야살은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의 직장인 병원에서 복음 전도자로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녀의 변화된 얼굴은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함께 기도했을 때 환자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그녀는 항상 주님의 말씀에 갈급해 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의 뜻대로 살아가길 원하는 그녀에게 부모는 여러 가지로 시험을 주고 있지만, 그녀의 견고한 신앙은 어떤 어려움도 강하고 담대하게 이겨내고 있습니다.”
무슬림 여성이 기독교인이 되면 믿음으로 인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면서 그분의 절대적인 인도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따르고자 하는 모든 무슬림 여성에게 계속해서 기적의 은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3) 무슬림 여성이 바라보는 성경의 여인
무슬림 여성이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찾았다면, 이들의 삶에 주님의 은혜가 계속 넘쳐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이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고 신앙의 목적을 이루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오스양은 작은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하여 정착하여 사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복잡한 도시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이웃을 사귀는데도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녀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인데, 그곳에서 좋지 못한 경험을 한 뒤 그녀는 이슬람 신앙을 포기합니다. 어느 날 그녀는 라디오를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되었으며, 지역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교회 생활과 말씀을 통해서 신앙을 성장시키고 있었지만, 자신의 삶에 습관이 되어버린 남을 험담하는 일과 거짓말로 인해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가정 모임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습관이 되어버린 남을 험담하고 욕하는 것을 고쳐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이후로는 주님을 위해서 말씀을 나누는 자가 되길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무슬림 여성이 복음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교회나 믿음의 모임이 없는 곳에서 혼자서 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야 합니다. 대부분의 무슬림 회심자 여성은 간증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특별히 이해하기 쉽고 신앙의 본이 될 수 있는 구약 룻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룻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소망을 좇아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얻은 축복과 그녀의 등 뒤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많은 무슬림 회심자 여성이 감동을 받습니다. 룻은 모압 지방에서 살았던 이방 여인이자 과부였습니다. 그녀는 과부의 신세로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시어머니와 함께 유대 땅에 들어와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서 생계를 이어가는 고되고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 결코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하고 과부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믿음과 주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모든 필요를 은혜로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과거가 결코 다가올 미래의 삶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결국 축복의 통로가 되어 메시아를 탄생시키는 족보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룻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무슬림 여성이 자신을 이방 여인인 룻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과거에 주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룻과 같이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에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룻의 믿음으로 결단하여 다시는 이방 신을 섬기러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확고한 믿음 안에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바라보며 회심하는 무슬림 여성을 우리는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을 날마다 사랑으로 격려하고 보살펴 주면서 룻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축복하며 신앙의 유산을 전하는 통로로 쓰이길 함께 기도합니다.
5. 결론
주님은 무슬림 여성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들이 과거에 어떤 모습으로 살면서 누구를 섬겼었는지 관계없이, 그분의 자녀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포로된 자의 사슬을 풀어주며, 억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며, 악한 영으로부터 건져주시며 지치고 병든 자들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죄의 형벌에서 구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주님은 무슬림 여성의 아버지가 되어 사랑으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며, 때로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성의 가치관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시험을 당하는 자들에게 더 큰 긍휼과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무슬림 여성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남성으로 이 땅에 오셨나요?”
그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진정한 남성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님은 무슬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며,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과 함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슬림 여성이 복음을 받아 변화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녀의 권세와 함께 하늘의 영광과 땅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길 기도합니다.
-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0/nov/25/report-condemns-uk-over-britishwomen-and-children-held-in-syria-citizenship-barbaric-conditions
-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4/01/08/what-is-appropriate-attire-for-women-in-muslim-countries/
- 믿는 여성들에게 일러가로되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나타내는 것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머리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 시아버지, 그녀의 아들, 남편의 아들, 그녀의 형제와 형제의 아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여성 무슬림의 하녀들에게 성욕을 갖지 못하도록 그리고 성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외에는 드러내지않도록 하라. 또한 여성이 발걸음 소리를 내어 유혹함을 보여서는 안 되니 믿는 사람들이여 모두 하나님께 회개하라 그리하면 너회가 번성하리라 (꾸란 수라 24:31)
-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한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떨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 하심이라 (꾸란 수라 9:5)
- 지하드 신부들- https://en.wikipedia.org/wiki/Brides_of_ISIL
- 그녀가 말하길 어느 남자도 저를 접촉하지 아니했고 또한 부정을 저지르지도 아니 했는데 어떻게 제가 아들을 가질 수 있습니까? 이에 그가 말하길 그렇게 되리라 당신의 주님께서 그것은 내게 쉬운 일이라 그로하여금 백성을 위한 예증이 되게 하고 하나님 의 은혜가 되도록 이미 그렇게 명하여진 일이었노라 (꾸란 수라 19:20-21)
- 믿음을 갖고 선을 행하는 남녀가 천국에 들어 가나니 그들이 받을 보상은 조금도 부정함이 없노라(꾸란 수라 4:24)
-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명령하여 부모를 존경하라 했거늘 그의 어머니는 태아를 가짐과 이 년간 젖을 먹이므로 말미암아 허약하여지니라 내게 감사하고 그리고 네 부모에게 감사하라 내게로 옴이 최후이니라 (꾸란 수라 31:14)
- https://www.popcouncil.org/research/womens-education-in-the-muslim-world
- 읽으라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으로 연필로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기르쳐 주셨노라 (꾸란 수라 96:3-5)
- 그대는 이 성서가 계시되기 전에 글을 읽을 수 없었으며 그대의 바른 손으로 쓸 수도 없었거늘 만일 그대가 그럴 수 있었다면 불신자들은 그것을 의심하였으리라 (꾸란 수라 29:48)
-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서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 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꾸란 수라 :34
-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 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꾸란 수라 4:157)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