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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도제목

하나님의 나라가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능력으로 임하는 기도
  • 하나님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속히 이루어지며 예수의 참 복음이 땅끝 미전도종족에게 속히 전파되게 하소서
  •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합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이 소유하고 있는 영혼들, 세상의 권세, 땅, 재물 등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지고 오게 하소서 (마 12:29)
  • 터키와 주위 이슬람 국가들의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의 모든 계략을 파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계속 확장되게 하소서
  • 한국과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복음의 본질과 열정을 회복하고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하지 않고 열방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는 담대한 교회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교회 공동체에서 온전한 예배와 기도가 회복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능력을 체험케 하시며 각자에게 주신 거룩한 소명을 발견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의 교회와 목회자들, 동역자들과 성도를 위한 기도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복음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법대로 경기하는 자로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충성스러운 일꾼 되게 하소서 (딤후 2:3-5)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현지 사역자와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지속적인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나게 하소서
  • 터키 (PiT), 이집트 (PiE), 아르메니아 (PiA), 쿠르디스탄 (PiK), 그리스 (PiG) 선교사 네트워크를 통해 각자의 은사와 사명에 따라 팀 사역으로 아름다운 동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박해를 피해 터키로 들어오고 있는 아프간 난민들을 위해 흑해 삼순교회에서 카림 사역자가 섬기는 아프간 난민 교회를 중심으로 그들을 위한 생필품과 거처를 마련하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프간 국경 근처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려는 많은 성도와 가정을 보호하시고 도움의 손길이 연결되게 하소서
  • 지난 2년 동안 터키에서 약 70가정 이상의 많은 외국인 선교사가 추방되는 가운데 남아 있는 선교사들이 위축되지 않고 복음전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 무슬림 젊은이들이 알라를 부인하고 무신론자가 되는 영적 상황 가운데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영적 각성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참 진리를 듣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교회 개척자 (Church Planter/CP)들을 위한 기도
  • 현재 62유닛의 현지 CP들 (복음전도자/교회개척자/선교사)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사랑의 마음,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개척 사역과 목양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소서
  • 주님께서 친히 모든 CP와 가족들을 늘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날마다 새 힘을 더하소서. 특별히 배우자와 자녀들의 건강 문제, 재정적 압박 등 여러 가지 시련 중에 있는 CP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으로 늘 승리하게 하소서
  • 친척, 사회, 정부의 박해와 압박, 코로나 사태의 어려운 상황 등 주위 형편과 사정에 결코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늘 먼저 구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사역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풍성한 열매들을 허락하소서
  • 이들의 귀한 희생과 섬김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들을 위한 더 많은 중보기도 동역자들과 재정 동역자들을 세워 주소서!
SWM 선교회 및 동역하는 교회들과 개인을 위한 기도
  • Holy Wave Makers (2021.7.1~2022.6.30) 사역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터키,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에서 복음전파와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섬길 4명의 청년선교사 (오상준, 강남, 유서영, 김영경)를 축복하시고 보호하시고 늘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 터키의 재단 (VAKIF/바크프)의 남은 정부 승인 과정이 잘 이루어지게 하소서. 터키 이스탄불 M센터 (허강한/강안나), 조지아 바투미 M센터 (팀/사라), 이라크 도훅 M센터 (패트릭/안순자), 이집트 카이로 M센터 (허드슨/허뵈뵈), 그리스 아테네 M센터 (데이빗/레이첼)를 통해 현지인이 훈련되고 교회개척운동이 더 강력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현지 복음전도자 및 교회개척자들의 신학 공부와 목회 훈련을 도울 수 있는 코스와 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온전하신 뜻과 인도하심 가운데 잘 준비되고 진행되게 하시고,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개척자와 목회자를 훈련하는 사역이 되게 하소서
  • SWM 선교회에 허락하신 부르심과 사명 (연합기도운동, 교회개척운동, 선교적교회운동)을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운데 겸손하고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소서. 모든 동역자의 가정과 사업과 교회를 축복하시고, 특별히 육신의 연약함 중에 있는 동역자들을 온전히 치유해 주소서
마지막 때 영적 대추수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기도
  • 전 세계적인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는 백성과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 아이티 외 중남미에서 정치, 사회, 경제의 불안 때문에 생존을 위해 멕시코를 거쳐 수천km를 걸어 미국 국경에 몰려오는 수십만 명의 캐러밴 난민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하고 교회와 구제 단체들의 도움이 있게 하소서
  •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쇠퇴한 유럽 국가들과 특별히 교회들 가운데 복음의 본질이 회복되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의 악한 김정은 정권이 속히 무너지게 하시고, 지하교회 성도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사 그 땅에 복음이 전파되며 참 자유와 공의가 속히 임하게 하소서
  • 미국과 한국을 긍휼히 여기사 교회들이 깨어나고 각성하게 하시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이 되게 하소서
  •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시 122:6). 이방인의 충만한 수 (롬 11:25)가 속히 채워지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속히 성취되게 하소서

2021. Wint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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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

이세웅 금향로 편집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가 무엇인가 배우고 확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번 주제를 준비했다. 천국 복음이라는 단어를 마태복음은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표현이 더 친숙한 것 같아 이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임하면 예수 공동체가 세워지는가?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이번 겨울호의 고민이 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임한 곳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수 공동체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17-22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2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임한 곳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는 과정을 예수 공동체는 반드시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 안의 성도들 간의 신뢰와 정죄의 반전이 나타나고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성화의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맛보아 알게 된다. 이것은 성도 한 사람, 한 가정 그리고 공동체 모든 지체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체면 문화가 강한 아시아와 중동에서 예수 공동체의 이야기를 쉽게 듣기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으나 아직 하나님의 주되심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신앙의 갈등을 가져오지만, 하나님의 주되심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가리면서 우리의 체면 문화를 앞세우는 가면을 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중적인 삶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을 보고 있다.

이번 겨울호에서는 SWM 선교회와 동역하는 지역교회, 선교지의 현장교회 그리고 기도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번에 소개하는 공동체 이야기들은 소중하다. 완전하지 않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야기를 나눔으로 우리의 불완전한 죄성과 연약함이 드러나고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공동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가져온다. 우리라는 가면 뒤에 숨어 나의 존재가 가려진 문화 속에서 성장해 온 한국인들에게는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문제를 책임져야 할 주체가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가정이라기보다 공동체 전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버트 뱅크스는 그의 책 『바울의 공동체 사상』 (1)에서 “바울은 공동체들의 내적 역학에 대한 것을 주된 관심으로 다루었고 외적인 책임들에 관한 것이 아니고, 사회 외적인 책임은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가족 혹은 소수의 그룹이라는 것이 바울의 입장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성도들과 지역교회 그리고 선교단체들의 차이가 나타나며 이 차이가 나타날때 공동체 안에서 이 사회 외적인 책임에 대해 같은 이해력을 갖지 못하거나 해결 방법이 다를 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예는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호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의 글을 받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예수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동역자들이 귀한 글을 나누어 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수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에 대해 김진영 선교사 (SWM 국제/미국 대표)는 연합공동체, 기도공동체, 선교공동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글을 나누어 주셨다. 아멘이다. 김수영 목사 (주임재히즈교회 담임목사, 아주사 신대원 교수)는 “복음과 교회”라는 제목으로 귀한 글을 나누어 주셨다. 선교 매거진 금향로에는 처음으로 글을 보내주셨는데 탁월한 강해 설교가로 알려져 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으로 복음과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 개인, 집단적인 공동체 그리고 결과적으로 영원한 공동체로 살아갈 성경의 비밀을 풀어준다.

박지범 목사 (A.C.T. 인터내셔널 예배예술 선교사)는 베트남 선교사로 파송 받은 아버지와의 선교지 생활부터 자신이 브라질 선교사로 파송 받고 겪은 문화적인 차이를 경험하면서 당시 부흥을 경험하고 있던 브라질 복음성가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알리는 남미워십찬양 단체 LAMP를 창립하고 공동체 사역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복음과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나누고 있다. 50년 간의 선교사의 자녀로, 선교사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한국의 제주도에 정착하여 한국 젊은이들의 멘토로 사역하면서 섬기고 있는 공동체의 삶을 나누고 있다. 예수 공동체의 진정한 열매는 건물이나 단체가 아니라 존재이며 이 존재들의 하나 됨이 교회의 완성인 것을 믿고 실천하고 있다.

이재진 선교사 (SWM Korea 대표)는 “모달리티 vs. 소달리티? 모달리티 with 소달리티”라는 다소 긴 제목으로 선교하시는 하나님이 만드신 지역교회 (모달리티)와 선교단체 (소달리티)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를 함께 완성해 갈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해결책을 나누고 있다. 특히 둘째 소주제인 하나님께서 사용해 오신 두 가지 공동체의 모습에서는 지난 2,000년 동안의 선교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공동체 이야기를 써 주신 몇 공동체가 있다.
첫째가 김수미 목사 (LA 연합교회)의 “교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함께 보는 공동체”이다. 미국 유학 과정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김수미 목사는 LA 연합교회 한어부를 담임하는 목사이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학교 올리브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교장이다.지난 18년 동안 사역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교회 공동체로서 걸어온 여정을 소개한다. LA 연합교회는 한어부와 영어부가 있고 한국인만 아니라 비한국인들도 함께 섬기는 다민족교회이다.

이란 난민 사역자인 샤힌 새하비 목사 (터키 삼순개신교회 이란인공동체)는 터키에서 난민들이 예수 공동체 안에서 체험하는 삶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 있다. 무슬림 이란 난민들이 터키 땅에 와서 만난 예수와 성도들의 공동체를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 진솔하게 들을 수 있는 귀한 스토리이다.

시리아 난민 사역자인 아지즈 교회개척자 (안디옥개신교회 시리아 아가페공동체)는 2010년 겨울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을 피해 터키에 온 지 10년이 넘어가는 시리아 난민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들이 믿었던 시리아 이슬람과 터키 이슬람이 얼마나 다른지 충격을 받았고, 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예수 공동체를 만나면서 경험하는 시리아 난민들 몇 가정의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안디옥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있는 아가페 공동체는 도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의 꿈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강우석 팀장 (SWM 선교회)은 “진젠도르프와 헤른후트: 선교의 시발점이 된 난민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이 시대의 영적 흐름을 바꿀 하나님의 키워드가 바로 난민임을 소개한다.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공동체, 공동체의 위기와 진정한 연합, 연합의 열매 – 선교,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마음가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로 글을 맺는 강우석 팀장은 선교 현장으로 나가기를 사모하면서 현장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있다.

SWM이 선교 공동체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공동체로서 관계 맺는 대상은 누구인지, 공동체와 현장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선교 공동체가 겪는 어려움 또는 도전과제들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차이자만을 싣는다. 차이자만은 터키어로 Çay Zaman이라고 쓰고 Tea Time이라는 뜻이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SWM 선교 공동체의 본부 사역자와 사역자 가족들이 SWM 선교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나눠주었다.

레베카 선교회의 대표인 레베카 선교사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라는 귀한 글을 나누어 주었다. 삼십 대에 예수님을 뜨겁게 경험했고 40세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레베카 선교사는 베트남, 중국, 태국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사역하는 동안에 경험했던 공동체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어 주었고 지금은 미국 조지아주 아틀랜타에서 전임사역자로 일하면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담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까지 수고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복음을 담는 그릇이며, 복음 전도의 기초이며 동시에 목표이며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세상의 소망이다.

북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 사역하는 하비비 인터내셔널의 하이디 탄 사역자가 “하비비: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글을 용감하게 보내주었다. 쿠르디스탄이 터키 정부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쿠르드족들의 독립국 (이라크 내의 자치령)이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터키 보안 요원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 윌리 탄 (하비비 설립자) 선교사가 마음을 열고 하비비 사역을 나누는 귀한 글이다. 윌리 탄 사역자와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의료 사역과 교육 사역을 통해 쿠르드 난민들과 예지디 난민들을 섬기고 있고 SWM 도훅 M 센터의 동역자이기도 하다.

무슬림 국가의 기독교 회심자들을 위한 10가지 기도제목을 값비싼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다. 오픈도어 선교회의 린디 로우리가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선택한 무슬림 배경 성도들을 위한 기도제목을 소개한다. 읽으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케빈 권의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 다섯 번째 글이 실렸다. 이번 여정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을 배경이며 바울의 일인칭 스토리텔링이다. 1세기로 돌아가 바울과 함께 3차 전도 여행을 다니게 될 것이다.

  1. 로버트 뱅크스, 『바울의 공동체 사상』, 장동수 역, IVP, 2007.

발행인 칼럼

예수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

김진영 선교사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향한 그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한 사람, 한 민족, 한 국가를 사용하십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세계적인 영적 대부흥과 선교를 위해 가장 강력하게 쓰임을 받은 예수 공동체는 18세기에 시작된 모라비안 공동체였습니다. 이 공동체의 역사는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백작 (Nicolaus Zinzendolf, 1700-1760) 한 사람의 헌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진젠도르프는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뒤셀도르프의 한 미술관에서 도메니코 페티 (Domenico fetti)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작품을 보게 됩니다. 이 그림의 밑에 적힌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느냐?”라는 글을 읽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당시 핍박받던 개신교 난민들을 자신의 땅에 받아들이게 되었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 공동체는 훗날 모라비안 공동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종파와 배경을 가진 형제파, 침례파, 루터파가 모였기 때문에 심각한 분열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세례, 성찬, 예정설 등의 신학적인 관점의 차이로 인한 분열과 분리, 미움과 증오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진젠도르프는 모든 성도의 가정을 방문하고 그들을 설득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점을 이야기하지 말고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며, 서로 화해하고 축복하며 하나의 공동체로서 나아갈 것을 도전하면서 1727년 5월 12일 모두 ‘화해와 형제의 언약 (Reconciliation and the Brotherly Agreement)’에 서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1727년 8월 13일 베르텔스도르프 (Berthelsdorf) 교회에서 성찬식과 기도 모임 가운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Moravian Pentecost). 그 후 24명 (12명의 형제, 12명의 자매)이 하루 한 시간씩을 맡아 24시간 연속 기도회를 시작하게 되고 여러 사람이 동참하면서 24/7 기도운동은 약 120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이 기도 운동이 곧 선교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 약 30년 동안 226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모라비안 공동체는 2백년에 걸쳐 3천 명의 선교사를 지원하게 됩니다. 이 모라비안 공동체는 연합을 통한 기도와 선교 공동체였습니다. 이 공동체는 근대 세계 선교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나아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회심을 이끌어내었으며, 윌리엄 캐리 (근대선교의 아버지)를 파송하게 되는 영국과 유럽의 강력한 부흥과 선교 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라비안 공동체를 통해 예수 공동체의 세 가지 특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연합 공동체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성경과 신학의 다른 관점으로 인해 분열과 분파가 나뉘었지만, 서로가 다른 점을 인정하고 축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힘써 지키려는 헌신과 노력으로 연합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 안에서 나뉘고 찢긴 상한 마음과 상처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비웃음과 욕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과 반목으로 복음의 본질인 용서와 화해, 사랑과 섬김의 정신 (Spirit)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우리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축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 공동체임을 인정하고 지켜야 합니다.

둘째, 기도 공동체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하나됨을 지키며 중보기도 사역에 힘쓰게 될 때 성령의 놀라운 은사와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삶으로 헌신한 기도 공동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과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소와 유혹과 도전 가운데 세상적인 가치관과 혼합되거나 타협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갑니다. 평안의 삶, 행복의 삶, 축복의 삶을 추구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나눔의 길을 외면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나태와 게으름으로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사라진 삶을 살아갑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지만 기도하지 않는 위선적이고 종교적인 교인이 되고 있습니다. 평안하고 안정된 삶에서 박차고 일어나 절제된 삶 (Discipline Life), 자신을 쳐서 예수께 복종하는 삶으로 기도 공동체에 헌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의 파도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 교회를 위해 기도 공동체에 참여하는 헌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셋째, 선교 공동체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선교 공동체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연합을 이루고 모든 민족을 중보 기도하는 ‘왕 같은 제사장’ (벧전 2:9)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열방을 향한 선교 공동체로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 열방과 모든 민족들 가운데 임하도록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제사장적 중보기도의 삶으로 헌신하는 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한국 교회에 주신 은혜와 축복은 세계 선교를 향한 거룩한 부르심 (Calling)이며 거룩한 사명 (Mission)입니다.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열방을 향한 중보기도의 불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들 가운데 선교의 열정과 사명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부흥과 성장을 위해 선교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회복할 때 온전한 부흥과 성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교적 교회를 위한 여러 가지 전략과 방법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본질이 바뀌지 않고 사명을 회복하지 않은 겉모습의 선교적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공동체로서 연합 공동체, 기도 공동체, 선교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특별 기고

복음과 교회

김수영 목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복음과 교회와의 관계를 표현한 성경 구절은 많지만, 고린도후서 4장 7절의 비유적 표현은 복음과 교회와의 관계의 절묘한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가리키며, 질그릇은 그것을 담고 있는 교회 (불러낸 무리)를 의미한다. ‘우리’라는 질그릇을 개인으로 볼 수 있지만, 넓게는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곧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명은 연약한 그리스도인들과 그 교회 안에 담겨 있다. 투박하고 거친 질그릇은 섬세하게 빚어서 높은 온도에서 두 번 구워낸 멋진 그릇이 아니다. 이것은 한 번 구워낸 토기 그릇으로 곡식과 같은 내용물을 담는 크고 작은 그릇이다. 값이 비싸지 않아서 가정에서 흔하게 볼수 있으며, 깨지기 쉬운 형질을 가지고 있다. 이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더 잘 표현할 상징이 있을까?

질그릇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만이 소유하는 값비싼 유기그릇도,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장식품도 아니다. 실제로 유용하게 쓰이며 남자나 여자나 젊으나 나이 많으나 신분이 높으나 낮으나, 누구든지 가질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언뜻 평범해 보이고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아무나 접근해서 만질 수 있다. 그런데 다가와서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발견하는 사람은 인생의 보물을 얻는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를 보면, 투박하다 못해 구멍이 나 있고 깨져 있어, 그 내용물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투박할 수는 있지만 더럽지 않아야 하는데, 겉과 속이 더러워서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 또한 깨져 있어서 내용물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내용물은 변함없이 훌륭한데 담는 그릇의 상태가 형편없다 보니, 세상 사람들은 그 내용물도 형편없다고 여기곤 한다. “교회가 저러니 진리가 있기는 한 거야?”,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않고 싶다” 이런 말이나 이보다 더한 말들을 듣는다. 과연 교회에는 진리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교회가 진리를 잘 드러내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분명 후자인데, 왜 세상 사람들은 전자처럼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복음을 담고 있는 교회의 특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매력적인 복음 이야기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아들’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한다. 삼위일체를 설명해주시는 성경의 표현 중에 이것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다. 보통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아버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존재 (likeness)를 의미한다. 그래서 ‘불법의 아들’ (살후 2:3)이란 표현은 불법을 닮아서 불법의 모든 특징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비슷하게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의 모든 특징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아버지와는 구별된 존재이지만, 본질이 동일한 존재를 표현한다. ‘아들’만큼 더 적절하게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설명할 다른 것이 없다. 그런 독특한 관계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어, 인간을 닮아 인간이 가진 특징을 모두 가진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7)에 들어 있는 신학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죄인인 우리와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는 많은 신학자와 설교자가 다루어주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인분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고 삼 일만에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매력적인가?

우리는 성공한 스파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철저히 위장하고 적진에 들어가 적진의 모든 것을 장악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빼내 오거나 적진을 교란시키는 작업을 훌륭하게 한 스파이 무용담에 빠져든다. 하나님의 아들은 철저하게 위장하고 적진에 들어온 존재가 되었다. 얼마나 위장을 잘했는지, “흠모할 만한 것” (사 53:2)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영광을 깊이 감춘 채로 인간의 아들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 한 이야기는 투박한 질그릇과 같은 육체를 그도 가져보았고, 그 한계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투박한 옷을 입은 스파이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내린 사명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거룩한 자도 이룰 수 없었던, 그 스파이의 유일무이한 업적은 우리를 ‘죄’의 적진에서 빼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사명을 완수하는 이야기에서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철저하게 위장하고 온 스파이는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 우리를 죄와 어둠의 세상에서 끄집어내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어떤 원리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는가?

이 복음 이야기의 중심에는 ‘대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죄의 핵심은 하나님을 자기 자신으로 대체하는 인간에게 있다. 인간은 자기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다. 반대로 구원의 핵심은 자신을 인간으로 대체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자신을 인간의 자리에 내려놓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 인간의 자리에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내려진 처벌을 대체의 자리에서 기꺼이 받으셨다. 성경은 그것을 ‘대속’이라고 말하며, ‘구속’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완벽하게 위장하고 온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을 대체해서 인간이 받아야 할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스파이는 죽었다. 이제 스파이의 사명이 끝나자, 그는 새로운 빛나는 그릇 (부활의 몸)으로 변해서 원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긴 승리의 선언이며, 죽음에서 오는 공포와 쏘임을 가져갔다. 이것은 죽음을 대체해 생명을 얻게 된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이다. 이와 같이 ‘대체’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죄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질 (새로운 속사람)을 입는다. 사실 십자가는 죄와 사망과 사탄에 대한 전쟁이었으며, 그 전쟁은 승리로 끝이 났다. 부활은 그 승리를 입증해주는 사건이다. ‘대체’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사람은 죄 대신 의를, 죽음 대신 생명을, 사탄 대신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설명한다 (롬 6).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대체’의 원리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오로지 그 원리가 작동되어야 인간은 구원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몸 이야기

위와 같은 대체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신비한 몸을 이룬다. 기독교는 개인을 완성해주며, 공동체를 완성해준다. 예수의 생명이 질그릇 가운데 거하고, 예수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다. 이것은 항상 자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주고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이라는 것은 단순히 비유이거나 상징일까? 아니다. 이것은 살아계시고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신비롭게 융해되어 하나를 이룬 유기체이다. 실제적인 하나됨을 의미한다. 예수의 삶은 아직도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제한된 지구상의 한 장소에서 한 개인의 육체를 통해 나타나셨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라 부르는 복합적이고 협력하는 몸을 통해 나타나신다. 그래서 교회는 비록 질그릇같이 약하지만,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된다. 예수는 단순히 한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를 물려준 분이 아니다. 지금도 그리고 역사의 모든 시기마다 교회 생명력의 정수로 공동체와 함께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예수는 교회와 떨어져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교회 또한 그리스도와 떨어져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비록 이 세상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를 보기 어렵다 해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바람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목표에 가까이 도달하려고 애쓰는 교회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영원히 같이 거할 신부로 말이다. 완성체가 성취되려면 아직 기다려야 하지만 (재림 때가 되어야만 이루어질 일이다), 건강한 교회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발전하려고 애쓴다.

머리-몸-각 지체들

교회는 각 개인을 세워주고, 세워져 가는 개인은 교회를 세워준다.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다. 그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나와 모든 몸의 조직과 기관들을 살리고 세워준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로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그리스도는 머리 (headwater, 물의 근원지)로서 모든 생명 활동의 출발과 근원이시다. 비록 질그릇 같은 교회가 연약해서 깨지기 쉬워도,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은 그 질그릇을 붙들고 계신다. 그 안에 보물을 담고 모든 사람이 다가올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공급해주시는 예수께 절대적으로 의지할 때만 몸으로나 그릇으로나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둘째, 머리 (head, 절대 권위)로서 연결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중심이 되신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머리’이신 예수의 권위 아래 교회는 존재한다. 예수는 주이신 것을 고백하는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 모든 활동 영역에서 적용될 때, 교회는 그분의 보호와 공급을 받아서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것이다.

지역 교회의 누구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많은 교회가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단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그것은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자(들)가 명령하고 지시하는 공동체는 더 이상 교회의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 오직 머리이신 예수께서 직접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공급하며, 지도자들은 그 일을 위하여 겸손히 수종 드는 종에 불과하다. 각 사람이 자기의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갈 때, 몸은 유기체로 기능한다. 중앙 명령 기지인 머리가 신경조직을 통해 신호를 보내면, 각 지체는 이에 따라 활동한다. 각 지체는 자신의 의지대로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로부터 독립된 지체는 더 이상 몸의 일부가 아니다. 떨어져나가 죽을 뿐이다.

각 지체들 간의 관계

모든 지체는 각각 머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지체는 또한 서로를 세워주고 보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의 생명과 능력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다른 지체 없이 스스로 자족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각자는 전부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합치면 전부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낮은가를 따지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질문이다. 어떤 지체도 높거나 낮지 않다.

서로에 대한 관계를 깨뜨리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우월감이며, 또 하나는 열등감이다. “내가 누구보다 더 높으니까 내 말을 들으라”라고 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으며,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니까”라고 말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우리는 서로의 은사를 귀히 여겨야 한다. 열등감이나 우월감 대신에 우리는 상호의존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상호의존이란, “여러분이 나 없이는 완전할 수 없고, 당신 없이는 내가 완전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남이 될 필요도 없다. 손이 발이 되겠다고 하면 혼란이 온다. 그 반대가 되어도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남을 대체하지 못한다면, 각자가 가진 가치와 기능을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 몸이다.

개인적인 (personal)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미국식의 개인주의가 아니며, 중국식의 맹목적 집단주의도 아니다. 교회는 지극히 개인적 (personal)이어서,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만남, 침묵과 고독 속에서 영성을 개발하기, 각 개인이 서로를 열고 삶을 나누기 등과 같은 개인적인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자기만 알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주의는 교회를 해친다. 교회는 각 개인의 인간성을 짓밟지 않고 오히려 세워준다. 기독교 공동체는 개인을 완성해주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 공동체 각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 안에 완성되도록 도와준다. 세속주의의 물결 속에서 개인주의는 오히려 개인을 희생시킨다.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빼앗긴 자는 인격과 인간성조차 무시당한다. 가진 자는 대우받고 없는 자는 천대받는다. 그러나 복음을 가진 교회는 그와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주께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와 병든 자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돌보아 주셨던 것을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하면서 그 머리의 명령과 뜻을 따르지 않고, 세속주의와 개인주의의 흐름을 따른다면, 어찌 제대로 순종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세속주의적인 개인주의와 함께 개인의 가치를 해치는 전통이 있다. 예를 들어, 유교 문화는수치와 명예의 문화이다. 가족과 가문의 명예가 중요하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일을 배격했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보다 가족이나 가문 전체의 권리와 이익을 중요시했다. 개인의 생각이나 권리는 전체를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체면을 먼저 생각했고 체면을 잃으면 다 잃는 것처럼 살았다. ‘집안의 명예’를 위해 개인은 소모되어야 했으며, 희생되어야 했다. 여성들은 더 많이 희생되었다. 그런 잔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체면과 교회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집단의 생각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보다, 진리를 따르는가 아닌가 보다, 교회 대다수의 생각을 따르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교회의 대다수가 결정하면 말없이 따르는 것이 선이 되어 버렸다. 그 대다수가 비성경적인 결정을 내려도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속한 영향력 집단이 전체를 장악해야 한다. 옳고 그름보다는 몇몇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조종한다. 집단을 위하여 개인들을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소수의 지도자를 위해서 개인들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개인의 의견과 인격적 대우보다 집단의 이익이 먼저 오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가 동의하는 민주주의라는 명분 아래 성경적이지 않은 교회 문화가 있다. 이런 집단적 문화는 주님께서 의도하신 복음적 공동체가 아니다.

또 하나의 예로, 바리새파의 집단적인 문화의 폐해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전체 집단의 가르침을 비판 없이 따라갔다. 자신들만이 진리이고 의식을 가진 종교인이며, 자신들만이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냥 거친 돌과 같은 존재였다. 쓸모없는 돌, 아니 방해가 되는 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돌을 뽑아다가 멀리 던져버렸다. 집단이 저지른 가장 큰 죄가 바로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죄였다. 복음을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 집단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가차 없이 배격하고 없애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법조문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으로 대체해버렸다. 자기 집단이 만들어놓은 조문들을 다 지키면, 하나님도 만점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기 앞에 있는 연약한 개인들을 짓밟았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둔 셈이었다. 요즘 교회들이 그렇다. 권위주의적이고 제왕적인 목회자나 장로들이 자기들만이 진리와 권위를 가진 집단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의견이나 개인의 인격은 교회의 결정이라는 명목 아래에 무릎 꿇게 한다. 유교적, 바리새적, 세속적, 집단적, 권위적인 모든 교회 활동은 그리스도의 몸을 병들게 한다. 화려한 건물에 갇혀 목회자나 의사결정 집단이 하나님을 대신하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자들로 전락한다. 우상은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우상의 지배를 받는 더러운 질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복음 앞에 선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의 인간성을 짓밟지 않으셨다. 친히 다가가셨으며 손을 대셨고, 만나주셨으며 용서해주셨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만나주셨다. 복음서에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셨으며 기다려주셨다. 프로그램으로 찍어내는 그런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셨다. 많은 교회가 제자훈련을 통해 ‘교회의 제자’를 만들어낸다. ‘목회자의 제자’를 만들어낸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갈등하면서 진정한 제자로서 자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외우고 숙제해오고 복종하고 교회의 결정에 맹목적으로 따라오도록 훈련받는다. 그런 제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집단의 제자화를 이룬다. 그런 제자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지 못한다.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한국의 한 교회가 옳고 그름의 결정 앞에서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지를 알고 있다. 죄고백을 포함하여 삶을 나누지 못한 제자훈련은 실패한다. 그리스도는 삶을 나누어 주셨다. 자신을 죽기까지 나누어주셨다. 부활하셔서 돌보시며 지속적으로 같이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런 제자훈련이 복음적인 제자훈련이 아닌가? 그렇게 개인을 세워주는 교회가 복음에 근거한 교회 공동체이다.

집단적인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다. ‘신비한 몸’인 의미에서 집단적이다. 공동체는 전체를 이룰 때 의미가 있다. 전체 안의 지체요, 다양한 지체들로 이루어진 전체이다. 서로 다르지만 보완해주고, 구조와 기능이 다르지만 서로 완성해준다. 빼어내도 상관없는 것은 지체가 아니다. 구성요소의 일부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운동하는 클럽의 회원이 되는 것은 일정 수준의 자격을 갖추면 일원이 될 수 있다. ‘멤버십’을 가진 회원을 지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격사유가 있는 회원은 쉽게 제명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어떤 자격 조건을 심사한 후에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고백한 다음 세례를 받으면, 교회의 식구가 된다. 주님의 생명을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에서 ‘가족’이며, 같이 밥을 먹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식구’이다. 가족이나 식구 중의 누구 하나를 빼내도 별 차이가 없다면, 그 사람은 가족이 아닐 것이다. 진짜 가족 (식구)의 누구라도 빠진다면, 그 빈자리는 큰 문제요 충격적인 결손이 된다. 잠깐 기분이 이상할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진짜 가족의 하나가 빠져버린다면, 고통스러워서 밥을 먹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가족의 의미는 같이 고통받고 같이 기뻐하는 것이다. 공동운명체이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들어간다. 개별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전체를 이루는 연합체가 된다. 그 안에는 머리가 있고, 그 권위 아래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교사와 목사는 사람들을 세워주는 섬기는 종의 권위를 갖는다. 많은 사람이 설교자의 권위를 높다고 하는데, 그것은 설교자의 권위가 높은 것이 아니라 설교자를 세운 주님의 권위가 높은 것이다. 또한 주님의 말씀이기에 설교의 권위가 높은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각 세대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내려오면 다 같은 성도 중의 한명이 된다. 섬겨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보라. 자신의 생명까지 주시면서 섬겨주셨다. 가장 권위 있는 분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주심으로 섬기셨다. 그렇게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 섬기지 않으면서 섬김을 받는 것은 전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아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교회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변함없이 적용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4)

가족이나 식구의 일원들은 서로 용서하고 대화하고 받아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자녀들 각자의 권리와 의견을 존중해준다. 서로가 잘되도록 격려하고 세워준다. 아버지는 보호자가 되고 공급자가 된다. 어머니는 위로자가 되고 양육자가 된다. 형제와 자매는 각자가 성숙해지도록 보완하며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누구 하나 받기만 하는 자가 없고, 주기만 하는 자도 없다.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적 기도를 보라. 거기에 나오는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됨 (oneness)은 공동체적이며 집단적이다. 집단이 건강해지면, 그 안에 속한 각 개인이 건강해진다. 몸 전체의 건강이 각 지체의 건강과 연결되고, 각 지체의 건강은 전체의 건강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간에 암이 생겼다고 가정해보라. 간 하나에 조금 암이라는 어려움이 생겼으니, 나머지 지체들에게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한 곳이 병들면, 그 영향이 전체에 미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 간암을 발견했다. 교회 건축을 바로 마쳤고 교회 일과 신학교 일로 바쁘게 지내고 있던 때였다. 즉시 병원에 입원해서 부분적인 항암치료를 했다. 4년에 걸쳐 6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치료를 받은 후, 암이 줄어들어 간의 60%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수술 직후에 몸의 모든 기능이 다 바닥이었다. 간의 일부를 잘라냈는데, 몸 전체는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병원을 나올 때 완전히 회복되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대략 2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 몸 전체는 조금씩 기능을 회복하면서 더 약한 간에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힘이 없는 다리는 힘을 얻기 위해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해야 했다. 먹는 것을 위장과 간의 기능에 맞춰 조절했다. 활동하는 것도 건강의 상태에 맞추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지만, 그 세월 동안 몸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보조를 맞춰가는 것을 경험했다.

교회 공동체는 집단적 유기체로 살아간다. 누구 하나 아프면, 그 아픔이 전체에 전달되고 같이 보조를 맞추어 아픔을 이겨내도록 기능해야 한다. 몸은 머리의 지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한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명령과 지시를 따라 거꾸러진 자를 일으켜주고 아픈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의 덕을 세워주어야 한다. 건강할 때는 그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아플 때는 회복을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공동체

이 땅에서 함께 나눈 유기적 관계는 앞으로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것이다. 지금은 질그릇같이 투박하다. 하지만 그때에는 영광스러운 금 그릇이 되어 주님의 손에 들려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겉까지도 빛나는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는 여전히 약하고 깨지기 쉽다. 하지만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깨진 부분은 수리될 것이다. 금이 간 부분은 메꿔질 것이다. 약한 부분은 더 보호해주실 것이다. 오염되기 쉽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오염된 교회를 정결하게 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복음 앞에 서서 복음의 진리로 자신을 단장하면, 주님의 생명을 담고 매력을 풍기는 교회가 될 것이다.

김수영 목사는 댈러스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성경강해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미국에서 사역하면서 성경강해에 힘쓰며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 전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주임재히즈교회의 담임목사이며 아주사 신대원 겸임교수로 있다

특별 기고

복음과 공동체

박지범 선교사

들어가는 말

필자의 부모님은 1970년에 당시 한창 전쟁 중이었던 베트남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으셨다. 당시 만 8살이었던 필자와 두 살 위 형도 함께 베트남에 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선교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베트남 패망 후 부모님은 독일로, 또 독일에서 브라질로 사역지를 옮기시게 되었다. 브라질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한 필자는 미국으로 대학원 유학을 오게 되었다. 10년 동안 음악과 선교학과 신학 공부를 마친 후, 고향 같은 브라질로 선교사 파송을 받았다. 이후 10년 동안 브라질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부모님을 천국에 보내드리고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지금은 한국 제주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서 2년째 집을 오픈하고 방문자들을 맞이하여 숙식을 같이하는 환대 사역을 하며, 커뮤니티와 지역 교회를 돕는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으로 이주하기 전, LA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슬람권 선교에 관심을 두고 SWM 선교회에서 1년 동안 목요 중보기도 모임에서 찬양을 인도하기도 하였다.

이 글을 통해 지난 50년 간 선교사의 자녀로, 또한 선교사로서 사역하며 경험한 삶과 예배와 찬양 사역, 관계 중심적인 공동체 사역을 통해 얻은 통찰력들을 연결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에 관하여 나눠보고자 한다.

사랑의 부재와 관계의 어려움

기독교만의 특징을 두 가지 꼽는다면, 첫째는 기독교의 절대신이 자신을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언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세상 어느 종교에도 없다. 계명이 명령이면 그것을 지켜야 하는 최종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약이라면 최종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자신의 계명을 그의 백성 가운데서 이루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간 안에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한 구속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 중심적’ 복음이다. 이 복음을 나누고 누릴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2000년대부터 세계 선교학계에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왔다. 첫째는 소위 ‘삼위일체 선교학(Trinitarian missiology)’이라고 불리는 관계 중심적 선교학의 새로운 이해가 생긴 것이고, 둘째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하는 교회를 넘어 성도 한 명 한 명을 모두 선교사로 만드는‘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의 부상이다.

2000년에 필자가 선교대학원 석사를 졸업할 때까지도 선교에 대한 성경의 핵심구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a)”였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해외에 나가서 그곳 사람들을 가르쳐서 제자를 삼는 일이 선교 사역의 핵심적 개념이었다. 그런데 선교지로 나갔다가 2015년 같은 학교 박사과정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면서 지난 15년 사이에 선교의 정의가 사역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의 정의가 ‘삼위 하나님의 하나 됨의 사귐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 세 분의 사랑으로 하나 됨의 사귐이 너무 좋아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 분의 공동체의 사귐으로 인간을 초대하신다는, ‘삼위일체 선교학’이 부상했던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다. 사역과 일 중심의 선교에서 존재와 관계 중심의 선교로의 전환이 온 것이다. ‘doing’과 ‘being’의 우선순위 논쟁에서 드디어 ‘being’이 처음으로 우선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50년간 선교지에서 또 선교와 연관된 삶을 살면서 수많은 좋은 일을 경험했다. 그러나 일이 존재보다, 성취가 관계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생긴 수많은 아픔과 관계의 단절을 선교 현장에서 목도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삼위일체 선교학을 바탕으로 하는 선교의 정의 변화는 개벽 수준의 변화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역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며 후원을 하던 선교 참여적 개념에서 모든 교회의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교사가 된다는 선교적 교회의 새로운 개념은 사역 중심에서 삶 중심으로 신앙의 기준이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훈련받고 선발된 특정인만 선교사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선교사가 되어 선교사의 삶을 살 것을 목표로 하는 교회다. 이 또한 개벽 수준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념의 부상은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수 공동체와 일맥상통하고 있기에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교회가 유교, 불교, 무속종교의 영향을 내면 깊이 깔고 있었기에 받아들이고 시행하기가 어려웠다고 본다. 모든 종교들은 절대 신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통해 동행하는 개념보다는 절대 순종을 통한 용납 받음으로 구원을 보장받는 개념을 갖고 있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교회의 선교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본다. 지난 50년 동안 선교 사역과 선교지와 연관된 삶을 통해 발견한 한국 선교사의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선교사의 대부분이 ‘문화적 갭 (Gap, 차이)’을 극복하지 못하고 선교를 마친다는 것이고, 둘째는 같은 지역에 있는 선교사들 간의 관계성이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 극복과 갈등 극복에 대부분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자질이 모자란 것도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본질적인 의미에서 내면적인 부분까지 연구해 보면 ‘수직적’이면서 ‘단일 문화적’인 한국 문화로 말미암은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단일 문화에서 태어나 성인으로 자란 사람이 다문화 상황으로 옮겨서 그 문화가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백 년이 걸린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다문화와 타문화의 현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훨씬 더 빨리 문화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입양되거나 국제결혼을 한 예가 그렇다. 결국 선교사들이 문화적인 갭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일과 사역 중심적으로 또 돈으로 주종 관계를 이루는 방법의 선교를 했기 때문으로 드러날 때가 많았다. 필자 자신도 또한 아버님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단일 문화와 수직적 문화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이라고 본다.

필자는 15살 때부터 브라질에서 살았다. 부모님과 10년을 살면서 중 3부터 대학교까지 지냈고, 대학 졸업 후 3년을 더 살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 10년 동안 결혼도 하고 아들과 두 딸도 낳았다. 브라질 선교사로 파송 받아 고향 같은 브라질로 돌아왔을 때, 브라질은 역사 이래 처음 있는 대부흥의 끝자락 정도에 있었다. 동네 각 지에 교회들이 세워졌고 찬송 소리는 온 땅에 울려 퍼졌다. 필자의 아버지가 브라질 선교사로 갈 때는 개신교가 3.5% 정도였는데 필자가 선교사로 갈 때는 22%에 육박했다. 엄청난 대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길에 노는 사람들이 참 많다. 길을 물어보려고 다가가면 주변에 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가와서 길을 가르쳐 준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친구라는 의미의 ‘아미고 (Amigo)’ 개념이 있다. 친한 사람은 모두 아미고다. 이들에게 하나님도 어린아이도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평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존재 가치가 동일하다고 믿는다. 한국적 수직 관계에서는 인간의 존재가치가 나이나 성공 정도, 학력이나 직위에 의해 다르게 여겨지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브라질의 이 수평성이 한국에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수직이 나쁜 것이 아니라 수평을 통해 수직이 생길 때 그 수직이 ‘참 수직’이 되기 때문이다. 아내와 친밀한 관계를 통해 존경을 받는 남편이 정말 훌륭한 남편인 것처럼,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수록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진정한 위대하심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다.

브라질 현지인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현지인 자작곡들이 너무나도 좋고 은혜로웠다. 가사들 안에는 하나님과의 편안하고 따듯한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 곡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고 싶어서 2003년에 남미워십 찬양단 (LAMP) 첫 앨범을 발매하였다. 거기에 실린 곡 중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사랑스런 주님 음성”, “새롭게 하소서” 등이 널리 불리게 되었다. 그 후 4집까지 발매되었는데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는 믿네”, “주의 옷자락 만지며” 등이 사랑을 받았다.

이 사역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한국의 수직과 브라질의 수평이 가사 번역 과정에서 심각하게 마찰이 생긴 것이었다. 한 곡의 가사에 요한복음 4장 24절의 말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가 있었다. 번역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경배’라는 단어의 그 의미가 한국과 브라질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중남미 사람들은 경배를 의미하는 ‘adorar’라고 하는 단어를 미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일상 생활용어로 사용한다. 최극상으로 좋을 때 ‘adorar’를 사용하는데, 하루에 수십 번씩 반복해서 사용한다. 한국말로 하면 “좋아 죽겠다”라고 할 수 있겠다. 초콜릿이 너무 좋을 때 “Eu adoro chocolate”라고 하고 애인이 너무 사랑스러울 때 “Eu adoro minha mulher”라는 표현을 쓴다. 브라질 말로 이 찬양을 부를 때 “em espirito em verdade te adoramos”라고 하면 하나님이 초콜릿처럼 너무 달콤하고 애인처럼 너무 사랑스러운 분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하여 “영 안에서 진리 안에서 주님을 경배해”라고 부르면 ‘경배’라는 단어가 나올 때 갑자기 ‘차렷하고 열중 쉬어’하며 옷깃을 다시 여며야 할 것 같고, 마치 ‘나는 벌레만도 못하고 마른 막대기만도 못한’ 느낌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단어는 같은데 그 의미와 느낌이 너무 달라서 오랜 의논 끝에 ‘경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랑해’로 번역했다.

만일 5살 난 아들이 매일 아침 아빠 방 앞에 무릎 꿇고 아빠가 방에서 나올 때 “아버님 밤새 옥체 보존하셨습니까? 이제 기침하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까 아니면 방으로 뛰어 들어와 아빠를 끌어안고 뽀뽀해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더 좋을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와 친구가 되기 원하시고 우리에게 그렇게 경배받기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브라질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일과 사역에 중점을 두었고 현지인들은 사람과 관계가 더 중요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선교사와 현지 교인들 간의 갈등을 참 많이 보았다. 수직과 수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해서 생긴 결과들이었다. ‘선생이 되기 전에 먼저 학생이 되어라’를 실천할 수 있을 때 그 균형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 간의 관계적 갈등 문제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수직적인 한국 문화의 폐해라고 본다. 같은 방향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함께 가는 ‘친구’라는 수평적 개념보다는 ‘선후배’나 ‘연장자와 어린 자’라는 수직적이고 이원론적 개념으로 단단히 문화화된 선교사일수록 관계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많이 목격하였다. 사역 현장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가진 선교사들은 자신의 가정 안에서도 부부간에 또한 자식과도 심한 간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서도 샌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반만년을 내려온 수직적이고 단일 문화적인 우리 문화로 인해 한국 선교사들은 집중력과 경쟁력이 높아서 빠른 시간 내에 탁월한 성취를 이루는 것에는 뛰어나다. 그러나 수평성을 바탕으로 맺는 좋은 관계성이 필요한 문화 갭 극복과 선교사 간의 좋은 관계에는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보며 이 문제에 대한 대안과 해결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이 세대 신앙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은 환경도 중요하고 연결도 중요하지만,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잘 누리지 못하면서 사는 기독교인을 볼 수 있다. 이슬람은 없어서 못 누리고, 우리는 있는데도 못 누리는 상황인 것이다.

필자가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교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한 후 결론을 내린 것은 ‘교회 안에는 열심과 희생과 헌신은 많으나 사랑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구절 앞에서는 위축되고 작아지며 어떻게 하든지 행함을 가지려고 애를 쓰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구절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이 있는 것이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가르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전통 종교에 심하게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가 사랑의 관계보다 인정을 추구하는 일 중심적으로 선교 사역을 하는 것에 한계가 왔다고 본다. 주님께서 분부하신 순서는 분명하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러” 가기 전에 먼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 공동체 안에 있는 제자의 삶이 있어야 함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사랑의 부재와 관계성의 어려움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것이다.

사랑이 바탕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시작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의미한다. 로마의 철권통치 외에는 경험한 적이 없는 당시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적인 정권과 힘의 논리로 무장된 정치적인 다스림 밖에 경험이 없는 우리 한국 교회도 사랑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

힘에 관하여 하나님은 최극상이시다. 힘으로 하나님을 능가할 자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삶에 단 한 번도 그분의 힘을 사용해서 우리를 무력으로 대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힘없는 자의 입장으로 다가오셔서 인간에게 처참하게 죽으시기까지 하셨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특징은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포기하심을 통해 느껴지는 사랑으로 인한 통치다. 힘이 많이 포기될수록 사랑은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함 받음이 클수록 사랑이 더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가장 힘 있으신 분이 가장 약한 자의 자리로 내려오심은 최고로 많은 양의 힘이 포기되었음을 의미하고, 최고의 사랑이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십자가에서 드러났다. 최고로 강한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힘의 포기’를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랑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느끼는 자마다 하나님의 통치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들도 느끼고 경험한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눴다. 하나님의 통치는 힘이 아니라 힘을 포기한 사랑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바탕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복음에 대한 이해 중 중요한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무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오해와 과장의 문제다. 무지에 대해서는 ‘존재 가치’에 대한 문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어떤 ‘존재 가치’를 부여하셨는지에 대한 무지다. 오해와 과장에 대해서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문제다. 인간의 연약함 (죄성과 죄악됨 포함)에 대한 이해가 성경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인 이해가 더 강한 데서 오는 오해와 과장이 있다. 먼저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세 가지 사실이 있다. 이 사실들을 믿을때 비로써 인간의 최고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인간을 만드실 때는 직접 손으로 만드셨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물과 직접 손으로 만드신 인간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유일성’이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들은 없어져도 또 말씀하시면 생긴다. 그러나 직접 손으로 만드신 인간은 없어지면 또 만들 수가 없다. 물론 인간을 또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인간이 이전과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 때부터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지구에 80억 인구가 살아도 모든 인간은 한 명밖에 없다. 유일한 한 명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유일성’은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인간에게 부여하신 ‘절대적 가치’이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장갑이 참 좋은 예가 되어준다. 장갑은 손의 형상이다. 그래서 장갑 속에 손이 들어가면 장갑이 꽉 찬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면 우리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실 때 꽉 차게 된다. 이 자리를 하나님이 채우시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비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계획하실 때부터 인간에게 자신을 주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인간 안에 들어가 인간과 하나 되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존재 가치’를 부여받았다.

셋째, 인간 안에 하나님만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는 나만 채울 수 있는 나의 자리가 있다

이 자리는 내가 채우지 않으면 영원히 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대신 채울 수 없다. 각자 자신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 자리를 채울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시며 기다리신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자리를 다 채웠을 때 성경은 그것을 ‘교회의 완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님은 어떤 누구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몸처럼 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행복이고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이다. 서로가 서로 없이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이고 서로의 존재 가치는 자신처럼 귀하다.

데럴 존슨은 그의 저서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1)에서 “태초의 우주에는 관계가 있었다. 모든 피조물은 이 관계로부터 창조되었고, 모든 피조물은 이 관계로 향하게 창조되었다”라고 말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과 사랑으로 하나 되시려고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최고의 기쁜 소식은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으로 하나 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다. 그럼 왜 그것이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와 부활로 요약되는 ‘구속의 복음’이 복음인가? 그것은 죄로 인해 생긴 분리 때문이다. 분리로 인해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쁜 소식은 영원한 하나 됨이지만 그 하나 됨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십자가와 부활이기에 그것을 복음이라 칭하게 되었다. 복음에 대한 오해가 여기 있다. 십자가나 부활이 신앙의 목적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복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복음은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혼, 즉 존재다. 영혼을 얻기 위해 복음이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도구이고 존재가 목적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그 복음을 통해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존재’와 ‘영원히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것을 통해 ‘존재와 존재’가 사랑으로 하나 됨, 즉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진정한 목표는 존재이고, 그 존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4, 35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제자 되는 방법이다. 진정한 제자는 어떤 이론 훈련이나 극기 훈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직 사랑의 관계로 완성된다. 그것도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누렸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많이 누린 사람이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살펴보면 그 내용은 ‘십자가’와 ‘부활’로 요약된다. 십자가는 인간의 문제인 ‘죄’를 해결하시는 자리다. 십자가는 ‘인간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인간의 죄보다 인간의 존재가 더 귀하기 때문이었다. ‘부활’은 사망 권세를 깨고 다시 사시고 ‘생명 주는 영’이 되심으로 인간 안에 오셔서 영원히 하나 되기 위함이다. 언약의 완성이다. 예수님은 문제를 끌어안으셨고 인간의 존재 안으로 들어오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즉, 문제보다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신다. 이것은 우리 인간과는 반대된다. 우리는 존재보다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문제 때문에 존재를 포기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이유로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은 문제보다 존재가 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사랑을 경험할수록 우리도 우리의 이웃의 문제보다 그 존재를 더 귀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문제보다 존재가 더 귀해지면 관계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직결되어 있고, 그 제자의 삶과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얼마나 경험하고 누리며 공동체를 이루며 사느냐로 결론 지어진다.

관계 중심적 예수 공동체

요한은 예수님과 근접한 거리에서 경험한 일들과 말씀을 기록했다. 요한복음에는 일어난 사건들과 그와 연관된 주님의 설명이나 해석이 함께 적혀 있다. 특히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예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음을 밝히고 있다. 이 선한 목자 되심은 3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안다”라고 하시며 친밀한 관계로 아는 것 (ginosko)이다. 둘째는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라고 하시며 친밀한 관계를 넘어 생명을 바꿀 수 있는 관계의 단계이다. 셋째는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라고 하시며 선한 목자 되심의 최종 목표는 ‘아버지와 하나 됨’임을 알려주신다. 즉, 선한 목자 되심은 존재와 존재가 영원히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자신이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내용의 예수님의 말씀과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 떡을 떼시는 모습과 발을 씻겨주는 과정에서의 말씀은 제자들과 친밀한 시간을 즐기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급기야 “너희를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겠다. 이는 아버지의 뜻을 너희에게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더더욱 친밀한 관계를 나누셨다. 또래만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와 친구하자고 하는 말씀을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서양 문화에서 친구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와도 가능한 지극히 수평적인 관계다.

진정한 친구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첫째, 같은 삶의 방향이고, 둘째, 같은 존재 가치의 인정, 셋째, 친밀한 교제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려주며 같은 방향을 갖게 하셨고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생명을 바꿀 수 있는 동등한 존재 가치를 알게 해주셨으며, 영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다. 그래서 영원히 함께하는 진정한 친구가 되셨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교회는 주님과 친구가 아닌 종의 모습으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께 희생과 헌신으로 복종하는 신앙이 주된 모습이었다. 이제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더 나아가야 하고 의무와 책임에서 자발적 헌신으로 바뀌어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2000년에 브라질로 이주하면서부터 집을 오픈하고 살았다. ‘오갈 곳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받았고 브라질로 여행 오는 지인들은 거의 우리 집에서 묵었다. 항상 집에 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고 한 번 오면 두세 달은 기본이고 13개월을 지낸 지체들도 있었다. 그 사역이 2011년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되었고, 2019년 제주도로 이주 후에도 계속되었다. “문제보다 존재가 더 귀하다”라는 메시지는 단순히 깨달음만으로는 결코 살아지지 않는다. 경험을 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지난 일 년간 우리 집을 100팀 정도가 다녀갔다. 일주일에 평균 두 팀 정도가 온 것이다. 이렇게 방문자들이 계속 올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 했다. 숙식, 관광, 차량, 운전 무료제공이라는 말에 현혹된 것 같다. 왔던 사람이 세네 번씩 다시 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방문자는 28살 청년이다. 미국에서 우리와 살고 싶어서 무작정 브라질로 왔는데, 실제로는 서류 미비자 신분으로 병역을 위해 한국을 가야 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피신 온 것이었다. 나는 내심 그가 한국으로 가서 면죄부를 받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그가 그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기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 집에서 산 지 8개월 정도 지났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브라질에 처음 왔을 때 모든 사람이 너무 잘해줘서 ‘내가 이용 가치가 높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늘어져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아무 일도 안 하는데도 여전히 계속 잘해주는 것을 보며 자기의 이용 가치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겨준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6개월, 7개월을 지나도 자신은 여전히 늘어져만 있는데도 끝까지 자기에게 변함없이 잘해주는 것을 경험하며 평생 처음 조건이 없는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느껴질수록 마음 안에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가족 이상으로 친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보다 존재가 귀하다”를 알려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이웃에게 나누면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과 그 제자들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따를 자들을 위해 선한 목자의 마지막 단계의 과정을 기도하신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2)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베푸시며 사람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의 모든 행적은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으로 하나 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결론이다.

선교의 흐름이 사역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는 사역이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역이 목적이고 관계가 도구가 되었던 것에서 관계가 목적이 되고 사역이 도구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역이 목표이고 관계가 도구가 될 때 필경 상처투성이 사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목표이고 사역이 도구가 될 때 사역도 공동체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제 이 전환이 필요한 때가 왔다. 이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해 예수 공동체, 즉, 교회가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극한 선교지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권과 북한 선교 등에서 관계 중심적인 복음을 나눌 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미 수많은 선례가 보여주고 있다.

맺는말

이제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이 땅에서 씨를 심고 꽃을 피워왔다. 이제 열매를 거둘 때가 오고 있다. 진정한 열매는 건물이나 단체가 아니라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들의 하나 됨이 교회의 완성이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지체된 우리 모두가 교회로 완성되어 아버지께 드려질 것이다. 이날을 바라보며 함께 기뻐하는 성도들을 축복한다.

박지범 선교사는 브라질과 미국에서 사역하였고, 남미워십찬양 (LAMP)의 창립 및 지도 목사였다. 남미 코스타, 미국 유스코스타 말씀 주강사, 한국 어노인팅 예배캠프, 서울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 카운트다운 강사로 섬겼다. 풀러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D.Miss)를 졸업했으며, 현재 A.C.T. 인터내셔널(Artists in Christian Testimony International) 소속 예배예술 선교사로 제주도에서 공동체 사역을 섬기고 있다.

  1. 데럴 존슨,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 김성환 역, IVP, 2006.

리더십 칼럼

모달리티 vs. 소달리티? 모달리티 with 소달리티!

이재진 선교사

변화하는 시대와 선교

21세기로 들어가는 카운트다운을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한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나갔다. 세계적 영향력과 권위를 가졌던 석학들, 미래학자들이 예측했던 빛나는 21세기는 2001년 9·11 사태의 충격과 공포로 시작되었고, 인류 역사의 2000년 역사를 합친 것보다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 범위에 걸쳐 인류에게 ‘강요된 공동의 변화’를 겪게 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 나라에 일어난 변화는 뉴스로 전해 듣는 다른 나라의 사건일 뿐이었던 인류는 2007~2008년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파산 사태를 통한 세계 경제, 금융 위기의 어려움을 함께 겪어야만 했다. 달러를 찍어 내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천문학적인 달러를 찍어내 자국 경제의 급한 불을 껐지만, 이로 인해 신흥 경제국들과 개발 도상 국가들의 금융위기와 국가 파산, 주식 시장 붕괴, 가난한 나라들의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구조 붕괴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파산, 자살, 폭동, 내전, 쿠데타, 조직적 범죄 피해의 악순환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랍의 봄 혁명으로 촉발된 북아프리카, 중동권의 혼란과 변화는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중동의 정세를 예측 불가의 상태로 바꾸어 놓았다. 7세기 이슬람 종교의 발흥 이후 1,400년간 선교를 대적하는 철옹성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해 왔던 이슬람권이 ISIS, 알카에다, 탈레반, 순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구조 등에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의해 다시 재편되고 있는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환경 가운데 SWM 선교회와 형제 교회들, 중동의 선교 단체들은 함께 사역해 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혼돈과 위기의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손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께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신 발걸음을 순종하며 한 걸음씩 걸어왔다. UPM 연합기도운동도, CPM 교회개척운동도, MCM 선교적교회운동도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이었다. 앞으로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선하시고 강력하신 인도하심을 따를 것이다.

과거 라디오, TV 방송으로 인한 획기적인 정보 통신의 변화를 첫 번째 혁신으로, PC 통신과 인터넷의 보급과 확산으로 인한 IT 산업의 발달을 두 번째 혁신으로, 2007년 스마트폰의 발명과 확산으로 인한 모바일의 전 세계적인 변화를 세 번째 혁신으로 말하고 있는 요즈음, 과거 몇백 년의 간극을 두고 일어난 산업 혁명급의 변화가 갈수록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2년 전 중국 우한에서 ‘우한 독감’이라는 급성 감염병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었다. 선교지를 방문할 수 없게 되고, 선교사님들이 긴급 철수를 해야 했으며, 전통적인 성도와 교회의 모습인 ‘모이기를 힘쓰는’, 어쩌면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동체들은 온라인 예배, 온라인 소그룹 모임, 온라인 수련회, 온라인 기도회 등을 통하여 새로운 구조들을 만들어 냈고 지금도 제한된 오프라인 모임과 온라인 모임 등을 함께 진행하며 목회와 선교의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다.

분명 온라인 사역에 강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집 거실, 소파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예배를 바라보는 것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코이노니아’에서 얻을 수 있는 은혜의 확장과 깊이를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대면 예배를 다시 시작해도 이전에 모이던 성도들이 다 돌아오지 않는 현실이 많은 교회들의 고민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공동체들은 이러한 도구들로 사역의 한 축을 잘 감당하고 있다. SWM 선교회와 함께 동역하고 있는 중동의 공동체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온라인 사역에서 계속해서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심을 우리는 선교사님들의 보고를 통하여 듣고 함께 감사하며 기쁨을 누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의 편중 현상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의 반복으로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부동산 자산 등은 폭등했다. 이로 인한 주는 상대적 박탈감과 중산층의 몰락은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중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일평생 수많은 대출금을 상환하며 살게 만드는 ‘빚의 노예 (Debt Slave)’로 만들고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차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는 학자금 대출의 상환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짝을 만나 결혼하는 젊은 커플들은 대부분 결혼자금, 전세자금 대출 또는 주택 구매로 인한 30년 이상의 모기지론, 자녀 출산, 양육, 교육에 필요한 자금 대출, 사업에 필요한 대출, 최악의 경우 부모님과 가족의 빚까지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의 상황이다. 교회 건축에 들어가는 엄청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받은 대출 때문에 사람을 기르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복음 전파와 선교, 하나님 나라로 심겨져야 할 막대한 교회의 재정이 은행으로 매달 들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모두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관행처럼 하는 이러한 모습에 하나님 말씀의 검으로 특단의 수술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주님께서 하나님의 공동체에 주신 대위임령에 대한 순종을 일관되게 방해해 온 것은 바로 ‘풍요로움’이었다. 풍요로움의 해독제는 재헌신이다. 헌신이란 말의 정의는 ‘거룩한 용도를 위해 어떤 것들을 따로 떼어 두는 것’을 의미한다. 개신교가 과거 몇백 년간 지속해온 개신교 선교 운동의 특징이었던 검소한 삶과 순종으로 되돌아가 헌신하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한 다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재헌신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개인의 성취와 재물을 모두 ‘당’과 ‘인민의 것’이라는 가치 아래 두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성취로 인한 재산, 부요를 모두 ‘당신 자신의 것’이라는 가치 아래 두었다. 안전함과 풍요로운 삶은 현대 사회에 새로운 여러 가지 질병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전통이 오래된 성도와 교회들에 만연되어 있는 생각 중 하나는 바로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이러한 논리의 장벽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정말 끔찍했다. 또한 세상의 문제들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그 문제들은 그저 정치나 과학 기술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위 지식인들의 생각이 교회에 퍼져 있다. 무엇보다 교회 성도들 대부분 어렵게 살고 힘들기 때문에 ‘선교 동원’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을 때 안타까움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던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눅 12:48) 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의 때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향하거나 승리를 위해 물자들이 동원되고 사용된다.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원하고 동원하는 전시의 생활 태도로 살아야 한다. 영적으로 깨어 일어나 선교지로 갈 수 있지만, 또한 고국에 머물러 있으면서 수입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결단함으로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을 우리 삶의 기초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용해 오신 두 가지 공동체의 모습

랄프 윈터 (Ralph D. Winter) 박사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해 사용하신 두 가지 공동체의 모습을 모달리티 (Modality)와 소달리티 (Sodality)로 구분했다.
모달리티는 총괄적이고 양육 중심적 구조를 가진 단체로서, 교회 회중이나 일반 시민이 사는 도시 또는 마을을 뜻한다. 소달리티는 이차적 결정, 과업 중심적 구조를 가진 단체로서, 특정 지역이나 민족, 사역을 위한 선교회나 전투를 위해 전문화된 군대를 뜻하는 말이다. 민간 사회나 종교 단체에는 이러한 두 구조가 모두 존재한다. 또한 성경에도 두 구조가 모두 나오는데, 두 구조 모두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에 매우 필요하다. 소달리티 구조는 교회가 없는 지역으로 나아가 교회를 개척하고 양육하고 확장한다. 모달리티 구조는 선교회를 강화하고 후원한다. 그리고 그 두 구조는 중요한 공생 관계로 함께 협력해야 한다.

1세기와 그 이전까지의 회중적 구조는 유대교 회당 유형을 따랐다. 이것은 모달리티의 원형이다. 한편 선교 구조는 유대 랍비들의 선교 운동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초대 교회에 와서는 대단히 역동적인 선교팀이 되었다. 순회하면서 교회들을 개척하던 바울의 선교팀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파송 받았다. 그러나 일단 안디옥을 떠나자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했다. 바울이 만든 소규모 팀은 때로 안디옥교회뿐 아니라 전도의 결과로 세워진 다른 교회들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의해 ‘파송 (send out)’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전송 (send off)’ 받고 나간 것이다. 바울은 안디옥교회 (모달리티)에 사역 보고를 했을 수는 있지만 안디옥교회로부터 지시를 받지는 않았다. 바울의 선교단 (소달리티)은 ‘순회 교회’로서의 모든 자율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초대 교회에는 모달리티 (회당)와 소달리티 (선교회) 간에 거의 관계가 없었다. 반면, 바울 시대에 그의 선교팀은 특별히 회중을 양육하며 의미가 깊은 공생 관계를 이루었다.
신약 교회라고 부르는 구조는 남녀노소 전체가 통상적인 생물학적인 가족들로 다 함께 모이는, 이후의 모든 기독교 공동체 (모달리티)의 원형이 되었다. 반면, 바울의 선교팀은 제2의 결단을 통해 두 번째 구조 (소달리티)에 가입한 헌신되고 경험이 풍부한 사역자들로 조직된,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선교 활동들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소달리티: 수도원 운동

지역 회중 구조 (모달리티)는 각 지역 관할권을 가진 감독들을 승인했는데, 이는 로마 행정 장관의 관할 구역 제도를 따른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관할 구역을 ‘감독 관구(diocese)’라고 불렀다. 당시 등장한 선교 구조 (소달리티)인 수도원 운동은 로마의 군사 훈련 형식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개신교도들은 대부분 수도원이라고 하면 으레 금욕적인 수도사들이 세상에서 벗어나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선교와 복음 전파의 측면으로 보면 수도원 운동이야말로 세상에 복음의 축복을 가져오는 데 큰 몫을 했다. 중세에 교구 교회 구조의 존폐는 대체로 수도원 운동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전념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몇몇 선교 운동은 수도원 운동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수도원이 부유해지게 되자 지역 통치자들이 수도원의 주도권을 요구하며 장악하였고, 그에 따라 수도원은 영적으로 쇠퇴하고 타락하게 되었다. 중세의 교회가 수도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지배, 관리하기 시작할 때, 구조적으로 세속화되는 역사가 있었다.
기독교 모달리티 (회중)들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커다란 조직체로서 훨씬 더 폭넓고 또한 주로 내부적인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선교 조직들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수십 년간 교인들 수는 ‘증가’하였지만 선교 예산은 점차 더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종교 개혁 즈음에 교회와 수도원 내의 타락상은 심각했지만, 10세기 동안 여러 시대와 시기들 가운데 매우 다양한 수도원 운동이 있었다. 미개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수도원은 질서 정연하고 안정된 생활의 중심지였으며, 수도사들은 길을 만들고 보수하는 임무를 맡았다. 11세기에 도시들이 세워질 때까지 그들은 산업과 상업의 선구자들이었다. 수도원 안에 있던 가게들은 로마 시대의 산업들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토양을 개선할 때 최초로 이회토 비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수도회들은 서유럽의 농업 식민지화를 이끌었다. 특별히 시토 수도회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농업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농업 분야의 개선에 이바지했다. 그들은 평신도 형제들 및 고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대지주들이 되었다. 헝가리와 독일 변방에서 시토 수도사들은 토지를 경작하고 식민지화를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폴란드에서도 독일 수도원들은 농업에서 앞선 기준들을 정했으며, 기능공들과 기술자들을 들여왔다.

아일랜드의 페레그레니 (방랑 전도자)들에 관한 위대한 기록을 보면 ‘수도사들은 세상에서 도피했다’는 고정관념이 훨씬 더 극적이고 결정적으로 깨지게 된다. 그들은 켈트 수도사들로서 후에 앵글로색슨족을 회심시키기 위해서 남부에 생겨난 어거스틴의 선교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특히 다른 어떤 곳보다 서부 유럽, 심지어 중앙 유럽까지 복음화하는데 더 많이 기여했다.

개신교 선교와 소달리티

처음부터 소달리티는 기독교 운동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신교도들은 이러한 구조에 대해 뿌리 깊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구조가 없었으면 수십 세기 동안 기독교의 전통이 생동적으로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신교도들은 다른 구조 – 교구 (parish)와 주교 관구 구조 (diocesan structure) – 에 대해서도 똑같이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수도원 구조가 그처럼 중요하게 된 이유는 주교 관구 구조의 상대적인 약점과 유명무실함 때문이다. 개신교도들은 제롬 (Jerome)과 어거스틴 (Augustine)같은 이들에 대해 수도사로 생각하지 않고 위대한 학자로 생각한다.

종교 개혁자들은 소달리티 구조를 폐기하고 위원회로 대체했다. 수도원 생활을 거부했기 때문에 선교적 구조를 보존하거나 확장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사실상 전혀 없었다. 몇 세기 후 윌리엄 캐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완수하기 위해 ‘수단’을 사용하라고 요청했다. 그가 말하는 ‘수단’이란 조직적인 선교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캐리는 선교회를 편성할 것을 요청했다. 이때까지 개신교회는 300년간 선교를 위한 도구를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윌리엄 캐리’가 목사들에게 왜 대위임령을 따르지 않는지 이유를 말해 보라고 도전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목사들이 “하나님이 이교도들을 구원하기로 하신다면 하나님은 당신이나 우리의 도움 없이 그 일을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면서 캐리를 비난했다. 캐리는 더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었고,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해야 할 의무에 대한 연구”를 끈기 있게 써 내려갔다. 그렇게해서 나오게 된 작은 책을 읽고 캐리의 몇몇 친구들이 마음의 확신을 얻어 작은 선교 기관을 만들었다. 그것이 캐리가 말한 ‘수단’이었다. 그 조직은 취약하고 연약했으며, 캐리가 인도로 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후원만을 해주었다. 하지만 캐리의 영향은 영어권 세계전역에 미쳤으며, 그의 작은 책은 개신교 선교 운동의 대헌장이 되었다.

물론, 윌리엄 캐리가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모라비아 교도들은 그린란드와 미국과 아프리카에 선교사를 보냈다. 하지만 캐리의 작은 책은 복음주의 대각성과 함께 미대륙과 유럽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고 삶을 변화시켰다. 거의 순식간에 반응이 나타났다. 두 번째 선교회가 런던에 세워졌고, 스코틀랜드에 둘, 네덜란드에 하나, 그리고는 영국에 또 하나의 선교회가 세워졌다. 그 무렵이 되자, 모든 사람은 선교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회 형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캐리의 주장이 옳다고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다섯 명의 대학생이 캐리의 책에 도전을 받아 그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를 위해 함께 모여 기도했다. ‘건초더미 기도회’라고 알려진 이 소박한 기도 모임이 나중에 가서는 미국의 ‘수단’ – 즉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of Foreign Missions) – 이 되었다. 그들은 학생 선교 운동 (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시작했으며, 다른 학생 선교 운동의 모델이자 선구자가 되었다.
윌리엄 캐리가 배를 타고 인도를 향해 떠난 이래 25년간 미대륙과 유럽에는 12개의 선교 단체가 생겨났으며, 개신교 선교의 첫 번째 시대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해서, 이 첫 번째 시대의 선교는 당시 대부분의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주로 몰두하고 있던 일에 비하면 가련할 정도로 영세한 소규모였다. 선교사들을 보내기 위해서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결국에는 인정받게 되었다. 보스턴의 몇몇 여성들이 여성 선교 기도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선교적 지식면에서나 선교를 하고자 하는 욕구 면에서나 여성들이 주역이 되었다. 이후 여성들이 독신 선교사로 선교지에 가기 시작했다. 1865년 미국의 미혼 여성들이 여성 선교회를 만들었고, 독신 여성만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전적으로 본국의 독신 여성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었다.

19세기는 개신교도들이 선교에 활발하게 참여한 최초의 세기이다. 이 1세기 동안 개신교는 서구의 전례 없는 세계 확장을 토대로 이전 18세기 동안 이루어 놓은 선교에 맞먹는 결과를 일구어냈다. 조직적으로 보면 개신교 운동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해준 수단은 소달리티의 구조적 발전이었다. 그 결실은 개신교에 잠재해 있던 ‘자발성 (Voluntarism)’을 활기차게 만들었으며 모든 종류의 새로운 선교 기관에서 표면화되었다. 19세기 거의 모든 선교 활동은 초교파 단체의 후원을 받든, 교파의 후원을 받든 실질적으로 관련된 교회 구조들과는 독립된 주도적인 활동이었다. 성도들이 교파적, 초교파적 소달리티 조직들을 결성하고 나자 개신교 선교사들의 수는 폭증했다.

19세기 후반기에 이르자 점차 더 뚜렷하게 두 가지 구조는 별개의 전통들로 존재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이 되자 한때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단지 교파들과 관계만 맺고 있던 기구들이 교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단순히 규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관리를 받았다. 19세기 말쯤 완전히 다른 형태의 선교 소달리티가 나타났는데, 허드슨 테일러 (Hudson Taylor)의 중국 내지 선교회 (CIM)가 주도한 믿음 선교 (Faith Mission)이였다.
개신교 선교 역사의 두 번째 시대에 하나님께 사용되었던 허드슨 테일러와 중국 내지 선교회의 활약은 알려지지 않고 숨겨졌던 지역들에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게 되는 열매들을 가져왔다. 중국 선교의 현장에서 만난 많은 지하 가정 교회와 지도자 중에 중국 내지 선교회와 관련된 신실한 성도들이 많았다. 이들은 내지 선교회의 기본 선교 전략을 사역의 원리로 삼아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소수 민족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종족들이 사는 지역으로 계속해서 복음의 일꾼들을 파송하고 교회 개척, 전도, 양육과 훈련, 또 다른 지역으로의 복음의 일꾼 파송, 협력 사역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카메룬 타운센드 (Cameron Townsend)와 도널드 맥가브란 (Donald McGavran)을 사용하셔서 개신교 선교 역사의 세 번째 시대의 문을 여셨다. 타운센드는 과테말라에 가서 이미 설립된 현지인 교회들과 함께 스페인어 성경 배포와 복음 전파를 하던 중 대다수의 원주민이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원주민이 그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지혜로우시다면 왜 우리말은 하지 못하는 거지요?”라고 물었을 때 충격을 받고 그들의 언어로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23세의 젊은 선교사였다. 처음에는 기존의 위원회와 조직들이 부족민들을 잘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부족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 (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만들어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타운센드는 전 세계 약 500여 개의 미전도 부족 집단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후 그 추정치는 천 개, 2천 개에서 5천 개 이상으로 수치가 늘어났고 지금도 활발히 미전도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다.

도널드 맥가브란은 언어적 장벽이 아니라 보편적인 범주를 발견했는데 ‘동질 집단 (homogeneous units)’의 개념이었다. 인도의 놀랄 만한 사회적 장벽들의 심각성 때문에 복음이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전파되지 않음을 느끼고 고민한 결과였다. 선교사가 한 집단에 침투해서 집단의 경향을 따라 선교의 돌파구를 부지런히 이용하면, 그 종족 집단에 대한 전략적인 ‘하나님의 다리 (bridge of God)’가 확립된다. 돌파구가 마련될 때까지는 일반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맥가브란은 새로운 선교회를 설립하지 않았다.
반면 그의 활발한 노력과 저술을 통해 교회 성장 운동과 미개척지 선교 운동이 많이 일어났는데, 교회 성장운동은 이미 복음이 침투한 집단들 안에서 교회를 확장하는 일에 힘썼던 반면, 미개척지 선교 운동은 아직 복음이 침투하지 않은 남은 집단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힘썼다. 이러한 전략은 후대에 가서 선교 전략들로 채택이 되며 세 번째 선교의 물결을 이끌게 된다. ‘미전도 종족 (Unreached People group)’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지리적으로 고립된 종족 집단들을 말한다. 이들을 향한 관심은 최근에서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났다.

개신교 선교와 모달리티

개신교 선교는 처음에 교파적 뒷받침 없이 시작했다. 한때는 독립적이었던 구조들이 점차 정리되었으며, 결국에는 교파 지도자들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선교가 건강하게 확장되기도 했지만, 또한 선교의 확장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그 결과 ‘믿음 선교 (Faith Missions)’라는 선교 구조가 시작되고, 두 번째로 비교파적 주도권이 나타났다. 매우 존경받는 몇몇 지도자들이 어떤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몇 선교 기구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선교 기구들은 별로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때로 소달리티 구조의 적법성에 관해 비판과 의심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선교지에 새로 설립된 교회들이 선교사들을 보내는 자체적 선교 기구를 만드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

미국 교단들은 일반적으로 유럽의 국가 교회들보다 더 선택적이고 활기찬 공동체였으며, 적어도 넘치는 젊음이 있었기에 교단들이 해외 선교에 필요한 모든 주도권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 생겨난 많은 새로운 교파들은 선교 활동을 교회가 중앙 집권적으로 통제하는 것만이 유익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교단 기관들과 관련된 거의 모든 선교 활동의 소유권이 양도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겨난 선교 기관들은 교단 지도자들에게나 교회 중심의 선교를 하려는 지도자들의 열망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오늘날까지 개신교도들 간에는 기독교 운동 역사를 통해 내내 존재해 왔던 두 구조의 적법성 및 적절한 관계에 대한 심각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선교 소달리티에 대한 개신교의 무지는 선교지에 매우 비극적인 영향을 끼쳤다. 모달리티 성향을 지니고 있는 개신교 선교회들은 예를 들어, 교회와 같은 모달리티들만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본질적으로 반 자율적인 선교 소달리티들에 의해 선교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유일한 목표는 소달리티가 아니라 모달리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선교 기관들은 선교 사역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선교지교회들만 설립하고 선교 소달리티는 설립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교회만 개척했으며, 그들이 소속된 것과 같은 선교 기관을 선교지에 세우는 일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워진 많은 선교 기관들은 선교국에 이미 세워진 기존 교회 운동에 너무 복종한 나머지 심지어 교회개척조차 하지 않았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이미 그곳에 세워져 있는 교회들을 여러모로 도우면서 보조 기관으로만 일해 왔다. 오히려 선교사들을 철수시켜서 선교지의 교회들이 ‘교회 성장’에만 집중하게 하는 약점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과거 선배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모달리티와 소달리티의 협력

성령님은 역사적으로 회중 교회 모임 (모달리티) 외에 바울의 선교팀 (소달리티)으로 시작된 어떤 구조를 분명하고 일관되게 매 시대마다 일으키시고 사용해 오셨다.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두 구조 모두가 정당한 것임을 이해하고, 대위임령을 이루는 한편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두 구조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조화롭게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의 선교 단체 (소달리티)들은 교회가 ‘선교’를 너무 모르고 선교 자원들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인적, 물적, 영적 자원들이 교회에 다 있는데, 교회는 교인들이 선교 단체 모임에 참석하는 사실 만으로 경계의 눈길을 보내며 막는다고 하며 잘 훈련된 선교사들을 파송해 주지 않는다고 판단해 버린다.
반대로 교회 (모달리티)들은 선교 단체들이 사람을 전도하고 양육하고 훈련해서 세우는 길고 고통스러운 목양의 과정을 하지 않은 채 잘 훈련되고 성숙한 교회의 ‘리더’들을 동원해 선교사로 보내고, 교회에 후원의 부담을 지게 한다는 비판을 하기가 쉽다. 교회의 리더들 대부분을 선교사로 보내고 나니 교회의 사역들이 많이 무너져 버린 경험을 한 교회들도 있다. 선교 단체들은 이러한 교회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와 함께 해야 한다.

지역 교회의 사명과 선교 단체의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이끄시고 연주하시는 아름다운 교향악과도 같다. 악보를 숙지하고 각자의 악기를 들고 지휘자의 인도를 받아 함께 연주로 들어가야 한다. 어떤 세기는 교회 (모달리티)를 통하여 복음에 헌신되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세대나 민족을 길러내시는 시기가 있다. 음악의 용어로 말하면 Adagio (아다지오)처럼 침착하고 느리게 이끄시며 한 세대를 선교의 세대로, 복음의 세대로, 예배의 세대로 준비시키는 때였다. 어떤 세기는 선교 단체 (소달리티)를 통하여 Allegro (알레그로)처럼 점점 빠르고 세게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끄시는 시기가 있다. 지금은 선교 교향악의 클라이맥스로 도입했다고 믿는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호흡과 감정, 표현과 멜로디와 강약까지도 하나로 모이고 있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선율이 하늘과 땅에 울려 퍼지고 있다.

교회사 2000년의 하나님 나라 역사를 통하여 겸손히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세워주며 형제의 사랑으로 함께 동역한다면, 마지막 때 주님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강력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 더 능력 있게 확장되어 갈 것이다. 또한 열방의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더 많이 돌아올 것이다. SWM 선교회와 함께하는 형제 교회들, 선교지 공동체들의 아름다운 연합과 동역이 우리와 우리 후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기를 간절히 갈망한다. 이 모든 일을 주님의 날까지 아름답게 이루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특별 기고

교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함께 보는 공동체

김수미 목사

저는 현재 LA 연합교회 한어부를 담임하는 목사이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립 학교 올리브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난 18년간의 사역을 돌아보며 더욱 깊이 배우게 된 하나님에 대해서 또 교회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과 SWM 선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 시간을 지나며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회의 주인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매 순간 순간의 인도자이시며, 공급자이시며 동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동안 우리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증거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여정

처음 경험한 가정 같은 교회

저희 부부는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진화론과 무신론, 그리고 세속적 인본주의 교육의 강한 영향력 아래서 자랐습니다. 결혼과 함께 도미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저와 남편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믿는 자들에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기도와 사랑,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들은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오해와 반감을 오히려 관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몇 가지 영적 체험과 함께, 결국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저희 부부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출석했던 교회는 전형적인 미국의 소도시에 있는 한인 교회로서 중상층 이민자들이 교회의 기둥을 이루고, 유학생들 다수가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미국 생활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의 기반을 다진 어른들이 젊은 유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외로운 유학 생활에서 그들의 사랑을 시원한 생수같이 받아 마시고 교회를 가정처럼 여기면서 힘든 유학 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희 부부가 그 교회를 다니던 시기는 한국에서 잘 훈련받은 소수의 청년 유학생들이 새벽기도와 성경공부 등의 자발적 평신도 사역을 통해 새로운 영적 바람을 일으키면서, 교회 역시도 큰 자극을 받아 영적으로 질적으로 부흥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호기심과 관심으로 시작된 진지한 성경공부, 특히 다른 여타 교재가 아닌 성경 자체를 공부하여 어떤 신학이나 전통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이로움으로 만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희 부부의 신앙 여정의 첫걸음을 그 교회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에게 자리 잡은 교회의 모습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바, 영적 가정이었습니다. 가정과 같은 교회는 지금까지의 저희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평신도 사역으로 훈련받다

그 교회는 규모가 작고 부사역자가 없는 교회였기에,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섬김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교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섬길 기회를 얻었습니다. 찬양팀, 성가대, 남여선교회, 청년부, 주일학교, 한글학교 등에서 섬기며 각종 교회의 사역들에 대해 배우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학위를 마칠 때쯤에는 청년부 그룹을 맡아서 섬기며 기도와 예배를 인도하는 등 소그룹에서 리더십을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훈련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섬길 수 있는 것들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자연스럽게 훈련하신 것 같습니다.

졸업과 함께 우리 부부는 삶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는데 바로 남편의 진로가 바뀌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마쳤는데, 미국에서 다시 로스쿨을 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그저 한국에 돌아가 대학 강단이나 연구소에서 일할 막연한 계획 정도를 올려드리며 기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청년부 학생들과 강력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할 때, 하나님께서는 열방 선교에 대한 부담과 열정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때 남편은 시간이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직업으로 바꾸어 보다 전격적인 선교 활동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인으로서 해외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지역으로 LA가 적절하다는 확신과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성령님의 강권하심과 너무나 확연한 인도하심 가운데 남편은 LA에 있는 로스쿨로 진학하게 되었고 저는 근처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하고 한 살짜리 아들을 키우며 LA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중대형 교회에서의 경험

LA에서 저희가 출석했던 교회는 그 당시 수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역동적 교회였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8~9년간 경험했던 교회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교회였습니다. 전문적이고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사역자들이 잘 짜인 프로그램 안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주일마다 감동이 넘치는 경배와 찬양, 말씀의 은사를 가지신 담임 목사님의 메시지로 은혜를 받으며 2년 정도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학생으로, 연구원으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쉽지 않았던 시기를 마치 차려놓은 밥을 떠먹여 주는 것 같은 교회에서 2년 정도 생활하였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훌륭한 교회였고 또한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은 교회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기간 동안 뭔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갈급함이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신앙생활을 돌아봤을 때, 초신자 때부터 불완전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들을 가졌고, 그 결과 철저한 교회 중심의 삶을 배웠던 저는 큰 교회에서 제공되는 전문 사역자 중심의 사역들과 프로그램들이 낯설었고 아마도 그러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가 수적으로 크게 부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매주 새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비록 저희 부부가 소그룹 모임에 속해 있었고, 최선을 다해 참여하며 노력했지만 큰 교회 안에서 예전 교회에서 느끼던 가족 같은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전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LA로 이주하여 당시 USC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 형제의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캠퍼스에서 박사과정 학생 세 명이 교회를 시작하려는데, 우리 부부도 조인하여 이런저런 모양으로 함께 섬기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정해진 예배 처소도 없고, 목사나 사역자도 없이 평신도, 그것도 학생들 몇 명이 시작하는 교회를 저희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큰 교회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적응하며 안정되어 가던 교회 생활을 떠나 또 다른 교회를 섬긴다는 것도 옳지 않은 일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제안은 계속 저희 마음에 부담이 되어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에게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며 인도하심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다
2003년 개척 멤버들과 새가족들

세 명의 청년들과 3살 아이를 포함한 저희 식구 세 명, 총 6명이 교회의 개척 멤버였습니다. 교회라고 하기엔 그저 캠퍼스의 작은 예배 모임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임은 한국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시는 한 목사님께서 LA에 오셔서 집회하시는 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세 명의 청년들에게 안수하시며 교회를 시작하라 당부하신 것에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세 명과 저희가 합류하여 한국의 그 목사님 교회의 지교회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빈 강의실을 찾아 십자가를 세우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며, 준비해 온 음식으로 서로 교제하는 작은 예배 공동체로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학교의 클럽 모임으로 등록하여 캠퍼스의 종교 센터를 빌려 예배를 드리다가 차차 캠퍼스 밖에 작은 오피스를 임대하여 주중 모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 당시 교회를 다닌지 10년 남짓 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평신도였고,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개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이 좋았던, 즉 모이기에 힘썼던 자들이었습니다. 1년이 지났을 때, 함께 시작하였던 세 명의 청년들이 졸업이나 이런 저런 일들로 하나둘 떠나고 리더십으로는 저희 부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모교회에서는 전임 사역자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갓 신학교를 시작한 젊은 전도사님 부부를 파송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섬김으로 또 1년, 그 후에 청년 사역의 비전을 가지신 목사님을 지역에서 청빙하여 또 1년을 함께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저희 부부가 교회를 개척했다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며 예배 공동체를 세우는 데 힘쓴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모임이었지만, 뜨거운 찬양과 경배를 통해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신학에 매이지 않는 성경 중심의 말씀을 공부하며, 유학생들, 청년들의 동질 그룹에서 느끼는 애환들이 다루어지는 교제 등이 우리 공동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성장, 비전,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등의 제목들은 여전히 저희와는 먼 주제였던 시기였습니다.

전임 사역자로의 부르심을 받다
2007년 전도사 임명식

교회가 시작된 지 3년여 될 즈음에, 1년간 성심으로 섬기셨던 청빙했던 목사님께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부족했던 교회에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대로 섬겨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개척 이후 가장 진지한 고민과 질문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 한 가지를 질문드리며 몇 개월을 기도했었습니다. “주님, LA에 1,000개가 넘는 교회가 있다는데 우리 교회가 또 하나의 교회로 여기에 꼭 있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의 욕심이 아닌 주님의 뜻이라면 사인을 보여주십시오. 교회를 함께 섬길 동역자들을 보내 주십시오”라고 3개월을 기도했을 때, 놀라운 기도 응답들을 체험하였습니다. 그해 유학생들 중 이미 잘 훈련된 열정적인 형제자매들을 교회로 보내주시면서 우리 교회가 그 당시 캠퍼스에서 청년들을 섬기는 교회로 서 있어야 함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또한 교회가 어려웠던 기간은 저희 부부가 개인적인 진로를 놓고 기도하고 있던 기간과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고, 남편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후의 진로를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임 목사님의 사임으로 어려워진 교회 상황을 놓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한국 모교회 목사님께서는 저희 부부를 전도사로 임명하시면서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또한 목사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받으신 감동이, 저희 부부를 향한, 특히 저를 향한 주의 종으로의 부르심이 있으니 기도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교회를 시작하고 섬기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평신도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 한번도 전임 사역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과학도로서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교수 선교사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습니다. 주의 종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기도 권유에도 불구하고 저는 전임 사역자로서의 길을 갈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그 자리에 서야 한다는 하나님의 확증 때문에 전도사로서의 책무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로스쿨을 마치고 로펌에서 막 일을 시작한 남편을 앞장세워 교회의 주요 사역을 맡기고 저는 뒤에서 부엌일을 맡아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한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의 집회에서 그 집회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이 저에게는 계속해서 주님의 책망의 음성을 들으며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네가 기도한 것 아니냐?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남은 생을 나에게 쓰임 받고 싶다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네가 잘해서 부른게 아니라 너를 불쌍히 여겨 너를 써주려고 부른 것인데 왜 순종하지 않느냐?” 제가 박사후 과정이 끝날 즈음 저의 진로를 위해 기도할 때, 남은 생을 제가 잘하는 것으로 주님께 쓰임받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통해,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는 것은 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혹은 쓸모가 있어서 저를 부르신 게 아니라,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셔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불러주신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후 곧바로 신학교에 입학하고 교회의 전임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은 로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재정적 지원과 또 성경공부 등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순종을 기뻐하셔서 교회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안정되어 갔으며, 준비된 동역자들을 보내 주셨고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의 새로운 비전

교회의 비전을 새롭게 하다
2008년 ISC 오프닝 준비

신학교를 다니면서 수많은 교회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은 그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막연히 청년, 캠퍼스, 유학생, 선교 등의 단어들을 나열하며 예배 중심의 공동체로 모였다면, 이제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전략적이고 지혜로운 사역들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었습니다. 청년들, 특히 유학생들을 섬기게 하신 주님의 뜻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제가 수강한 신학교 첫 수업은 선교 전략에 관한 과목이었습니다. 구약의 주된 선교, 즉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축복하시고 모델 국가가 되게 하셔서 열방이 이스라엘로 모여들어 여호와를 배우는 구심적 선교와 신약의 선교, 즉 사도와 믿는 자들이 온 열방으로 퍼져 그리스도를 전하는 원심적 선교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기말 페이퍼의 주제가 이러한 구심적, 원심적 선교를 각 교회의 사정에 적용하여 가장 효과적인 선교 전략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 예배 후 뜨거웠던 소그룹 성경공부

우리 교회는 인력이나 재력이나 모든 면에서 전통적인 ‘보내는 선교 (선교사 파송)’ 사역을 하기는 어려운 처지였기에 우리 교회에 맞는 선교 방법에 대해서 늘고민하던 차였습니다. 그 과목을 배우며 한가지 깨달은 것은, 우리가 타겟하여 섬기는 LA의 대학 캠퍼스들은 각 나라의 엘리트 청년들이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곳이며 (구심적), 굳이 우리가 전 세계로 나가지 않아도 세계 각 지역에서 오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최고의 첨단 세상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 모여들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으로 변화된다면, 그리하여 그들이 공부를 마치고 그들의 나라로 돌아간다면 (원심적), 그들은 그 나라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그 민족을 섬기는 최고의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그러한 마음으로 한국 유학생들을 섬겼지만, 그 대상을 외국 학생들에게로 확대해야 한다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International Student Church”의 비전을 기말 페이퍼로 준비하여 제출하였는데, 그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페이퍼에 “Excellent”라는 빨간색 도장을 찍어 제게 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선교 전략을 기뻐하시는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교회에 이러한 비전을 나누고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영어 예배를 오픈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International Student Church 예배를 시작하다
2010 야외 예배

비전은 아름다웠고 강력해 보였지만 현실은 여러 가지로 막막했습니다. 저는 막 신학교를 시작했고 한국말로 설교하는 것도 힘들어하던 시기였으며, 교회의 경험이나 선교 훈련 등도 너무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영어 예배를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했었습니다. 하지만 순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마친 후 몇 명의 동참하는 청년들과 함께 영어 예배를 ‘연습’해 보기로 했습니다. 몇 주간 찬양도 영어로, 성경 봉독도 설교도 영어로 해보면서 영어 예배를 연습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사역자 부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한인 1.5-2세 영어권 청년들을 대상으로 작은 교회를 개척하셔서 자비량으로 섬기고 계신 전도사님 (지금은 목사님) 부부였습니다. 여러 면에서 저희 부부와 비슷한 분들이었는데 특히 청년들에 대한 마음과 열방 선교에 대한 마음이 크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 그저 저희 교회가 받은 외국 유학생을 섬기는 비전을 담담히 나누며 영어 예배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분들은 너무나 좋은 선교 전략임에 동의해 주시면서 영어 예배를 함께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에 한어부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그분들 교회의 팀이 와서 함께 ISC 예배를 영어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분들은 저희 부부의 평생의 동역자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2012 침례식

International Student Church (ISC) 예배는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비전이었고, 또 반드시 되어야 할 사역이었으며, 동역자들을 보내주시는 등 여러 가지로 사인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영혼 구원 사역이 그렇듯이 예배를 오픈한다고 영혼들이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전도를 위해 그들과 처음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한국 음식들을 나누며, 외국 학생들에 대한 복음 전도에 애를 썼습니다. 또한 여름마다 신입생들을 위한 유학생 정착 도우미 사역을 통해 전도사역을 펼쳤습니다. 유학생 정착 도우미 사역은 인터넷을 통해 그해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들에게 미리 접촉하여 신청을 받은 후, 그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픽업은 물론, 정식 거주지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제공하며 LA에서의 첫 출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들로 도와주는 사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제공하던 사역이었지만 ISC를 오픈한 이후 외국 학생들에게까지 사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정착 도우미 사역을 통해 많은 외국 학생들을 만나고 교회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는 중국에서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오던 시기였습니다. 이 사역이 중국 학생들 사이에 점차 소문이 나고 신뢰를 얻어 2~3년 후에는 한 해에 저희가 정착 도우미 사역을 통해 도움을 준 학생들이 40~6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예수님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우리 교회 규모에 비해 많은 수의 새가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들을 붙잡고 그저 그 자리에서 순종하였을 때, 결국 한명 한명 ISC를 통한 구령의 열매들이 맺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게스트하우스 식구들과 함께

정착 도우미 사역은 우리 교회가 개척한 지 2년째 되던 해부터 시작하여 지난 14년간 한 해도 쉬지 않고 지속하여 온 사역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교인의 대부분인 유학생 청년들이 그러한 도움이 절실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해 낸 사역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경험을 전도에 접목하여 다른 많은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결국 영혼 구원으로 이끈 귀한 사역이었으며, ISC 학생들에게까지 확장됨에 따라 저희 같은 작은 교회에서도 가능한 전략적인 선교 사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정착 도우미 사역은 정말 시간과 수고가 많이 드는 사역으로 영혼을 위한 희생적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사역입니다. LA에는 인력, 재력이 가능한 많은 대형 교회들이 있지만 유학생들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가 드물며, 그들을 위한 정착 도우미 사역을 체계적으로 하는 교회들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특별한 사역임을 깨달아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해 섬겼던 교회의 많은 청년의 헌신과 사랑의 수고들은 하나님 나라에 크게 기록되었을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선교의 눈을 열어 주시다
2014년 인도학생 초청 추수감사절

International Student Church 예배를 섬기면서 아무리 작은 교회지만 그 나름의 방법을 허락하셔서 열방을 섬길 수 있는 선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교회 경험도 거의 없고 신학교도 미국에서 다녔고, 교제하는 목사님들도 많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게스트 스피커들을 초청하거나 집회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몇 달 안에 지인들의 소개로 세 명의 스피커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초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세 분의 메시지가 모두 동일하게 마지막 때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성령님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때까지 저희가 몇몇 선교 단체에서 배운 것은 ‘선교는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종말론적 선교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 (마 24:14)하는 이른바 열방 선교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눈을 뜨고 보니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에는 땅끝 (열방) 선교와 함께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또 하나의 필수 조건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나라의 영적 육적 회복 (마 23:39)이었습니다.

지난 2천 년 간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19세기 말부터 고토로 돌아오기 (알리야) 시작했고, 드디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건국됨으로 이사야서 66장 7~8절 말씀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 그 놀라운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 분의 스피커들을 통한 세 번의 확증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음성으로 받은 저희는 그때부터 이스라엘 성경공부와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를 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해 뒤에는 남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변호사 일을 내려놓고 이스라엘 회복 사역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선교 단체와 교회를 병행하여 섬기게 되었습니다.

2018년 이스라엘 뉴하트 단기선교-에티오피안 메시아닉쥬와 함께

선교는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그 신랑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크든지 작든지 역랑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모든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한 가장 효과적이고 바르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시는바 이스라엘의 회복과 온 열방의 회복은 반드시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며 교회는 그 두 가지 사명을 이루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 하에 우리 교회는 현재까지 베트남, 에티오피아, 아이티, 중국, 캄보디아, 태국 등 열방의 선교사님들과 협력하여 단기 선교 등 이모저모로 돕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믿는 유대인들 (메시아닉 유대인)의 교회 개척사역, 신학교 사역, 위로, 구제 사역, 유대인들의 고토 귀환 (알리야) 사역 등을 돕고, 이스라엘 회복의 중요성을 열방 교회에 알리는 사역들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확장

교회 연합을 통한 시너지를 경험하다
2013년 USC캠퍼스 연합예배

ISC를 도와주신 전도사님이 목사님이 되시고 함께 ISC를 섬긴지 약 5년, 우리 교회가 개척된 지 10년이 좀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두 교회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었고, 함께 하는 ISC 사역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가지 상황들이 생기면서 하나님께서 두 교회가 지금까지 해오던 동역이 아닌 연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두 교회 모두 청년과 선교라는 비전을 품고 있었고, 또 아름답게 동역을 해왔지만, 교회의 연합이란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두 교회는 너무 다른 교회였습니다. 언어, 문화, 환경에서 너무 달랐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한 교회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교회가 함께 모여 주님의 뜻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형제의 동거함에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 (시 133)을 밝혀 주셨고, 두 교회의 장단점이 서로 상보되어 멋진 시너지를 이룰 것에 대한 기대감을 주셨습니다. 몇 주에 걸친 합심 기도 끝에 두 교회는 연합하기로 전격적인 결정을 하였고 지금의 LA 연합교회 (LA United Church)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정말 주님의 강권하심이었고, 두 목회자와 회중에게 주신 마음은 순종이었습니다. 많은 한국의 교회들이 연합보다는 분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현시대에 작은 교회지만 두 교회가 연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단순한 한 교회의 연합을 넘어서는 시대적 사명, 즉 부르심이라 생각합니다.

차세대를 책임지는 교회
2016년 올리브트리 첫 교실

교회의 연합은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임을 지난 7년간 이모저모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함께 예배드릴 때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연령 차이, 문화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조금씩 희생하는 가운데 오직 한 분 주님을 높이며 한마음으로 경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차이에서 오는 불이익도 너끈히 뛰어넘을 수 있는 귀한 가치이며 축복이었습니다.

사역 차원에서도 물론 많은 시너지를 체험했습니다. 잘 훈련되고 전문적일 수 있는 유학생들은 정체성의 혼돈으로 힘든 우리 2세들에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었고, 2세들의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들은 또한 형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단기 선교, 구제사역, 전도사역 등을 사랑으로 함께 할 때 주님의 강력한 지원을 체험하며 각자 개교회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LA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VB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연합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청년 교회에서 이제 3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청년과 다음 세대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어른 세대들이 함께 모이기 시작했고, 기존의 청년 그룹들이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으며 3세대가 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며 우리 교회는 또 다른 사역의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 그것이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며 주님이 주신 감사와 기쁨은 물론 컸지만, 마지막 때를 살아야 하는 그들이 성경이 예언하는 대로 얼마나 많은 핍박과 환란을 겪어야 할지, 또한 얼마나 교묘하고 사악한 유혹들과 싸워야 할지,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이 미국에서조차 공립교육이 완전히 무너지고, 반성경적, 반하나님적인 가르침으로 자녀들을 미혹하고 공격하는 상황이며, 그러한 상황은 어디에서나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직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말씀으로 든든히 양육되어야 할 우리의 자녀들을 치열한 영적 전쟁터인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내어놓고, 네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태도는 너무나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자녀 교육은 공립학교가 아닌 부모들에게 직접 맡기셨음 (신 6:4-9)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은 영적 가족인 교회가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깊어져 갔습니다.

교회 사역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 학교 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보여서 몇 년을 망설이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확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분명했고, 또한 그것은 급박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 번 순종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멘! 순종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이미 준비해 놓으셨던 보따리들을 풀어놓아 주셨습니다. 이 비전을 교회에서 선포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비전에 동의하는 동역자들이 헌신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너무나 적절하고 훌륭한 커리큘럼을 또한 만나게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60년 이상 사용되었고 계속해서 개발되어온 말씀 중심, 훈련 중심의 이미 검증된 교육 방식이며, 학교 규모와 상관없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었습니다. 첫 학기 한 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저와 사역자들을 포함한 6명의 선생님이 헌신하여 올리브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수는 아니지만 우리 학교는 우리의 자녀들이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주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견고히 자랄 수 있는 안전한 어머니의 자궁 (시 110:3, 한글 번역에는 빠져 있지만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준비되는 새벽의 자궁)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맺는말

지난 18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기며 많은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진정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게으르고 악한 종을 인내로 책망으로 사랑으로 이끄셔서 결국은 순종의 자리로 인도하시고, 그분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며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목도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비전 역시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온 아브라함의 손을 이끌고 뭇별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꿈 (비전)을 나누시고 또 그것을 확장하고 이루시는 그 놀라우신 하나님을 저의 인생에서도 만났습니다. 아직도 저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또 어떻게 나아가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하신 것 같이 계속해서 비전들을 확장해 주시고, 끝까지 인도해 주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교회가 해야 할 것은 순종인것 같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저는 어떤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 좋았고, 어떤 것이 부족했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해서, 그때그때 순종하며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에 하시는 일들을 함께 보며 가고 있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김수미 목사는 뉴욕주립대 (버팔로)에서 분자생물학 박사를 하고, 퓰러 신학대학교에서 M.Div.를 마쳤다. 현재 LA 연합교회의 한어부 담임, 올리브 트리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섬기고 있다.

파트너 칼럼

말씀에 비춰본 우리 교회 이야기

샤힌 사역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으로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능력과 권능과 성령의 표적으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선포하고, 인류를 향한 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셔서 그의 말씀을 전하게 하실 때에, 먼저 그들에게 권세와 표적을 주셔서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의 진리를 분별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랑이 자신의 제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징표 중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에 대해 증언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사랑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종교학자들과 위선자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우리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 14: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하는도다 (마 23:15)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가장 큰 원수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대적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거짓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데 합당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평강의 메시지를 진정으로 전하고 하나님과 화목하여 구원을 받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목적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하심이라 (요일 4:9)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0)

그리스도의 증인인 교회의 터는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모든 순간, 모든 장소, 모든 행동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키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예수님의 유일한 참 증인이라고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을 거짓 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가르침이 성경 및 예수 그리스도와 조화를 이루는가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순교로 헌신한 초기 그리스도 제자들의 삶을 살펴보고 우리 교회의 삶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증인이자 그의 대사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류에게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증인들의 모습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지 10일 후인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권능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했음을 봅니다. 이로써 전 세계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인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증인들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에 따라 우리 교회의 모습을 비춰보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3-47)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 가운데 많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예수님의 권세를 받은 제자임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것을 간증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신 것입니다.

아래 교인들의 간증은 우리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 헤디예: 저는 터키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어 수용소로 이송될 가능성이 높았고, 도시를 이동하는 동안 언제든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집 밖에 있을 때 항상 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교회의 온 회중이 저를 위해 기도했고, 다음날 경찰서에 갔을 때 저는 강제 추방되어 수용소로 이송되지 않았고, 교통 문제도 해결되어 이제는 도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카렌: 제가 다발성 근경색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의사들은 제 활력징후가 매우 약하고 신장과 간과 같은 장기가 기능을 상실했으며 생존할 가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일주일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저는 기적적으로 치유되었습니다. 그 기도로 병원에 함께 있던 제 약혼자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왜 믿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일 때 교회가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그 순간에 완전히 평안을 느꼈고, 근심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일에 참여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서로 돕는 데 매우 열정적입니다. 누군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구성원이 함께 모여 해결합니다.

  • 말레케: 저는 신장 감염으로 인해 신장 중 하나를 잃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습니다. 저는 제가 죽은 후에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밤낮으로 울었습니다. 저는 병원비도 낼 수 없었지만, 교회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원하는 동안 교회는 제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고, 저의 회복을 위해 교회가 기도해 주는 것을 보며 격려를 받았습니다.
  • 바히드: 제 어린 딸과 아내가 화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교회는 병원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다른 두 아이들은 교회 성도가 보살펴 주었습니다. 저의 딸과 아내는 교회의 많은 기도로 회복되었습니다.
  • 소그라: 저는 신장 질환과 다리 통증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저의 딸도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싼 병원비와 약값으로 인해 저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월세와 약값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 중한 명은 매일 요리한 음식을 집으로 가져다줍니다. 또 제가 병원에 갈 때마다 통역으로 저를 도와줍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교사들에게 배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믿음을 발전시키고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정기적인 모임에 참석하려는 우리 성도들의 열망은 매우 큽니다. 그들은 모두 모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해 가르침을 받고 적용하는 성도들의 신실함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 레자: 저는 교회 예배에 가고 싶지만 버스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예배 2시간 전에 출발해서 교회까지 5km를 걸어갔습니다.
  • 사하르: 저희 집에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늦은 밤이었지만, 인스타그램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먼 거리의 친구 집에 가서 인터넷을 하곤 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그들은 아직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 아잠은 이웃을 돕고 사랑함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매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 예수에 대한 믿음은 바흐람을 책임감 있고 정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외국인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에 가게 주인은 종종 자신이 없을 때 가게 경영을 그에게 맡기곤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간증을 보며, 우리 교회는 예수를 증거하는 데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복음 전파와 박해

사도행전을 연구해보면 우리는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 담대하고 간절하게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을 수행하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박해 때문에 다른 성읍으로 흩어졌지만, 여전히 예수의 증인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파할 때 인간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를 만드는 데 참여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떻게 말씀을 선포했는지에 비추어 우리 교회가 참된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 5:40-41)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 8: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핍박의 여파로 집과 친척을 떠나게 되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교회 대부분의 성도들은 정부나 고향 사람들의 박해로 인해 고국을 떠나야 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합당한 증인이 되기 위해 신실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해를 보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 카타윤: 제 딸은 학교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모욕을 당하고 강제로 종교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딸이 어린 나이에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저처럼 그릇된 믿음으로 혼돈과 근심 속에 살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모니라: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1년 동안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모욕을 받았지만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오랜 시간과 많은 기도 끝에 가족들은 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그들의 문제를 위해 교회에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메시지 전달에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 무신론자인 무함마드는 교회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 모임에 왔습니다. 그의 질문에 우리는 사랑과 온유함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가지고 왔지만, 마침내 믿게 되었습니다.
  • 연로한 무슬림 여성 소그라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나왔습니다. 성경 듣기에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몇 번의 교회 모임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 삼고 복음 전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 샤하비는 1년 전에 그리스도에 대해 들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는 한 성도로부터 교회를 소개받았고,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은 후 예수님께 마음을 드렸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로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화해의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충실히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감히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사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샤힌 사역자는 이란 출신 난민으로 흑해 지역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터키 삼순의 오르한 목사를 돕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어권 사역을 담당하며 찬양 인도 및 설교 등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터키에 8년간 거주하며 삼순에서 교회개척자로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캐나다 이주 신청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이주가 허가되었고, 10월 27일 터키를 떠나게 됩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터키에서 교회개척자로서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한 샤힌 사역자 가족을 축복하며 기도해 주십시오.

파트너 칼럼

난민들 속에서 피어난 예수 공동체

아지즈 사역자

저는 터키 안디옥에서 시리아 난민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리아 난민으로 터키에 들어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으며, 지금은 안디옥 개신교회에서 아랍어 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진 예수 공동체가 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난민들이 예수 공동체가 되어 또 다른 곳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을 세워나가는지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복음의 비밀을 가진 예수 공동체의 강력한 힘이 여러분께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시리아 난민들과 교회

2010년 3월, 시리아에서 가장 치열한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시리아는 지중해 동쪽 해안에 위치한 비교적 작은 나라입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나라의 인구는 약 2천만 명이었고, 그중 80%가 무슬림 (순니파)이며, 12%는 여러 종파의 기독교인 (대다수가 정교회), 8%는 다른 종교 집단으로 시아파, 알라위파, 이스마일파, 조로아스터교 등입니다. 7천 년의 역사를 가진 시리아에서는 알려진 모든 종교를 찾을 수 있으며, 모든 민족과 종교 집단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인종과 종교 집단은 폐쇄적인 지역에서 살고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서로 교류했습니다. 도시와 시골 사이에는 엄격한 사회적, 심리적 분리가 있습니다. 같은 도시에서도 종교에 따라 차별이 있습니다. 일부 시골 지역은 하나의 특정 종교 집단만 거주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도시 경계에 있는 일부 마을에도 하나의 민족과 종교 집단만 거주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제적인 교류를 했지만 섞이거나 합쳐지지는 않았습니다. 7천 년 된 ‘도시 국가’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시리아 사람들의 마음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었을 때, 이 깊이 묻힌 증오와 적개심은 격렬하게 표면화되었고, 가장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인간의 목숨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이유로 피를 흘렸습니다. 한때 아람인과 가나안 사람들을 다스리던 모든 고대 귀신과 마귀들이 깨어나 다시 살아난 것 같았습니다. 많은 가족이 다른 나라로 도망쳤고, 시리아 난민의 많은 수가 터키로 왔습니다.

터키에 온 시리아 사람들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터키인과 시리아인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전의 엄격한 분리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세계관, 다른 터키 이슬람교, 그리고 다른 기독교에 노출되었습니다.

터키의 다른 이슬람교는 시리아인들에게 궁극적인 진리, 방법, 삶의 규약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 다른 기독교는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리아에서 그들이 알고 있던 자기중심적인 기독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의 사랑은 낯선 이방인에게 의심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터키에서 만난 기독교는 개방적이고, 사랑이 많으며,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기꺼이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대가로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시리아 난민들은 궁핍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입은 옷이 전부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들은 그들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희생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서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배를 채우고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에, 시리아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지?”,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교회는 우리가 그들의 예배당에 들어가 예배 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허용하는 반면, 무슬림은 우리가 그들의 모스크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걸까?”, “이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보던 이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우리가 배운 것처럼 잔인한 이교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리아 난민은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 모든 사람을 개별적이고 다르게 다루시는 유일신에 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공동체로 부르시는 하나님

M형제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영적인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에 나타나서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M형제는 집으로 돌아와 그 환상에 대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이 기독교 저주에서 그를 치료할 이스마일파 셰이크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마일파는 이슬람의 작은 종파이고, 그들이 무엇을 숭배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다른 무슬림들은 그들이 여성의 질을 숭배한다고 비난하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은 그들의 종교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이슬람, 동양 철학 그리고 다산 여신에 대한 고대 숭배의 혼합체입니다. 그들은 삶과 종교의 문제에 있어서 그들을 안내하는 종교 지도자 (셰이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M형제와 그의 아내가 그의 환상과 정신건강에 대해 논쟁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천장에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 두 팔을 벌리시며 “너희가 왜 싸우느냐,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들의 생명과 세 자녀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고, 예수님을 주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M형제의 온 가족은 지금 독일에 있고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께 헌신하고 있습니다.

Q형제와 G자매는 쿠르드족 노부부입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무슬림이었지만, 그들의 기원은 조로아스터교에 있습니다. 그들은 두 종교 사이에서 갈라져 독특한 혼합으로 두 종교를 실천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온 지구를 회복하기 위해 장차 올 ‘이슬람 이사’를 기다리면서 처녀로부터 잉태하여 종말을 고할 구원자 ‘사오쉬안트’를 좋아했습니다. 때로 그들은 자녀들과 손자들을 돕기 위해 교회에 왔으며, 기독교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다른 종교들 중 하나가 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에서 또 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죽었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고, 그의 백성을 구하고 온 지구를 회복하기 위해 때가 되면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오쉬안트’와 이슬람의 ‘이사’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그들보다 더 강하시며 더 논리적인 실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에 헌신하고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설득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순간에 여섯 가정에서 25명 이상의 성인 남녀와 아이들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 가족은 현재 독일과 핀란드로 나뉘어 갔지만, 쿠르드족 동포들에게 복음을 나누는 데 참여하고 있으며, 더 많은 기독교인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R형제는 20대 후반의 순니파 무슬림 청년입니다. 그는 아랍계 종교 배경의 집안 출신입니다. 전형적인 무슬림과 마찬가지로 그의 아버지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얻은 약 20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집계되지 않은 딸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R의 어머니를 형제들 앞에서 학대하곤 했습니다. R이 말리자 그 역시 아버지에게 잔인하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꾸란에 따라 아버지는 단지 가장으로서 그의 신성한 권리를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R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행동할 권리를 주는 알라를 거부했고, 그는 어떤 유형의 신도 거부하는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R형제는 입대를 할 경우 연루될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터키에 왔지만,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는 가입할 공동체를 찾았지만, 혼자 사는 젊은이를 받아주는 공동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포용하고 낮은 사회적 배경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대안적인 공동체, 바로 교회를 찾았습니다. 얼마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아버지와 그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귀히 여기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갖지 못했던 예수의 품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R형제는 현재 그리스 난민 캠프에 있지만, 그가 어디에 있든 그는 여전히 예수의 품속에 있을 것입니다.

J형제와 M자매는 전통적인 정교회 환경에서 태어난 정교회 부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외에 많은 존재를 숭배하곤 했으며,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그분의 좋은 편에 서기 위해 지켜야 하는 행실과 행위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마을을 침략한 과격 이슬람 세력을 피해 터키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은 관례처럼 먼저 터키 도시에 있는 지역 정교회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리아에서 느꼈던 따뜻한 환영과 소속감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도움과 지원을 받기 위해 이 정교회에 온 멸시와 경멸을 받는 난민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터키 정교회 공동체가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내 M도 그녀의 필요를 이용하려는 일부 남성들에게 추행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정교회를 떠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시리아 난민이 이들을 개신교로 초대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망설였으나 그가 강권하였기에 마지못해 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들이 받은 따뜻한 환영, 사랑스러운 대접,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영적인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전통 교회에서 경험했던 어떤 것과도 같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그들은 규칙적으로 성경을 묵상했고 그 안에서 발견한 그리스도에 의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린 시절에 알고 있던 그리스도와는 다른,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은 바뀌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프랑스에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몇몇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다른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아가페 공동체

아시다시피 많은 신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터키 외부에서 들어왔습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초기의 신자들은 주변 사회와 융합할 수 없었습니다. 독립된 아랍어 예배가 없었던 초기에는 그들이 사는 곳에서의 소속감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터키 교회의 우산 아래 아랍어 예배를 시작한 시리아 신자들을 키우셨습니다. 성령의 불길이 그들을 그들의 친척들과 이웃에게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불타는 열망으로 채웠고,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즉 우리가 말하는 ‘아가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큰 공동체로 서로 다른 배경을 인정하고 삶의 방식을 확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사고방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시리아 교회는 초기 지도자들에 대한 분열과 반대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새로 세워진 교회들이 이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시리아인의 다른 인종 집단에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가페 공동체’는 더 확장되었습니다. 몇년 후, 기독교 신자들의 2세들이 태어나 ‘아가페 공동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단계는 새로운 도전을 요구했습니다. 이 가정 중 적어도 50%는 터키에 머물면서 그들의 아이들을 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터키에서 가족을 돌보는 것은 큰 책임과 부담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가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지원하는 유럽 국가들과는 다릅니다. 터키에서 아이들은 이미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서 먹여 살려야 할 부담일 뿐입니다. 터키 국민들도 비틀거리는 경제 상황과 줄어드는 일자리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기본 권리와 이동이 제한된 난민들은 어떨까요?

더욱이 기독교 가족을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이전의 모든 문제 외에도, 터키는 세속적인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2급 시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독교 난민이라면, 여러분은 3급 거주자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정당한 직업을 가질 기회가 줄어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무슬림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면 기회는 더 줄어듭니다. 여러분은 금기를 범하고 여러분의 영혼과 종교를 몇 달러에 팔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유혹’했던 사람들에게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책임지게 하라며 왕따가 되거나 직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대가족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고, 여러분의 아이들은 사촌이나 친척 없이 홀로 자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혈연이 쉽게 끊어집니다.

일반적으로 터키에 거주하는 시리아인에게 미래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시리아로 다시 추방될 수 있다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배교는 법적으로 참수형에 처해지며 아내와 자식들은 전리품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위협입니다. 만약 운이 좋아서 터키에 머무르게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기독교인으로서 여러분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아내는 부도덕하고 쉽게 대하는 여성으로 당연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자녀들은 공립학교에서 이슬람교를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사립학교는 너무 비싸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난민들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미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여러분의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터키인, 그리고 기독교 어린이로서, 학령기 시리아 아이가 겪는 위기는 더욱더 깊어질 것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슬람교와 이슬람 문화를 공부해야 하는데, 이것은 가정, 교회, 그리고 교회 학교에서 배우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에 상충할 것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혼란스러운 일이지만, 이 ‘아가페 공동체’는 이러한 고난과 상황들 가운데 오직 한 가지를 의지합니다.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삶으로, 안개 낀 미래를 희망으로 바꿀수 있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아가페 공동체’는 믿음으로 살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보이지 않는 모든 약속을 믿으며 살았던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우리 공동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간증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레베카 선교사

나를 변화시킨 말씀

삼십 대에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을 때 내 안에 사랑의 불이 떨어졌다.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기 전에도 성경을 수십 번 읽기는 했지만,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깨닫지는 못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고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말씀을 읽었다. 성경을 읽어도 주님의 마음을 잘 몰랐다. 그러나 사랑의 불은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싶게 했고, 그 뜻대로 살며 그분을 섬기고 싶은 강력한 갈망을 가지게 했다. 그 이후부터 성경을 읽을 때 온 마음으로 읽었다. 마음으로 응답하고 몸으로 순종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불은 내가 머리로 알았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고백으로 응답하게 하였다.
그즈음에 요한복음 말씀이 내 안에 쏟아졌다. 특히 다음 구절들이 나를 삼켰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요 16:16-17)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b)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1:21)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1:23)

그때까지 내 신앙생활은 그저 교회를 중심으로 살며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공부에 참여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응답적인 고백이 되니 말씀이 나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암을 찾아내듯 말씀은 내 가정생활을 스캔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날 사랑한 그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하니?”라고 물으셨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형제자매들과 하나되고 있는지를 말씀이 나에게 물었다. 예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예수님의 제자로 세상을 보는지 말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전부 “아니요”였다.

그때부터 요한복음의 말씀들은 나의 신앙관과 가치관을 바꾸었고 예수 공동체에 대한 소망으로 나를 새롭게 하였다. 나의 제자도와 선교관도 마찬가지로 변화시켰다.

공동체를 만드시는 하나님

레베카선교회

공동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개별적으로 부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사랑의 관계로 초대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삭개오야!” 부르셨듯 우리도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관계를 시작한다. 그리고 관계를 맺는 순간에는 나의 연약함과 피곤함을 잊어야 한다. 예수님이 피곤해서 수가성 우물가에서 쉬실 때 사마리아 한 여인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몸이 요구하는 휴식을 포기하며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다.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알아가는 사귐에는 자신의 필요를 내려놓는 사랑이 포함된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을 한꺼번에 부르지 않으셨다. 한 사람씩 알고 부르셨다. 이처럼 제자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부른다. 이는 공동체 형성이 비전 중심이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헌신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처음부터 한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헌신으로 형성된다.

예수님은 한 사람씩 부르셨고, 그들을 홀로 두지 않으셨다.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모인 공동체로 연합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각각 부르셨지만 그들이 함께 살도록 하셨고, 매일 서로 교제하게 하셨으며, 때로는 갈등을 통하여 이기심을 극복하도록 하셨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그 뜻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서로 기쁨과 슬픔도 나누었지만, 서로 싸운 뒤 갈등을 해결하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결국 열두 사람은 한 무리의 제자가 되었다. 바로 제자 공동체가 된 것이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과 친밀함을 유지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 안에 거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며 가르치셨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제자들에게 꿈꾸게 하셨다.

레베카선교회 중국

사도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맛을 보았다면, 오순절 성령님은 사도들에게 참 교회의 모델을 보여주셨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보았던 공동체를 제자들의 삶이 되게 하셨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버리고 배신했던 제자들을 다시 불러서 그들이 교회가 되도록 하셨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고, 함께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였으며,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함께 선교의 일을 하였다. 무엇보다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재산을 나누었다. (행 2:44, 4:32) 성령님은 그들을 사랑이 풍성한 공동체로 만들었다. 세상은 제자들의 이 큰 사랑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표시로 주신 “서로 사랑하라” (요 13:34)는 말씀을 성취하였다. 성령은 예루살렘에 세워진 첫 교회가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성취자인 예수님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루셨고, 오순절 성령님은 사도들과 제자들의 교회를 이루셨다.

내 마음에 사랑의 불이 떨어지고 가정 공동체에서 그 말씀들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결혼생활은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닮는 혹독한 훈련 장소가 되었다. 가정 안에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정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최고의 자리였다. 가정에서 용서와 용납을 매일 반복하였다. 용서와 용납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제가 달라졌다. 나 또한 내가 사랑했던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울었다. 용서하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도 쳤다. 어떤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실패를 경험했다. 낙심하기도 했지만, 차츰 남편과 자녀들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나도 회복되었다. 그제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열매가 결혼생활에서 맺혔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로서 사랑의 풍성함을 누렸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살짝 깨달았다. 내가 이토록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셔서 가족들로 하여금 참 사랑을 경험하게 하셨다. 혈육의 가족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가족을 경험하게 하였다. 배우자와 자식, 제자들이 나를 배신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기다리게 하셨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과 품을 배웠을 때 모든 관계는 더욱더 단단해졌다. 서로 용납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배워가며 우리는 혈육을 넘어서는 형제자매로 성령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공동체 생활의 은혜

레베카선교회 베트남

나는 사십 세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다시 요한복음의 말씀들을 굳게 붙잡았다. 그리고 선교지에 나가서 현지인과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공동체의 삶 자체가 제자훈련이었기 때문에 매일 나를 죽이는 십자가 복음이 내 제자훈련의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나를 죽이는 삶이 사랑의 기초이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핵심이기에 공동체 삶은 우리 모두의 악한 존재를 드러냈다. 우리에게 착한 모습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기에 공동체는 우리에게 커다란 고통을 선물로 주었다. 머리와 지식으로 알았던 사랑의 삶을 내 몸으로 살아내는 것은 실로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베트남에서는 가난한 현지인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중국에서는 귀신에 심한 영향을 받는 자매와도 살았다. 미국에서는 남편이 살인죄로 잡혀가 덜렁 혼자 남은 아내와 그녀의 딸과 함께 살았다. 태국에서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자매와도 같이 살았다. 선교지를 떠난 지금은 오랫동안의 거절감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자매와 살고 있다.

이들과의 공동체 생활은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통하여 먼저 내 마음을 만져주셨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던 교만한 나를 보여주셨다. 자매들을 사랑하여 공동체로 동거하지만,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보게 하셨다. 매일 나의 영적 현주소가 드러나고 마음은 무너졌다. 내 속사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보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가 매일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매일 집에서 예배하며 성찬식을 할 때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인 나를 위해 예수님이 쏟으신 피와 찢기신 살을 먹고 매일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을 다 쏟으면 주님을 향한 경외감에 그저 잠잠함이 밀려왔다. 예배였다. 사랑의 굶주림에 몇 년을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주님,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세요” 이 기도가 응답되었다. 하나님은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아니감당조차 할 수 없는 한 자매를 보내주셨다.

그녀는 열세 살에 살인을 경험했고 그 후부터 악한 영의 강한 결박에 시달림을 받던 자매였다. 자매는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삶의 전 영역을 회복해야 했다. 열방을 뛰어다니며 사역하던 내게 주님은 모든 사역을 멈추고 한 영혼을 열방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셨다. 나는 즉시 모든 사역을 멈추었다. 13개월 동안 오직 이 한 자매만 붙들고 씨름해야 했다. 우리 집에 오던 첫 주부터 자매는 우리가 살던 23층에서 뛰어내리라는 충동을 받았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사람을 신뢰하거나 사랑하는 것을 모르는 자매와의 삶은 전쟁터였다. 매일 그녀를 돕고 사랑하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에 찬 내 설교도 아니고 귀신을 쫓는 안수기도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먹고, 자고, 싸우고, 화해하고, 예배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녀 안에 있는 쓴 뿌리는 나의 사랑과 훈련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나는 ‘매일’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하고, ‘매일’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예수님이 용서를 위해 죽으셨음이 날마다 새로웠다. 매일 나를 거역하는 자매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기 위해서 나는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했다.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항상 고통스럽지만 순종으로 부터 오는 고통은 나의 삶에 자유를 주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담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사랑한 만큼 자유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린다.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베푸는 용서는 나에게 십자가 죽음이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용서는 항상 고통스럽고 그 고통은 나에게 순종을 거부하라고 하지만, 용서는 결국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사랑할 수 있는 참 자유를 준다. 무엇보다 용서가 내게 준 새로움은 하나님과 연합에서 나오는 친밀함이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셨다. 즉, 사랑은 포도나무 예수님께 가지인 우리가 붙어 있어야 나오는 선물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이 바로 친밀함이다. 용서는 주님과 나의 친밀함의 비밀 아지트였다. 예수님의 사랑은 내 안에 있는 예수 안에서 흘러나온다. 사실 공동체로 살면서 내가 사랑한 사람보다 나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 많다. 나는 주장이 강했고 어떤 일들을 보면 옳고 그름으로 판단했다. 그 사람의 형편보다 내 생각이나 주장이 앞섰다. 사람보다 사역, 관계보다 비전이 앞서서 나를 이끌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 지금은 은혜로 나도 변하고 그들도 성숙해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우리가 사랑할 대상은 주님만이 아니라 나의 이웃들도 포함된다는 것을 그때는 미숙해서 몰랐다.

선교사님들을 만나면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현지 제자들 또는 동역자의 배신에 선교사님들 마음이 닫혀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때마다 내 마음이 찢어졌다. 마음을 다 쏟은 사랑에 찔린 선교사님들이 안쓰러웠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해하는 사람과도 같다. 이 자해는 내가 찌르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찔리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사랑이 칼이 되어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긴다. 나도 사람들의 배신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그 아픔을 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 용서를 붙잡았다.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대가는 죽음이다. 이제는 안다. 사랑의 대상은 주님과 이웃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죽기까지 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고 부르셨다. 이제는 안다. 선교 사역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공동체 지체를 사랑해서 나를 주고, 이웃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위하여 부름 받았다. 이전에 선교지로 나갈 때는 비전으로 똘똘 뭉쳐있었지만, 이제는 선교지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어떤 거대한 일을 위해 보내신 것보다 먼저 사랑할 사람을 보게 하시고 그들과 먹고 마시는 일에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안다.

오늘도 나는 함께 살며 깊이 있는 나눔의 삶으로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 내가 만나는 이들을 위해서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움을 나누고 웃으며 함께 먹는다. 어린 자녀 셋을 둔 싱글 맘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먹고 청소도 해준다. 말기 암 환자들에게 찾아가서 실제적 필요를 채워주고 아픈 장로님에게 찾아가서 대화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 가르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보다 이제는 삶으로 더 많은 것을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제자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다. 제자라는 딱지가 내 몸에 새겨졌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위대한 대제사장적 기도다. 이 기도에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 안에서 공동체로 영원히 살고 계신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핵심은 제자들의 하나됨이다. 그 하나됨이 제자들의 삶이다. 하나님은 경직된 교리가 아닌 하나로 연합한 공동체 안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로 변해갈 때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실재와 통치를 나타낼 방법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을 세상 나라 속에서 드러내는 방법은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때 드러나고 증명된다. 공동체를 이룬 제자의 삶은 가장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복음 전도의 도 (道)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형성된 사랑의 공동체는 추상적으로 보이는 진리를 구체화시키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낸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의 공동체를 형성함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고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고, 증거하는 공동체적인 삶은 세상 나라를 파괴하는 능력이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Koinonia)는 복음을 담는 그릇이며, 복음 전도의 기초이며 동시에 목표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과 공동체는 우리 시대를 위한 육신이 된 말씀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루는 연합을 통하여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아, 여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가지고 지키며,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곳에 임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선교의 영이시다.

공동체 이야기

진젠도르프와 헤른후트:선교의 시발점이 된 난민 공동체

강우석

유엔난민기구 (UNHCR)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에 8,240만 명의 난민이 있습니다.(1) 한국의 인구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타지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약 120만 명의 유럽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2) 120만 명의 난민 문제가 해결되고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난민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지금처럼 난민들이 많았던 적은 없습니다. SWM 선교회가 중점적으로 사역하는 터키만 해도 370만 명의 공식적인 난민이 있습니다. (3)비공식적으로는 더 많은 숫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14년 ISIS 사태와 여러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터키에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여러 국가로부터 온 난민들이 있습니다. 2021년 8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카불 탈환을 보면서 더 많은 아프간 난민들이 터키와 주위 나라로 향할 것을 예상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난민을 통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신 걸까요? 난민들을 통해 어떤 예배와 고백을 받기 원하실까요?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섞이고 있는 지금, 그리고 문화적 교류를 통해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은 어떤 공동체를 찾고 계실까요?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난민이 이 시대의 영적 흐름을 바꿀 키워드임은 틀림없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여러 일을 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특히 선교와 난민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놓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선교 역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라비안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18세기 초 진젠도르프 백작이 모라비안 난민들을 자신의 영지에 정착하게 도우며 시작된 선교지향적 공동체였습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독일 작센 지역의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세계 선교의 시발점으로 삼으셨습니다. 1732년 첫 선교사 레온하르트 도버 (Leonard Dober)와 다비드 니치만 (David Nitschmann)을 서인도 제도로 파송한 후, 그린란드, 수리남,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디언과 실론, 중국, 페르시아, 자메이카, 안티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공동체의 리더였던 진젠도르프 백작이 1760년에 죽기까지 28년 동안 226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그 후 2백 년에 걸쳐 3천 명에 가까운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모라비안 공동체가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그 이전까지 개신교 전체가 파송한 선교사의 수보다 많습니다.(4) 이들의 선교 열정은 19세기 유럽이 15개의 선교 기관을 만드는 동력이 되었으며, 존 웨슬리가 감리교를 창시하기까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개신교 선교운동의 선구자라고 말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모라비안 공동체는 당시 개신교 사회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미약한 공동체였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이 공동체가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연합하게 되었으며, 그 열매로 어떤 선교의 발자취를 남겼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라비안 공동체의 선교 정신의 바탕이 된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마음가짐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한 번 고향을 떠나온 난민이기에 더더욱 본향을 사모할 수 있었던 모라비안 공동체의 모습을 거울삼아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고민하길 원합니다.

I.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공동체

헤른후트 마을 전경 ⓒ heyeje,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모라비안이란 이름은 오늘날 체코 공화국의 동쪽에 있던 지명입니다. 모라비안들은 종교 개혁자 얀 후스 (Jan Hus)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6, 17세기에 가톨릭 교회의 개신교 박해가 있었고, 1722년 90여 명의 모라비안들은 작센 지방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그들을 본인의 영지에 정착하도록 허락하였고, 점점 더 많은 이가 이주하여 1926년에는 그 수가 300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후스파의 후손인 모라비안 뿐만 아니라 슐레지엔의 슈벵크펠트주의자들, 경건주의자들, 분리주의자들, 여러 지역의 루터파와 개혁주의자들도 유입되었습니다. 이들이 정착한 지역을 헤른후트 (Herrnhut)라 불렀습니다. 이후 다양한 신앙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로 하나되기 위하여 ‘형제회 협약’에 모두 동의했고, 각 교파의 신앙고백을 초월하는 자발적인 교회로 마음을 모았습니다.(5)

진젠도르프는 유명한 경건주의자인 프랑케의 제자였으며 경건주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나에게 한 가지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I have only one passion, and that is Christ)”라는 말로 유명한 진젠도르프는 경건주의 사상과 가치를 기초로 ‘마음의 경건, 실천적인 사랑, 교파를 극복하고 포용 하는 경향’ 등을 중요시했습니다.(6)진젠도르프는 젊은 시절 이미 자신의 삶과 재물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려고 결심하였지만, 헤른후트에서 공동체를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의 영지에서 난민들이 살 수 있도록 허가만 해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모라비안 공동체를 위해 백작의 지위와 직업도 버리고 공동체의 지도자로 헌신하게 됩니다.

II. 공동체의 위기와 진정한 연합

여러 민족에게 설교하는 진젠도르프

여러 지역에서 종교적 탄압을 받던 난민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헤른후트까지 왔을 만큼 하나님을 향한 개개인의 열정과 헌신은 컸습니다. 다만 각 사람이 자라온 신앙의 배경과 뿌리가 다른 만큼 온전히 연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이 가진 신앙의 신념이 너무 강해서 하나의 공통된 신앙고백을 가질 수 없었고 심각한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주민들은 공식적으로는 작센의 루터파 지역 교회 소속이었지만, 개혁주의 신앙의 노선을 따르며 칼빈주의 신앙고백을 전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정설, 성체, 참회의 실행 등 여러 신학적 논쟁이 계속되었고, 종교적인 관용을 베푼 진젠도르프의 영지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관철하려는 열광주의자, 분리주의자 등 다양한 그룹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분쟁과 분열의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달은 진젠도르프는 일정 시간을 떼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연합을 위한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신앙고백 (형제회 협약, Brotherly Agreement)을 써서 모든 사람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주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는 아래와 같습니다.

“모든 형제는 다른 기독교인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화합과 사랑을 구하라”
“절대로 이웃을 정죄하지 말고 오직 네 신앙과 믿음을 굳게 지키라”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믿는 자가 비록 무지와 그릇된 인도로 성경의 어떤 부분을 잘못 해석할지라도 그와 분리되려 하지 말라”
"모라비안과 보헤미안이라는 정체성을 종파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강조하지 말라”
“영원한 것보다 네 생명을 사랑하지 말라. 영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것보다 여기서 목숨을 잃는 것이 낫다”(7)

베르텔스도르프 복음주의 루터교 교회 ⓒ J.-H. Janßen,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공동성명문을 통해 지식적, 감정적 동의를 이루기는 했지만, 모라비안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1927년 8월 13일 예배 가운데 예기치 못한 강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에 모인 성도들은 기도 가운데 교회의 분리 혹은 분파 문제를 고백하였고, 공동체의 본질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구원의 질서를 간구했습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한 몸인 것을 영으로 고백하는 감격스러운 성만찬이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진행됐습니다. 성도들이 이날을 헤른후트 성령강림절 (the Herrnhuter Pentecost)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성령의 특별한 역사하심이 아니었다면 모라비안 공동체가 초교파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III. 연합의 열매-선교

Agnus Dei가 있는 모라비아 교회의 인장 ⓒ JJackman,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연합을 이루고 날마다 예배의 삶을 사는 모라비안 공동체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음 과제는 선교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진젠도르프는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서인도제도의 상황을 듣게 되었고, 노예들이 복음을 듣기는커녕 인간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인도에서 온 흑인 노예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간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진젠 도르프는 서인도와 다른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1732년 모라비안 공동체는 첫 선교사로 레온하르트 도버와 다비드 니치만을 서인도 제도 토마스 섬으로 파송했습니다. 둘다 평신도 선교사로서 재정적 지원 없이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도버는 도자기 장인이었고 니치만은 목수였습니다. 그들은 말라리아의 위험과 농장 주인들의 핍박을 알면서도 기꺼이 토마스 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파송한 후, 모라비안 공동체는 여성을 포함해서 30명 가까이 서인도제도에 더 파송했고, 이들 중 20명은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선교를 향한 이들의 헌신과 열정은 그들의 사역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농장들을 방문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사역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은 기꺼이 노예의 삶을 같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과 혀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전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예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진젠도르프는 젊은 나이에 공동체의 본질이 이웃 사랑 안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며, 그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가톨릭과 루터파, 개혁파 간에는 아무런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웃에 다가서는 마음을 지녔는지가 문제입니다(8)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삶으로 실천하며 이웃에 다가서는 마음을 보인 모라비안 성도들의 모습은 오늘날 많은 교회에 큰 도전이 됩니다. ‘선교’라는 어떤 숙제를 맹목적으로 쫓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땅끝까지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모라비안 공동체의 모습은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IV.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마음가짐

헤른후트 마을 중앙에 있는 모라비안 형제 교회 ⓒ J.-H. Janßen,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모라비안 평신도들이 선교사로 나간 18세기와 2021년 현재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난민들에게 자비량 선교를 권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정부의 지침 없이 난민을 개인 땅에 정착시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모라비안 운동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선교 전략이나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핵심 가치와 정신입니다.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숭고한 헌신과 열정 뒤에는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마음가짐이 있었습니다. 모라비안 공동체의 성도들은 부나 명예를 쌓기 위해 헤른후트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곳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한 목소리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헤른후트에서도 충분히 부를 쌓고 일신의 영달을 꾀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모라비안 성도들은 스스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길 선택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충족시킬 수 없는 갈망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우리가 또 다른 어떤 세계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If we find ourselves with a desire that nothing in this world can satisfy, the most probable explanation is that we were made for another world)” – C.S. 루이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충족시킬 수 없는 갈망이 모라비안 공동체 안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땅에서의 안정과 축복이 아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나그네의 삶을 추구했지만, 모라비안 공동체가 한 발 더 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난민이라는 특수한 정체성 때문입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 준비된 사람들을 헤른후트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삶을 먼저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모라비안 성도들이 체코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모라비안 선교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미 고향을 떠나본 사람들이기에 선교를 위해 나그네의 삶을 사는 선택을 하는 것이 다른 이들보다 쉽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전 1:1-2)

베드로는 주 안에서 동역하는 형제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는 ‘거류민과 나그네 (aliens and strangers in the world)’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정말 자신을 나그네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입으로는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믿음의 경주를 한다고 하지만 많은 공동체가 선교의 정신을 잃고 이 세상의 유익을 구하는 것을 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1732년 첫 번째 선교사를 배출하기 전부터 ‘흩어진 나그네’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갈망해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24시간 중보기도입니다. 1728년 2월 10일 공동체는 24명의 남녀 기도자들이 돌아가며 한 시간씩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터키, 에티오피아, 그린란드, 라플란드 등 여러 국가를 위해 그리고 전 세계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철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중보기도는 무려 100년 넘도록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모라비안 공동체는 열방에 선교사를 직접 파송했을 뿐 아니라 헤른후트에서 365일 24시간 중보기도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모라비안 성도들이 본향을 사모하며 나그네의 삶을 추구했다는 것은 구원과 영생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자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풍토병과 종교적 박해로 인한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었겠습니까? 선교사를 처음 파송했던 서인도제도에서 많은 선교사가 목숨을 잃었지만, 모라비안 공동체는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고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지에서의 순교는 선교의 실패가 아닌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의 목적이 이 세상에서 모라비안 교세를 넓히고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다면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라비안 성도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본향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죽음은 하나님이 맡기신 나그네로서의 사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뿐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12명에 1명꼴로 3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모라비안 공동체의 역사는 그들이 본향을 사모하며 나그네의 삶을 추구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헤른후트 모라비안 형제회 교회 묘지. 1730년 첫 매장이 있은 후 현재 6,200개 이상의 무덤이 있다 ⓒ J.-H. Janßen,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모라비안 성도들과 존 웨슬리에 대한 일화도 있습니다. 1735년 영국에서 조지아로 향하는 배에서 존 웨슬리와 모라비안 성도 27명이 만납니다. 몇 개월의 항해 여정 가운데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맹렬한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웨슬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허약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큰 돛대의 돛이 찢어지고 소용돌이로 인해 배가 침몰할 위기에 모든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패닉에 빠졌지만, 모라비안 성도들은 태연하게 계속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한 모라비안 성도들의 모습에 웨슬리는 큰 감명을 받았고, 몇 년 후 웨슬리는 모라비안 성도들이 중심인 모임에 참여하여 회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감리교의 시작인 영국 대부흥이 시작됩니다.(9)

진젠도르프와 존 웨슬리의 공동체 사이에는 신학적인 견해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각자 주님의 계획대로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둘 다 충성된 종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다양한 교파의 난민들을 모으시고 연합을 통해 선교 운동을 일으키신 하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조류의 신학이나 교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나그네의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19-21)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주목하는 신앙을 갖도록 권면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나아가는 우리 개개인과 공동체의 마음 한쪽에 어쩌면 세상적인 기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의 경제적 축복, 건강, 성공 등 실제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많은 복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가로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순전한 마음과 선한 양심으로 먼저 구하는 공동체일지라도 항상 부흥하고 세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시선으로 예수 공동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이 실패로 여기는 순교는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 개인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를 인도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한 진젠도르프도 이 세상에서 소위 축복받은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재정과 삶을 드리는 희생을 감수했지만 진젠도르프의 가정에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1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9명이 어린 나이에 진젠도르프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유일하게 장성한 아들이었던 크리스티안 레나투스가 24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는 진젠도르프와 그의 아내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자녀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조금은 원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젠도르프는 자녀들의 죽음을 자녀들과의 영원한 이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굴곡 앞에 잠시 절망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긴 경주 끝에 본향에서 자녀들과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대하며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을까요?

V. 우리가 해야 할 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곳에서 타향살이를 한다는 의미로 난민을 이해한다면, 사실 한국인들은 예전부터 난민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한국인은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한국인들이기에 문화와 국경을 넘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 난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도 남북으로 나눠진 한반도는 언제라도 북한이 열리고 북한 난민의 물결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열방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아래 주님이 예비하신 사람과 때가 있습니다. 한민족에게 정말 기도하지 않으면 하루도 먹고 살 수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한국 교회가 부흥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유익을 충분히 누린 지금, 다시 본향을 바라는 나그네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먼저 각자의 교회 안에서 진젠도르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연합의 매개체가 되고, 교회가 본향을 바라며 선교의 불을 지필 수 있도록 돕는 부싯돌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난민을 통해 열방을 흔들고 계신 주님의 계획에 우리 민족이 동참하길 바랍니다. 제2의 모라비안 선교 운동이 있기 위해서는 제2의 진젠도르프가 필요합니다. 난민들이 새로운 곳에서 공동체로서 예배의 삶을 살고 직업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답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공동체를 통해 공동체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난민 상황을 통하여 여러 문화와 민족, 교파를 모으시고 모두 하나되게 하시며, 연합을 통해 모라비안 공동체 안에 선교의 꿈을 꾸게 하신 주님 앞에 우리가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마음가짐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1. https://www.unhcr.org/refugee-statistics/
  2. https://web.archive.org/web/20120127044401/http://www.unhcr.or.kr/unhcr/html/001/001005002001.html
  3. https://www.unhcr.org/refugee-statistics/
  4.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paul3377&logNo=168205857
  5. 비록 초교파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기존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진젠도르프는 루터파 교단 소속으로 나중에 루터파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여러 교파의 사람들이 함께했지만 스스로 새로운 교파나 교세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6. 이은재, 『친젠도르프와 헤른후트: 그리스도의 공동체』, CLC, 2019, 19쪽.
  7. Paul Wemmer, Count Zinzendorf and the Spirit of the Moravians, GardnersBooks, 2013.
  8. Michael Maurer, Kirche, Staat und Gesellschaft im 17. Und 18. Jahrhundert, München 1999, S. 31.
  9. 남기철, 『성령의 사람, 존 웨슬리에게 길을 묻다』, 도서출판 KMC, 2013, 73~75쪽.

공동체 이야기

부르심에 순종하는 SWM 선교 공동체

김진영 선교사, 김성간 선교사, 이세웅 선교사

SWM의 정체성 (Identity)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 회복, 완성을 위해 마지막 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거부하는 터키와 이슬람권을 향한 부르심과 사명에 순종하는 예수 공동체이며 선교 공동체입니다. 이 글에서는 SWM 선교회가 선교 공동체로서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SWM의 리더십께 네 가지의 질문을 드렸습니다. SWM이 선교 공동체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공동체로서 관계 맺는 대상은 누구인지, 공동체와 현장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선교 공동체가 겪는 어려움 또는 도전과제들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글을 통해 선교 공동체가 부르심과 사명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많은 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SWM이 선교 공동체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김진영 선교사

첫째, 부르심 (Calling)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 저주와 멸망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그 나라의 기업을 받는 은혜와 축복을 받도록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서 그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의 목적과 의미를 깨달은 예수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나타내고,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둘째, 사명 (Mission)입니다.
예수 공동체는 죄와 어둠과 사망 가운데 있는 잃어버린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선교적 사명을 받은 선교 공동체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주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공동체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그 나라의 기업과 상급을 받지만, 불순종하는 공동체는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과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셋째, 연합 (Unity)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아버지와의 하나됨, 제자들의 하나됨,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연합’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믿고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역사를 통해 다양한 이유로 분열된 교회와 교파가 참 복음 안에서 연합을 이루고, 그 연합을 통해 세상을 향한 거룩한 영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따라서 SWM은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과 사명에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부르심과 사명에 순종하는 교회와 단체와의 온전한 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성간 선교사

저희가 선교 공동체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진정한 연합입니다.
구조적이나 물리적인 연합만이 아닌, 유기적인 (Organic) 진정한 연합과 하나됨입니다. 어떠한 사명과 일들을 감당하기 위한 연합과 하나됨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참된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 가운데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주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부르심 (Calling/소명)과 사명 (Mission)과 은사 (Gifting)가 각각 다른 선교 공동체에서 우리를 온전하게 조화 (Harmony)시키시는 주님의 능력과 생명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지체나 외형적으로 보잘것없이 보이는 지체 (작은 자)를 격려하고 세워주며 축복하는 아름다운 협력 (Support)를 이루어 냅니다. 더 나아가 이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과 사역들 가운데서 우리의 사역 (Ministry)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Life)을 나누는 지체들의 참된 사귐과 귀한 '코이노니아'를 체험하게 합니다. 이를 위해서 늘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이세웅 선교사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즉,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성 삼위께서 하나되신 것처럼 SWM 공동체도 늘 하나되어 세상 사람들의 빛이 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연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터키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에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되고 교회가 세워지며 강력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 연합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없다는 선포이며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신뢰의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선교 공동체는 지금 우리가 영적 전쟁 중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사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우리 SWM 공동체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실 존귀하신 그 이름을 부르며 사모하며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존귀하게 여기는 최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터키와 중동 이슬람권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보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찾아가는 것이 사역의 우선순위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SWM 공동체가 관계 맺는 곳은 어디인가요?

김진영 선교사

SWM은 터키와 이슬람권을 향한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을 위해 지역 교회와 현지 선교단체 및 선교사, 그리고 현지 교회 및 사역자들과 함께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역 교회가 열방과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 사명을 감당하도록 지역 교회에서 일꾼을 부르시고 파송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과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과의 동역은 중요하며 지역 교회가 선교의 비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섬기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 단체/선교사들은 선교 전략과 방법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하지만, 지역 교회의 좋은 자원 (인적, 물적, 재능 등)을 동원하는 데 언어적·지리적·시간적·관계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 단체/선교사와의 연합 사역을 통해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전략적인 사역을 위해 연합하도록 섬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터키와 이슬람권의 현지 교회/사역자들과 서로를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동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 교회와 관계를 맺고, 섬김과 나눔의 자세로 그 나라와 민족 가운데 현지 교회가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성간 선교사

특별히 터키의 현지 목사님들, 선교사님들과 2007년부터 함께 연합하여 기도함으로 신뢰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이 신뢰 관계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SWM과 함께하는 한국과 미국의 교회들과 깊은 동역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집트의 현지 교회 리더들과 선교사님들, 북이라크와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연결된 현지 교회 리더들과도 동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연합과 동역이 주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보호하심 가운데 더욱 깊어지고, 이를 공격하는 악한 영들의 여러 모양의 시험을 이겨내며, 더욱 겸손과 온유의 자세로 계속 감당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세웅 선교사

SWM 선교회는 터키에서 사역하시는 김진영 선교사님의 사역을 도우며 시작된 단체입니다. 김진영 선교사님과 김은경 선교사님의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시작되었기에 가장 중요한 사역지는 터키입니다. 터키 사역이 깊어지면서 오스만 제국의 뿌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터키, 투르크창, 중동과 이슬람권을 사역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미전도 지역이 남아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크고 강력한 사탄의 진이 이슬람권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중요한 사역에 집중하면서 터키,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과 최근 난민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가 흘러갈 수 있도록 지역 교회들과의 동역의 길을 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선교회가 있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을 섬기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로컬 사역이 쉽지 않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 아랍어권, 터키어권 교회를 세우고 아랍어권, 터키어권에 선교사를 보내는 사역도 감당하게 되기를 꿈꿉니다.

그렇다면 SWM 공동체는 사역 현장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을까요? 공동체의 돌파가 선교 현장에서의 돌파로 이어졌던 경험 또는 선교 현장에서의 돌파가 공동체 내부의 돌파를 가져온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영 선교사

첫째, 연합기도입니다.
터키와 이슬람권의 견고한 사탄의 진을 파하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의 ‘연합’과 ‘기도’임을 2007년부터 시작된 연합기도운동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교회와 성도들이 연합해서 기도하고 현지 교회와 성도, 선교사들이 지속적인 기도의 횃불을 올렸습니다. 또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교회가 없는 지역을 기도 순례로 방문하여 영적으로 황폐한 땅을 갈고 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연합기도 사역을 통해 영적 돌파를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지속적인 연합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때에 그 땅과 그 백성을 흔드시고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개척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둘째, 난민 사역에 대한 순종입니다.2010년 에베소 연중회 이후 그해 12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와 민족들이 민주화의 바람과 더불어 혼돈, 테러, 내전 등으로 인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또 2014년 IS의 등장으로 수많은 무슬림 난민들이 주위의 나라로 흩어지면서 터키에 수많은 전쟁 난민들이 몰려왔습니다. 처음에 우리의 전문 사역이 아니라는 완악함과 고집으로 난민들을 외면했었지만, 2015년 9월 보드롬 해변의 한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난민을 향한 구제사역 (Bible & bread)에 순종했습니다. 이를 통해 난민들과 교제하고 섬기면서 난민들 가운데 예수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교회개척운동입니다.
교회개척운동은 특별하게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2일 안디옥에서 있었던 시리아 난민 교회 지도자 수양회에서 약 20여 명의 난민 교회 지도자들이 헌금 (약 $234)을 모아 저희에게 교회개척에 사용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헌금이 교회개척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장의 돌파가 선교회 사역의 돌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흩어지는 무슬림 난민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고 그들 가운데 교회가 개척되는 것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김성간 선교사

터키 현지 교회 목사님들과의 관계에서 돌파를 경험했던 인상 깊은 기억이 있습니다. 2010년 에베소 연합중보기도회 (연중회)를 터키개신교 교회협의회 (TeK)에 허락과 축복을 받기 위해 2009년 6월 TeK 총회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저희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홍보하기보다 그저 조용하고 겸손하게 그분들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희의 소극적 (?)이고 겸허한 자세를 보면서 몇몇 터키 목사님들이 오히려 먼저 나서서 저희를 대변해 주셨고, 2010년 에베소 연중회를 축복해주신 감동적인 체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연중회 (UPM)와 SWM 선교회는 터키 대부분의 현지 목사님과 선교사님들께 신뢰를 받아 귀하게 동역하는 아름다운 파트너의 관계로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능력을 새롭게 체험합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진실한 겸손과 온유의 자세로 땅들과 민족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와 능력을 계속 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소원합니다.

이세웅 선교사

SWM 공동체는 터키와 투르크창 그리고 이슬람권의 영적 돌파와 회복을 위해 2005년부터 기도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2006년 여름부터 준비했던 터키 연합중보기도회 (터키 연중회)의 중요한 다섯 가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보기도회를 준비하던 사역자들은 모두 한인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2007년 터키 연중회를 시작으로 이 다섯 가정은 모두 사모님들의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선교사님의 사모님들이 모두 심한 육체적 질병을 겪을 때 그분들을 위한 기도의 간절함이 터키와 이슬람권의 영적 회복을 위한 간절함으로 기도자들에게 전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08년 김진영, 김은경 선교사님은 연합기도운동을 위해 파송 기관이었던 C&MA 해외선교부를 사임하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C&MA가 지원하는 재정적, 전략적 지원이 선교사님 가정이 의지하고 있었던 쿠션이라는 그림을 보여주셨고, 선교사님은 C&MA를 사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8월 이 뜻을 하나님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김진영 선교사님은 터키 동남부 몰 가브리엘 수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3일째 되던 날에 앙카라에 계신 김은경 선교사께서 식도암 3기라는 병원의 진단 결과를 받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랜 금식 중에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앙카라 집으로 돌아온 김진영 선교사님은 아내를 먼저 미국으로 보내 2차 진단을 받게 하고, 앙카라 집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참 어려운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C&MA를 사임하고 연합기도운동에 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내의 암 소식을 들으며 하나님께 집중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2008년 12월에 미국에서 어려운 식도암 수술을 받은 김은경 선교사님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자와 교회들이 함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김은경 선교사님을 위해 엄청난 기도의 힘들이 모이고, 이것이 터키와 이슬람권의 영적 돌파와 회복을 위한 기도의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을 통해 2010년 에베소 연합기도회가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 연합기도회에 세계 교회를 동원하고 재정을 마련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던 김진영 선교사님은 아픈 아내와 늦둥이인 세 살배기 요셉이를 돌보며 가장 중요한 2009년 한 해를 다른 활동을 못 하고 집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 46:10)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의 기간이었습니다.

김진영 선교사님이 미국과 캐나다 디아스포라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들을 방문하고 동원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역하는 교회들과 기도자들에게 김은경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를 하는 가운데 터키와 이슬람권의 영적 돌파와 회복을 위한 에베소 연합기도회에 참석해야겠다는 도전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한국어권, 영어권 그리고 터키 선교사들을 통한 1,200여 명의 기도자들이 참여하고 약 700명의 터키 성도들이 참석하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영적 돌파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김은경 선교사님은 이후에도 수십 번의 시술과 수술을 받으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하며 선교사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극심한 어려움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맛보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2016년 갑바도기아 연합기도회 이후 터키 교회 지도자 중에 몇 분이 다시 한번 기도회로 모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여러 번의 기도와 회의를 거쳐 터키공화국 100주년이 되는 2023년에 2007년에 첫 연합기도회를 했던 버가에서 가까운 아스펜도스 야외대극장에서 열방을 위한 기도회로 모이는 것을 터키 교회와 상의하게 되었고, 터키 교회는 축복의 마음을 가지고 함께 준비할 대화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2020년 8월에 김성간 목사님의 심장병이 심해졌고, 10월에는 김진영 선교사님의 터키 입국 금지 그리고 12월에 김성간 목사님 가정 10명이 코비드 감염 (후에 완치됨)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2월 말에는 제 아내인 이은옥 간사가 심장 절개수술을 받고, 1월 초에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으며 그 후 여러 번에 걸친 수술과 재활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600년 가까이 이슬람의 세계화를 주도한 터키에서 열방을 축복하는 연합기도회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이 영적 돌파를 사탄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SWM 선교회를 향한 공격을 보면 알게 됩니다. 2021년부터 사역을 시작한 김호성 팀장의 남편 김토성 선교사님은 급성 백혈병으로 오래 고생하셨는데, 차도를 보이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사역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또 김은경 선교사님은 체중은 많이 빠졌지만 건강을 잘 유지하고 계시다가 몇 달 전부터 기침과 폐 문제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이 모든 일이 1년 내에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SWM을 향한 사탄의 영적 공격임이 분명합니다. 적의 심장부를 공격하라는 전략대로 터키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의 영적 돌파와 부흥을 위해 집중하는 SWM은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선교단체 중에 하나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SWM 선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슬람권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한 부르심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 중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SWM은 이슬람권의 영적 돌파와 부흥을 위한 하나님의 군대임이 분명합니다. 연합사역은 선교 현장과 SWM 본부와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SWM 선교회 16년 동안 이와 유사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시에 많은 승리의 소식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아멘으로 받게 됩니다.

2014년 터키를 찾아온 예지디 난민들과 시리아 난민들을 돕기 위해 터키 교회가 열방 교회들에 처음으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터키 교회는 열방 교회들에 지원을 잘 요청하지 않습니다. 터키 교회가 넉넉해서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립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입니다. 2014년 7월 열방 교회에 “One Family One Tent” 캠페인을 통해 한 난민 가족 (약 20명)이 한 텐트에 살아갈 수 있도록 $300씩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SWM 선교회는 늘 그렇듯이 재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터키 교회의 동역자로서 함께 이 캠페인을 돕기 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약 3주 동안 5만 달러를 모금하기를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5만 달러를 보내주셨고, 총 30만 달러를 터키 교회에 보내 난민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SWM 선교회의 재정을 먼저 생각했다면 감히 할 수 없었던 현장의 필요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마음으로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재정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SWM 선교회는 터키 교회와 신실하게 동역하며 난민들을 돕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난민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며 예배를 회복하시고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지난 8년을 지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난민들과 터키인들 가운데 교회개척자들을 일으키시고 이들을 통해 자신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SWM 선교회의 교회개척운동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가는 공동체로서 어떤 도전을 받고 계십니까?

김성간 선교사

가장 큰 도전은 유기적인 연합과 진정한 하나됨을 방해하고 공격하는 내부적인 요소와 외부적, 즉 사탄의 공격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자세와 리더의 생각이나 가치만이 최선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품을 수 있는 같은 뜻과 같은 목적과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소수 리더들의 가치와 판단보다 공동체의 모든 지체가 말씀의 가르침 안에서 다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관된 가치와 집행이 또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에 사랑으로 용서하고, 품고, 세워주고, 격려하고, 축복하며,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항상 노력하는 큰 기도 제목입니다.

이세웅 선교사

SWM 본부 사역을 시작하고 또 지금까지 책임지고 온 사역자로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점은 동역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도 사역으로 시작한 SWM은 본부 사역을 외부에 알리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기도하면 되었지 무슨 사역자나 재정이 필요하냐는 것이 많은 성도나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SWM은 이슬람권을 알리고 무슬림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교 현장의 정보와 전략적 기도제목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해서 기도자들과 동역 교회에 알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글을 번역하고 영상을 만드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바로 본부의 사역자들이 해야 할 사역들입니다. 자원봉사자로는 해낼 수 없는 전문적인 연구와 리서치 그리고 수많은 네트워크를 통한 교제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역들을 익숙하게 배우고 훈련받아 본부 사역자로 일하는 데 최소한 2~3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장 선교사가 아닌 비거주 선교사인 본부 사역자들은 동역교회나 기도동역자들에게 그 사역을 이해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후원을 일으켜 자비량 비거주 선교사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자원봉사로는 하기 불가능한 사역이 본부 사역입니다.

어렵게 부르심을 따라 본부 사역자로 일하게 되어도 SWM 선교회가 위치한 남가주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활비를 지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본부 사역자가 어려움 속에서 선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도 부르심을 따라 현재 김진영 선교사님을 포함한 9명의 본부 사역자들이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코퍼레이션 월드에도 관심이 있지만, 비영리 단체에서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우리의 젊은 세대가 기대하는 생활비와 SWM 선교회가 지원할 수 있는 사례비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나 선교회에서 동역자를 인터뷰할 때 이렇게 질문할 때가 많습니다. “현재 얼마를 벌고 계시고 몇 % 정도를 헌신해서 사역하려고 하십니까?” 만약 현재 8만 달러를 벌고 있는 성도가 교회나 선교회에서 일하게 될 때 그 정도의 수입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4만 달러는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자신의 수입에서 50% 정도를 낮춘 액수로 사역자로 헌신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젊은이들이 SWM 선교회에 주신 부르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를 지원할 수 있을까를 지난 16년 동안 고민했습니다.

저는 2005년 5월부터 2008년 5월까지 3년 동안 자원봉사자로서 SWM 선교회 실행총무를 섬겼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최소 40시간 일을 하고 (실제로는 60~70시간이 필요했지만) SWM 선교회를 일주일에 거의 40시간 이상을 섬기면서 3년을 지나다 보니 제 직업에 충실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수입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2008년 6월에 긴급이사회를 요청하고 제가 선교회 실행총무를 사임하는 안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당시 이사님들의 질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교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선교회 사역을 전담하던 사람이 갑자기 관두면 선교회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는 질책이었지요. 이사회에서 저에게 선교회 전임 사역자를 제안하시면서 제 인생을 바꾼 5분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5분 후에 저는 이사회의 권유와 강권에 따라 세상 직업을 관두고 SWM 선교회의 전임 사역자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교회나 선교 단체가 재정적인 준비가 되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젊은 성도들이 겉도는지 모릅니다. 교회나 선교 단체는 자원봉사자로 이들을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향한 부르심을 더 심각하게 여기면서 이들을 격려하고 세워줄 동역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크리스천 기업가들이나 숨은 재정 동역자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WM 선교회가 많은 하나님 나라의 젊은이들이 동역하고 싶은 선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곳 미국이나 한국에서뿐 아니라 터키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 여러 나라에서도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김진영 선교사

하나님 나라와 터키와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SWM이 부르심을 받고 예수 공동체/선교 공동체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쓰임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며 왕의 대로를 수축하는 세 가지의 도전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이슬람권을 향한 무관심, 두려움, 혐오감입니다.
이슬람의 극단적인 테러조직이 일으키는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또 세상의 미디어의 영향으로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감으로 이슬람권 선교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한 수많은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입니다. 그들도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우리의 책임과 의무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과 악한 영들이 이슬람 종교를 이용하여 수많은 무슬림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영적 전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영적 상황을 직시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에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슬람권의 실체와 그 땅과 백성을 사랑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며 그 사명에 동참하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도전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둘째, 추수할 일꾼이 적습니다.
지금은 터키와 이슬람권의 영적 대추수 때입니다. 그러나 추수할 일꾼이 심히 적습니다. 선교 통계로 100만 명 무슬림을 상대로 3명 미만의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세계에서 이슬람권을 향한 젊은 복음전도자/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동시에 현지 언어, 문화, 종교를 이해하는 이슬람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 현지 선교사를 훈련하고 파송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교회들과 선교회가 지혜와 힘을 모아 동역하려고 합니다.

셋째, 다양한 전략과 사역을 위한 연합 선교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전쟁에서 지도자들의 경험을 통한 전략 수립과 계획, 훈련된 병사들의 훈련과 무장, 전쟁 물자는 필수적입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하기 위해 교회 목회자, 선교사, 선교 단체의 경험을 통한 전략과 방법, 훈련된 현지 복음전도자와 교회개척자, 그리고 영적 전쟁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과 물자가 공급되는 연합된 선교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지역 교회들의 연합을 통해 교회의 많은 자원 (인력, 재원, 재능 등)들을 동원하여 현장에서 쓰임을 받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2006년 1월 SWM 선교회가 시작된 이후 터키와 이슬람권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한 연합 기도 사역을 섬긴 지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터키의 영적 돌파를 위해 2007년부터 시작된 연합기도운동은 지금 이 땅과 민족들 가운데 영적 대수추의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충성스러운 주님의 군사로, 또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되고 연합하여 복음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도록 SWM 선교 공동체는 순종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영적 대추수 때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이 중단없이 힘차게 일어날 수 있도록, 터키와 이슬람권을 향한 복음의 불길이 더욱 타오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그 나라가 계속 확장될 수 있도록 SWM 선교 공동체와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차이 자만

SWM 공동체 이야기

참여자: 장영미 교육팀장, 김호성 재정팀장, 김영진 미디어팀장, 민은경 편집팀장,
강우석 CPF팀장, 김은현 콘텐츠팀장, 김은경 사모, 김민디 사모, 손나래 자매 (이하 존칭 생략)

이번 겨울호 매거진에는 예수 공동체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SWM 선교 공동체를 대표하는 리더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공유되고 있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SWM 선교 공동체의 사역자와 사역자 가족들이 SWM 선교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여러분의 교회, 공동체를 떠올리시면서 같이 질문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SWM 공동체에 들어와서 누리는 유익이 있다면 나눠주시겠습니까?

김호성

하나님 안에서 동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 있는 사역이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실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려드려야 할 것은 아름다운 연합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용납해 주는 공동체 안에서 저의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면서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강우석

터키와 중동, 이슬람권의 영적 회복과 부흥이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공유하고 같이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유익입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같이 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합니다. SWM 선교회와 여러 동역자를 통해 재정적 지원과 영적 케어를 받습니다. 또 여러 가정의 상황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큰 위로와 격려를 얻습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또 하나의 가족을 얻은 느낌입니다.

장영미

제가 SWM 공동체에 속하면서 누리는 유익 중 하나는 이곳에서 이슬람권에 관한 앎의 시작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육팀을 섬기고 있지만 콘텐츠팀을 섬길 때 터키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알기 위해 신문과 저널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저의 무슬림에 대한 관심은 거의 0%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이슬람이 종교 이름이고 무슬림이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던 제가 터키를 위한 기도제목을 만들기 위해 터키 관련 영문 기사를 번역하고, 터키 현지에서 보내준 선교사들의 편지 등을 읽고 정리하고, 킹덤스쿨에 참여하면서 어느덧 터키와 이슬람권 관련 내용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SWM 공동체를 섬기면서 누렸던 유익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역동성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SWM 공동체에 왔을 때 이세웅 본부장님께서 SWM 선교회의 사역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역들이 굉장히 복잡해 보이고, 간단하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간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사역들을 지켜보면서 SWM 선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사역들이 뭔가 예측 가능하게 이루어지기보다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때에 따라 다양하게 추진되고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연합기도의 능력을 맛보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드리는 연합기도회 외에 SWM 공동체 안에서 하는 연합기도 속에서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특히 연합 기도를 통해 그분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는 것을 계속적으로 맛보고 있습니다. 특히 SWM 공동체 본부 사역자들 안에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합심으로 연합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응답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길을 수축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곳 SWM 공동체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SWM 공동체를 통해 큰 그림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터키,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으로 사역의 범위가 확장되지만, 더 크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어떻게 움직여 가시는지를 이곳 SWM 공동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SWM 공동체를 통해 저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에 속해 함께 사역하는 것을 통해 제 삶의 구체적인 필요(신분, 물질, 소속감 등)를 채우고 계십니다.

김민디

우리가 위해서 기도하고 섬기는 터키와 중동 지역의 현지 상황과 실시간 정보를 계속 신속하게 알려주시고, 조목조목 기도제목으로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로 동역하고 있는 현지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의 사역 현장을 생생하게 들으며 함께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것이 참 유익하고 감사합니다.

김은경

지난 16년의 SWM 사역을 돌아보면 언제나 주님께서 인도하신 손길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사역의 방향과 내용에 SWM 공동체가 함께 순종하며 나아갈 때 그분께서 땅끝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에 따라 맡겨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동역하는 교회 목사님들과의 만남과 교제, 선교에 헌신하신 여러 동역자님과 만남과 교제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의논하며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SWM 공동체를 통해서 누리는 유익입니다.

김영진

함께하고, 연합하는 일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섬겼던 교회 미디어 사역은 다른 사역과 연합해서 하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미디어 사역 중에 특히 음향에 관한 사역들은 거의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어느 정도 음향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아니면 맡길 수 있는 일들이 적기에 혼자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SWM 공동체에서는 사역팀들 간의 연합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섬기는 SWM의 미디어 사역에서 여러 사역이 연관되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또한 중보기도 사역을 할 수 있어서 유익합니다. 미디어 사역을 하면서 저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기도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SWM 선교회를 섬기면서 선교회의 기도동역자분들을 위해, 선교회의 섬기는 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게 됩니다. 함께 기도하고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면서 기도의 힘과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김은현

기도하는 공동체에 힘이 있다는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이나 큰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제일 먼저 기도를 부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합니다. 그리고 기도제목을 나누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매일 잊지 않고 기도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저희의 헌신을 귀하게 여겨주시고 늘 격려해주시는 기도동역자님들의 섬김에 감동받을 때가 많습니다. 외로운 사역이라 느껴지지 않도록 함께 밀어주고 끌어주는 동역의 관계를 SWM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민은경

저는 청년시절 부르심을 받고 단기 선교 사역을 나갈 만큼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어려운 결혼생활과 자녀 양육의 시간은 제 마음속에 있는 선교적 열정을 무디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삶에 지쳐 겨우 교회생활을 통해 신앙의 끈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시아버지를 통해 기도책자 제작에 대한 제의를 받았었고 편집을 하면서 내가 잊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말아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총무님이셨던 이세웅 본부장님께서 선교회와 함께 사역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을때 그 제의가 제게는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SWM 선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무디어진 사명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사역의 길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 제가 누린 가장 큰 유익인 것 같습니다. 아울러 모든 순간마다 기도로,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가족같은 공동체 안에 저를 있게 하신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손나래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마음의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라는 나의 고백이 흔들리거나 희미해지려 할 때마다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며 때로는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며 저도 같이 힘을 내게 됩니다.

SWM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으로 부르심과 사명에 얼마나 더 가까이 가고 있습니까?

장영미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 자리가 어디인지를 찾아가는 작업이 바로 이곳 SWM 공동체에 있으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이곳 SWM 공동체에 속해 스태프로 섬기면서 이슬람권에 대해 알기 시작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역동성과 연합기도의 능력을 맛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때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것을 맛보게 하시는 이 모든 과정이 저의 개인적인 부르심과 사명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호성

제가 선교사로 사역지에 있을 때, 여러 기술을 가지고 사역지에 나오신 선교사님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미용기술, 원예기술, 기계를 고치는 기술 등 이런 것들은 사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현지 형제자매들에게 직업 훈련을 해줄 수 있어서 그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근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주 귀한 은사였습니다. 그에 비해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고는 그저 오랜 사무직 생활에서 익힌 엑셀, 워드 또는 북키핑이 전부였는데, 사역지에서 그다지 쓸모(?)있는 재주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2021년 1월부터 SWM 선교회에서 본부 사역을 섬기게 되면서 쓸모없다 여겼던 재주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을 느끼면서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갑자기 돌아오게 된 이 미국 땅을 사역지라 여기지 못했던 이유는, 부르심과 사명이라면 왠지 낯설고 머나먼 어디론가 떠나가서 땀 흘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의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곳 SWM 선교회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사용하시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또 다른 부분을 경험하고 동참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저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면서, 여전히 남편의 건강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저와 남편을 어디로 인도하시며, 어떻게 사용하실지에 대해 더욱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강우석

저희 가정은 아직 파송 받지 않았지만, 주님 앞에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SWM 선교회에서 선교를 준비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희 가정에 주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연합입니다. 세대, 문화, 언어 등을 넘어 하나됨을 통해 선교의 완성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SWM 선교회를 통해 연합기도를 위한 아웃리치와 문서사역, 현장 선교사님들과의 파트너십, 현지 사역자와 미국/한국 교회들의 연결, 영어권과의 사역, 다음 세대를 키우는 Holy Wave Makers 등 다양한 연합의 기회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연합이라는 중요하지만 어려운 화두를 실질적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SWM 선교회의 모습을 보며 연합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자기의 유익을 먼저 구하지 않는 리더십의 헌신된 자세를 보며, 오랜 시간 터키와 여러 나라에서 해 온 사역의 노하우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김민디

저의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여러 가지 사역들에 직접 동참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계속 중보기도로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은경

하나님께서 SWM 공동체를 통해 주신 사명이 바로 저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최전선에서 수고하며 충성하시는 분들을 응원하며 기도하며 축복하는 동역을 하며 부르심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손나래

공동체를 통해서 선교 현장의 소식을 가까이서 접하고 선교사님들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선교사로의 부르심을 더 기대하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선교회 안에서 제가 지금 특별히 맡은 역할은 없지만, 우리 가정을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일꾼으로 불러주셨고 실제로 우리가 귀한 사역에 쓰임 받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민은경

원래 저의 달란트는 편집, 디자인이 아니었습니다. 청년시절 찬양사역을 하였고, 찬양사역자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악사역을 위해 떠난 케냐에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소식지 발간이 지금 저를 이 공동체 안에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미술시간을 제일 싫어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이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저는 SWM 선교회에서 현장의 소식들을 담아 발행한 발행물들이 다른 세상 기업들에서 만들어진 그 어떤 것보다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과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수많은 셀럽들이 만들어 내는 것을 따라갈 순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여러 모양으로 이루어지는 귀한 소식을 담은 발행물들이 그냥 평범하게 취급받고 버려지는 것이 저는 참 싫습니다. 아직 실력도 안되고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함께 기도로 동역하시는 중보기도자들에게 저희 SWM 선교회 발행물들이 좀 더 읽기 쉽고, 재미있고, 간직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발행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파수꾼으로 세워진 SWM 선교회와 저에게 주신 사명의 일부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순간에도 이 매거진을 유명 셀럽 편집 디자이너라면 어떻게 편집을 했을까라는 고민을 해봅니다.

김영진

사실 제가 이슬람권에 대한 부르심이 있어서 SWM 선교회를 섬기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제 생각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SWM을 섬기게 되었고, 터키를 비롯해서 이슬람권의 무슬림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SWM 선교회를 통해서 연합사역에 대해 많은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심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이 공동체로 보내신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인 미디어를 통해서 선교 현장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연합기도와 선교 현장에서의 예배의 현장을 기도동역자들께 잘 전달하고 하나되는 역사를 이루어나가고 싶습니다.

김은현

저는 지역 교회를 오랫동안 섬겨왔습니다. 성도 간의 교제와 양육 및 훈련에 힘써 온 시간이 많았는데 정작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인 복음전파에는 더 힘쓰지 못했습니다. 아마 많은 교회 안의 성도들이 느끼고 고민하는 부분일 텐데요, 어떻게 교회와 성도를 섬기면서 복음전파 또는 선교에 힘을 쓸 수 있을까, 또 직접 아웃리치를 가지 못하는 상황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의 고민을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 SWM 선교회 안에서 선교의 큰 그림을 보고 또 작은 부분이나마 도우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가정, 내 교회, 내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더 넓게 제가 가보지 못한 땅들과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 가까이 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잘 모르지만, 제자로서의 부르심은 변하지 않고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선교 현장 가까이에서 제자로 살며 예수님의 마음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SWM이 선교하는 공동체로 더 힘써야 할 부분이나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까?

손나래

새로운 시대에 맞춰 선교회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사역의 문들이 많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각자의 부르심에도 새로운 측면의 도전들을 마주하게 될 텐데 서로 격려하며 이끌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장영미

제가 몇 년간 SWM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그분의 길을 수축하며, 터키와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집중하여 사역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 SWM 공동체를 통해 사역의 지경을 넓혀가시고 놀랍게 일하고 계심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역이 확장되는 것만큼 SWM 공동체에 안에 있는 지체 간의 ‘관계’의 깊이도 더 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기도제목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 안에 서로를 알아갈 시간과 여유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매일 매일의 사역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흐름을 잠시 멈추고 SWM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를 더 깊이 누리는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디

감히 말씀드리자면, 다음 세대와 젊은이들의 적극적이고 자원하는 참여와 동역이 가장 큰 숙제요 도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다음 세대에 기름부으시고, 속히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이키게 역사하시길 계속 기도합니다. SWM 공동체가 이 일을 잘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김은경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쓰임 받는 SWM 공동체가 되기 위해 깨끗한 그릇으로 빌립보서 1:6-11 말씀이 각자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김영진

매주 드려지는 연합기도회의 사역이 잘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SWM 선교회와 함께하시는 기도동역자분들과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선교 현장의 이야기들과 기도제목들을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더 뜨겁게 연합기도회를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도록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더 힘써야 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SWM 선교회의 미디어 콘텐츠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서 각 교회와 기도중보자들께 전해짐으로 이슬람권을 위한 기도의 동역들이 더욱 일어나고 젊은 사역자들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호성

이제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와 세상은 1년에 열두 번은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는 자로서 세상을 닮아가지 않되 그러나 세상에 무지하지도 않아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는 세상을 하나님 앞에 묶을 수 있는 선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소개하며, 함께 할 동역자들을 모아 사역지로 이어줄 수 있는 강력한 선교의 지원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은현

저는 기도 동역자들께 현지의 상황과 기도제목을 알려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소식들을 기도 동역자들께 알려드리지만, 기도 동역자들의 위로와 격려 메시지들을 현장에도 조금 더 자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한 방향의 전달이 아닌, 서로가 기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더 자주 받을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SWM 선교회가 기도 동역자들 안에서는 물론, 현장과의 연결에서 더 활발한 양방향 소통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강우석

SWM 선교회는 연합 네트워크입니다. SWM 선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지도 않으며 독자적인 사역을 하지도 않습니다. SWM 선교회는 여러 교회가 현장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고, 현장의 필요를 교회에 알리는 은혜의 통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 교회에서 사람을 데려와서 SWM 선교회의 헌신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자의 교회를 통해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원합니다. 이런 통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SWM 선교회는 계속 낮아져야 합니다. 이미 다들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사역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 사역이 생기고 지경이 넓어지는데 SWM 선교회가 주님 닮은 겸손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길 원합니다. 여러 선교사님과 교회 공동체들을 낮은 마음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더 큰 역사가 SWM 선교회를 통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민은경

저희 SWM 선교회는 파수꾼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은 잘 살피고, 지키고, 분석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시대 복음의 현장인 이슬람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들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기도동역자들에게 잘 전달하려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정확히 알아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저 앵무새같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따라하여 전달하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 전달할 수 있는 매같은 영적 예리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사역 현장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을 SWM 선교회 모든 지체들이 동일하게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눈높이를 맞추고 한 곳을 바라보며 각자 맡은 사역을 진행하면서 유기적으로 협력해 나간다면 SWM 선교회는 더 많은 사역들을 감당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특별 기고

하비비: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공동체

하이디 탄

Ⅰ. 여정의 시작

윌리와 그의 아내 크리스티

“주님, 저의 남은 삶을 사용해 주십시오!”
하비비 인터내셔널의 설립자이자 CEO인 윌리 탄은 그의 남은 한쪽 눈마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기도를 반복했습니다.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인해 그는 왼쪽 눈을 실명했고, 이제 다른 한쪽 눈의 시력도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의 내면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그는 가족을 어떻게 부양할까요? 그는 남은 한쪽 눈을 잘 돌보라고 권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며칠 후 검안의를 방문했을 때, 윌리는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는 불치의 상태인 황반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치료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나쁜 소식은 이 치료법이 안구에 약을 직접 주사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평생 6주에서 8주 간격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첫 주사를 기다리던 시간은 윌리의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꼈고, 성령께서는 그에게 ‘내 아들아, 너는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윌리의 오른쪽 눈의 시력은 곧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향해 마음으로 부르짖었던 기도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응답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지디 난민 캠프 ⓒ DFID - UK 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2014년 8월, 윌리가 그의 시력을 위해 싸우고 있던 바로 그때, 또 다른 위기가 지구 반대편인 이라크 북부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 국가 (ISIS)는 시리아와 접경 지역인 이라크 니네베 주의 한 구역이자 소수민족인 예지디족이 사는 신자르에서 잔인한 대량 학살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약 1만 명의 남성이 살해되고, 7천 명 이상의 여성이 성노예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일부는 아직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거의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수만 명의 예지디인들이 목숨을 걸고 도망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숨을 곳을 찾아 인근의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혹독한 여름 더위와 먹을 것, 마실 것 부족으로 인해 몇몇은 살아서 산을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시리아로 들어가는 길을 찾은 사람들은 터키와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2015년 초, 윌리의 삶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삶은 풍요로웠습니다. 윌리는 수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수입이 좋은 은행 일을 해왔고,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그의 지역 교회에서 활발하게 봉사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윌리는 터키로부터 몇몇 사람들을 통해 전달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의사들에게 SOS 요청”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윌리는 이러한 전달된 이메일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성령께서 그에게 “가서 그 이메일을 다시 읽어 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환자가 늘어나는 숫자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라고 편지에는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를 도와줄 의사를 보내주세요.”
이 탄원 메일은 예지디 난민들이 유입되는 것을 돕고 있는 터키의 한 작은 이웃 교회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령님은 윌리에게 두 번째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의 의사 친구 데이비드와 이야기해보라.”

이라크 북부 예지디 거주 지역 ⓒ Ezidikhan,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윌리(왼쪽 끝)와 데이비드 박사(오른쪽 끝)가 터키에서 예지디 난민들과 함께 있다

데이비드 유에 박사는 윌리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내과 의사이자 소아과 의사인 그는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여러 나라에 단기 의료 여행을 몇 차례 가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데이비드 박사는 이것이 그들이 반응해야 할 것이라고 동의했습니다. 이메일을 받은 지 열흘 만에, 윌리와 데이비드 박사는 수천 명의 예지디인들과 함께 터키의 난민 캠프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윌리와 데이비드 박사는 그곳에 있는 동안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데이비드 박사는 넘쳐나는 환자들을 진료하였고, 윌리는 보조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이 맡은 일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들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더 많은 의사를 보내주세요”라고 그들은 호소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윌리는 팀을 이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터키로, 그다음에는 터키 국경 바로 건너편에 있는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2017년,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Ⅱ. 왜 '하비비'인가요?

Photo by Richard Cao

많은 사람이 종종 “하비비는 무슨 뜻인가요? 왜 하비비죠?”라고 묻습니다. ‘하비비 (Habibi)’는 중동에서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거리나 상점에서 혹은 지인들 사이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랍어로 ‘나의 사랑하는 사람’ 또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이 사랑으로 인해 움직여야 함을 상기시켜줍니다. 또한 세계의 많은 사람이 다르게 말할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둠 속에서 놀라운 빛으로 구출된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이 거룩하고 분에 넘치는 사랑과 자비는 응답을 요구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4-15)라고 쓴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고후 5:18-20)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해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자신을 그의 제자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사역을 하시는 동안, 우리가 사람들과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분명한 이정표를 주셨습니다.

첫째, 구체화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우리는 사랑이란 권력과 안위를 제쳐 두고 당신이 섬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임을 예수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실제로 보여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보내 예수가 메시아인지 묻게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먼저 절망에 빠진 군중들에게 치유와 온전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눅 7:22-23)

예수님께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함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음을 듣고,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고, 갇힌 자와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되고, 소경이 다시 보게됨 (눅 4:18-19)을 알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우리도 오늘 이 땅에서 예수의 손과 발이 되어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 가장 작은 자를 포함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 가운데 의인이 세상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신 가르침이 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존엄하고 존경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주를 섬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비비 인터내셔널에서 믿는 바입니다. 복음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의 일부로 구체화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가진 사람들인 보이지 않고 소외된 그룹 즉,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 나그네 (난민) (슥 7:10)들에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Ⅲ. 하비비의 꿈과 사역

쿠르디스탄 (쿠르드족의 땅-나라가 없는 민족 중 가장 큰 민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4개국에 걸쳐 있습니다. 2019년 현재 거주 지역 ⓒ CIA,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오늘날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제 추방된 사람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예지디족과 같이 이라크의 다른 지역에서 도망쳤거나 시리아 내전 혹은 치열한 분쟁지역을 피해 탈출한 시리아인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처음 닥치면 즉각적인 긴급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지디족 대량 학살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버려진 건물이나 미완성된 건물, 심지어 동물 사육장에 맨몸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UN과 구호단체 및 지방정부가 이재민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팀은 1차 의료 및 치과 진료를 위한 이동식 진료뿐만 아니라 식품, 가스 및 담요 배포와 같은 구호 활동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난민 이주가 점점 더 장기화되었고, 우리의 전략은 그에 따라 변해야 했습니다. 난민들의 일상적인 많은 도전과 씨름하는 상황 가운데 지역 사회의 재건을 지원하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바람은 중동 전역에 강제 추방된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지역 사회의 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역 사회들과 함께 그들의 몸, 마음, 영혼의 총체적인 건강을 향한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들 안에 엄청난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비비 인터내셔널이 사역하는 캠프 중 한 곳 (Photo by Richard Cao)
1. 신체적 건강

가장 두드러진 필요는 신체적 건강의 문제입니다. 이라크는 양질의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쟁과 박해로 인해 최고 전문가들의 이탈, 교육의 혼란, 그리고 경제 및 기반 시설의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오늘날 의료 서비스는 접근성 부족과 막대한 재정 필요로 인해 특히 강제 이주된 사람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따라서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지역 보건부와 협력하여 의료 격차를 줄이고 현지 역량 구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강제 실향민들은 전문적인 수술을 받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국제기구 및 지역 병원과 협력하여 정형외과 수술, 구개열 수술과 수술 후 재활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술은 신체적 필요를 많이 해결해주는 동시에 개인과 가족에게 훨씬 더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국적 수술팀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Photo by Patrick Khoo)

K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십 대 소녀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시설 이용이 어렵기 때문에 그녀는 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우리는 그녀가 유난히 명석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국제 및 현지 스태프 모두의 격려와 지원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그녀는 영어로 말하고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와 함께 일하는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뇌성마비의 다른 질환들과 여전히 씨름하고 있음에도 훨씬 더 즐거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가족들이 그 변화를 보았습니다.

Y는 예지디 실향민 어린아이입니다. 그는 현재 텐트에서 사는 실향민으로서의 삶만을 알고 있는 세대입니다. 그는 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로 인해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가족은 사업 자금을 대느라 많은 돈을 들였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작년에 Y군은 가장 어리지만 가장 용감한 구개열 환자였습니다. 이번에 그 수술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구개열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입니다! Y군은 훨씬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친한 친구가 생겼고,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K자매와 그녀의 가족

수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고관절의 변위를 교정하기 위해 수술이 필요한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관절 변위를 발생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아기를 매는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수술의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 여성들과 초보 엄마들과 함께 아기를 포대기로 안아주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역 정부의 초청으로 2년 전에 치과를 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강제 이주자들과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진료소의 조력자는 치과 의사인 하산 박사입니다. 그는 IS 대량 학살로 인해 강제로 고향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꿈을 이루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입학하기 가장 어려운 과 중의 하나인 치대에 입학했고, 학년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치과 조무사인 나즈다르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그녀는 대량 학살 때문에 중학교 교육을 마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쿠르디스탄의 한 수용소에 정착한 후에도 그녀의 교육에 대한 의지는 강했고 치과 조무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지역 사회에 봉사하면서 하산 박사와 나즈다르와 같은 총명한 젊은 예지디인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비비 인터내셔널 치과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계속해서 환자들을 치료해 왔습니다 (Photo by Richard Cao)
2. 사회 정서적 건강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라고 그의 서신에 썼습니다. 신체적 건강과 마찬가지로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사회 정서적 건강이 공동체의 번영에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과 훈련, 또는 생계 기회의 형태일 수 있습니다.

1) 교육

일찍부터 우리는 영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매년 우리는 강제 실향민 아이들을 위한 몇 가지 흥미진진한 여름 영어 캠프를 운영합니다. COVID-19 대유행이 닥쳤을 때 학교는 문을 닫았고, 대규모 모임은 온라인 상태가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줌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것이 실향민들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어 및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지속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의 나라를 떠날 수 없는 경우에도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2) 차세대 리더 키우기
청소년들은 협동이 꿈을 실현시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Photo by Richard Cao)

어려운 기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젊은 세대를 길러 그들 자신의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들로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지디 청소년들과 함께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멘토링 세션 중 하나는 자주성과 관련된 것이었고 이것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마을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어요?”라고 청소년 중 한 명이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들이 실행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수많은 실향민 가족들이 미완성된 건물에 정착했기 때문에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없었고, 가족들은 쓰레기를 밖에 버리거나 불태웠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이것이 해로운 유독 가스를 공기 중으로 방출하고 있으며 모두에게 해롭다는 것과 특히 쓰레기 더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더욱 해롭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외 및 현지인 그리고 실향민이 함께하는 여름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Photo by Richard Cao)

우리 청소년들은 그것에 대해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몇 가지 지침에 따라 그들은 마을을 위한 쓰레기 처리와 수거 시스템인 ‘깨끗한 마을 만들기 운동 (Clean Village Initiative)’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들은 표지판을 직접 만들고, 지정된 수거 지점을 설치하고, 쓰레기봉투를 배포하고, 가정들을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들은 마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같은 문제를 가진 다른 마을에도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을 꿈꿉니다.

3) 직업 훈련과 생계 수단
여성들이 뜨개질 물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 대다수의 사람을 괴롭히는 또 다른 공통적이고 즉각적인 어려움은 생계유지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떠나도록 강요받았고, 대학 졸업생들조차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암울한 경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지역 사회가 수입을 올리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기회를 여는 방법을 모색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몇몇 여성들과 함께 뜨개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거지와 캠프에 사는 여성들이 모자, 스카프, 아동복과 같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물건들을 해외에서 판매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수익금은 임금과 재료비로 돌아옵니다. 전통적으로 가정을 돌보고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에서 이 프로젝트는 그들이 집에서 위엄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여성이 스스로 치유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청소년을 위한 원격 교육 및 직업 프로그램도 시범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사용 능력과 다양한 플랫폼 및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초부터 훈련합니다. 동시에 팀워크, 전문성,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멘토링합니다. 우리의 첫 번째 청소년 그룹은 그들의 학습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동기부여가 되어 있었고, 최근 실제 원격작업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데이터 입력 지원, 온라인 고객 서비스 및 여러 회사에 대한 전문 보고서를 제공하는 등 배운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도 이러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배움을 배가할 수 있게 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워드와 엑셀을 아는 사람들을 찾고 있지만, 많은 예지디인들은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거나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으며 도울 수 있습니다.”

컴퓨터 사용 능력,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및 기타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우는 청소년들 (Photo by Richard Cao
3. 재정적 안정

때때로 예상치 못한 충격과 위기가 계속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비비 인터내셔널이 직접 개입하여 지원하기도 합니다. 난민들은 전기 배선이 불량하고 안전 제어가 없는 빽빽한 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캠프에서 일 년에 여러 번 화재가 발생하고 매우 빠르게 번졌습니다. 인명 피해가 적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종종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소중한 물건들을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다른 단체 조직 및 지방 정부와 함께 난방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을 공급하는 등 가족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재정을 모으고 있습니다.

COVID-19 대유행은 재건 노력을 좌절시키고 지역 사회를 다시 위기 상태로 몰아넣은 또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이라크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의료 시스템이 직면했던 초기 과제 중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발생한 개인 보호 장비 (PPE)의 부족이었습니다. 현지 정부의 COVID-19 관리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하비비 인터내셔널은 N95 마스크, 의료 보호복 및 기타 절실히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배송했습니다.

Ⅳ. 여정은 계속됩니다

티그리스 강의 평원을 건너는 중 (Photo by Harrison Cheung)

지금까지의 여정도 놀라웠지만,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강제 추방된 지역 사회에 대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또한 현장에서 봉사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삶의 변화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역에서 살아 계시고 일하십니다. 이곳에 며칠만 머물렀다 가는 분들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실하시고 참되신지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때까지 우리는 함께 일합니다. 중동의 모든 강제 추방된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함을 더 보기 위해 계속 일할 것입니다.

하이디는 하비비 인터내셔널의 운영 이사입니다. 그녀의 일은 지역 및 실향민 커뮤니티와의 현장 관계 구축, 프로그램 및 서비스 조정, 다문화 팀 관리, 강제 이동으로 영향을 받은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파트너십 및 커뮤니케이션이 포함됩니다. 그녀는 심리학 및 인간 발달 학사 학위와 교육학 준석사 과정을 마쳤고, 국제 개발 석사 과정 중입니다. 이전에 싱가포르의 교육 및 사회 개발 분야에서 8년 동안 교육, 공공 정책 수립 및 전략적 계획을 담당했습니다. 그녀는 쿠르드어 방언 중 하나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현재 이라크에 살고 있습니다.

기도

값비싼 선택무슬림 국가의 기독교 회심자들을 위한 10가지 기도

린디 로우리

무슬림 배경 회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고립과 수치를 당하게 되며 이는 재정적인 어려움, 신체적 부상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극단주의 단체들이 난무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배경 회심자라면 더욱) 신앙으로 인해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이란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는 정부가 기독교 박해의 주범입니다. 공무원이나 비밀경찰들은 성도들의 모임과 예배 장소를 발견할 경우 모임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파괴함으로써 성도들이 한마음과 한 뜻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받는 격려를 막아버립니다. 기독교 회심자들은 종종 감정적 어려움을 우리와 나눕니다. 그들은 지치고, 부담스럽고, 화가 나고, 슬프고, 외롭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와 어려움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박해당하고 있는 지체들을 위한 기도제목 10가지를 나눕니다.

가족에게서 제명당하고, 버림받고, 수치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가족에게 버림받고, 학대와 폭행을 당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무슬림 배경 회심자는 종종 친족들에게서 가장 큰 박해를 당하는데, 이는 무슬림의 개종이 가문의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이러한 박해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할 수 있습니다. 더 엄격하고 강경한 이슬람 가정에서의 박해는 이혼이나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30)

친구와 공동체를 잃은 회심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정한 것 때문에 더는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신자들의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마을 전체가 회심자에 등을 돌리고 그와 가족에게 새 신앙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란의 시골 지역에서는 무슬림 배경 회심자들을 ‘불결’하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대우와 억압의 흔적으로 대부분의 회심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비밀로 유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예배와 교제를 위한 공간이 없는 회심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성도들이 공개적으로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릴 장소가 거의 없습니다. 알제리 정부는 15개 이상의 교회를 폐쇄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교회들을 폐쇄할 계획입니다. 이것은 알제리 신자들이 지난 2년 동안 겪어온 체계적 박해 중 일부입니다. 이란에서는 부흥하는 가정교회 운동이 지역 정부의 관심을 계속 받고 있으며, 성도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교회를 급습하고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안전을 위해 고국을 떠나 현재 난민으로 살고 있는 회심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무슬림 배경 회심자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해외로 도피하게 됩니다. 탈출과 이민만이 유일한 옵션일 때가 있습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7)

믿음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는 이들이 평생 충성된 증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슬람교를 떠나는 모든 사람은 배교자이며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지지합니다. 이슬람의 강경한 샤리아 법에는 ‘배교자’는 누구든지 이슬람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거든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누구든지 그의 종교를 바꾸면 그를 죽여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을 근거로 이러한 일을 정당화합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 12:11)

회심자들이 제자도를 구하고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회심자들은 그들의 신앙이 발각될 경우 제명, 추방, 벌금, 체포, 수감 및 죽음을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에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신뢰할 만한 신자들을 만나 제자가 되고, 그들이 또 다른 이들을 제자 삼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극심한 박해가 있는 지역에서는 제자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회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때마다 말씀을 읽고 기억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기독교인에게 가장 위험한 50개국을 선정한 오픈도어 선교회의 기독교 박해국가 목록에 있는 많은 국가에서는 성경을 포함한 기독교 자료를 소유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수감된 이란의 신자들은 한 번에 아주 적은 부분의 말씀만을 구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외워 마음에 소중히 간직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자주 회심자들에게 전달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회심자들의 마음에 이웃 사랑과 복음 전파의 열정이 커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슬람국가 (IS)와 보코하람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주요 박해 전략 중 하나는 성도들에게 공포심을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힘과 확신과 담대함을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이슬람 극단주의의 위협이 있는 지역에 사는 회심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집트 (이슬람 국가)에서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ISIS-K), 케냐 (알샤바브)에서처럼, 이슬람 극단주의는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인에게 가장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만연한 지역에 사는 성도들은 엄청난 시련과 잔인함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회심자들이 확고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인내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누가복음 15장 10절은 죄인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곳 미국의 새 신자들의 어려운 현실과 동일하게 일부 새 신자들의 마음에는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련이 견디기 힘들어지면 그들은 흔들리고 심지어 신앙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회심자들이 복음 안에 보호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자라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 1:11)

케빈의 성경이야기

- 세번째 여정 -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

케빈 권 사역자

아침저녁으로 실피우스 산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다메섹 도상에서 나를 만나주신 주님과 함께 지내온 지난 20여 년의 흔적이 묻혀왔다. 그 소리 가운데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의 탄식 소리도 있었다. 수리아, 길리기아, 갈라디아, 비시디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무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1), 넓고 넓은 로마의 많은 곳을 다녔지만 아직도 예수님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많은 곳이 남아 있었다. 안디옥으로 돌아오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여러 형제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주의 제자들도 천국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상 곳곳으로 흩어져 갔다고 했다. 그들도 내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발바닥은 물집이 잡히고 터지는 과정을 거쳐 딱딱하게 굳은살이 되었을 것이고, 형제라 여기던 유대인들에게는 심한 모욕뿐만 아니라 여러 번 매를 맞기도 했을 것이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자지 못하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는 일을 다반사로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지금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천국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기 위해서 이 세상 곳곳으로 먼 곳까지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문득 이곳 안디옥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세 번째 여정의 시작

아리스다고는 절친한 친구인 세군도와 함께 예수님께서 거니셨던 유대 땅을 돌아보려고 예루살렘에 왔다가 내가 안디옥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이샤랴에서 배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들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디모데를 만나기 위해서 온 것 같았다. 내게는 얼굴만 잠시 보여주는 인사를 하고, 데살로니가에서 친구 같은 선생으로 깊은 정을 나눈 디모데와 함께 계속 지냈다. 그들이 전해준 데살로니가 공동체는 내가 두 번째로 전해준 편지에서 당부한 것과 같이 믿음의 도를 지켜나가는 일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살후 2:13-15)

데살로니가에 쓴 편지에서 나는 그들에게 게으르지 말라고 권면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사는 여러 가지이며 직분도 여러 가지니, 나는 주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에 순종하여 게으르지 않고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파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성령이 예비하시고 허락하신 길로 다니며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여러 성을 방문하고, 세워진 교회들을 위로하며 그들이 올바른 믿음에 이르도록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라, 디도, 디모데뿐만 아니라,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증인 되는 여행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십여 년 동안 나의 여행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안디옥의 교회들은 이번에도 내가 떠나는 길을 주의 말씀으로 축복해 주었다.

여러 명이 동무가 되어 토로스 산을 넘고 길리기아 땅을 지나 곧장 루스드라로 들어갔다. 디모데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처럼 만난다는 설렘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할머니 로이스는 연로했지만 아직은 정정해 보였고, 어머니인 유니게도 반백의 머리가 되어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번이 서로의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스드라의 공동체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방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과 갈등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서로가 교회됨을 잊지 않고 격려하면서 주께서 가르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핍박과 갈등으로 인해 어떤 이들은 생업에 당장 지장이 왔다고 했다. 단순히 예수를 모범과 교훈을 보여준 선생이며 한 명의 선지자로 생각했던 자들에게는 먹고사는 것을 선생과 바꿀 수는 없었기에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도 많다고 했다. 예수를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주님’으로 고백하기 위해서 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사회적인 상황은 어쩌면 그들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루스드라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박해 이후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믿음을 위해 그들이 본래 거주하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에베소로 곧장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어, 이고니온을 들리지 않고 갈라디아를 횡단하여 곧바로 브루기아 지역을 지나가는 길을 택하였다. 3월에서 4월경에 브루기아를 지나게 되면 곳곳에서 빨갛게 물든 양귀비를 쉽게 볼 수 있는데, 나는 들판과 산골짜기에 흐드러진 그 붉은 색감이 너무나 좋다. 브루기아에서 소아시아로 넘어가는 보즈산맥을 넘어서니 에게해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우리 일행들의 땀을 식혀주었다. 로마의 동방 거점도시로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에베소는 피욘산으로 둘러싸여 해안에 가까운 경제구역과 해안에서 피욘 산으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 건설된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도시의 중심 지역을 우르브스(2)라 불렀으며, 성 내부의 외곽 지역에는 도시의 중심부로 출퇴근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과 성 외부에서 농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나누어져 있다. 안디옥이 여전히 동방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지만, 지금 에베소는 안디옥을 능가하는 규모로 도시가 발전하고 있으며 수많은 신전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보니 세상 신들로 인해 눈이 가려져 있는 사람들을 향한 민망함이 밀려왔다.

아볼로 이야기

에베소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에베소 공동체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그들은 아볼로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나고 자란 유대인으로 샴마이 학파에서 공부하고 세례요한의 제자로 있었던 이동 상인(3) 출신이었다. 포로시대 이후에 많은 유대인이 디아스포라가 되어 여기저기에 흩어져 정착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은 토라와 율법을 중심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잘 지켜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 애굽의 북쪽 항구도시로 번성한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유대인들도 꽤나 많았다. 로마의 학교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학문이 발달한 알렉산드리아 출신들은 로마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지성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한 자로 에베소에 와서 많은 사람에게 예수에 관해서 성경이 말하는 것을 풀어 자세히 가르쳤다. 그러나 아직 성령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정중히 아볼로를 집으로 초청하여 몇 날을 교제하면서 고린도에서 그들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와 지금도 주의 제자들을 통해 역사하고 있는 성령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 주었다고 했다. 브리스길라 부부가 내게 말해준 것에 따르면 아볼로는 유대인이었기에 철저하게 유대인의 관점에서 예수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참에 아굴라에게는 유대인으로서 복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브리스길라에게는 로마인으로 유대교의 유일신론에 따른 올바른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고 싶었다. 복음이란 인간이 구원을 얻는 단계나 어떤 체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가 왕이신 예수를 선포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복음을 압축해서 표현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메시아이신 예수가 곧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여 인간을 노예로 부리던 모든 권세에 대항하여 사람을 해방시키는 세상의 창조자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승리의 수단이며 동시에 면류관이기에 십자가가 바로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 즉,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예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선두에 서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끌고 갔던 것이며,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진정한 왕의 승리를 성취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유대인이 오해하는 것이 내가 십자가에 집중하면서 모든 유대 사상을 폐기 처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부활함으로 완전한 복음이 성취되었다고 보고 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도 복음이 아니며, 왕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따라서 구원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없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창조주의 사랑이 피조물의 반역에 승리를 쟁취한 순간으로, 인류와 세계를 노예로 부려온 세력이 단번에 패배를 당한 순간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부활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이 소망했던 방식과는 다르지만, 포로 상태에서의 귀환이, ‘장차 올 시대’가 예수의 부활로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부활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하셨고, 부활로 아담의 죄로 인한 결과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으셨다. 부활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전세계 유일한 하나님의 능력이며, 예수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완전한 사람인 메시아라는 사실과 예수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고 하나님만이 되실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 편에서 보낸 인물이라는 온전한 증거인 것이다.(4)

아볼로는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던 인식과 동일하게 이스라엘의 원대한 역사 속에서 드러났던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예수를 보았을 것이다. 다만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사역에 관해서는 소홀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이름이 이방 신 아폴로에서 유래한 것을 미루어 보아 영적인 역사에 관해서는 아직 눈이 뜨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다소인 사울이었을 때 내 안에 있었던 열심은 성령을 모르는 열심이었기에 그토록 교회를 박해했지만, 그래도 아볼로는 세례 요한을 통해 메시아에 대한 올바른 배움을 가졌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임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볼로는 잠시 에베소에 머물렀다가 아가야 지방으로 건너갔다고 하는데 에베소 공동체의 형제들이 고린도와 아덴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를 추천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주었다고 했다.

에베소와 두란노

에베소 극장

세군도는 며칠 후에 데살로니가로 떠나는 배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우리 일행에게 에베소를 안내해 주었다. 그는 이미 에베소를 와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도시의 웅장함에 그다지 감탄을 자아내지는 않았지만, 불과 수년 안에 수많은 건물이 새롭게 들어서고 있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에베소는 정말 큰 도시다. 지금 한창 증축하고 있는 원형극장에서 항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오른편에 위치한 운동장은 올림픽 경기의 종목들을 직접 훈련할 수 있는 곳이고, 조금 더 뒤편에 있는 대전차 경기장도 굉장한 규모로 건축되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항구에서 원형극장으로 올라오는 길 오른쪽에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굉장한 규모의 광장이 위치한 아고라와 접하고 있는 구역에 두란노(5)라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듣고는 많은 관심이 갔다. 학교의 위치가 원근 각지에서 무역을 위해 몰려드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도시 내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도 며칠에 한 번은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면서 복음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에베소는 모든 잡다한 이방 신들의 집합소와 같은 곳이었지만, 그중에서 에베소의 주신은 아르테미스 (아데미)로 매년 5월이면 에베소인들이 ‘위대한 아르테미스’라고 소리높여 부르는 대규모의 축제가 열린다.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앞세우고 그 주위에는 아르테미스의 유방 숫자와 같은 24명의 흰옷 입은 여사제들이 앞장을 선다. 그리고 자신의 고환을 아르테미스에게 바친 남자 사제들이 마치 호위병처럼 여사제들 옆에 거닐며, 그 뒤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행진에 합류한다. 이 축제는 몇날 며칠 동안 계속되는데 에베소인들 뿐만 아니라 인근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에베소에 몰려들어 에베소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가 되어 버린다. 축제는 에베소 항구에서 24마리 황소의 고환을 잘라 아르테미스 여신상의 목에 걸어주면서 절정에 달하는데 빨간 피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과 여사제들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밤새도록 난잡한 행음을 하는 것이다. 사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이런 행음으로 인해 여사제들은 많은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데 태어난 아이가 남자 아이면 신전 뒤편 바닷가로 향하는 자갈 해변에 내버리는 천인공노할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에베소 사람들과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아르테미스 신상의 모형을 하나씩 사서 집에 놓고는 길흉화복을 빌고 있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어버린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며, 참 우주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신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아르테미스 신전 터 ⓒ FDV,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나는 에베소의 화려함과 극도로 타락한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감정이 차츰 잦아들면서 마음 한 켠에 연민으로 인한 안타까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예수 그리스도를 저들에게 증거하고 생명의 십자가를 말해야만 했다. 먼저 회당에 찾아가 그곳에서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은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라고 했다. 그들도 아볼로와 같이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을 뿐,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세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그들에게 안수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고 방언과 예언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 광경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이 성령에 관해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성경을 풀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당은 너무 협소하고 또한 이방인들이 오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다. 이럴 때 에베소를 누구보다 많이 방문했고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누가가 함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회당에서 가르친 지 약 3개월 지날 무렵 어느 날 내가 세례를 베풀었던 에베소 형제들 중의 한 명이 빌레몬(6)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는 두란노 서원을 후원하고 있는 골로새 지역의 유지라고 했다. 그는 일찍이 유대교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유대교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7)라는 종과 동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관계를 모르기 전에 나는 그들이 친구인 줄 알았다. 오네시모의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빌레몬 집안의 종이었는데, 워낙 처우가 좋고 잘해 주었던 빌레몬 집안의 종으로 만족했는지, 아들에 이어 손자인 오네시모도 종의 인생을 살도록 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비록 주인과 종의 관계에 있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친구로 보일 정도로 친밀한 모습이 엿보였다. 내가 빌레몬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오네시모는 디모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오네시모는 지금 자신의 처지가 나쁘지는 않지만 종의 신분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것에 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에베소 셀시우스 도서관

빌레몬은 골로새에 있을 때에 이미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에베소를 자주 오가면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또한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친구도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 일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교역을 위해서 에베소에 왔다가 사도로 불리는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해서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면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깨끗함과 겸손을 보았고 참된 진리에 관한 열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빌레몬이 두란노 학교를 후원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했다.

“빌레몬 형제, 내가 에베소에 도착한 지 4개월 정도가 지나고 있는데, 형제가 그토록 알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는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수십 만 명의 사람이 이 큰 도시에 살고 있지 않소? 내가 지금 잠시 허락을 얻어 사용하고 있는 이 유대교의 회당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회당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소. 또한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을 비방까지 하는 실정이라오. 그래서 혹시 내가 복음을 말할 수 있도록 두란노 학교의 한 귀퉁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소?”

내 부탁에 빌레몬은 흔쾌히 두란노 학교로 나를 데리고 가서 그곳의 책임자를 만나게 해 주었고 그곳을 이용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때부터 디도와 실라와 나는 번갈아 가며 두란노 학교에서 정기적인 강의를 시작했고,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디모데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복음을 알리는 일에 전심을 다하였다.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각지에서 무역이나 기타 용무로 에베소를 방문하는 사람 중에도 가끔 두란노를 들러서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에 관심을 기울이곤 하였다.

그렇게 두란노 강의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에 골로새 출신으로 빌레몬과는 잘 아는 사이라면서 에바브라(8)라는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20대 중반으로 약간은 왜소한 체구였지만 몸에 걸치고 있는 옷과 말투를 보아서는 부유한 집안에서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그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모와 염색된 옷들을 에베소로 가져다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에바브라는 며칠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두란노 강의에 매일 참석하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곤 했는데, 골로새로 돌아간 지 2개월 만에 다시 에베소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약 1년 이상을 우리와 함께 숙식하면서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에 관해서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디도가 에바브로에게 관심을 갖고 신앙적인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에베소 셀시우스 도서관

짧은 에베소의 겨울이 지나고 에게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해지는 어느 날 저녁에 디모데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며칠 전에 아리스다고가 데살로니가에서 온 사람들과 만났는데 고린도에서 온 몇몇 사람에게 전해 들은 소문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수년전 우리가 고린도에서 증거한 복음으로 그곳에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고 주위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를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일어났으며, 어떤 이는 “나는 바울에게서 배웠다”라고 하고, 또 한동안 고린도에 머물렀던 아볼로에게 배운 자들도 있어 고린도의 여러 공동체가 분열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십자가의 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자들로 인해 도덕적으로 문란해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회 내부의 일을 가지고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 서로 송사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베소에 머문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고 있었고 나는 고린도의 상황을 들으면서 마케도니아 지역과 아가야 지역을 다시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란노에서 가르치는 일도 있고 해서 당장은 떠날 형편이 못 되어 급한 마음에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와있던 에라스도와 함께 고린도로 먼저 갈 것을 부탁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서, 가이오는 더베에서 수개월 전에 에베소로 와서 우리와 함께 겨울을 보냈었다. “디모데야, 너도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교회의 예배가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란다. 예배는 외부인들을 모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세상에 나갈 힘을 얻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받는 것이지!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형식이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9)임을 고린도 공동체에 일러서 우리가 예전에 가르쳤던 것을 생각나게 해 주고 내가 갈 때까지 그들과 함께 지내도록 해라…”

이런 당부를 한 후에 디모데를 떠나보내고 나니 가슴 한쪽이 허전해지는 것 같았다.

에베소에서의 박해

The Preaching of St. Paul at Ephesus (Eustache Le Sueur, 1649)

오랜 시간 에베소에 머물게 되면서 우리 일행에 불만을 품은 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또한 우리가 가르치는 예수님의 이름을 흉내 내는 자들도 종종 있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에베소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형제들이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픈 자들에게 안수하면 회복되는 역사들이 일어나도록 해 주셨는데, 이 소문이 퍼지면서 박수무당들도 귀신들린 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대적하던 유대인 중에 제사장으로 있는 스게와라는 사람에게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린 자들에게 명령하다가 악한 영에 의해 봉변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는 반드시 그 마음에 품은 것으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많은 사람에게 들려지고 때로는 보이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마술로 생계를 유지하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그들이 사용하던 마술책들을 모아서 불살라 버리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5월에 들어서니 에베소는 또다시 아르테미스 축제를 준비하느라 도시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 이 축제를 보고 있지만 참으로 인간 군상들이 허무한 것에 마음을 쏟는 것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매일 밤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부터 항구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행렬이 길게 늘어서는 것은 여전했으나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거리마다 신상의 모형을 만들어서 팔던 수많은 노점상들도 분명히 줄어 들었다. 하루는 아고라 뒤편으로 나 있던 조그만 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저 멀리서 실라가 나를 발견하고서 급하게 뛰어와서는 지금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사람들에게 붙들려 원형극장으로 잡혀 갔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이 왜 그들을 잡아 갔다는 거야?” 나의 질문에 실라는 오늘 대리석 거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데메드리오라 이름하는 은을 세공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번 아르테미스 축제 기간에 너무 장사가 안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서는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장사가 안되는 이유는 바울과 그 무리들이 에베소뿐 아니라 근방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 권유하여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라며 장사가 불황을 겪는 이유가 바울 때문이라고 선동했다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이 아르테미스 여신이 무시를 당했다면서 “메갈레 헤 아르테미스 에베시안 (Megale he Artemis Ephesian),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며 온 도시가 소란해지고, 때마침 두란노에서 나오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사람들 눈에 띄어 잡혀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걱정이 되어 바로 원형극장으로 가고자 했으나, 아굴라가 제자들과 합하여 나를 말리고 로마의 관원인 몇몇 지인들도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먼저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며 원형극장에는 가지 말 것을 권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형극장에 몰려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단순히 군중심리에 의해서 몰려든 것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유대인들도 우상을 금하는 것을 은세공업자들이 알고 있었기에, 유대인들 중에 알렉산더라는 이를 내세워 이번 소요사태는 유대인들과는 상관이 없음을 그 와중에 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리들이 그가 유대인임을 알아보고는 더 크게 “메갈레 헤 아르테미스 에베시안 (Megale he Artemis Ephesian),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한편 에베소의 시장은 갑자기 발생한 이 집회가 무엇인지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게 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자 소식을 기다릴 수만 없어 직접 원형극장을 찾아오게 되었다. 시장이 무대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시장을 알아보고는 조용해졌다. 이에 시장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대충 어떤 일로 인해 이 소요사태가 발생했는지 알고서는 까닭 없이 불법으로 발생한 이 일을 로마인들이 알면 군인들이 올 것이라며 데메드리오와 함께 했던 자들에게도 어떤 고발할 것이 있으면 정식으로 고소를 하라며 무리를 해산시키고 이 사태는 일단락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사람들에게 맞아 찢기고 피를 흘리며 심한 상처를 입었다.

나는 이제 곧 에베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1. 이 지명에 속해 있는 대표적인 도시들의 현재 지명은 다음과 같다. 수리아 (터키, 하타이 Hatay), 길리기아 (터키, 아다나 Adana), 갈라디아 (터키, 앙카라 Ankara), 비시디아 (터키, 얄바치 Yalva ), 브루기아 (터키, 데니즐리 Denizli), 밤빌리아 (터키, 안탈리아 Antalya), 무시아 (터키, 베르가마 Bergama), 마케도니아 (그리스, 데살로니키 Thessaloniki), 아가야 (그리스, 아테네 Athens, 고린도 Corinth)
  2. 제국의 수도인 로마는 도시 구역인 '우르브스 (Urbs)'와 이에 연결된 농촌 지역인 '아게르 로마누스'로 이뤄졌다. '우르브스'에는 도시 평민을 이루는 시민들을 비롯한 신전 안의 신들과 황제, 황제 권력을 나눠 가진 행정관료 및 원로원, 평민회 의원들이 살았다. 에베소를 비롯한 로마제국의 대도시들도 로마와 유사한 형태의 도시 구조로 건설되었다.
  3.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장사와 종교교육을 겸하면서 돌아다니는 유대인 나그네가 등장한다. 물론 이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아볼로가 등장하기 약 10년 전에 활동한 어떤 사람은, 티그리스 강 동편에 있는 아디아베네의 왕가를 유대교로 개종시켰으며 이후의 신앙교육을 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이들은 상당한 지식과 세상 지혜를 겸비하고, 왕족을 비롯해 귀족들까지도 상대했던 독특한 상인이었다. 아볼로는 바로 이런 ‘이동 상인’으로 유대 땅에 왔다가 세례요한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4.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최현만 역, 에클레시아 북스, 2011, 1장에서 5장을 참고
  5. 사도행전 19장 9절에 나오는 두란노를 어떤 곳으로 볼 것인지에 일치된 의견은 없다. 고대 헬라 철학자였던 두란노의 이름을 딴 로마의 학교로 보기도 하고, 당시 에베소에 살았던 두란노라는 사람이 운영한 사립학교라는 설도 있다. 고대의 D Syriac이라는 사본을 보면 바울은 두란노에서 매일 오시부터 십시까지 (현대의 시간으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약 2년 이상 에베소에 머물면서 바울은 그의 뛰어난 학문적 배경으로 실제로 교사의 직업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고, 교사의 일을 하면서 두란노라는 곳을 복음을 증거하는 곳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의 개척에 에베소 두란노 사역이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6.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에 관해서는 자료가 별로 없다. 다만 빌레몬이라는 헬라식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헬라인으로 보고 있으며 골로새 지역에서 종들을 두고 있을 만큼 유력한 자였지만 겸손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빌레몬이 두란노 서원을 후원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적 상상력이다
  7. 빌레몬서에는 오네시모가 노예였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인으로부터 도망쳤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네시모는 나중에 디모데의 순교 이후 에베소의 감독이 되었다. 오네시모의 평가에 대해 가장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편지가 있는데, 안디옥의 감독으로 있던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압송되어 가면서 에베소의 교회에게 쓴 글에 "한없이 자애롭고 온유한 오네시모 감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빌레몬서가 성경의 정경으로 포함된 것은 노예로서 살아온 오네시모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역사하심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8. 에바브라는 골로새서에서 두 번, 빌레몬서에서 한 번 언급되었는데, 그의 배경 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다만 바울을 통해 회심했으며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지역에 예배 공동체를 세우고 가르치는 일을 감당할 정도로 신앙에 열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후에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방문했으며, 그때 골로새에 보내는 편지,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유실되어 찾을 수 없는 라오디게아에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9. 알랜 크라이더, 『초대교회에 길을 묻다』, 홍현민 역, 하늘씨앗, 2019,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