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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도제목

하나님의 나라가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능력으로 임하는 기도
  • 전쟁과 팬데믹 및 여러 천재지변과 난리와 난리들 가운데서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늘 깨어서 기도하고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마지막 때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재난의 때를 믿음으로 지혜롭게 대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각자와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 위에 임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속히 이루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 미전도종족에게 속히 전파되게 하소서
  • 한국과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복음의 본질과 열정을 회복하고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하지 않고 열방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는 담대한 교회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교회 공동체에서 온전한 예배와 기도가 회복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능력을 체험케 하시며 각자에게 주신 거룩한 소명을 발견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의 현지 교회와 목회자들, 동역자들과 성도들을 위한 기도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현지 목회자, 사역자,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지속적인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나게 하소서
  • 터키 (PiT), 이집트 (PiE), 쿠르디스탄 (PiK), 그리스 (PiG), 아르메니아 (PiA) 선교사 네트워크를 통해 각자의 은사와 사명에 따라 팀 사역으로 아름다운 동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지난 2년 동안 터키에서 약 70가정 이상의 많은 외국인 선교사가 추방되는 가운데 남아 있는 선교사들이 위축되지 않고 복음전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 무슬림 젊은이들이 이슬람의 실체를 보며 무신론자가 되는 영적 상황 가운데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영적 각성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참 진리를 듣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구원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하소서
  • 중동에서 온갖 박해를 받는 주님의 "지상"교회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소서. 중동의 주님의 "지하" 교회와 "디지털"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소서. 중동 위에 성령을 부어주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중동 전역에 편만하게 전파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교회 개척자 (Church Planter/CP)들을 위한 기도
  • 현재 62유닛의 현지 CP들 (복음전도자/교회개척자/선교사)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사랑의 마음,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개척 사역과 목양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소서
  • 주님께서 친히 모든 CP와 가족들을 늘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날마다 새 힘을 더하소서. 특별히 배우자와 자녀들의 건강 문제, 재정적 압박 등 여러 가지 시련 중에 있는 CP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으로 늘 승리하게 하소서
  • 친척, 사회, 정부의 박해와 압박, 코로나 사태의 어려운 상황 등 주위 형편과 사정에 결코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늘 먼저 구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사역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풍성한 열매들을 허락하소서v
  • 이들의 귀한 희생과 섬김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들을 위한 더 많은 중보기도 동역자들과 재정 동역자들을 세워 주소서
SWM 선교회 및 동역하는 교회들과 개인을 위한 기도
  • 터키 이스탄불 M 센터 (허강한/강안나), 조지아 바투미 M 센터 (팀/사라), 이라크 두혹 M 센터 (패트릭/안순자), 이집트 카이로 M 센터 (허드슨/노뵈뵈), 그리스 아테네 M 센터 (데이빗/레이첼), 그리고 올해 초부터 함께하는 요르단 암만 M 센터 (주요한/손리브가), 현재 총 7개의 M 센터를 통해 현지인이 훈련되고 터키와 중동 지역에 교회개척운동이 더 강력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난민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오아시스 러닝 센터' 사역이 터키 시리아 난민교회, 이라크 두혹 M 센터, 그 외 지역에서 잘 셋업되고 난민을 향한 복음의 접촉점을 이루는 사역이 되게 하소서. 센터 운영을 위한 세미나 (4월 11-15일)에 참여하는 현지인 교사들이 잘 훈련을 받게 하소서
  • 현지 복음전도자 및 교회개척자들의 여러 사역과 목회를 도울 수 있는 성경 신학 교육 코스가 올해 6월에 시작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잘 준비되고 진행되게 하시고,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개척자와 목회자를 훈련하는 귀한 사역이 되게 하소서
  • Holy Wave Makers (2021년 7월-2022년 6월) 청년선교사 1기 사역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잘 마치게 하시고, 2기 (2022년 7월-2023년 6월) 사역을 위해 예비하신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을 보내주소서
  • SWM 선교회에 허락하신 부르심과 사명 (연합기도운동, 교회개척운동, 선교적교회운동)을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 가운데 겸손하고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소서. 모든 동역자의 가정과 사업과 교회를 축복하시고, 특별히 육신의 연약함 중에 있는 동역자들을 온전히 치유해 주소서
마지막 때 영적 대추수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기도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평화가 있게 하시고, 이번 계기로 말미암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위에 새로운 영적 돌파와 부흥이 임하게 하소서!
  • 전 세계적인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는 백성과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섬기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 중남미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정치, 사회, 경제의 어려움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중남미 국가와 민족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이 전파되고, 지역 교회들이 선한 영향력을 가져 지역 교회를 통해 사회가 변화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 동남아시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나라와 민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난리와 전쟁의 소문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힘있게 전파되고 교회가 개척되게 하소서
  • 유럽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쇠퇴한 기독교 국가들 가운데 복음주의 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전파 및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의 악한 김정은 정권이 속히 무너지게 하시고, 지하교회 성도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사 그 땅에 복음이 전파되며 참 자유와 공의가 속히 임하게 하소서
  • 미국과 한국을 긍휼히 여기사 교회들이 깨어나 회개하고 각성하게 하시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이 되게 하소서
  •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시 122:6) 이방인의 충만한 수 (롬 11:25)가 속히 채워지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속히 성취되게 하소서

2022. Summ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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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세웅 금향로 편집인

여름호의 주제는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가 아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이다. 여기에서의 초점은 “먼저”에 있다. 예수께서 공생애 처음 산상수훈을 가르치셨는데 마태복음 5장에서 시작된 산상수훈은 6장이 끝나면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 명령은 사역에 초점을 맞춘 전임사역자의 삶으로 우리 모든 예수의 제자를 초청하는 것이 아니다. 생업은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생업을 버리고 전임 사역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만이 꼭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전임사역자가 아닌 소위 평신도들이 전임사역자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으로 만들어지는 현대 기독교 공동체 안의 이상한 문화는 전통적인 교회 내에서 성경적인 예수 공동체의 삶을 혼동시키고 있다. 전임 사역자들에게 사역을 위탁한 듯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 전임사역자들에게 미뤄지면서 성도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책감이나 또는 전임사역자들을 고용한 듯한 현대 기독교 공동체의 문화는 영적 권위를 파괴하며 세상적 가치관을 예수 공동체 안으로 수입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전임사역자들이 이런 문화를 거부하기 위해 직접 일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사역하는 “농사짓는 레위인”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보고 있다. 지역교회를 섬기는 많은 귀한 목회자들, 여러 전문 분야의 사역에서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없기에 생업을 가지고 생활비를 벌면서 부르심에 따라 사역하는 귀한 전문인 사역자들 그리고 선교 현장 (나라와 문화, 언어, 백성, 종족을 넘어가는)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사역하는 수많은 하나님의 추수밭의 일꾼들을 본다. 예수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침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영광스럽게 적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여름호 주제의 배경이다.

이 땅에 이미 임하신 하나님 나라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회시대이다. 교회시대는 정말 영광스러운 늦은 비의 영광을 맛보게 한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들에게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능력과 영광이 예수의 피 값으로 사신 구원받은 개인과 공동체에 반드시 나타난다. 그 능력과 위엄과 통치와 영광이 강력하고도 단순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터키와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SWM 선교회와 동역교회들 그리고 많은 기도 동역자들은 “먼저”할 일을 선택하는 데 순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뚫고 먼저 할 일을 찾아내는 영적 지혜가 먼저 필요하다.

이번 호에 글을 나누어 주신 분들을 소개하며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김진영 선교사는 발행인 칼럼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한 삶의 결단과 순종을 이야기한다.

이번 호의 리더십 설교는 레익뷰언약교회의 강민수 목사 (SWM 부이사장)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귀한 설교를 보내주셨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며, 걱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나누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방법을 알려주며 우리를 염려하지 않는 삶으로 인도한다. 그것은 첫째,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둘째,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최우선권을 드려라’, 셋째,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라’이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비결을 배우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천국 백성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번 호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수훈”의 일부를 나누며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특별 기고로 ANC 온누리교회의 이승혁 선교부 목사가 “목적과 수단은 의로워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귀한 글을 보내주셨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이승혁 목사의 성경적 이해와 ANC 온누리 교회가 선택한 터키 난민교회 사역의 동기와 비전을 나눈다.

SWM Korea의 임동혁 전도사가 귀한 삶을 나누어 주었다.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비전을 받고 한국의 다음 세대를 일으키기 위해 초집중하고 있는 이 가정이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기”를 통해 치열한 사회 속에 어떻게 가정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있고 순종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나눈다.

SWM 동역교회인 캘리포니아 마라나타 비전교회의 박재표 집사는 건축설계사로 살아가면서 그가 만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의 고백을 마태복음 6장 33절의 2022년 해석으로 나누고 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는 제목으로 삶을 고백하고 믿음의 도전을 준다

이번 호에도 귀한 현장 사역자들의 간증을 소개한다. 이집트의 시리아 난민들을 섬기며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네디르 형제의 “나의 소명과 사명”이라는 글을 나눈다. 2대째 터키 교회를 섬기며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다니엘 규나이 형제는 “우리의 공급자가 되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내주었다. 요르단의 아비르 자매는 2022년 쿠르디스탄 선교사로 헌신하며 “주님께 드린 나의 삶”이라는 간증을 보내주었다. 또한 HWM 1기팀의 유서영 자매의 신나는 간증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선택하기”가 소개된다. HWM 1기 사역은 2021년 7월 시작해서 2022년 6월에 마치게 된다. 무슬림 세계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진실하게 나누어 주는 이집트, 터키, 요르단, 한국 동역자들의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터키 스마트 복음전도 사역보고”는 터키 파트너인 김선희 사역자가 공유해 주었다. 2019년 말부터 팬데믹 세상으로 변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인터넷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포되고 열매 맺고 있는지 귀한 보고를 해주었다. 새 시대를 열어가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사역보고이다.

여름호 이슈는 오픈도어 선교회가 발표한 “2022년 세계 기독교 박해 동향 보고서 (World Watch List, 월드와치리스트)이다. 전 세계 국가들의 박해와 차별의 정도를 기록한 월드와치 리스트는 올해 약 3억 6천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작년보다 무려 2천만 명이 증가한 수치다. 또한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29년 전 첫 번째 월드와치리스트가 발표된 이래로 가장 높은 수준의 박해지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증가세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할 뿐만 아니라 가속화되고 있다. 2022년의 가장 특이한 변화는 지난 십 수년 동안 박해국가 1위에 북한이 있었는데, 2022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이 1위로 보고되고 있다. 이 목록 중 가장 박해가 심한 10개 국가의 상황을 요약하고 기도제목을 나눈다.

연재 중인 케빈의 성경 이야기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는 이번 호에 쉰다. 아울러 터키와 중동의 중요한 이슈들을 신중히 선택해서 나누는 기사들을 잘 보시고 영적 민감성과 분별력을 높이시기를 부탁드린다.

발행인 칼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김진영 선교사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눅 18:29)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꿈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통해 영광과 존귀와 능력과 찬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나라를 회복하시고 세우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과 악한 영들을 멸하시고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와 교회 가운데 이미 임했습니다. 예수 공동체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계속해서 임하고 확장되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 우리는 땅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증인의 삶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거룩한 부르심과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9-10)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 (Matt. 6:9-10 KJV)

위의 기도문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지난 2000년 가까이 고백한 기도문이지만 정확한 의미와 목적을 알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헬라어 원어 성경의 기도문은 3가지의 명령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라’, ‘그의 나라가 임하라’, ‘그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령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그의 주권에 달려있지만, 그의 백성들이 수동적 명령을 선포하며 그의 이름의 거룩함을 선포하고,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그의 나라가 이 땅에서 임하게 선포하도록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재림의 때에 완성되기까지 이 땅의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그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며, 그 나라의 확장을 막는 사탄과 악한 세력과의 영적 전쟁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하지 못하고 완성되지 못하도록 막는 세상 정사와 권세와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피할 수 없는 영적 전쟁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배우고 깨달아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이 땅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만이 그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계 21).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추상적이거나 영적인 나라가 아니라 이 땅 가운데 그의 통치와 영광이 임하고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는 실제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할 나라이며 그 나라 가운데 각 성도가 받은 기업과 상급, 영광과 축복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그의 의 (義)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말하는 의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의 (히브리어 쩨대카)는 인간의 힘, 지혜, 노력, 행위로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불의한 자이기 때문에 죄의 결과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 (義)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 된 우리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셨으며,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와 질서가 세워지면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법이 다스리게 되어 모든 관계와 질서가 회복되고 바로 세워지게 됩니다.

둘째, 공도 (히브리어 미쉬파트, 사회적 정의)는 이웃을 향한 섬김, 곧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을 포함하여 사회의 연약한 자, 병든 자, 억눌린 자를 섬기는 것, 나아가 그들에게 참된 복된 소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잠시 있다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고 우리의 것으로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양식, 우리의 먹을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기본적인 삶에 필요한 것들을 넘어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끊임없는 욕심과 욕망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고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쾌락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다가 결국 자신도 멸망하고 가정이 파멸되는 수많은 사건을 우리는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한 삶의 결단과 순종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참 행복과 온전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이라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극히 좋은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아 좋은 것은 그물에 담고 못된 것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마 13:44-48)

지난 2년이 넘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영적 매너리즘, 영적 무기력한 삶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 가운데 영적 돌파를 이루고 영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결단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순종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6:3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의 원어의 뜻은 ‘기회를 사라 (buy the opportunity)’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 곧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의 소유 (시간, 재능과 은사, 재물 등)를 지불하고 사야 합니다. 그 기회는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22:10-1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여 그 나라의 영광과 은혜를 경험하는 축복의 기회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장차 임할 그의 나라 가운데 그의 상급과 기업을 받으며 영원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리더십 칼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산상설교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마 6:33

이세웅 금향로 편집인

들어가는 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산상설교]는 설교 원고를 그대로 정리해서 출판한 책이다. [산상설교]는 마태복음 5:1-48, 6:1-34, 7:1-29의 본문으로 60번의 설교를 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징적인 것은 문어체로 바꾸지 않고 설교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설교를 듣는다는 느낌이 더 크다. 이런 부분이 [산상설교]를 더 귀중한 자산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1959년에 출판된 [산상설교]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위력적으로 전달되는 이유는 이 설교를 하게 된 동기가 지금도 공감되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 설교를 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교회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강해설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강해와 설교’ 이 두 단어를 모두 강조해야 하지만, 특히 후자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설교’의 목적은 수필이 아니고 출판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청중에게 들려져서 즉각 영향력을 주는 데 있습니다. 또한 ‘강해설교’의 특징은 단순히 어떤 성구의 해석이나 주석이라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본문 해석을 설교화할 때 이것은 하나의 메시지가 되고, 뚜렷한 형식과 형태를 띠게 되며 더 나아가 상황에 따라 적용되고 연관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동기는 1950년대 교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천박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존스토트가 지적한 1960년대 교회가 가진 복음에 대한 옅은 이해력과도 상통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우리에게 주신 산상설교는 하나님을 떠나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들이 행할 수 있는 어떤 고품격 규범이 아니다. 산상설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한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천국의 가르침이다. 산상설교는 팔복 또는 기독교 행복론이라고 설교하기 때문에 주로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12절까지의 설교를 많이 들어왔고 또 마태복음 6:33 말씀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중요한 삶의 시금석으로 강조되어 왔다. 물론 강해설교를 하는 경우 마태복음 전체를 설교하므로 더욱 균형 잡힌 복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산상설교 총론 1)

로이드 존스 목사는 산상설교의 총론을 먼저 설명하며 산상설교가 왜 예수 그리스도 사역 처음 부분에 선포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교훈을 검토할 때에 포괄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으로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데 이런 과정을 통해 나무들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복음에 대한 깊이 없는 이해력으로 나타나는 교회의 천박성은 복음전파의 수단이나 선교에 대한 교회의 결정과 태도에 나타난다. 특히 이 천박성은 교회의 성결 개념과 성화론에 두루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이 우리에게 스스로 말씀하시도록 놓아두지 않고 극에서 극으로 치닫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죄 된 성향을 더해서 성경을 성경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접근방법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 관해 사도 베드로가 한 논평이 그것을 예시하고 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이것은 우리가 자주 저지르고 있는 실수인 우리의 선입적 이론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렇게 하는 순간 어떤 한 부분은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면은 과소평가 하는 유혹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다룰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이라는 그 영광스러운 자유와 함께 한 가지 측면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낱 도덕률의 집합쯤으로 변형시키고 만다. 복음이 그들에게는 온통 율법이 되므로 은혜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또 다른예는 율법을 희생하고 은혜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신약성경의 복음이라 할 수 없는 이질적 요소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에서 이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은혜를 더하기 위해 악을 행하자. 그의 가르침은 악을 행하자는 결론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아래 있으므로 율법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율법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은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산상설교가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 의는 서기관 (율법학자)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으셨다. 성경의 일점일획은 모두 성취되고 온전해져야 한다. 이 점을 망각하기 때문에 율법과 은혜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런 은혜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백한 가르침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안일한 형태라고 한다면 과연 틀린 이야기일까! 이런 오해들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산상설교를 대면하는 것이라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믿고 설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산상설교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에게 적용되는 것인가? 산상설교의 목적은 사실상 무엇이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의 관련성은 무엇인가?”

첫째 잘못된 견해는 산상설교가 사회적 복음이라는 견해였지만 이 견해는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무너져버렸다. 산상설교에 대한 사회적 복음주의의 큰 잘못은 산상설교의 처음 말씀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항상 무시해 왔다는 점이다. 산상설교의 말씀은 사람은 그 누구도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스스로 산상설교대로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죄의 문제요 구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잘못된 견해는 산상설교를 모세 율법을 정교화 한 것이거나 그 해석쯤으로 보는 것이다. 팔복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초월하는 영역으로 우리를 즉각 이끌어 간다. 율법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세 번째 잘못된 견해인 세대주의 견해는 산상설교가 현대 기독교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잘못된 천국관에 기초하고 있어서 혼란이 일어난다. 천국이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땅 위에 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장차 올 나라인 것도 맞다. 하지만 천국은 동시에 이미 땅 위에 임한 나라이기도 하다. 하늘나라는 성도들 가운데 있고 교회 안에 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뜻이다. 주님은 교회가 그분을 참으로 인정할 때 교회에서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좌정하고 계신 곳마다 천국은 임한 것이요 따라서 그분이 현재 온 세상을 모두 다스리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주님은 자기 백성들의 마음과 삶에서 통치하고 계신다. 따라서 산상설교는 모든 기독교인을 위한 것이라는 선포로 세대주의 견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산상설교는 천국 생활의 완전한 표현이다. 산상설교가 마태복음 첫머리에 놓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산상설교의 목적은 천국을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천국은 원래 ‘너희 안에’ 있다. 천국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인생관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천국은 큰 군사력으로 이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산상설교는 “이렇게 살아라. 그래야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인이니까 이렇게 살아라”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산상설교대로 살려고 해야 하는가?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가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하심 (딛 2:14)”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둘째, 산상설교만큼 거듭남과 성령과 그의 내적 사역의 절대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팔복은 우리에게 우리가 철저히 무력함을 보여준다. 거듭남이 아니면 우리는 파멸인 것이다.

셋째, 우리가 산상설교를 듣고 실천하면 할수록 더 많은 복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복에 주목해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배부를 것임이요” 만일 우리가 배부르기를 원한다면 어떤 신비한 복 (체험)을 찾지 말아야 한다. 이 복을 얻으려고 여러 집회에 달려가지 말고 그 대신 산상설교와 그 의미와 요구를 정면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에게 철저하게 요구되는 것을 살펴보자. 그러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의 지름길이다. 이것이 전도의 최선의 수단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있고 절실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도단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고,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고, 성령을 보내신 것은 우리가 산상설교를 실천하며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교회사를 읽어보면, 진정한 부흥은 성도들이 항상 산상설교를 소중히 여기고 산상설교에 있는 말씀과 성도의 생활이 일치되었을 때에 일어났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끌려오고 매혹되는 것이다.

마 6:31-33 믿음을 더하소서 2)

마태복음 6장 9-13절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 주시는 기도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머리 되신 예수의 몸인 교회에 속해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의 몸이나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산상설교대로 살아가기 위해 마태복음 6장 31-33절을 유심히 살펴 마음에 새기고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시면서 목숨과 목숨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비교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목숨을 주신 아버지께서 목숨에 필요한 것들을 당연히 주시지 않겠는가 하고 우리의 이해력을 그리고 큰 믿음을 가지라고 가르치신다.

31절에 “염려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표현하시면서 염려를 마음으로 할 수는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말 것을 종용하는 듯 보이나 큰 쟁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 아시느니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관점의 차이를 느끼고 그 관점을 그리스도인답게 바꾸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으면 그 지위에 맞게 생각과 관점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꾸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큰 믿음을 갖기를 권유하신다.

믿음의 증가를 원하면 우선 깨달아야 할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방인들처럼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방인은 이교도를 의미한다. 내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옷 입는 것과 이 세상에서 내 삶의 문제들, 그리고 부족한 것들로 염려하고 근심한다면,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나와 내 삶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이교도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통해 특별 계시를 받은 유대인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특별계시를 갖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갖지 못했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갖지 못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했다. 이것이 이교도들에 관한 중요한 점이다. 이교도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를 알지 못했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벧후 1:4)들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여러 가지 보증을 하나도 몰랐다.

더 나아가 이방인들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두 가지 주된 방법의 하나로 보았는데, 첫째 견해는 ‘우연발생설’이다. 여러 가지 일들이 까닭 모르게 발생하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견해이다. 또 한 가지 견해는 ‘운명론’으로 불리는데 일어나게 되어있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으로 우연발생설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견해이다. 그러므로 어떤 노력을 하든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운명론이나 우연발생설 모두 이교도적인 인생관이다. 이 두 이교도적 견해는 늘 그들을 근심과 염려로 인도하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인생관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이 두 견해를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산상설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확실성의 이론’이라 하겠다. 삶은 맹목적인 필연성에 지배받지 아니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이상 모든 일이 확실성 아래 있는 것이다.

기독교적 견해와 이교도적 견해는 큰 차이가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은, 우리가 근심과 염려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교도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이교도적인 인생관에 더 이상 조정받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다음 질문에 대답함으로 우리 인생관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의 인생관인지 확인해야 한다. “나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 방법이나 삶에 대한 나의 견해가 비기독교인의 견해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과연 분명한가?”

마태복음 5장 끝에 주님은 이렇게 질문하신다.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마 5:47)

그리스도인은 남보다 더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달라야 한다. 만일 그의 기독교가 일상생활의 세밀한 모든 면에 개입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매우 빈약한 그리스도인이요, ‘믿음이 작은 사람’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너희는 왜 믿음을 적용하지 않느냐?” 물으신다. 6장에서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2절)”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가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해와 배려 밖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이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성경 전체에서 이보다 더 복된 진술이 또 어디 있는가?

마지막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완성시키는 일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방인과 다르게 우리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절대 의지해야 하며, 이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완성시키는 일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즉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 이 세상의 삶을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희에게 시련을 주고 계신지 아닌지 염려하지 말라.” 그런 다음에 “너희가 만약 염려하고 싶다면 정작 염려해야 할 것을 너희에게 말하겠다. 아버지에 대한 너희의 관계를 염려해라! 이것이야말로 너희가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렇게 다른 것들을 구하고 있고 너희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구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구한다’는 말씀은 열심히 구한다, 열렬하게 구한다, 그것을 위해 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자. 심지어 주님은 ‘먼저’라는 말씀을 덧붙여 이것을 강조하셨다.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말씀으로 주기도를 시작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한 다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를 가르치신다. “너희는 먼저”, “너희의 양식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지성과 감성과 욕망에서 우리 자신을 이런 위치로 가져와야 한다.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절대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를 우리 주님은 어떤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법을 말씀하시지 않고,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처신해야 할 법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나라를 더욱 구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문제로서 우리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우리는 그를 더 잘 알도록 구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11장 6절에서 이것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내어 주님의 얼굴을 날마다, 변함없이 구해야 하게 되어 있다. 시간을 내어 그렇게 할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 특히 우리의 영원한 미래에 대해 더없이 생각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7-18)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렇게 하였기 때문이다. 즉 사도는 이런 어려운 일들 곧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 3:2)라고 했을 때 그는 이것을 하나의 적극적인 권면과 명령으로 삼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뜻이다. ‘의’란 말씀이 붙은 것은 왜일까? 이렇게 덧붙여진 것에는 매우 중요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 및 의의 생활을 의미한다. 위의 것들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적극적으로 성결과 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의 반복을 보게 된다.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의를 구하며,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구하며, 더욱더 성결케 되기를 구하며,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결해지면 성결해질수록 하나님께 가까워질 것이며 우리의 믿음은 커질 것이다. 우리가 성화 되고 거룩하면 거룩할수록 우리의 확신은 커질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주장과 의지는 커질 것이다.

영적 생활에는 절대적 규칙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살면 살수록 이생과 이 세상의 일들을 덜 알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감이 커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다. “만일 내가 그 무언가를 원한다면, 만일 내가 무언가에 대해 염려하고 싶다면, 너희의 영적 상태,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친밀함, 그에 대한 너희의 관계에 대해 염려해라. 만일 네가 이것을 첫 자리에 둔다면 염려는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그 결과가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관계에 관한 이 큰 관심이 먹을 것과 옷에 관한 보다 작은 염려를 모두 쫓아 내버릴 것이다”라고 말이다.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나라의 상속자로 아는 사람은 이생과 이 세상에서 매우 다른 사물관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 그리하여 다른 것들이 그에게 덤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특정하신 약속이다.

나가는 글

전 세계 교회 성장의 롤 모델로 주목받던 빌 하이벨스 목사가 섬기던 윌로우크릭 교회에서 교회 동역자들을 선택할 때 그가 받은 은사를 보고 동역을 결정했었고 이 기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윌로우크릭 교회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배우게 된 것이 있다고 그의 책에서 적고 있다. 그는 은사는 개발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개발되는 것이 아닌 것을 수많은 사역자를 경험하면서 배우게 되었다. 그 후로는 은사는 조금 부족해도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풍성한 동역자를 선택하였지 뛰어난 은사를 가졌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부족한 사역자들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결정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삶을 드린다고 말하지만, 나의 은사를 통해 나의 영광을 성취하고 싶은 욕망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다시 한번 돌이키게 된다. ‘나의 가정 안에서 내가 섬기는 지역교회와 선교회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이교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하나하나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2022년에 묵상하는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은 재림을 완성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라고 다시 도전하시는 것을 듣는다. 선교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예수 공동체가 일어나는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1. 이 글은 마틴 로이드 존스, [산상설교], 문창수 역(베드로서원, 2013)의 챕터 1 총론을 요약한 것이다.
  2. 이 글은 마틴 로이드 존스, [산상설교], 문창수 역(베드로서원, 2013)의 챕터43을 요약한 것이다.

리더십 설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강민수 목사

오늘 저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염려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대해 걱정합니다. 유아들은 우유를 안줄까 걱정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까 걱정하고, 십 대들은 예뻐 보이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대학생들은 학점과 취업에 대해 걱정하고, 취직한 후에는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고, 나이가 들어자리 잡은 후에도 노후준비와 머리카락 빠지는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이 모든 걱정거리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어려움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우리의 걱정 근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34절에서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선 구절에서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는데, 이 시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속으로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의 경제적 필요는 어떻게 하지? 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지?”라고 질문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염려의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5-34절에서 주시는 말씀은 한마디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5)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식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돈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이 음식보다, 몸은 옷보다 중요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목숨’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영적 측면을 포함한 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놀라운 생명과 소중한 몸을 주셨다면 너의 생명과 몸을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필요를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걱정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이유와 걱정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3가지 단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

1.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돌보신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증명하기 위해 지나가는 새들을 보시며 “날아가는 새들을 보아라. 그들은 농장에서 일하지도 않고 음식을 보관할 냉장고도 없지만,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시기에 굶주리지 않는다. 새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를 얼마나 더 돌보실지 상상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하늘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 하늘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수백만 마리의 새를 어떻게 먹이시는지 보아라. 그들은 단지 신의 피조물일 뿐이다. 하지만 넌 그의 소중한 자녀다. 그가 새들을 그렇게 돌보신다면, 그가 사랑하는 자녀인 당신에게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공급하시겠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자녀로 보살펴 주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새 신발이 필요할 때, 어디에서 신발을 살 돈을 구할까 걱정하며 밤새 뒤척일까요?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께 가서 “새 신발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는 필요한 새 신발을 선물해줄 것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기꺼이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몫을 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새를 예로 들면,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음식을 제공하지만, 그들은 먹이를 찾고 잡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딱따구리는 나무껍질에 사는 곤충에게 닿을 때까지 나무줄기를 두드려서 먹이를 찾습니다. 하루에 약 1만 번씩이나 두드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음과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감당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걱정 근심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

걱정을 해서 수명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 걱정은 우리의 수명을 단축할 것입니다. 메이요 클리닉 (Mayo Clinic)의 설립자인 찰스 메이요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근심 걱정은 우리 몸의 혈액순환 및 심장기능과 신경조직에 악영향을 끼친다. 일을 많이 해서 죽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염려로 인해 죽은 사람은 많이 보았다” 걱정은 차를 중립 기어에 놓고 엔진을 회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과 가스를 태워서 엔진에 스트레스를 주겠지만 아무 데도 가지 못합니다.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3. 걱정 근심은 우리의 믿음을 마비시킨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6:28-30)

예수님은 왜 우리가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이번에는 꽃을 예로 들으셨습니다. 꽃은 일도 하지 않는데 하늘 아버지께서 보살피시고 아름답게 입혀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지 말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슬퍼하며 말씀하십니다.

걱정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슬퍼하게 하는 죄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걱정한다는 것은,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저를 돌볼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이 제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지 뮬러는 그의 저서 “시대의 표시”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근심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며, 믿음의 시작은 근심의 끝이다.” 걱정과 믿음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걱정하기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선택한 것과 같습니다. 걱정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심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근심 걱정을 없애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오늘과 내일의 걱정을 멈출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근심 걱정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3가지 구체적인 방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방법

1.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문제가 우리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그 문제에 시선을 고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문제에 대해 점점 더 걱정합니다. 우리는 계속 자신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 그것은 마치 그 문제에 돋보기를 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눈에는 문제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하고,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잊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문제에서 눈을 떼라고 명하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모든 필요를 채우실 의지와 능력이 있는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 곧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날 우리를 어떻게 돌보셨는지 기억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새와 들판의 꽃을 보며 하나님이 온 우주를 지배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길 원하십니다.

실제로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아니라 죄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고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우리를 대신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도록 포기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 삶의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 8:32)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셨던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2.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최우선권을 드려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최우선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가 충족되도록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최우선으로 한다면,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킬 책임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0을 6개 먼저 쓰고 맨 마지막에 1을 쓰면 $1밖에 되지 않지만, 1을 먼저 쓰고 0을 6개 그 뒤에 쓰면 백만 달러의 돈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복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걱정거리가 무엇이든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우선시하기 바랍니다. 시간이 모자라 걱정이라면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경제적인 걱정이 있다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먼저 드리고, 직장을 잃을까 봐 염려되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먼저 영광 돌리고,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먼저 드리기 바랍니다. 내가 걱정하는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최우선권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3.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예수님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신실하게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걱정함으로 오늘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이 오늘 부르신 일에 충실하며 내일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내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의 90%는 절대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 걱정의 90%는 전혀 무의미한 상상의 걱정입니다. 사람들은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지? 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만약 사고를 당하면 어떡하지? 만약에? 만약에?” 하며 지금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낭비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걱정할 때,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 불필요한 짐을 지우는 것이고, 또한 오늘의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나 자신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고든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짐을 견디지 못해 무너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일의 짐을 오늘 짊어지려 할 때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일어나지도 않은 장래 일을 걱정하느라 눈앞에 있는 현재의 일들을 놓쳐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오늘 나의 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내일의 모든 염려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내일 일이 염려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걱정은 기도하라고 울리는 경보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라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걱정은 기도하라는 알람입니다. 걱정이 밀려올 때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염려를 기도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염려의 일부분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실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모든 염려를 기도로 승화시킴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파트너 칼럼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임동혁 전도사

어렸을 적 아버지는 공장에서 제품 재고관리 일을 하셨다. 경북 점촌에서 태어나 자라셨고, 청주로 이사를 와서 결혼을 하시고 2021년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한 직장에서 평생을 근무하셨다. 어머니는 6남매 중 첫째 딸이셨다. 나는 두 분의 첫째 아들로 아래에 남동생을 두고 있다. 36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은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는 조건으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모태신앙으로 2대째 신앙을 이어오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신앙의 불모지에서 자라셨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청주의 한 방직공장이 세운 야간 여자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머니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월급의 전부를 동생들 학비에 오롯이 다 보태셨다. 그리고 밤만 되면 화장실에서 두 손을 모아 신이 있다면 대학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신은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해주신 이야기로 외할머니는 첫째 딸이 동생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면서 대학 진학을 극구 반대하셨고, 어머니는 기차선로에 눕는 시위까지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도 외할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집은 종친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어서 담금주와 소주가 진열되어 있고, 먹을 것도 항상 가득했다. 제사상도 수시로 차려졌고, 가끔은 굿을 했던 건지 오방색천이 마당에 널려져 있는 것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는 마당에 널려있는 굿판과 상을 뒤집어엎고 이런 짓 좀 제발 하지 말라고 여러 어르신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떠올리면 그날은 과격한 영적인 전쟁을 선포한 날이다.

오랜 기도

몇 년 전에 이모들의 신앙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어머니의 끝장을 보는 기질이 자신들을 결국 교회로 인도했다는 일관된 이야기가 있었다. 어머니보다 조금 더 온화한 성격의 이모들과 달리 예수님을 믿고 성화된 어머니의 불같은 열정은 가족을 구원해달라는 한 가지 염원에 집중되었다.

“동혁아, 너희 엄마가 우리한테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아니? 우리가 다 처녀, 총각일 때 예수님을 먼저 믿은 네 엄마가 새벽기도를 갔다가 오면 일일이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그날 들은 말씀을 매일 들려줬어.”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직장에 출근하는 동생들 집을 돌며, 도시락도 싸주고 청소도 해주면서 전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너무 힘든 날이 있었는데 네 엄마 몰래 교회를 숨어서 갔잖니. 들키지 않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예배 마치고 교회 밖을 나가다가 딱 언니를 마주친 거야. 언니도 당황했는지 모른 척해 주더라고. 그날 언니는 집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 응답에 감사하며 펑펑 울었대.”

나는 다른 신들을 섬기던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와 금식으로 평생을 기도해온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았다. 지금 어머니의 기도방에는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써오던 기도 수첩 박스가 쌓여 있다. 언젠가 시간을 내서 수첩을 오랫동안 읽어본 일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기도가 응답된 것을 보면서 전율이 올랐던 날을 기억한다.

지금은 30여 년 만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포함하여 외가족 40여 명이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사로 전도사로 선교사로 장로로 헌신해가는 광경을 직접 보고 있다. 이모들은 틈나는 대로 모여서 서로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모임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먼저 구하는 그의 나라와 의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만을 굳게 붙잡은 것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기도

예배와 기도 생활은 잘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 생활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적 가치를 선택하고 추구하는 삶은 절대로 쉽게 깨지지 않는다. 나도 이러한 문제로 부모님과 숱한 마찰을 겪었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겠다는 일념으로 남들이 선택하는 일반적인 삶을 따라 살지 않았다. 신학교도 입학해봤으나 그곳에서도 인간적 야망이 커질 수 있음을 느끼고 자퇴를 선택했다. 산속에서 기도집을 짓고 살아보기도 하고, 노숙자분들과 함께 살아보기도 하고, 전대나 배낭 없이 수년을 떠돌아 다녀보기도 했다. 이런 나의 신앙생활 방식이 부모님께는 눈에 가시 같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만 들어가면 서로 부딪히기 일쑤였고 그럴수록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반드시 깨닫고 말 것이라는 오기가 커졌다.

나에게 가정은 소중한 곳이 맞는데, 왜 이토록 하나님 나라의 풍경이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작정 기도를 매년 하였다. 기도를 계속하니 가정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점점 더 이해되고 선명해짐을 느꼈다. 밤마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40일 기도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12월 겨울이었다. 하나님은 생명이라는 단어와 다음 세대와 북한이라는 영역을 머릿속에 떠올려주시며 깊은 기도를 하게 하셨다. 그리고 새해가 되어 오랜만에 고향 집을 방문해서 부모님과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부모님과 여전히 서먹해서 집중을 잘 못했지만 서로 한마디씩 하는 시간에 나는 산에서 받은 말씀들을 가족들에게 믿음으로 나누었다.

“아버지 저는요, 우리 가정이 북한과 다음 세대를 세우는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제 말에 동의해 주신다면 아멘이라고 해주시면 좋겠어요.”

아버지께서는 “아멘”이라고 하셨다. 그 응답에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정말 그 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성경 통독을 한 번도 해보시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규모 교회의 장로로 선출되셨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기도해오던 제목이었지만 나와 동생은 정말 어리둥절했다. 아버지는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이 체질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로고시를 위한 성경 암송과 공부, 새벽기도를 나가야 하는 일정이 곤욕이었고 힘겨웠다고 한다. 교회는 평생 다녔지만 누군가를 가르쳐보거나 양육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장로직을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의 아버지는 목사님을 도와 영혼들을 세우는 영적 아버지로 훈련되고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어떤 교회의 장로의 업무가 아닌, 성경에 기록된 장로의 직분으로 아버지를 세우신 것임을 믿는다. 영적인 생명을 잉태하는 일,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일에 환갑이 지나서야 참여하는 아버지를 보며 하나님의 역사는 먼저 구하는 그의 나라와 의에 합당하게 (때를 따라) 진행되는 것임을 보게 된다.

얼마 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수련회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가문 수련회라고 명명했다. 외가와 친가의 가족들에게 이제는 북한을 우리 가문이 직접 품자고 도전했다. 때마침 북한을 오가는 어느 선교사님을 통해서 북한의 고아 시설에 트럭을 기증할 수 있는 제안을 받았다. 1만 불이면 북한 고아 시설 아이들을 수송할 트럭 한 대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온 친척들이 주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기도와 재정을 흘려보냈다.

이 일에 아버지가 진심이 생겨서 힘써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곧 일어났다. 당시 나의 결혼 상대(지금의 아내)의 가족은 십여년 간 다음 세대 캠프를 세우고 섬겨온 가족이다. 지금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캠프의 대표로 섬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부모님을 캠프로 와보시라 초대하였다. 평생 이런 수련회를 가본 적 없는 아버지는 이날 큰 충격과 감사가 있던 날이라고 했다.

나라와 민족 북한과 열방을 위해 울부짖는 기도를 올리는 다음 세대를 보면서 아들이 그토록 외치고, 외치는 대로 삶을 던지는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북한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가슴에 품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상위 차원의 기도를 지속하다 보니 그 일이 이뤄지기 위한 모든 공급과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우고 바꾸어 나가셨다. 부모 세대들이 길을 닦는 수고가 있었다면, 자녀 세대들은 그 길 위에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전진하며 하늘나라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배워가게 된다.

계속되는 기도

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헌신했던 어머니의 무릎처럼, 내 일상과 내 안위보다 기도가 필요한 곳을 먼저 구하고 있다. 그리하면 나의 모든 것도 더불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적의 졸업 앨범을 스캔해서 가지고 다니며 수년간 기도한다. 초, 중, 고등학교 때 전교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나에게는 기도가 필요한 영혼들로 보였다. 기도를 하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역설적으로 친구들의 소식에 훨씬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중에 급하게 잡은 택시의 운전 기사님으로, 붐비는 열차의 맞은편 의자에서, 병원 진료를 봐주는 의사선생님으로, 간발의 차로 놓친 지하철 게이트에서 만나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놀랍게 그들을 만나게 된다. 우연히 술집 거리 쪽을 가로질러 가는데 한 무리 속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외모가 조금 바뀌었다 해도 친구의 얼굴과 이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냐?”라는 질문에, “기도하고 있다” 라는 내 대답이 친구에게 큰 충격이라고 했다.

몇 주 전 충주에 일 때문에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중학교 이후 소식이 끊긴 친구를 뜨겁게 재회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하러 갔다가 충주 공군기지에 파일럿으로 부임한 지 3주 되었다고 한다. 인생에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만나서 현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노라고 고백한다. 이제는 서로의 가족이 만나 기쁘게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과거의 만남이 거리와 연수가 상관없이 기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서의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의 동선은 상상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고 코 닿을 만한 동네와 동네를 거니시며 하늘나라와 의를 선포하고 제자들을 세우셨다는 것이 오히려 내 일상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의 무대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히 주어진 일상 속에서 오늘 만나며 내일 만나는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그리고 어제와 또는 추억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씨를 뿌리며 복음을 사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살며 맺게 해주시는 모든 만남의 의미를 당시에는 알 수 없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다시 새롭게 되어가는 섭리가 인생의 햇수만큼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매년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삶을 살아보니, 무력감과 덧없음을 더 많이 가지고 살아간다는 친구들의 인생 중간점 이야기를 듣게 되고, 또한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 없이는 가정의 기초조차 세울 수 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아 가면서 지금의 현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하늘의 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더 뜨겁게 말하고 구하고 살고 공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파트너 칼럼

터키 스마트 복음전도 사역 보고

김선희 사역자

터키 스마트 복음 사역의 내용

  • 성경의 말씀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동영상이나 SNS를 통한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복음 전도이다.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나누고 복음의 정확한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복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며, 무엇보다 복음의 능력이 이들의 삶에 나타나도록 돕는다. 스마트 복음 사역은 터키어, 아랍어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여러 언어들로 번역되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스마트 복음 사역은 진리의 말씀이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 증거의 삶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주님을 경험한 이들에게 자신의 간증을 통해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함께 나눈다. 누구든지 복음을 쉽게 나눌 수 있도록 주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 수 있도록 복음 증거의 삶을 살게 돕는다.
  • 하나의 복음 콘텐츠를 만들어서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하여 전파하는데, 그 속도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3만 명 넘게 전달되었으며,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다윗과 같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골리앗을 볼 때, 주님의 도움으로 이겨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일주일 동안 12,600명에게 전달되었으며, 그중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음의 글을 읽었다.
  • 성경의 진실을 부정하고 말씀이 왜곡되어 있다고 믿는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바로 알 수 있도록 신약성경을 꾸준히 계속 보내고 있다. 보내는 모든 성경책과 발송비는 무료이다. 터키 81개 주에 보내진 성경책은 많은 이에게 믿음의 도전을 주지만, 어떤 이는 호기심으로 받고 난 뒤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버려진 성경책을 읽고 주님을 영접하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 현지 지역교회와 함께 연결하여 교회개척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현지 교회가 인력 부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팀을 보내어 교회를 세워주고 있으며, 성경 교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온라인을 통해 동영상 성경 교재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함께 모여서 온라인으로 기도 모임을 하고 있으며, 터키 전역에 필요한 대대적인 노방전도와 각종 행사를 돕고 있다. 특별히 올해는 시리아 난민 교회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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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사역자 소개와 기도 요청

세로, 사란(이스탄불 시리아 난민교회 목사)

사역 지역: 이스탄불

사역 내용: 시리아 난민 제자양육 사역, 교회개척 사역, 말씀 사역, 기도와 치유 사역

이스탄불 시리아 난민교회 세례식

2011년부터 시리아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인하여 시리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되어 세계 각국에 흩어졌다. 특별히 시리아와 국경을 나누는 터키는 거의 5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 수용국가가 되었다. 터키에 들어온 많은 시리아 난민은 정부 방침에 따라서 81개 주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그중 경제 도시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난민이 모여 살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은 비교적 가격이 싼 이스탄불의 외곽 지역에 살면서 단순한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시리아 난민 교회를 담당하는 세로 목사는 자신과 같은 난민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스탄불 난민 교회의 세로 목사와 난민 형제들은 팬데믹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형제들의 집을 찾아가 구호품을 나누어 주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작년 성탄절에는 50여 명의 난민이 교회에 모여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했으며,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난민 가족들은 세로 목사의 인도 아래 주일 교회 모임과 주중 성경모임을 통하여 믿음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스탄불 시리아 난민교회는 세로 목사와 현지 지도자들에 의해 성도들이 잘 양육되어 가고 있으며, 지금은 새로운 교회 건물을 세우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교회는 자체 운영이 잘되고 있으며, 영적으로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현지 목사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세로 목사 가정이 좀 더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도와주는 것과 영적인 성숙을 위하여 기도로 돕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제목
  • 시리아 난민들의 염원인 터키 시리아 난민교회 건물을 위해서. 그곳에서 마음껏 찬양하고 교제하면서 주님을 더욱 깊게 알아갈 수 있도록
  • 제자양육을 위해서. 많은 시리아 난민이 새롭게 정착한 곳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믿음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 시리아인들이 터키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동등한 시민권의 영향력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합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 복음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전쟁을 피해 터키에 들어온 많은 난민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을 이슬람 종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음을 발견하고 있다. 이들의 가난한 마음에 새 영이 임할 수 있도록, 더 이상 거짓이 아닌 진실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 차세대 시리아 난민 젊은 사역자들을 위해서. 많은 난민 자녀들이 터키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이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자녀들은 아랍어보다 터키어를 더 쉽게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새로운 정착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마인드를 가지고 사역에 임할 수 있도록
  • 난민 자녀들에게 새로운 꿈과 비전, 환상을 보여주시도록. 주님을 향해 손을 들고 나아가는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멋진 꿈을 가진 자녀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에헤템(가지안텝 시리아 난민교회 목사)

사역 지역: 터키 동남부 시리아 국경 근처

사역 내용: 시리아 난민 구제 사역, 말씀 양육, 지도자 양육, 치유 찬양 사역

가지안텝 시리아 난민들과 식사교제

시리아 국경에서 가장 근접한 도시인 가지안텝에는 많은 난민이 빈곤 지역에 모여 살고 있다. 난민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있는 에헤템 목사는 자신의 동족들이 목숨을 걸고 터키로 들어오면서 극한의 핍박과 어려움 그리고 굶주림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도움을 주기 위해 믿음으로 교회를 열었다. 에헤템 목사는 난민 가정의 회복과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십 년 넘게 가지안텝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새로 교회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 처소를 마련하였다. 그들의 예배 처소는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위로의 장소가 되었으며, 경제적인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인근 지역을 방문하면서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난민들의 가족과 형제자매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곳은 터키에 세워진 첫 번째 난민 예배 장소이다. 가지안텝 교회는 2022년 난민 만 명을 전도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것을 위해 지도자 양육과 복음 전도자 양성 과정을 만들고 있다. 특별히 난민 만 명을 전도하기 위하여 집중적인 관리와 양육이 필요한데, 주님의 강한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기도제목
  • 가지안텝 시리아 난민 교회에 치유와 구제가 함께 일어나서 주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 주님께서 이들에게 귀한 새 예배 장소를 마련해 주시도록
  • 난민 만 명 전도를 위한 양육과 주님의 강한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 가지안텝 교회에 필요한 모든 재정이 주님의 은혜로 잘 채워지도록
알리&알라

사역 지역: 이스탄불

사역 내용: 인터넷 복음 전도자

난민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모든 필요와 정보를 오직 인터넷을 통하여 찾고, 물물교환을 하고 그들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특별히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오직 핸드폰을 통해서 얻고 있는데, 이들이 평균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은 적어도 4-5시간이다. 이 시간에 아랍 젊은이 사역자들이 인터넷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두 시리아 난민 사역자인 알리와 알라를 후원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아르만지 목사 교회에서 젊은 두 사역자를 양육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필요한 제자 양육 및 돌봄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알리와 알라 형제가 무엇보다 자신의 모국어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며 책임 있게 사역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알리 기도제목

알리의 영적 회복을 위해. 알리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며, 그 가운데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인 의지와 달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훈련되지 못하고,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이 종종 있다. 어린 아이의 모습이 아닌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알라 기도제목

알라는 이스탄불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지성인이다. 그는 터키에 난민으로 와서 믿음의 형제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담임 목사 아르만지의 집에 기거하면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믿음은 가끔 순수 복음과 혼돈되기도 하는데, 신앙으로 잘 극복되는 삶이 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수산&메흐메트수산&메흐메트(아라랏 교회 지도자)

사역 지역: 아라랏 지역

사역 내용: 복음전도 사역, 기도 사역, 말씀증거 사역, 가정치유, 여성 사역

문둥병 환자 시벨

아라랏산은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살아왔으며 그 흔적들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특별히 아르메니아 정교도인들은 이곳에서 노아의 방주 이후 살아남은 후손이라고 믿고 있으며 1923년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에 흔적만 남아있다. 쿠르드족인 수산과 메흐메트는 주님을 영접하고 이곳에서 유일하게 믿음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매주 금요일 온라인 기도회에 나와서 성경을 배우고 간증하면서 함께 신앙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아라랏 가정 교회를 세우고 복음 전도를 하고 있다. 아라랏 교회가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근처의 아르메니아 신학교 학생들과 연결하여 적극적인 사역을 하도록 도우며, 그곳에서 함께 할 현지인들을 파송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주 온라인 기도회를 통하여 함께 기도하면서 영적 성장을 도와주고 있다. 메흐메트와 수산이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이곳에 굳건한 교회 지도자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아라랏 교회 성도들의 식사공동체

터키에 아라랏 교회를 세우는 것을 중점으로 하여 아르메니아 신학생들을 그곳으로 보내는 사역을 하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제히대와 무스타파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주일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으며, 가정교회를 넓혀나가길 원하고 있다. 특별히 모국어인 쿠르드어를 사용하면서 현지 문화와 풍습에 맞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주 현명한 토착화 복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 이어온 기독교 박해와 소수민족 정교인들의 학살로 받은 상처들을 조금씩 치유하면서 화해가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다. 무엇보다 관계중심에서 친분을 쌓으면서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돕고 있다.

기도제목
  • 아라랏 가정교회를 섬기는 수산은 3개월 동안 대장염으로 인해 네 차례 수술을 받았으며, 가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가정이 다시 회복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 아라랏 근처에 사는 문둥병 환자 시벨과 그녀의 가정을 위해서. 그녀는 우리의 방문으로 주님을 영접했는데, 그녀를 통해 문둥병 환자들에게 복음이 잘 전해지도록
휴리&하산

사역 지역: 터키 중부 요즈가트

사역 내용: 복음전도 사역, 기도 사역, 말씀증거 사역, 구제 사역, 여성 사역

요즈가트 교회 마당에서 세례를 받는 하잘

요즈가트 교회 지도자 하산과 휴리는 이웃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들이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기도해주며, 어둡고 힘든 곳을 위로할 때마다 치유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 특별히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주님을 만난 자들에게 영적 도움을 주면서 이들을 교회 행사에 초청하여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요즈가트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고 교회 지도자 하산과 휴리가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곳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하산과 휴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온라인 기도회를 통해서 함께 기도하고 있고 영적 성장과 함께 복음을 향한 열정으로 담대하게 사역하고 있다. 특별히 성탄절이나 부활절에는 특별 행사를 열고 지역 주민들이 교회에 올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지역을 방문하고 성경책을 나누어 주면서 진정한 복음은 예수 사랑에 있다는 것을 나누고 있다.

요즈가트 교회는 지역 교회로 잘 정착되어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에 수십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요즈가트 교회에 찾아와서 주님을 알기 원하면서 기도를 받고 있다. 이곳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하여 삶이 많이 힘들다.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 있으며, 자살과 가정 폭력 등 자녀들과 연약한 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산과 휴리는 정기적인 방문을 통하여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별히 휴리의 마을에 일어난 자살 사건들로 지역 주민이 어려워지고 서로간에 불신을 주는 일들이 빈번한데, 요즈가트 교회가 문을 열고 주민들을 위로하고 정신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만드는 모습
기도제목
  • 요즈가트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 교회지도자 하산과 휴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 성경을 나눠주는 사역 가운데 예수의 사랑이 그들 가운데 넘쳐나도록
  • 하산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하산이 세상의 유혹과 쾌락에서 자유해지고,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 요즈가트 교회의 셀다치 형제는 의사의 직업으로 많은 이에게 존경을 받지만, 늘 자신의 공허함을 누군가 채워주길 원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결혼은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그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하나님 나라 회복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함둘라&엘마스(안디옥 교회지도자)

사역 지역: 터키 안디옥

사역 내용: 구제 사역, 어린이 사역, 복음전도 사역, 여성 사역, 기도 사역, 말씀 사역

난민 캠프 방문 사역

터키 남동부의 안디옥 교회는 시리아 국경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안디옥은 시리아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많은 사람이 정교회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이곳은 1960년대 주민들의 투표로 시리아에서 분리하여 터키 공화국으로 들어왔던 특이한 곳인 만큼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많이 열려 있다. 안디옥 교회는 엘마스와 함둘라가 교회를 중심으로 토요일에는 어린이 사역과 주중에는 여성 모임 그리고 제자 양육 등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지금은 교회 건축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 대부분은 시리아 아랍어를 쓰는 쿠르드족과 터키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교적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 또한 곳곳에 모여 사는 난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식료품을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안디옥 교회가 무엇보다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열심히 사역하며 교회개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기도제목
  • 교회 건물 구입에 필요한 재정이 잘 채워지도록
  • 이들의 구제 사역으로 지역 복음화가 일어나도록
  • 쿠르드족과 시리아 아랍인들이 함께 연합하여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이들의 삶이 주 안에서 거듭나도록
  • 안디옥 교회의 제자양육 과정이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 거듭나기 위한 귀한 도구로 사용되도록. 이를 인도하는 엘마스와 함둘라의 영적 성장을 위해
오스만 엘

사역 지역: 스마트 복음 사역

사역 내용: 교회개척 및 복음 전도

카이세리 교회에서 세례받는 오스만

현지인 복음 사역자 오스만은 대학 수업 시간에 기독교를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교수에 발끈하여 본인이 알고 있는 적은 지식으로 기독교를 옹호했다. 그 결과 담당 교수는 오스만에게 기독교에 관한 발표와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나누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면서 사람들이 주님을 조롱하는 것에 흥분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후 카이세리에 있는 지역교회를 통해서 믿음을 성장해왔다. 지금은 홀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는 가장으로 학업과 함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오스만은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카이세리에 인접한 도시를 돌면서 복음 순회 사역을 하고 있는데, 말씀과 기도로 사람들을 잘 양육하고 있다. 오스만은 성숙하며 책임감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믿음을 잘 지켜가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품은 사람들을 유순하게 만드는 탁월한 모습이 복음 전도자의 길을 가는 데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 오스만은 기독교 관심자들에게 성경책을 보내면서 전화로 심방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복음 전도에 쓰고 있다. 그리고 지역교회 활성화와 젊은이 사역에 그의 역할이 상당히 기대된다. 오스만이 터키 청년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청년 복음 사역을 중심으로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제목
  • 오스만의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이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 오스만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 오스만의 군대 문제와 장래의 비전을 주님께서 잘 인도해 주시도록. 그는 가장으로 여러 가지 책임을 지고 있는데, 주님의 선한 인도가 그의 평생을 따를 수 있도록
넬기스 치첵

사역 지역: 스마트 복음 사역

사역 내용: 교회개척 및 복음 전도

넬기스의 고향인 다소는 사도 바울의 고향이자 기독교가 왕성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더 이상 주님을 영접하는 자도, 교회도 없다. 이곳에 사는 넬기스는 태어날 때부터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선교사들에 의해 다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박해와 어려움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버리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으며, 함께한 성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다소에서 남은 자들이 5-6명 모여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넬기스는 그곳에서 믿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녀는 복음에 갈급한 사람들에게 온라인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기도와 영적 훈련을 받고 있다. 그녀는 아랍어에 능숙하여 난민 사역도 많이 하고 있다. 넬기스를 통해서 다소 지역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나아올 수 있도록 전도하고 있다. 넬기스는 초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훈련하는 사역들을 잘 감당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기도에 열심을 보이고 있다.

기도제목
  • 넬기스가 그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 그녀의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 2022년 6월에 믿음의 형제와 결혼하는데 그녀의 가정이 주안에서 믿는 자들에게 신앙의 도전을 주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도록. 결혼식을 위한 재정이 채워지도록
  • 넬기스가 속한 다소 교회를 중심으로 터키 동남부의 아다나와 메르신 지역을 전도하며, 지역교회와 연결된 사람들이 믿음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술탄 크즐라이

사역 지역: 스마트 복음 사역

사역 내용: 인터넷 미디어 복음 전도

술탄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녀가 대학 졸업 후 처음 만든 영화는 귀신 및 공포를 주제로 한 것이었고, 그녀는 많은 돈을 벌기 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공포 영화는 자신의 영을 어둡고 초라한 곳으로 이끌어갔으며, 그 두려운 영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난 그녀는 고난 중에 빛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알게 되었으며, 공포와 귀신의 영에서 자유함을 받았다. 주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술탄은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미디어 사역에 임하고 있으며, 자신과 같은 악하고 어두운 영에 있는 자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복음 전도자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 매주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여 복음의 콘텐츠를 만들고, 영상 제작을 하는 사역을 돕고 있다. 술탄의 장점은 이슬람의 근본을 잘 이해하면서 꾸란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반박하는 것으로 전도를 하는 것이다. 때로 그녀의 서툴고 어리석은 생각들이 삶을 지배하고 다시 누르고 있을 때는 우리 사역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또한 술탄의 3형제들이 출소 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술탄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악한 영에 유혹되지 않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제목
  • 술탄이 다시는 악한 영과 손을 잡고 주님을 배반하지 않도록, 주 안에서 말씀으로 잘 양육되어 나아갈 수 있도록
  • 무슬림들이 더 이상 거짓 영에 속지 않고, 진리의 영이 이들을 자유롭게 하시도록
  • 매주 새로운 복음 콘텐츠를 만드는 스마트 복음 사역에 술탄이 귀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 스마트 복음 사역으로 터키의 81개 주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그리고 지역교회에 연결되지 않은 이들의 영적 성장을 돕도록
굘켐

사역 지역: 스마트 복음 사역

사역 내용: 교회개척 및 복음 전도

굘켐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모와 함께 아주 적은 무리의 정교도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주님을 따랐으며, 지금은 개신교에 다니면서 복음적인 신앙인으로 나아가고 있다. 굘켐은 청년 사역자로 많은 사역의 필요를 보고 있다. 굘켐은 카이세리 교회에서 지도자 무하메르의 인도하에 젊은이 사역을 하면서 온라인 사역을 함께 할 것이다.

터키는 무엇보다 젊은이 사역이 아주 절실하게 요구된다. 인구의 40% 이상이 젊은 층으로 비교적 많은 범위의 인구분포를 지닌 젊은 층이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취향과 생각에 맞는 사람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지도자들을 찾고 있는데, 굘켐이 여러 부분에서 탁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굘켐을 통해 스마트 복음 사역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그리고 지역 교회와 잘 연결되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제목
  • 굘켐의 복음 전파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 터키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나누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 굘켐의 장래를 위해서. 그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며 자신의 소양을 넓히기 원하고 있다. 주님의 선한 인도를 따를 수 있도록

맺음말

2019년 발생한 코비드 팬데믹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안겨주었으며,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함께 모여서 드리는 주일예배를 할 수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주었다. 터키 교회는 완전히 문을 닫고 1년 6개월 동안 성도와의 교제를 하지 못했으며, 믿음이 적은 초신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말씀은 그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 사역을 통하여 더 크게 알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복음에 갈급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팬데믹 동안에 나누었던 복음 콘텐츠로 하루에 수만 명의 사람이 들어와 복음을 들었다. 신의 존재에 관해 예수님에 관해 인터넷으로 찾아 들어오는 숫자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에 힘입어 온라인 사역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크게 확장되어 나갔으며,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경책을 받기 원하는 숫자가 계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여 복음에 갈급한 영혼들에게 생명수를 주는 귀한 기회를 만들고 있으며, 사람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만족시켜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이 낮아진 이 시기에 복음은 더 크고 넓은 밭에 심겨졌으며, 이제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이슈

2022 World Watch List

한국오픈도어선교회

전 세계 국가들의 박해와 차별의 정도를 기록한 월드와치리스트 (World Watch List)는 약 3억 6천 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작년보다 무려 2천 만 명이 증가한 수치다. 또한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29년 전 첫 번째 월드와치리스트가 발표된 이래로 가장 높은 수준의 박해지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증가세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할 뿐만 아니라 가속화되고 있다.

1. 2022년의 특이점

1) 역대 최고 수준의 박해자수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이 박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근 몇 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 20년 만의 순위 변동

2022년 전 세계 박해지수 1위는 아프가니스탄으로 20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순위가 변동되었다.

3) 박해지수 급증 국가
아프가니스탄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난민이 되거나 죽음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탈레반 정부는 기독교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추적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이 드러난 남성들은 거의 대부분 사형에 처해진다. 소녀들과 여성들은 강간과 인신매매로 고통당하며, 전리품의 일환으로 탈레반 요원과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주변국 난민캠프로 피신하고 있으나 주변국들은 모두 기독교에 적대적 국가들이다. 오픈도어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8월 이후 아프가니스탄 국내 이재민 350만 명이 발생했고, 이 중 국외 난민 220만 명이 난민 캠프에서 보호받고 있다.
북한
월드와치리스트 박해지수 2위 국가로 하향되었음에도, 올해 북한의 박해지수는 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새로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인해 체포되는 기독교인과 폐쇄되는 교회들이 증가하고 있다. 체포된다는 것은 살아서 나가기 어려운 북한 정권의 잔인한 ‘재교육수용소 (노동수용소)’중 한 곳에 수감됨을 의미한다.
카타르 (29위→18위)
2022년 월드컵이 개최되는 국가로, 특히 이슬람에서 개종한 기독교인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폭력이 있고, 여성들의 경우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47위→28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중부지역 기독교인들은 두 차례의 공격을 받았으며, 마카사르 성당은 폭탄테러 공격을 받았다.
미얀마 (18위→12위)
미얀마 군대는 기독교 마을과 교회들을 공격했으며, 20만 명 이상을 이재민 캠프로 내몰았다.
부탄 (43위→34위)
특히 기독교 회심자들은 지역 사회로부터 압력과 폭력을 당하며, 여성의 경우 성폭력의 위협에 놓이고 있다.
4) 신앙을 이유로 한 끊임없는 ‘압력’과 ‘폭력’의 증가

신앙을 이유로 살해된 기독교인의 수는 4,761명 (WWL2021)에서 5,898명 (WWL2022)으로 증가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나이지리아에서의 사망자 수가 대부분이다.

물리적 공격을 받은 교회의 수는 4,488건 (WWL2021)에서 5,110건 (WWL2022)으로 증가했다.

구금되거나 체포된 기독교인 수는 6,175명 (WWL2022)으로 이 중 1,315명은 인도에서 구금 및 체포되었다. 이는 작년보다 44% 증가한 수치이다.

이 외에도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끊임없는 압박이 일상 속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직장 내 차별,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는 가족의 압박, 구호품과 의료품 수령의 우선순위에서 배제되는 고통, 교회 허가를 방해하는 정부 관료들의 압박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2. WWL 2022 세계 기독교 박해 동향

1)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지하디스트들의 신념을 강화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부 장악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지하디스트들을 고무시켰다. 주변국 파키스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축하를 받은 탈레반은 더욱 힘을 얻었다. 다른 세력들 또한 점차 대담해질 것이며, 2002년 발리 폭탄테러를 일으켰던 인도네시아의 제마 이슬라미야와 같은 이슬람원리주의 단체는 탈레반과 연관되어 있다.

지하디스트들은 부패하고 힘없는 정부와 행정부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빈번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 아프리카 정부를 지원하는 외국 군대의 철수는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한 예로 지난 십 년간 소말리아 정부와 동맹군인 아프리카 연합군에 대항하여 싸웠던 알-샤바브 세력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의 “지하”교회는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결국 작아지고 흩어지고 말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이 가장 심한 곳이며, 계속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공개적으로 IS와 연맹을 맺은 연합민주군 (the Alliance of Democratic Forces)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다시 한번 폭력지수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는 나이지리아와 함께 폭력지수 상위 10개국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기독교인이나 다른 소수민족 집단들 모두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의 통제를 받는 안보 기구에 자신들의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특별히 보코하람과 IS 서아프리카 지부(Islamic States West Africa Province)와 같은 지하디스트 그룹으로 알려진 풀라니 (Fulani) 무장세력은 대학, 학교, 교회, 마을과 공동체 지도자들을 계속해서 납치, 살인, 상해하고 가축과 생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지하디스트가 차드호 유역국 (나이지리아, 차드, 카메론, 니제르 남부지역)과 사헬 지대 주변국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 경계국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서부지역) 전역을 넘어 모잠비크와 카메룬에서도 활동함에 따라 두 나라가 폭력지수 상위 10개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사하라 이남 9개국 중 5개국은 2014년 월드와치리스트에는 오르지 않았던 국가들이다. (차드는 2022년도 박해국가 상위 50개국에는 들지 않았지만 63위를 기록했고, ‘박해감시국가’ 목록에 있다

2) 전 세계에서 이재민이나 난민이 되는 기독교인들의 증가와 심한 어려움

유엔 난민 기구로 불리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는 2021 년 약 8천 4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났고 그중 2천 6백만 명은 국외로 쫓겨났다고 밝혔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떠나간 기독교인들이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폭력 (예: 사헬 지대 주변국)이나 강제 징병 (예: 에리트리아), 내전 (예: 수단), 국가 탄압 (예: 이란)이나 신앙으로 인한 가족의 박해 등의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남아 국내 이재민이 되거나 난민이 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들 (케냐 동북 지역 포함)에 대한 리서치는 기독교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개의 교회들이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에서 문을 닫았고, 올해는 나이지리아에서만 470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돌아온다면 지하디스트의 폭력적 공격이 재개될 것이다. 일단 쫓겨나거나 떠도는 삶이 시작되고, 리비아에 도착하더라도 약탈, 인신매매, 강간과 감금의 위험을 마주하게 된다.

기독교인 국내 이재민들과 난민들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과 요르단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출신 국가에서 소수민족이라면 난민캠프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차별을 당할 수 있고 인도주의적 도움과 다른 실질적 도움 마저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서구의 난민 캠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기독교 여성들은 여성 박해의 주요 수단으로 성폭행을 꼽는다. 월드와치리스트 연구원들은 여성과 아이들이 캠프 안에서, 특히 안전을 찾아 떠나온 여정 속에서 강간, 성 노예, 성희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빈곤과 불안은 이들을 더욱 취약하게 하고 이들 중 일부는 생존을 위한 매춘을 강요받기도 한다. 여러 이유들로 많은 난민 기독교인이 난민캠프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이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난민등록이 되지 않아 구호물자, 트라우마 치료지원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자녀들은 교육의 기회 또한 잃게 되는 것이다.

미얀마 분쟁은 기독교인이 다수인 친 주 (Chine State)와 카친, 카야, 샨 주 (Kachin, Kayah, Shan State)의 소수 기독교인들이 피해 대상이 되었다. 미얀마군은 교회를 폭격하고 목회자를 살해하고 억류하였다. 이번 리서치 결과는 월드와치리스트 2022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2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추방되었고 이 중 2 만 명이 나라를 떠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전역과 아시아 일부 지역 기독교인들은 법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영역에 걸친 박해와 끊이지 않는 차별을 피할 다른 방도가 없어서 자신들의 집과 나라를 어쩔 수 없이 떠났다. 청년들이 나이지리아와 말레이시아와 같은 나라로부터 이주해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지속적인 ‘탈출 (Exodus)’은 그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을 약화시킨다.

3)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중국의 중앙집중 종교 통제 모델

중국은 이제 ‘디지털 테크놀로지’ 요소를 포함하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계획인 일대일로 (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를 구상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경제적 능력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 민족주의도 강력해지고 있다. 이는 선택권, 언론의 자유나 다른 신념 체계 보다는 명령을 통해 위로부터 강제된 사회적 안정을 요구한다. 중국 종교 지도자들은 이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2021년 5월 제정된 새로운 규정들은 “조국을 사랑하고 공산당 지도자와 사회주의 시스템을 지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민족 단결을 훼손하거나 국가를 분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새로운 규정은 중국 내에서 중국 국민들의 외국인 접촉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남미 대륙에서는 공산주의 이념 아래, 팬데믹이 교회를 감시하고 더 많은 제한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쿠바에서는 지난 7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후, 사회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높인 카톨릭과 개신교 교회 지도자들이 구금되어 고문을 당했고 과도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에서도 정부 여당은 카톨릭 주교들을 비방하는 캠페인을 조장하였고 교회 등록 허가를 취소하고 교회들을 폐쇄하였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더라도, 최근에 이 모델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종교’의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제를 강화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스리랑카, 미얀마, 말레이시아와 같은 다양한 국가에서 모방되고 있다. 소수민족들은 점차 사회적 감시가 증가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 기득권 집단과 소셜미디어의 차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권위주의가 이슬람과 결합되는 지역에서도 기독교인들은 고통을 겪는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지역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MENA)의 불안정성은 이슬람 개종자와 마찬가지로, 전통 교회와 비 전통 교회, 기존 교회들에 대한 독재적 조치가 빈번하게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알제리의 경우, 이미 폐쇄된 13개 교회에 더해, 올해 3개의 개신교회가 폐쇄 명령을 받았다.

4) 범죄 조직을 비롯 코로나 제한 조치를 이용한 권위주의 정부들의 지속적인 교회 약화 전략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신속하고 엄격한 대응은 잘 문서화되어 있다. 제재조치의 필요성이 사라진 일부 지역에서는 미등록 교회뿐 만 아니라 공식적인 삼자교회에도 재 운영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더 작은 ‘셀모임’ 형태로 가정이나 온라인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한편, 허난성과 장시성 지역 보고에 의하면, 지역 정부가 승인한 모든 종교 시설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일부 성경 어플리케이션들은 온라인스토어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기독교 온라인 서점을 ‘불법 운영’한 남성이 체포된 후, 정부 당국자들은 수감된 유명 목사의 저서 반납 명령을 포함하여 모든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수사를 벌였다. 팬데믹은 권위적 정부가 집권하는 국가들뿐 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감시체계가 국가 내부적으로 충분히 잘 작동했다는 개념을 ‘증명’해 주었다. 일례로 베트남의 국가 및 비 국가 행위자들은 교회를 비방하고 교회를 대상으로 범죄 조사를 부추기는 데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용하였다.

지난해 월드와치리스트 (WWL 2021)을 통해 보도한 바와 같이, 코로나19 퇴치에 중점을 둔 서아프리카부터 중앙아메리카 정부들의 조치는 지하디스트 및 조직된 범죄단체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세력을 더욱 강화하고 지역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5) 희망적인 소식

IS에 의해 훼손된 이라크 지역에 대한 교황 방문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 방문은 이라크의 재건을 위해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라크 땅으로 돌아오도록 격려하였다.

이라크, 시리아, 터키, 이집트, 튀니지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교회에 대한 폭력이 감소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잠재적인 공격이 코로나19 제한 조치로 인해 제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콜롬비아의 글로리아 아고티 (Gloris Agorti) 수녀는 이슬람 무장세력에 납치되어 5년에 가까운 포로 생활을 하다 지난 2021년 10월 말리 (Mail)에서 석방되었다. 글로리아 아고티 수녀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시련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이슈

2022 월드와치리스트 상위 10개국과 기도제목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 38,914,000명

크리스천 인구: 수천 명

주요 종교: 이슬람

아프가니스탄이 처음으로 월드와치리스트에서 1위를 했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서 아프가니스탄이 1위를 한 이유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전 세계적인 이슈다. 2021년 8월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장악되면서 크리스천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 탈레반이 기독교인 식별의 단서가 될 수 있는 국제 군대 문서 작업을 비롯한 모든 정부를 통제하면서 발각의 위험은 더욱 커졌다.
크리스천의 삶
아프가니스탄의 크리스천은 공개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곳 사람들은 이슬람을 떠나는 것 자체를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새 신앙을 들키게 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발각된 이들은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탈레반의 장악 이전에도 그랬지만 올해 기독교인들의 상황은 더욱 위험해졌다.
탈레반은 이슬람 통치와 관습이 지속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기독교 개종자들에게 복종 말고는 다른 옵션은 없다. 새 신앙이 발각될 경우, 그들의 가족과 부족은 의절하거나 사형시킴으로써 명예를 지켜야 한다. 그들 사회에선 이것이 정의라 여겨진다. 또 이슬람을 떠나는 것 자체를 정신이상의 징후로 여기기 때문에 이슬람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은 정신병원으로 강제 이송될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탈레반의 장악이 있었던 날 밤, 아프가니스탄의 기독교인 부부 가정에 한 아기가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딸아이의 출생을 보며 하나님께서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아프가니스탄에서 몰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을 탈레반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소서
  • 탈레반 지도자들이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미움에서 사랑으로 돌이켜 주소서
  • 아프간 난민들을 돕고 있는 오픈도어 선교회의 파트너들의 섬김에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게 하소서
  • 탈레반이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 리스트에 올라간 이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그들이 탈레반의 눈엣가시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 교육이나 여성 평등에 관심이 없는 정권하에서 살고 있는 크리스천 여성들을 지켜주소서
  •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프간 난민들의 트라우마를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소서
  • 아프가니스탄 내 고립된 크리스천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모임을 발견하고, 세상의 많은 믿는 자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북한

전체 인구: 25,941,000명

크리스천 인구: 400,000명

주요 종교: 불가지론

북한의 순위는 내려갔지만 박해 지수는 사실상 올라갔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북한이 있는 이유
북한은 20년 넘게 월드와치리스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 발각되면 즉시 구속되거나, 잔혹한 고문과 죽음의 위협에 놓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북한의 신자들은 엄청난 억압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성장하는 중이다.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국들이 불법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북한에 도달하고 있으며 나라가 개방되면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소수의 기독교인 단체들이 있다.
북한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비밀리에 예배하고 있는 이들과 감금된 크리스천, 체포되고 사형당한 크리스천 가정을 지켜주소서
  • 김정은과 다른 북한 권력자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소서
  • 북한에 교회를 세워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 내 오픈도어 선교회 네트워크들이 안전하고 성공적인 은신처 사역을 할 수 있게 하소서
  • 기근과 코로나19 전염병 상황을 겪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지켜주소서
  • 자녀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크리스천 부모들을 지켜주소서
  • 중국 내 오픈도어 선교회의 은신처에 들어오려 시도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소서
  • 하나님께서 북한 난민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주소서
소말리아

전체 인구: 16,589,000명

크리스천 인구: 수백 명

주요 종교: 이슬람

소말리아는 크리스마스를 금지하고 있는 소수 나라 중 하나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소말리아가 있는 이유
소말리아 내 소수 신자들은 대부분 이슬람에서 개종한 사람들이다. 급진 이슬람 세력들에게 크리스천들은 주요 표적이 된다. 기독교 개종자들이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지 않을 때에도, 그들은 가족과 공동체의 강한 압박을 받는다.
소말리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소말리아 내 극심한 박해 상황에서도 “날라”와 같은 신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수님께서 저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이전의 저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이제 기쁨을 누립니다. 사람들은 저를 연약하다 하는데 그건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오기 전까지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소말리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적 공격과 불안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말리아에 평화를 주소서
  • 소말리아에서 이슬람은 국가 종교이며 사회의 모든 부분이 기독교에 적대적입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신자들을 지켜주소서
  • 오픈도어 선교회는 1990년대부터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 포함)을 횡단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픈도어 선교회의 사역에 열매를 허락해 주소서
  •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을 알-샤바브의 전사들이 발견하게 하소서
  • 신앙을 숨겨야 하는 크리스천들을 지켜주소서
  •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되는 크리스천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소망을 주소서
  • 소말리아 내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방의 많은 지체와 함께 하고 있음을 느껴 격려받게 하소서
리비아

전체 인구: 6,746,000명

크리스천 인구: 34,600명

주요 종교: 이슬람

로마 시대부터 리비아에는 기독교가 존재해왔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리비아가 있는 이유
리비아에서 이슬람을 떠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이웃과 지역사회의 배척으로 그들은 노숙자나 실업자가 되거나 고립될 수 있다. 신자들은 언제나 납치의 표적이 되고 처형의 가능성에 놓여 있다.
리비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2021년 리비아 내 한 이집트인이 살해당했다. 그저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순교는 다른 신도들을 격려했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가 신앙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신앙을 지켰다”라고 순교자의 삼촌은 말한다. “그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를 위해 기뻐합니다.”
리비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신자들이 신앙을 잘 지키게 하소서
  • 10년간 불안정한 상태의 리비아 정부의 안정과 법치주의가 이뤄지게 하소서
  • 리비아 군사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소서
  • 리비아의 크리스천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차별받지 않게 하소서
  • 리비아에서는 외국인도 기독교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종교의 자유를 향해 열리게 하소서
  • 교회에 다닐 수 없는 신자들에게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리비아 사람들을 꿈과 환상을 통해 만나 주소서
예멘

전체 인구: 30,911,000명

크리스천 인구: 몇 천 명

주요 종교: 이슬람

예멘은 7년 넘게 내전에 휘말려 있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예멘이 있는 이유
예멘 내 기독교 박해는 지난 수년간 극심했으며 이로 인해 2022년 월드와치리스트의 박해지수 2위에 올랐다. 이슬람에서 개종한 사람들 대한 압력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최고 수준이다.
예멘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엄청난 박해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예멘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하고 있다. “저희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느낍니다. 많은 이들이 자가 격리로 인해 공허함과 지루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저는 그 시간을 통해 기도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분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낍니다.”
예멘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예멘의 내전은 거의 10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평화와 안정, 종교의 자유가 있게 하소서
  • 지속적인 위협에 놓여 있는 예멘의 크리스천들을 지켜주소서
  • 예수님께서 전쟁으로 찢긴 나라의 크리스천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허락해 주소서
  • 진리를 찾고 있는 예멘의 모든 사람이 위성TV, 꿈, 우연한 만남 등을 통해 진리를 찾게 하소서
  • 예멘의 신자들이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지혜와 담대함을 갖게 하소서
  • 코로나19 전염병을 통해 예멘의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께서 예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소서
에리트레아

전체 인구: 5,555,000명

크리스천 인구: 2,611,000명

주요 종교: 이슬람

에리트레아는 1993년 독립 이래 단 한 명의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에리트레아가 있는 이유
전체 인구의 절반이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레아의 신자들은 극심한 박해에 시달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작은 교파 소속의 크리스천들은 가혹한 박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모임은 불시 단속을 받으며 신자들이 체포되기도 한다. 크리스천이 겪는 수감 생활은 비인도적이다.
에리트레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에리트레아에서 구속된 크리스천들은 악명 높은 수감 생활 중에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다음은 6년간 수감 생활을 했던 한 형제의 증언이다. “수감 생활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적응하고 난 후로 저는 계속 기도하고 말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그곳에서의 제 사명은 전도였습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에리트레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수감 생활 중인 크리스천들과 그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안에 거하게 하소서
  • 모이기에 힘쓰는 신자들에게 지혜, 분별력과 담대함을 허락해 주소서
  • 이슬람에서 개종해 크리스천이 된 이들과 정교회 이외의 교회에 다니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소서
  • 에리트레아 정교회 교역자들이 예수를 따르는 모든 이들을 경쟁자가 아닌 형제자매로 품을 수 있게 하소서
  • 에리트레아의 독재자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마음이 변화되게 하소서
  • 경찰의 감시를 받는 모든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게 하소서
  • 원치 않지만 군 복무를 해야 하는 크리스천 청년들을 지켜주소서
나이지리아

전체 인구: 211,447,000명

크리스천 인구: 98,006,000명

주요 종교: 기독교

올해 나이지리아는 월드와치리스트에서 사상 최고 순위에 올랐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나이지리아가 있는 이유
북부 나이지리아의 크리스천들이 무차별적으로 잔인한 공격을 받음에 따라 나이지리아의 순위가 올라갔다. 폭력의 수준은 계속해서 심각해지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과 폐쇄가 기독교인에 대한 공격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세계 지역 중 하나이다.
크리스천의 삶
나이지리아의 박해는 잔혹하게 폭력적이다. 북부 나이지리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은 보코하람, 이슬람국가 (ISWAP), 풀라니 무장세력, 납치 살해범들의 지속적인 공격 위협 아래 살고 있다. 폭력은 매우 심각하며 남쪽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북부의 모든 시민이 위협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 한편 기독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ISWAP와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에서 크리스천 마을을 없애기를 원하고 있으며, 무슬림 풀라니 무장 세력은 기독교 마을을 공격하고 있다. 폭력의 위험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북부 일부 주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샤리아법에 의거 2류 시민으로 분류돼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이슬람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 또한 가족들로부터 배척당하며 예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는 압력을 받는다. 때때로 그들은 격렬한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나이지리아는 끔찍한 공격이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 무장 세력에 납치됐을 때 성폭행을 당한 여성 “페이스(믿음)”는 오픈도어 선교회의 지원을 받는 외상치료센터에서 치유를 찾았다. 그녀가 받은 트라우마 상담은 고통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하나님이 그녀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나이지리아 기독교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2021년에는 무법 상태 심화에 대한 보도가 많았는데 국가 및 지방 당국이 해결책을 찾고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소서
  • 남자들이 살해당하고 여자들은 강간, 유괴당하며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낙심에 빠지는 등 위기 수준이 고조됨에 따라 심각해지는 크리스천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소망이 부어지게 하소서
  • 나이지리아 내 오픈도어 선교회의 사역이 열매 맺게 하소서
  • 크리스천들을 공격하는 많은 무장 단체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소서
  • 원수의 목적은 반복되는 공격을 통해 교회를 약해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이들의 믿음이 폭력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납치된 신자들과 함께하사 그들이 풀려나고 상처가 치유되게 하소서
  • 포격 이후 다시 일어나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원임을 알게 하소서
파키스탄

전체 인구: 212,107,000명

크리스천 인구: 4,080,000명

주요 종교: 이슬람

매해 수백 명의 크리스천 여성들이 유괴, 강간당하며 유괴범들과의 “결혼” 및 개종을 강요받고 있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파키스탄이 있는 이유
파키스탄에서 크리스천들은 2급 시민으로 분류돼 삶의 모든 방면에서 차별당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당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될 수 있으며 이러한 법적 제재는 크리스천 소수 민족에게 경고와 위협으로 느껴진다. 크리스천을 향한 폭력은 극단적인 수준으로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매튜”는 파키스탄 벽돌 가마에서 매우 가난한 기독교인들과 일하는 목사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거의 교육을 받지 않는 노예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매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다. 매튜는 “이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도, 예수를 잘 알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자라자 이들에게 벽돌 가마의 노예 생활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리라는 희망이 심겨졌고, 점점 더 담대해지고 있다.”
파키스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일을 하는 신자들을 하나님께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 신성 모독죄로 기소된 신자들을 지켜주소서
  • 파키스탄 내 모든 기독교 단체들이 지치거나 절망하지 않고 격려받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파키스탄 지도층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지사 다른 종교 단체들이 평화롭게 예배할 수 있게 하소서
  • 납치돼 이슬람으로의 개종과 무슬림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을 지켜주소서
  • 납치와 성폭력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이 치유되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파키스탄 내 그분의 백성을 지켜주소서
이란

전체 인구: 84,308,000명

크리스천 인구: 800,000명

주요 종교: 이슬람

이란의 공용어인 파르시어로 집도 되는 예배는 금지되어 있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이란이 있는 이유
이란에서 기독교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박해의 심각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슬람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는 정부, 사회와 가족들에 의한 박해의 위험이 가장 크다. 슬프게도 법의 개정으로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종교의 자유를 더욱 옥죌 것이다.
이란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타헤르 (Taher)”는 이란에서 가정교회를 이끌다 체포된 신자다.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는 당국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도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란의 지하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란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이란 내 종교 소수자들의 인권과 헌신을 존중해 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눈을 밝게 하사 크리스천들이 이란의 위협이 아님을 알게 하소서
  • 가정교회들이 강력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세우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이란의 교회를 계속해서 성장시키시고 교역자들에게 힘을 주소서
  • 믿음으로 감옥에 간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소망과 평안을 허락해 주소서
  • 이란의 종교 지도자들의 마음이 변화돼 예수님이 구주 되심을 알게 하소서
  • 이란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신자들이 감옥과 강제 추방의 트라우마로부터 치유되게 하소서
인도

전체 인구: 1,397,423,000명

크리스천 인구: 68,863,000명

주요 종교: 힌두교

인도는 코로나19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 일부 추정에 따르면 사망자는 300만 명이 넘는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인도가 있는 이유
지난해 월드와치리스트와 비교했을 때 인도 내 크리스천 박해 수준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전반적인 폭력은 아직까지 극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압박의 수준은 매우 높거나 극단적이다. 이러한 상황의 핵심 요인은 소셜 미디어의 사용에 있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을 공격할 때, 그들은 가장 먼저 희생자들의 전화기를 빼앗아 사건의 녹화를 막는다. 하지만 자신들은 극단적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폭력을 기록하고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한다.
크리스천의 삶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인도 크리스천들의 존재와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있다. 극단주의자들은 인도 기독교도와 다른 종교적 소수 민족을 진정한 인도인이 아니라 여기며, 힌두교도로 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 및 기타 종교적 소수자는 조직적, 폭력적 표적이 되었다. 여기에는 소셜 미디어에 타 종교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증오를 유발하는 게시물을 게재하는 것도 포함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박해자들에게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했으며 나아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인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바니 (Vaani)”는 학대, 실업, 코로나19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도 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잊지 않으셨음을 본다. 그녀는 오픈도어 선교회 파트너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다음과 같은 강력한 간증을 했다. “하나님께서 제 머리를 높이 들어주셨고 친절한 도움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저는 또한 제가 겪은 고통과 고통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 아프지만, 그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있었음을 확신합니다.”
인도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많은 이가 병 고침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많은 이들을 고쳐 주소서
  •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허위 정보와 증오를 막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하소서
  • 인도 교회를 섬기고 있는 오픈도어 선교회 파트너들에게 지속적인 보호하심과 힘, 격려가 있게 하소서
  • 인도 내 종교적 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소서
  • 하나님께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사 인도 크리스천들이 소중한 자국민임을 깨닫게 하소서
  • 권위를 가진 이들이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진정으로 보호하게 하소서
  •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이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내린 신자들을 지켜주소서
터키

전체 인구: 84,515,000명

크리스천 인구: 170,000명(기독교 난민 포함)

주요 종교: 이슬람

터키에는 난민 3만 9천 명을 포함해 6만 7천 명으로 추산되는 이란인이 살고 있다.

2022 월드와치리스트에 터키가 있는 이유
터키는 기독교 신앙에 상당한 적대 감정이 예상되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터키인의 정체성은 이슬람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민족주의 둘레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의심과 차별을 직면하게 된다. 터키의 모든 기독교인은 압박을 받지만, 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같은 나라에서 온 기독교 난민들과 함께 이슬람 출신 개종자들이 가장 취약하다.
터키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터키는 이란과 시리아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하나님께 사용 받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란에서 탈출한 쿠루시 (Kouroush) 같은 신자들은 현재 이란 신자들을 위한 센터를 짓고 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하실 일들과 이 센터를 통해 어떤 열매들이 맺힐지 기대하며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터키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도
  • 터키의 크리스천들이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일구고, 일하며 예배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이들이 늘어나 차별이 사라지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이슬람에서 개종한 이들을 지키시고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소서
  • 하나님께서 터키 내 오픈도어 선교회 난민 사역을 도우시고, 특별히 이란 신자들을 강건하게 세워 주소서
  • 하나님께서 희망의 센터 (Centers of Hope)를 들어 사용하사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소서
  • 터키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 역시 국민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소서

특별 기고

목적과 수단은 의로워야 합니다

이승혁 목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은 사실상 동의적인 표현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의 의가 완전히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의 의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완전히 겹치는 것이며, 둘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을 반복하여 말하는 이유는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매우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타락한 세상에서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로 말미암는 단절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공급받으며, 인정과 안정과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부터 멀어져, 자신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 외에 아무것도 새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인간들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했기 때문에, 언제라도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잔혹한 현실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에도 늘 벅찬 인간은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그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돌아보면서도, 선뜻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없는 비정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들도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 자신에게 있는 풍족함 가운데 사심 없이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세상은 공허함과 갈급함, 비정함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죄로 물들어 타락한 세상에 대해 마음 아파하셨고, 그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 씻음을 받은 성도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미 회복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만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의를 통하여 성도들은 모든 것을 공급받고 기쁨과 평강과 안정과 인정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되어진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이해할 때,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움으로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이때에 그분의 의로움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합니다. 공의와 정의가 그것입니다. 공의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돌아보는 것을 포함하며, 정의는 법적인 차원에서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열리고 안정과 기쁨과 소망을 갖는 복된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정의에 따라서 인간은 그 행위대로 판단을 받게 됩니다. 이때에 인간은 법적인 기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을 받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사형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의가 이렇게 정의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인간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공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약자를 돌보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돕는 것이 공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더불어 죄로 물들어 있던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혜사로 보내주셔서, 죄와 사망에 묶여 있는 우리들을 풀어주고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힘입어 구원받았고, 구원받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택한 백성에 대한 아가페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확실하게 믿고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의 타락과 연약함을 돌아보시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속되는 실패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며 끝까지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시고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번번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만, 하나님은 인내 가운데 신실하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돌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품을 그리스도인들도 닮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레위기에서의 명령은 하나님을 닮으라는 뜻입니다. 거룩함이란 구별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의 내용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의로움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의로움을 닮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중의 책임을 갖게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움을 전하는 책임이며, 두 번째는 공의와 정의의 원리를 삶의 원리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또 그 원리대로 살도록 도우시는 능력이요 도움이 되십니다.) 좀 더 짧게 말하면, 첫 번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사랑을 바탕으로 의롭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둘은 원칙상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에 대한 위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선교와 전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전통적으로 선교와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첫 번째 책무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복음을 전하는 태도는 중요하지 않고, 복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장하듯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6장 33절은 목적과 수단이 동일하게 정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동일하게 의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의로운 것이라면, 그것을 전하는 수단도 동일하게 의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귀중한 복음을 어떻게 전하는 가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세상은 죄로 물들어 타락하였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많은 문제를 가진 곳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문제들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오늘날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끈질기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안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경우, 세상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기보다는 적대적인 마음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은 죄로 물들었으니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세상이 우리를 죄로 유혹하며 물들일 수 있으니 세상을 등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슬림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편견이 그중에 하나입니다.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나 적대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여 그들과 만나는 것도 꺼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조차도 멀리하는 태도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나 자신을 그렇게 대하셨다면, 저는 결코 구원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의 손을 내밀어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물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영원과 무한에 대한 욕망이 마음에 새겨져 있지만, 하나님과 단절되어 그것을 어떻게 충족시킬지를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하지만 만족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위가 높은 자든 낮은 자든, 재물이 많은 자든 적은 자든, 학식이 높은 자든 낮은 자든, 모든 이들은 마음에 공허함을 결코 채우지 못하여 허무와 실망,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만족과 안식과 풍요와 평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에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의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인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 전파를 단지 내게 주어진 사명으로만 여기고, 대상이 복음을 듣든지 말든지 그것은 듣는 자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나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상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신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우리의 고통과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친히 오셔서, 우리와 만남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굶주림과 피곤함과 연약함을 몸소 친히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그분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그분과 같이 복음을 전할 대상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맛보아야 하고, 그들이 죄 가운데 방황하는 것을 옆에서 함께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들의 삶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며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섬김과 수고 없이 복음은 전파되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들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품어주고, 돕는 일 없이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위로와 섬김이 없이 복음이 선포된다면, 그것은 껍데기뿐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은 죽음 직전에나 잠시 마음에 위안을 줄 뿐,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상황 가운데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가져다주는 참된 복음의 능력을 전하지 못합니다

복음은 이벤트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랑과 인내의 열매입니다. 바꿔말하면, 복음을 전할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선교와 전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랑과 인내입니다. 어쩌면 가장 손쉬운 것이 관계 맺음 없이 전도지를 들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빨리빨리 성과를 바라는 한국인들의 습성으로는 사랑을 베풀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어렵습니다. 이벤트를 만들어 빨리 복음을 전하고 듣는 자들이 믿든지 말든지 빨리 결정하라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사랑의 수고와 인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나무를 심고 내일 열매를 얻을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열매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듣는 대상이 복음을 믿는 것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사랑을 베풀며 섬기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ANC 온누리교회는 복음을 전할 대상을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먼저 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것을 복음전파의 시작점으로 삼습니다. ANC 온누리교회의 선교 키워드는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의 필요를 도우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신 것처럼, ANC 온누리교회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대상을 먼저 찾아가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와 삶을 듣고 경험하는 것을 복음전파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처음으로 어떤 대상을 만나러 갈 때는 특별한 사역을 준비하기보다는 그들과의 복된 첫 만남을 기대하면서 기도로 준비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관계를 통하여 그들의 필요를 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여 다음 만남을 준비합니다. 한 번 방문한 곳은 적어도 3-5번을 더 방문하여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번에 ANC 온누리교회에서는 처음으로 터키의 난민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SWM 선교회에서 주관하는 Kingdom school을 시작으로 하여 이슬람권 난민들의 삶과 믿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현장에 방문하기 전까지 계속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방문에는 특별한 사역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함께하고, 그들의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맛보고, 그들의 친구요 가족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들을 생각해주거나 기억해주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그들의 친구로 남을 것이고 그들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기도해줄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를 먼저 사랑하고 인내하여 주셨고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것을 함께 확인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 안에 하나 됨을 통하여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무슬림 친구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날을 기뻐함으로 인내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간증

나의 소명과 사명

네디르

저의 이름은 네디르이며 44세입니다. 저는 평범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교회 안에 있었지만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죄에 빠져 살았습니다. 정확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제 안에 영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한 후 작은 사업을 했지만, 돈을 많이 잃었습니다.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최후 수단으로 하나님께 기대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 기독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셨고 복음주의 교회의 집회에 초대했습니다. 그 집회에서 저는 성령의 임재를 느꼈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제 삶을 드렸습니다. 2004년 11월 7일,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것에 제 평생을 바쳤습니다.

제 아내 디나는 42세로 가정교사입니다. 디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과 침례교교회에 다녔습니다. 14세가 되던 해, 교회 수련회에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는 것만이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하나님께 그녀의 삶을 받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아내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1992년 4월 7일, 디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후 디나는 홀로 말씀 읽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찬송으로 주님을 섬기며 여자아이들을 돌보는 사역도 했습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가정 예배와 결혼 상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소명과 사명

우리의 비전은 ‘주님을 위한 새로운 세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이러한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청년 세대를 양육하여 교회로 보내고, 다른 청년들에게 전도와 제자양육을 할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서 믿음의 가정들이 나오고,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가 열방에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부부는 성경 말씀을 잘 모르는 가난한 기독교 가정들을 섬겼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개인적 상황과 전통 교회의 억압 때문에 그들은 말씀을 잘 몰랐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이들이 많은 시골 마을에서 젊은이들 위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아랍침례신학교 (ABTS)에서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에 살았습니다. 그 후 이집트로 돌아와 시골과 낙후된 지역 가정들에 주님을 전했습니다. 2017년에는 무슬림들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과 그들의 사상을 공부했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싯타옥토버 시에서 시리아 난민을 섬기는 분을 알게 되어 그분의 초대로 그곳에 방문했습니다. 싯타옥토버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시리아인들을 섬기기 위해 2020년 이사했습니다.

싯타옥토버로 이사에 관한 간증

싯타옥토버로 이사하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파트가 비싸서 살 곳을 구하기 어려웠고, 교통수단이 적고 생활비가 비쌌습니다. 아내는 공립 학교 교사였는데,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한 아내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아프시고, 여동생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서 가족을 떠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고 모든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발걸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우리가 직면한 모든 어려움과 장벽을 기적적으로 들어 올려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했습니다. 아파트 문제는 오랜 기간 집을 찾은 끝에 친구의 친척이 싯타옥토버에서 아파트 임대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제가 살고 싶은 아파트를 선택하면 그 집을 사서 저에게 임대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는 아파트를 선택하고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디나의 전근 문제는 학교 담당자에게 싯타옥토버에 있는 학교에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담당자는 저희에게 해당 지역에는 선생님을 구하는 학교가 한 군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주소를 물어보니 우리 집에서 500m 떨어진 거리에 있었었습니다. 이 일들을 통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난민 사역으로의 부르심

시리아와 수단의 난민을 섬기는 것은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관습과 전통이 매우 달랐습니다. 인사법부터 집에 들어가는 방법, 여자와 남자를 대하는 경계,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말처럼 사소한 것들까지 다 달랐습니다. 게다가 난민들은 다양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배우자,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집을 떠나 자신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며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이 모든 고통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새겨져 한순간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우리는 난민 사역을 이전의 사역 방법과는 다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우리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초반에는 음식을 나눠주며 바로 복음을 전하는 실수를 했는데, 이 일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기 위해선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뜻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사명을 우리 부부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간증

우리의 공급자가 되시는 주님

다니엘 규나이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다니엘 규나이이고, 1972년에 이스탄불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님이 주신 귀한 아내, 세랍과 결혼한지 22년이 되었고 네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요나탄, 오브규, 다붓, 카이라인데, 이 아이들 모두가 주 안에서 성장해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부모님께 받은 신앙의 유산

저의 아버지는 터키의 1세대 첫 목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기 전에는 주님을 향해 마음에 큰 쓴 뿌리를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신약성경의 한 부분을 읽게 되면서 더 알고 싶으신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던 중 여호와의증인 교도를 만나게 되고, 여호와의증인 교도가 되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그들을 떠나시게 됩니다. 이후에는 여호와의증인 교리의 그릇됨과 관련된 책을 포함한 여러 글을 쓰셨습니다. 1970년대에는 우리 집에서 “사랑의 길”이라는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하셨고, 터키의 여러 지역에 이 잡지를 배포하기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제자와 목회자들을 키워 내셨는데, 그들은 현재 여러 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현재 주님의 곁에서 안식하고 계십니다.

저는 아버지와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주중에 가정모임들이 있었는데 저도 아버지와 함께 그 모임들에 참석했습니다. 가기 싫어서 빠진 날이 하루 있었는데, 나중에 안 간 것 때문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고, 그 이후로는 늘 아버지와 함께 가정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여름이 되면 터키 전역의 성도들이 참석하는 수련회를 개최하셨는데, 그 시간은 많은 이에게 큰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터키의 동부 아나돌루 지역을 방문하셔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격려하곤 하셨습니다. 그 시기에 터키에는 아이들을 위한 주일 학교 사역이 없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이스탄불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후 오랜 기간 이 사역은 진행되었고, 어린이 사역을 섬길 많은 젊은이도 양성해 내셨습니다. 또한 집에서 여성 모임을 하시면서 교회의 여성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이 교회에서 섬기시는 가정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저에게는 세 명의 형제자매가 있는데 그들도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께서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읽어주셨고, 함께 찬양을 불렀습니다. 교회에서는 어머니가 인도하시는 주일학교에 참석했는데, 이런 좋은 가정 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저의 영적인 훈련은 집에서,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주님을 마음에 초청하기까지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이 잘못도 저지르고, 화내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형제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화가 나면 누나를 때리고는 했는데, 이미 믿음이 있었던 누나는 전혀 소리도 지르지 않고 제 분노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저희에게 자기 전에 영적인 이야기들을 해 주셨는데, 제가 9~10살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해 주신 이야기에 크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과 나의 죄들을 감당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께 회개하고 저의 삶을 예수님께 드리기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께서 제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저의 삶을 그분께 드렸고, 원하시는 대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터키 1세대 선교사 아그네스 사역자 (다니엘 규나이 모친)

어느 날 아버지가 준비하시는 터키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수련회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한 구석에서 성경을 읽는 중에 주님께서는 저에게 목자-목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몇 년 후 주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스위스인이셨기 때문에 18세가 되었을 때 저는 스위스에 갔습니다. 거기서 3년을 지내며 군 복무도 짧게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혼자 보낸 삶은 영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터키인들을 위해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면서 섬김을 시작했습니다. 기타를 칠 줄 알았기 때문에 예배 인도를 했고, 새로 온 사람들에게 주님에 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1994년에 터키에 돌아왔을 때 교회 친구 한 명이 같이 청년 모임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터키에 청년 모임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시작하면서 20대에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임에 오는 청년들이 많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축복해 주심으로 점차 청년 모임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거리에 나가 전도지를 나눠주고, “예수”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젊은이를 우리 모임에 보내주셨습니다.

몇 년 후 우리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한 분이 먼저는 아버지에게, 그리고 저에게 사역을 내려놓게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그 교회의 목사요, 지도자라고 하며 제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역하기가 어려워진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우리는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청년부의 많은 젊은이가 그 상황을 힘들어했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도록 청빙을 받으셨고,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하고, 기도하면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렇게 1999년에 이들 젊은이와 함께 아가페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한 형제의 집에서 모임을 시작했지만, 그곳은 모임을 하기에 너무 좁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금식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는 한 장소를 임대하도록 인도하셨고, 모일 수 있는 장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과 십일조로 다른 교회나 단체의 지원 없이 장소를 임대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Hasat (추수)’라는 성경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집에서 저희 젊은이들에게 신학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비용을 공급해 주셨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와 사역의 필요들

2005년에 터키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공격들이 있었는데 우리 교회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위자가 우리 교회에 와서 괴롭히고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건물 주인에게 저희를 쫓아내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해서 여러 번 이사를 한 후에 주님께서는 현재 모이는 건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현재의 건물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이 장소는 터키의 첫 기독교 교회 중의 한 곳입니다. 미국 이사회에서 오래전에 이 건물을 일종의 선교센터로 구입했는데, 그들은 터키의 여러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이 건물에서는 바이블 하우스, 임마누엘 교회가 모임을 하고 있었고, 키타비 무카데스 출판사도 이 건물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후 미국 이사회는 이 건물을 비기독교 재단에 기증했습니다. 현재의 주인은 이 건물을 팔기 원하고 있고, 팔릴 때까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팔리면 건물을 비우고 떠나야 합니다. 현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을 신뢰합니다. 이제까지 주님께서는 신실하게 저희를 돌보셨고, 늘 어떤 방식으로든 모이고 교회를 계속할 수 있도록 장소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도 그분을 신뢰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공급자가 되십니다.

저희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자체 교회 건물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부터 늘 허락되는 만큼 다양한 건물에서 모임을 가져왔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저희 자체 건물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일에 저희와 함께 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속한, 누구도 나가라고 할 수 없는 예배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건물 교회가 있어야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고, 우리도 더 편하게 그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장래에 우리 자녀들과 미래의 성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물을 가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주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또한 터키의 교회들이 자립하고, 교회의 모든 필요를 우리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수입으로 교회의 목회자, 전도자나 다른 섬기는 자들을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저의 비전은 터키교회가 자립하는 것과 터키교회인 우리가 전심으로 주를 섬기고, 예배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필요가 있는 다른 지역들에 모교회가 되어 우리와 연결된 다른 교회들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또한 전임 사역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섬겨오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기독교 서적들을 편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일은 어렵기도 하고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지금도 파트타임으로 기독교 서적들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라디오 방송 사역을 섬기고 있는데, 여기서는 광고와 비디오 관련 일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 몇 가지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 일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그분이 원하시는 형태로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터키의 부흥을 위해

터키의 영적인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더 많은 위협과 압력을 받았었고, 기독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훨씬 더 선입견에 차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여러 차례 협박과 폭파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었습니다. 여전히 압력들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더 많은 사람이 기독교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성경통신 과정과 관련해서 우리 지역 내의 관심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SNS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에 관해 설명해 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반응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직접 만나기를 원치 않았지만, 최근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기독교와 예수님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있고, 실제로 회심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키워내어 주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터키의 부흥을 위해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들이 응답되어지고 있음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로 이 땅에서 사도 바울이 사역했고,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지역이 터키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나라에서 기적들을 행하시고, 부흥이 임하기를 위해 우리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최근 몇 년 동안 터키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으며, 희망과 목적을 잃고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터키는 인구가 유럽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인구의 15.6%가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나 18세에서 29세 사이 젊은이 중의 76%가 미래를 위해 해외로 이주하기를 원합니다. 많은 젊은이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주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부정적인 상황들로 인해 이신론에 빠지고 있고, 지난 몇 년간 무신론자 비율도 아주 많이 늘어났습니다. 저희가 바로 이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들을 창출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젊은이가 길을 찾고 있고, 이들 젊은이는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교회에서 SNS를 이용해 이들에게 다가가 복음과 구원의 소식과 함께 소망과 사랑을 전하고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저희를 기억해 주신다면 저희가 노력하고 애쓰는 이 일들에 함께 동참하시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 15:30)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골 4:12)

주님께서 여러분을 풍성하게 축복해 주시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계속적으로 사용해 주시기 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간증

주님께 드린 나의 삶

아비르 카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요르단에 사는 아비르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저의 간증을 여러분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 12:1)

무슬림에서 무신론자가 되기까지

저는 무슬림 가족에서 태어나 무슬림 문화 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슬람교가 신이 인류에게 준 유일한 진정한 계시라고 배워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같은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신이 나를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슬람 교육은 십자가에 못 박혀 부활한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에 대해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예언자 중에서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사람들을 살리고, 장님들을 치료하고, 새를 창조하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느끼기 시작한 후로 저는 예수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선생님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저에게 기독교인이 되면 지옥에 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학교에서 가까운 가톨릭교회를 가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가톨릭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우상의 모습을 보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저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의 어머니는 아랍어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성경에는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고, 이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저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요르단의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저의 사고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그동안 학교에서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는 이슬람에 대해 배우고, 진정한 이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웠습니다. 저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간의 본성과 여성의 권리에 반하는 신념을 믿도록 속았고 세뇌당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산주의 그룹에 가입했습니다. 그들이 무신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이슬람을 멈추고 아랍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저는 불가지론자가 되었고 신을 전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신을 미워하고 믿지 않도록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저는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을 다른 어둠으로 대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속에만 있기 때문에, 불가지론자로서 저는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신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항상 말했습니다.

예수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기독교 철학 강의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보이지 않는 신의 신화가 그리스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육신으로 나타나 보이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았던 로마 역사가와 유대 역사가들이 그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로마인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나를 위해 만든 모든 생각의 틀과 망상의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바로 역사적 그리스도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조차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제 어머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를 방으로 불러서 저에게 예수를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저에게 예수가 죽었고 3일 만에 부활한 것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이미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저의 말에 어머니는 매우 놀라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머니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예수는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 어머니는 저를 교회에 초대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 저는 즉각적인 따뜻함과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음악과 노래와 사랑으로 매우 아름다운 방법으로 기뻐하고 예배하는 행복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이 기도했고, 그것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신이라면 이런 식으로 경배받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식으로 기도할 때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매우 진실하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예배팀 멤버가 되기를 원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저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물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가짜 사랑에서 진짜 사랑으로

대학 졸업 후 저는 꿈의 직업이었던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저는 인생에 휩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펴고 교회에 가는 것을 멈추고, 세상과 가짜 사랑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돈과 외모, 옷과 명성에 관해 관심을 가지곤 했고, 파티에 나가서 멋진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화려한 물건들을 가지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제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예쁘지만 내면은 추하고, 겉은 최고의 옷을 입었지만 속은 슬프고 추악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고 스스로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마약과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를 더 우울하게 만들고 공허해졌고, 결국 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결코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가는 것을 중단했고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저는 영적인 행위를 실천하기 시작했고 명상을 하고 천사의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는 새로운 종교에 빠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 근원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달을 명상하는 시간에 하늘에서 강하고 맑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니? 너는 어디로 가고 있니? 네가 가는 곳마다 내가 있을 거란다. 네가 아무리 숨으려 해도 난 항상 너를 볼 것이다. 사랑한다. 그리고 넌 내 것이란다.”

그 목소리는 기쁨, 사랑, 평화, 행복, 정의, 영광, 모든 신의 성품이 한 번에 울리며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서서 마음과 생각을 열어 이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갑자기 들판에 있었고 갑자기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베풀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것이 스스로 선언한 것처럼 그것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제가 물속에 빠진 순간 제 삶은 과거로 돌아갔고, 제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처럼 되길 바란다. 네가 음식도 물도 필요하지 않았던 곳에서, 너는 숨을 쉴 필요도 없었다. 나는 네가 어머니의 자궁에 있는 것처럼 되기를 원한다.”

저는 “아멘, 주님, 아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주권적인 손이 내려와서 저를 안았습니다. 저는 제가 영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고, 항상 하나님의 자녀로 남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 삶이 영원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제가 울었던 것은 슬프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저의 주님을 그리워하고 얼마나 그를 만나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이런 식으로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악한 세상과 제 악한 생각과 행동의 결과로 인해 상처받거나 고통받을 때 울곤 했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흘린 눈물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눈물이었다. 안전하다는 느낌과 구원받았다는 느낌, 죽을 때까지 사랑받고 사랑받는 느낌, 죽을 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느낌, 축복받은 확신의 눈물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잃어버린 아들의 눈물, 간음한 여자가 주님께 돌아와 눈물로 그의 발을 씻은 눈물이었습니다.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 영원히 지속되는 아주 좋은 감정의 눈물이었으며 세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눈물, 제가 빛의 존재로 변화된 눈물이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저는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교훈을 깊이 공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저에게 말씀한 이후로, 이 말씀은 제 평생에 걸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일에 대해 결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항상 더 높은 것, 하늘의 것, 하나님 나라의 문제를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우리의 몸도, 돈도, 지위도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뿐입니다. 사랑과 평화와 기쁨과 영생은 사거나 팔 수 없고, 벌거나 생산할 수 없고, 오직 예수만이 주실 수 있으며 모든 것이 그에게 속해 있습니다. 왜 이 세상의 일을 근심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나요?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을 생각하고 그를 만나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아십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의 의가 없이는 사람이 결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드린 나의 삶

하나님의 음성이 저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새사람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마음에 사랑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펼쳤고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시편 6장 6절이었습니다. 시편 139편을 읽었을 때를 결코 잊지 못합니다. 내 삶의 전부를 드려 성경을 읽고, 읽을 뿐만 아니라 배우겠다고 예수님께 약속했습니다. 그다음 저는 처음으로 금식을 실천했습니다. 나는 진정한 금식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심령이 강해지고 믿음이 강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얻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그의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 그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멋진지 온 세상에 말할 것입니다.

저는 SNS에 복음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에 알리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 봉사, 번역, 드럼 연주 등 언제 어디서나 멈추지 않고 섬길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위협하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가족은 엄격한 무슬림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를 더 격려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무슬림 지도자들이 와서 내 목을 베어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다른 모든 것을 숭배하는 것은 괜찮지만, 예수만은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단코 그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죽음에 이르게 될지라도 저는 저의 예수님을 붙잡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죽음이 닥치더라도 그리스도를 붙들기를 권합니다. 당신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보다 당신의 삶을 더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오셨고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은 거짓 신들로 가득하고 거짓의 아비가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핍박과 고난을 당할 것이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사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죽지 아니하고 영원한 그의 영을 구원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늘에 계신 진리의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사랑과 영생을 주시는 당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시들지 않을 것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결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짓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때에도 그는 거기 계시고, 그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당신을 안위해 줄 것입니다. 그는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훈련하고 가르치실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죄인으로부터 온전하고 완전한 형상에 이르게 하려 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를 위해 택하신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우리가 자격이 없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고 하늘의 별들처럼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잘 알지 못하지만, 여러분이 누구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 삶과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글을 통해 당신을 격려하고 당신을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누구에게든지 그것을 자유롭게 나누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성령의 감미로운 교제가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간증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선택하기

유서영

안디옥 현지 성도 가정 초대

안녕하세요. HWM (Holy Wave Makers) 1기 청년선교사 유서영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안디옥교회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힘든 말씀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제가 자라온 한국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이 당연하게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기르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즉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세운 가치와 내 의만 추구하던 삶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 인생에서 나의 원함이 아닌 하나님의 의를 선택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바로 HWM 청년 선교사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20살 때부터 쉬지 않고 일하던 저에게 1년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모두 제힘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재정을 하나님 손에 온전히 맡기는 삶은 제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터키에 보내셨고, 제가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재정의 영역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선교를 나오게 되었는지”를 많이 물어보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나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제가 아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할 때에는 터키에 가는 것이 내 뜻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지 미국을 거쳐 터키에 도착했을 때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나와서 모태신앙으로 자라며 제 안에 관습으로 또는 종교심으로 자리잡혀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말씀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품 하나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결단한 이 1년의 시간이 ‘내가 드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저를 터키에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권 사역

제가 터키에 나올 때 걱정했던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저의 모교회인 얼라이브 교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아주 큰 고민이었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공동체를 누가 괴롭히진 않을지 걱정을 했고, 앞으로 1년의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6장 30-31절 말씀을 보게 하시면서 “내가 얼라이브 교회를 돌보고 이끌어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선교지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얼라이브 교회를 이끄셨습니다. 다음 세대 아이들이 교회에 오게 하시고, 이 아이들에게 예배의 유업을 물려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더 뜨겁게 예배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허락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게 하셨습니다.

현지교회 예배사역

두 번째는 아버지입니다. 제게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도 예수님은 믿지만 교회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족들이 계속 권유해도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주기적이진 않지만 얼라이브 교회에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 가족들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고, 성령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니와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중보함으로 더욱더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때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 제게 레마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한 것은 확신 없는 마음으로 선교지에 나와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의 시간을 누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확신 없는 마음을 결코 작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반응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나아갔을 때 많은 것들을 주시는 하나님을 한 번 경험해보니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좋은 직장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어요. 내가 하는 이 생각과 행동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저는 만족해요. 이 교제의 시간이 당신의 마음에 합한 시간이 되게 하시고, 이 사역이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역이 되게 해주세요. 제가 세운 목표보다 당신이 더 소중합니다. 세상과 맞춰 살아가는 것보다 제게는 당신이 더 중요해요.”

제가 한 선택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닌 제 의지였더라도 이 선택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확신이 없다고 망설이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 불확실한 마음마저 사용하실 것입니다. 저는 실패하더라도 실수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선택할 것입니다.

간증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박재표 집사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은 크리스천이라면 너무나도 많이 듣고 묵상하는 구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이 말씀의 넓이와 깊이의 범위가 얼마나 방대한지 깨닫게 된다. 이 말씀 가운데 두 가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도전과 결단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하고 동시에 위로와 소망을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주기도 한다. 마치 예수님의 사랑과 공의의 속성을 담고 있는 듯하다.

도전과 결단의 말씀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가 매일 무엇을 구할지 알고 계셨다. 일용할 양식의 문제로 우리가 이방인과 같은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보신 것이다. 이렇듯 주님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꿰뚫어 보신다는 것을 인식할 때 너무나 부끄럽고 우리가 얼마나 완전하지 못한지, 얼마나 주님의 원래 창조 의도와 멀어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원래 우리는 영적, 육적 기능이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며 일용할 양식에 대한 걱정의 개념조차 없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님의 영광 가운데 가장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할 우리가 고작 오늘 하루의 내 배를 채울 것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한낱 먼지와 같은 삶과 존재가 돼버린 우리는 내일 우리의 삶을 알지 못한 채 육체의 굴레 가운데서 작은 병마 하나 이겨낼 수 없는 육신의 사망과 죄에 허덕이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극치로 구했던 선악과 사건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는 가장 원했던 삶에 가장 반대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생각과 우리의 육신이 가장 원하는 방향은 늘 주님이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었고, 그래서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님의 나라를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의 문턱을 드나드는 모든 교인이 다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마주하면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했던 대학원 시절이 떠오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훌륭한 목사님에게 양육을 받던 초신자 시절에 늘 그 목사님께서는 우리 젊은 학생 청년들에게 ‘당신은 제자인가? 무리인가?’를 질문하셨다.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의 ‘먼저’라는 말이 나에게 ‘당신은 마음의 결단을 하고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로 들렸다. 나는 내가 무리에 속한 채 전혀 구원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의 품성과 인격을 닮아가야 하는데 여전히 작은 일에도 염려와 걱정에 빠질 때, 여전히 허망한 생각과 정죄하는 마음을 가득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은 제자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은 아닌가?

예수님의 인격은 팔복에서 나타난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해 핍박받는 그런 삶이 곧 예수님의 분신의 삶이고 그것이 곧 주님의 의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믿음을 뛰어 넘어 정말 구별된 자로서 제자로서 살기를 진정 결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선을 긋고 마음을 정하고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그런 순간의 기억이 없다면 나는 아직 제자가 아니며, 분명한 본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방향성이 없다는 증거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늘 다시 그 결단의 순간으로 돌아가 기억하며 내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과정이 우리의 믿음의 경주에 명확한 체크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진실을 우리는 스스로에 비추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결단의 마음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 오늘도 주님의 제자이면 가져야 할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식어갈 때, 그 어느 때 보다 마음에 큰 무거움이 밀려오고 안타까움이 절절히 사무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셨는데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고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역에 우리가 동참할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제자가 늘 예수님과 동행했던 것처럼 예수님과 늘 함께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실현된다. 그런데 내 마음 가운데 오로지 예수님만 바라며 미지근하지 않고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내 삶과 거리가 있는지 깨달을 때 자주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더 깊은 제자의 삶으로

제자의 삶을 늘 고민하던 나에게 주님이 나에게 먼저 찾아오셨던 것처럼 제자의 삶을 더 깊이 묵상하며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먼저 열어 주셨다. 그것은 선교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게 신실한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크리스천을 만나게 해주셨고 그로 인하여 조금씩 선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주셨다. 교회의 본질이 선교하는 것이고 초대교회와 모라비안 공동체와 같은 열방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예를 이미 보여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삶을 다 바쳐 선교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일은 선교의 비전을 같이 할 수 있는 마라나타 비전교회를 만나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마라나타 비전교회 전에는 안타깝게도 초신자나 불신자에게 진심으로 소개해주고 싶은 교회를 만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현재 출석하는 마라나타 비전교회는 항상 늘 누구에게나 추천해 주고 싶은 그런 교회이다.

2012년경 처음으로 교회에서 집중하고 있는 전방위 교회 개척 선교를 인도로 다녀오게 되었다. 비록 2주간의 짧은 단기 선교였지만 주님이 시작하시고 끝내시는 선교의 아름다운 일들을 경험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고 병자가 낫는 사도행전적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이스라엘과 이집트 단기 선교를 통해서 무슬림에 대한 깊은 묵상과 안타까운 마음을 부어주셔서 마침내는 이것이 나의 인생을 모두 걸 수 있는 비전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내가 40세가 되었을 때 시작한 기도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40세부터 50세까지 10년 동안 50세 이후의 남은 인생을 마칠 나의 사명과 비전을 알려 달라는 기도 제목이었다. 남자는 40세부터 50세까지 사회생활 가운데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주님 나라의 사역을 잊어버리고 나의 직장 생활과 커리어에만 이 시기에 집중하면 결국은 세상 가운데 묻혀 열매 없는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한 목사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이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지난 10년 동안 한발 한발 길을 알려주시고 인도해 주시더니 무슬림 선교와 중동 사역이라는 내가 감당하기조차 힘든 비전을 부어 주셨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고 어떤 사명에 내가 부름을 받았는지 기도 가운데 또한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마라나타 비전교회에서 훈련받으면서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장로교회에서 자란 나는 한국에서 전혀 예수님을 모른 채 교회 문턱만 왔다 갔다 할 때 한번도 성령에 대해서 강하게 강조하는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원 때의 일이었다. 청년부 수련회에서 회개 기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라는 주님의 강한 도전의 메시지를 듣고 눈물로 회개하며 통탄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방언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 나의 믿음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라나타비전교회에서 체계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면서 그간 방언도 하고 있었던 내가 성령의 역사와 능력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했고 너무나 가둬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라나타 비전교회는 성령에 완전히 열려 있는 교회이고 교회의 본질인 선교에 모든 사활을 건 교회이다. 말씀과 성령이 이처럼 잘 조화되고 균형 잡힌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인도, 네팔, 미안마,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 등 가장 힘들다는 지역을 감당하며 오로지 주님이 하신 전도 방법과 목표를 그대로 지키며 선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거친 생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선교의 본질을 지키며 선교해 온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곳

신약시대는 분명히 교회 시대이고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내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아니고서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만을 끊임없이 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는가? 여전히 그들은 제자라고 생각했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고 방언을 하고 예언도 했다. 오늘날도 여러 모습의 성도들을 보면,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알고 소망하고 받기를 원하며 결국은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의 삶이 명확하게 구별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믿음은 결국 주님의 선물이고, 주님이 주신 것이고 성령 또한 믿음을 받을 때 받는 것이라고 보면, 성령의 임재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고 있는 곳이다. 바로 믿음이 곧 주님의 주권이 발휘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주님은 주님의 주권이 우리에게서 드러나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숨겨지기를 원하실까? 모든 만물에도 주님의 숨결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주님이 택한 백성 가운데 주님의 주권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 하나님의 나라를 가진 우리,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에게서 구원의 확신은 너무나 확실히 드러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주님은 그만큼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주권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어 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제자라면 내가 가장 먼저 구원의 확신을 인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원을 이루어가고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만한 생각에 빠져 나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의 경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겸손한 척, 착한 척하는 마음이 결코 주님께서 주님의 주권을 드러내고자 하는 구원에 대한 확실한 주님의 자신감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결국 주님의 구원의 계획은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고 바꿀 수 없다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내가 아니면 누가 나의 마음 근저에 있는 진실된 주님을 향한 고백과 믿음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알겠는가? 그래서 주님은 제자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이 말씀을 대할 때 너무나 제자의 구별이 명확해서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주님을 알도록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가 매우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위로와 소망의 말씀

그래서 결국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만 한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시겠다는 주님의 확실한 약속만큼 완전한 것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좋은 직장과 경제적 윤택을 계획한다 해도 이보다 더 신뢰가 가는 약속이 있겠는가?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확실하게 작동한다. 우리의 심장보다 숨결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3-35)

우리의 육신의 소욕을 거슬러 주님의 주권이 확실히 행사되는 곳인 하나님의 나라,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성령이 임재하는 그곳에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만 한다면 주님은 확실하게 모든 것을 보장해 주신다. 단순히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만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시는데 이 ‘모든 것’에 대한 범위는 어디까지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때의 환난과 핍박 가운데도 우리가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 13:11)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이자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엄청난 약속의 말씀이다. 결국 이 엄청난 은혜를 받는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우리의 믿음의 훈련과 성화의 과정이 없이는 마지막 때의 핍박과 환난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때야말로 가장 적용이 적합한 순간일 것이다. 주님의 주권이 발현되는 내 마음의 성령이 계시는 성전을 어떻게 가꾸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깨어 있는가가 도적같이 올 그 마지막 날을 견딜 수 있는지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의 마지막은 구원이고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이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의 그 따스한 손길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밟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진정한 기쁨과 충만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모든 것을 더하실 주님의 약속을 믿으며

그래서 나는 나의 남은 인생을 중동 선교에 바치려 한다. 이미 구원이 보장되어 있고 영원한 나라, 그 모든 것을 더하실 주님의 약속, 땅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우리가 아니면 예배자가 없는 곳, 아무도 찾지 않은 척박한 땅을 누가 밟을 것이며 그곳의 지옥불로 향하고 있는 영혼에게 누가 복음을 전하겠는가? 나는 오늘도 여전히 형편없고 여전히 죄가 많고 여전히 형제자매를 은연중에 정죄하고 있지만 마라나타 비전교회의 정말 깊이 있는 신앙으로 모든 삶을 다 바쳐 전도하고 선교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도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 마라나타 비전교회 공동체를 사랑한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선명한 결단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선을 확실히 긋고 구별된 삶을 살며 제자의 삶을 결단했던 그 마음을 주님이 보신다. 그러나 결국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형체로 변화되어 도마를 만나주셨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의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실 때에, 제자가 되기를 결단했던 그 마음조차 우리에게서 자생된 마음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그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박재표 형제는 현재 마라나타 비전교회 공동체의 안수집사로 교회 선교 사역을 섬기고 있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앤아버)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치고 등록된 미국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교회의 선교센터에서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부장 집사로 헌신하며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전방위 교회 개척 선교에 매진하고 있다. 중동 지역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며 남은 인생을 무슬림 전도사역에 모두 바치기로 결단했다. 지금까지 터키,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등을 방문하며 현지 선교사님들과 꾸준한 소통 및 단기 선교 사역으로 동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