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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도제목

하나님의 나라가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능력으로 임하는 기도
  • 2022년 새해에 거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셔서 주님께서 택한 자들이 생수를 마시게 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속히 이루어지며 예수의 참 복음이 땅끝 미전도종족에게 속히 전파되게 하소서
  •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합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이 소유하고 있는 영혼들, 세상의 권세, 땅, 재물 등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지고 오게 하소서 (마 12:29)
  • 터키와 주위 이슬람 국가들의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의 모든 계략을 파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계속 확장되게 하소서
  • 한국과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복음의 본질과 열정을 회복하고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하지 않고 열방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는 담대한 교회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교회 공동체에서 온전한 예배와 기도가 회복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능력을 체험케 하시며 각자에게 주신 거룩한 소명을 발견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의 현지 교회와 목회자들, 동역자들과 성도들을 위한 기도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복음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법대로 경기하는 자로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충성스러운 일꾼 되게 하소서 (딤후 2:3-5)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현지 사역자와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지속적인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나게 하소서
  • 터키 (PiT), 이집트 (PiE), 쿠르디스탄 (PiK), 그리스 (PiG), 아르메니아 (PiA) 선교사 네트워크를 통해 각자의 은사와 사명에 따라 팀 사역으로 아름다운 동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박해를 피해 터키로 들어오고 있는 아프간 난민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위한 흑해 삼순교회에서 카림 사역자가 섬기는 아프간 난민 교회의 사역이 잘 진행되게 하소서. 또한 아프간 국경 근처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려는 많은 성도와 가정을 보호하시고 도움의 손길이 연결되게 하소서
  • 지난 2년 동안 터키에서 약 70가정 이상의 많은 외국인 선교사가 추방되는 가운데 남아 있는 선교사들이 위축되지 않고 복음전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 무슬림 젊은이들이 알라를 부인하고 무신론자가 되는 영적 상황 가운데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영적 각성이 일어나 참 진리를 듣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교회 개척자 (Church Planter/CP)들을 위한 기도
  • 현재 62유닛의 현지 CP들 (복음전도자/교회개척자/선교사)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사랑의 마음,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개척 사역과 목양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소서
  • 주님께서 친히 모든 CP와 가족들을 늘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날마다 새 힘을 더하소서. 특별히 배우자와 자녀들의 건강 문제, 재정적 압박 등 여러 가지 시련 중에 있는 CP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으로 늘 승리하게 하소서
  • 친척, 사회, 정부의 박해와 압박, 코로나 사태의 어려운 상황 등 주위 형편과 사정에 결코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늘 먼저 구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사역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풍성한 열매들을 허락하소서
  • 이들의 귀한 희생과 섬김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들을 위한 더 많은 중보기도 동역자들과 재정 동역자들을 세워 주소서!
SWM 선교회 및 동역하는 교회들과 개인을 위한 기도
  • Holy Wave Makers (2021.7.1~2022.6.30) 청년선교사 1기 사역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뤄지게 하소서. 터키,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에서 복음전파와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섬길 청년선교사들 (오상준, 유서영, 김영경)을 축복하시고 보호하시고 늘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 감사: 터키의 재단 (VAKIF/바크프)의 정부 승인 과정이 공식적으로 다 이루어지게 하신 우리 주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드립니다. Living Water Foundation 재단을 통해 합법적인 복음전파, 교회개척, 신학훈련, 구제 사역들이 펼쳐지게 하시고, 필요한 다목적 건물을 구하게 하소서
  • 터키 이스탄불 M센터 (허강한/강안나), 조지아 바투미 M센터 (팀/사라), 이라크 두혹 M센터 (패트릭/안순자), 이집트 카이로 M센터 (허드슨/노뵈뵈), 그리스 아테네 M센터 (데이빗/레이첼), 그리고 올해 초부터 함께하는 요르단 암만 M센터 (주요한/손리브가), 현재 총 7개의 M센터를 통해 현지인이 훈련되고 터키와 중동 지역에 교회개척운동이 더 강력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현지 복음전도자 및 교회개척자들의 여러 사역들과 목회를 도울 수 있는 성경 신학 교육 코스가 올해 6월 터키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잘 준비되고 진행되게 하시고,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개척자와 목회자를 훈련하는 귀한 사역이 되게 하소서
  • SWM 선교회에 허락하신 부르심과 사명 (연합기도운동, 교회개척운동, 선교적교회운동)을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운데 겸손하고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소서. 모든 동역자의 가정과 사업과 교회를 축복하시고, 특별히 육신의 연약함 중에 있는 동역자들을 온전히 치유해 주소서
마지막 때 영적 대추수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기도
  • 전 세계적인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는 백성과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 중남미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정치, 사회, 경제의 어려움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중남미 국가와 민족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이 전파되고, 지역 교회들이 선한 영향력을 가져 지역 교회를 통해 사회가 변화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 동남아시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나라와 민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난리와 전쟁의 소문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힘있게 전파되고 교회가 개척되게 하소서
  • 유럽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쇠퇴한 기독교 국가들 가운데 복음주의 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전파 및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의 악한 김정은 정권이 속히 무너지게 하시고, 지하교회 성도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사 그 땅에 복음이 전파되며 참 자유와 공의가 속히 임하게 하소서
  • 미국과 한국을 긍휼히 여기사 교회들이 깨어나고 각성하게 하시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이 되게 하소서
  •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시 122:6) 이방인의 충만한 수 (롬 11:25)가 속히 채워지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속히 성취되게 하소서

2021. Wint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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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한 새 사람

이세웅 금향로 편집인

2022년 봄 호의 기획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한 새 사람”이다. 금향로의 기획 주제는 안경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다. 관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꼭 가져야 할 관점인데 갖지 못한 부분을 함께 조명하면서 성경적 이해의 깊이와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이런 관점은 개인의 삶과 가정에서 그리고 지역교회 공동체에서도 나타나지만 이것이 현장 선교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2021년 가을호 주제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2021년 겨울호 주제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공동체”는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삶과 사역에 적용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 15절에 언급한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는 말씀대로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유대인과 구원 대상인 열방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 화평하게 하는 데에 그 중요한 목적이 있다. 열방의 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온 인류를 단번에 영원히 구원할 희생제물이 되셔서 구원을 이루시고 유대인과 이방인 즉 죄로 하나님과 원수 되고 서로가 원수 되어버린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평케 하셨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 한 새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고전 15:20 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말하고 있다.

마 23:13 에 보면 예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일을 율법 (복음)을 먼저 받은 유대인들이 행한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이 무엇이고 할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에베소서 강해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비극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소명을 망각하고 자기의 특권을 편애로 곡해하여 결국은 이교도를 개나 되는 양 경멸하고 증오하게 되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다음과 같은 윌리엄 바클레이의 기록을 통하는 우리는 이 두 공동체들 간의 소외와 그들 사이에 깊이 뿌리 박힌 적대감을, 특히 유대인 편에서 엿볼 수 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매우 경멸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지옥불의 연료로 삼기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하신다고 말하였다… 심지어는 이방인 산모가 산고로 고통받을 때 그녀를 도와주는 것도 율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다른 이방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들 사이의 장벽은 절대적이었다. 만일 유대인 청년이 아방인 처녀와 결혼하거나 또는 유대인 처녀가 이방인 청년과 결혼하면 그 유대인 청년 또는 처녀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이방인과의 그러한 교제는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The Letters to the Galatian and Ephesians in the Daily Study Bible by William Barclay, The Saint Andrew Press, 1954, 2nd edition, 1958p.125)

이른바 ‘중간의 나누는 담’ (14절) 또는 ‘나누는 적의의 벽’은 이방인들이 겪어야 했던 이중적 소외,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부터의 소외를 나타내주는 말이었다. 그 담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 헤롯이 예루살렘에 세운 장엄한 성전이다. 주목할 만한 성전 건물은 높은 지대에 세워졌다. 이 성전 둘레에는 제사장들의 뜰이 있었다. 이 뜰 동편에 이스라엘의 뜰이, 그리고 그보다 동쪽 더 가서 여인들의 뜰이 있었다. 이 세 뜰 – 제사장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남녀 신도를 위한 – 은 모두 성전과 동일한 높이에 있었다. 열 네 계단을 더 내려가면 다른 벽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 너머가 이방인들의 바깥뜰이었다. 이것은 성전과 그 안뜰 바로 오른쪽에 있는 넓은 뜰이었다. 이방인들은 이 뜰의 어느 쪽에서도 성전을 쳐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전에 접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은 둘러싸인 벽 때문에 성전에서부터 차단되었다. 높이가 1.5m가량으로 돌로 쌓은 장벽이었는데, 곳곳에 헬라어와 라틴어의 경고문이 게제되어 있었다. 그 경고문의 내용은 ‘이 벽을 넘는 자는 기소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벽을 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배경이다. 모든 인간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지만 이방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그리고 이 이중적인 소외보다 더 나쁜 것 (성전의 담은 소외의 상징이었다)은 이 소외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야기되는 실질적인 ‘적개심’ 또는 ‘적대감’,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적개심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적개심이었다.

에베소서 2장의 주요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 적개심을 모두 없애주셨다는 것이다. 비록 그 순서는 역으로 되어 있지만 이 두 가지가 모두 본장의 후반부에서 언급된다. 14절 ‘그는 ….둘로 하나를 만드사 분리시키는 적대감의 담을 허시고’

16절 ‘그는 … 우리 모두를 십자가를 통하여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두 가지 적개심을 파괴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소외가 물러가고 화해가 이룩되며 적개심이 물러가고 평화가 깃드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데 성공하셨다. 새로운 사회란 다름아닌 새로운 인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 새로운 인간의 화합은 이미 바울이 엡 1:10 에서 내다보고 있는 바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통일의 보증이며 전조이다. 엡 2:15을 잘 이해하기 위해 존 스토트의 책을 인용하면서 우리 한국인에게는 조금 생소한 유대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도 바울은 엡 2:13 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 (이방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리고 엡 2:17 에서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 (이방인)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 (유대인)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말하며 헤롯의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난 이미지를 영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터키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을 우리에게 주신 땅으로 부르심을 가진 SWM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 화평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고 그 화평을 경험하기 원한다. 유대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무슬림들을 향한 이해만큼 중요하다.

이번 호에 “한 새 사람”을 주제로 가능한 많은 의견을 듣기 원했지만 유대인 사역을 하는 분들 외에는 한 새 사람에 대해 잘 말하려고 하지 않아서 이번 호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글만 싣게 되었다.

첫 번째 글은 리컨넥팅 미니스트리의 그랜트 베리의 글이다. 이번에 그랜트 베리의 “이스라엘의 회복: 한 새 사람”이라는 글을 실으며 한 새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2017년 독일 헤른후트에서 세계 교회개척 및 선교단체 대표들의 모임이 있었다. SWM 리더들도 초청받아 참석했다. 이 헤른후트는 모라비안들이 모여 살았고 후에 모라비안 선교회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지금도 모라비안 후예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고 그들의 교회와 공동체가 있다. 헤른후트는 전 동독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많은 성도들이 가 볼 수 없던 곳이며 오히려 체코 국경에서 가깝다. 이 모임의 마지막 시간에 그랜트 형제가 나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악의 담을 헐어버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시고 한 새사람을 만드신 것을 열방의 예수 공동체가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도전하며 그의 첫 책 “The ROMANS 911 project”를 소개했다. 이제 6년이 지나 한 새 사람을 열방 교회에 소개하는 로마서 9장, 10장, 11장에 나타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스터디 가이드를 만들고 웹세미나를 통해 그 내용을 가르치고 알리는 일 그리고 기도운동에 전력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2021년 가을호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부르심” 이라는 글을 기고해 주신 최에스라 선교사께서 “그리스도 안의 한 새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귀한 글을 써 주셨다. 십자가에 의해 폐해진 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 한 새 사람의 참된 의미,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은 누구인가, 한 새 사람 안에서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상호관계, 마지막으로 최에스라 선교사는 다음같이 글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듯이 “네 형제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교회에게 묻지 않으실까?” “네가 진정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켰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까? 그럴 때 과연 교회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한 새 사람 안에 지어져 가는 수많은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흰 옷 입고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성도들과 공동체 중에 SWM 선교회가 부르심을 받은 투르크 민족과 이들이 주로 살고 있는 투르크 창에 대해 알아본다. 20년 전에 루이스 부시 목사가 제창한 북위 35/45창에 대한 AD 2000 & Beyond의 보고서를 나누면서 20년 전의 투르크 창과 그 당시 투르크 창에 복음이 들어갈 때의 상황과 지금 중동의 난민 상황과의 차이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 지 함께 생각하려 한다.

봄호에는 세 개의 중요한 칼럼이 실려 있다.

SWM 선교회 국제/미국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영 선교사는 “함께 지어져 가는 역사”라는 제목으로 “예수 안에서의 원리”, “함께의 원리” 그리고 “선한 일을 위하여의 원리”로 우리를 부르신 그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어져가는 예수 공동체의 사명을 일깨운다.

SWM 선교회 미국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손경일 목사는 “우분투”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나눈다.

SWM 파트너 칼럼은 터키의 김밀알/김글로리아 사역자가 “강력한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아프가니스탄 선교의 현 상황과 방향성”이라는 제목으로 이란에서 8년, 터키에서 8년 사역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아프간 영혼들을 위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역자의 귀한 마음을 나눈다. 2021년 8월 15일 미군 철수로 인해 탈레반에게 탈환 당한 아프가니스탄인들 중 그리스도인 성도들은 약 3,000명 정도이다. 이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로 구성된 서로의 믿음을 지지하고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연대 공동체인 한 새 사람 공동체라고 전하고 있다.

봄호의 큰 부분은 2021년 10월~11월에 진행된 터키, 쿠르디스탄, 그리스, 조지아의 교회개 척리서치 트립 (이하 CPRT) 보고서 및 간증으로 꾸며진 특집이다. 특히 터키의 교회개척자네 명의 간증은 그 깊이와 무게가 남다르다. 터키인들은 외부에 자신의 속마음을 깊이 노출시키는 것을 매우 조심하기 때문에 이번에 금향로를 통해 나누는 간증은 귀하고 감사하다. 이 네명의 간증자들은 4차 터키 CPRT 팀들이 만난 분들이다. 터키 동부 아나돌루 권역의 불모지인 카르스에 교회를 개척한 누레틴 형제는 정치인으로 살아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이후에 찾아온 알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통해 핍박당하고 감옥에도 갇히게 된 여정을 통해 하나님과 복음을 알아간 삶을 진솔하게 나누어 준다.

같은 카르스에서 동역하고 있는 아르메니안 사역자 다비트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구원과 원수의 나라인 터키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나누며 주님의 영광을 높이고 있다. 터키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의 수루치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많은 난민들을 섬기고 있는 에크렘 형제는 카르스의 누레틴 형제와 비슷하게 우르파의 군수보좌관으로 정치활동을 했었다. 그는 말라티아 순교사건의 순교자 네자티 형제가 말라티아 지르베출판사에서 보내준 성경을 받고 그 후에 전화로 그에게 많은 신앙의 도움을 받던 중 2007년 4월 네자티 형제의 죽음을 보면서 예수의 길이 얼마나 거룩한 길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예수께 드리며 제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자신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소당하고 감옥에도 갇히게 된 삶을 나눈다. 누레틴은 자녀가 네명이며 에크렘도 네명이지만 하나님께서 다섯째를 주셔서 아이의 출생을 기다리는 행복한 아빠이기도 하다.

흑해지역 오르두의 이란인 교회개척자 베흐루즈는 이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대상을 받은 애니메이션 영화감독이며 제작자이기도 하다. 믿음 때문에 터키에 난민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경의 이야기와 예수 공동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글에서 그가 만든 영상들도 소개하고 있다.

2021 CPRT에 참가한 여러 참가자들의 간증과 짧은 보고서도 나눈다.

POWI 는 Pray on-sight with insight 의 약자이다. 현장을 가서 그 땅에 있을 때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현장기도이다. 이것을 땅밟기 기도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번역은 적절하지 않고 현장기도가 맞는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POWI를 통해 현장에서 기도하며 얻은 영성과 하나님의 임재를 여러 사역자들과 CPRT 팀들이 나누어 주었다. 이번에 방문한 지역은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M센터였다. 앞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장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해서 훈련과 많은 창조적인 사역들이 일어날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들었는데 M센터 디렉터들의 사역나눔도 소개한다.

전체적인 4차 CPRT 보고서는 이번 CPRT 책임자인 김성간 목사가 작성했다. 첫째,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당신의 마지막 영적 대추수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셋째, 마지막 시대 선교는 주님의 교회들과 성도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두혹 M 센터의 패트릭/안순자 디렉터는 북이라크 쿠르디스탄을 통해 시리아 난민들과 쿠르드 인들에 대한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을 꿈꾸며 특히 예지디 난민들에 대한 섬김을 함께 할 동역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 지역을 방문한 김진영 선교사의 간단한 보고서도 싣는다. 그리스 아테네 M 센터의 데이빗, 레이첼 박 디렉터는 현장에서 진행되는 세 가지 사역을 나누면서 동역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첫째 사역은 사진 학교 사역이고 두번째 사역은 난민 필름 페스티벌이며 세번째 사역은 가정교회 개척이다. SWM 본부의 허창도 목사의 아테네 보고서도 싣는다. 이스탄불 M 센터의 허강한, 강안나 디렉터의 “영적인 부흥과 추수를 준비할 때” 보고서는 터키 현장에 긴급하고 중요한 필요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터키에서 일하고 계신지 알려준다.

터키 CPRT 보고서는 인도자인 이세웅 본부장 (편집인^^)이 썼다. 지난 16년의 터키 사역을 돌아보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터키 교회개척의 의미를 돌아보고 성령께서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용하시는지 터키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거의 30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를 읽는 분들에게 성령의 조명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동안 연재해 온 케빈의 성경이야기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는 이번 호는 쉰다.

발행인 칼럼

함께 지어져 가는 역사

김진영 선교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향한 증거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벽을 무너뜨리시고 모든 민족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을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 중요한 세 가지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 안에서'의 원리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1-22)

인류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도전과 문제, 죄와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 과학, 의학, 정치, 경제 안에서 수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지만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세상은 더 추악하고 타락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수많은 조직과 단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서로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류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재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와의 온전한 연합, 화해,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가치관 및 배경은 다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소유,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히브리어 세굴라)는 ‘보석’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기 때문에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그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안에서’ 그의 ‘하나’ 된 백성으로 소중한 존재이며 그의 통치를 받으며 같은 믿음, 같은 소망,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민족과 국가의 다양성을 넘어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며 서로를 향하여 ‘형제’라 부릅니다.

둘째, '함께'의 원리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3:6)

‘함께’의 의미는 평등한 위치에서 똑같은 권한과 권리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다같이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고전 12:13, 갈 3:28) 하나님 나라에서 평등한 시민으로서 똑같은 권한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예수 공동체’가 되어 함께 계속해서 지어져 가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아직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그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는 함께 지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삭의 후손이나 이스마엘의 후손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열방의 모든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따라서 거룩한 부르심과 영광스러운 사명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셋째, '선한 일을 위하여' 원리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

선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이웃을 향한 선한 행위,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을 돕는 것,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것, 다양한 사회봉사,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인 ἀγαθός(아가포스, good)의 뜻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 아름다운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토브)” (창 1: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창조의 결과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상 기준에 따라 사람의 행위와 노력으로 이루는 ‘좋고 선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의 좋고 선한 것을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과 기준에 맞는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말씀 앞부분에 나오는 “전에 예비하사”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전에 예비하사”의 의미는 ‘왕의 여정 가운데 길을 평탄케 하며 왕이 평안하게 갈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 사람을 미리 보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아 다시 오실 왕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며, 그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왕의 자녀로서 다시 오실 왕의 목적과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도움으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러더십 칼럼

우분투

손경일 목사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싱싱하고 달콤한 딸기가 가득 찬 바구니를 놓고 가장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앞다투어 뛰어가리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입 안 가득 과일을 베어 물고 키득거리며 재미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가 “누구든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주려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니?”라고 묻자 아이들은 “우분투(UBUNTU)”라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한 아이가 이렇게 그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어요?”

“우분투”는 아프리카어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동물이라는 단어는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분명 사회적 존재, 즉 혼자 있을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아담 혼자 있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아 하와를 만들어 아담 혼자 살지 않고 공동체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함께’ 라는 단어는 너무도 중요한 단어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만 잘살면 되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가치가 팽배합니다. 얼마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 지하철에서 성폭행이 일어났습니다. 성폭행도 분명 큰일이지만 그 일이 큰 뉴스가 된 이유는 지하철 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행을 당하는 여인을 아무도 돕지 않고 사람들이 영상만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제3국에서 간혹 일어나는 뉴스였는데, 미국이라는 땅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기에 더 큰 이슈가 됐습니다.

이제는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로 모든 것을 보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가치가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들어와, 교회에서도 공동체의 기쁨보다 그저 나 하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지에서도 안타깝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산다 하면서도 모든 민족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공동체의 기쁨보다 나의 일, 나의 사역이 더 앞에 있을 때가 많음을 간혹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를 넘어 우리가 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는 모두가 한 몸 된 지체라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도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나’로 시작하지만 그 복음이 나의 삶에 들어오는 순간 ‘나’에서 ‘우리’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아름다운 관계로 성장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바로 공동체 안에서의 책임 의식입니다. 이 시대는 개인이든 공동체든 ‘제 잘못입니다’ 하기보다 ‘저 사람의 잘못입니다’가 참 많은 세상입니다. 제 잘못보다는 네 탓이 더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시작부터 우리는 죄로 인해 내 탓보다 네 탓을 먼저 말해왔습니다. 창세기의 아담은 죄를 범한 후에 자신을 찾으시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여자로 인해 내가 범죄하였다 하와 탓을 합니다. 하와 또한 하나님께 하나님이 창조하신 뱀의 탓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네 탓이 아닌 내 탓, 즉 책임 질 줄 아는 사람들을 통해 공동체를 세워나가십니다. 멀리 선교지의 일이, 나의 교회의 일이 누구의 책임이기 전에 바로 나의 책임임을 알 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공동체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만나면 ‘나’를 넘어 ‘우리’가 됩니다.

성경의 삭개오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슴에 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음에도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진실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나를 넘어 우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예전에 미국의 한 지역에 큰 홍수가 났었습니다. 많은 뉴스가 나오는 가운데 한 뉴스에서 이 홍수와 관련된 한 에피소드가 소개되었습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물이 한 병에 99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위기를 기회 삼아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사 제목이 “물 한 병에 99불”이었는데 제목만 보고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한 가게는 수재민을 돕기 위해, 생필수품 가격을 많이 낮췄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어려울 때 나를 희생해서라도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같은 홍수인데 사람에 따라 홍수라는 사태를 바라보며 다른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나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게 합니다.

한 책에서 읽은 글이 제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이곳에 옮겨 봅니다.

세계 3대 도시 빈민이 모여 사는 필리핀의 톤도에서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작가님은 햄버거 먹어봤어요?”

“응, 그럼.”

“햄버거는 어떤 맛인가요?”

“궁금하니?”

“정말 궁금해요. 사람이 자기 전에 자꾸 상상하면 상상했던 것들이 꿈에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자기 전에 햄버거를 상상해 보곤 하는데, 꿈에 나오질 않아요. 사실 본 적도 없고, 먹어 본적도 없으니 제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시내로 나가 아이가 넉넉하게 먹을 수 있게 햄버거를 3개 사서 등교한 아이 가방에 몰래 넣어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는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공책과 필기도구를 꺼내기 위해 분명 가방 안을 들여다봤을 테고, 햄버거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텐데. 아니 냄새만 맡아도 눈치챘을 텐데.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가방 안에 햄버거 있는 거 발견하지 못했니?”

“아니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햄버거를 준 분에게 고맙다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냥 먹을 수 있겠어요? 혹시 작가님이 넣어 주신 건가요?”

“응 그래. 알았으니 이제 어서 먹어, 상하기 전에.”

“아, 감사합니다.”

아이는 웃으며 대답을 하더니 주변을 살폈다. 순간 혼자 3개를 모두 먹고 싶은 마음에 주변 친구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아이의 행동에 나는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친구를 경계한 게 아니라, 친구들의 수를 헤아린 거였으니까. 식당에서 칼을 가져온 아이는 햄버거 3개를 15개로 잘라 모여 있던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왜 나누는 거니? 햄버거 먹는 게 소원이었잖아.”

“혼자 먹으면 혼자 행복하잖아요. 이렇게 많은 친구가 있는데, 혼자만 행복하다면 그건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눠 줄 수 없다는 건 불행이니까요. 조금만 먹어도 저는 행복해요. 우리가 모두 함께 먹었으니까요.”

최악의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 아이들은 황폐한 곳에서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지만, 고통 속에서도 밝은 내일을 꿈꾼다. 쓰레기가 가득한 동네에 살지만, 세상을 바꿀 엄청난 꿈을 갖고 산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정말 불행한 건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행복이란, 큰 데 있는 것도 작은 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빈민가 톤도의 아이들은 ‘나눔’과 ‘감사’라는 삶의 원칙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제나 ‘나’를 넘어 ‘우리’로 나아갑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 한 해 나의 삶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선교지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해 ‘우리가 함께하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우분투의 삶이 차고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1.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다』, 김종원, 넥서스BOOKS, 2014

특별 기고

이스라엘의 회복: 한 새 사람이란?

글: 그랜트 베리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마지막 날이 빠르게 다가옴에 따라, 이스라엘을 깨우고 한 새 사람안에서 가족으로 회복되는 신비는 이 땅에 당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획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령께서는 마지막 때의 계획을 우리를 통해 실현하기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의 영적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을 재연결 (Re-connection)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두 그룹은 이러한 계획에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매우 필요하지만, 현재 하나님의 가족은 분열되고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한 새 사람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 새 사람에 관한 성경을 살펴보고, 이스라엘과 교회와 관련된 문제를 탐구하고 재검토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의 주요 목표는 메시아 (그리스도)의 몸을 더 큰 통합과 이 신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하나 되기를 갈망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목적과 계획에 연합하여 싸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요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열방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기록된 에베소서 2:11-2

이것은 신약 성경 전체에서 “한 새 사람”이라는 용어를 언급하는 유일한 본문이기 때문에 논의를 시작하기 좋은 곳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 안에서의 새 언약의 발표를 통해 일어난 일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특별히 이방인 신자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11절은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라고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을 믿음으로 인도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가족으로 결속하기 위해 사역한 목적과 비전을 더 명확히 이해한다면 이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이 메시아/그리스도 안에서 유대 형제들과 이제 완전히 동등함을 확신하게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4-5)

그러므로 율법이 온전히 드러낸 죄악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하므로, 바울은 사역 초기에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하며 견고한 기초를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메시아/그리스도는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의 모든 자녀에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성령을 통한 율법의 충만은 우리가 메시아/그리스도께 굴복할 때 우리 각자에게 내주하시고 이제 함께 결합하여 그분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가게 하십니다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1)

유대인들은 실제로 율법을 따라왔고 이방인들은 메시아/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을 따라왔지만 새 언약의 충만함을 찾기 위해 둘 다 십자가의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7-18)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구원에 관해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어떻게든 구원을 약속하는 이중 언약 신학의 개념을 철폐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결과, 바울은 복음을 통해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 성경에서 가장 분명한 설명을 제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 요점을 보십시오. 그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 배제되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제는 분명히 메시아/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이 이제 이스라엘과 같은 시민이 되었고, 약속의 공유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유대 신자들에게 이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음을 주목하십시오. 이때쯤 그들은 성령께서 어떻게 이방인이 신앙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셨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열방에서 온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포함되었음을 확신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메시아가 모퉁잇돌이 되시고, 사도들과 선지자들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선한 일을 행하도록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유대인의 권리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이스라엘에 접붙여졌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엡 2:20)

에베소서 3:6은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는 바울의 주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마치 이방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것처럼 우리가 접붙여진 바로 그 나무와 분리된 독립체로 보는 것입니까?

예수에 대한 믿음은 실제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되어 이스라엘에 주신 언약을 유업으로 받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독교를 그렇게 이방인으로 간주할까요?

단절

교회는 로마제국의 박해 아래 놀라운 표적과 기사로 인해 크게 번영했지만, 로마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국유화하려고 했을 때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단절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통치 구조와 초점은 리더십을 통해 변경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교도 신앙을 채택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대한 뿌리와 유산에 대한 모든 연결이 끊어지고 결국 상실되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는 분리된 별개의 종교로 확립되었고, 심지어 이제 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약속과 규약은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것을 계승했다고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예수에 대한 믿음은 예수를 통해 이스라엘에 주어진 새 언약 자체에서 성취된 유대교의 진실하고 참된 확장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통해 그 말씀을 열방에 전하여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이 접붙여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한 시민”과 같이 “한 새 사람”의 일치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 두 개의 별개의 그룹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그룹은 예수님이 통치하기 위해 다시 오실 때 궁극적으로 지상에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을 반영할 성령 안에서 하늘의 연합으로 공존합니다. 한 새 사람은 교회가 가르친 것처럼 이러한 구별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지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열방과 그들의 고유성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방인을 이 통합 안에서 유대인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분리될 때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방인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믿음으로 돌아오려면 지금 이것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 세계가 교회를 장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의 감람나무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는 완전히 이방인의 것이 되었고, 유대인의 표현은 전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단절은 하나님께서 열방에서 그의 자녀들을 모으는 데 집중하시는 동안에는 참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가족에게 공평한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맏아들에게 2,000년, 열방에서 온 그의 자녀들에게 2,000년), 이방인의 충만한 시대에 접어들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결과적으로 이 약속의 위반은 우리를 재결합하고 하나로 만들기 위해 복원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유대인인 우리가 접붙여진 가지를 올바로 반영하기 위해 그분의 오심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나머지 이스라엘에 영적인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돕는 가장 위대한 역할을 위해 준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았으니 그가 다시 오시기 전에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롬 11:30-32).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뿌리와 유산에 제대로 다시 연결될 때, 이방인의 조상을 박해하고 죽이는 데 사용되었던 유대 민족의 완전히 이질적인 길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질투로 이끌면서 전도에 훨씬 더 효과적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0-32)

원 가지의 복원

저의 두 번째 책인 “에스겔 세대(The Ezekiel Generation)”는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러진 가지가 다시 나무에 접붙여지고 그분의 맏아들을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언약과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분의 가족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의 이방인 가지에 다시 접붙일 수 없고, 주님의 재림 전에 그들의 자연적인 가지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교회와 이스라엘의 생각과 종말론에 큰 재정립을 요구합니다. 에스겔 세대가 온전히 드러내는 이 역할과 재결합을 지금까지 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 가지가 이미 메시아닉 운동의 형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으며 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의 도움과 지원이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그들이 유대교 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예수의 빛이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역에 다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인 우리 모두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각자의 관점을 끊어야 할 때입니다. 한 새 사람의 충만한 계시는 어느 한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연합하여 함께 거할 때만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족의 재결합을 모든 자녀를 동등하게 사랑하시지만 장자가 회복되기를 갈망하시는 아버지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그분의 마음과 그분의 영이 있어야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에 온전히 참여하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이 시대에 우리를 복잡하게 연결시켜주었고, 그것은 상호 사랑과 존중을 포함합니다.

그랜트 베리는 예수를 믿는 유대교 신자이자 "새 언약 예언 (New Covenant Prophecy)"과 "에스겔 세대 (The Ezekiel Generation)"의 저자입니다. 그는 교회가 이스라엘과 영적으로 다시 연결되는 데 특별히 초점을 두고 리커넥팅 미니스트리 (Reconnecting Ministries)를 설립했으며 이것이 마지막 때 하나님 나라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reconnectingministries.org에서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SWM 선교회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특별 기고

그리스도 안의 한 새 사람

최에스라 선교사

1. 서론

오늘날 신약 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과 열방교회의 관계와 위상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관계에 대해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구약에서부터 이를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대표적으로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모세 때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 한 이스라엘 내의 ‘잡족들’의 이야기 등에서 그 관계가 이미 예언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특히 룻기는 그 전체가 이에 대한 가장 깊고 풍부한 예표로 가득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리스도 이후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두 부분이 바로 에베소서 2:11-3:6의 ‘한 새사람’에 대한 부분과 로마서 11장, 특히 감람나무의 접붙임의 비유에 관한 부분이다.

2. 십자가에 의해 폐해진 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4-15)

에베소서 2:14-15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막힌 담,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폐해졌으며, 이는 이 둘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만들어 먼저 서로 화평하게 하고 함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려 함이라고 천명한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한 새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에 의해서 폐해진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폐해진 율법이 구약의 율법 체계 전체, 곧 토라 전체를 의미하지 않음은 자명하다. 이는 “내가 율법 (토라)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 즉 ‘온전히 성취’하러 왔으며 토라의 일점일획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다 이루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마 5:17-18)이나 “율법 (토라)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고 (롬 7:12) 신령하다” 라는 (롬 7:14) 바울의 선언에 비추어 봐도 분명하다.

따라서 그 ‘계명의 율법’은 그것이 폐해지기 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막힌 담이 되어 서로를 원수 관계로 만든 토라 내에서의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엘 블루멘탈은 십자가에 의해 폐해진 이 ‘계명의 율법’이 바로 유대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을 규정한 토라 안의 ‘할례, 음식법 (코셔), 정결법, 안식일, 절기’ 준수에 관한 규정이라 해석한다. 반면 데이비드 스턴은 토라의 규정은 십자가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았으므로 폐해진 것은 그러한 규정들이 아니라 그 규정들로 인해 야기된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적대감’일 뿐이라 주장한다. 나는 아리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온 인류 구원을 위해 한 민족을 사용하시려 온 열방 가운데 가장 수가 작은 한 나라를 그의 영광을 위해 택하셨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이다. 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처음부터 줄기차게 요구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온갖 이교적 우상숭배에 빠진 열방들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별됨’ 혹은 ‘거룩함’을 위해 시내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 토라이며, 거기에는 십계명과 같은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적 요구를 반영하는 보편적 계명들은 물론, 장차 올 그리스도를 그림자로서 예표하는 성전, 제사, 제사장 규례들, 그리고 한 민족으로서 유대인들을 이방과 구별하기 위한 ‘할례, 음식법(코셔), 정결법, 제칠일 안식일, 절기’ 준수에 관한 규정 등 다양한 성격의 규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토라의 이러한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규정들, 이방과의 구별을 위한 규정들을 그들 개인이나 집단의 성결과 지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속의 근원으로까지 여겨, 이를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에 대해 영적, 도덕적 우월감과 교만함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이는 이방인들에 대한 경시와 경멸, 이에 의해 반작용적으로 촉발된 이방인들의 적대감과 어우러져 마침내 오랫동안 둘을 원수 관계로 만든 ‘중간에 막힌 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규례들은 죄 문제 해결이나 성결, 구속과는 무관하고 무익한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결과 공의, 죄 사함, 구속의 모든 근원으로서, 구원에 있어서의 ‘진정한 유일한 벽’ (메시아를 거부하는 이들에게)이 되시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폐한 것은 정확히, 그동안 이방인들을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오해’되어 그들을 가로막는 ‘담’의 역할을 해 온 이러한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율법 규례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규례들의 ‘잘못된 적용과 사용’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율법 규례들이 십자가에 의해 폐해졌다는 것이 십자가에 의해 그 효용성과 의미가 다 사라지고 폐해진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폐해진 것은 이방인들이 구속받은 권속으로서 하나님께로 오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해오던 규례적 측면이다. 또한 유대인들에 있어서는 그러한 규례의 준수를 스스로의 성결과 구속의 원천 혹은 조건으로 여겼던 측면이 폐해진 것이다. 그러한 규례들이 폐해졌다는 것이 한 민족으로서 유대인들 혹은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 자체가 십자가 이후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는 뜻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여기는 것은 대체신학적 사고방식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 정체성과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은 여전히 유지되며 그것은 마치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권리와 축복을 같이 누리지만 여전히 그 역할과 기능이 구별되는 존재로서 각각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롬 11:29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부르심과 주어진 은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 말씀은 그저 유대인이라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개인적 구원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차원의 말이 결코 아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에 대한 부르심, 즉 시내산에서 있었던 국가적, 민족적 선택됨과 그 민족에 주어진 민족적 사명, 그리고 이를 위해 그 민족에게 주어진 여러 ‘유익들’ (롬 3:1-2)은 초림으로 오신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배역 사건에도 불구하고 결코 ‘취소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로마서 11장 전체가 그 이유에 대한 바울의 성경적, 신학적 논증이다. 그 민족적 부르심 안에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으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토라의 규례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폐해졌다는 의미는 그 규례들이 그동안 하나님께 오는 이방인들을 막아온 하나의 담으로써 그 힘과 의미를 잃었다는 의미일 뿐,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규례로써의 목적과 효용까지 잃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 이러한 진리를 거듭 확인해 준다. 그 결정은 그러한 유대인 정체성 규례들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방인들에게 결코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을 뿐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그러한 규례를 계속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의나 반대도 없었던 결정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데는 “헬라인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골 3:11, 갈 3:28)라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러한 유대인의 정체성 규례들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설파한 반면, 본인 스스로는 안식일, 절기, 할례 등을 포함한 모든 유대적 정체성 규례들을 철저히 지키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바울의 모습은 언뜻 역설 혹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비록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규례들의 모든 속박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유대인들의 정체성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 자신을 그 유대인의 정체성의 부르심에 한 사람의 유대인으로서 반응하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에 속한 영역이었으며 또한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전 7:18)의 말에 담긴 뜻이었다.

3. '한 새 사람'의 참된 의미

에베소서 2:15의 ‘한 새 사람’을 대체신학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대체신학은 십자가에 의해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폐해진 것이 마치 구약의 율법 전체가 폐해진 것으로 여기며 (율법 폐기론), ‘한 새 사람’이라는 표현 역시 구약의 율법이 은혜의 복음으로 대체됨으로써 이제는 단순히 구약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 없이 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에 참여하고 ‘하나의 교회’에 속하게 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긴다.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이제는 둘 사이의 정체성의 구별과 구분조차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필요나 의미가 없는 어떤 제3의 실체 (교회)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한 새 사람’이란 표현이 그러한 ‘보편구원’의 의미를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 새 사람’을 유대인, 이방인 구분 없이 개인적 ‘보편구원’의 표현이나 그 결과인 ‘그리스도인’과 동의어 정도로 보는 대체신학적 인식에서 결여된 부분은 ‘두 부분’인데 그것은 각 그룹의 ‘집단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다.

먼저, 집단성에 대한 인식으로 대체신학에서는 ‘한 새 사람’이라는 표현 가운데 담긴 ‘유대인’과 ‘이방인’, 각각의 집단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다룰 때 모든 것을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다루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물론 각 개인의 영혼 구원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이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고 만나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온 인류에 대해 개인적 차원에서만 구속사를 진행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0장에서 말하듯 온 인류가 70개 민족의 열방으로 나누어진 후 그 열방을 구속하시기 위해 국가와 민족적 차원에서 일하시는 측면이 있음을 분명히 가르친다. 그런 열방 구원의 목적으로 택하신 한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천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에서도, 그 언약의 성취로써 새 언약 하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선교 대위임령에서도, 언급된 하나님의 선교 대상은 민족 혹은 족속 단위였다. 그러나 대체신학적 인식에서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이러한 국가적 민족적 구분, 또한 한 국가,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은 오직 구약 시대에 한정될 뿐, 그리스도 이후로는 모든 것이 국가, 민족을 초월한 개인적 차원의 구속으로 바뀐 것으로 상정한다.

‘한 새 사람’에 대한 인식에서도 그 ‘한 새 사람’을 이루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구분은 각각 구약적 배경에서 서로 다른 출신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일 뿐, 하나의 집단으로서, 민족으로서의 의미나 목적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 안에서는 상실된다. 한 마디로 이러한 이해는 ‘한 새 사람’의 비전을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안의 모든 형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국가와 민족, 인종, 문화를 초월해 하나이며 또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차원의 말 정도로 축소시키고 마는 것이다.

대체신학에서 또한 결여된 것이 바로 ‘정체성’ 인식이다. 대체신학에서는 십자가 이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유대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여러 차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그 둘’을 거듭 언급한 것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달리 십자가 이후 본격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들어온 것을 나타내기 위한, 즉 두 집단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한 순서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구분일 뿐이다. 결국 바울은 그 둘이 ‘한 새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을 통해 이제 더 이상 둘을 구별할 필요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과 국가, 민족을 초월한 하나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유대인들은 십자가 이후 이스라엘이라는 이방 민족과 구별된 하나의 민족 혹은 국가로서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향한 그 모든 목적과 약속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의해 이미 다 성취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남아 있는 목적이나 의미가 없게 되며, 오직 모든 예수 믿는 이들의 우주적 공동체, ‘교회’만이 구속사적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된다. 그 교회는 이제 ‘새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 혹은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과 축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대체신학의 인식이다.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자들 역시 단지 이 우주적 교회의 일원일 뿐이며, 그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과는 무관한 것 혹은 대적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역사적인 아이러니는 사도행전 15장에서 보듯이 당시 유대인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장애가 되던 유대인 정체성에 관한 규례들을 그들에 대해 폐지해 줌으로써 이방인들의 문화와 삶,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해 준 반면, 열방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너희는 유대인이거나 그리스도인이거나 둘 중 하나만 될 수 있다’라며 모든 유대적 전통과 삶, 정체성을 버릴 것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부르심이 신약 시대, 그리스도 이후에도 유지될 것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구별은 유지되며,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각각을 그분의 나라에서 고유하고 독특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계속되는 것이다. 특별히 신약성경은 장차, 특히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 특별히 민족적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중요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과 역할이 남아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신구약 전체가 거듭 확언하는 이스라엘 나라의 종말적 회복이 있다. 이스라엘에는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롬 11:26) 그들에게 민족적으로 약속된 새 언약 (렘 31:31-34)의 성취가 하나님의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남아 있다. 이를 위해 이방인의 수가 차게 되는, ‘열방교회의 충만’함이 필요하고 (롬 11:25) 또 이스라엘의 회복은 더욱 큰 충만함과 부요함을 이방에 가져오게 된다 (롬 11:12). 또 마지막 날 약속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의 이방인들 (열방교회)은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해야 하는 (롬 11:11) 태생적, 존재론적 사명을 지닌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들의 구약적 배경과 출신의 구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 성령 안에서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와 신분,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보편적 개인 구원의 차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서로 구별되는 ‘집단으로서의’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서로를 향한 구속사적 역할과 사명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열방교회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각각을 부르신 구속사 안에서의 소명과 역할이 구별됨을 상호 인정하면서 서로의 경계선을 존중하고, 그 구별됨이 서로에게 축복이 되고 각각의 소명과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며 기도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 새 사람’의 비전에 담긴 뜻이다.

4.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들은 누구인가?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고백하고 따르는 한편, 유대인 혹은 이스라엘로서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이를 여전히 존중하고 있는 유대인들, 즉 ‘메시아닉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구약에서부터 성경이 거듭 언급해 온 이스라엘 민족 내의 참 언약의 계보, ‘이스라엘의 남은 자’ 혹은 ‘참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는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소수에 머물렀던 바울이 에베소서를 기록했던 초대교회 당시나 거의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없었던 지난 이천 년간의 교회 시대, 그리고 구속사의 완성인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강조했듯이 ‘한 새 사람’ 안에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개개인들의 합이라는 차원을 떠나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닌 한 민족 혹은 국가로서 이방인들과 ‘한 새 사람’을 이루어야 할 집단적 차원이 내포되어 있다. ‘한 새 사람’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러한 차원의 이해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다면 ‘한 새 사람’은 결국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예수 안에서 똑같이 구원받는다는 뜻이라는 식의 보편 구원론적 이해로 축소, 귀결되어 버릴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초대교회 때나 오랜 교회 시대 동안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들을 한 국가적, 민족적 인식의 틀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유대인들,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항상 소수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한 새 사람’의 의미가 그저 개인적 ‘보편 구원론’적 의미로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새 사람’의 비전은 고정된 비전이 아니라 역동적이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남은자’가 항상 소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는 성령의 역사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 (롬 11:26).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반드시 사실이나 (롬 9:27), 그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거의 ‘온 이스라엘 민족’과 같게 될 날을 성경은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적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과 구원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엡 2:15의 ‘한 새 사람’의 기존의 개인 구원의 ‘보편성’ 차원의 이해에 또 다른 차원의 이해를 더하게 만든다.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늘 그랬듯이 소수의 믿는 유대인들, 남은 자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한 국가, 한 민족적 차원의 집단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적 혹은 국가적으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정체성을 지닌 ‘열방교회’가 오랫동안 (오늘날까지도) 서로를 향한 오해와 편견, 적대감 즉 ‘원수 관계’를 마침내 온전히 극복하고 서로를 구별되는 역할과 정체성, 사명을 지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서로 받아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한 몸을 이룰 것이다. 이것이 ‘한 새 사람’의 온전한 궁극적 성취이다.

따라서 이방인들로서 우리는 함께 ‘한 새 사람’을 이루는 유대인들을 생각할 때 그저 그들이 과거 혹은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소수의 유대인 혹은 남은 자라는 인식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구속사, 신구약 시대 내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었고 지금도 있는 이스라엘, 장차 그 ‘부분적 완악함’이 거두어져 마침내 온 민족이 구원을 이루게 될 그 이스라엘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장차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할 국가적, 민족적 이스라엘’과 우리 ‘열방교회’가 진정 하나가 될 그 날을 향해 지금도 ‘한 새 사람’을 계속, 그리고 더 확장해 이루어가야 할 것으로 여겨야 한다. 한 마디로 성경이 말하는 ‘한 새 사람’의 비전은, 단순히 구원의 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넓어지게 되었다는 식의 이미 십자가로 성취된 사실이라는 ‘정적인’ 이해가 아닌, 지금도 궁극적 완성과 성취를 향하여 꾸준히 이루어져 가고 또 더욱 이루어져야 할 ‘역동적’ 비전이다.

5. '한 새 사람' 안에서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상호관계

앞에서 살폈듯이 ‘한 새 사람’의 참된 의미가 더 이상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 어떤 ‘제3의 존재’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각각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구별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면, ‘한 새 사람’ 안에서 둘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서로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각각의 개별성과 정체성, 독자적 존재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대체신학적 사고에서는 이러한 상호 관계를 묻거나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같이 그저 하나의 존재, ‘기독교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각각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한 기반에서 둘 사이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상호관계는 에베소서 2-3장과 로마서 11장에서 가장 잘 규정하고 있다.

로마서 11장은 ‘접붙임의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는 관계는 이미 ‘한 새 사람’ 안에 있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관계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던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즉 ‘한 새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그 과정과 메커니즘에 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의 접붙임의 비유는 ‘한 새 사람’ 안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로마서 11장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원래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붙여짐으로써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접붙여진 돌감람나무 가지는 참감람나무의 뿌리로부터 ‘진액’을 참감람나무의 원가지와 함께 받아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여기서 뿌리는 이스라엘에 처음부터 주어진 모든 언약과 축복의 원뿌리인 아브라함의 언약 혹은 그 언약의 궁극적 성취인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축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이요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으나 (엡 2:1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할 때 참감람나무의 원가지, 즉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접붙여짐으로써 비로소 그리스도와 새 언약이라는 참감람나무의 뿌리에 연결되고 그로부터 비롯된 모든 언약적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한 새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된 비밀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방인들로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한 가지 원 참감람나무 가지에서 꺾여진 가지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롬 11:20) 우리 이방인들을 접붙이기 위해 (롬 11:19), 즉 이방 구원을 위해 (롬 11:11), 그들의 눈과 귀가 가리어진 (롬 11:8)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으로 하면 저희 (꺾여진 가지들, 믿지 않는 유대인들)가 너희 (접붙여진 가지들, 믿는 이방인들)를 인하여 원수된 자” (롬 11:28)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알아야 할 사실은 그 꺾여진 가지들조차 영원히 그대로 꺾여진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께서 그 불신앙을 되돌이키사 다시 참감람 나무에 되접붙임 받게 될 날이 온다는 것이다. (롬 11:23-24) 그때가 바로 26절의 ‘온 이스라엘’이 민족적 구원을 받게 되는 때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한 새 사람’ 안에 들어온 ‘믿는 유대인들’만 ‘한 새 사람’의 파트너로 여길 것이 아니라 아직 믿지 않는 유대인들, 꺾여진 가지들에 대해서도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롬 11:20-22) 긍휼한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빚진 마음을 가지고 대하며 그들의 ‘되접붙임’을 위해, 그들도 궁극적으로 ‘한 새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될 파트너가 되도록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

로마서 11장의 ‘접붙임’의 비유에서는 이미 접붙여진 돌감람나무 가지와 원가지 사이의 참 감람나무 내에서의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다. 로마서 11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이 함께 같은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아 함께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까지이다. 그렇다면 접붙임으로 인해 둘 사이의 구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일까? 앞에서 살펴보았듯 성경의 가르침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구별된 정체성을 가지며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과 계획 안에서 끝까지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접붙임의 비유에서 접붙여진 돌감람나무 가지와 원가지가 여전히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별은 ‘기능적’ 구별이며 신분이나 특권, 권리나 축복에서의 차별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둘 다 같은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아 함께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새 사람’ 안에서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 혹은 참감람나무 안에서 접붙여진 돌감람나무 가지와 원가지 사이의 구별된 위상과 관계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에베소서가 가장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에베소서 3:4-6에서 바울은 이 관계를 가리켜 성령이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비밀을 나타내기 위해 바울은 세 헬라 합성어를 사용하는데, 싱클리로노마 (공동 상속자들), 시소마 (공동의 몸), 신메토키 (공동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세 단어 전부 접두사 ‘syn’으로 시작하는데 영어 단어 ‘synthesize’, ‘synergy’ 등이 여기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한 새 사람’ 내에서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진정한 위상 관계이다. 그들은 각각의 정체성이 의미를 잃은 그저 하나의 존재로 뭉그러져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과 기업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컫는 하나님의 약속과 기업은 바로 그리스도 안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공통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축복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참 ‘육적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 그리고 그리스도 안의 이방인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으로서 (갈 3:7-9), 그 언약의 축복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축복을 나타내는 참감람나무의 뿌리에서 같이 진액을 받는 것과 같은 그림이다. 엡 3:16이 말하는 이러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상호관계를 가리켜 아셀 인트레이터는 한 마디로 ‘언약의 동반자 (Covenantal Partner)’ 관계라 부른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 각각의 독립적 실체가 구분되면서도 하나님 안에서의 모든 권리와 축복에 있어서도 동등하게 참여하고 누리는 관계,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한 새 사람’ 내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정확한 관계인 것이다.

6. 마치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주신 ‘형제 사랑’의 계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이루는 차원의 의미가 있다. 원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로 부름 받았으며, 초대교회 당시의 한 형제로서 동거하고 서로 화평을 누렸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불행하게도 초대교회 때의 이러한 잠시의 동거와 평화는 로마에 의한 기독교 공인, 교회 내 반유대주의의 심화로 인해 둘 사이의 교량이 될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사라지면서 급속히 깨어져 나갔다. 신학적으로도 기독교 내의 유대적 뿌리가 단절됨에 따라 둘 사이의 관계는 점점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리스도 이전, 둘 사이를 원수 관계로 만들었던 중간의 담, ‘계명의 율법’이 십자가로 폐해졌다는 에베소서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이후 근 이천 년간 교회에 의한 극심한 유대인 박해의 불행한 역사는 둘 사이의 관계를 다시 원수로 만든 새로운 ‘막힌 담’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약속대로 마지막 날 민족적 회복과 구원을 이룬다 한들 만약 서로 원수처럼 지내온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화해를 이루지 못한 채 하나님의 구속사가 끝난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인간은 더 이상 이 두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써 마침내 우리로 이 두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여셨다. 하나님 사랑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간의 모든 불화와 원수 관계가 녹아지고 해소됨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형제 사랑을 이루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일진대, 불행하게도 한 형제로 부르심을 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지금까지 거의 원수처럼 지내온 것이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은 바로 구속사 안에서 한 형제로서 그리고 언약의 동반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회복 없이 열방교회가 장차 그리스도 앞에서 선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듯이 “네 형제,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교회에 묻지 않으실까? “네가 진정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켰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까? 그럴 때 과연 교회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에 대한 짧은 간증을 소개한다. 몇 년 전 세계 각지에서 온 한인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방문 중, 한 예수 믿는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우리 그룹 중 이스라엘에는 처음 온 한 자매가 있었는데, 예배 도중 그녀는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예배 가운데 한 손에는 한인 예배자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유대인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계셨는데 너무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보는’ 은사를 가진 그 자매는 전에도 종종 환상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토록 기뻐하시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환상 자체를 믿지 않거나 별 신빙성이나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엡 2:15의 한 새 사람의 말씀과 놀랍게 부합되지 않는가? 처음부터 언약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이 마침내 민족적인 구원을 받아 새 언약 안에서 진정한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던 열방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고유한 문화와 사명, 독특성을 인정하고 또 각자 받은 소명을 이루도록 서로 축복하며 연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말하는 ‘한 새 사람’의 비전이자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꿈이라고 믿는다.

이 글은 SWM 선교회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특별 기고

35/45 투르크 창 무슬림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글: AD 2000 & beyond movement

아래의 두 개의 글은 20년 전 AD 2000 & beyond movement가 작성한 것이다. 금향로 봄호에서 이 오래된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투르크 창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991년 러시아가 무너지면서 소련연방에 속해 있는 수많은 나라가 독립국가를 이루었는데,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그중에 포함된다. 가장 복음에 저항하는 민족이라 불리는 투르크 민족을 좀 더 이해하고, 20년 전에 보았던 투르크 창과 지금 우리가 보는 투르크 창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비교해 보기를 원한다. 둘째는, 지금은 아랍의 봄 이후 독재자들에게 저항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의 난민들이 20년 전 소련 연방의 붕괴 때처럼 움직이고 있다. 20년 전의 이러한 변화는 수많은 민족들에게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제공했고, 지금은 많은 박해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하나님의 교회가 그 민족 가운데 세워진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확장되고 있다. 20년 전의 이 큰 변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것이 이 두 글을 싣는 목적이다.
- 금향로 편집부 -

투르크 창: 북위 35도와 45도 사이의 지역

역사를 만든 거대한 도로 실크로드는 현대 투르크 세계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띠를 그린다. 전 세계 1억 4,500만 명 이상의 투르크어 사용자 중 거의 90%가 북위 35도와 45도 사이 실크로드를 따라 살고 있다. 타타르족의 대부분은 35/45 창 밖에 살고 있지만, 타타르족은 투르크 세계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 투르크어 사용자는 터키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북서부까지 뻗어 있는 국가들의 국민 과반수를 차지한다.

그들은 크게 네 가지 공통점을 공유한다.

  • 공통의 고향인 실크로드
  • 공통의 투르크 문화
  • 공통의 유산, 중앙아시아의 끓는 가마솥 (The boiling cauldron of Central Asia)
  • 공통의 비전, 그리스도를 위한 35/45 투르크 창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하고 중앙아시아로 알려진 이 땅은 한때 투르케스탄이라 불렸다. 실크로드를 여행한 최초의 유럽인 마르코 폴로는 그것을 대터키 (Greater Turkey) 지역이라고 불렀다. 러시아와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둘로 갈라놓으면서 서부는 러시아령 투르케스탄이 되었고, 동부는 중국령 투르케스탄이 되었다. 최근까지 터키와 동부 투르케스탄 사이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투르크인은 자신들을 투르케스탄인 또는 투르크인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35/45 투르크 창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투르크 세계에는 통일된 정치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실크로드의 많은 투르크 민족은 공통된 투르크 정체성을 정치적 의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냉전 이후 이슬람은 통합된 정치적, 사회적 세력으로서 투르크인의 언어와 문화의 유사성을 조작한다. 기독교인들은 투르크인의 문화적 유사성을 인정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에도 민감해야 한다.
아제르바이잔인과 터키인은 서로 다르며 우즈벡인과 위구르인 역시 공통점이 있어도 서로 구별된다.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의 필요보다 더 큰 것은 구원에 대한 공통의 영적인 필요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35/45 투르크 창의 모든 투르크민족 가운데 신선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옛 실크로드를 따라 사는 투르크 민족과 타민족 모두에게 영향을 주시기를 기도로 간구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하나님의 백성들이 35/45 투르크 창으로 들어가라는 성령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참여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투르크 창의 도전에 대해 읽으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기를 바란다. 주님,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투르크 창으로 가야 하는 이유

“만약에, 아주 만약에 50년 전 한 개척자가 이미 이 지역이 즉각적인 복음화에 적합하다고 지적했을 때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 일을 했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에 반응하고 모험 정신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만큼 충분한 침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를 위해 불타는 동방의 교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밀드레드 케이블 선교사(1933)

60년 후, 소련은 붕괴되었고 일부 기독교 사역자들은 새로 수립된 투르크 공화국으로 조용히 이주했다. 이들은 ‘자유 시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하는 교회 지도자와 총리, 시민들의 필요를 돌아봤다. 지난 10년간 일어난 일은 우리 시대의 주요 사건이 될 것이다. 세계의 어떤 지역도 투르크 창만큼 놀라운 교회 성장률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 중요한 시간에 그곳에서 강력하게 움직이고 계신다. 지금이 바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35/45 투르크 창으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역의 양상을 바꾸고 있는 대규모 인구 이동

중앙아시아는 거대한 인구 이동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 칸, 티무르는 정복지를 찾아 이 지역의 사막과 산을 휩쓸었다. 약 100년 전, 중국의 지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을 안으로 들였다. 1917년까지 약 2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왔고 중앙아시아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크공화국,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이전 식민지 개척자와 새로 해방된 식민지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됐고, 1989년과 1998년 사이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러시아인의 수가 급감했다. 같은 시기 수십만 명의 독일인들도 이 지역을 떠났다. 이후 남아있던 많은 러시아인과 독일 신자들은 이웃 투르크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최초의 투르크 신자들은 러시아 침례교나 오순절교도를 통해 복음을 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공화국들 내에서는 농촌에서 도시로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된 100만 명 이상의 아제르바이잔 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 도 바쿠로 몰려들었다.

35/45 투르크 창에 위치한 다른 국가들 역시 비슷한 인구 이동, 정치·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토착민들이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문화적 방안을 찾으면서 민족적 열망이 고조되고 있다. 이로 인한 영적 개방성은 교회 성장의 ‘전위 원리 (dislocation principle)’ 라고 불린다. 인간은 삶의 심오한 변화를 경험하면 하나님 사랑의 복음에 더 개방적이게 된다. 지금 투르크 세계에서 기독교 전도가 일어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온 것이다.

2. 지난 10년간 있었던 놀라운 교회 성장

투르크 교회는 90년대에 10년간 매년 43% 이상의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374개 공동체에 43,000명 이상의 투르크인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치는 10년 전 약 1,661명 이하였던 수치와 비교된다. 역사상 투르크 민족에게서 이렇게 많은 반응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극적인 복음의 성장은 이란에 살고 있는 2천만 명 정도의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다. 믿을 만한 소식통은 이란 국내외에 있는 이란 교회 성도의 약 4분의 1이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라고 추정했다.

연평균 교회 성장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도 복음에 대한 반응이 두드러졌다. 해당 국가의 한 사역자는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수가 1990년 650명에서 1998년 1,50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1997년에 판매되거나 분배된 신약성경의 수는 그 전 10년 성경의 공급을 합친 수보다 많다. 11년 전 이스탄불에서는 두 개의 기독교 공동체만이 정기 모임을 가졌으나, 2000년 현재 12개의 공동체가 각자의 건물에서, 4개 공동체는 가정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터키어를 사용하는 불가리아의 밀레트족, 카작족, 몰도바의 가가우즈족 사이에서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25만 명의 가가우즈 투르크족은 중세에 중국 북서부에서 이주해 왔다. 그들은 흑해 서쪽 해안을 따라 정착했고, 그곳에서 동방 정교회로 개종했다. 지난 10년은 가가우즈 투르크족에게 ‘주님의 은총’의 해였다. 전통적으로 명목상의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 1995년 말, 인구의 4%에 해당하는 만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적극적인 신자가 되었다. 부흥이 가가우즈족을 휩쓸었다. 가가우즈의 5개 주에 있는 모든 마을과 도시에는 적어도 하나의 가정 교회가 있다. 젊은 가가우즈 신자들은 투르크 창에 거주 중인 무슬림 형제 자매들에게 나아가 예수님을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망을 표현했다.

약 8,000명의 가가우즈족은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불가리아인, 아제르바이잔인, 그리고 터키에서 온 투르크족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도바에서 열린 야외 집회에 참석했다. 그들은 아나톨리아 터키어에 가까운 방언을 구사하기 때문에 집회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콤라드 가가우즈 대학의 이반 교수는 자신의 수업에도 연설자들을 초청했다. 르네상스 그림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싶었던 무신론자 이반은 90년대 초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성경이 그를 새롭게 했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미술사를 배우는 제자들이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질문을 퍼부을 것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성경을 가지고 다닌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기능적 통합

시너지는 둘 이상의 개체의 상호작용으로 결합된 효과가 개별 효과의 합보다 더 큰 경우를 뜻한다. 투르크 세계의 기독교 사역은 오늘날 진정한 시너지를 경험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가 지도자와 국제 사역자 사이 교파와 사역을 넘나드는 놀라운 연합의 정신이 있다.

1990년 이래로 매년 열리는 회의는 투르크 세계와 관련된 12개 이상의 특정 부족 파트너십을 탄생시켰다. 중앙아시아 협의회가 범지역 사업 모임을 발전시켜 문헌 협력과 미디어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그들 모임이 전략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호막을 제공한다. 전 세계 사역자들은 같은 지역에서 헌신하는 이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으며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들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갖는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100개 이상의 기관, 교회, 단체의 대표를 모으며 의사소통, 기도 및 친교의 장을 제공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개발하고자 한다.

  • 국제성: 모든 국가의 인력과 기관을 모이게 한다.
  • 포용성: 다양한 교회와 기관의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참여자의 수가 꾸준히 늘어난다.
  • 통합성: 교회 개척, 교육, 성경 번역, 라디오, 구호, 사업개발, 물 프로젝트 등을 협력 계획한다.
  • 의도성: 느슨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명확하게 정의되고 달성 가능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한 공동의 목적을 가진 전략적 파트너다.

이러한 파트너십이 빠르게 발전하는 투르크 세계의 교회 리더십에 계속해서 조력자 역할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4. 투르크 세계 개척자 텐트 메이커들의 잠재력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 선교단체는 투르크 세계에서 활동하는 큰 공동체 중 하나이다.

한국의 의사, 대학교수, 연구원, 사업가 및 전문직 종사자들은 기본적인 전문 교육을 한국 대학에서 받는다. 그 후 그들은 다른 국가로 나가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새신자들을 양육한다. 이 단체의 회원 중 현재 120명 이상의 사람들이 투르크 세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전임 사역자들과 함께하는 의사들은 청각장애인, 언어 장애인과 신체적 질병을 가진 이들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란다. 투르크 세계를 향한 이 단체의 주요 초점은 교회 개척에 있으며, 이미 해당 단체를 통해 12개의 교회가 개척되었다.

5. 경제적 불확실성

서양인 방문객들은 투르크 창의 많은 부분을 신식 공항과 호텔에서 본다. 그들은 석유, 금과 같은 풍부한 천연자원에 대해 듣고, 그 지역이 경제적으로 발전 중인 현대판 실크로드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내부 현실은 다르다. 지난 10년 동안 투르크 창 서민들의 생활 수준은 급격히 낮아졌다. 공식적으로는 10명 중 1명이 실직자라는 통계가 있지만 현실은 10명 중 7명에 가깝다. 세계은행은 투르크 창일부 국가에서는 국민 중 90%의 사람들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추정한다. 음식을 사는 데 어려움이 있는 가정과 운영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는 마을 학교들이 많다.

투크르 창에 위치한 한 국가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는 일들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논의의 첫 번째 주제는 경제적 장애물이었다.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고, 전형적으로 기독교인들은 가난하고 실업 상태이다.

투르크 세계에는 경제적 불확실성, 대규모 실업, 국가 취약성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교회 성장의 ’전위 원리’에 따라 이 모든 것이 영적 개방성으로 귀결된다. 또한 집중적인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이 독려된다. 한 국가에서 교회가 3년제 기독교 훈련 학교를 세웠더니 600명의 회중 가운데 3분의 1이 전임 사역자로 헌신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는 4개의 성경 훈련 학교가 있다.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총체적 접근의 일환으로 점점 더 많은 국가적 사업 개발 파트너십 그룹이 형성되고 있다. 파트너십은 지체들의 헌신이 효과적으로 연결되도록 포럼을 제공한다. 투르크 창의 새로운 이니셔티브 중 하나는 중앙 아시아 비즈니스 컨설팅이다. 경제 위기는 전 세계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창의적 대응을 요구한다. 기업가들의 사업 개발, 소기업 투자, 릭스 채플 (Chapel of the Rigs) 등 혁신적인 접근법이 모색되고 있다.

실크로드의 시장성이 있다. 보따리 상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국제 유통망을 발전시켰다. 투르크 신자로서 이 상인들은 실크로드를 건너 복음을 전할 수 있다. 크리스천 사업가들은 그들을 지원하고 훈련시키며 모임을 제공해 복음의 전파를 촉진할 수 있다. 투르크 세계는 사업가들에게 비즈니스 발전과 투자를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6. 첫사랑을 경험하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신자들

데이빗 손더스 (David Saunders)는 1998년 헝가리에서 터키어를 사용하는 두 명의 신자와 함께 기도하면서 투르크 세계에서 복음의 전진을 가로막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을 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장애 요인은 에베소 교회의 경험이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은 교회의 노력과 인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첫사랑을 버렸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와서 그들의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말씀하셨다. 부흥의 외관은 있었다. 그러나 에베소에 있는 교회는 실패했고, 현재까지 터키에는 복음의 증인이 거의 없다.”

손더스가 기록한 두 번째 장애 요인은 초대 교회의 사도적 리더십의 종말과 유지 관리 중심의 감독단으로의 대체이다. 나는 투르크 세계를 여행하며 그곳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류했고, 계속해서 동일한 인상을 느꼈다. 그들은 초기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첫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35/45 투르크 창을 따라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자가 목회 훈련 없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기도,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초자연적인 사역을 실천하고 있다.

나는 첫사랑으로 곳곳에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의 현실을 모여주는 젊은 기혼 여성을 만났다. 타타르족 혈통을 가진 위구르족인 그녀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 무슬림으로 자랐지만 영적 공허함을 느꼈다. 그녀는 힌두교의 크리슈나에서도 영적인 진리를 찾으려 했다. 뉴에이지 철학에 대한 탐닉은 곧 신비주의의 심연으로 이끌었다. 삶에 절망한 그녀는 17번째 생일에 호수에 빠져 죽기로 결심했다. 생일 두 달전, 그녀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다.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도전이며 만약 효과가 없으면, 죽고야 말겠다’ 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영혼은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으로 만족했다. 그녀는 17번째 생일 전날, 삶을 끝내겠다고 맹세했던 바로 그 호수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삶은 극적으로 변했다. 이웃에게 다가가 복음을 증거하며 큰 영적 열매를 보았다. 그녀는 더 많은 훈련을 위해 자신을 바쳤고, 다른 나라로 가는 팀에 합류하여 다른 세 도시에서 교회개척 활동에 참여했다.

7. 기도는 변화를 만든다

100명 이상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투르크 세계를 섬기는 한 사역팀은 모든 팀을 중보자로 통합한다. 40일간의 금식 기도 기간 동안, 그들은 말 그대로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차를 운전하며 중보기도한다. 그들은 영적 반대에 부딪히긴 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사역이 투르크 창 전역에 퍼져 있는 동역자들의 사역을 위한 기초라 믿는다.

10/40 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투르크 세계의 영적 돌파를 위한 기도가 집중되고 있다. 1993년 10월, 1995년과 1997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창을 통한 기도’를 강조하며 이 지역을 위해 기도했다. 현지 중보팀은 투르크 창에서 며칠간 기도와 금식을 하며 영적 돌파를 구했다. 1993년 10월 기도회에 참여했던 동남아시아 출신의 팀원 중 한 명이 장기선교사로 돌아왔다. 그녀는 하나님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했고, 그녀 자신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됐다.

8. 이슬람 세계로 가는 관문

투르크 신자들이 믿음 속에서 자라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명령하신 모든 것 (마 28:20)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 그들은 무슬림 세계로 가는 관문이 될 것이다. 투르크족은 투르크족에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실크로드와 그 너머 투르크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나아갈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신자들은 최근 독일의 난민촌에서 일어난 일처럼 이미 이웃 이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 카자흐스탄 신자들은 이미 체첸과 코카서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우즈벡 신자들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의 타직 민족에게 나갈 수 있다. 위구르족은 후에라고 알려진 중국 무슬림들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다. 투르크 신자들은 마침내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인도 북부, 중국 북서부에 접근했다. 그들은 이미 알라에게 굴복함을 지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다리를 건넜다. 그들은 제자도의 비용을 계산했다. 그들은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에 따라 살아 보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다.

결론

소련의 붕괴는 35/45 투르크 창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부패, 낡고 무너진 건물들, 보수되지 않은 길들과 영적인 공허함이 만연하다. 그러나 새신자들의 삶에는 열린 창과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다. 밀레니엄의 마지막 10년 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빠르게 실크로드를 따라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투르크 세계로의 인생을 바꾸는 여행’ 세션을 마치던 날, 한 기독교인 형제가 깊은 열정을 가지고 말했다.
“투르크 세계는 지구상에서 가장 저항적인 민족으로 가는 관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와 그들의 전문성으로, 그 문을 통해 걸어 들어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때입니다.”

간증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누레틴 사역자

주 안에 형제자매 된 여러분,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그리스도와 함께한 12년 간의 영적 여정을 나누려 합니다. 먼저 제 소개를 간략히 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누레틴 셀레디르입니다. 저는 1966년, 터키 동부 아나돌루 지역의 작은 마을인 카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홉 명의 가족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현재 결혼해 네 자녀가 있습니다. 저는 이슬람 전통과 문화 속에서 자랐고, 저희 집안은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고향에서 20년간 무역업을 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았습니다. 2004년부터 2009년에는 정치 정당의 관리직을 맡아 활동했으며, 카르스 지방 자치 당국에서 시의회 의원, 상임위원, 부시장을 역임했습니다.

저는 사회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 유물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삶, 우주와 자연을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떤 것도 순수하고 신성하며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은 우주 전체의 요약이며, 모든 미지의 주제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인간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우주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이 우주의 물질적 존재를 누가 창조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힘은 무엇인가?’, ‘누가 인간의 마음을 형성했는가?’ 저는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성경

2009년 3월, 저는 시의회 의원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에 제가 있어야 할 곳과 제 안식처는 세상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한된 인간의 능력으로는 우주의 미지를 해결할 수 없고, 인간의 존재가 세상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의 정치적 영향력도 거의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인생을 바꿀 기적을 만났습니다.

그해 6월, 독일에서 20년간 근무하다 카르스에 돌아와 무역업을 하던 제 친구가 저를 자신의 일터로 초청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아주 친절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들은 미국인이었고,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낯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만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미국인들은 터키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더 많은 토론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 우리 말을 경청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헤어지면서 성경 한 권을 주었습니다. 그땐 그 책이 제 삶의 모든 것을 바꾸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방향을 찾지 못했고, 키와 선장을 잃은 배와 같았으며 안식을 찾아야 할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주었던 그 미국인들은 한 달 후 카르스로 돌아와 저에게 다시 만나고 싶다고 연락했습니다. 사실 그날 그들이 저에게 연락했던 것은 실수였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친구와 만나려던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 저는 그들을 만났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터키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반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여행 가이드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반 사람과 미국인들은 손님을 맞으러 공항 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고 동네의 온 가족과 친척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 가족과 아이들, 마을을 위해 기도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반에서 온 터키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도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크리스천인 터키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기에, 그 상황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크리스천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없었습니다. 특히 기도를 마칠 때 그가 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표현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들은 카르스를 떠나며 몇 달 후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올 때마다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던 어느 날, 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려졌습니다. 그 순간이 제 모든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습니다. 놀라운 기쁨이 저를 덮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 같았습니다. 옛것은 지나갔다는 말씀과 같이 저의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인생의 닻을 내려야 할 항구를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복음을 알게 된 자가 어찌 나누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다른 이들과 이 소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기쁨을 가장 잘 이해하고 행복을 함께 느낄 사람들에게 제 상황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반에서 온 크리스천 형제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떨리고 흥분된 어조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기뻐서 소리 지르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누레틴이 그리스도께 왔다!” “누레틴이 그리스도께 왔다!” 수화기를 통해 기쁨의 외침이 전해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 순간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이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다정한 파란 눈의 금발 머리 두 미국인 형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날 이후로 약 12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례식과 감옥에서의 시간

주님과의 두 번째 여정은 첫 번째 여정보다 더 놀랍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게 된 후 몇 달이 지난 2010년 겨울이었습니다. 저는 반 출신 크리스천 형제로부터 카르스에 정착하려는 한국인 형제를 알고 있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형제가 준 주소로 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 한국인 형제는 제 마음속 심겨진 복음의 씨앗에 물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정말로, 언제나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카르스에 정착한 그분과 함께 그분이 머물 집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부동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사무실 건물에 아파트 임대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건물에 들어가 주인을 만났는데 제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집을 빌리고 바로 열쇠를 받았고 한국인 형제는 카르스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 순간까지도 저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저를 양육해주었고,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기초 세례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다른 지역 출신, 특히 반 출신의 신자들이 우리를 많이 방문했습니다. 저도 때때로 그들과 함께 반과 삼순에 방문했습니다. 저의 옛 환경은 점차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 환경에 살게 되었습니다.

3개월간의 세례 교육을 마치고 2010년 4월 4일, 저는 삼순 아가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족과 아내, 아이들에게 제 세례 소식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부모 형제와 함께 세례를 받으러 온 이들의 모습을 보니, 세례를 받은 기쁨과 함께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으며 제 등에 안수해주신 하나님의 종과 한국인 선교사님의 손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주님을 위한 일꾼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레틴 사역자 가족

그 후 4월 5일, 저는 삼순 출신의 형제들과 함께 카르스로 돌아왔습니다. 반에서 태어나 삼순에서 자란 한 형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카르스에 왔습니다. 그 형제는 한국인 선교사님께 입양된 아들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저에게 이상한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모호한 말을 했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냐는 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카르스에 돌아온 지 20일이 지난 4월 23일, 새벽이 되기도 전에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자 경비원들이 저를 붙잡고 제가 조사 대상이 되었으며 구금이 결정되었음을 통보했습니다. 저는 검찰에서 진술 후 체포되어 터키 동부에 있는 에르주름 교도소로 보내졌습니다.

조사와 진술 과정에서 제 구속 사유는 이전에 제가 했던 발언과 서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저에게 굉장히 고통스러웠지만 또한 매우 유익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감시를 받던 3일간, 담당 공무원들은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신앙의 어린 단계였고,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젖먹이와 같았습니다. 알고 있는 말씀이 거의 없었으며 신앙에 대한 설명 조금과 주기도문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나이팅게일처럼 주기도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바로 저를 통해 말씀하신 성령이었다는 것을 말씀으로 알게 됐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저는 잠이 들기 전 제가 알고 있던 말씀과 기도문을 암송하며 잠들었습니다.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주기도문이 성경의 축약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기도문으로 저는 그 시간을 평안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세례를 주었던 선교사님께서는 2년간 저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제 방문객들은 그가 주기적으로 열렸던 청문회에도 참석하기를 원했지만, 입장 허가가 없어 다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또 그분이 제 아이들을 돌봐주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당시 저를 모르던 성도님들도 우리 집을 찾아가 저희 가정을 위해 많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2년여의 수감생활 동안 굉장히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통해 아들 비르칸이 자폐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5년 만에 얻은 아들이었기에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가 피할 곳은 주님뿐이었습니다. 너무나 절망스러웠기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를 위로해 주실 분은 주님밖에 없음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 공판에서 저는 드디어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재판을 앞두고 석방되었습니다. 제가 감옥에 있던 2년 동안, 저는 20년간 끊지 못했던 담배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석방되던 날, 저를 맞이하던 사람 중 한국인 선교사님이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하지만 카르스로 돌아온 후에는 슬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카르스에 자리 잡도록 도왔던 한국인 형제와 그의 일행이 카르스를 떠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님이 저를 자주 방문해주어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렸던 자유의 기쁨은 18개월밖에 지속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 가을의 마지막 날, 저는 감옥에 다시 가게 됐습니다. 이전에 받았던 6년 3개월 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정치적 정체성보다 영적인 정체성이 훨씬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감 생활 동안 주변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는 성경을 감옥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도 허용되었고, 성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실제 제 구금 기간은 2년 3개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남은 형기를 마치고 다시 출소했을 때 큰 공허감이 몰려왔습니다. 모든 재정적 기회를 잃고 경제적으로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기적적으로 저를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한 성도님이 저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많은 설교자의 설교를 프로그램에 설치해 주님의 말씀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양육해주었습니다.

사업 문제도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살면서 성경을 가장 많이 읽고 기도에 몰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3년이 흘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지방의 몇몇 성도들을 방문했습니다. 또 저 역시 카르스에 찾아오는 많은 형제자매로부터 영적 성장을 위한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가정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역자로서의 새로운 삶

하나님의 말씀은 제 아내의 마음도 움직였습니다. 아내는 믿음의 고백을 드리며 반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저희 가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부부로서 그분 앞에 무릎 꿇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계속됐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두 시간 반쯤 기도 중이었습니다. 밤 2시쯤에 영광스러운 주님께서 다시 한번 그분의 형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주님의 음성도 함께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음성을 세 번 들려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너는 내것이라” 하시며 성경을 들어 예레미야 18장 토기장이의 집에 대한 말씀을 읽게 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렘 18:2-6)

아멘. 저는 그분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그때 그 돌판에 쓰인 말씀이 제 마음속에 새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온몸이 떨리며 영혼과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의 집에 돌아왔음을 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47년간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랐습니다. 몸이 솜처럼 부드럽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영으로 충만했고 육신에서 세상적인 생각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중력에서 벗어난 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선 저에게 이제 주님의 일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제 입에서는 제가 알지 못하는 언어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기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멈추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날 밤 모든 세상의 근심, 걱정과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그날의 일을 저의 특별한 형제이자 동역자와 나눈 후, 저는 제가 성령 세례를 경험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 대해 가족과 아내, 아이들에게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감옥에서 막 나왔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여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계속 기도하며 저에게 세례를 준 선교사님과 이 상황을 나눴습니다. 이 시기가 제 믿음의 여정에서 최고로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어갔고 7개월간 성경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읽었던 구절은 역대상 4장 9절에서 10절이었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 4:9-10)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특별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위 구절은 제 생명을 살린 말씀입니다. 그 기간에 한국인 선교사님께선 사역을 위해 다른 나라에 가셨고, 저를 반 개신교 교회와 연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 반으로 가던 중 저는 반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저를 격려하기 위해 카르스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시던 분이었고, 목소리로 그분에게 온 전화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미 그분을 만나러 반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저희는 서로 놀랐고 목사님께서 기쁨으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반에서 이틀간 머물렀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카르스에서 함께 사역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명하신 부르심에 대한 확증이었습니다. 그분은 저와 우리 가족이 반으로 잠시 올 수 있겠냐고 물으셨고, 저는 그분과 함께 기도하며 그 제안에 응했습니다.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르스 지도

카르스로 돌아온 후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나눴습니다. 저희는 기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으로 가서 임시 거처에 머물렀습니다. 반에서 머문 80일은 아주 알차고 승리의 고백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일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기초 제자 교육을 받았으며, 아내와 저에게도 새롭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세례식이 다가왔습니다. 저의 두 딸은 반 개신교교회에서 저희 부부가 보는 앞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부모 앞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제가 세례 받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또, 그 자리에는 터키 구원교회의 담임 목사님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언젠가 그 교회와 동역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식이 끝난 후 반에서 7일간 시간을 더 보낸 후 카르스에 돌아왔습니다. 카르스에 돌아온 후 저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시내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카르스에서 전임 사역을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복 주시며 모임을 확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큰 은혜들

과거 저에게 미국인 크리스천을 소개해줬던 제 친구도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희는 주님의 일하심을 목도했습니다. 20년간 유럽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 있던 사람이 카르스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타이밍은 우리의 생각과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가 커지면서 게스트 하우스 사역도 시작했습니다. 반에서 온 형제들과 함께 저희는 더 가까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여정을 함께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젊은 부부와 대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인과 구원자로 영접하며 세례받았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여정 가운데 저희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오는 많은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있으며 우리 공동체는 나날이 확장되어 갑니다. 저는 소셜 미디어에 12개의 설교 영상을 올렸고 많은 사람이 그 영상을 보았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이든 부정적인 반응이든 우리 게시물에 계속해서 반응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확장되는 공동체를 위한 사무실 임대를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반에서 자녀들이 세례를 받을 때 마음에 품었던 말씀도 성취되었습니다. 저희가 반에서 카르스로 돌아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구원교회의 목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그분은 저희와 함께 카르스와 반을 섬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카르스 구원교회의 대표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습니다. 반에서 제 마음을 만졌던 언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님 안에 하나 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일하심은 멈추지 않습니다. 몇 년 후,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인 형제들과 함께 왔었던 반 출신 크리스천 형제의 딸이 자라 빌립보 사역 훈련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이 자매는 삼순 아가페 교회를 섬기는 한 형제와 결혼한 후 삼순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삼순에서 복음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아들 비르칸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비르칸은 저희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며 매일 호전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아이를 위해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손이 제 아들 비르칸을 비롯한 모든 장애 아동들을 치유하시길 기도합니다. 12년간의 여정 동안, 저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며 교육 세미나, 성경 공부와 같은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저도 제가 먼저 말씀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많은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저는 영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과 정신을 열어 저의 달려갈 길을 마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간증을 마치면서,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27절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4-27)

여러분께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성령의 축복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간증

모태에서부터 불러주신 하나님

다비트 사역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다비트입니다. 저는 아르메니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을 모태에서부터 택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저의 신앙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가족 중에 기독교인이 된 건 아버지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미혼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교육받았기 때문에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존중받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조부모님은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내시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충분한 지혜를 주시고 격려하셔서 가족과 많은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가족과 친구들 모두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에 영접했습니다. 아버지는 신앙이 성장하면서 성공과 나쁜 우정 등 모든 것을 뒤로 버렸습니다. 나중에 그는 교회 성가대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결혼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제가 태어난 도시로 이사 온 뒤 첫 번째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주변 도시에 가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들은 모두 성장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저의 할아버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도시들을 여행하며 여러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본받을 좋은 예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다른 민족을 섬길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또 어렸을 때부터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것을 수천 번 경험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서 마치 뭔가를 준비하듯이 성경 말씀을 배웠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방황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음악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그곳에서 좋은 친구를 사귈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짓을 한 후에 오래 지나지 않아 성령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입대는 의무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저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직접 일하시고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내가 아는 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나님이었고,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님은 제 인생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성경 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미션 스쿨에서 공부하고 제 소명의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기 선교에 많이 참여했고 부르심을 더 사모하게 됐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법과 매 순간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은 큰 열매를 주셨고, 저는 두 개의 새로 개척한 교회에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두 개의 독립적인 예배 모임을 개척했습니다. 우리의 섬김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역을 늘리고 더 크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의 “더 큰”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평화가 없었습니다.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기도를 부탁했더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후에 다들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가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함께 계획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을 취소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구하지 않았던 선물을 주셨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독창적인 방법으로 움직이시며 그의 계획과 길을 향한 꿈을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요!

결혼 후 우리는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매일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응답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설교자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선교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 후에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을 기회를 가졌고 그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곳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통해 저는 지금 있는 도시로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슬림 나라에 와서 다른 곳에서 기독교인이 된 현지 형제와 함께 새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미전도 지역 중 하나였던 도시에 작지만 멋진 교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도하심과 일하심으로 우리를 계속 축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딸을 주셨고 저와 아내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모든 길을 걸어가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 곧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민족과 모든 방언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다비트 사역자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로 터키에 왔습니다. 복음이 많이 전해지지 않은 터키 북동부 지역의 귀한 사역자입니다. 터키 북동부 도시 카르스에서 누레틴 터키 사역자와 동역하고 있습니다.

간증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나의 여정

베흐루즈 사역자

제 이름은 베흐루즈입니다. 페르시아어로 제 이름은 ‘축복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란의 영화 제작자이자 애니메이터입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의 목사님을 돕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터키에서 난민 생활을 한 지 5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이란에서 무슬림으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이슬람 관습과 규정을 실천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슬람 정부는 우리에게 전통을 존중하고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무슬림이 되는 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종교와 신 (알라)에 관해서는 항상 떠밀리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저와 다른 아이들에게는 기도가 신과의 소통이 아니라 종교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강요된 신앙에서 무신론자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란이 신성한 책이라고 배웠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 발, 얼굴, 이마를 씻기 전에는 꾸란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아랍어로 된 꾸란을 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들었고 그래야 선행을 더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선행을 사바브(Savab)라고 합니다. 지상의 삶에서 사바브를 더 많이 할수록 천국에서 더 좋은 장소와 봉사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인 아랍어로 꾸란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사바브를 실천했습니다.

10대가 되었을 때, 저는 신과의 관계를 포함해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만큼 성숙했습니다. 저는 꾸란을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꾸란을 다 읽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몇 년 후 저는 꾸란 읽기를 중단하고, 이슬람 신앙을 영원히 제쳐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그 후 15년 동안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예술은 항상 제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영화는 신앙을 떠난 후 제 마음속에 있던 영적인 공백을 채워주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저는 고전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한 책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대학교 전공으로 영화를 선택하고 독립 단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내 마리암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술 애호가이자 영화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첫눈에 반했고 결혼해서 대학을 같이 다녔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에 대해 처음 말해 준 사람은 아내였습니다. 제 아내 마리암은 12살 때 삼촌으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마리암의 삼촌은 미국에 살았는데,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아내의 삼촌은 그녀에게 우편으로 성경을 보냈습니다. 이란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오는 모든 소포를 확인하고 추적합니다. 이란에서는 무슬림이 성경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정보부가 소포를 개봉해서 성경을 발견했는데, 아내를 추궁하고 위협한 후에 경찰관은 성경을 찢어서 책 표지만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내는 성경을 찾아 읽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 성경을 보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친구에게서 성경을 받았습니다. 마리암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생각들과 질문을 삼촌에게 편지했습니다. 마리암의 삼촌은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고 조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기 때문에 매달 편지로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했습니다. 불행히도 몇 년 후 삼촌은 선교 여행 중 세상을 떠났고 더 이상 연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 선생님의 죽음은 제 아내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지만, 아내의 마음속에는 이미 예수님의 사랑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내와 만났을 때 그녀는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신론자였고 신을 완전히 반대했습니다. 저는 알라에게 너무 실망했고 진정한 신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그를 알 기회도 없었습니다. 저는 무신론자로 남았고, 아내의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수년 동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 그녀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구원자를 향한 갈망

영상주소: https://youtu.be/aOpEGwnUdeA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제작자와 애니메이터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저는 외로움을 느꼈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전문 애니메이션은 섬에 갇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섬 중앙에 있는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지만, 항상 넘어지고 정상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황금 밧줄을 가진 반짝이는 남자가 위에서 내려와 그들을 돕습니다.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초대에 응하지 않고 결국 물에 빠집니다. 이 단편 작품은 구원자가 제 삶과 제 섬에서 저를 구해주길 바라는 희망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큰 인기를 얻었고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제 다음 영화도 같은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데, 상자 안에 갇힌 잠자는 로봇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날아다니는 빛나는 로봇은 그를 깨우고 그가 상자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상자 안에 있는 로봇은 최선을 다하지만 매번 그의 노력은 실패하고 상자는 그때마다 작아집니다. 결국 그는 심장 속의 작은 빛을 이용해 상자를 부수고 날아갑니다. 상자 밖에서 그는 처음에 그를 깨웠던 것처럼 빛나는 로봇이 됩니다. 이제 다른 상자 안에 있는 방대한 수의 잠자는 로봇들을 깨우는 것이 그의 책임입니다. 저는 저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구원자에 대한 기대를 묘사했습니다.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성공은 제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주소: https://youtu.be/yJtop31_nDo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구원자를 만나겠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부조리하고 씁쓸한 예술가로 변했습니다. 점차 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그만두고 항상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사회공포증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고 길에서 누군가 제 옆을 걸으면 패닉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영상주소: https://youtu.be/ALRXyUBz8K0

저의 다음 영화는 이런 저의 절망감을 반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피비린내 나는 식인 쇼에서 공연하기 위해 몇몇 생명체를 만드는 늙은 과학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과학자는 그의 잔인함에 스스로 희생자가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저에게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상황이 너무 나빠져 아내와 저는 매우 빨리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는 터키로 도망쳐 난민으로 현재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 가방 하나만 가지고 이 나라로 왔습니다. 이곳에 왔을 때 저는 완전히 망연자실했습니다. 저는 제 인생 전체가 큰 실패작이고 다시는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모든 예술적 성취는 무가치해졌습니다.

나를 찾아온 구원자

새로운 나라에서 저는 제가 항상 찾던 구원자를 가장 마지막에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그는 제 문을 두드린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친구 집에 있었을 때 한 목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내는 기독교 목사가 문 앞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를 보기 위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오랫동안 믿음을 숨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가서 그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친구와 아내가 고집을 부렸고 마침내 저는 승낙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문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저를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차 안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며 페르시아어 성경을 주셨습니다. 저는 방금 만난 착한 남자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책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상주소: https://youtu.be/mbcq9_DCF_A

다음날 저는 성경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차가운 싼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컴퓨터를 켰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망가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영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고, 이제는 몇 시간 만이라도 마음을 쉬게 해 줄 작은 컴퓨터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책가방 안에 작은 책이 있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의심스러웠는데, 며칠이 지나자 제 관심을 끌었고 마음의 안정이 있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회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매주 교회에 가는 것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떤 성경 연구 모임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제가 기독교를 비꼬는 질문이나 비판하는 질문에도 항상 참을성있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성경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하나님이 저를 알고 계시고 제 인생을 위한 놀라운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란에서는 종교와 위선이 항상 공존합니다. 저는 종교인들이 이중생활을 하며 신앙을 실천하지 않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도 같은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매우 투명했고 그와 그의 가족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35년 만에 처음으로 저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반영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지켜보는 과정은 몇 달 동안 계속됐습니다. 저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동안 아내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죄인이고 마음속에는 회개해야 할 많은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수요일 오후, 저는 교회에서 제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제 마음속에 들어와 구원자가 되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갑자기 어깨가 가벼워졌고, 오랜만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제 마음에 오셔서 제 병을 하나씩 고쳐주셨습니다. 오랜 기간 우울증에 시달리던 저는 이제야 하나님의 말씀에서 평안을 찾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들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신자들에 대해 배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간증을 듣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세계 각지에서 온 더 많은 신자와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목사님이 교회에서 통역을 부탁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부족하고 준비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페르시아어뿐 아니라 영어로도 말씀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제 예수님은 저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 특히 저의 예술과 재능을 기꺼이 그분께 바쳤습니다. 모교회에서 새 건물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부탁했을 때, 전문 3D 모델링 프로젝트를 해본 지 꽤 오래되어서 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실제 건물을 보았을 때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영화 제작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영적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을 즐겼습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중단한 지 오래되었는데, 한 사역처에서 저에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요청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가진 기술적 지식을 기억나게 하시고 일을 그만두기 전의 능숙함으로 돌아가게 도와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란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10년 정도 영화를 가르쳤는데,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즐겼었습니다. 목사님이 저에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보겠냐고 하셨을 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란에서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공부하여 성경 깊숙이 들어가 이란 교포들에게 전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제 아내는 얼마 전에 성경 학교를 시작했고 제가 설교를 할 때면 항상 곁에서 도와줍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능력이 무엇이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항상 기쁨을 느낍니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 저는 너무 외로웠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가장 훌륭한 가족의 일원이고, 전 세계에 제가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고난과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항상 저를 지켜주셨고 절대 넘어지지 않게 하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저에게 신실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께서 제 삶에서 계속 일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공동체 이야기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고, 너와 함께 있단다

무스타파 에크렘 폴랏소이

저의 이름은 무스타파 에크렘 폴랏소이며 수루치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와 네 명의 아들이 있고, 곧 딸아이가 태어납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던 저는 여러 주를 옮겨 다니면서 살았고, 학창 시절을 디야르바크르 지역에서 보냈습니다

12~13세 무렵에 이름을 모르는 한 티비 채널에서 계속해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영화를 그저 어린아이의 감정으로 평범한 다른 영화 보듯 보았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 우리 가족은 우르파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무슬림 신앙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무슬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알라의 존재를 믿었던 유신론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신이 삶 가운데 나를 이끌고 계신다는 느낌을 늘 받았습니다. 그 느낌은 좋은 것과, 옳은 것,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게 해주고 나쁜 것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예수가 누군지 알고 싶으십니까?

저는 2001년에 군 복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군 복무 중 에르주룸에 있는 병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서점에 들렀는데 그때 성경이 눈에 들어왔고, 사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도 왜 그 책을 읽는지 묻지 않았었고 저 역시 그냥 보통 다른 책을 읽듯이 읽었습니다. 저는 군 복무를 마친 뒤 결혼했고 수루치 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진 신문 한 조각을 보았습니다. 그냥 보기만 하고 집어 들어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 스무 걸음 정도 지나쳐 걸어갔을 때 제 삶 속에서 늘 영향을 끼쳤던 그 느낌, 또는 어떤 능력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습니다. 제 안에서 “돌아가서 그 신문을 집어라”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시 가서 그 신문 조각을 집어 들었는데, 그 위에는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고 아래에는 “예수가 누군지 알고 싶으십니까?”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말라티아에 있는 지르베 출판사의 주소가 나와있었습니다. 바로 그 신문지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집에 가자마자 쓰여 있는 주소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제 앞으로 작은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우편배달부는 배송비를 요구했는데 당시 사정이 좋지 않아 배송비를 주지 못하자 도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저는 곧바로 지르베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고, 전화를 받았던 네자티 형제는 제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에 소포는 다시 배달되었습니다. 소포 안에는 신약성경, 카세트 테이프 1개와 한 권의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가끔씩 카세트 테이프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이 생길 때마다 네자티 형제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네자티 형제는 저의 인도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비를 틀었는데, 네자티 아이든과 다른 두 형제가 말라티아에서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순교를 당한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영적으로 나를 이끌어준 사람, 마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듯 내 손을 잡아주었던 네자티 형제의 손이 사라진 것입니다. 마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죽음 앞에 그렇게 한동안 멈춰 서 있었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불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이후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네자티 형제랑 그 친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감내했다면, 그리고 그의 아내가 그런 죽음을 앞에 두고 살인자들에게 저주조차 퍼붓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길은 정말로 거룩한 길이구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그 후로는 인터넷을 통해 이스탄불의 성경통신 과정에 연락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메리엠 자매는 지속해서 저에게 신앙 서적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읽은 책의 내용과 또 제가 경험한 것들이 저의 믿음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록 네자티 형제를 직접 만난 적도 없고 그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가 저에게 설명해주었던 것들과 제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서 어떤 사람의 빛나는 얼굴의 형체를 보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두 번 더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는 동일하게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즉 예수 그리스도이고, 네 인생 가운데서 늘 길을 보여주었다.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었으며, 무엇이 좋은 것이며 옳은 것인지를 알려 주었고 너를 보호해 주었단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를 언제나 지켜주시고 돌봐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우리와 관계를 끊을 거고 아무도 우리하고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도 신약성경을 읽으며 예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자신도 믿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위해서 기도했고 아내는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저는 2008년에 세례를 받고, 수루치 지역에서 군수 보좌관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반정부 세력 (FETO, 페툴라 테러조직)이라는 누명을 쓰고 구속되었습니다. 저는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교도관에게 성경책을 요청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계속 주님께 기도했고 온전히 저 자신을 그분께 헌신했습니다. 같은 방에 있는 친구에게 감옥에서 나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거야”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살면서 하나님께 충분한 시간을 떼어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는데 마음속에 어떤 음성이 “오늘은 너에게 좋은 하루가 될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내적 음성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날은 교도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 마당에 나가 바람을 쐴 수 있는 날이었는데, 함께 수감 생활하던 남동생과 서로 먼저 나가라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제가 먼저 나갔고 교도관은 제가 이전에 요청했던 성경책을 건네주었습니다. 조금 더 마당에서 걷고 있을 때 다른 교도관이 저를 다시 불렀습니다.

“폴랏소이 이리로 와봐.”

“책 때문에 부르시는 거면 이미 받았습니다” 저는 받은 성경책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이리 와.” 교도관은 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책은 이미 받았습니다.” 저는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제 자유의 몸이다, 석방이다.” 갑자기 교도관이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침에 ‘오늘은 너에게 좋은 날이 될 거야’라고 말했던 음성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 음성을 들려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나가게 되었고 남동생이 배웅하러 문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남동생의 마음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출소하게 되어 기뻤지만 한편으로 본인은 남아있게 되어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남동생을 얼싸안았을 때 동일한 음성, 즉 예수님의 음성이 “오래지 않아 너도 석방될 거란다”라는 얘기를 동생에게 해주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도 풀려났습니다.

그때 정말로 깨닫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제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저와 함께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었고, 예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앞을 못 보고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고, 귀신들린 사람이 자유케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기도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치유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간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기 위해 기도 받으려고 왔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2년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들아, 사람들이 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얘기하는구나.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면 좋겠니?”

“아버지, 사실대로 얘기하세요.” 저는 아버지께 대답했습니다.

“그럼 사실이 뭐냐?” 아버지는 제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아버지께 대답했습니다.

“보아하니 너는 네 인생의 결정을 내렸구나. 나는 끝까지 너를 지지한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 삶을 늘 지지해 주셨고, 제가 믿음의 결정을 말씀드렸을 때도 저를 지지해 주셨다는 사실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여러분께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파트너 칼럼

강력한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아프가니스탄 선교의 현 상황과 방향성

김밀알, 김글로리아 사역자

두 형제 이야기

내 가슴에 큰 슬픔을 준 동시에 깊은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두 형제가 있다.

알리(가명)

알리 형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우리 온라인 사역팀의 복음 광고를 보고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고 우리와 연결되었다. 우리 가족은 지방 여행을 가는 길에 알리가 거주하는 도시를 방문해 만나게 되었다. 알리는 2010년경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서양 사역자가 인도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직 확실히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때 알리는 모임 중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세례 사진이 노출되면서 탈레반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누군가가 그에게 피하라고 알려줘서 알리는 급하게 집을 떠났다. 탈레반이 집에 찾아왔을 때, 알리는 집에 없었고, 11살 여동생이 혼자 집에 있었다. 탈레반은 알리를 찾지 못하자 여동생을 위협하며 여동생의 손가락 두 개를 잘랐다. 알리의 가족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이 사건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알리는 나중에 손가락이 잘린 여동생을 데리고 이란으로 갔고, 이란의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여동생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알리는 그 이후로 어떤 사람과도 연락하지 않았고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살았다. 이란에서 알리는 출국 조치를 받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터키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알리의 모든 기억은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곤 하였고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에게 연락한 이유도 카불에서 그 모임을 이끌던 2명의 사역자를 찾아 따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알리를 방문하여 우리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전반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에 대해 나누었다. 그리고 구원에 관해 이야기했다. 알리는 조용히 듣고 있었고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알리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고 내 가슴속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수년간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사람이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그의 가슴에 흐르고 있었다. 그를 방문한 이후 라마단이 시작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소망교회는 한 달간 온라인으로 매일 1시간씩 기도회를 진행하였다. 알리는 기도회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제목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주일에는 아프간 소망교회 온라인 예배에 참석하였다. 매주 볼 때마다 알리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고 어둡던 얼굴이 정말 해와 같이 변해갔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하는 아프간 공동체가 그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이끌어내었다. 현재 그는 자기 도시에서 지난 여름 이후 탈레반을 피해 넘어온 아프간 가정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모함마드 (가명)

모함마드 형제는 현재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데, 페이스북 페이지 복음 광고를 통해 우리와 연결되었다. 모함마드는 카불 근처의 어느 도시에 아내와 4명의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모함마드는 진리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스스로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꾸란과 비교해 보며 많은 공부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모함마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임을 받아들이게 되고 스스로 크리스천으로 개종하게 된다. 마음에 큰 기쁨이 있었고 주변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몇 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모함마드의 장인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였는데, 이 사실을 알고 모함마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딸에게 모함마드와 이혼하라고 하였지만, 딸은 남편과의 이혼을 바라지 않았다. 결국 장인은 탈레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어느 날 모함마드는 탈레반에게 잡혀서 들판에 있는 어떤 텐트 안에 갇히게 되었다. 어느 날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모함마드를 탈레반의 더 높은 사람에게 데려가야 한다며 오토바이를 탄 어떤 사람이 데리고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도시 중심부로 모함마드를 데려가더니 풀어주었고 모함마드는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모함마드는 며칠 후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였다. 그는 그가 예수님이었을거라고 이야기한다.

그 후 탈레반에게서 다시 위협하는 편지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고 그는 카불을 거쳐 이란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모함마드가 도망간 것을 안 탈레반은 모함마드의 집에 불을 질렀다. 가족들은 다행히 밖에 있었다. 현재 아내와 아이들은 그 자리에 다시 조그맣게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어느 날 이란에 있는 모함마드에게 18살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탈레반에게 잡혀 있었고 탈레반이 시켜서 전화한 것이었다. 모함마드는 남동생에게 복음을 전한 상태였지만 믿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동생은 모함마드에게 형이 돌아오지 않으면 탈레반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동생은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하면서 형은 아내와 자녀들이 있지만, 자신은 혼자이니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모함마드의 어린 동생은 형을 대신하여 탈레반에게 죽임을 당했다. 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동생이 다시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동생을 구해주시지 않았다.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 이런 슬픈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아픔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며칠을 울었다. 그리고 난 정말 이 세상에서 사역자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를 통해 매주 그를 만나면서 그 친구의 얼굴이 점점 평강이 가득한 얼굴로 변해가며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함마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동생의 삶이 자기 어깨 위에 포개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온라인 모임에서 연결된 몇 형제들과 이스탄불에서 조그맣게 대면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 두 형제를 보며 이 세상에서의 깊은 슬픔을 주님의 깊은 은혜로 치유해 가시는 것을 본다. 씻을 수 없는 아픔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들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들이 그 기쁨을 얻고 평강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자기와 같이 예수를 믿는 많은 형제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교회 공동체가 그들을 깊은 은혜 가운데로 이끌었다.

미디어를 통한 복음 전도의 추수가 가장 많은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말하면 의문을 가질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며 실제적인 데이터로도 나오고 있다. 라스트콜이라는 온라인 전도팀은 2019년 3월에 결성되어서 스태프 1명으로 시작하였다. 주로 페이스북의 페이지를 통해서 복음 영상을 홍보하고 여기에 반응이 오는 사람을 상담하는 방식이다. 평균 한 달 500명 정도를 상담하고 있는데, 터키에 사는 아프간 사람들과 아프가니스탄 본토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었다. 현재 우리는 주로 터키 안에서 사역을 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안에서도 약 50여 명의 신자가 연결되어 있고,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와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있다. 성도들끼리 연결되고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주를 예배하는 것이 각각의 형제자매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는 것을 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위기

2021년 8월, 누구도 예기치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발생했다. 아마 미군도 탈레반도 이렇게 빨리 아프가니스탄이 함락될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미군이나 NGO에서 활동했던 많은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의 숙청대상이 되었다. 약 10만여 명의 미군 조력자들은 미군의 항공기를 통해서 탈출하였다. 남은 사람은 비공식적인 조력자들이나 정부 공무원 그리고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의 기독교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안의 기독교인들은 약 3,000명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와 연결된 신자들이 탈출을 도와달라고 애원하면서 연락이 왔다.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입 밖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 하나도 추스르기가 힘든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라마단 기간 동안 나라를 변화시켜 달라고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던 우리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마음속에 메아리쳤다. “주님 어떻게 나라가 순식간에 이렇게 될 수 있습니까?” 묻고 또 물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하는 아프간 성도들에게는 오히려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신뢰한다고 이야기하며 지금은 너무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고치시기 위한 긴 여정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안다고 고백하였다. 그들의 고백이 마음에 위로를 주었다.

성도의 도리로 우리도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8월 말에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중보기도회가 열리게 되었다. 약 30~40여 명의 한국 성도들이 중보의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3달 정도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탈출 기금을 위한 헌금이 모였다. 이 기금을 가지고 파키스탄으로 총 13명, 이란으로 4명, 아부다비로 80여 명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 단체에서 많은 기여를 해주어서 아부다비로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제3국으로 가기 위해서 프로세스를 진행 중이나 언제 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이들이 지금 있는 곳에서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고 아프간 바이블 칼리지 수업을 통해서 미래의 사역자로 잘 준비되길 소망한다.

2021년 11월 15일부터 12월 14일까지 약 한 달 동안 흩어진 아프간 소망교회들이 온라인으로 모여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30일 기도회를 했다. 파키스탄에 나와있는 성도들과 아부다비에서도 참석하였는데, 파키스탄에 있는 형제들이 이렇게 아프간 형제자매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해본 것이 믿음을 가진 후 처음이라고 이야기하며 너무 감격스러워했다. 아프가니스탄 밖으로 탈출한 성도들은 아프간 소망교회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있다.

강력한 예수 공동체의 필요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그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별히 아프간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극적인 만남 이후 하늘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더불어 그들이 다른 수많은 성도와 함께 주의 나라 안에 있다는 강력한 연대가 필요함을 느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을 지지해주고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신앙 안에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두려워서 마음을 드러내거나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맡기지 못하던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된다.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안에는 남아 있는 성도들이 있고 또 새롭게 연결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대부분 힘든 소식들이다. 전기가 부족하고,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고, 먹을 것이 부족하며 약도 없다. 병원에서 일할 사람들도 부족하여 문을 닫는 일들도 속출하고 있다. 돈의 궁핍 상태이다. 재정이 없고 일자리도 없으며 그나마 일하던 사람들도 일하러 나갈 수가 없다. 특별히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다. 공부하고 수고하던 일들이 결과를 볼 수 없이 멈춰버렸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사람들은 8살에서 12살 딸들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가 있다.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있으며 믿는 공동체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인다. 우리 공동체는 최대한 아프가니스탄 안에 연결된 성도들을 위해 물품을 지원하고 영적으로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해에는 그들이 밀가루를 살 수 있도록 재정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 작은 도움이지만 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은혜가 부어지는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기를 바란다.

ABC 아프간 바이블 칼리지 (Afghan Bible College)는 1년 반 전에 아프간 신자들의 성경공부와 성경 연구를 돕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아프간 사람들이 왜 그토록 성장이 느린지 그리고 왜 사역자들이 지쳐가는지 또한 그 수많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왜 깊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지 늘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우리는 이란에 있으면서 그리고 이란 사역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란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이 박해 때문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하는데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박해를 받는 것으로 치자면 단연 아프가니스탄을 따라올 곳이 없다. 이란에서는 그렇게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지는 않는다. 물론 믿음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하고 말 못할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도 이란에 있을 때 그런 형제들을 보며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몇몇 성도들은 고문으로 죽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그렇게 사람을 죽여버리지는 않는다.

몇 년간 아프간 친구들을 바라보며 이란의 상황과 여러 가지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우선 아프간 사람들은 교육의 기회가 너무 적었으며 이란처럼 기독교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들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란은 정치적으로는 매우 힘들었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유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것을 투자하고 수많은 깨어 있는 대학생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체계가 이미 아르메니아인, 앗시리아인 교회를 기반으로 갖춰져 있었고, 책을 구해서 읽고 해외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통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간 사람들은 함께 믿음을 키워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다. 터키에 나와서조차 서로를 위협하고 이슬람 신앙의 눈치를 보느라 믿음을 드러낼 수조차 없다. 이렇다 보니 배움의 기회가 없고, 배움의 기회가 없다 보니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지지해 주고 서로를 섬길 수 있는 곳이 없어 자라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강력한 공동체가 필요하고 체계적인 가르침과 배울 기회가 필요한 것이었다.

서로에게 기적이 되는 공동체

아프간 바이블 칼리지는 7명의 학생과 2명의 교수님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3개 반이 운영되고 있고, 총 50여 명의 학생이 열의를 가지고 공부 중이다. ABC는 학교 건물도 교실도 없는 온라인 기반의 비대면 실시간 강의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학교 온라인 강의는 녹화된 것을 시청하고 숙제를 제출하는 방식인데, ABC는 100% 줌 (Zoom) 교실에 참여해서 실시간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출석 체크를 한다.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탈레반의 위협 속에서도 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이들이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는지 알 수 있다.

9년 동안 우리와 교제하고 있는 아프간 청년 자벌은 우리가 함께 다니며 가르치기도 하고 비전을 주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팬데믹으로 많이 이동할 수 없는 이 시기에 앙카라 온라인 예배 모임에 참석하고 ABC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몰라보게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체계적인 가르침이 주는 놀라운 변화였다. 지금은 온라인 예배 모임인 앙카라 아프간 소망교회를 인도하며 리더로 성장해가고 있다. 얼마나 깊이 있게 말씀을 전하는지 우리가 전에 알던 그 자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프간 바이블 칼리지 학생들은 서로를 보며 놀라워한다. 세상에 자기 이외에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프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기적이 된다. 그래서 서로를 통해 에너지를 얻고 서로를 통해 믿음이 더 강건해진다. 서로에게 경쟁이 즐거운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우리는 이 ABC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생들이 사역을 경험해 보고 공동체를 섬겨보기도 하고 리더십을 개발할 기회들을 제공하여 성장하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프간 소망교회는 AANC (Assembly of All Nations Churches) 아래의 아프간 교회공동체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특수성으로 건물 교회보다는 온라인 또는 SNS 기반으로 교회 공동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프간 소망교회는 터키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피욘/앙카라/크륵칼레/이스탄불/빌레직/시놉/얄로바 등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아프간 공동체들이 있다. 모든 교회는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고 같은 공동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온라인 예배를 중심으로 모이는 온라인 공동체가 코로나 이후 1년 반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 온라인 예배를 통해 서로 간의 깊은 신뢰를 형성하고 이후 우리가 각 도시를 방문하여 형제들을 모으고, 그동안 쌓아 올린 신뢰 아래서 대면 모임을 시작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크륵칼레, 이스탄불, 시놉에서 교회가 그렇게 시작되었고, 네브쉐히르와 몇 도시에서 작은 모임들이 시작될 예정이다. 하나님은 이 팬데믹 시대에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뛰어넘어 일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고 찾아가고 설득시키고 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서로에게 마음을 쉽게 열 수 없는 이들의 깊은 생각을 아시고 그들이 먼저 신뢰를 형성하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장을 열어주셨다. 몇 달간의 온라인 예배는 그들에게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을 열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주게 되고, 함께 예배에 참석하여 자신의 삶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공동체를 보며 이 많은 사람이 믿음 안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길을 인도하시는 생명의 빛

사역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되고 사람들을 알면 알수록 이 세상의 슬픔이 우리의 존재를 삼켜버리는 경우들이 계속 생겨난다. 그래서 “주님! 더 이상 사역은 못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런 연약함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선교의 방향성을 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주님은 우리 스스로가 선교를 바라보고 비전을 세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가르쳐 주신다. 모든 상황 속에서 눈을 들어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요구하시며 여러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나라를 향한 방향을 보여주신다. 우리 안에 계신 강력한 생명의 빛이 그 길들을 인도하여 가시는 것이다.

아프간 사람들에게는 우선 믿음의 사람들로 구성된 서로의 믿음을 지지하고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연대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믿음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믿음으로 세상에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다. 그래서 꿈꾸어 본다. 현재 터키에서 또는 파키스탄에서, 아부다비에서 믿음을 키워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 이들이 함께 아프간 소망교회를 세우고 든든한 공동체가 되어 언제든지 그곳에 오는 아프간 성도들을 환대해 줄 수 있는 사람들로 준비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뒤에서 든든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돕고 지지해 주는 아프간 소망교회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프간 성도들이 세계를 연결하고 그들 스스로 성장하고 강력해져서 자신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기도하며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로 준비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기대한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외부에 있는 강력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힘이 이 나라의 내부를 변화시키고 결국 물리적인 권력까지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외부에 흩어져 있는 아프간 사람들의 역량을 키우고 그들이 자신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비전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돕고자 한다. 그 중요한 영역이 교육인데, 현재는 터키 안에서 2018년 시작한 빅드림 스쿨에서 영어, 레고, 터키어, 미술 등을 가르치는 교실들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21년 9월에는 온라인 여성대학을 시작하여 미디어 과정과 통역 과정을 조그맣게 운영 중에 있다. 현재 탈레반 아래 교육적인 영역들이 퇴보하고 멈춰버린 것 같은 현실이지만 여러 영역을 더 개발하여 온라인에서 아프간 본토를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생각이다.

2022년 1월 중에 아프간 소망교회 성도들은 3차 연합기도회로 새벽에 모이기로 하였다. 모두 일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 6시경에 온라인에서 기도회를 갖는다. 지난 두 번의 30일 연합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강건케 하시고, 개인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어렵고 슬픈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면에서 마음의 평강을 얻었듯이, 이번 기도회를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교회 공동체가 새롭게 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통해 빛 되신 주님께서 아프가니스탄을 향한 주의 계획을 더 깊이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실 것이다.

4차 CPRT

두혹 M 센터 소개

패트릭/안순자 사역자

안녕하세요. 패트릭, 안순자 선교사입니다. 저희는 2021년 8월 말에 북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구역 두혹으로 들어왔습니다. 두혹이라는 도시, 특별히 북이라크는 다른 중동 나라와는 다르게 복음에 열려 있는 곳입니다. 중동은 많은 분이 생각하듯이 세계의 화약고라고 알고 계시죠. 그러나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감동은 북이라크, 특별히 두혹과 자호는 금광과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금광과 같습니다.

그곳이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지는 여러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이곳에는 28개의 IDP 캠프가 있습니다. 뉴스에서 많이 보셨듯이 시리아 신갈이라는 곳에서 많은 예지디인이 도망쳐 나와 두혹의 7개의 캠프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모술 (성경의 니느웨)에서 IS를 피해 많은 사람이 도망쳐 나와서 두혹의 여러 캠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또 북시리아에서 넘어 온 쿠르드 난민들도 두혹과 자호에 살고 있습니다.

쿠르디스탄 자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이라크는 많은 난민의 집이 되었습니다. 여기 난민들은 기독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많은 사역이 가능합니다. SWM과 동역하는 교회들을 비롯해 중동 지역 전도자와 교회개척자, 선교사들과 동역할 예정입니다. 두혹 지역 정부와의 동역도 중요합니다.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그들이 하는 일들을 축복하고 또 저희가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화하면서 그들에게 직업 훈련도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민족들로 저희가 섬기기 원합니다. 저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특별히 성도님들, SWM 동역자님들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두혹 M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매우 많습니다. 언어, 비즈니스, 테크놀로지, 심지어 수경재배까지 열정만 있다면 두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필요한 사역으로는 전도, 중보기도, 트라우마와 내적 치유 등이 있으며 가정 방문을 통한 사역도 필요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이 이라크를 방문하는 등 이라크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외국인에 대해 이라크가 좀 더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남이라크도 여행 비자를 받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혹에는 시리아 쿠르드인과 다른 종족 출신 쿠르드인들도 와서 사역을 도울 수 있습니다. 두혹은 여러 교육 관련 사역의 중심지입니다. 무엇보다 청소년 사역을 위한 엄청난 기회들이 있습니다. 67.9%의 지역 인구가 30세 미만입니다. 물론 ISIS 등으로 인한 안전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두혹 지역과 정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믿습니다.

저희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현지인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여러 동역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길을 구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동역하기를 원합니다.

4차 CPRT

4차 쿠르디스탄 교회개척리서치 보고

김진영 선교사

2021년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북이라크 쿠르디스탄 두혹을 중심으로 쿠르드 민족과 아랍 민족을 향한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CPRT)이 있었습니다. 쿠르디스탄 CPRT에는 산호세 새누리교회 (5명), 베델교회 (1명), 그리스 선교사 (1명), SWM (2명) 총 9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리서치트립의 목적은 첫째, 두혹에 새롭게 정착하는 패트릭/안순자 사역자의 비전과 사역 방향과 내용을 함께 나누고, 둘째, 난민을 위한 사역을 위해 NGO 단체와의 동역을 구축하며, 셋째, 지역교회와 동역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두혹 M 센터의 비전

쿠르드 민족은 약 4,500만 명으로 4개의 나라 (터키, 시리아, 이란, 이라크)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쿠르드 민족 복음화와 교회개척을 위해 비교적 기독교 활동이 자유롭고 안전한 지역이 북이라크 쿠르디스탄의 두혹 (Duhok)입니다. 이 두혹에 M 센터를 세우고 현지 복음전도자와 교회개척자를 훈련하고 파송하는 사역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혹 M 센터 책임자로 지난 20년 동안 터키에서 사역하시던 중 추방을 받고 요르단에서 3년 동안 아랍어를 새로 배우신 패트릭/안순자 선교사님이 섬기십니다.

두혹 M 센터는 세 가지 사역을 진행하게 됩니다. 첫째는 NGO 사역입니다. 두혹에는 시리아 전쟁 난민들, IS의 대학살을 피해 도망 나온 예지디 난민들, 아랍계 난민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역들이 있는데, 영어/컴퓨터 교육, 의료 사역을 다른 NGO 단체와 함께 진행할 것입니다. 둘째는 현지 교회와의 동역입니다. 현지에 있는 교회와 동역을 통해 쿠르드 민족과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입니다. 또 현지인 복음전도자와 교회개척자들을 훈련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셋째는 현지 교회와 성도들의 자립을 위한 BAM 사역입니다. 이슬람권에서 무슬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 산다는 것은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여러 도전을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현지 성도들의 직업을 창출하고 도우며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사역입니다.

1. NGO 단체와의 동역

쿠르디스탄에 머무는 사역자가 법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주위 난민 캠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현지에 등록된 NGO와의 동역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리서치트립에서는 현지인이 세운 누진 (Nujeen, 쿠르드어로 새 생명이라는 뜻) NGO 단체와 협력하고 예지디 난민을 위한 사역을 하는 하비비 (HABIBI) NGO와 동역을 위해 두 단체의 대표를 만나 앞으로의 사역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시리아 난민들이 정착하여 벽돌집을 쌓고 살아가는 두미즈 (Dumiz) 캠프에 들어가서 사역하는 Nujeen NGO의 현장 사무실을 방문하고 사역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사무실 새 단장을 위한 페인팅을 도와주기도 하고 그 지역 난민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다양한 의료 사역 및 교육 사역의 지원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Nujeen NGO와 함께 앞으로 난민들을 향한 창조적인 다양한 사역들을 캠프 안과 밖에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예지디 난민들은 이슬람 종교를 믿지 않고 독특한 그들만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와 혼합된 유일신 사상)을 믿기 때문에 다른 쿠르드 민족과는 교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지디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캠프 사역은 또 다른 전략과 방법이 필요합니다. 예지디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자호 지역은 하비비 NGO와 협력을 통해 진행할 것입니다.

2. 지역 교회와의 동역

두혹 얼라이언스교회 (사미르 목사)을 중심으로 제자훈련을 하고 리더십을 키워 교회가 없는 지역에 지속적인 복음 전파 활동 및 교회개척을 협력하기로 하였습니다. 두혹 얼라이언스교회는 수도 에르빌에 있는 얼라이언스교회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에르빌교회는 과거 고 김사무엘 선교사 (얼바인 베델교회 파송, C&MA 선교사)가 바그다드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3명의 젊은이를 한국의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으로 보내 졸업한 이후 다시 바그다드에서 팀사역으로 교회를 개척한 곳입니다. 전쟁 중에 에르빌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약 5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하였으며 주위 지역에 교회들을 개척한 첫 교회입니다. 따라서 두혹 교회를 양육하고 성장시키는 일에 M 센터의 선교사팀이 여러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나아가 현지인들을 훈련하고 또 다른 지역에 전도자들과 교회개척자들을 파송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혹 얼라이언스는 여러 도시에 있는 지역 교회와 연계하여 복음전도자 및 교회개척자들을 훈련하는 센터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3. 현지 교회와 성도의 자립을 돕기 위한 BAM (Business As Mission) 사역

외국 사역자와 기관의 재정에 의지하지 않고 현지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현지 교회의 자립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현지 교회와 성도의 자립을 돕기 위한 BAM 전략과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며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사역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비지니스의 플랜을 세우고 진행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BAM 사역을 하는 사역자와의 동역을 통해 현장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비지니스를 연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갈 것을 기대합니다.

두혹 리서치트립을 마치며

쿠르디스탄은 추수의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열려진 수많은 무슬림 난민들의 마음, 복음 전파의 자유, 지역 교회 지도자들의 열정과 헌신, 외국인 사역자들과의 연합과 동역으로 지금 복음을 속히 전파하고 현지 지도자들을 세워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를 개척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환상 가운데 나타나 ‘이리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말한 마게도니아 사람의 음성처럼, 오늘날 잃어버린 쿠르드 영혼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두혹 M 센터를 중심으로 함께 동역할 교회를 부르고 있습니다. 쿠르드 민족 복음화와 난민을 위한 영어/컴퓨터 교육, 의료사역에 관심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이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를 초청합니다.

4차 CPRT

아테네 M 센터 소개

박 데이빗 사역자

안녕하세요. 데이빗 박 사역자입니다. 저희는 그리스에서 무슬림 난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M 센터에서 진행되는 사역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사진 학교, 필름 페스티벌, 그리고 가정교회입니다.

첫 번째 사역은 사진 학교 사역입니다

이것은 직업이 없는 난민들에게 사진 기술을 교육하는 직업 훈련입니다. 그리스 아테네는 관광객이 많은 도시입니다. 사진 학교의 학생들이 여행자들과 동행하며 관광지에서의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난민들이 전문 사진사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도록 훈련 중입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의 장점은 스튜디오나 다른 공간을 임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로 사진 서비스를 광고하고 연락하는 사람들과 스케줄 맞춰서 아크로폴리스 관광지에서 만나면 됩니다.

사진 교육을 받은 난민들은 팀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사판을 들거나 모델이 되는 관광객들의 위치를 선정하는 등 여러 명이 함께 일을 합니다. 훈련받은 청년들은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을 뿐 아니라 결혼식 등 여러 가지 이벤트에서 사진사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를 떠나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풀타임/파트타임 사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현재 난민 커뮤니티 행사에 연결이 되어서 중요한 커넥션과 관계를 통해서 전도할 기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저는 청년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전문 사진사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진을 평가해 주고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알려줍니다. 하루 만나는 시간을 통해 사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관계를 통해 제자 훈련과 영적 지도도 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받는 청년 중에는 무슬림도 있습니다. 이 제자 되는 관계를 통해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독일로 떠난 청년도 있습니다.

사진 학교 사역이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디지털카메라 등의 촬영 장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난민 청년들에게 사진을 가르쳐 줄 수 있도록 재정이 채워지고 장비들을 기부받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사역은 필름 페스티벌입니다

난민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휴대폰으로 3분짜리 영화를 제작하게 하고 심사를 거쳐 상금을 주는 행사입니다.

저는 영상의 퀄리티보다는 난민들의 스토리를 잘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알려줍니다. 그리스로 오기까지 난민 한 명 한 명은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난민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필름 페스티벌은 이런 난민들의 짧은 3분 내지 5분 영상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이 회복되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짧은 영화 제작은 무기력한 난민 생활에 활력이 되며 스스로 자존감을 되찾는 귀한 기회가 됩니다.

난민 필름 페스티벌을 구상한 것은 꽤 오래전입니다. 그런데 영화제를 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리스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연합 선교 기관인 헬레닉 미니스트리를 통해 2021년 9월 11일에 martphone Refugee film festival을 처음으로 많은 난민에게 알렸습니다. 총 40여 명이 참가하고 13개의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심사는 헬레닉 미니스트리의 대표님이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1, 2, 3등만 상금을 주려고 했지만, 한 팀 한 팀이 너무 귀해서 모든 팀에게 조금씩 상금을 주었습니다. 제2회 영화제는 11월에 할 예정이며 앞으로 1년에 5번 정도 주최를 할 계획입니다. 기대하기는 이 사역을 통해 난민 개개인의 회복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나누는 공동체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벌써 영화제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알던 난민 청년들부터 새로 알게 된 청년들까지 영화제 덕분에 많은 이로부터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M 센터로 청년들을 초대하여 같이 서로가 만든 영화를 보고 서로의 삶의 아픔과 고민을 나눌 때 주안에서 이들이 치유되고 변화되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또 바라기는 영화제 사역을 통해 청년 중 영화 제작 등의 은사가 개발되어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팀을 이루어 세계 유수 영화제에 난민 영화를 출품하기를 소망합니다. 개인 한 사람이 영상 제작을 통해 재정을 얻을 뿐 아니라 그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난민 영상팀이 만들어져서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 사역은 가정교회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에는 많은 난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테네로 들어왔다가 독일이나 다른 나라로 떠나기도 하고, 본국으로 추방되기도 합니다. 난민들은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건물 교회를 통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쉽지 않고, 어쩌면 무슬림 나라에서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열 명에서 스무 명의 사람들이 가정에 모여서 같이 식사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 안에서 스스로 한 팀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가정교회의 목적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을 가정으로 초청해서 풍성한 식사와 게임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통해 새 신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다시 가정교회의 리더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가정교회의 복음 전파 사역의 중심 프로그램으로 디스커버리 바이블을 하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 바이블은 여러 사람이 모여 성경을 20절 정도 같이 읽고, 각자가 자기 구절을 맡아서 그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벽에 그 그림을 붙이고 각자가 맡은 부분을 스토리로 나누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나면 각자 돌아가면서 전체 스토리를 다시 정리합니다. 그리고 적용을 위한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스토리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개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받았는가, 어떻게 삶에서 실천할 것인가 등등 삶에 복음의 진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난민들이 성경을 어려운 공부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를 하면 기억이 잘 안 날 수 있지만, 자신들의 그림을 통한 표현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2가정 5명이 한집에서 살면서 가정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손님들이 10명 이상 와서 매주 금요일 이웃과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관계를 쌓고 있습니다. 가정교회 리더들과는 M 센터에서 한달에 두 번 정도 만나서 교제하고 훈련합니다. 가족 교회 사역을 지속하기 위해서 임대료와 음식비 등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고 싶지만 아직 재정 후원이 없어서 못 하고 있는 그룹도 세 팀이나 있습니다. 가정교회 사역을 위한 재정이 잘 모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정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사역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일년에 세 번 정도 가정교회들이 다 같이 모이는 수양회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가정교회로 매주 사람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리더들이 영육간에 회복이 되고 다시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전체 모임을 섬겨 주실 교회들과 성도님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정교회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가정교회의 사역이 커지면 저 혼자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같이 동역하며 가정교회 사역을 담당할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가정교회의 사역을 위한 재정과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M 센터 장소를 마련하고 수리하는 것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몇 달간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진행 중인 사진 학교, 필름 페스티벌, 가정교회 외에도 여러 사역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첫째, 난민 영어교육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미국에 계신 분들과 여기 난민들을 일대일로 연결해 주고 영어를 가르쳐 주면서 관계를 쌓고 전도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쿠킹 클래스입니다. 난민 여성들을 불러서 먹이고 교제하며 요리를 가르쳐주면서 관계를 쌓을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둠 속의 무슬림들이 빛의 자녀들로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유럽이나 본향으로 돌아갈지라도 주님을 본받는 제자 만드는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후원과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4차 CPRT

그리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선교 전략

허창도 목사

그리스 아테네. 이름만 들어도 여행의 충동을 느끼게 할 만한 매력이 넘치는 그곳으로 2021년 10월 15일부터 10월 24일까지 총 10명이 한 팀이 되어 교회개척 리서치트립(CPRT)을 다녀왔습니다. 언젠가 가족들과 꼭 와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은 잠시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 두고, 이번 여행 기간 동안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실지에 대해 집중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테네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사실, 그리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과 경이로운 문화유산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잠깐이라도 정신 줄을 놓으면 내가 지금 선교를 목적으로 왔다는 사실을 깜빡 잊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동행하여 주신 데이비드 박 선교사님의 넘치는 유머 센스 덕분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선교에 집중하느라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그리스 땅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는 리서치트립 내내 저와 우리 팀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감탄과 기대로 채우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짧게나마 받은 은혜와 그리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선교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몇 가지 깨닫게 하신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에게 발견되는 복음에 대한 높은 수용성입니다

아테네M센터에서 기도

풀러 신학교의 선교대학원의 초대 학장으로 『하나님의 선교 전략 (The Bridges of God)』의 저자이자 한국 교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맥가브란 교수는 선교 전략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복음의 수용성을 말하였습니다. 복음의 수용성이란 복음을 받아들이는 정도를 의미하는데 똑같이 복음을 들어도 개인, 집단, 지역에 따라 반응하는 정도가 다 다릅니다. 즉, 수용성이 다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거두는 전도의 열매는 훨씬 커집니다. 이것이 늘 옳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선교 전략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임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에 머무는 난민들은 유독 복음의 수용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난민청년들과 교제

이유는 그리스에 머무는 난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발적으로 난민이 된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난민이 발생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한데 대부분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난민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기 나라의 정치적인 억압을 피해 자유를 찾아 스스로 난민이 됩니다. 혹은 일가친척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가족을 대표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유럽의 선진국에 정착하고자 난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젊은 세대들이며 새로운 사상과 종교에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경향이 큽니다. 저희 리서치팀이 만난 젊은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도 있었고,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믿는 친구를 따라 가정 교회 모임에 참석하며 조금씩 복음에 마음을 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스스로 선택해서 난민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리스에 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위험한 상황을 겪으며 그들의 마음은 낮아져 있었을 것입니다. 구원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할 때 주님의 종들을 통해 전해진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의 마음까지 닿았을 것입니다.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개인과 가정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데에 선용하고 계심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교를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디스커버리바이블

하나님의 선교는 늘 해오던 방식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창의적인 선교 전략을 아테네를 중심으로 난민 선교를 하고 계신 데이비드/레이첼 박 선교사님의 사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사진 학교, 둘째 필름 페스티발, 그리고 가정교회입니다. 사진과 필름, 그리고 미술은 선교사님의 전문 영역으로 이와 같은 예술 분야는 난민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데에 매우 훌륭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난민들은 정착 초기에는 아무래도 현지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언어를 매개로 하는 교육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술을 활용하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 모임에서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분야를 활용하여 복음 이야기를 전해주면, 난민 청년들은 자신들이 듣고 깨달은 바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그림을 한곳에 모으면 그들의 마음을 통해 표현된 복음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마치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디스커버리바이블

그들은 자신들의 휴대폰을 가지고 영화도 척척 만들어 냅니다. 저희 팀은 난민 필름 페스티발에 출품되었던 작품을 몇 편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난민이 되어 어떤 위험한 상황을 겪어야 했는지, 어떤 좌절과 슬픔을 겪어야 했으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스스로 감독이 되고 배우가 되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누군가 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조금씩 회복되고 성장해 나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Revealing is the beginning of healing” 말할 수 없었던 서로의 아픔을 영화를 통해 공유하고 위로하며 그들은 공동체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사진 학교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직업 교육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테네에는 수많은 여행자가 오고 그만큼 사진을 찍어주는 비즈니스의 기회도 많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운 난민 청년들의 형편을 고려하면 사진은 훌륭한 직업의 기회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을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연합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교를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사진학교

아테네는 난민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난민 선교 단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희 팀은 헬레닉 미니스트리를 방문하여 교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38년간 난민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으며, 현지에서는 방송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훌륭하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참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교사, 선교 단체들이 서로 협력하고 연합을 이루어 선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데이빗 박 선교사님과 헬레닉 미니스트리가 서로 협력하고 도우며 필름 페스티발을 주최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개인의 좁은 시선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역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넓은 관점으로 사역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함께 바라보며 서로 연합하여 동역해 나갈 때, 효율성의 차원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복음의 메시지가 사역을 통해 세상 가운데에 전달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중점적으로 묵상했던 말씀 한 구절을 나누고자 합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빌 4:19 새번역)

구원의 손길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통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 즉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섬기는 선교사님들에게도 많은 ‘필요’가 보였습니다. 더 많은 중보기도가 필요하고, 더 많은 관심과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헬레닉미니스트리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사진이나 영화, 미술의 전문가가 계신가요? 단 몇 주 만이라도 아테네에서 난민 청년들을 가르치며 단기 선교로 사역을 도울 수 있습니다. 쓸 만한 카메라가 있으신가요? 기증하실 수 있습니다. 영어를 하실 수 있으신가요? 난민 어린이들과 연결되어 줌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창의적인 방법으로 선교 현장에 참여할 기회를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채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낭비하는 대신 하나님 나라 위하여 헌신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멀리 해외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들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선교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서로 연합하여 함께 사명을 감당할 때에 선교의 사명을 받은 우리의 필요가 채워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굳이 부족한 저희를 일꾼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필요가 채워지는 줄을 믿습니다.

4차 CPRT

조지아 바투미 M 센터 소개

팀 스톤 사역자

조지아 바투미 전경 ⓒ Giorgi Balakhadze,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안녕하세요. 터키 말라티아의 팀 선교사입니다. 저는 바투미 M 센터를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투미 M 센터는 여러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터키 북동부 지역의 교회 개척입니다. 1960년을 기점으로 터키 선교가 시작되었고, 현재 2,5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터키에서 사역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 북동부 지역에는 교회가 없다시피 합니다. 사단은 북동부 지역의 복음화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막아왔습니다. 이제는 새 전략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바투미의 세 가지 장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첫째, 외국인 선교사의 거주가 안전합니다

터키 북동부 지역 복음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외국인 사역자가 북동부 지역 거주 허가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전도 등의 활동이 알려지면 바로 터키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러나 바투미에 센터를 두면 거주 허가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투미에서 터키로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45분에서 90분 거리 안에 많은 미전도 지역이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인 사역자들이 바투미에서 터키 북동부 지역 터키 사역자와 동역하며 장기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거주 허가를 통해 북동부 지역의 교회개척운동을 방해해 온 정부의 간섭을 피할 수 있습니다.

둘째, 터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여러 나라의 사역자와 동역할 수 있습니다

바투미는 지리적으로 터키 북동부 지역을 위한 여러 나라의 사역자들이 모이기 쉽고 같이 연합하기 좋습니다.

셋째, 여러 단체와의 관계입니다

전략적 지역 바투미 ⓒ Flalf,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바투미 M 센터는 쿠르투루쉬 교회 연합과 동역합니다. 쿠르투루쉬 교회 연합은 터키 전역 30개 이상의 교회 연합으로 교회개척에 가장 경험이 많고 활동적입니다. 또 OM 선교회 같은 여러 선교 단체와의 동역도 가능합니다.

바투미 M 센터에서 동역하는 맥클라린 사역자를 소개합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자랐고 터키어에 능숙하며 매우 뛰어난 전도자입니다. 2019년 터키에서 추방당하기 전까지 말라티아에서 사역을 같이했습니다. 맥클라린은 전도자를 양육하는데 은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SNS 등 온라인 전도사역에도 은사가 있습니다. 그는 조지아에서 아제르바이잔 팀을 도와 인터넷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지난 6개월 동안 17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6천 권 이상의 신약 성경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의 80% 이상과 직접 만나 일대일 대화를 나누었으며, 대략 500명 이상의 복음 관심자를 만났습니다! 인터넷 사역을 통해 실제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온라인 사역 경험을 가지고 터키 북동부 지역에 복음의 넓은 그물망을 치기 원합니다. 온라인을 통해 안전하게 복음을 듣고 성경을 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맥클라린 사역자와 같이 바투미 M 센터를 통해 터키에서 추방당한 경험 많은 사역자들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10년, 20년, 심지어 30년 이상의 터키 사역 경력이 있는 선교사들이 지난 2, 3년간 추방당했습니다. 터키의 국경에서 가까운 바투미는 이런 선교사님들의 경험을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켄 와이스트는 터키 성경 연구에 가장 명망 있는 연구자입니다. 그는 터키 성경 번역에 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가르침에 뛰어난 은사가 있는 사역자입니다. 그는 2020년에 터키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제 그는 바투미에서 터키와 다른 언어권 사역자들을 훈련할 것입니다. 바투미 M 센터에서 켄과 같은 귀한 사역자의 경험과 지식이 낭비되지 않고 계속 쓰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투미 M 센터는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장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프로젝트를 인도하고 계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퍼즐의 조각을 맞추시듯 알맞은 때에 알맞은 장소로 이 프로젝트를 인도하셨습니다. 이곳에는 새로운 교회개척자들을 훈련할 경험 많은 터키 출신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바투미에 와서 새로운 리더들을 멘토링 해 줄 터키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말라티아에서 14년 있으면서 세 군데 교회개척의 경험이 있습니다. 전방 개척 사역의 현실을 알고 지역 법과 경찰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압니다. 또한 미전도 지역으로 가기 원하는 교회개척자들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저희는 터키와 외국인 사역자들이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연합팀을 잘 구성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 짧은 지면에서 바투미 M 센터의 모든 것을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동역자님들께서 바투미에 오셔서 직접 보고 이 사역을 위해 같이 기도하기 원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예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하신 중보자, 선교사, 후원 교회를 보내주시길 기도합니다. 터키 북동부 복음화의 관문인 바투미로 주님의 사람들이 모이게 하시며 세밀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미전도 지역들을 저희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투미에서 여러분을 뵙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차 CPRT

하나님의 전략적 요충지 바투미

허창도 목사

바투미전경

쿠르디스탄, 그리스, 조지아, 터키로 이어지는 4차 교회개척 리서트립의 3번째 목적지는 조지아의 바투미였습니다. 10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의 일주일간 바투미와 조지아 국경에 인접한 터키 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이번 선교로 방문하기 전에는 조지아에 대해서 약간의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루지야로 불리다가 정부가 전 세계 국가들에 정식으로 요청하여 2010년 이후로는 좀 더 서구적인 느낌의 조지아로 불린다는 점, 국토의 대부분이 코카서스 산맥 지역에 위치해 있고 그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동유럽의 알프스로 일컬어진다는 점, 와인의 본고장으로 유명한데 그 기원은 자그마치 창세기의 노아에까지 이른다는 점 등이 제가 알고 있는 조지아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투미는 정말로 도무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현지 시간을 알아보려 아이폰의 시계 앱에서 바투미를 검색했는데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바투미가 꽤나 시골인가 보구나’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3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흑해 동쪽 끝 바투미에 다다를 무렵, 무심코 바라본 비행기의 동그란 창밖 풍경에 저는 너무 놀라 앉은 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깊고 푸른 흑해의 연안을 따라 세련되고 높은 현대식 건물들을 줄지어 서 있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과장을 보태 마치 미국 시카고의 마천루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시골 동네 취급했던 저의 무지와 무례함이 부끄러워 조용히 속으로 ‘바투미 미안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도착하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바투미는 이웃 국가인 러시아 사람들이 소치 다음으로 오고 싶어하는 유명한 휴양지라고 합니다. 도심에는 카지노가 운영 중이고 쇼핑할 곳도 많습니다. 제법 세련되고 멋진 고층 건물들이 있을 뿐 아니라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도 있어 도시의 운치를 더합니다. 축구의 DNA가 흐르는 유럽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도시 규모에 비해 꽤나 화려하고 멋진 축구 전용 스타디움을 가지고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차이나 머니 유입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통의 측면에서 중국과 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 지역이며, 흑해를 통해 대양까지 나갈 수 있고 큰 컨테이너를 정박할 수 있는 항구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매우 멋진 국제도시가 바로 바투미입니다.

그런데 바투미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세속적인 관점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믿기로 바투미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의 선교전략이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하나님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입니다. 단순히 좋게 포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실상을 보고 들으면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교 전략의 스케일에 압도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바투미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이번 바투미에서 느낀 점 세 가지를 여러분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바투미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불러 모으고 계십니다

리트릿센터

그것도 각자의 사역 현장과 전문 분야에서 적게는 십수 년 많게는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사역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사역자들의 면모를 보면, 대를 이어 어려서부터 선교에 헌신한 이도 있고, 선교 단체의 총책임자를 맡은 분까지 대단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이번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을 계기로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이 정말로 신기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터키에서 추방된 선교사라는 점입니다. 최근 들어 터키는 외국인 선교사가 추방되는 추세입니다.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사안이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외국인 선교사를 대신해 현지인 교회개척자들의 역할들이 매우 중요해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선교 전략 및 건강한 교회 성장과 부흥의 관점에서 현지 교회의 내적 역량이 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SWM 선교회도 이런 방향성을 잘 알고 있기에 교회개척자들을 지원하며 교회개척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추방이라는 어려운 상황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둘째, 터키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 전략에 있어 바투미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터키 아르트빈

우선 바투미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바투미의 다운타운 인근에는 터키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있습니다. 저희 팀이 갔을 때는 마침 이곳에 사는 터키인 교회가 시작되는 단계였습니다. 언젠가 이 교회를 통해 예수 믿고 구원받은 터키인들이 자기 민족을 위한 복음 전달자가 되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또한 터키인들은 조지아에 매우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터키 내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든 바투미에 와서 바투미에 있는 사역자들의 케어를 받고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어떤 사역자는 내년 여름에 터키 청소년들을 바투미로 데려와 수련회를 가질 계획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수련회를 가질 장소도 이미 마련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희 팀이 만난 분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특별한 노부부가 계셨습니다. 이분들은 젊은 시절에 선교에 헌신하기로 서원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조지아로 가게 하셨고, 바투미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교 사역을 돕고 헌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리트릿 센터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교 전략은 바투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역보고

우리의 관점은 바투미를 통해 터키 선교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관점을 우리의 관점을 뛰어넘으십니다. 바투미를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까지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심을 함께 하는 사역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투미에서 보고 느낀 점과 받은 은혜들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매일 각처에서 오신 사역자들의 사역 보고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간증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어떤 사역자는 이런 간증이 하도 많아 이제는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는 농담을 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교회가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 시대입니다. 더 이상 이전의 열심과 역동성은 찾아볼 수 없다며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역동적으로 일하고 계심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를 원한다면, 답답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바투미를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의 현장으로 시선을 돌려 보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어렵지 않게 찾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이 선교적 삶의 현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선교적 삶을 살아갈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는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될 줄로 믿습니다.

4차 CPRT

4차 터키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이세웅 본부장

들어가는 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열방이 팬데믹에 빠지면서 자발적으로 또는 비자발적으로 많은 사역이 중단되었다. 이렇게 2년이 지났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팬데믹 사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진행 중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코비드 19 백신 접종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백신을 맞기 원하지만, 국가적 단위의 수많은 백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실제로 국가가 백신을 확보해도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상황도 많았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20일 현재 미국의 인구는 3억 3천만 명인데 중국 15억, 인도 14억에 이어 전 세계 인구 제3위 국가이다. 1번 이상의 접종률 75.8% (2억 5천만 명) 2번 이상의 접종률 63.4% (2억 9백만 명)이며 아직도 약 3억 3천만 명 중에 8천만 명 이상이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쾰른대학 의과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우으르 샤힌과 부인 외즐렘 튀레지 ⓒ Raimond Spekking,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SWM 선교회의 주 선교국인 터키 (8천 5백만 명)는 접종률 60.5% (5천 1백만 명)인데 이것은 전 세계 접종률 46.6%보다 높은 수치이다. 독일 바이오엔텍 개발사의 대표 우으르 샤힌 (터키 이스켄데룬 출신)이 터키계 독일인이기 때문에 터키가 우선순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부인인 외즐렘 튀레지와 오스트리아 의사인 크리스토퍼 후버와 함께 설립한 바이오엔텍 회사가 화이자와 함께 2020년부터 개발한 화이자 백신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왜냐하면 일상이 정지된 것처럼 기억에 남아있고 실제 우리 생활도 그렇게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1년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 보였다. SWM 선교회도 동역하는 교회 리더십들의 권유에 따라 터키와 중동 현장의 사역을 위한 동원을 잠시 멈추고 코비드 사태를 주시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코비드 상황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현장의 사역자들을 통해 계속 듣게 되면서, 2020년 10월에는 SWM 미디어팀 사역자들이 코비드 19가 창궐하는 터키를 약 2주 일정으로 방문하였다. 50명 이상의 교회개척자들,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 배경의 성도들 그리고 현장 사역자들을 직접 만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터키에서 일하고 계신지 영상에 담았다. 그것을 5개의 영상으로 편집하여 “성령의 불” 시리즈 영상을 제작하였고, 2021년 1월부터 5월까지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에 보고하면서 초대교회의 요람인 터키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알고 함께 주님과 동행하는 사역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주께서 우리를 일으키셨다. 할렐루야!

SWM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이해하기

SWM의 CPRT (Church Planting Research Trip)는 2017년 터키에서 시작되었다. 터키의 복음관심자들을 위해 터키 81개 주마다 최소한 1개의 교회를 세우자는 터키교회의 기도제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느 주에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016년 당시 터키 81개 주 가운데 하나의 교회라도 세워진 곳은 46개 주였고, 한 개의 교회도 없는 곳은 35개 주였다. 이것은 터키의 복음관심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성경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다는 뜻이다. 차로 5시간 또는 10시간을 가야 교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CPRT를 시작하면서 성령께서 SWM 리더십에게 주신 마음은 C.I.S.였다. CIS는 Comfort (위로하라), Impart (성령의 능력을 나누라), Serve (섬기라)의 약자인데, 위로하고 능력을 나누고 섬기는 마음으로 CPRT를 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교회개척을 위해서는 새로운 장단기 전략과 외국인, 현지인 교회개척자들이 필요하겠지만, 성령께서는 터키에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위로하고, 능력을 나누고 섬기는 것이 SWM 선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SWM 선교회는 터키 선교를 완성하기 위해 연합하고 기도하는 소명을 받았기에 SWM 선교회가 시작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다른 선교사들과 경쟁이 되거나 중복되는 사역을 하지 않기 위해 SWM 선교사를 현장에 파송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 결정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키면서 현장 선교사들과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연합과 동역을 통해 연합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SWM 선교회가 모든 사역의 주권을 여호와 하나님께 위임해 드리면서 연합사역을 통해 현장을 섬기는 역할을 계속 담당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2014년부터 시작된 터키와 중동의 난민 사역과 2018년부터 시작된 SWM의 교회 개척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SWM 선교회를 이미 이 시대의 전방개척사역을 위해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인 연합하는 마음을 지켜나가면서 SWM 선교회가 현장에서 직접 해야 할 많은 사역들을 조사하고 개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필요한 경우 미국과 한국의 본부사역자들이 현장을 방문 또는 체류해서 사역하고 필요하면 사역자를 파송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터키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다.
터키에는 일곱 개의 행정 권역이 있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마르마라해 권역,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한 에게해 권역, 앙카라를 중심으로 한 중앙 아나돌루 권역, 북쪽의 흑해 지역의 삼순과 트라브존을 중심으로 한 흑해 권역, 동부의 반을 중심으로 한 동부 아나돌루 권역, 동남부의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한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 아다나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권역이다.

이스탄불이 중심인 마르마라해 권역과 이즈미르가 중심인 에게해 권역은 교회개척 대상 지역에서 제외했는데 그 이유는 터키의 많은 교회가 대도시인 이스탄불, 이즈미르, 앙카라에 이미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7년부터 시작된 지난 4번의 터키 CPRT는 중앙 아나돌루 권역, 흑해 권역, 동부 아나돌루 권역,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 지중해 권역에 집중했다. 2020년은 코비드 확산으로 CPRT 사역을 2021년으로 연기했었다.

앙카라 동쪽은 교회가 없는 지역이 너무 많고, 여러 민족이 살고 있어서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사역이 매우 필요한 지역이다. 터키 정부는 앙카라 동쪽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거주 비자를 심하게 제한하면서 복음이 가장 필요한 지역에 외국인 사역자들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다. 터키 교회개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역단체들의 주 목표지는 앙카라 동쪽이다. 터키 정부의 정책과 교회가 개척되어야 하는 지역이 정확히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영적 전투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이 영적 전투의 현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현황을 알고 기도하며 총력을 집중해서 터키 앙카라 동쪽에 교회가 개척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연합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그런데 터키 정부가 앙카라 동쪽에 거주하는 외국인 사역자들을 제한하는 정책은 엉뚱한 이유로 벽에 부딪히고 있다. 그 이유는 터키의 난민들이다.
터키 정부는 터키에 들어오는 난민들을 거부하지 않고 체류를 허용하고 있다. 11년 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후, 시리아 국경도시 코바니에서 탈출한 시리아인들이 가지안텝과 수루치에 난민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터키 국경도시인 가지안텝 근처 수루치에 난민 수용소가 만들어졌다. 이때 최대 70만 명의 난민들이 이 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 지역 외에도 열악한 난민 수용소들이 여기저기 세워졌었지만, 지금은 몇 곳 남지 않았다. 터키에 들어온 약 4백만 명의 시리아, 이라크, 아프간, 이란 난민들은 대부분의 수용소가 없어짐에 따라 자신들의 형편에 맞는 곳에서 살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들이 한곳에 모이면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터키 전역 81개 주에 이들을 흩어 놓았다. 난민들은 터키 정부가 지정한 도시에서 살아야만 유엔 난민으로 신청할 수 있고 난민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 통제 방법으로 난민들이 지정된 도시의 경찰서에 가서 지문을 찍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번 신고해야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지역에 따라 2주일에 한 번 신고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터키 경제가 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난민들에 대한 터키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데 터키 정부는 터키의 모든 난민을 재인터뷰해서 문제가 있는 난민들을 본국으로 추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난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81개 주에 흩어 놓은 난민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있다. 할렐루야!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조국에서 박해를 받아 터키 난민으로 들어온 이란 난민, 시리아 난민 그리고 이라크 난민들이 있다. 이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매주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앙카라 동쪽에 외국인 사역자를 배제하기 원하는 정부의 정책이 바로 이러한 난민 정책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터키 땅에 임하시고 무슬림 난민들에게 꿈과 환상과 계시 가운데 말씀하시고 자신을 나타내고 계신다. 그래서 자신의 조국에서는 이슬람의 사회적 구조와 억압 그리고 가족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감시체계로 인해 복음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무슬림들이 자기 땅을 떠나 터키에 와서는 이슬람이 아닌 진리에 목말라하고, 특히 그들이 들어보았던 사랑의 종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복음관심자들이 되고 있다. 이처럼 무슬림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들이 난민들의 이동을 통해 터키에서 그리고 여러 난민이 머무는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터키는 물론이고 이웃 나라인 그리스,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등에서 복음관심자 무슬림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고 하셨고 또 바울 사도를 통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고 말씀하신다.

2021년 4차 터키 CPRT 현장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기(Pray on-site with insight)

4차 터키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지도

한국과 미국 그리고 터키에서 참가한 23명의 4차 터키 CPRT 팀은 11월 1일 이스탄불에서 처음 만났다. 이미 쿠르디스탄과 그리스 아네테, 조지아 바투미 M센터 사역부터 함께한 분들과 SWM Korea 사역자들, 터키에서 2021년 7월부터 사역을 시작한 HWM 1기 4명과 여러 명의 터키 사역자들이 함께했다. 미국에서는 SWM USA 본부 사역자들과 마라나타 비전교회 리더들 그리고 뉴잉글랜드 은혜장로교회 리더들이 참가했다.

이번 터키 CPRT는 그동안 방문할 수 없었던 흑해 권역의 삼순에서 출발하여 해안도로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교회가 세워진 곳은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개척자들을 만나고, 교회가 없는 곳에는 복음관심자나 교회개척자들을 만나 기도하며 예배하는 사역으로 진행되었다. 흑해 해안도로가 끝나가는 지역에 있는 호파에서 터키 동부 아나돌루 권역으로 길을 바꿔 카츠카르 산맥을 넘어 아르트빈을 지나 아르다한 그리고 카르스를 지나면 쿠르드인들의 도시인 반이 나온다. 반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 터키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의 관문도시인 디야르바크르가 나오고 마르딘, 하란, 가지안텝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안디옥교회가 있는 하타이를 방문하면 그곳이 지중해 권역으로 동쪽 끝자락이다.

이스탄불

이스탄불
이동버스 안에서

11월 1일 4차 터키 CPRT 팀은 이스탄불에서 터키인, 시리아인, 이란인 교회개척자 8가정과 이스탄불 사역자 5가정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듣고 함께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기도회는 허강한 사역자와 터키인 다니엘 규나이 목사가 인도하였는데, 코비드 팬데믹으로 인해 2년 만에 터키를 방문한 우리 팀 23명과 이스탄불에서 우리를 맞아준 이스탄불의 사역자들, 교회개척자들 약 20여 명, 총 40여 명이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사역을 보고하고 예배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어려움과 기쁨, 시련과 승리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터키의 하늘을 여는 은혜의 첫날을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은 어려운 시간 가운데서도 신실하신 그 사랑으로 이스탄불의 터키인 무슬림들과 시리아, 이란, 아프간 무슬림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이스탄불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서기 330년에 세워졌고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다. 콘스탄티노플의 그 이전 이름은 비잔티움이며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점령하여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꿨다. 이스탄불은 인구가 약 1천 6백만 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약 2천만 명으로 터키 전체 인구의 약 24%가 사는 인구수로 첫 번째 주이다.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1299년부터 1922년까지의 623년 동안에 여러 종교를 관용적 태도로 허용했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의 제국으로 남아 있지만, 실제로 오스만 제국 내의 타민족들에게 전파되는 종교에 대한 것만 그렇다. 오스만 제국을 세운 투르크족들은 서기 900년 이후 계속 이슬람을 따랐기 때문에 자신들의 민족인 투르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막아왔다. 따라서 투르크인들은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지난 1,100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다. 터키에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이 어려운 구조적 이유이다.

삼순

삼순교회

흑해 권역 특히 삼순은 성경의 본도이다. 본도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삼순의 인구는 2020년 현재 1,356,079명으로 81개 주 가운데 인구수로 16번째 주이다. 삼순에는 “5월 19일 대학교”가 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파샤 장군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오스만 제국이 전승 국가들에 의해 산산조각 날 때 터키 독립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 삼순에 도착한 날이 바로 5월 19일이어서 이를 기념한 이름의 대학이 세워진 것이다. 이 공로로 그에게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투르크”라는 이름을 1934년 터키 의회가 헌정하였다. 이런 배경을 가진 지역인만큼 이슬람보다는 민족주의가 강해서 투르크인이 바로 무슬림이라는 것을 민족적 정체성으로 지켜내고 있는 지역이다. 교회 개척이 너무 힘든 지역이다.

삼순에는 2011년부터 주 안에서 친구가 된 삼순 개신교회 오르한 피차클랄 목사가 있다. 우리가 방문한 11월 2일이 그의 51세 생일이라고 삼순 사역자들이 미리 귀띔해주어서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 갔다. 미국의 기도자 한 분이 이 이야기를 듣고 준비해 준 멋진 모자이다. 오르한 목사는 모자를 좋아한다. 흑해 지역은 겨울에 꽤 춥기 때문에 머리숱이 적은 오르한 목사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2년 만에 터키를 방문했는데 왜 11년 전 일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처음 삼순을 방문할 때의 일이다. 2011년 9월 23일 김성간 목사와 나는 삼순에 도착했다. 터키 동부의 큰 도시 반에서 이틀 정도 도시를 걸으며 중보기도를 하고 나서, 김성간 목사가 나와 함께 꼭 삼순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는 이상하게 방문하기가 싫었는데 그 이유를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김성간 목사의 주장에 등 떠밀려 그렇게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삼순을 가게 되었다. 이즈음에 김성간 목사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다. ‘광야에 길이 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느냐? 길이 없는 광야에 자꾸 가다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설득이 되었다. 광야 같은 터키와 이슬람권에 길을 내는 방법은 자주 현장을 가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 동의가 되었다. 처음에는 길처럼 보이지 않던 발자국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길이 되는 이 평범한 원리가 우리의 교회개척운동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삼순

2011년 9월 삼순을 방문한 날은 유난히 비가 내렸다. 삼순 교회를 처음 방문하는 우리를 위해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올 상황이 아니었는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다가 어느 지점이 되면 운전사에게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 공항에서 삼순교회까지의 오르한 목사의 안내였다. ^^
우리는 터키어를 하지 못하는데 그 말을 하고 버스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터키어를 적어서 영어식으로 외워 긴장하며 우리가 아는 지명이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가 찾는 지명을 발견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빗속에 빨간 십자가를 보았다. “내려 달라! 우리를 내려 달라! 저 교회에 갈 수 있도록 내려 달라!”

무슬림 버스 운전사는 교회에 가기 위해 환한 얼굴로 내리는 우리를 보며 레몬수로 손을 씻고 있었다. 2011년 라마단 기간은 8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였는데, 라마단이 끝나고 약 한 달 후에 교회를 찾아가는 외국인 이교도를 만난 것이 부정을 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는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며 손을 씻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삼순교회는 작은 4층 건물의 2, 3, 4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2층은 교회 사무실이며 오르한 목사의 사무실 그리고 CCTV를 볼 수 있는 보안실의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3층은 약 50명 정도가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며, 4층은 게스트 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게스트 룸에 머물렀는데 샤워실도 있고 더운물, 찬물이 모두 잘 나오는 곳이어서 참 좋았다. 이때부터 터키 사역의 파트너인 김성간 목사와의 동침이 지금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다. 거룩한 동침이다.

오르한 목사의 매일 주요 일과는 교회를 찾아오는 두 그룹을 상대하는 것이다. 한 그룹은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고 교회 문과 창문을 공격한다. 당시 오르한 목사의 어린 외아들인 쿠빌라이는 납치의 위협을 몇 번 받았고 오르한 목사도 살해 위협을 몇 번 받았기 때문에 삼순 경찰들이 교회 앞에 이동 방범초소 같은 것을 설치해 놓고 교회와 오르한 목사 가족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르한 목사와 식사 교제를 할 때는 오르한 목사의 경호를 맡은 경찰관의 식사도 대접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

또 다른 그룹은 교회에 들어와보고 싶어하고 또 복음에 대해 질문도 한다. 삼순 중심가에서 5월 19일 대학교에 가는 길에 삼순교회가 있다. 이 때문인지 대학생 그룹이 교회를 찾아오는 일이 많다. 강의가 비는 몇 시간에 갈 곳을 생각하다가 교회를 찾기도 하고, 오르한 목사가 대접하는 차를 마시며 숙제를 하다가 복음에 대해 토의도 하는 대학생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두 그룹이 삼순교회를 견고하게 하고 성장하게 했다. 교회 건물을 공격하는 터키 무슬림들은 주로 민족주의자들로서 삼순이 터키 독립운동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 특히 십자군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무슬림 선조들이 죽임을 당한 것 때문에 기독교의 복음을 거부하는 그룹이다. 십자군 당시에는 전쟁하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오르한 목사에게 복음에 관심이 있다고 성경을 보내달라거나 방문해달라고 요청하는 터키인들도 있다고 했다. 차로 6시간 이상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지역의 교도소에서도 그런 요청을 받고 있었지만, 오르한 목사는 공격받는 교회 건물을 지켜야 하고 복음관심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동역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좁은 교회사무실에서 CCTV를 쳐다보며 긴 세월을 한숨으로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방문한 다음 해에 삼순교회를 돕기 위해 외국인 동역자 몇 가정이 삼순에 이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6개월이 채 되기 전에 그 동역자들은 삼순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약 2년이 지나고 미국에서 온 외국인 사역자 두 가정이 삼순에 정착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또 몇 개월이면 떠날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의구심으로 마음의 평안이 없었다. 그런데 이 두 가정이 삼순에 정착한 이후 오르한 목사의 얼굴에 웃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와우~

삼순

웃는 얼굴과 찡그린 얼굴은 다르다. 동역자가 된 두 가정이 오르한 목사가 필요한 사역들을 함께 섬기며 삼순교회의 지도자인 오르한 목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제자들이 세워지고 난민들을 돌보며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의 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서 자라고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수백 명에 달한다. 대학생들은 졸업 후 자신의 고향이나 직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삼순교회에 정착하는 성도들은 그렇게 증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힘을 얻고, 믿는 자의 수를 더하는 사도행전의 역사가 삼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납치 위협을 받고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불이익을 받았던 오르한 목사의 외아들 쿠빌라이는 북키프로스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의사 과정을 이수한 후에 지금은 이스탄불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터키 교회의 재정적 자립에 대해 오르한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터키 교회의 미래는 밝습니다. 터키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께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를 믿으면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집에서 내쫓기기도 하지만 제 아들을 보세요.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중고등 학생 때는 기타를 치며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했어요. 지금은 의사가 되어 삼순교회에 헌금하는 귀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약 2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하면 터키 교회도 재정적으로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단계로 나가리라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복음관심 무슬림들에게 예수가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설명하고 대화하며 가르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키워내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11년 아무 동역자도 없던 삼순교회의 오르한 목사는 현재 오르두, 시놉, 초룸, 악사라이 다섯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2014년 세워진 외국인 사역자 가정들과 아름다운 동역을 통해 삼순교회가 힘을 얻고, 지도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는 행복한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진 것이다. 그동안 오르한 목사를 웃게 했던 그 사역자 가정들은 원하지 않지만, 터키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두 가정을 삼순으로 보내셔서 교회가 힘있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 주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시기를 기도한다. 2022년에는 아마시아와 토캇에 교회가 개척될 것이다. 그리고 흑해 권역 18개 주의 1천 3백만 명을 위해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계속해서 개척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되고 교회가 개척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삼순교회를 방문한 우리 팀은 이스탄불 M 센터 허강한/강안나 디렉터와 HWM 1기 4명으로 구성된 예배팀의 인도로 약 60명 이상이 모여 함께 찬양했다. 그리고 삼순 지역 영적 상황에 대한 오르한 목사의 브리핑을 듣고 삼순교회와 흑해 권역을 위한 뜨거운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예배가 끝난 후에 오르한 목사는 삼순교회에 예배팀이 너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우리는 교회 개척에 찬양인도자들이 중요한 부분인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모임에는 삼순교회 교회개척자들이 함께 하였다. 터키인 교회개척자 탄셀, 아흐멧과 이라크인 교회개척자 아르칸, 사르곤, 이산, 마헤르 그리고 아프간 교회개척자 카림이 함께 했다. 그리고 교회개척자 후보 세 가정의 부부들이 참석해서 SWM 교회개척사역과 어떻게 동역할지를 나눴다. 각 교회 개척자들이 지난 1년의 사역을 보고하고 기도제목을 나눈 후 우리 모두가 함께 삼순교회와 교회개척자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지난 수년간 삼순교회에서 예배인도자로 그리고 이란인 교회개척자로 매 주일 삼순교회 예배와 이란인 교회를 섬기고 난 후에 약 2시간 떨어져 있는 시놉을 버스를 타고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던 이란인 샤힌 사역자는 캐나다에 난민 신분이 받아들여져서 10월 말에 캐나다로 떠났다. 샤힌 사역자가 정착한 캐나다의 동쪽 끝에 있는 할리팍스 시에는 약 1,000가정의 이란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며 이들을 향한 영적 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왔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캐나다의 이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이들의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캐나다에서 샤힌과 카타윤 부부의 또 다른 교회개척사역을 보게 될 것을 위해 기도한다.

오르한 목사의 51세 생일축하 파티

오르한목사 생일파티

참 특별한 시간이었다. 단 하루를 삼순에서 머무는데 그날이 오르한 목사의 51세 생일이라니 꼭 축하하라는 성령의 인도로 생각되었다. 약 20년 전, 30대 초반에 가지안텝 출신의 회계사였던 청년 오르한은 믿음을 가지고 안탈리아에서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다. 개방된 관광 도시인 안탈리아에서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가던 오르한 목사는 수년간 모아 놓은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을 사기당하면서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오르한 목사 가정을 흑해의 삼순으로 부르신 시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를 찾으시는 것 같다.

생일축하 저녁 식사에는 삼순교회 지도자들의 가정, 교회 개척자들의 가정 그리고 우리 팀 거의 60명 가까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바닷가의 (흑해는 모든 도시가 바닷가에 있다^^) 멋진 식당 2층을 통째로 빌려서 축하 파티를 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몇 분이 이런 사역에 사용해 달라고 주신 헌금을 유용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팀들이 준비해 온 생일축하 배너를 벽에 걸고 생일축하 모자를 오르한 목사와 귤 사모에게 씌웠다. 터키인, 이라크인, 이란인, 아프간인, 한국인들이 모여 터키 현지교회 목회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 시간은 정말 위로와 사랑의 시간이었다. 오르한 목사에게 생일선물을 준비해 준 자매가 손수 구운 스콘과 피칸 파이를 디저트로 나누는 흐뭇한 시간도 있었다. 우리가 터키에서 현지인 목사를 위해 이런 규모로 한 첫 생일파티였다. 무엇보다 터키 교회 리더들과 성도들이 우리와의 이런 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것을 감사하였다.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주님으로 계시니 민족과 방언, 백성과 나라를 넘어서는 연합과 하나 됨이 이루어진 것이다.

시놉

시놉교회

삼순을 떠나 터키의 최북단 도시인 시놉을 방문했다. 시놉은 관광도시이면서 항구이다. 시놉의 인구는 216,000명으로 인구수로 72번째 주이다. 시놉은 싱싱한 생선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도시라고 기억하고 있다. 시놉에는 몇 년 전에 시작된 이란인 난민공동체가 있었고, 이들을 삼순의 샤힌 사역자가 매주 왕복 4시간 버스를 타고 다니며 2년 이상을 섬겨왔다. 그리고 삼순교회가 지교회를 세우기 위해 작은 공간을 빌려서 시놉개신교회를 개척했고, 현재는 아프간인 교회개척자 카림 형제가 섬기고 있다. 카림 형제는 이 지역의 아프간인, 이란인 난민들을 섬기면서 터키인 복음 관심자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있다. 우리 팀이 방문하여 아프간 난민들과 함께 찬양하고 예배한 후에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카림 사역자는 영어를 잘했고, 의외로 영어 소통이 가능한 아프간 난민들이 있어서 그들의 사정을 짧게나마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

제일 앞자리에 앉은 장년 남자 한 분이 기도를 부탁했다. 2주 전에 탈레반에게 아들을 잃고 기도를 부탁하는 그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는데 그의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기도하는 우리도 그 마음을 나누며 하나님의 위로를 눈물로 간구하였다. 돌아갈 나라가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본향이며,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들을 위로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교회 근처의 식당 하나를 발견하였다. 3층 건물인데 1층은 생선을 팔고 2층과 3층 다락방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놉교회 교우들과 우리 팀 거의 50명에 가까운 성도들이 식당에 들어가 싱싱한 생선 요리를 맛보는데 아프간 난민들은 집에 있는 식구들까지 부르느라 분주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찾아온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프간 난민들이 우리와의 예배와 식당에서의 맛있는 생선 요리를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기도한다. 2021년 8월 15일 아프간을 다시 점령한 탈레반 정권이 미국에 협조한 아프간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말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지 하나하나 들으면서 아프간에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미국에서 몇 분들이 헌금해 주셨고 미국 달러가 강세여서 터키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감사했다.

초룸

시놉의 카밀 사역자와 아프간 난민들과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우리는 초룸으로 출발했다. 초룸의 인구는 약 53만 명으로 인구수로 42번째 주이다. 초룸을 사탄의 발톱이라고 보고한 교회개척 단체의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너무나 많은 사역 단체들이 초룸에 교회를 세우기 원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슬람이 강한 보수적인 이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기에 사탄의 발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약 3년 전에 삼순교회의 아르칸 교회개척자를 통해 이라크 난민공동체가 초룸개신 교회를 개척하였다. 바그다드에서 영어 교사를 하던 한 자매의 가정과 그녀의 두 남매가 이라크 난민 자녀들 약 30명에게 영어와 수학 그리고 아랍어를 집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 집이 가정교회가 된 것이다. 약 2년 이상 초룸에 교회를 개척한 이 자매는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터키에서 캐나다로 난민으로 받아들여진 가정이 세 가정인데 모두 캐나다에 적응하는 것과 특히 본인들을 받아주는 예수 공동체를 찾는 데 어려움을 말하고 있어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초룸개신교회는 현재 이산 형제가 섬기고 있고, 삼순개신교회의 법적 우산 아래 지역 행정관청과 이웃들에게 법적 정당성을 보장받고 있다. 삼순개신교회는 약 1년 전에 바크프 (재단) 지위를 획득하여 여러 곳에 적극적으로 지교회를 세우고 있다.

2년 전에 초룸교회를 방문했을 때에는 20여 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모여 조용히 예배드렸었다. 이번에 방문해 보니 이 교회의 창립 그룹인 이라크 난민들 그리고 지금은 이란 난민들과 소수의 터키인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들 포함 5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고 있었다. 우리 팀을 포함해서 거의 80명 정도가 찬양하며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성령의 큰 역사를 느끼게 되었다. 사탄의 발톱이 뽑히고 빛이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초룸교회를 섬기는 이산 형제는 영어도 탁월해서 아랍어를 영어로 또 영어를 아랍어로 통역하는 은사가 있고, 찬양 인도와 연결해서 말씀을 전하는 은사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산 형제를 통해 초룸교회가 말씀 위에 세워지고, 더 깊은 말씀의 토대 위에 의의 나무들이 세워져 가기를 기도한다. 예배 후에 거의 80명에 가까운 교우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은 정말 기쁨이었고 놀라움이었다. 말씀과 예배 위에 세워지고 성장하고 있는 초룸교회를 통해 많은 터키인과 난민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한다.

아마시아

밤이 늦었지만 초룸을 떠나 우리가 잠을 잘 아마시아로 출발했다. 왜냐하면 삼순교회의 다음 교회개척 할 도시가 바로 아마시아이기 때문이다. 아마시아는 인구 33만 5천 명, 인구수로 57번째 주이다. 몇 년 전부터 삼순교회 아르칸 사역자를 지원하는 열린문장로교회 단기 팀들과 2번 이상 이 지역을 방문하여 교회개척을 위해 기도해 왔다. 아마시아를 비롯한 토캇 등을 방문하여 난민 가정을 방문하고 간증과 복음을 선포한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교회개척으로 열매 맺고 계시는 것을 보고 있다.

오르두

오르두는 크지 않은 주인데 오르두는 터키어로 육군 또는 육군 부대라는 뜻이다. 주 인구는 2020년 추정 761,400명이며 인구수로 30번째 주이다. 크지 않지만 대학교가 있다. 흑해 지역은 오스만 제국 시절 그리스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다. 그리스 정교회에 속해 있는 그리스인들이 흑해 지역에 많은 교회와 신학교를 세웠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오르두에 있는 타스바쉬 교회는 그 규모가 작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건물들은 신학교와 수도원을 상상하게 한다. 바닷가 길에서 잘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타스바쉬 교회는 현재 박물관이다. 가슴 아프지만 그 이전에는 오랫동안 감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오르두에 세워진 오르두 아가페교회는 삼순개신교회가 세운 첫 번째 지교회이며, 2015년 6월에 개척되었다. 2014년 SWM 킹덤 아웃리치가 시작한 첫해에 흑해 아웃리치팀은 삼순에서 시작해서 트라브존까지 중보기도 사역을 했다. 그때는 오르두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기도하다가 터키 시민들을 만나면 복음 팔찌와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사역을 했었다. 아침에 호텔 안에 있는 텐트식당에서 우리 팀은 사역을 나가기 전에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하는 중에 “이곳에 교회가 서겠느냐?”는 음성이 들려왔다. 일행 중에 누가 물어보는가 하고 눈을 뜨고 보니 모두 기도하고 있었다. 멈칫하고 있는데 그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이곳에 교회가 서겠느냐?” 누구의 음성인지 알게 되자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님, 저는 모르지만 주님의 뜻이면 이곳에 교회가 설 것을 믿습니다.” 그 음성은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누구에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거룩한 시간이었기에 큰 부담을 가지고 오르두 사역을 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그리고 2년 후에 오르두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할렐루야~

오르두 아가페교회를 세운 사역자는 삼순교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동역으로 작은 공간을 빌려서 교회 건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많은 삼순교회 성도들이 교회 건물을 페인트 칠하고 고치는 작업을 함께하게 되면서 외롭지 않게 오르두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다. 이미 세워진 삼순개신교회가 우산이 되어 법적인 지위를 제공하고 기도와 동역자들을 나누는 관문교회의 역할을 하면서 첫 교회를 재생산해낸 것이다. 이것이 터키 교회가 꿈꾸는 이슬람권의 교회개척 전략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터키에서 교회로서의 법적 지위를 얻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또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터키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오르두교회는 외국인 사역자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도 사역하고 있지만 삼순교회라는 현지인 교회와 동역하면서 오르두시의 이웃들과 정부와의 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가고 있다.

오르두교회

몇 년 전부터 오르두 교회는 언덕 위 오래전에 세워진 타스바쉬 박물관을 교회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오르두시에 요청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때에 정부의 허락도 받게 되리라 생각한다.

2014년 흑해팀이 오르두를 방문했을 때 이 타스바쉬 박물관을 방문해서 기도하면서 이 박물관이 원래 세워진 목적대로 교회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우리 팀이 박물관에서 기도하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경찰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해서 우리 일행의 여권을 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터키에서 외국인에게 여권을 보자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 일행 8명 중 2명은 먼저 차로 걸어가고 있었고 6명은 박물관 앞에서 만난 남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복음 팔찌를 주고 설명하면서 그중에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학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 여권을 손에 쥔 두 명의 경찰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학생들에게 성경을 주었는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여기를 방문한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전화로 터키 전역에서 킹덤 아웃리치 사역을 하는 팀들에게 긴급 기도요청을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우리와 함께 있던 터키어를 하는 사역자가 경찰에게 설명했다. “우리가 손목에 복음 팔찌를 찾고 있으니까 이 학생들이 그것이 무엇이며, 얻을 수 있냐고 물어서 주었다. 그 복음 팔찌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고 팔이 부러진 학생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들인데 우리의 믿음에 관해 물어보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두 경찰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성경을 주지 않았으면 괜찮다. 문제가 없다. 복음 팔찌를 주어도 좋고 또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니 우리는 그 학생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서 당신들을 보내주고 싶지만 이 도시의 가장 높은 지위의 경찰 간부가 오고 있어서 여러분을 그때까지 보낼 수 없어서 미안하다.” 아니 이것이 터키 경찰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팀이 방문하기 며칠 전에도 흑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외국인들이 추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거의 두 시간을 두 명의 경찰들과 함께 빼앗긴 여권을 받기 위해 기다렸고 경찰 고위 간부가 와서 우리의 사정을 모두 들은 후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오르두 교회는 이란 난민 성도들과 터키 성도들이 모여 매주 예배드리며 예수의 제자로 성장하고 있다. 오르두 교회가 원하는 타스바쉬 교회에서 예배드릴 날을 손꼽아 기도한다.

4차 터키 CPRT 팀 23명은 작은 오르두교회를 방문하여 외국인 사역자와 그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란인 교회개척자 베흐루즈와 메리암 부부와 함께 터키어 한국어로 찬양하며 뜨거운 예배를 드렸다. 허강한 사역자와 HWM 팀이 이끄는 경배는 정말 능력으로 나타났고 오르두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난민들은 모처럼 풍성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우리가 방문한 삼순, 시놉, 초룸, 오르두교회 모두가 예배를 인도할 찬양 사역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서 우리가 도와야 할 사역이라고 마음에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예배 후에 오르두 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일행은 함께 식사하면서 귀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 식당에서 귀한 일이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 터키 사역자 한 가정이 5년 전에 세례를 준 성도를 오르두에서 만나게 되어 눈물의 재회를 하는 것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더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오르두 교회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5시간 떨어진 도시 호파를 향해 출발했다. 식당 앞에서 다음 사역지로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오르두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난민들을 보면서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르두교회 성도들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위로와 성령의 능력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베흐루즈 교회개척자의 간증은 이번 호에 함께 실려 있어 여러분이 꼭 읽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호파

호파

호파는 인구 17만 명의 아르트빈주의 한 도시이며 인구는 약 3만 명 정도이다. 이 작은 도시는 터키 동부 아나돌루로 넘어가는 도시이며 조지아와 국경을 마주한 국경도시이기도 하다. 호파에서 조지아 국경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데 그 국경에서 가까운 바투미에 SWM M 센터가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협력을 위해 호파교회를 방문한 것이다. 이 도시에 예수 공동체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듣었지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앙카라 쿠르투루쉬교회가 교회를 개척했다.

이곳에 교회를 개척했던 터키인 가정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파를 떠나게 되어 앙카라 쿠르투쉬 교회를 섬기는 가정이 호파교회를 섬기러 얼마 전에 이사했다. 두 아들을 둔 삼십대의 젊은 부부 쉐브켓과 빌게 사역자이다.

호파 쉐브켓 사역자 부부와

현재 교회 건물이 없이 아르하비의 쉐브켓 가정에서 모이고 있고, 그곳은 호파에서 약 15분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우리가 묵는 호텔로 이 가정을 초대해서 함께 저녁 식사교제를 했다. 그날은 그 호텔에 우리 일행만 묵고 있는지 호텔 꼭대기 층의 식당에는 우리 일행 23명과 쉐브켓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호텔 종업원 3명이 전부였다. 식사 후에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함께 터키어 찬양을 부르는데 호텔 종업원들이 흥미를 가지고 우리를 보다가 영상을 찍고 있었다. 아시안들이 자기 나라 말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너무나 신기한 얼굴이었다. 쉐브켓과 빌게 부부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도시에 와서 지내다가 터키어와 영어로 우리 팀들과 대화하며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는지 찬양 중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가 쉐브켓 가정과 호파교회의 기도제목을 듣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난 후 그 부부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려고 빙 둘러서 기도하려는데, 종업원 중 한 명이 자기도 함께 기도하겠다고 우리 무리 중에 서는 것이다. 나중에 그 젊은 종업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호텔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쉐브켓 부부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 그 젊은이에게 왜 기도를 함께 했는지,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물었더니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우리가 축복하는 그 장면에 자신도 함께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교회개척자 쉐브켓 형제가 그 터키인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뜨겁게 기도해 주었다. 쉐브켓 형제는 약 2달 전에 이사했는데, 지금 사는 곳 주변에서는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그 두 달 사이에 전도하여 한 터키인이 예수를 믿는 열매도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호파교회를 축복하시고 전략적인 곳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것을 믿는다.

카르스

카르스는 인구 29만 명으로 인구수로 61번째 주이다. 호파를 떠나 카르스로 가는 길은 대부분 험한 산길이다. 5시간을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 자체가 고생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역팀이나 기도팀이 많지 않다. 터키를 방문하는 아웃리치 단기팀이나 기도팀들은 대부분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자신들에게 허락된 일정에 맞춰 사역을 계획하다 보니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이 없어 보이는 지역들은 방문 일정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지역일수록 더 기도와 방문이 더 필요한 지역임을 많은 분들이 알면 좋겠다.

아르트빈을 벗어나 아르다한을 지나 카르스에 도착하는 5시간은 CPRT 팀원들이 자신의 삶과 간증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산길을 따라 움직이는 버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또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나누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도전이었다. 하나님의 사람들 앞이 아니라면 나누지 않을 개인적인 것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시고 일하시는지를 부끄러움이나 과장 없이 나누는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신실하신 그분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카르스에는 카르스 출신의 터키인 교회개척자 누레틴과 동역자 아르메니아 사역자 다비트가 우리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두 사역자의 간증은 이번 호 금향로에 실려 있다.

카르스 아니성채

우리가 호파를 아침 일찍 떠난 이유는 카르스에 도착해서 누레틴, 다비트와 함께 카르스 동쪽 1시간 거리에 있는 ANI (아니) 성채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카르스가 속해 있는 터키 동부 지역 대부분은 이전에 아르메니아 제국의 땅이었고 아르메니아는 AD 301년에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국가이다. ANI 성채는 AD 5세기에 세워졌지만 나중에 터키 동부를 포함한 지역을 통치하던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왕국 (AD 85~1045)에 의해 크게 증축되었다. ANI 성채에는 50개의 교회, 33개의 동굴교회와 20개의 작은 예배 처소가 있어 아르메니아인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의 ANI 대성당이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ANI 대성당 바로 뒤에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데, 그 개울 건너편이 바로 아르메니아 땅이다. 어떤 철책이나 국경을 알리는 담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오스만 제국 끝에 일어나서는 안 될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1914~1918년에 오스만 제국은 지금의 터키 땅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로 연행해서 살 수 없는 지역에 버리거나 살해하는 방법으로 최소 80만 명에서 최대 2백만 명을 살해했다고 미국 의회보고서가 공식 확인하고 있다. 이것이 터키 공화국의 큰 족쇄가 되어 이웃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화해할 수 없는 원수 관계를 만들었다. 터키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터키 대통령 후보들은 강력한 나토 우방인 미국을 방문해서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때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요구하는 가장 큰 것은 터키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이다.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 해야 할 조건 중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는 것이 포함되며, 터키의 인권의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맞출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성채를 터키인 사역자 누레틴과 아르메니아 사역자 다비트와 함께 방문하여 하나님 앞에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복음 안에서의 화해를 위한 기도를 드리려고 한다. 누레틴 사역자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겠지만 누레틴 사역자와 다비트 사역자가 그것이 터키 복음화를 막는 큰 장애물을 제거하는 영적 전쟁인 것을 이해했기에 동의했고 함께 ANI 성채를 방문하게 되었다.

어려움은 성채를 들어가는 과정에서 벌써 일어났다. 성채 경비원이 우리가 가지고 온 키보드와 기타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성채에서 종교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위한 악기들을 경비실에 맡기고 삼순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한 터키인 가이드의 안내로 성채에 대한 안내를 받기 시작했다. 터키 정부가 요구하는 관광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이다. 성채 경비원은 우리가 어떤 종교행위를 할까 감시하기 위해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왔다. 우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터키와 오스만 제국이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지울 수 있는 두 민족 간의 영적 화해와 돌파를 기도했다. 기도하고 싶은 교회 건물이 보여서 우리 일행이 들어갔는데 그 공간이 작아서 더 이상 다른 관광객들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우리는 목소리로만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난 후, 김성간 목사의 인도에 따라 터키인 누레틴 사역자가 아르메니안 대학살에 대해 아르메니아인 다비트 사역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비트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도 시간을 가지고 뜨겁게 포옹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터키와 아르메니아에 임하기를 간구했다. 이재진 선교사는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이 놀라운 역사적 화해의 시간에 증인 된 우리 CPRT 팀이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 일의 증인으로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추수가 이 땅 가운데 일어나기를 선포했다.

카르스로 돌아가 우리를 기다리는 카르스 교회 성도들과 한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 교제를 하였다. 식당 주인은 모처럼 만선을 한 어선 선장처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고 저녁 식사로 나온 메뉴는 한국인인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이어서 행복했다. 카르스에는 교회 건물이 없어서 누레틴 사역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코비드 때문에 한동안 줌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다시 가정에서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배 장소가 없어서 우리 일행이 머무는 호텔의 컨퍼런스 룸을 빌려 함께 예배하게 되었다. 허강한 사역자의 풍성한 찬양 인도와 김성간 목사의 말씀에 이어 이재진 선교사의 인도로 카르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제와 예배 그리고 기도와 축복은 하나님의 교회가 가진 특권이며 능력인 것을 경험한다. 지금은 작지만 믿음에 굳게 선 카르스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했다.

아크다말-성십자가교회

CPRT 여정이 힘든 점은 마음을 열고 만나 교제하고 예배하고 함께 기도한 새로운 공동체들과 매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도 힘이 들지만 우리의 방문을 통해 그들이 위로받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를 우리는 기도했다.

반은 인구 126만 명으로 인구수로 19번째 주이다. 쿠르드인의 도시라 불리며 이란과 육로로 연결되는 국경 지역이다. 카르스를 떠나 동부 아나돌루의 가장 큰 도시인 반까지도 버스로 5시간 반이 걸린다. 그 가운데 교회는 없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아라랏산을 지날 때 고속도로 주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아라랏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라랏산은 창세기에 있는 신화적 장소가 아니라 이 지역을 통치했고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산이었으며, 그들은 아라랏산을 자신들의 성스러운 산으로 생각하며 현재 터키에 속해 있는 것을 너무 가슴 아파한다. 반교회의 리더십과 성도들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반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아크다말 섬을 배를 타고 방문했다. 약 4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아크다말 섬의 수룹하치 교회를 보게 되는데 이 뜻은 성 십자가 교회라는 뜻이며, 교회의 형태를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아름다운 이 교회의 바깥벽에는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들이 양각 부조로 새겨져 있다.

2014년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터키는 아르메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원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의 여러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중 하나가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건물이었던 터키 동부 반 (Van) 호수의 아크다말 섬에 세워진 수룹하치 교회 (성 십자가 교회)를 복원하고 십자가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2010년 9월에 수룹하치 교회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전 세계 아르메니아 성도들 약 3,000명이 모여 예배하는 일이 있었다. SWM 선교회는 다음 해인 2011년 4월에 동부 순례팀을 구성하여 구약의 성지들을 돌아보고, 부활절에 수룹하치 교회를 방문하여 성찬식을 하고 터키에서 열방을 축복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반 교회개척 설명하는 바히트목사

이제 동부 아나돌루에 하나님 나라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바람이 부는 곳에는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를 알기 원하는 무슬림 복음관심자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시는 이 땅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영광이자 은혜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마저 영광스럽게 받아들이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보이시고 그분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다. 아크다말 수룹하치 교회에서도 예배를 금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마음으로 이 땅의 영적 회복을 기도하고 어제에 이어 터키의 영적 회복이 아르메니아와의 영적 화해를 통해 올 것을 믿게 되었다.

반개신교회 바히트 목사는 이스탄불의 한 교회를 섬기다가 고향인 반에 교회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이사하였다고 간증한다. 고향에 교회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된 바히트 목사를 통해 쿠르드인의 고향 같은 반에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되었다. 물론 수많은 외국인 사역자들의 눈물의 기도와 고난의 사역이 없었다면 반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 어려웠을 것을 잘 안다. 반개신교회는 감사하게도 몇 년 전에 8층 건물의 한 층을 사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팀은 교회 건물을 방문해서 터키어와 영어 한국어로 찬양하며 주님을 높인 후에 반 개신교회의 바히트 목사의 교회개척전략을 듣게 되었다. 바히트 목사는 하나님께 12개의 교회를 개척해서 드리기 원한다는 교회개척 비전을 나누었다. 카르스에 누레틴 사역자를 통해 그 첫 번째 교회가 개척되었고 이제 반에서 조금 떨어진 에드레밋에 두 번째 교회를, 그리고 1년 이내에 아라랏산 근처의 도시 으으드르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교회개척자를 훈련하고 있다. 터키에서 현지인이 중심이 되어 교회 개척을 꿈꾸고 전략을 세우며 현지인들에 의해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다.이번 방문을 통해 하나 더 알게 된 것은 바히트 목사의 큰 아들이 이제 장성해서 말라티아에서 사역하다 지금은 북키프로스에서 사역하는 제리 매틱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터키의 예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가정들이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터키에 1962년 2명의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진 이후 현대 터키 선교가 시작된 지 60년이 되었다. 처음 예수를 믿은 터키 남성 성도들은 결혼할 여성 성도들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외국인 여성 사역자와 결혼하거나,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거나 아니면 결혼하지 않았다. 이제 결혼 상대를 터키의 예수 공동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이 임한 증거이기에 진심으로 축복하고 감사하게 된다.

디야르바크르

디야르바크르

주일 아침 일찍 반을 출발해서 디야르바크르로 이동하였다. 이동 시간은 6시간이다. 반과 디야르바크르 사이에 교회는 없다. 이 지역에 사는 수백만의 터키인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은 6시간 가까이 버스나 자기 차를 타고 반개신교회나 디야르바크르 개신교회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디야르바크르 교회는 약 80명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2층에 마련되어 있어서 마음껏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마라나타 비전교회의 강대이 목사의 설교, 아흐멧 목사의 교회개척비전 나눔에 이어 마르딘으로 파송하는 이브라힘과 세랍 그리고 두 자녀를 위한 뜨거운 기도로 예배를 올려드렸다.

우리가 방문한 교회들 중에는 삼순교회 (자체 소유), 오르두교회, 시놉교회, 초룸교회, 반교회 (자체 소유) 그리고 디야르바크르교회 (자체 소유)는 자기 건물이 있거나 건물을 임대한 교회이다. 터키에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면 건물주들이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가정교회로 모이는 곳이 매우 많다.

디야르바크르는 동남부 아나돌루 권역에 속해 있고, 인구 175만 명이며 인구수로 12번째 주이다. 디야르바크르는 터키 쿠르드인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이다. 이 말이 갖는 뉘앙스가 터키에서는 묘한 긴장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터키에는 55개 이상의 다민족이 살아가고 있는데 유독 쿠르드인들이라고 말을 하면 레드 플래그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터키 8천 5백만 인구 중에 1천 5백만~2천만 명이 쿠르드계 터키인인데 이들은 쿠르드인들의 독립국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인구의 약 18~24%가 쿠르드계라는 통계가 있다. 터키 정부는 이들이 시리아 북부, 이란 북부, 이라크 북부에 흩어져 있는 총인구 4천만 명의 쿠르드인들과 연합하여 그들의 꿈인 독립국가 쿠르디스탄을 만들것을 가장 우려하고,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북이라크에는 2004년 이후 쿠르디스탄이라는 쿠르드인들의 자치구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쿠르드계 터키인들과 북이라크의 쿠르디스탄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터키 정부의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 거의 4백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터키에 난민으로 들어와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쿠르드계 시리아 인들이다. 이들을 포함하면 터키에 있는 쿠르드인의 숫자가 2천만~2천 4백만 명에 가까워지는데 터키 내의 쿠르드인들이 28%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르딘교회

디야르바크르 개신교회는 아흐멧 규베네르 터키인 목사가 1995년에 개척해서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쿠르드인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서 터키인이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 개신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아흐멧 목사 가정은 약 26년 동안 신실하게 이 교회를 섬기면서 인내와 사랑으로 예수의 제자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 반군 사이에 벌어진 시가전으로 디야르바크르 교회를 한동안 사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몇 년 전에 일어난 시가전으로 교회 건물이 망가져서 건축법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교회 건물을 정부에 빼앗길 뻔한 과정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신 이야기들을 들으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느끼게 된다.

디야르바크르 시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 있다. 교회 건물은 구도시에 있는데 시가전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적을 제외하고는 매 주일과 수요일에 모여 예배하며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이 교회 건물을 방문하는 많은 무슬림이 있다. 무슬림들은 교회 건물을 방문해서 신앙 서적이나 복음전도지를 가져가기도 하고, 교회를 열고 이들을 맞는 리더들과 성도들에게 신앙에 대한 질문과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슬람 신앙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신도시에는 교회개척을 위해 고층 건물 한 층의 반을 교회 건물로 구입해서 젊은이들이 모여 말씀을 배우고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개척 사무실로 운영하고 있다. 교회 간판을 걸어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건물 바로 맞은편에 집권당인 정의개발당 지구당사가 있어서 서로의 간판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신도시의 교회도 부흥케 하시기를 기도한다.

디야르바크르 개신교회는 몇 년 전에 약 1시간 떨어진 마르딘에 교회를 개척했다. 마르딘에는 많은 교회 건물이 있는데 교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마르딘 정부와 대화하면서 오래된 교회 건물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허락을 얻어, 수리한 뒤 2017년 교회로 등록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교회를 섬기고 있는 엔데르 페케르 목사는 우리가 방문하는 날에 이스탄불에 다른 모임이 있어 만나지 못했지만, 아흐멧 목사와 아흐멧 목사가 2022년 1월부터 이 교회로 파송한 이브라힘 교회개척자와 함께 마르딘 교회에서 함께 이브라힘 가정을 위해 뜨겁게 축복하였다.

마르딘 교회는 일 년 방문자가 약 9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방문객에게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물어오면 복음을 나누는 전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이브라힘 부부를 파송한 것이다. 마르딘에서 약 1시간 떨어진 미드얏에도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다. 수리아 정교회 건물도 있고 가톨릭교회 건물도 있지만 개신교회 건물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미드얏에도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했다.

하란

이번 여정은 매우 길고 힘든 일정이었다. 어느 현지 사역자는 “거의 유격훈련이군요”라고 할 정도였는데 실제 버스로 이동한 거리가 2,600km (1,615마일)에 달했다. 그래서 가지안텝으로 이동하는 중에 하란을 방문하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하란은 아브라함의 형의 이름이기도 하며 아브람이 데라와 함께 오래 머물렀던 바로 그곳이다. 하란에서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를 데려왔고, 야곱이 에서를 피해 20년 가까이 삼촌 라반을 의지하고 지내다가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을 얻은 곳이다. 지금도 이곳을 방문하면 흰 양과 얼룩점 양을 쉽게 볼 수 있어서 구약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우리 팀은 사역이 없는 지역을 처음 방문하고 또 하란의 특별한 모습을 인생 샷으로 담느라 흥분되었다. 하란에서는 터키 차가 아니라 아랍 차를 마신다. 이전에 시리아 땅이었던 이유라고 생각되며 아랍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란에 잠시 머물고 차 한 잔을 마신 후 우리는 가지안텝으로 출발했다.

가지안텝

가지안텝

가지안텝의 인구는 2백만 명이며, 인구수로 9번째 주이다. 산업도시로 알려진 가지안텝에는 가지안텝 새생명교회가 있다. 이 교회를 개척한 패트릭과 안순자 사역자 부부는 터키와 세번의 법정 소송에서 이겼지만, 결국 터키 입국이 거부되고 추방되었다. 하지만 패트릭 부부가 제자로 세운 터키인 시난 목사가 새생명교회를 섬기고 있다.

새생명교회에서는 시난 목사, 에템 목사, 에크렘 목사 세 사람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난 목사는 새생명 교회에서 터키인 공동체, 시리안 난민공동체 그리고 국제교회 성도들을 함께 섬기고 있다. 많은 고난을 받은 시난형제는 아내인 히다엣의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본인의 간증대로 새생명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위에서 주신 힘으로 사역하고 있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에템 목사는 아랍공동체 새생명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교회를 섬기는 에템 사역자는 시리아 난민이다. 몇 년 전에 난민 지위를 받아들인 다른 나라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터키의 시리아 난민들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어려운 난민 생활 중에도 난민교회를 섬기고 있다. 터키인 에크렘 목사는 가지안텝에서 1시간쯤 동쪽에 있는 수루치에 난민교회를 섬기고 있다. 에크렘은 이 도시의 군수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에크렘의 첫 간증이 이번 호 금향로에 실려 있다. 꼭 보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함께 예배하며 주님을 높여 드리고, 세 교회개척자의 간증과 사역 보고를 들었다.

가지안텝은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에 있으며, 시리아 국경에 제일 가까운 도시이다. 코바나에서 IS와의 전쟁이 났을 때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가지안텝으로 피난을 왔다. 그 숫자가 70만 명을 넘었기에 터키 정부가 이들을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한 난민캠프를 수루치에 세웠고 패트릭, 안순자 사역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수루치 난민캠프에서 봉사했다. 그 열매가 수루치교회이고, 지금은 에크렘 형제가 섬기고 있다. 가지안텝 두 개의 새생명교회와 수루치 교회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부어져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방주가 되기를 기도한다. 잠시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 팀은 마지막 사역지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향했다.

안디옥

안디옥

안디옥은 하타이주이며 인구 163만 명으로 인구수 13번째 주이다. 지중해 권역에 속해 있다. 안디옥은 시리아에 속해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공화국 영토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시리아가 아닌 터키 영토가 되었다. 수리아 안디옥은 바나바와 바울이 섬겼던 안디옥 교회가 있었던 곳이다. 교회 리더십인 바나바와 바울을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파송하며 이방인 선교와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였다. 안디옥에서 남쪽으로 차로 1시간 거리에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 여정을 출발했던 실루기아가 있는데 현지명은 사만다 (Samandağ)이다. 그 조용한 어항이 세계선교를 시작한 귀한 어항이 되었다. 지금도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어부들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는 방문하지 못했다.

안디옥개신교회는 22년 전에 한국 광림교회가 예수님의 성육신 2 천년을 기념하면서 교회가 거의 없는 터키에 교회 건물을 세우고 사역자를 파송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이 교회는 광림교회 파송 사역자 안바울, 박조디 부부와예나, 예주, 예안 세 자녀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섬기고있다. 안디옥은 터키 중심도시인 이스탄불과 수도인 앙카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운 곳이다.

안디옥 도청건물 맞은편에 세워진 이 교회를 통해 안디옥을 방문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위상이 높다. 안디옥 시가 지역행사를 하면 종교지도자들을 초대하는데 안바울 사역자는 VIP로 초대되는 종교지도자이다. 그래서 안디옥에 교회공동체가 세워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역공동체를 만들기 쉽지않은 이곳에서 안바울 사역자 부부는 한마음으로 터키인 공동체를 섬겨오다가, 2010년 12월부터 안디옥으로 넘어온 수많은 난민을 보면서 그들을 돕고 특히 시리아 난민 자녀들을 위한 이레학교를 안디옥개신교회 건물에서 운영하면서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또 아랍공동체 교회개척자인 아지즈와 아말 부부는 난민 청소년들을 위한 이레 청소년센터를 통해 방황하는 많은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의 미래를 준비하며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레 청소년센터에서는 태블릿을 설치해 놓고 오아시스 러닝센터로서 청소년들에게 영어 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안디옥만찬

아지즈 사역자는 몇 년 전에 시리아 전쟁을 피해 터키로 온 난민이다. 터키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신약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아내인 아말은 남편인 아지즈가 예수께 자신의 생명을 드렸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시리아 여성들을 돕는 사역에 훌륭한 동역자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지즈와 아말 사역자 부부는 안디옥개신교회를 섬기면서 터키 아랍인교회 네트워크를 섬기고 있다. 안디옥교회가 어두움 속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고 또 이 빛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는 시리아와 시리아인들 그리고 시리아 난민들에게 소망의 빛, 생명의 빛이 되어 시리아에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조지 교회개척자 가정은 안디옥에 살아온 지 1,800년이 넘는 가문이라고 한다. 터키어는 물론 아랍어도 잘하는 조지사역자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난민의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들의 어려움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디옥 개신교회 건물에는 아늑한 뜰이 있어서 약 80명 정도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야외식당이 있다. 교회가 준비한 양고기와 닭고기 만찬을 함께 나누며 안디옥 개신교회 성도들과 난민들과의 귀한 교제를 한 것을 잊을 수 없다. SWM은 2021년 터키의 이스탄불과 안디옥에 M 센터를 세우고 전략적인 두 지역을 통해 창조적인 사역들을 일으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드는 사역에 많은 사역자와 현지 교회들과의 입체적인 그리고 창조적인 사역들을 위해 동역하고 있다.

CPRT를 마치며

터키팀

이번 트립의 중요한 목적은 교회가 없는 흑해 권역과 터키 동부 권역 그리고 터키 남동부와 지중해 권역을 방문하여, 세워진 교회들의 지도자와 성도들을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사역과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듣고, 동역의 길을 찾는 것이 교회의 재생산을 함께 만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곳은 어디인지 확인하고 현장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현지에 세워진 관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개척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계획을 듣는 것으로 충분했다.

처음 계획을 할 때는 9곳의 터키 교회를 방문하려 했지만, 일정 중에 총 11개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연인원 200명 이상이 참여한 11개 교회의 방문을 통해 지난 2년의 팬데믹 기간 중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선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며 예배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4차 CPRT팀 23명은 가는 곳마다 한국어와 터키어로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우리 팀은 9박 10일간의 2,600km 대장정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항공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각자의 사역지를 향해 11월 10일 출발했다. 우리의 작은 헌신과 사역을 통해 터키 교회가 위로받고 성령의 능력을 받으며, 그들의 위로와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과 백성 중에 영광을 회복하시고, 음부의 권세를 쳐부수는 하나님의 교회가 계속해서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4차 CPRT

4차 CPRT를 정리하며

김성간 목사

바투미 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인도하심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사역 현장을 교회 개척 리서치트립 (Church Planting Research Trip)으로 지난 10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터키를 중심으로 시작된 CPRT 사역은 이번으로 제4차가 됩니다. 북이라크 쿠르디스탄과 그리스 아테네와 조지아 바투미에 각각 약 1주일씩, 그리고 맨 마지막 터키에서 10일을 보내며 약 2년 이상을 직접 방문하지 못했던 사역의 현장들을 “다시 찾아보는 (Re-Search)”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사역 일정이었습니다. 현지의 사역자들과 동역자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이 보여주는 사역 현장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가슴 뛰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아테네 M센터 사진

이번 제4차 CPRT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13:16)”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품고 저 자신과 또한 함께 하는 팀들을 위해 현장에서 듣게 될 많은 말 중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보게 될 수 많은 일과 사역들 가운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에 임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새롭게 시작된 여섯 개의 M 센터들 (터키 이스탄불, 안디옥, 이집트 카이로, 쿠르디스탄 두혹, 그리스 아테네, 조지아 바투미) 중에 이집트를 제외한 5 지역을 직접 방문하면서 그 지역들에서 주님께서 계획하시는 그림을 볼 수 있었고, 동시에 그것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며 준비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혔습니다.

방문한 모든 지역에서 공통으로 주님께서 느끼게 하시는 점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며 기도제목들로 나눕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오직 우리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터키 팀

첫째, 선교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쿠르디스탄 사진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쉬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당신의 구속사를 이루고 계신다는 진리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선교, 즉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지난 2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에게는 큰 도전과 장애물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주님께는 결코 그 어떠한 방해나 어려움이나 제한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의 마음이 영원 (Eternity)을 사모하게 (전 3:11)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더 편만하고 강력하게 전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쿠르디스탄에서, 아테네에서, 바투미에서, 그리고 터키에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만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류 역사의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순간의 실수나 빈틈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9-10)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 62:6-7)

구원의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로 쉬지 못하시게 우리도 쉬지 말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2010년 연중회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당신의 마지막 영적 대추수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사실 2017년 CPRT를 시작할 때 저희가 보는 것은 오직 터키뿐이었습니다. “주님, 터키의 81개 모든 주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며 터키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한 기도 동역자들과 교회들을 동원하며 동역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약 5년이 지난 지금은 저희 SWM 선교회와 연결된 사역들만 보아도 이미 터키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그리고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와 조지아에서 동역하는 사역들은 이미 시작된 주님의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놀라움 가운데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CPRT에서 더 큰 주님의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영적 대추수의 이 큰 그림은 우리를 놀라게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를 참으로 겸손하게 만듭니다. 저희 SWM 선교회는 이 큰 그림에 아주 작은 퍼즐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저희보다 더 오랫동안 터키와 중동 및 이슬람권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해 신실하게 기도해온 중보기도자들, 교회들, 단체들이 이미 주님의 큰 그림 안에 많은 조각이었습니다. SWM 선교회는 터키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가장 힘든 터키 북동부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바투미 M 센터를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터키뿐 아니라 조지아와 압하지야 공화국,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투르크메니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에서 이미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번에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추수 밭은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 3:20-21)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 4:35-36)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 9:37-38)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희게 된 주님의 추수 밭을 보길 기도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은 주님의 추수밭에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마지막 시대 선교는 주님의 교회들과 성도의 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9개 나라 동역자들

개인과 개인은 물론 교회와 교회들의 연합, 특별히 현지 사역자들과 선교사들의 온유와 겸손의 연합, 선교사와 선교사들의 온전한 연합, 선교 단체와 선교 단체들의 연합, 더 나아가서 자신이 속한 나라와 언어와 문화와 세대의 차이를 극복하는 유기적이고 영적인 연합이 이 시대 영적 대추수를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좋은 예로, 이번 바투미 M 센터 준비를 위해 무려 9개 나라의 현지 목사들과 선교사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마지막 영적 대추수는 주님의 퍼즐 조각들인 우리의 연합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이번 CPRT에 함께한 참석자들도 한국과 미국에서 다양한 교회에서 왔고, 연령층도 20대 초반에서 7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들의 연합이었습니다. 교회 직분도 선교사, 목사 및 장로, 권사, 집사, 그리고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도 있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말씀으로 연합하여 쿠르디스탄에서, 아테네에서, 바투미에서, 그리고 터키를 “다시 찾았을 때”, 우리는 각자와 각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그리시는 마지막 시대 영적 대추수의 큰 그림에 자신과 속한 교회의 퍼즐 조각을 “재발견 (Re-Search)” 할 수 있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퍼즐 조각들의 연합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1)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진정한 연합이 우리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져 온 세상 모든 민족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제4차 CPRT를 통해 다시 찾아본 현지 사역자들, 동역자들, 교회개척자들과 그들의 가정을 축복하며 위해 계속 기도합니다. 또한 6개 M 센터에서 이미 섬기시고 또 앞으로 섬기실 사역자들과 가정을 축복하며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4차 CPRT

아테네 사역을 돌아보며

김태용 전도사

유난히도 푸른 에게해는 수천 년 동안 제국의 흥망성쇠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듯 환희와 슬픔의 물결이 일렁입니다. 이곳에서 2000년이 더 된 신전과 그 속에서 발굴된 전사들의 조각상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조각상 속에 있는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합니다.

고린도교회가 있었다는 옛 고린도 무너진 성읍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치 사도 바울과 실라가 이마의 땀방울을 식히면서 고린도 교인들과 교제하는 듯한 환상 속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천 년 이상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는 고린도의 옛 시가지에 모인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을 상상해 봅니다. 아무리 화려한 문명일지라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사실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봅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사라지면 건물도, 문명도, 교회도 사라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 제자들, 성도들의 피로 세워진 그리스 교회들, 핍박과 순교로 세워진 그리스 교회들을 보면서 순교자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성령님의 지속적인 임재와 끊임없는 선교의 부르심을 듣지 못한다면, 그리스어 성경을 만든 나라일지라도,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일지라도, 역사의 화석이 되어 서서히 굳어져 간다는 사실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러나 헬레닉 센터 속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그 속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예배하는 난민 크리스천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의 태양이 다시 떠올라 에게해를 비추는 듯한 뜨거운 열기를 느낍니다. 그리고 아테네 M 센터를 섬기시는 데이빗, 레이첼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을 보면서, 이곳에서 거듭난 난민 크리스천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상상해봅니다. 에게해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는 수천, 수만 명의 형제자매들의 우렁찬 기도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돌려드리는 천사들의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지중해야! 흑해야! 카스피해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4차 CPRT

예수를 위해 죽겠다는 터키인은 처음 봅니다!

강대이 목사

안녕하세요. 저는 강대이 목사입니다. 아내와 대학교 2학년 딸, 고3인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 미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고, 시편을 전공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2009년부터 부목사로 섬기다가 2019년에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목회 철학은 하나님이 교회에 맡겨 주신 사명만이라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교회가 안 해도 되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정작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교회에 맡겨주신 사명인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과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마라나타 비전교회는 설립 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선교 비전은 전 세계 미전도종족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전도종족이 가장 많은, 당시 약 3,000개의 미전도종족이 포진해 있던 북인도에 집중하여 교회개척 사역을 해왔습니다. 매년 두 세 차례 단기팀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고, 현지 사역자들이 follow-up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자를 양성/훈련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약 5년 전부터는 인도를 중심으로 네팔,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 주변 나라들로 확장하여 사역을 하고 있고, 팬데믹 중에도 비대면 선교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0여 년간 터키 선교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장기 사역자 가정도 파송했고, 거의 매년 단기팀이 가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지 사역자를 세우는 일과 현지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상항중앙장로교회의 권혁천 목사님을 통해 SWM 선교회를 알게 되었고, 터키에서 ‘현지 사역자’가 ‘교회개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트립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 교회와 SWM 선교회가 이미 10여 년 전 에베소 중보기도회 때 함께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에서도 1대 담임 목사님과 몇 분의 성도님들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터키에서, 특히 터키 동부에서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는지 보고 싶었고, 교회개척 현지 사역자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며, 우리 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분들을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번 트립에 참가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터키 동부에서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는 모습에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현지 사역자들의 교회개척에 대한 열망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에도 놀랐습니다. 마지막 날 임 선생님이 “예수 믿겠다는 터키인은 가끔 봤지만, 예수를 위해 죽겠다는 터키인은 처음 봅니다!”라고 하신 말씀에 저도 100% 동감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터키 교회개척 사역자 2가정을 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터키 교회개척 사역에 함께 동역하고 연합할 예정입니다.

2022년 5차 CPRT에 참가하실 교회와 단체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인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먼저 공부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터키에 대해 깊이 공부를 못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터키의 역사에 대해서도 미리 공부해 오면 더 알찬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이 모든 사역을 이끌어주신 김진영 선교사님과 SWM 선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름다운 연합과 동역을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4차 CPRT

축제같았던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김경혜 권사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행 13:47)

샬롬! 이번 4차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은 “To see is To believe”라는 말처럼 제 크리스천 인생에 터닝포인트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터키 흑해 지역을 열흘 동안 순회하면서 만났던 전통 무슬림 가정에서 자라며 알라에게 충성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터키의 기독교인들을 기억합니다.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지금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신실한 말씀 사역자로 살아가는 터키 동부의 믿음의 공동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웃고 식탁을 나누며 찬양하고 기도했던 시간은 분명 삼위일체 하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만났던 신실한 믿음의 사역자들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제 기억 속에 남아서 계속 기도하게 되는 분은 일정 5일째에 만났던 카르스의 다비트 사역자 가족입니다. 함께 마주하고 식사를 하면서 나누었던 기도 제목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다비트 사역자는 아르메니아 사람입니다. 원수의 나라 터키에서 주님의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그를 성령님의 역사로 카르스로 이끌어 가셔서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4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시는 언어 능력자입니다. 다비트 사역자가 사역하는 곳은 미신이 난무하며, 많은 수의 아이들이 심한 다운증후군으로 학교도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 중 한 명은 다 큰 아이의 곁에 늘 있어야 하는 현실에 있으니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시놉교회에서 만났던 14살의 벨란티나입니다. 이라크에서 온 영어를 잘하는 아이는 이야기하는 중에 자신의 엄마가 몸이 아프다고 엄마를 만나 기도하러 자기 집으로 가면 안 되냐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일정상 엄마를 만나러 갈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엄마 샤이다씨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기억은 돌아온 후에도 마음속에 남아서 지금도 두 모녀를 위해 주님께 간구하며 위탁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터키 미션트립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시다면 꼬~옥 기도하면서 용기를 내서 가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간곡하게 부르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4차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에 참여한 사람 중 나이가 제일 많은 68살의 시니어입니다. 혹시 난 나이가 많아서 갈 수 없다, 또는 그곳은 젊은 사람들이나 간다는 생각의 한계를 갖고 계신 분이 계시면 감히 도전하고 싶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좁은 나의 생각 안에 가두어 두고 감히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용기를 내어서 한 발을 내디디면 그다음은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할렐루야!

4차 터키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을 다녀온 후에 일정 보고를 해달라는 부탁의 메시지를 여러 번 받았지만, 저는 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제 마음을 만지시며 용기를 주시고 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소유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며 특권이라고 믿습니다. 왜나하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살후 3:2)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터키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축제에 참여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과 특히 시니어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터키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이 항상 열려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복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부족하나마 저의 4차 CPRT 간증을 마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4차 CPRT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특권

이재진 선교사

제가 매년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매해 하나님께서 이 여정들을 직접 기획하시고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매년 새로운 공동체와 사역자들, 성도들이 참여하면서 그때마다 분위기와 받는 은혜가 달랐지만, 동일하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교회가 없는 지역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게 하신 곳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혼들을 얻으시고 전도자들, 교회 개척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방문하여 볼 때, 큰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음부의 문을 깨뜨리는 주님의 교회의 시작을 함께 기뻐하고 동참할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리고 같은 곳을 방문하게 되더라도 매년 기도의 응답과 실제를 볼 수 있고, 각 지역의 교회 공동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며 신실하게 사역하고 있는 역사를 볼 때 큰 감동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번 교회개척 리서치트립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년 만에 진행이 되는 것이어서 기대와 우려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안에 신앙의 깊이와 온, 오프라인을 통해 확장되는 복음의 넓이, 주님을 앙망하며 바라보는 높이와 성도와 교회 간의 코이노니아가 더 넓게 흘러가게 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SWM Korea는 사도 바울의 상황을 성도들에게 알려준 두기고의 심정으로 이런 하나님 나라의 상황들을 더 잘 알리고 동참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입니다. 매주 화요일 진행하는 온라인 기도 모임과 코로나로 인해 잠정 연기되었던 킹덤 스쿨도 온라인 기반으로 더 적극적으로 섬기려 합니다. HWM 청년 선교사 운동도 2기가 진행되는데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선교사들이 열방을 유업으로 삼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기반을 잘 구축하고 싶습니다. 여러 온라인 선교 콘텐츠 개발과 제작으로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에도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교회개척 리서치트립과 아웃리치 사역에 한국 교회와 성도님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기도하며 개발하고 시도하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22년 5차 CPRT를 바라보며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의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나누어서 섬기고 있는 공동체뿐만 아니라 잠자고 있는 거대한 한국 교회가 이 사역에 더 열린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통로가 되어야겠다는 거룩한 부담이 듭니다. 5차 CPRT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많은 분이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현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차 CPRT

영적인 부흥과 추수를 준비할 때

허강한, 강안나 사역자

이번 CPRT는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터키에 20여 년 살면서 81개 주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그동안 손을 얹고 기도한 땅에 가서 귀로 듣던 것을 눈으로 직접 보며 목격할 수 있어서 정말 큰 감동이었습니다.

함께 한 모든 분들이 동일하게 느끼셨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중보 기도와 추수를 위한 부르짖음의 열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의 복음의 열매인 현지인들이 소수지만 믿음을 지켜내며 주께서 일하실 때까지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외국인 사역자들이 할 수 없고 가지 못하는 땅에서 믿음을 지켜 냄이 하나로 합쳐져서 땅이 기경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져 가고 있음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땅의 지금 영적인 상황을 마치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가 기도와 예배, 눈물과 복음을 위한 수고로 막혀 있던 부흥의 우물을 뚫어내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하늘에서 부어 주시는 추수를 위한 성령의 단비가 내려서 그 우물이 차오르는 느낌입니다. 또 기도와 예배를 통해, 눈물과 수고를 통해 모든 골짜기는 높이고 모든 산과 언덕은 낮추고 가파른 곳은 고르게 하고 울퉁불퉁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져서, 땅이 기경되어 뿌린 씨가 심겨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땅이 준비된 것 같습니다.

터키의 대도시에서 먼저 추수의 징조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교회 개척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메마른 땅 같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 개척자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일하시는 증거이고 영적인 공기가 바뀌었다는 증거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CPRT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터키에서 실제로 사역하고 있는 저희에게 여러 가지 영적인 부담감을 주셨는데, 계속해서 터키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함께 이 땅의 사역자들과 현지 교회들이 하나 되어 이 땅의 영적인 부흥과 추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때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때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들로는 교회 안에 기도와 예배의 불이 타오를 수 있도록 순회 사역을 통해 교회를 깨우는 것과 특별히 찬양 부분을 돕는 것입니다. M 센터를 통해 찬양으로 섬길 사람들을 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M 센터를 통해 또 하나 계획하는 것은 로뎀 나무 사역입니다. 어렵고 척박한 땅에서 영혼 추수를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는 현지 사역자들이 이스탄불 M 센터에 와서 영적, 정서적인 쉼과 회복을 가질 수 있도록 들어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제 2022년이면 CPRT가 5차가 되는데, 참가했던 교회들이나 참가하고자 하는 교회에게 간절히 부탁드리는 것은 재정 지원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터키 교회가 영적인 부흥과 추수를 위해 준비되는 이 시간에 함께 와서 기도로 그들의 손을 붙잡아주시는 것입니다. 재정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적 자원들이 와서 함께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기로라도 오시고, 이 땅에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시고, 청년들도 보내시길 부탁드립니다.

4차 CPRT

그리스 사역을 마치고

문종효 권사

신들의 나라 그리스에 도착해 아테네 있는 M 센터를 방문해 데이비드/레이첼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선교사님의 귀한 은사를 사용하여 영상이라는 매개체로 난민들과 접촉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깨우는 창의적인 접근법이 놀라울 뿐입니다.

절망과 어둠에 갇혀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사역이야말로 너무 귀한 사역임을 목격했습니다. 전문인 선교의 중요성도 새롭게 느꼈습니다. 또한 레이첼 선교사님의 귀한 헌신적인 사랑의 섬김이 난민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M 센터 앞으로의 비전이 가정교회를 세우는 것이라 하셨는데, 저도 이 기도제목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