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LA 연합교회 한어부를 담임하는 목사이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 학교 올리브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난 18년간의 사역을 돌아보며 더욱 깊이 배우게 된 하나님에 대해서 또 교회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과 SWM 선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 시간을 지나며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의 주인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매 순간 순간의 인도자이시며, 공급자이시며 동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동안 우리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증거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여정
처음 경험한 가정 같은 교회
저희 부부는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진화론과 무신론, 그리고 세속적 인본주의 교육의 강한 영향력 아래서 자랐습니다. 결혼과 함께 도미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저와 남편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믿는 자들에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기도와 사랑,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들은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오해와 반감을 오히려 관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몇 가지 영적 체험과 함께, 결국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저희 부부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출석했던 교회는 전형적인 미국의 소도시에 있는 한인 교회로서 중상층 이민자들이 교회의 기둥을 이루고, 유학생들 다수가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미국 생활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의 기반을 다진 어른들이 젊은 유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외로운 유학 생활에서 그들의 사랑을 시원한 생수같이 받아 마시고 교회를 가정처럼 여기면서 힘든 유학 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희 부부가 그 교회를 다니던 시기는 한국에서 잘 훈련받은 소수의 청년 유학생들이 새벽기도와 성경공부 등의 자발적 평신도 사역을 통해 새로운 영적 바람을 일으키면서, 교회 역시도 큰 자극을 받아 영적으로 질적으로 부흥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호기심과 관심으로 시작된 진지한 성경공부, 특히 다른 여타 교재가 아닌 성경 자체를 공부하여 어떤 신학이나 전통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이로움으로 만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희 부부의 신앙 여정의 첫걸음을 그 교회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에게 자리 잡은 교회의 모습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바, 영적 가정이었습니다. 가정과 같은 교회는 지금까지의 저희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평신도 사역으로 훈련받다
그 교회는 규모가 작고 부사역자가 없는 교회였기에,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섬김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교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섬길 기회를 얻었습니다. 찬양팀, 성가대, 남여선교회, 청년부, 주일학교, 한글학교 등에서 섬기며 각종 교회의 사역들에 대해 배우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학위를 마칠 때쯤에는 청년부 그룹을 맡아서 섬기며 기도와 예배를 인도하는 등 소그룹에서 리더십을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훈련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섬길 수 있는 것들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자연스럽게 훈련하신 것 같습니다.
졸업과 함께 우리 부부는 삶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는데 바로 남편의 진로가 바뀌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마쳤는데, 미국에서 다시 로스쿨을 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그저 한국에 돌아가 대학 강단이나 연구소에서 일할 막연한 계획 정도를 올려드리며 기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청년부 학생들과 강력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할 때, 하나님께서는 열방 선교에 대한 부담과 열정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때 남편은 시간이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직업으로 바꾸어 보다 전격적인 선교 활동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인으로서 해외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지역으로 LA가 적절하다는 확신과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성령님의 강권하심과 너무나 확연한 인도하심 가운데 남편은 LA에 있는 로스쿨로 진학하게 되었고 저는 근처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하고 한 살짜리 아들을 키우며 LA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중대형 교회에서의 경험
LA에서 저희가 출석했던 교회는 그 당시 수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역동적 교회였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8~9년간 경험했던 교회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교회였습니다. 전문적이고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사역자들이 잘 짜인 프로그램 안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주일마다 감동이 넘치는 경배와 찬양, 말씀의 은사를 가지신 담임 목사님의 메시지로 은혜를 받으며 2년 정도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학생으로, 연구원으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쉽지 않았던 시기를 마치 차려놓은 밥을 떠먹여 주는 것 같은 교회에서 2년 정도 생활하였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훌륭한 교회였고 또한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은 교회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기간 동안 뭔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갈급함이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신앙생활을 돌아봤을 때, 초신자 때부터 불완전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들을 가졌고, 그 결과 철저한 교회 중심의 삶을 배웠던 저는 큰 교회에서 제공되는 전문 사역자 중심의 사역들과 프로그램들이 낯설었고 아마도 그러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가 수적으로 크게 부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매주 새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비록 저희 부부가 소그룹 모임에 속해 있었고, 최선을 다해 참여하며 노력했지만 큰 교회 안에서 예전 교회에서 느끼던 가족 같은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전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LA로 이주하여 당시 USC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 형제의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캠퍼스에서 박사과정 학생 세 명이 교회를 시작하려는데, 우리 부부도 조인하여 이런저런 모양으로 함께 섬기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정해진 예배 처소도 없고, 목사나 사역자도 없이 평신도, 그것도 학생들 몇 명이 시작하는 교회를 저희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큰 교회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적응하며 안정되어 가던 교회 생활을 떠나 또 다른 교회를 섬긴다는 것도 옳지 않은 일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제안은 계속 저희 마음에 부담이 되어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에게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며 인도하심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다
2003년 개척 멤버들과 새가족들
세 명의 청년들과 3살 아이를 포함한 저희 식구 세 명, 총 6명이 교회의 개척 멤버였습니다. 교회라고 하기엔 그저 캠퍼스의 작은 예배 모임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임은 한국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시는 한 목사님께서 LA에 오셔서 집회하시는 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세 명의 청년들에게 안수하시며 교회를 시작하라 당부하신 것에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세 명과 저희가 합류하여 한국의 그 목사님 교회의 지교회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빈 강의실을 찾아 십자가를 세우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며, 준비해 온 음식으로 서로 교제하는 작은 예배 공동체로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학교의 클럽 모임으로 등록하여 캠퍼스의 종교 센터를 빌려 예배를 드리다가 차차 캠퍼스 밖에 작은 오피스를 임대하여 주중 모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 당시 교회를 다닌지 10년 남짓 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평신도였고,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개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이 좋았던, 즉 모이기에 힘썼던 자들이었습니다. 1년이 지났을 때, 함께 시작하였던 세 명의 청년들이 졸업이나 이런 저런 일들로 하나둘 떠나고 리더십으로는 저희 부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모교회에서는 전임 사역자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갓 신학교를 시작한 젊은 전도사님 부부를 파송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섬김으로 또 1년, 그 후에 청년 사역의 비전을 가지신 목사님을 지역에서 청빙하여 또 1년을 함께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저희 부부가 교회를 개척했다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며 예배 공동체를 세우는 데 힘쓴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모임이었지만, 뜨거운 찬양과 경배를 통해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신학에 매이지 않는 성경 중심의 말씀을 공부하며, 유학생들, 청년들의 동질 그룹에서 느끼는 애환들이 다루어지는 교제 등이 우리 공동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성장, 비전,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등의 제목들은 여전히 저희와는 먼 주제였던 시기였습니다.
전임 사역자로의 부르심을 받다
2007년 전도사 임명식
교회가 시작된 지 3년여 될 즈음에, 1년간 성심으로 섬기셨던 청빙했던 목사님께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부족했던 교회에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대로 섬겨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개척 이후 가장 진지한 고민과 질문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 한 가지를 질문드리며 몇 개월을 기도했었습니다. “주님, LA에 1,000개가 넘는 교회가 있다는데 우리 교회가 또 하나의 교회로 여기에 꼭 있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의 욕심이 아닌 주님의 뜻이라면 사인을 보여주십시오. 교회를 함께 섬길 동역자들을 보내 주십시오”라고 3개월을 기도했을 때, 놀라운 기도 응답들을 체험하였습니다. 그해 유학생들 중 이미 잘 훈련된 열정적인 형제자매들을 교회로 보내주시면서 우리 교회가 그 당시 캠퍼스에서 청년들을 섬기는 교회로 서 있어야 함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또한 교회가 어려웠던 기간은 저희 부부가 개인적인 진로를 놓고 기도하고 있던 기간과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고, 남편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후의 진로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임 목사님의 사임으로 어려워진 교회 상황을 놓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한국 모교회 목사님께서는 저희 부부를 전도사로 임명하시면서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받으신 감동이, 저희 부부를 향한, 특히 저를 향한 주의 종으로의 부르심이 있으니 기도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교회를 시작하고 섬기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평신도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 한번도 전임 사역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과학도로서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교수 선교사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습니다. 주의 종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기도 권유에도 불구하고 저는 전임 사역자로서의 길을 갈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그 자리에 서야 한다는 하나님의 확증 때문에 전도사로서의 책무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로스쿨을 마치고 로펌에서 막 일을 시작한 남편을 앞장세워 교회의 주요 사역을 맡기고 저는 뒤에서 부엌일을 맡아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한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의 집회에서 그 집회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이 저에게는 계속해서 주님의 책망의 음성을 들으며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네가 기도한 것 아니냐?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남은 생을 나에게 쓰임 받고 싶다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네가 잘해서 부른게 아니라 너를 불쌍히 여겨 너를 써주려고 부른 것인데 왜 순종하지 않느냐?” 제가 박사후 과정이 끝날 즈음 저의 진로를 위해 기도할 때, 남은 생을 제가 잘하는 것으로 주님께 쓰임받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통해,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는 것은 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혹은 쓸모가 있어서 저를 부르신 게 아니라,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셔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불러주신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후 곧바로 신학교에 입학하고 교회의 전임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은 로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재정적 지원과 또 성경공부 등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순종을 기뻐하셔서 교회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안정되어 갔으며, 준비된 동역자들을 보내 주셨고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새로운 비전
교회의 비전을 새롭게 하다
2008년 ISC 오프닝 준비
신학교를 다니면서 수많은 교회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은 그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막연히 청년, 캠퍼스, 유학생, 선교 등의 단어들을 나열하며 예배 중심의 공동체로 모였다면, 이제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전략적이고 지혜로운 사역들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었습니다. 청년들, 특히 유학생들을 섬기게 하신 주님의 뜻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제가 수강한 신학교 첫 수업은 선교 전략에 관한 과목이었습니다. 구약의 주된 선교, 즉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축복하시고 모델 국가가 되게 하셔서 열방이 이스라엘로 모여들어 여호와를 배우는 구심적 선교와 신약의 선교, 즉 사도와 믿는 자들이 온 열방으로 퍼져 그리스도를 전하는 원심적 선교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기말 페이퍼의 주제가 이러한 구심적, 원심적 선교를 각 교회의 사정에 적용하여 가장 효과적인 선교 전략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 예배 후 뜨거웠던 소그룹 성경공부
우리 교회는 인력이나 재력이나 모든 면에서 전통적인 ‘보내는 선교 (선교사 파송)’ 사역을 하기는 어려운 처지였기에 우리 교회에 맞는 선교 방법에 대해서 늘고민하던 차였습니다. 그 과목을 배우며 한가지 깨달은 것은, 우리가 타겟하여 섬기는 LA의 대학 캠퍼스들은 각 나라의 엘리트 청년들이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곳이며 (구심적), 굳이 우리가 전 세계로 나가지 않아도 세계 각 지역에서 오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최고의 첨단 세상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 모여들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으로 변화된다면, 그리하여 그들이 공부를 마치고 그들의 나라로 돌아간다면 (원심적), 그들은 그 나라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그 민족을 섬기는 최고의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그러한 마음으로 한국 유학생들을 섬겼지만, 그 대상을 외국 학생들에게로 확대해야 한다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International Student Church”의 비전을 기말 페이퍼로 준비하여 제출하였는데, 그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페이퍼에 “Excellent”라는 빨간색 도장을 찍어 제게 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선교 전략을 기뻐하시는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교회에 이러한 비전을 나누고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영어 예배를 오픈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International Student Church 예배를 시작하다
2010 야외 예배
비전은 아름다웠고 강력해 보였지만 현실은 여러 가지로 막막했습니다. 저는 막 신학교를 시작했고 한국말로 설교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시기였으며, 교회의 경험이나 선교 훈련 등도 너무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영어 예배를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했었습니다. 하지만 순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마친 후 몇 명의 동참하는 청년들과 함께 영어 예배를 ‘연습’해 보기로 했습니다. 몇 주간 찬양도 영어로, 성경 봉독도 설교도 영어로 해보면서 영어 예배를 연습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사역자 부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한인 1.5-2세 영어권 청년들을 대상으로 작은 교회를 개척하셔서 자비량으로 섬기고 계신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 부부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저희 부부와 비슷한 분들이었는데 특히 청년들에 대한 마음과 열방 선교에 대한 마음이 크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 그저 저희 교회가 받은 외국 유학생을 섬기는 비전을 담담히 나누며 영어 예배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분들은 너무나 좋은 선교 전략임에 동의해 주시면서 영어 예배를 함께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에 한어부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그분들 교회의 팀이 와서 함께 ISC 예배를 영어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분들은 저희 부부의 평생의 동역자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2012 침례식
International Student Church (ISC) 예배는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비전이었고, 또 반드시 되어야 할 사역이었으며, 동역자들을 보내주시는 등 여러 가지로 사인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영혼 구원 사역이 그렇듯이 예배를 오픈한다고 영혼들이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전도를 위해 그들과 처음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한국 음식들을 나누며, 외국 학생들에 대한 복음 전도에 애를 썼습니다. 또한 여름마다 신입생들을 위한 유학생 정착 도우미 사역을 통해 전도사역을 펼쳤습니다. 유학생 정착 도우미 사역은 인터넷을 통해 그해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들에게 미리 접촉하여 신청을 받은 후, 그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픽업은 물론, 정식 거주지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제공하며 LA에서의 첫 출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들로 도와주는 사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제공하던 사역이었지만 ISC를 오픈한 이후 외국 학생들에게까지 사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정착 도우미 사역을 통해 많은 외국 학생들을 만나고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는 중국에서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던 시기였습니다. 이 사역이 중국 학생들 사이에 점차 소문이 나고 신뢰를 얻어 2~3년 후에는 한 해에 저희가 정착 도우미 사역을 통해 도움을 준 학생들이 40~6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예수님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우리 교회 규모에 비해 많은 수의 새가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들을 붙잡고 그저 그 자리에서 순종하였을 때, 결국 한명 한명 ISC를 통한 구령의 열매들이 맺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정착 도우미 사역은 우리 교회가 개척한 지 2년째 되던 해부터 시작하여 지난 14년간 한 해도 쉬지 않고 지속하여 온 사역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교인의 대부분인 유학생 청년들이 그러한 도움이 절실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해 낸 사역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경험을 전도에 접목하여 다른 많은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결국 영혼 구원으로 이끈 귀한 사역이었으며, ISC 학생들에게까지 확장됨에 따라 저희 같은 작은 교회에서도 가능한 전략적인 선교 사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정착 도우미 사역은 정말 시간과 수고가 많이 드는 사역으로 영혼을 위한 희생적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사역입니다. LA에는 인력, 재력이 가능한 많은 대형 교회들이 있지만 유학생들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가 드물며, 그들을 위한 정착 도우미 사역을 체계적으로 하는 교회들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특별한 사역임을 깨달아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해 섬겼던 교회의 많은 청년의 헌신과 사랑의 수고들은 하나님 나라에 크게 기록되었을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선교의 눈을 열어 주시다
2014년 인도학생 초청 추수감사절
International Student Church 예배를 섬기면서 아무리 작은 교회지만 그 나름의 방법을 허락하셔서 열방을 섬길 수 있는 선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교회 경험도 거의 없고 신학교도 미국에서 다녔고, 교제하는 목사님들도 많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게스트 스피커들을 초청하거나 집회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몇 달 안에 지인들의 소개로 세 명의 스피커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초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세 분의 메시지가 모두 동일하게 마지막 때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성령님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때까지 저희가 몇몇 선교 단체에서 배운 것은 ‘선교는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종말론적 선교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 (마 24:14)하는 이른바 열방 선교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눈을 뜨고 보니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에는 땅끝 (열방) 선교와 함께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또 하나의 필수 조건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나라의 영적 육적 회복 (마 23:39)이었습니다.
지난 2천 년 간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19세기 말부터 고토로 돌아오기 (알리야) 시작했고, 드디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건국됨으로 이사야서 66장 7~8절 말씀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 그 놀라운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 분의 스피커들을 통한 세 번의 확증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음성으로 받은 저희는 그때부터 이스라엘 성경공부와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를 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해 뒤에는 남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변호사 일을 내려놓고 이스라엘 회복 사역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선교 단체와 교회를 병행하여 섬기게 되었습니다.
2018년 이스라엘 뉴하트 단기선교-에티오피안 메시아닉쥬와 함께
선교는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그 신랑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크든지 작든지 역랑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모든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가장 효과적이고 바르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바 이스라엘의 회복과 온 열방의 회복은 반드시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며 교회는 그 두 가지 사명을 이루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 하에 우리 교회는 현재까지 베트남, 에티오피아, 아이티, 중국, 캄보디아, 태국 등 열방의 선교사님들과 협력하여 단기 선교 등 이모저모로 돕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믿는 유대인들 (메시아닉 유대인)의 교회 개척사역, 신학교 사역, 위로, 구제 사역, 유대인들의 고토 귀환 (알리야) 사역 등을 돕고, 이스라엘 회복의 중요성을 열방 교회에 알리는 사역들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확장
교회 연합을 통한 시너지를 경험하다
2013년 USC캠퍼스 연합예배
ISC를 도와주신 전도사님이 목사님이 되시고 함께 ISC를 섬긴지 약 5년, 우리 교회가 개척된 지 10년이 좀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두 교회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었고, 함께 하는 ISC 사역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가지 상황들이 생기면서 하나님께서 두 교회가 지금까지 해오던 동역이 아닌 연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두 교회 모두 청년과 선교라는 비전을 품고 있었고, 또 아름답게 동역을 해왔지만, 교회의 연합이란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두 교회는 너무 다른 교회였습니다. 언어, 문화, 환경에서 너무 달랐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한 교회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교회가 함께 모여 주님의 뜻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형제의 동거함에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 (시 133)을 밝혀 주셨고, 두 교회의 장단점이 서로 상보되어 멋진 시너지를 이룰 것에 대한 기대감을 주셨습니다. 몇 주에 걸친 합심 기도 끝에 두 교회는 연합하기로 전격적인 결정을 하였고 지금의 LA 연합교회 (LA United Church)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정말 주님의 강권하심이었고, 두 목회자와 회중에게 주신 마음은 순종이었습니다. 많은 한국의 교회들이 연합보다는 분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현시대에 작은 교회지만 두 교회가 연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단순한 한 교회의 연합을 넘어서는 시대적 사명, 즉 부르심이라 생각합니다.
차세대를 책임지는 교회
2016년 올리브트리 첫 교실
교회의 연합은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임을 지난 7년간 이모저모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함께 예배드릴 때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연령 차이, 문화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조금씩 희생하는 가운데 오직 한 분 주님을 높이며 한마음으로 경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차이에서 오는 불이익도 너끈히 뛰어넘을 수 있는 귀한 가치이며 축복이었습니다.
사역 차원에서도 물론 많은 시너지를 체험했습니다. 잘 훈련되고 전문적일 수 있는 유학생들은 정체성의 혼돈으로 힘든 우리 2세들에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었고, 2세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들은 또한 형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단기 선교, 구제사역, 전도사역 등을 사랑으로 함께 할 때 주님의 강력한 지원을 체험하며 각자 개교회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LA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VB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연합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청년 교회에서 이제 3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청년과 다음 세대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어른 세대들이 함께 모이기 시작했고, 기존의 청년 그룹들이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으며 3세대가 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며 우리 교회는 또 다른 사역의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 그것이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며 주님이 주신 감사와 기쁨은 물론 컸지만, 마지막 때를 살아야 하는 그들이 성경이 예언하는 대로 얼마나 많은 핍박과 환란을 겪어야 할지, 또한 얼마나 교묘하고 사악한 유혹들과 싸워야 할지,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이 미국에서조차 공립교육이 완전히 무너지고, 반성경적, 반하나님적인 가르침으로 자녀들을 미혹하고 공격하는 상황이며, 그러한 상황은 어디에서나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직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말씀으로 든든히 양육되어야 할 우리의 자녀들을 치열한 영적 전쟁터인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내어놓고, 네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태도는 너무나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자녀 교육은 공립학교가 아닌 부모들에게 직접 맡기셨음 (신 6:4-9)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은 영적 가족인 교회가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깊어져 갔습니다.
교회 사역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 학교 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보여서 몇 년을 망설이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확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분명했고, 또한 그것은 급박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 번 순종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멘! 순종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이미 준비해 놓으셨던 보따리들을 풀어놓아 주셨습니다. 이 비전을 교회에서 선포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비전에 동의하는 동역자들이 헌신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너무나 적절하고 훌륭한 커리큘럼을 또한 만나게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60년 이상 사용되었고 계속해서 개발되어온 말씀 중심, 훈련 중심의 이미 검증된 교육 방식이며, 학교 규모와 상관없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었습니다. 첫 학기 한 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저와 사역자들을 포함한 6명의 선생님이 헌신하여 올리브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수는 아니지만 우리 학교는 우리의 자녀들이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주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견고히 자랄 수 있는 안전한 어머니의 자궁 (시 110:3, 한글 번역에는 빠져 있지만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준비되는 새벽의 자궁)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맺는말
지난 18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기며 많은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진정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게으르고 악한 종을 인내로 책망으로 사랑으로 이끄셔서 결국은 순종의 자리로 인도하시고, 그분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며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목도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비전 역시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온 아브라함의 손을 이끌고 뭇별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꿈 (비전)을 나누시고 또 그것을 확장하고 이루시는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저의 인생에서도 만났습니다. 아직도 저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또 어떻게 나아가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하신 것 같이 계속해서 비전들을 확장해 주시고, 끝까지 인도해 주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교회가 해야 할 것은 순종인것 같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저는 어떤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 좋았고, 어떤 것이 부족했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해서, 그때그때 순종하며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에 하시는 일들을 함께 보며 가고 있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김수미 목사는 뉴욕주립대 (버팔로)에서 분자생물학 박사를 하고, 퓰러 신학대학교에서 M.Div.를 마쳤다. 현재 LA 연합교회의 한어부 담임, 올리브 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