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열방이 팬데믹에 빠지면서 자발적으로 또는 비자발적으로 많은 사역이 중단되었다. 이렇게 2년이 지났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팬데믹 사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진행 중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코비드 19 백신 접종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백신을 맞기 원하지만, 국가적 단위의 수많은 백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실제로 국가가 백신을 확보해도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상황도 많았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20일 현재 미국의 인구는 3억 3천만 명인데 중국 15억, 인도 14억에 이어 전 세계 인구 제3위 국가이다. 1번 이상의 접종률 75.8% (2억 5천만 명) 2번 이상의 접종률 63.4% (2억 9백만 명)이며 아직도 약 3억 3천만 명 중에 8천만 명 이상이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쾰른대학 의과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우으르 샤힌과 부인 외즐렘 튀레지 ⓒ Raimond Spekking,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SWM 선교회의 주 선교국인 터키 (8천 5백만 명)는 접종률 60.5% (5천 1백만 명)인데 이것은 전 세계 접종률 46.6%보다 높은 수치이다. 독일 바이오엔텍 개발사의 대표 우으르 샤힌 (터키 이스켄데룬 출신)이 터키계 독일인이기 때문에 터키가 우선순위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부인인 외즐렘 튀레지와 오스트리아 의사인 크리스토퍼 후버와 함께 설립한 바이오엔텍 회사가 화이자와 함께 2020년부터 개발한 화이자 백신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2020년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왜냐하면 일상이 정지된 것처럼 기억에 남아있고 실제 우리 생활도 그렇게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1년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 보였다. SWM 선교회도 동역하는 교회 리더십들의 권유에 따라 터키와 중동 현장의 사역을 위한 동원을 잠시 멈추고 코비드 사태를 주시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코비드 상황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현장의 사역자들을 통해 계속 듣게 되면서, 2020년 10월에는 SWM 미디어팀 사역자들이 코비드 19가 창궐하는 터키를 약 2주 일정으로 방문하였다. 50명 이상의 교회개척자들,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 배경의 성도들 그리고 현장 사역자들을 직접 만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터키에서 일하고 계신지 영상에 담았다. 그것을 5개의 영상으로 편집하여 “성령의 불” 시리즈 영상을 제작하였고, 2021년 1월부터 5월까지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에 보고하면서 초대교회의 요람인 터키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알고 함께 주님과 동행하는 사역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주께서 우리를 일으키셨다. 할렐루야!
SWM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이해하기
SWM의 CPRT (Church Planting Research Trip)는 2017년 터키에서 시작되었다. 터키의 복음관심자들을 위해 터키 81개 주마다 최소한 1개의 교회를 세우자는 터키교회의 기도제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느 주에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016년 당시 터키 81개 주 가운데 하나의 교회라도 세워진 곳은 46개 주였고, 한 개의 교회도 없는 곳은 35개 주였다. 이것은 터키의 복음관심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성경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다는 뜻이다. 차로 5시간 또는 10시간을 가야 교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CPRT를 시작하면서 성령께서 SWM 리더십에게 주신 마음은 C.I.S.였다. CIS는 Comfort (위로하라), Impart (성령의 능력을 나누라), Serve (섬기라)의 약자인데, 위로하고 능력을 나누고 섬기는 마음으로 CPRT를 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교회개척을 위해서는 새로운 장단기 전략과 외국인, 현지인 교회개척자들이 필요하겠지만, 성령께서는 터키에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위로하고, 능력을 나누고 섬기는 것이 SWM 선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SWM 선교회는 터키 선교를 완성하기 위해 연합하고 기도하는 소명을 받았기에 SWM 선교회가 시작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다른 선교사들과 경쟁이 되거나 중복되는 사역을 하지 않기 위해 SWM 선교사를 현장에 파송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 결정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키면서 현장 선교사들과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연합과 동역을 통해 연합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SWM 선교회가 모든 사역의 주권을 여호와 하나님께 위임해 드리면서 연합사역을 통해 현장을 섬기는 역할을 계속 담당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2014년부터 시작된 터키와 중동의 난민 사역과 2018년부터 시작된 SWM의 교회 개척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SWM 선교회를 이미 이 시대의 전방개척사역을 위해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인 연합하는 마음을 지켜나가면서 SWM 선교회가 현장에서 직접 해야 할 많은 사역들을 조사하고 개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필요한 경우 미국과 한국의 본부사역자들이 현장을 방문 또는 체류해서 사역하고 필요하면 사역자를 파송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터키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다.
터키에는 일곱 개의 행정 권역이 있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마르마라해 권역,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한 에게해 권역, 앙카라를 중심으로 한 중앙 아나돌루 권역, 북쪽의 흑해 지역의 삼순과 트라브존을 중심으로 한 흑해 권역, 동부의 반을 중심으로 한 동부 아나돌루 권역, 동남부의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한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 아다나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권역이다.
이스탄불이 중심인 마르마라해 권역과 이즈미르가 중심인 에게해 권역은 교회개척 대상 지역에서 제외했는데 그 이유는 터키의 많은 교회가 대도시인 이스탄불, 이즈미르, 앙카라에 이미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7년부터 시작된 지난 4번의 터키 CPRT는 중앙 아나돌루 권역, 흑해 권역, 동부 아나돌루 권역,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 지중해 권역에 집중했다. 2020년은 코비드 확산으로 CPRT 사역을 2021년으로 연기했었다.
앙카라 동쪽은 교회가 없는 지역이 너무 많고, 여러 민족이 살고 있어서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사역이 매우 필요한 지역이다. 터키 정부는 앙카라 동쪽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거주 비자를 심하게 제한하면서 복음이 가장 필요한 지역에 외국인 사역자들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다. 터키 교회개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역단체들의 주 목표지는 앙카라 동쪽이다. 터키 정부의 정책과 교회가 개척되어야 하는 지역이 정확히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영적 전투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이 영적 전투의 현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현황을 알고 기도하며 총력을 집중해서 터키 앙카라 동쪽에 교회가 개척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연합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그런데 터키 정부가 앙카라 동쪽에 거주하는 외국인 사역자들을 제한하는 정책은 엉뚱한 이유로 벽에 부딪히고 있다. 그 이유는 터키의 난민들이다.
터키 정부는 터키에 들어오는 난민들을 거부하지 않고 체류를 허용하고 있다. 11년 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후, 시리아 국경도시 코바니에서 탈출한 시리아인들이 가지안텝과 수루치에 난민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터키 국경도시인 가지안텝 근처 수루치에 난민 수용소가 만들어졌다. 이때 최대 70만 명의 난민들이 이 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 지역 외에도 열악한 난민 수용소들이 여기저기 세워졌었지만, 지금은 몇 곳 남지 않았다. 터키에 들어온 약 4백만 명의 시리아, 이라크, 아프간, 이란 난민들은 대부분의 수용소가 없어짐에 따라 자신들의 형편에 맞는 곳에서 살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들이 한곳에 모이면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터키 전역 81개 주에 이들을 흩어 놓았다. 난민들은 터키 정부가 지정한 도시에서 살아야만 유엔 난민으로 신청할 수 있고 난민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 통제 방법으로 난민들이 지정된 도시의 경찰서에 가서 지문을 찍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번 신고해야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지역에 따라 2주일에 한 번 신고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터키 경제가 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난민들에 대한 터키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데 터키 정부는 터키의 모든 난민을 재인터뷰해서 문제가 있는 난민들을 본국으로 추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난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81개 주에 흩어 놓은 난민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있다. 할렐루야!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조국에서 박해를 받아 터키 난민으로 들어온 이란 난민, 시리아 난민 그리고 이라크 난민들이 있다. 이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매주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앙카라 동쪽에 외국인 사역자를 배제하기 원하는 정부의 정책이 바로 이러한 난민 정책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터키 땅에 임하시고 무슬림 난민들에게 꿈과 환상과 계시 가운데 말씀하시고 자신을 나타내고 계신다. 그래서 자신의 조국에서는 이슬람의 사회적 구조와 억압 그리고 가족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감시체계로 인해 복음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무슬림들이 자기 땅을 떠나 터키에 와서는 이슬람이 아닌 진리에 목말라하고, 특히 그들이 들어보았던 사랑의 종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복음관심자들이 되고 있다. 이처럼 무슬림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들이 난민들의 이동을 통해 터키에서 그리고 여러 난민이 머무는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터키는 물론이고 이웃 나라인 그리스,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등에서 복음관심자 무슬림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고 하셨고 또 바울 사도를 통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고 말씀하신다.
2021년 4차 터키 CPRT 현장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기(Pray on-site with insight)
4차 터키 교회개척 리서치트립 지도
한국과 미국 그리고 터키에서 참가한 23명의 4차 터키 CPRT 팀은 11월 1일 이스탄불에서 처음 만났다. 이미 쿠르디스탄과 그리스 아네테, 조지아 바투미 M센터 사역부터 함께한 분들과 SWM Korea 사역자들, 터키에서 2021년 7월부터 사역을 시작한 HWM 1기 4명과 여러 명의 터키 사역자들이 함께했다. 미국에서는 SWM USA 본부 사역자들과 마라나타 비전교회 리더들 그리고 뉴잉글랜드 은혜장로교회 리더들이 참가했다.
이번 터키 CPRT는 그동안 방문할 수 없었던 흑해 권역의 삼순에서 출발하여 해안도로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교회가 세워진 곳은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개척자들을 만나고, 교회가 없는 곳에는 복음관심자나 교회개척자들을 만나 기도하며 예배하는 사역으로 진행되었다. 흑해 해안도로가 끝나가는 지역에 있는 호파에서 터키 동부 아나돌루 권역으로 길을 바꿔 카츠카르 산맥을 넘어 아르트빈을 지나 아르다한 그리고 카르스를 지나면 쿠르드인들의 도시인 반이 나온다. 반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 터키 남동부 아나돌루 권역의 관문도시인 디야르바크르가 나오고 마르딘, 하란, 가지안텝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던 안디옥교회가 있는 하타이를 방문하면 그곳이 지중해 권역으로 동쪽 끝자락이다.
이스탄불
이스탄불
이동버스 안에서
11월 1일 4차 터키 CPRT 팀은 이스탄불에서 터키인, 시리아인, 이란인 교회개척자 8가정과 이스탄불 사역자 5가정을 만나 그들의 사역을 듣고 함께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기도회는 허강한 사역자와 터키인 다니엘 규나이 목사가 인도하였는데, 코비드 팬데믹으로 인해 2년 만에 터키를 방문한 우리 팀 23명과 이스탄불에서 우리를 맞아준 이스탄불의 사역자들, 교회개척자들 약 20여 명, 총 40여 명이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사역을 보고하고 예배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어려움과 기쁨, 시련과 승리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터키의 하늘을 여는 은혜의 첫날을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은 어려운 시간 가운데서도 신실하신 그 사랑으로 이스탄불의 터키인 무슬림들과 시리아, 이란, 아프간 무슬림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이스탄불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서기 330년에 세워졌고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다. 콘스탄티노플의 그 이전 이름은 비잔티움이며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점령하여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꿨다. 이스탄불은 인구가 약 1천 6백만 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약 2천만 명으로 터키 전체 인구의 약 24%가 사는 인구수로 첫 번째 주이다.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1299년부터 1922년까지의 623년 동안에 여러 종교를 관용적 태도로 허용했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의 제국으로 남아 있지만, 실제로 오스만 제국 내의 타민족들에게 전파되는 종교에 대한 것만 그렇다. 오스만 제국을 세운 투르크족들은 서기 900년 이후 계속 이슬람을 따랐기 때문에 자신들의 민족인 투르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막아왔다. 따라서 투르크인들은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지난 1,100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다. 터키에 복음전파와 교회개척이 어려운 구조적 이유이다.
삼순
삼순교회
흑해 권역 특히 삼순은 성경의 본도이다. 본도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삼순의 인구는 2020년 현재 1,356,079명으로 81개 주 가운데 인구수로 16번째 주이다. 삼순에는 “5월 19일 대학교”가 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파샤 장군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한 오스만 제국이 전승 국가들에 의해 산산조각 날 때 터키 독립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 삼순에 도착한 날이 바로 5월 19일이어서 이를 기념한 이름의 대학이 세워진 것이다. 이 공로로 그에게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투르크”라는 이름을 1934년 터키 의회가 헌정하였다. 이런 배경을 가진 지역인만큼 이슬람보다는 민족주의가 강해서 투르크인이 바로 무슬림이라는 것을 민족적 정체성으로 지켜내고 있는 지역이다. 교회 개척이 너무 힘든 지역이다.
삼순에는 2011년부터 주 안에서 친구가 된 삼순 개신교회 오르한 피차클랄 목사가 있다. 우리가 방문한 11월 2일이 그의 51세 생일이라고 삼순 사역자들이 미리 귀띔해주어서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 갔다. 미국의 기도자 한 분이 이 이야기를 듣고 준비해 준 멋진 모자이다. 오르한 목사는 모자를 좋아한다. 흑해 지역은 겨울에 꽤 춥기 때문에 머리숱이 적은 오르한 목사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2년 만에 터키를 방문했는데 왜 11년 전 일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처음 삼순을 방문할 때의 일이다. 2011년 9월 23일 김성간 목사와 나는 삼순에 도착했다. 터키 동부의 큰 도시 반에서 이틀 정도 도시를 걸으며 중보기도를 하고 나서, 김성간 목사가 나와 함께 꼭 삼순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는 이상하게 방문하기가 싫었는데 그 이유를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김성간 목사의 주장에 등 떠밀려 그렇게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삼순을 가게 되었다. 이즈음에 김성간 목사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다. ‘광야에 길이 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느냐? 길이 없는 광야에 자꾸 가다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설득이 되었다. 광야 같은 터키와 이슬람권에 길을 내는 방법은 자주 현장을 가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 동의가 되었다. 처음에는 길처럼 보이지 않던 발자국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길이 되는 이 평범한 원리가 우리의 교회개척운동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삼순
2011년 9월 삼순을 방문한 날은 유난히 비가 내렸다. 삼순 교회를 처음 방문하는 우리를 위해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올 상황이 아니었는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다가 어느 지점이 되면 운전사에게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 공항에서 삼순교회까지의 오르한 목사의 안내였다. ^^
우리는 터키어를 하지 못하는데 그 말을 하고 버스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터키어를 적어서 영어식으로 외워 긴장하며 우리가 아는 지명이 나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가 찾는 지명을 발견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빗속에 빨간 십자가를 보았다. “내려 달라! 우리를 내려 달라! 저 교회에 갈 수 있도록 내려 달라!”
무슬림 버스 운전사는 교회에 가기 위해 환한 얼굴로 내리는 우리를 보며 레몬수로 손을 씻고 있었다. 2011년 라마단 기간은 8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였는데, 라마단이 끝나고 약 한 달 후에 교회를 찾아가는 외국인 이교도를 만난 것이 부정을 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는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며 손을 씻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삼순교회는 작은 4층 건물의 2, 3, 4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2층은 교회 사무실이며 오르한 목사의 사무실 그리고 CCTV를 볼 수 있는 보안실의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3층은 약 50명 정도가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며, 4층은 게스트 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게스트 룸에 머물렀는데 샤워실도 있고 더운물, 찬물이 모두 잘 나오는 곳이어서 참 좋았다. 이때부터 터키 사역의 파트너인 김성간 목사와의 동침이 지금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다. 거룩한 동침이다.
오르한 목사의 매일 주요 일과는 교회를 찾아오는 두 그룹을 상대하는 것이다. 한 그룹은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고 교회 문과 창문을 공격한다. 당시 오르한 목사의 어린 외아들인 쿠빌라이는 납치의 위협을 몇 번 받았고 오르한 목사도 살해 위협을 몇 번 받았기 때문에 삼순 경찰들이 교회 앞에 이동 방범초소 같은 것을 설치해 놓고 교회와 오르한 목사 가족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르한 목사와 식사 교제를 할 때는 오르한 목사의 경호를 맡은 경찰관의 식사도 대접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
또 다른 그룹은 교회에 들어와보고 싶어하고 또 복음에 대해 질문도 한다. 삼순 중심가에서 5월 19일 대학교에 가는 길에 삼순교회가 있다. 이 때문인지 대학생 그룹이 교회를 찾아오는 일이 많다. 강의가 비는 몇 시간에 갈 곳을 생각하다가 교회를 찾기도 하고, 오르한 목사가 대접하는 차를 마시며 숙제를 하다가 복음에 대해 토의도 하는 대학생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두 그룹이 삼순교회를 견고하게 하고 성장하게 했다. 교회 건물을 공격하는 터키 무슬림들은 주로 민족주의자들로서 삼순이 터키 독립운동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 특히 십자군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무슬림 선조들이 죽임을 당한 것 때문에 기독교의 복음을 거부하는 그룹이다. 십자군 당시에는 전쟁하는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오르한 목사에게 복음에 관심이 있다고 성경을 보내달라거나 방문해달라고 요청하는 터키인들도 있다고 했다. 차로 6시간 이상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지역의 교도소에서도 그런 요청을 받고 있었지만, 오르한 목사는 공격받는 교회 건물을 지켜야 하고 복음관심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동역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좁은 교회사무실에서 CCTV를 쳐다보며 긴 세월을 한숨으로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방문한 다음 해에 삼순교회를 돕기 위해 외국인 동역자 몇 가정이 삼순에 이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6개월이 채 되기 전에 그 동역자들은 삼순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약 2년이 지나고 미국에서 온 외국인 사역자 두 가정이 삼순에 정착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또 몇 개월이면 떠날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의구심으로 마음의 평안이 없었다. 그런데 이 두 가정이 삼순에 정착한 이후 오르한 목사의 얼굴에 웃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와우~
삼순
웃는 얼굴과 찡그린 얼굴은 다르다. 동역자가 된 두 가정이 오르한 목사가 필요한 사역들을 함께 섬기며 삼순교회의 지도자인 오르한 목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제자들이 세워지고 난민들을 돌보며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의 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서 자라고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수백 명에 달한다. 대학생들은 졸업 후 자신의 고향이나 직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삼순교회에 정착하는 성도들은 그렇게 증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힘을 얻고, 믿는 자의 수를 더하는 사도행전의 역사가 삼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납치 위협을 받고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불이익을 받았던 오르한 목사의 외아들 쿠빌라이는 북키프로스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의사 과정을 이수한 후에 지금은 이스탄불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터키 교회의 재정적 자립에 대해 오르한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터키 교회의 미래는 밝습니다. 터키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께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를 믿으면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집에서 내쫓기기도 하지만 제 아들을 보세요.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중고등 학생 때는 기타를 치며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했어요. 지금은 의사가 되어 삼순교회에 헌금하는 귀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약 2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하면 터키 교회도 재정적으로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단계로 나가리라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복음관심 무슬림들에게 예수가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설명하고 대화하며 가르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키워내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11년 아무 동역자도 없던 삼순교회의 오르한 목사는 현재 오르두, 시놉, 초룸, 악사라이 다섯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2014년 세워진 외국인 사역자 가정들과 아름다운 동역을 통해 삼순교회가 힘을 얻고, 지도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는 행복한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진 것이다. 그동안 오르한 목사를 웃게 했던 그 사역자 가정들은 원하지 않지만, 터키를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두 가정을 삼순으로 보내셔서 교회가 힘있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 주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시기를 기도한다. 2022년에는 아마시아와 토캇에 교회가 개척될 것이다. 그리고 흑해 권역 18개 주의 1천 3백만 명을 위해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계속해서 개척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되고 교회가 개척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침노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삼순교회를 방문한 우리 팀은 이스탄불 M 센터 허강한/강안나 디렉터와 HWM 1기 4명으로 구성된 예배팀의 인도로 약 60명 이상이 모여 함께 찬양했다. 그리고 삼순 지역 영적 상황에 대한 오르한 목사의 브리핑을 듣고 삼순교회와 흑해 권역을 위한 뜨거운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예배가 끝난 후에 오르한 목사는 삼순교회에 예배팀이 너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우리는 교회 개척에 찬양인도자들이 중요한 부분인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모임에는 삼순교회 교회개척자들이 함께 하였다. 터키인 교회개척자 탄셀, 아흐멧과 이라크인 교회개척자 아르칸, 사르곤, 이산, 마헤르 그리고 아프간 교회개척자 카림이 함께 했다. 그리고 교회개척자 후보 세 가정의 부부들이 참석해서 SWM 교회개척사역과 어떻게 동역할지를 나눴다. 각 교회 개척자들이 지난 1년의 사역을 보고하고 기도제목을 나눈 후 우리 모두가 함께 삼순교회와 교회개척자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지난 수년간 삼순교회에서 예배인도자로 그리고 이란인 교회개척자로 매 주일 삼순교회 예배와 이란인 교회를 섬기고 난 후에 약 2시간 떨어져 있는 시놉을 버스를 타고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던 이란인 샤힌 사역자는 캐나다에 난민 신분이 받아들여져서 10월 말에 캐나다로 떠났다. 샤힌 사역자가 정착한 캐나다의 동쪽 끝에 있는 할리팍스 시에는 약 1,000가정의 이란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며 이들을 향한 영적 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왔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캐나다의 이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이들의 기도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캐나다에서 샤힌과 카타윤 부부의 또 다른 교회개척사역을 보게 될 것을 위해 기도한다.
오르한 목사의 51세 생일축하 파티
오르한목사 생일파티
참 특별한 시간이었다. 단 하루를 삼순에서 머무는데 그날이 오르한 목사의 51세 생일이라니 꼭 축하하라는 성령의 인도로 생각되었다. 약 20년 전, 30대 초반에 가지안텝 출신의 회계사였던 청년 오르한은 믿음을 가지고 안탈리아에서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다. 개방된 관광 도시인 안탈리아에서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가던 오르한 목사는 수년간 모아 놓은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을 사기당하면서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오르한 목사 가정을 흑해의 삼순으로 부르신 시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를 찾으시는 것 같다.
생일축하 저녁 식사에는 삼순교회 지도자들의 가정, 교회 개척자들의 가정 그리고 우리 팀 거의 60명 가까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바닷가의 (흑해는 모든 도시가 바닷가에 있다^^) 멋진 식당 2층을 통째로 빌려서 축하 파티를 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몇 분이 이런 사역에 사용해 달라고 주신 헌금을 유용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팀들이 준비해 온 생일축하 배너를 벽에 걸고 생일축하 모자를 오르한 목사와 귤 사모에게 씌웠다. 터키인, 이라크인, 이란인, 아프간인, 한국인들이 모여 터키 현지교회 목회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 시간은 정말 위로와 사랑의 시간이었다. 오르한 목사에게 생일선물을 준비해 준 자매가 손수 구운 스콘과 피칸 파이를 디저트로 나누는 흐뭇한 시간도 있었다. 우리가 터키에서 현지인 목사를 위해 이런 규모로 한 첫 생일파티였다. 무엇보다 터키 교회 리더들과 성도들이 우리와의 이런 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것을 감사하였다.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주님으로 계시니 민족과 방언, 백성과 나라를 넘어서는 연합과 하나 됨이 이루어진 것이다.
시놉
시놉교회
삼순을 떠나 터키의 최북단 도시인 시놉을 방문했다. 시놉은 관광도시이면서 항구이다. 시놉의 인구는 216,000명으로 인구수로 72번째 주이다. 시놉은 싱싱한 생선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도시라고 기억하고 있다. 시놉에는 몇 년 전에 시작된 이란인 난민공동체가 있었고, 이들을 삼순의 샤힌 사역자가 매주 왕복 4시간 버스를 타고 다니며 2년 이상을 섬겨왔다. 그리고 삼순교회가 지교회를 세우기 위해 작은 공간을 빌려서 시놉개신교회를 개척했고, 현재는 아프간인 교회개척자 카림 형제가 섬기고 있다. 카림 형제는 이 지역의 아프간인, 이란인 난민들을 섬기면서 터키인 복음 관심자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있다. 우리 팀이 방문하여 아프간 난민들과 함께 찬양하고 예배한 후에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카림 사역자는 영어를 잘했고, 의외로 영어 소통이 가능한 아프간 난민들이 있어서 그들의 사정을 짧게나마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
제일 앞자리에 앉은 장년 남자 한 분이 기도를 부탁했다. 2주 전에 탈레반에게 아들을 잃고 기도를 부탁하는 그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는데 그의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기도하는 우리도 그 마음을 나누며 하나님의 위로를 눈물로 간구하였다. 돌아갈 나라가 없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본향이며,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들을 위로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교회 근처의 식당 하나를 발견하였다. 3층 건물인데 1층은 생선을 팔고 2층과 3층 다락방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놉교회 교우들과 우리 팀 거의 50명에 가까운 성도들이 식당에 들어가 싱싱한 생선 요리를 맛보는데 아프간 난민들은 집에 있는 식구들까지 부르느라 분주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찾아온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프간 난민들이 우리와의 예배와 식당에서의 맛있는 생선 요리를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기도한다. 2021년 8월 15일 아프간을 다시 점령한 탈레반 정권이 미국에 협조한 아프간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말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지 하나하나 들으면서 아프간에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미국에서 몇 분들이 헌금해 주셨고 미국 달러가 강세여서 터키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감사했다.
초룸
시놉의 카밀 사역자와 아프간 난민들과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우리는 초룸으로 출발했다. 초룸의 인구는 약 53만 명으로 인구수로 42번째 주이다. 초룸을 사탄의 발톱이라고 보고한 교회개척 단체의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너무나 많은 사역 단체들이 초룸에 교회를 세우기 원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슬람이 강한 보수적인 이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기에 사탄의 발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약 3년 전에 삼순교회의 아르칸 교회개척자를 통해 이라크 난민공동체가 초룸개신 교회를 개척하였다. 바그다드에서 영어 교사를 하던 한 자매의 가정과 그녀의 두 남매가 이라크 난민 자녀들 약 30명에게 영어와 수학 그리고 아랍어를 집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 집이 가정교회가 된 것이다. 약 2년 이상 초룸에 교회를 개척한 이 자매는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터키에서 캐나다로 난민으로 받아들여진 가정이 세 가정인데 모두 캐나다에 적응하는 것과 특히 본인들을 받아주는 예수 공동체를 찾는 데 어려움을 말하고 있어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초룸개신교회는 현재 이산 형제가 섬기고 있고, 삼순개신교회의 법적 우산 아래 지역 행정관청과 이웃들에게 법적 정당성을 보장받고 있다. 삼순개신교회는 약 1년 전에 바크프 (재단) 지위를 획득하여 여러 곳에 적극적으로 지교회를 세우고 있다.
2년 전에 초룸교회를 방문했을 때에는 20여 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모여 조용히 예배드렸었다. 이번에 방문해 보니 이 교회의 창립 그룹인 이라크 난민들 그리고 지금은 이란 난민들과 소수의 터키인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들 포함 5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고 있었다. 우리 팀을 포함해서 거의 80명 정도가 찬양하며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성령의 큰 역사를 느끼게 되었다. 사탄의 발톱이 뽑히고 빛이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것이다.
초룸교회를 섬기는 이산 형제는 영어도 탁월해서 아랍어를 영어로 또 영어를 아랍어로 통역하는 은사가 있고, 찬양 인도와 연결해서 말씀을 전하는 은사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산 형제를 통해 초룸교회가 말씀 위에 세워지고, 더 깊은 말씀의 토대 위에 의의 나무들이 세워져 가기를 기도한다. 예배 후에 거의 80명에 가까운 교우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은 정말 기쁨이었고 놀라움이었다. 말씀과 예배 위에 세워지고 성장하고 있는 초룸교회를 통해 많은 터키인과 난민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한다.
아마시아
밤이 늦었지만 초룸을 떠나 우리가 잠을 잘 아마시아로 출발했다. 왜냐하면 삼순교회의 다음 교회개척 할 도시가 바로 아마시아이기 때문이다. 아마시아는 인구 33만 5천 명, 인구수로 57번째 주이다. 몇 년 전부터 삼순교회 아르칸 사역자를 지원하는 열린문장로교회 단기 팀들과 2번 이상 이 지역을 방문하여 교회개척을 위해 기도해 왔다. 아마시아를 비롯한 토캇 등을 방문하여 난민 가정을 방문하고 간증과 복음을 선포한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교회개척으로 열매 맺고 계시는 것을 보고 있다.
오르두
오르두는 크지 않은 주인데 오르두는 터키어로 육군 또는 육군 부대라는 뜻이다. 주 인구는 2020년 추정 761,400명이며 인구수로 30번째 주이다. 크지 않지만 대학교가 있다. 흑해 지역은 오스만 제국 시절 그리스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다. 그리스 정교회에 속해 있는 그리스인들이 흑해 지역에 많은 교회와 신학교를 세웠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오르두에 있는 타스바쉬 교회는 그 규모가 작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건물들은 신학교와 수도원을 상상하게 한다. 바닷가 길에서 잘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타스바쉬 교회는 현재 박물관이다. 가슴 아프지만 그 이전에는 오랫동안 감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오르두에 세워진 오르두 아가페교회는 삼순개신교회가 세운 첫 번째 지교회이며, 2015년 6월에 개척되었다. 2014년 SWM 킹덤 아웃리치가 시작한 첫해에 흑해 아웃리치팀은 삼순에서 시작해서 트라브존까지 중보기도 사역을 했다. 그때는 오르두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자고 아침 일찍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기도하다가 터키 시민들을 만나면 복음 팔찌와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사역을 했었다. 아침에 호텔 안에 있는 텐트식당에서 우리 팀은 사역을 나가기 전에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하는 중에 “이곳에 교회가 서겠느냐?”는 음성이 들려왔다. 일행 중에 누가 물어보는가 하고 눈을 뜨고 보니 모두 기도하고 있었다. 멈칫하고 있는데 그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이곳에 교회가 서겠느냐?” 누구의 음성인지 알게 되자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님, 저는 모르지만 주님의 뜻이면 이곳에 교회가 설 것을 믿습니다.” 그 음성은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누구에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거룩한 시간이었기에 큰 부담을 가지고 오르두 사역을 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그리고 2년 후에 오르두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할렐루야~
오르두 아가페교회를 세운 사역자는 삼순교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동역으로 작은 공간을 빌려서 교회 건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많은 삼순교회 성도들이 교회 건물을 페인트 칠하고 고치는 작업을 함께하게 되면서 외롭지 않게 오르두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다. 이미 세워진 삼순개신교회가 우산이 되어 법적인 지위를 제공하고 기도와 동역자들을 나누는 관문교회의 역할을 하면서 첫 교회를 재생산해낸 것이다. 이것이 터키 교회가 꿈꾸는 이슬람권의 교회개척 전략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터키에서 교회로서의 법적 지위를 얻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또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터키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오르두교회는 외국인 사역자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도 사역하고 있지만 삼순교회라는 현지인 교회와 동역하면서 오르두시의 이웃들과 정부와의 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가고 있다.
오르두교회
몇 년 전부터 오르두 교회는 언덕 위 오래전에 세워진 타스바쉬 박물관을 교회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오르두시에 요청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때에 정부의 허락도 받게 되리라 생각한다.
2014년 흑해팀이 오르두를 방문했을 때 이 타스바쉬 박물관을 방문해서 기도하면서 이 박물관이 원래 세워진 목적대로 교회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우리 팀이 박물관에서 기도하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경찰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해서 우리 일행의 여권을 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터키에서 외국인에게 여권을 보자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 일행 8명 중 2명은 먼저 차로 걸어가고 있었고 6명은 박물관 앞에서 만난 남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복음 팔찌를 주고 설명하면서 그중에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학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 여권을 손에 쥔 두 명의 경찰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학생들에게 성경을 주었는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여기를 방문한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전화로 터키 전역에서 킹덤 아웃리치 사역을 하는 팀들에게 긴급 기도요청을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우리와 함께 있던 터키어를 하는 사역자가 경찰에게 설명했다. “우리가 손목에 복음 팔찌를 찾고 있으니까 이 학생들이 그것이 무엇이며, 얻을 수 있냐고 물어서 주었다. 그 복음 팔찌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고 팔이 부러진 학생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들인데 우리의 믿음에 관해 물어보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두 경찰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성경을 주지 않았으면 괜찮다. 문제가 없다. 복음 팔찌를 주어도 좋고 또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니 우리는 그 학생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서 당신들을 보내주고 싶지만 이 도시의 가장 높은 지위의 경찰 간부가 오고 있어서 여러분을 그때까지 보낼 수 없어서 미안하다.” 아니 이것이 터키 경찰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팀이 방문하기 며칠 전에도 흑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외국인들이 추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거의 두 시간을 두 명의 경찰들과 함께 빼앗긴 여권을 받기 위해 기다렸고 경찰 고위 간부가 와서 우리의 사정을 모두 들은 후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오르두 교회는 이란 난민 성도들과 터키 성도들이 모여 매주 예배드리며 예수의 제자로 성장하고 있다. 오르두 교회가 원하는 타스바쉬 교회에서 예배드릴 날을 손꼽아 기도한다.
4차 터키 CPRT 팀 23명은 작은 오르두교회를 방문하여 외국인 사역자와 그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란인 교회개척자 베흐루즈와 메리암 부부와 함께 터키어 한국어로 찬양하며 뜨거운 예배를 드렸다. 허강한 사역자와 HWM 팀이 이끄는 경배는 정말 능력으로 나타났고 오르두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난민들은 모처럼 풍성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우리가 방문한 삼순, 시놉, 초룸, 오르두교회 모두가 예배를 인도할 찬양 사역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서 우리가 도와야 할 사역이라고 마음에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예배 후에 오르두 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일행은 함께 식사하면서 귀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 식당에서 귀한 일이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 터키 사역자 한 가정이 5년 전에 세례를 준 성도를 오르두에서 만나게 되어 눈물의 재회를 하는 것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더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오르두 교회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5시간 떨어진 도시 호파를 향해 출발했다. 식당 앞에서 다음 사역지로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오르두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난민들을 보면서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르두교회 성도들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위로와 성령의 능력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베흐루즈 교회개척자의 간증은 이번 호에 함께 실려 있어 여러분이 꼭 읽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호파
호파
호파는 인구 17만 명의 아르트빈주의 한 도시이며 인구는 약 3만 명 정도이다. 이 작은 도시는 터키 동부 아나돌루로 넘어가는 도시이며 조지아와 국경을 마주한 국경도시이기도 하다. 호파에서 조지아 국경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데 그 국경에서 가까운 바투미에 SWM M 센터가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협력을 위해 호파교회를 방문한 것이다. 이 도시에 예수 공동체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듣었지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앙카라 쿠르투루쉬교회가 교회를 개척했다.
이곳에 교회를 개척했던 터키인 가정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파를 떠나게 되어 앙카라 쿠르투쉬 교회를 섬기는 가정이 호파교회를 섬기러 얼마 전에 이사했다. 두 아들을 둔 삼십대의 젊은 부부 쉐브켓과 빌게 사역자이다.
호파 쉐브켓 사역자 부부와
현재 교회 건물이 없이 아르하비의 쉐브켓 가정에서 모이고 있고, 그곳은 호파에서 약 15분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우리가 묵는 호텔로 이 가정을 초대해서 함께 저녁 식사교제를 했다. 그날은 그 호텔에 우리 일행만 묵고 있는지 호텔 꼭대기 층의 식당에는 우리 일행 23명과 쉐브켓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호텔 종업원 3명이 전부였다. 식사 후에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함께 터키어 찬양을 부르는데 호텔 종업원들이 흥미를 가지고 우리를 보다가 영상을 찍고 있었다. 아시안들이 자기 나라 말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너무나 신기한 얼굴이었다. 쉐브켓과 빌게 부부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도시에 와서 지내다가 터키어와 영어로 우리 팀들과 대화하며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는지 찬양 중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가 쉐브켓 가정과 호파교회의 기도제목을 듣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난 후 그 부부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려고 빙 둘러서 기도하려는데, 종업원 중 한 명이 자기도 함께 기도하겠다고 우리 무리 중에 서는 것이다. 나중에 그 젊은 종업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호텔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쉐브켓 부부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 그 젊은이에게 왜 기도를 함께 했는지,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물었더니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우리가 축복하는 그 장면에 자신도 함께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교회개척자 쉐브켓 형제가 그 터키인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뜨겁게 기도해 주었다. 쉐브켓 형제는 약 2달 전에 이사했는데, 지금 사는 곳 주변에서는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그 두 달 사이에 전도하여 한 터키인이 예수를 믿는 열매도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호파교회를 축복하시고 전략적인 곳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것을 믿는다.
카르스
카르스는 인구 29만 명으로 인구수로 61번째 주이다. 호파를 떠나 카르스로 가는 길은 대부분 험한 산길이다. 5시간을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 자체가 고생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역팀이나 기도팀이 많지 않다. 터키를 방문하는 아웃리치 단기팀이나 기도팀들은 대부분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자신들에게 허락된 일정에 맞춰 사역을 계획하다 보니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율이 없어 보이는 지역들은 방문 일정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지역일수록 더 기도와 방문이 더 필요한 지역임을 많은 분들이 알면 좋겠다.
아르트빈을 벗어나 아르다한을 지나 카르스에 도착하는 5시간은 CPRT 팀원들이 자신의 삶과 간증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산길을 따라 움직이는 버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또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나누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도전이었다. 하나님의 사람들 앞이 아니라면 나누지 않을 개인적인 것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시고 일하시는지를 부끄러움이나 과장 없이 나누는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신실하신 그분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카르스에는 카르스 출신의 터키인 교회개척자 누레틴과 동역자 아르메니아 사역자 다비트가 우리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두 사역자의 간증은 이번 호 금향로에 실려 있다.
카르스 아니성채
우리가 호파를 아침 일찍 떠난 이유는 카르스에 도착해서 누레틴, 다비트와 함께 카르스 동쪽 1시간 거리에 있는 ANI (아니) 성채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카르스가 속해 있는 터키 동부 지역 대부분은 이전에 아르메니아 제국의 땅이었고 아르메니아는 AD 301년에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국가이다. ANI 성채는 AD 5세기에 세워졌지만 나중에 터키 동부를 포함한 지역을 통치하던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왕국 (AD 85~1045)에 의해 크게 증축되었다. ANI 성채에는 50개의 교회, 33개의 동굴교회와 20개의 작은 예배 처소가 있어 아르메니아인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의 ANI 대성당이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ANI 대성당 바로 뒤에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데, 그 개울 건너편이 바로 아르메니아 땅이다. 어떤 철책이나 국경을 알리는 담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오스만 제국 끝에 일어나서는 안 될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1914~1918년에 오스만 제국은 지금의 터키 땅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로 연행해서 살 수 없는 지역에 버리거나 살해하는 방법으로 최소 80만 명에서 최대 2백만 명을 살해했다고 미국 의회보고서가 공식 확인하고 있다. 이것이 터키 공화국의 큰 족쇄가 되어 이웃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화해할 수 없는 원수 관계를 만들었다. 터키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터키 대통령 후보들은 강력한 나토 우방인 미국을 방문해서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때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요구하는 가장 큰 것은 터키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이다.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 해야 할 조건 중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는 것이 포함되며, 터키의 인권의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맞출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성채를 터키인 사역자 누레틴과 아르메니아 사역자 다비트와 함께 방문하여 하나님 앞에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복음 안에서의 화해를 위한 기도를 드리려고 한다. 누레틴 사역자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겠지만 누레틴 사역자와 다비트 사역자가 그것이 터키 복음화를 막는 큰 장애물을 제거하는 영적 전쟁인 것을 이해했기에 동의했고 함께 ANI 성채를 방문하게 되었다.
어려움은 성채를 들어가는 과정에서 벌써 일어났다. 성채 경비원이 우리가 가지고 온 키보드와 기타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성채에서 종교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위한 악기들을 경비실에 맡기고 삼순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한 터키인 가이드의 안내로 성채에 대한 안내를 받기 시작했다. 터키 정부가 요구하는 관광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이다. 성채 경비원은 우리가 어떤 종교행위를 할까 감시하기 위해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왔다. 우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터키와 오스만 제국이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지울 수 있는 두 민족 간의 영적 화해와 돌파를 기도했다. 기도하고 싶은 교회 건물이 보여서 우리 일행이 들어갔는데 그 공간이 작아서 더 이상 다른 관광객들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우리는 목소리로만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난 후, 김성간 목사의 인도에 따라 터키인 누레틴 사역자가 아르메니안 대학살에 대해 아르메니아인 다비트 사역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비트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도 시간을 가지고 뜨겁게 포옹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터키와 아르메니아에 임하기를 간구했다. 이재진 선교사는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이 놀라운 역사적 화해의 시간에 증인 된 우리 CPRT 팀이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 일의 증인으로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추수가 이 땅 가운데 일어나기를 선포했다.
카르스로 돌아가 우리를 기다리는 카르스 교회 성도들과 한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 교제를 하였다. 식당 주인은 모처럼 만선을 한 어선 선장처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고 저녁 식사로 나온 메뉴는 한국인인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이어서 행복했다. 카르스에는 교회 건물이 없어서 누레틴 사역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코비드 때문에 한동안 줌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다시 가정에서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배 장소가 없어서 우리 일행이 머무는 호텔의 컨퍼런스 룸을 빌려 함께 예배하게 되었다. 허강한 사역자의 풍성한 찬양 인도와 김성간 목사의 말씀에 이어 이재진 선교사의 인도로 카르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제와 예배 그리고 기도와 축복은 하나님의 교회가 가진 특권이며 능력인 것을 경험한다. 지금은 작지만 믿음에 굳게 선 카르스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했다.
반
아크다말-성십자가교회
CPRT 여정이 힘든 점은 마음을 열고 만나 교제하고 예배하고 함께 기도한 새로운 공동체들과 매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도 힘이 들지만 우리의 방문을 통해 그들이 위로받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를 우리는 기도했다.
반은 인구 126만 명으로 인구수로 19번째 주이다. 쿠르드인의 도시라 불리며 이란과 육로로 연결되는 국경 지역이다. 카르스를 떠나 동부 아나돌루의 가장 큰 도시인 반까지도 버스로 5시간 반이 걸린다. 그 가운데 교회는 없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아라랏산을 지날 때 고속도로 주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아라랏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라랏산은 창세기에 있는 신화적 장소가 아니라 이 지역을 통치했고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산이었으며, 그들은 아라랏산을 자신들의 성스러운 산으로 생각하며 현재 터키에 속해 있는 것을 너무 가슴 아파한다. 반교회의 리더십과 성도들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반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아크다말 섬을 배를 타고 방문했다. 약 4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면 아크다말 섬의 수룹하치 교회를 보게 되는데 이 뜻은 성 십자가 교회라는 뜻이며, 교회의 형태를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아름다운 이 교회의 바깥벽에는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들이 양각 부조로 새겨져 있다.
2014년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터키는 아르메니아와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원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의 여러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중 하나가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건물이었던 터키 동부 반 (Van) 호수의 아크다말 섬에 세워진 수룹하치 교회 (성 십자가 교회)를 복원하고 십자가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2010년 9월에 수룹하치 교회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전 세계 아르메니아 성도들 약 3,000명이 모여 예배하는 일이 있었다. SWM 선교회는 다음 해인 2011년 4월에 동부 순례팀을 구성하여 구약의 성지들을 돌아보고, 부활절에 수룹하치 교회를 방문하여 성찬식을 하고 터키에서 열방을 축복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반 교회개척 설명하는 바히트목사
이제 동부 아나돌루에 하나님 나라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바람이 부는 곳에는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를 알기 원하는 무슬림 복음관심자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시는 이 땅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영광이자 은혜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마저 영광스럽게 받아들이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보이시고 그분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다. 아크다말 수룹하치 교회에서도 예배를 금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마음으로 이 땅의 영적 회복을 기도하고 어제에 이어 터키의 영적 회복이 아르메니아와의 영적 화해를 통해 올 것을 믿게 되었다.
반개신교회 바히트 목사는 이스탄불의 한 교회를 섬기다가 고향인 반에 교회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이사하였다고 간증한다. 고향에 교회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된 바히트 목사를 통해 쿠르드인의 고향 같은 반에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되었다. 물론 수많은 외국인 사역자들의 눈물의 기도와 고난의 사역이 없었다면 반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 어려웠을 것을 잘 안다. 반개신교회는 감사하게도 몇 년 전에 8층 건물의 한 층을 사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팀은 교회 건물을 방문해서 터키어와 영어 한국어로 찬양하며 주님을 높인 후에 반 개신교회의 바히트 목사의 교회개척전략을 듣게 되었다. 바히트 목사는 하나님께 12개의 교회를 개척해서 드리기 원한다는 교회개척 비전을 나누었다. 카르스에 누레틴 사역자를 통해 그 첫 번째 교회가 개척되었고 이제 반에서 조금 떨어진 에드레밋에 두 번째 교회를, 그리고 1년 이내에 아라랏산 근처의 도시 으으드르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교회개척자를 훈련하고 있다. 터키에서 현지인이 중심이 되어 교회 개척을 꿈꾸고 전략을 세우며 현지인들에 의해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다.이번 방문을 통해 하나 더 알게 된 것은 바히트 목사의 큰 아들이 이제 장성해서 말라티아에서 사역하다 지금은 북키프로스에서 사역하는 제리 매틱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터키의 예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가정들이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터키에 1962년 2명의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진 이후 현대 터키 선교가 시작된 지 60년이 되었다. 처음 예수를 믿은 터키 남성 성도들은 결혼할 여성 성도들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외국인 여성 사역자와 결혼하거나,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거나 아니면 결혼하지 않았다. 이제 결혼 상대를 터키의 예수 공동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이 임한 증거이기에 진심으로 축복하고 감사하게 된다.
디야르바크르
디야르바크르
주일 아침 일찍 반을 출발해서 디야르바크르로 이동하였다. 이동 시간은 6시간이다. 반과 디야르바크르 사이에 교회는 없다. 이 지역에 사는 수백만의 터키인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은 6시간 가까이 버스나 자기 차를 타고 반개신교회나 디야르바크르 개신교회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디야르바크르 교회는 약 80명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2층에 마련되어 있어서 마음껏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었다. 마라나타 비전교회의 강대이 목사의 설교, 아흐멧 목사의 교회개척비전 나눔에 이어 마르딘으로 파송하는 이브라힘과 세랍 그리고 두 자녀를 위한 뜨거운 기도로 예배를 올려드렸다.
우리가 방문한 교회들 중에는 삼순교회 (자체 소유), 오르두교회, 시놉교회, 초룸교회, 반교회 (자체 소유) 그리고 디야르바크르교회 (자체 소유)는 자기 건물이 있거나 건물을 임대한 교회이다. 터키에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면 건물주들이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가정교회로 모이는 곳이 매우 많다.
디야르바크르는 동남부 아나돌루 권역에 속해 있고, 인구 175만 명이며 인구수로 12번째 주이다. 디야르바크르는 터키 쿠르드인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이다. 이 말이 갖는 뉘앙스가 터키에서는 묘한 긴장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터키에는 55개 이상의 다민족이 살아가고 있는데 유독 쿠르드인들이라고 말을 하면 레드 플래그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터키 8천 5백만 인구 중에 1천 5백만~2천만 명이 쿠르드계 터키인인데 이들은 쿠르드인들의 독립국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인구의 약 18~24%가 쿠르드계라는 통계가 있다. 터키 정부는 이들이 시리아 북부, 이란 북부, 이라크 북부에 흩어져 있는 총인구 4천만 명의 쿠르드인들과 연합하여 그들의 꿈인 독립국가 쿠르디스탄을 만들것을 가장 우려하고,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북이라크에는 2004년 이후 쿠르디스탄이라는 쿠르드인들의 자치구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쿠르드계 터키인들과 북이라크의 쿠르디스탄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터키 정부의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 거의 4백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터키에 난민으로 들어와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쿠르드계 시리아 인들이다. 이들을 포함하면 터키에 있는 쿠르드인의 숫자가 2천만~2천 4백만 명에 가까워지는데 터키 내의 쿠르드인들이 28%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르딘교회
디야르바크르 개신교회는 아흐멧 규베네르 터키인 목사가 1995년에 개척해서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쿠르드인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서 터키인이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 개신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아흐멧 목사 가정은 약 26년 동안 신실하게 이 교회를 섬기면서 인내와 사랑으로 예수의 제자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 반군 사이에 벌어진 시가전으로 디야르바크르 교회를 한동안 사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몇 년 전에 일어난 시가전으로 교회 건물이 망가져서 건축법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교회 건물을 정부에 빼앗길 뻔한 과정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신 이야기들을 들으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느끼게 된다.
디야르바크르 시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 있다. 교회 건물은 구도시에 있는데 시가전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적을 제외하고는 매 주일과 수요일에 모여 예배하며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이 교회 건물을 방문하는 많은 무슬림이 있다. 무슬림들은 교회 건물을 방문해서 신앙 서적이나 복음전도지를 가져가기도 하고, 교회를 열고 이들을 맞는 리더들과 성도들에게 신앙에 대한 질문과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슬람 신앙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신도시에는 교회개척을 위해 고층 건물 한 층의 반을 교회 건물로 구입해서 젊은이들이 모여 말씀을 배우고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개척 사무실로 운영하고 있다. 교회 간판을 걸어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건물 바로 맞은편에 집권당인 정의개발당 지구당사가 있어서 서로의 간판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신도시의 교회도 부흥케 하시기를 기도한다.
디야르바크르 개신교회는 몇 년 전에 약 1시간 떨어진 마르딘에 교회를 개척했다. 마르딘에는 많은 교회 건물이 있는데 교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마르딘 정부와 대화하면서 오래된 교회 건물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허락을 얻어, 수리한 뒤 2017년 교회로 등록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교회를 섬기고 있는 엔데르 페케르 목사는 우리가 방문하는 날에 이스탄불에 다른 모임이 있어 만나지 못했지만, 아흐멧 목사와 아흐멧 목사가 2022년 1월부터 이 교회로 파송한 이브라힘 교회개척자와 함께 마르딘 교회에서 함께 이브라힘 가정을 위해 뜨겁게 축복하였다.
마르딘 교회는 일 년 방문자가 약 9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방문객에게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나누어 주고 그들이 물어오면 복음을 나누는 전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이브라힘 부부를 파송한 것이다. 마르딘에서 약 1시간 떨어진 미드얏에도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다. 수리아 정교회 건물도 있고 가톨릭교회 건물도 있지만 개신교회 건물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미드얏에도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했다.
하란
이번 여정은 매우 길고 힘든 일정이었다. 어느 현지 사역자는 “거의 유격훈련이군요”라고 할 정도였는데 실제 버스로 이동한 거리가 2,600km (1,615마일)에 달했다. 그래서 가지안텝으로 이동하는 중에 하란을 방문하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하란은 아브라함의 형의 이름이기도 하며 아브람이 데라와 함께 오래 머물렀던 바로 그곳이다. 하란에서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를 데려왔고, 야곱이 에서를 피해 20년 가까이 삼촌 라반을 의지하고 지내다가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을 얻은 곳이다. 지금도 이곳을 방문하면 흰 양과 얼룩점 양을 쉽게 볼 수 있어서 구약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우리 팀은 사역이 없는 지역을 처음 방문하고 또 하란의 특별한 모습을 인생 샷으로 담느라 흥분되었다. 하란에서는 터키 차가 아니라 아랍 차를 마신다. 이전에 시리아 땅이었던 이유라고 생각되며 아랍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란에 잠시 머물고 차 한 잔을 마신 후 우리는 가지안텝으로 출발했다.
가지안텝
가지안텝
가지안텝의 인구는 2백만 명이며, 인구수로 9번째 주이다. 산업도시로 알려진 가지안텝에는 가지안텝 새생명교회가 있다. 이 교회를 개척한 패트릭과 안순자 사역자 부부는 터키와 세번의 법정 소송에서 이겼지만, 결국 터키 입국이 거부되고 추방되었다. 하지만 패트릭 부부가 제자로 세운 터키인 시난 목사가 새생명교회를 섬기고 있다.
새생명교회에서는 시난 목사, 에템 목사, 에크렘 목사 세 사람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난 목사는 새생명 교회에서 터키인 공동체, 시리안 난민공동체 그리고 국제교회 성도들을 함께 섬기고 있다. 많은 고난을 받은 시난형제는 아내인 히다엣의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본인의 간증대로 새생명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위에서 주신 힘으로 사역하고 있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에템 목사는 아랍공동체 새생명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교회를 섬기는 에템 사역자는 시리아 난민이다. 몇 년 전에 난민 지위를 받아들인 다른 나라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터키의 시리아 난민들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어려운 난민 생활 중에도 난민교회를 섬기고 있다. 터키인 에크렘 목사는 가지안텝에서 1시간쯤 동쪽에 있는 수루치에 난민교회를 섬기고 있다. 에크렘은 이 도시의 군수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에크렘의 첫 간증이 이번 호 금향로에 실려 있다. 꼭 보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함께 예배하며 주님을 높여 드리고, 세 교회개척자의 간증과 사역 보고를 들었다.
가지안텝은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에 있으며, 시리아 국경에 제일 가까운 도시이다. 코바나에서 IS와의 전쟁이 났을 때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가지안텝으로 피난을 왔다. 그 숫자가 70만 명을 넘었기에 터키 정부가 이들을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한 난민캠프를 수루치에 세웠고 패트릭, 안순자 사역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수루치 난민캠프에서 봉사했다. 그 열매가 수루치교회이고, 지금은 에크렘 형제가 섬기고 있다. 가지안텝 두 개의 새생명교회와 수루치 교회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부어져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방주가 되기를 기도한다. 잠시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 팀은 마지막 사역지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향했다.
안디옥
안디옥
안디옥은 하타이주이며 인구 163만 명으로 인구수 13번째 주이다. 지중해 권역에 속해 있다. 안디옥은 시리아에 속해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공화국 영토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시리아가 아닌 터키 영토가 되었다. 수리아 안디옥은 바나바와 바울이 섬겼던 안디옥 교회가 있었던 곳이다. 교회 리더십인 바나바와 바울을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파송하며 이방인 선교와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였다. 안디옥에서 남쪽으로 차로 1시간 거리에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 여정을 출발했던 실루기아가 있는데 현지명은 사만다 (Samandağ)이다. 그 조용한 어항이 세계선교를 시작한 귀한 어항이 되었다. 지금도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어부들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는 방문하지 못했다.
안디옥개신교회는 22년 전에 한국 광림교회가 예수님의 성육신 2 천년을 기념하면서 교회가 거의 없는 터키에 교회 건물을 세우고 사역자를 파송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이 교회는 광림교회 파송 사역자 안바울, 박조디 부부와예나, 예주, 예안 세 자녀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섬기고있다. 안디옥은 터키 중심도시인 이스탄불과 수도인 앙카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운 곳이다.
안디옥 도청건물 맞은편에 세워진 이 교회를 통해 안디옥을 방문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위상이 높다. 안디옥 시가 지역행사를 하면 종교지도자들을 초대하는데 안바울 사역자는 VIP로 초대되는 종교지도자이다. 그래서 안디옥에 교회공동체가 세워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역공동체를 만들기 쉽지않은 이곳에서 안바울 사역자 부부는 한마음으로 터키인 공동체를 섬겨오다가, 2010년 12월부터 안디옥으로 넘어온 수많은 난민을 보면서 그들을 돕고 특히 시리아 난민 자녀들을 위한 이레학교를 안디옥개신교회 건물에서 운영하면서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또 아랍공동체 교회개척자인 아지즈와 아말 부부는 난민 청소년들을 위한 이레 청소년센터를 통해 방황하는 많은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의 미래를 준비하며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레 청소년센터에서는 태블릿을 설치해 놓고 오아시스 러닝센터로서 청소년들에게 영어 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안디옥만찬
아지즈 사역자는 몇 년 전에 시리아 전쟁을 피해 터키로 온 난민이다. 터키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신약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아내인 아말은 남편인 아지즈가 예수께 자신의 생명을 드렸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시리아 여성들을 돕는 사역에 훌륭한 동역자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지즈와 아말 사역자 부부는 안디옥개신교회를 섬기면서 터키 아랍인교회 네트워크를 섬기고 있다. 안디옥교회가 어두움 속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고 또 이 빛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는 시리아와 시리아인들 그리고 시리아 난민들에게 소망의 빛, 생명의 빛이 되어 시리아에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조지 교회개척자 가정은 안디옥에 살아온 지 1,800년이 넘는 가문이라고 한다. 터키어는 물론 아랍어도 잘하는 조지사역자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난민의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들의 어려움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디옥 개신교회 건물에는 아늑한 뜰이 있어서 약 80명 정도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야외식당이 있다. 교회가 준비한 양고기와 닭고기 만찬을 함께 나누며 안디옥 개신교회 성도들과 난민들과의 귀한 교제를 한 것을 잊을 수 없다. SWM은 2021년 터키의 이스탄불과 안디옥에 M 센터를 세우고 전략적인 두 지역을 통해 창조적인 사역들을 일으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드는 사역에 많은 사역자와 현지 교회들과의 입체적인 그리고 창조적인 사역들을 위해 동역하고 있다.
CPRT를 마치며
터키팀
이번 트립의 중요한 목적은 교회가 없는 흑해 권역과 터키 동부 권역 그리고 터키 남동부와 지중해 권역을 방문하여, 세워진 교회들의 지도자와 성도들을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건강하고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사역과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듣고, 동역의 길을 찾는 것이 교회의 재생산을 함께 만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곳은 어디인지 확인하고 현장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현지에 세워진 관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개척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계획을 듣는 것으로 충분했다.
처음 계획을 할 때는 9곳의 터키 교회를 방문하려 했지만, 일정 중에 총 11개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연인원 200명 이상이 참여한 11개 교회의 방문을 통해 지난 2년의 팬데믹 기간 중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선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며 예배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고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4차 CPRT팀 23명은 가는 곳마다 한국어와 터키어로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우리 팀은 9박 10일간의 2,600km 대장정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항공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각자의 사역지를 향해 11월 10일 출발했다. 우리의 작은 헌신과 사역을 통해 터키 교회가 위로받고 성령의 능력을 받으며, 그들의 위로와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과 백성 중에 영광을 회복하시고, 음부의 권세를 쳐부수는 하나님의 교회가 계속해서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