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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도제목

하나님의 나라가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능력으로 임하는 기도
  •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속히 임하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의 온 열방과 모든 민족 가운데 이루어지이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우리 주님 홀로 받으소서!
  • 사탄과 악한 영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묶습니다.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속히 편만하게 전파되게 하소서.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 가운데, 특별히 난민들 가운데서 마지막 시대 영적 대추수를 위한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켜 주소서!
  •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들이 적은 당신의 추수밭에 주님의 일꾼들을 보내사, 주님의 교회가 계속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에서 세워지게 하소서. 영적 대추수가 일어나게 하소서!
  • 변이종으로 다시 확산하는 코로나 팬데믹이 속히 종결되게 하소서. 여러 가지 염려와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더욱 기도에 힘쓰게 하시고, 속히 집단면역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터키와 중동과 이슬람권의 교회와 목회자들, 동역자들과 성도를 위한 기도
  • 현지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간구하며 섬기는 그 땅과 민족들 가운데 성령의 권능과 은사와 열매로 지속적인 교회 개척과 성장 및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 터키에서 우리와 동역하는 TeK 회장 알리 목사, 제카이 목사, 오르한 목사, 이산 목사, 바히트 목사, 아흐멧 목사, 움베르토 목사를 축복하시고, 현지 교회들과 동역자들이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동역이 계속되게 하소서!
  • 터키와 이집트의 난민 자녀 학교 사역 (이레학교, Big Dream School, Bridge of Love)과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두아일레바쉴라 (Dua ile Basla), 라스트콜 (Last Call), AIM (Arabic Internet Ministry)의 모든 사역을 축복하소서!
  • 터키의 동역자 (Partners in Turkey), 이집트의 동역자 (Partners in Egypt), 쿠르디스탄의 동역자 (Partners in Kurdistan), 아르메니아 동역자 (Partners in Armenia), 그리스 동역자(Partners in Greece)들의 가정과 자녀들과 모든 사역을 축복하소서!
  • 코로나에 감염된 현지 성도와 목회자들, 동역자들이 속히 치유되게 하시고,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인 압박과 그 외 여러 어려움을 주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하심 가운데 속히 잘 극복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현재 62유닛의 교회 개척자 (CP)들을 위한 기도
  • 현재 62유닛의 현지 CP들 (복음전도자/교회개척자/선교사)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사랑의 마음,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개척 사역과 목양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소서!
  • 주님께서 친히 모든 CP와 가족들을 늘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날마다 새 힘을 더하소서! 특별히 코로나 감염, 부모의 소천, 배우자와 자녀들의 건강 문제, 재정적 압박 등 여러 가지 시련 중에 있는 CP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으로 늘 승리하게 하소서!
  • 친척, 사회, 정부의 박해와 압박, 코로나 사태의 어려운 상황 등 주위 형편과 사정에 결코 굴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늘 먼저 구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사역 위에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풍성한 열매들을 허락하소서!
  • 이들의 귀한 희생과 섬김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들을 위한 더 많은 중보기도 동역자들과 재정 동역자들을 세워 주소서!
SWM 선교회 및 동역하는 교회와 개인을 위한 기도
  • Holy Wave Makers (2021.7.1~2022.6.30) 사역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터키,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에서 복음전파와 영적회복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섬길 4명의 청년선교사 (오상준, 강남, 유서영, 김영경)를 축복하시고 보호하시고 늘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 터키의 재단 (VAKIF/바크프)의 남은 정부 승인 과정과 터키 이스탄불 M센터 (허강한/강안나), 조지아 바투미 M 센터 (팀/사라), 이라크 도훅 M 센터 (패트릭/안순자), 이집트 카이로 M센터 (허드슨/노뵈뵈), 그리스 아테네 M센터 (데이빗/레이첼)를 통해 현지인이 훈련되고 교회개척운동이 더 강력하게 일어나게 하소서!
  • 2021년 4차 교회개척리서치트립 (10/22~10/30)이 주님의 특별하신 간섭과 인도하심 가운데 진행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교회 목회자 및 선교담당자들과 중보기도 동역자들이 참여하게 하소서!
  • KBP (Kingdom Business Partners) USA 이사들이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교회개척기금 (CPF)을 잘 모금, 운영, 집행하게 하시고, 현지 교회와 성도들이 자립할 수 있는 BAM 전략과 방법을 잘 개발하게 하소서. 한국에도 KBP가 세워지고 새 이사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 SWM 선교회에 허락하신 부르심과 사명 (연합기도운동, 교회개척운동, 선교적교회운동)을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 가운데 겸손하고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소서! 모든 동역자들의 가정과 사업과 교회를 축복하시고, 특별히 육신의 연약함 중에 있는 동역자들을 온전히 치유해 주소서!
마지막 때 영적 대추수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기도
  • 난리와 난리의 소문, 나라와 민족이 서로 대적하며 마지막 때의 징조가 일어나는 것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깨어 기도하고 마지막 시대 영적 전쟁에서 온전히 승리하게 하소서!
  • 미얀마에 정의와 평화가 회복되게 하시고, 최근 심한 코로나 감염으로 고통받는 인도, 동남아, 남미를 기억하시고, 투크르창 7민족과 22개의 아랍연맹 국가들, 특별히 미전도종족들 가운데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시고 인터넷과 여러 사역들을 통해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게 하소서!
  •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의 악한 정권이 속히 무너지게 하시고, 지하교회 성도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사 그 땅에 복음이 전파되며 참 자유와 공의가 속히 임하게 하소서!
  • 미국과 한국을 긍휼히 여기사 교회들이 깨어나고 각성하게 하시고, 세계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이 되게 하소서!
  • 예루살렘의 평화 (시 122:6)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각성과 영적 회복이 속히 이루어지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 (롬 11:25)가 속히 채워지게 하소서!

2021. Fal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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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이세웅 금향로 편집인

이번 가을호의 주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당연한 주제가 금향로 2021 가을호의 주제로 결정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주신 약속인 열방의 구원은 제사장 나라로 부르신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는 듯 보였다.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인 서기 1세기 로마제국의 식민지에 태어난 예수님은 제국의 왕으로 오시지 않고 천국의 왕으로 오셨다.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선포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이번 호에서는 이스라엘을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되는 신학적 이슈들을 다루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은 구원을 받았는가에 이번 호의 목적이 있다.

1974년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예수를 믿는 유대인을 ‘메시아닉 쥬’라고 부른다는 말을 교회에서 듣게 되었다. 필자는 그때부터 메시아닉 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로부터 30년 후에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지역에 있는 메시아닉 쥬 교회를 4년 (2004년–2008년)동안 섬길 기회가 있었다.

30년 전부터 관심이 있었기에 방문한 Beth Ariel Fellowship (BAF, E.V. Free Church)의 첫 주일에 장로님의 환영 인사가 나를 경악하게 했다. “Welcome Jew & Gentiles! (유대인과 이방인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 예배에 참석한 100여 명의 성도는 대부분 메시아닉 유대인이었고 이방인은 3~4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었다. 유대인인 그들 입장에서 나는 이방인이 분명한데 왠지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이고 나는 이방인이 맞는데, 지난 몇십 년 동안 영적인 이스라엘이라고 배워온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유대인인가, 영적 이스라엘인 이방인인가?

이런 이유로 가을호의 주제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결정하는 데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SWM 선교공동체는 열방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천국 복음이 어디까지 전파되었는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400일 동안, SWM 선교회는 SWM과 동역하는 운영이사 교회들 및 기도동역자들과 함께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400 미전도종족을 위한 기도운동을 진행했다. 미전도종족의 이름을 매일 부르고 기도한 후에 2020년 11월 8일 “400 미전도종족을 위한 온라인 연합기도회”를 주님께 올려드렸다.

가을호의 짧은 지면을 통해 구원받은 모든 열방의 소식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와 관련된 더 자세한 정보들은 세계선교 공동체에서 가장 신뢰받는 죠슈아 프로젝트(Joshua Project)나 미완성과업 선교회(Finishing The Task) 웹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가을호에서는 유대인의 구원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 중에 SWM 선교회가 다룰 수 있는 부분에 한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귀한 분들이 정성을 다해 글을 보내주셨다. 물론 이번 호에 실은 글들이 모두 SWM 선교회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니며 SWM의 신학적, 선교적 입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주제를 마음에 품고 글을 쓰신 분들의 입장에서 글을 읽어 주시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같은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는 중동의 오래된 우물들인 정교회 그리고 정교회가 자리 잡았던 국가와 지역에서 현재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귀한 글들을 받았다. 보안이 필요한 지역의 사역자들이 써 주신 귀한 글들을 통해 현재 하나님의 추수 밭에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진영 선교사 (SWM 국제/미국 대표, 발행인)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용서와 화해”라는 제목으로 중동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대인과 반유대인의 대립에 대한 성경적 해결 방안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다.

김성간 목사 (SWM 리더, 운영이사)는 리더십 칼럼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을 통해 영원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인류의 구속사 안에서 완벽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기 원하는 글을 잘 적어 주셨다.

메시아닉 유대인 루이스 라피데스 목사/랍비는 편집인이 다니던 BAF의 담임목사였다. 지금은 은퇴하여 캘리포니아에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10대부터 경험한 예수에 대한 갈등을 성경에서 해답을 얻기까지의 본인의 간증과 메시아닉 유대인의 현황에 대해 “벤허에서 예수로”라는 제목으로 나누어 주신다. 한인 공동체에는 처음 소개되는 간증이니 유대인이 어떻게 예수를 믿는지 그 이야기를 들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어떤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는 다비드 프리드만 랍비는 예루살렘 킹오브킹스 칼리지 학장으로 은퇴하였고 예루살렘 다르체이 노암 회중의 랍비로 섬기고 있다. 3개의 이스라엘-아랍 화해기도 그룹의 회원이다. 다비드 프리드만 랍비는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의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 이후 일어나고 있는 유대인 회심자들에 대해 그리고 2021년 현재 이스라엘에 사는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귀한 글을 보내주셨다.

왕의 귀환 선교회의 최에스라 선교사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부르심”이란 제목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 바울이 말하는 비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 접붙임의 관계, 한 새 사람의 관계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유대인 구원을 위한 전략과 도전으로 결론을 맺는다.

영국의 게일 딕슨 선교사는 2010년 에베소 연합기도회 강사로 참가하여 기도회 한 세션을 인도했다. 그때 게일 선교사는 새로운 일을 계속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동의 오랜 우물들인 정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자고 기도회를 이끌었다. 이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 게일 선교사에게 물어보았다. 이집트 콥트의 우물, 구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소말리아와 예멘)의 오래된 우물들에서 현재 어떤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지 생생한 증언을 듣는다.

Gateway 신학교의 필립 O. 홉킨스 교회사 교수가 2018년에 쓴 중요한 논문을 번역해서 싣도록 허락받았다. 논문의 제목은 “이란의 민족 기독교인: 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이다. “기독교가 이란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논문은 구약과 초기 교회사에서 이란과 모든 기독교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이란과 이 지역에 현저한 영향을 남긴 두 민족 기독교 그룹인 대 이란의 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의 기독교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였다. 이란의 지하교회의 부흥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그 기초가 놓였었는지 이해하고 이란의 부흥을 통해 중동과 이슬람권의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게 된다.

터키 삼순의 이란인 교회 지도자인 샤힌 샤하비 SWM 교회개척자는 이란의 지하 가정교회와 이란의 기독교 부흥에 대해 기록해 주고 있다. 샤힌 사역자의 개인 구원 간증을 읽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개척자로의 신실한 삶을 이해하게 된다. 삼순 교회의 복이다.

터키 삼순의 이라크인 교회 지도자인 아르칸 닛산 슬로피 SWM 교회개척자는 이라크에서의 개인의 삶과 함께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나눈다. 이라크의 가톨릭과 갈대아 정교회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지금은 터키의 삼순을 근거로 주변 도시들에 이라크 난민교회들을 세워가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아프간 난민 사역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박 선교사가 처음으로 글을 보내왔다. 그동안 주로 사진과 영상으로 사역을 전해왔는데, 이번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아프간 난민들을 중심으로 난민 사역과 교회개척 사역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그리스에 도착한 이란과 아프간 난민들을 섬기며 그들을 예수의 제자로 만들어나가는 데이비드/레이첼 박 선교사 가정의 사역을 통해 미디어 난민 사역자들이 양성되고 있고 교회가 개척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표적과 지혜를 통하여 온전한 연합을 이루도록 기도를 부탁한다.

터키 앙카라의 쿠르투루쉬 교회의 이산 외즈벡 목사의 개인 간증이 SWM 공동체에 소개된 적이 없어서 이번에 특별히 부탁하였다. 외롭고 슬픈 소년에서 하나님을 만난 청년 이산은 수도 앙카라에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매주 버스를 타고 8시간이 넘게 걸려 예배를 드리러 갔다. 목사가 되고 터키와 열방을 향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이산 목사 가정의 헌신을 통해 터키 81개 주에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져 가고 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청년 이산은 목사가 되고 난 후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 30:11-12)

리사 박 목사는 릭 워렌 목사가 이끄는 Finishing The Task (미완성과업 선교회)의 글로벌 전략 책임자이다. 10만 명 미만의 미전도종족에 집중하고 있는 FTT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 2,000주년이 되는 2033년까지 소명으로 받은 AD2033 비전을 나눈다. 2033년까지 모든 종족과 지역에 성경 (Bible)과 신자 (Believer), 교회 (Body of Christ)가 있게 하자는 것이 AD2033의 3B 비전이다. 이를 위해 전 세계 선교 단체와 교회의 노력을 조율하기 위한 흥미진진하고 도전이 되는 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도 함께 마지막 왕의 대로를 수축하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리사 박 목사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위해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젊은 세대를 동원하는 사역을 열정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케빈의 성경이야기는 금향로가 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뀐 2020년 겨울호부터 연재되었다. 연재물을 잘 싣지 않는 금향로 계간지가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를 싣는 이유는 이 글이 바울의 일인칭 스토리텔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약의 주 무대인 현재의 터키에서 살아가고 있는 케빈 사역자가 사도 바울의 마음으로 써나가는 글은 독보적이며 귀중하다. 네번째 싣는 이번 글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을 배경으로 한다. 이전 호의 글은 아래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globalupm.net/webzine/magazine/magazine_2021_2nd.html

특별 기고

오래된 우물 다시 파기

게일 딕슨 (네이션스 트러스트 기독교 자선 이사)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각 나라 가운데 아직 성취되지 않은 귀한 언약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은 모든 나라에 존재하지만, 중동 지역을 향한 언약은 특별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말씀에 따라 드리는 기도는 결코 공허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이 글에서 우리는 아직 말씀이 성취되지 않았지만 명확한 약속을 가진 세 나라, 이집트, 에티오피아 그리고 에리트레아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구약 성서에 기록된 구스 지역이다. 두 국가를 한 지역으로 보고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구스에 허락하신 두 가지 언약을 연구하려고 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사 19:21)

고관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시 68:31)

우리가 붙들어야 할 이 언약들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이집트,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세 지역 모두 1세기부터 교회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 선포했지만, 영광스러운 언약의 성취는 아직 목도하지 못했다.

다시 우물을 파자

©Cacahuate, French translation by Joelf,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창 26:18)

믿음은 소망과 사랑처럼 영원하다. 지난 2천 년 동안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중동에는 항상 믿음의 신실한 자손들이 있었다. 수 세기간 축적된 기도를 상상해보자. 어떤 사람들은 옛 아브라함처럼 그들이 기도한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세대를 위한 기도였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 11:4)

우리는 이 나라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기도하고 행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 우물을 다시 파내야 한다. 이들 지역 일부 고대 교회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집트,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를 살펴보지만 이러한 원리는 영적인 역사를 가진 터키와 그 외의 나라에도 적용된다. 나는 이 지역의 역사 전문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한 사람으로 글을 쓰려 한다.

이집트의 콥트 우물

콥트교도들은 그들의 교회가 최초의 사도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마가가 복음을 알렉산드리아에 전파했고, 최초의 콥트 교황이 되었다고 여긴다. 콥트인들은 수도원 생활 양식의 창시자이다. 주님과 함께 더 깊고 의미 있는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시나이반도로 떠나곤 했다. 그들은 사막 교부로 알려졌 있으며, 그들 중에는 사막 교모 (여성)도 있었다. 그들의 삶과 글은 수 세기 동안 엄청난 영적 영향력이 있었으며, 존 웨슬리 같은 부흥 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선을 행하는 이들의 추종자들이 공동체를 형성했다. 수도원은 세계 곳곳으로 퍼졌지만, 중세 시대에 많은 곳이 부패해 권력을 남용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순전했다.

대부분의 고대 교회와 마찬가지로 콥트 교회는 수 세기 동안 비성경적인 전통과 법도를 많이 세웠다. 이로 인해 많은 곳에서 참된 영적 생명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몇 몇 지역에서 아름다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아랍의 봄 당시 많은 크리스천은 초교파적으로 하나가 되어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이집트에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평화로운 혁명이 일어났다. 특히 2011년 11월 11일에 있었던 일은 주목해볼 만하다. 서로 다른 교파 출신인 7만 명의 신자들이 콥트 동굴 교회 (Coptic Cave Church)에 모여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무슬림 국가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부르심 대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1)

동굴 교회는 쓰레기 도시로 알려진 카이로의 한 지역에 있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대다수의 사람이 공공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8)

새로운 생명

콥트 교회가 항상 개신교를 반겨왔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한 콥트 수도사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의 제자 중 다수는 학생이었다. 많은 이들이 다시 태어났고, 이는 콥트 교황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은 교회의 무거운 전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 수도사는 열성 콥트교도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심하게 폭행당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다쳤다.

교황은 그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가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교회에서 제명당하는 것을 결정하라고 했다. 그는 후자를 택했고 대다수의 젊은 제자들이 그를 따라나섰다. 기성 기독교 교파만을 용인했던 무슬림 정권 아래서 더 이상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아파트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임 중 하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모임은 사람들로 매우 붐볐는데 예배 중에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불편한 공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는 뚜렷했으며 예배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됐다. 어린 아이들도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혔다.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육신의 치유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더 큰 공간이 필요했고, 일부 용감한 성직자나 목회자들이 교회를 빌려주었다. 당국에 이 사실을 들키게 되면 그들의 교회 역시 폐쇄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공간을 내어줬다. 한편, 수도사였던 그 공동체의 지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카이로에 있는 가장 큰 빌딩을 빌려 집회를 위해 문을 열라는 음성을 들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들은 집회에 대한 허가가 없었다. 공간을 대여하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명하신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다.

정확한 수를 알 순 없지만 수천 명의 사람이 그 집회에 참석했다. 일부는 무슬림이었는데, 무슬림이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그들은 베일이나 겔라비야를 벗고 기독교인인 척을 했다. 온종일 복음이 선포되고 수백 명의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다. 또한 예배를 드리며 많은 이들이 치유 받았다. 저녁이 되고 계속해서 몰려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그들은 몇몇 그룹으로 나뉘어야 했다. 이 사역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진다. 그들은 집회를 통해 기독교인과 무슬림 배경의 사람 모두가 구원받는 것을 보고 있다.

핍박받는 삶

일부 기독교 교회와 공동체, 성도들은 엄청난 값을 치르며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MBB (무슬림 배경을 가진 회심자)의 희생은 더 크다. 많은 무슬림 가정은 자신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이슬람교를 떠난다면 그들의 명예에 오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슬림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그 자체가 불법일 뿐만 아니라 국가보다 가족으로부터 더 큰 보복을 받게 된다.

다음은 몇몇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다. 안전을 위해 가명이 사용되었다.

아이샤는 그녀의 기독교 신앙 때문에 체포되었고, 다른 성도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경찰서에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경찰 서장에게는 신장 이식이 필요한 조카가 있었으며 아이샤의 조건이 일치했다. 그들은 아이샤의 신장을 떼어간 후 그녀를 석방했다. 아이샤가 의지할 수 있는 정의는 없었다.
파티마가 신앙을 갖게 되자 파티마의 남편은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녀는 빈털터리로 남았다.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세 명의 자녀도 만날 수 없게 됐다. 모함마드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의 이웃들은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그를 주님이 구해주셨다. 미나의 남편은 미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녀는 극적으로 탈출해서 지금 은신처에서 살고 있다. 말리카는 크리스천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구속되었다. 계속된 항소와 많은 기도 끝에 그녀는 징역 25년에서 3년으로 감형받았다.

몇몇 은신처들은 급습당했으며 그 결과 많은 MBB와 기독교 조력자들이 체포되었다. 몇 주후 경찰은 한 21세 여성을 이전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가족에게 돌려보냈다. 이후 그녀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없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점점 더 많은 무슬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다. 공동체가 늘어나고 제자화는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

기독교 메시지를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무슬림들의 갈급함은 미디어를 통해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TV 프로그램부터 소셜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매체에 수많은 질문이 넘쳐나고 있다. 여러 팀이 이 프로그램에 연결된 무슬림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하고 있다.

사명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사 19:24)

이집트, 이스라엘과 앗시리아 (현재 터키 동부,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상당 부분)는 열방의 복이 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 수십 년간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 선교팀들을 파송했다. 이집트인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드라마나 많은 TV 프로그램이 이집트 아랍어로 방영되기에 다른 아랍인들도 그들의 언어를 쉽게 이해한다.

순교자들

이집트는 기독교 역사상 많은 순교자를 낳은 나라 중 하나다. 2015년에 21명의 콥트교도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리비아에서 참수당했다. 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집트의 우물을 다시 파는 기도

우리가 이집트를 위해 중보할 때, 다시 파야 할 오래된 우물과 새로 파야 할 우물이 있다. 하나님의 언약을 두고 기도하자. 여전히 이집트 인구의 90%는 무슬림이지만 하나님은 이집트인들에게 자기를 알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사 19:21)

  • 콥트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지금 이 시간에도 그곳에는 끓어오르는 무엇인가가 있다. 살아있는 생수가 솟아나도록 기도하자! 주님을 향한 깊은 갈망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하자.
  • 이 세상을 따르는 삶을 거부하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
  • 무슬림 배경 회심자 (MBB)들을 위해 그리고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위해 기도하자.
  • 미디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도록 기도하자. 이집트 아랍어가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예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 이집트를 선교 국가로 세우겠다 기록된 말씀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자.
  • 역사 속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심겨진 복음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자.
  • 하늘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증인들의 큰 구름에 우리의 믿음을 더하자.

구스의 오래된 우물

성경 속 구스는 현대의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이며 예멘 지역도 포함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에덴동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구스를 향한 가장 오래된 언약이 선포되어 있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 2:13)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 번성하고 모든 창조된 세상에 에덴동산을 세우도록 부름을 받았다.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이 네 개 있는데, 비손과 기혼,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이다. 네 강은 각기 다른 땅으로 흘렀고 각 강의 이름에는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었다. 그 강들은 생수이신 성령님의 성품을 나타내며 각각 번성, 돌파, 신속과 결실을 뜻한다. 구스 땅을 가로질러 흐른 강은 돌파 또는 돌파구를 뜻한다. 구스가 하나님께 손을 뻗을 것이라는 시편 68의 약속을 보면, 현재 전쟁에 찢기고 기근에 시달리는 이 땅에 소망이 있다.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시 68:31)

하나님의 말씀은 이 나라를 이끌 가장 위대한 오래된 우물이다. 그가 선포한 일들은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며 선포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구스 지역에는 이집트처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일부가 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4세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최초의 기독교 국가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더 이전의 시대에는 유대교의 영향이 있었고 많은 구스 사람이 유대교를 믿었다. 이스라엘과 그들의 관계는 시바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했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중동 지역 국가 중 유일한 기독교 국가이다. 이들은 7세기에 있었던 이슬람의 침략에 저항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들은 티그라이 지역에서 영토 분쟁 중에 있다. 이곳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 우리의 적인 사탄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원하고 있다.

에리트레아
©Peter Fitzgerald, amendments by Burmeseday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교회에서도 흥미진진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에리트레아를 집중적으로 다루려 한다. 에리트레아는 지난 역사 속에서도 또 현재에도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명목상의 기독교와 무슬림 배경 모두에서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엄청난 박해를 당하고 있다.

국가는 현재 전체주의 독재 정부 체제이며 자국민과 교회를 엄격히 통제한다. 터와흐도 정교회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회이지만, 총대주교 아부네 안토니오에게는 예식 진행 권한만 부여되어 있다. 그 외 허가받은 교회는 가톨릭과 복음주의 루터 교회뿐이다.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곳에는 강력한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새 생명을 얻고 있다. 부흥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은 오순절 (펜테코스트파)에서 파생된 ‘펜타이’(2)라고 불린다. 이들 공동체는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했으며 많은 이들이 투옥되었다.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곳 중에는 군대도 있다. 모든 에리트레아 젊은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다 군대에 가야 하며 종종 무기한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된다. 환경은 열악하며 위험한 일들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복음의 소망은 퍼져 있다. 밀반입된 성경 말씀들이 군인들 사이에 전해지며 용감한 전도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믿음 때문에 치러야 하는 희생은 엄청나다. 일부 지도자들은 6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체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기도가 널리 퍼져 있으며, 지난해 수백 명의 수감자가 석방되는 기적을 목도했다.

박해의 파도가 있기 전, 2000년경 시작된 에리트레아 국가 전역에 복음을 전하려는 엄청난 시도가 있었다. 에리트레아 성서 공회에서는 정교회의 허락을 받고 성경을 국가 전역에 배포하였다. 하지만 1998년, 에티오피아와 인접한 국경 지대에서 전쟁이 시작됐고 그 사역은 중단됐다.

우리 원수인 사탄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중요성과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을 알고 있다. 전쟁과 기근과 박해의 향연이 원수의 계략이라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그러나 원수는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없다. 불길을 지난 교회는 일어나 그 땅과 열방을 향한 그들의 소명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선교사를 양성해 소말리아와 예멘 등의 국가에 파송하고 있다. 이곳들은 다른 민족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들이다.

구스 지역의 우물을 다시 파는 기도

  • 성령께서 구스 지역의 고대 교회들 가운데 일하시길 기도하자.
  •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고, 위생이 열악한 환경에 놓인 박해당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 많은 이들이 40도까지 오르는 날씨에도 철제 컨테이너 속에 갇혀 있다.
  • 그 땅에 뿌려진 성경 말씀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음성으로 들려지도록 기도하자.
  • 이 땅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을 두고 기도하자. 믿음으로 그분의 언약을 선포하자.
  • 구스 지역 교회의 돌파를 위해 기도하자. 그들이 중동과 열방에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기도하자.

우물물아 솟아나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민 21:17)

우리는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성경의 예언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성취될 언약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전쟁과 지진, 박해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가지고 간구하자. 우리의 부르짖음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5:28)

게일 딕슨은 월드 호라이즌스(World Horizons)와 현재 그녀가 이끌고 있는 네이션스 트러스트 (Nations Trust)에서 거의 40년 동안 기독교 선교 사역을 해왔다. 이 글의 에리트레아 정보에는 테메 아스게돔 (Teme Asghedom) 자매가 도움을 주었다.

  1. 이 멋진 광경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dPhTEYqinVQ
  2. P'ent'ay.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사회의 모든 복음주의 기독교 교단과 조직을 지칭하는 말이다.

파트너 칼럼

예수께서 우리가
세상을 뒤흔드는 것을 도우십니다!

이산 외즈벡 목사 (터키 쿠르투루쉬 연합교회 대표)

쿠르투루쉬 교회에 대해 나눌 수 있어서 매우 영광입니다. 우리는 SWM 선교회와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맺어왔고, 이것은 저에게 정말 큰 특권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제 삶과 교회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슬픈 소년

저는 이스탄불의 명목상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 저는 외롭고 슬픈 소년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저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작은 작업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제 상사는 이슬람을 실천하고 있던 무슬림이었고 제가 헌신적인 무슬림이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다섯번씩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저는 제가 여전히 불행하며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정 형편은 더 나빠졌습니다. 저는 이슬람에 대한 제 믿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충실한 이슬람 소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알라는 저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제 인생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1980년 이전에 터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 사이에 일종의 ‘내전’이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공산주의 집단이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딘가에 속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찾던 사랑과 기쁨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1980년에 체포되었는데, 이미 30번 이상 구금되었었고, 3번의 작은 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저는 젊고 거친 청년이었습니다. 이 모든 모험이 끝난 후에도 저는 여전히 불행했고,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대학 시험을 보았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저는 앙카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신을 찾기 위한 여정

1980년 9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학교에 입학한 지 3일 후였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시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어두운 시절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앙카라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려고 했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불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버스 중앙에는 다른 모든 것보다 밝은 불빛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구름에 닿아 있는 불빛 속에는 돌기둥이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나는 하나님이며, 나는 존재한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실제적이었고 그 순간 저는 신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누구였을까요? 이러한 경험을 한 후 저는 알라에게 무슬림의 기도로 ‘자신’을 제게 드러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라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알라가 나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라면, 왜 내가 어려울 때 혹은 내가 그에게 기도했을 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목소리는 알라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신은 누구였을까?’ 이때부터 신을 찾기 위한 저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꾸란을 두 번 읽었고 이슬람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알라가 저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비롭고 용서하는 신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터키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신을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뉴에이지 동아리를 몇 군데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공한 것은 진짜 신이 없는 종교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도서 박람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호기심으로 성경협회 가판대에 있는 성경을 샀습니다. 저는 유대인의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레위기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내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대 터키어 번역이 없었기 때문에 책의 언어가 저에게 매우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흥미를 유발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책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때는 성경 안에 두 권의 책이 들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신약성서를 사기 위해 도서 박람회에 갔습니다. 책을 다 읽고난 뒤, 저는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몇 달 후, 저는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었습니다. 로마서를 다 읽었을 때, 저는 성경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성경을 믿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종류의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기 위해서 많은 질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앙카라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책에서 성경 협회의 주소를 찾아 질문을 써서 보냈습니다. 한 형제가 제게 응답해 주었고, 저는 주말마다 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스탄불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도시를 오가는 것이 힘들었고 교회에서 문화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이스탄불 교회로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앙카라에서 8년 동안 다른 크리스천을 만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불렀고 친구들은 제 새로운 믿음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1990년에 저는 지인으로부터 복음주의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앙카라에 있는 유일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제 여자친구도 저와 함께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1년 뒤 교인들 및 손님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를 한 후 그녀는 예수를 그녀의 삶에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지 않아 저는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신학적 배경과 국가적 배경에서 온 세 명의 외국인 사역자가 개척한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희생하며 함께 일하기로 했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1세대 지도자들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유산은 교회가 개인의 신념이나 의견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구성원입니다. 저는 결혼하던 해에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작은 모임에서 네 명의 다른 장로들과 함께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저는 터키 복음주의 연합 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구원교회의 시작

앙카라 교회는 성장의 고통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변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는 리더십 구조의 변화가 포함되었습니다. 1996년 2월, 저는 우리 작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그 역할을 맡을 목사로 선출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름을 포함한 여러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앙카라 독립 터키 개신교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그 회의 이후 앙카라 쿠르투루쉬 (구원) 교회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독립적인 교회가 아니고, 교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교회는 상호의존적인 몸과 같은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 자체로 모든 구성원이 그리스도의 몸의 부분이며, 하나의 몸으로 여겨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속한 교파나 교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교회는 하나의 커다란 몸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교회와 무관한 단어를 이름에서 지웠습니다. 개신교(protestant)라는 단어도 우리를 완전히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항의하고 싶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민족적인 강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쿠르투루쉬 (Kurtuluş, 구원을 뜻함)는 우리 동네 이름이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의 위치에 따라서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쿠르투루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쿠르투루쉬 (구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앙카라 쿠르투루쉬 교회의 목사로 선출된 날, 저는 제 비전을 성도들과 공유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제 주된 은사라고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책임을 다하고 싶었던 소명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새로 선출된 목사로서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 앙카라 안팎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부르심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사도행 전 1:8의 유명한 구절을 표어로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앙카라는 우리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우리는 앙카라에 적어도 하나의 다른 교회를 개척할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같은 다른 지역에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저는 첫번째 설교를 마치면서, 우리 주님이 보내 주시는 여러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35명의 교인이 저와 완전히 뜻을 같이했는지, 아니면 ‘그는 새로운 목사야, 배워야 할 게 많아’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주님께서 주신 비전은 교회의 크기보다 더 컸습니다.

교회개척과 성장

2년 안에 우리 신실하신 주님은 앙카라에 다른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98년 우리는 한 가정을 아다나 지방으로 파송해 그곳의 작은 모임을 목회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터키 교회에 의해 보내진 첫 번째 선교사 가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싶었지만, 그 분야에 경험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외국인 사역자들과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기꺼이 우리와 함께 일했지만 아무도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2003년, 우리는 터키에서 주님의 추수 일꾼으로서 제자들을 훈련하기 위해 사역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터키의 다른 교회에서 온 학생들을 받아들였습니다. 필리푸스 사역 학교는 여전히 같은 비전을 가지고 터키 교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2007년 터키 동부에 있는 우리의 모임 중 하나가 다섯 명의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을 포함해서 세 형제가 그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다음 해에도 몇몇 다른 위협들이 있었지만 교회의 피해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흔들렸고 우리의 구조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국 이사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성장하는 몸은 더 나은 구조를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쿠르투루쉬는 성장과 함께 몇몇 위대한 리더들의 집이 되었고 저의 주요 역할은 모든 지도자의 조력자가 되는 쪽으로 조금씩 옮겨갔습니다. 우리는 터키와 열방의 복음화에 대한 쿠르투루쉬의 큰 비전에 부합하는 이들의 비전과 꿈을 이루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0년 초에 라디오 방송국을 시작했습니다. 라디오 쉐마는 현재 24시간 동안 복음을 전하는 4개의 다른 지방 방송국을 가지고 있으며, 약 천만 명의 터키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라디오부터 시작해서 미디어는 매일 점점 더 우리의 삶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여러 유튜브 채널과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리푸스 사역 외에 우리는 세 개의 온라인 훈련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중 두 개는 제자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고, 한 개는 리더십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세 개의 온라인 학교를 통해 2021년 총 100명의 사람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산목사와 SWM 리더들

2009년 우리는 이웃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교제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앙카라 쿠르투루쉬 교회에서 수프 키친을 시작했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수프 키친의 성공 이후, 우리는 매주 목요일 저녁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그곳의 노숙자들에게 병아리콩과 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이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의 IS 사태와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들이 버스 정류장에 몰려와 살기 시작하자 더 큰 사역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병아리콩과 쌀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동안 난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부 이라크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우리 교회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또 다른 사역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앙카라 난민 사역 (ARM)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지역의 난민 사역들도 이어졌습니다. 현재 앙카라, 찬크르, 크륵칼레, 에스키쉐히르, 이스탄불, 악사라이에 아랍어 교회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터키와 이란에 있는 성도들을 섬기는 온라인 페르시아어 교회가 있습니다. 구소련 국가들의 경제 난민들을 섬기기 위한 소규모 러시아어 모임도 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설교는 미개척 지역의 교회 개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26개의 다른 지역에 30개 이상의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우리가 다른 나라에 첫 번째 장기 터키 선교사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2019년 앙카라의 두 젊은 터키 여성이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들은 지역 침례교회에서 청소년 지도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배 영상, 간증,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 또 다른 부부가 몰도바로 이주하여 터키 소수민족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조지아의 바투미에서 다른 사역자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동역자로서 SWM 선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SWM과 쿠르투루쉬는 터키의 미개척 지역과 그 너머의 복음화에 대한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SWM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사역을 계속 진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쿠르투루쉬뿐만 아니라 터키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형제로서 협력하는 SWM 선교회와 동역자들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매년 우리는 적어도 두세 개의 미개척 도시에서 사역을 시작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작지만 관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맡고 있는 일은 우리보다 더 큽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원을 초과하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수 밭에서 우리와 함께 걸으며 기도하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오실 우리의 왕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전례를 따라 다시 한번 “천하를 어지럽게” (행 17:6) 할 때 우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다윗의 고백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신실하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b)

어린 시절 내내 저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절망적이고 슬픈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때, 저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잠시동안 외롭거나 상처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희망이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기쁨, 나의 힘은 예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의 삶은 외로움과 실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다윗처럼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 30:11-12)

발행인 칼럼

이삭과 이스마엘의 용서와 화해

김진영 선교사

2021년 5월 10일부터 21일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11일간 전투가 있었습니다. 동예루살렘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 6가구의 퇴거에 대한 이스라엘 법원의 결정이 있었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라마단 기간 중 이슬람의 황금의 돔 모스크에서 일어나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한 것이 이 사태의 원인이었습니다. 5월 10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기 시작하고, 이스라엘도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면서 충돌이 격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은 아동 61명을 포함해 232명이 사망하고 1,9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이스라엘에서도 아동 1명을 포함한 12명의 사망자와 3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5월 21일 양쪽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분쟁이 그치게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분쟁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중동 지역의 화약고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과 아랍민족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 테러와 전쟁은 1949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이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및 민족에 관해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으며,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성경은 이미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의 갈등, 나아가 그들 후손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 미움과 분노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1년 5월 비상사태가 선포된 이스라엘 로드 지구©Andrew Shiva,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로 민족을 이루며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10년을 기다렸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에 아내 사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몸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86세에 아들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 비록 본처 사라를 통한 아들은 아니지만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스마엘로 인해 아브라함에게는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3년의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 99세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다음 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그의 나이 100세에 이삭이 태어났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마엘의 나이는 약 15세, 청소년의 시기였습니다. 이복형제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좋아하고 사랑했을까요? 14년 동안 아버지 아브라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스마엘에게는 동생 이삭이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이 이삭에게 향하는 것과 자신의 것이 될 줄 알았던 아버지의 모든 재산이 사라질 것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이삭을 향한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창 21:9-10)

충돌이 있었던 성전 산의 알아크사 모스크 ⓒ Andrew Shiva,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성경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고 말합니다. 개역 한글 번역은 ‘희롱하더라’로 되어 있으며, 영어로는 ‘mocking’으로 표현됩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로 말하면 육체적 학대 (physical abuse)입니다. 사라는 그 장면을 보고 엄마의 직감으로 이스마엘이 내 아들 이삭을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당장 내쫓으라고 얘기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요구를 듣고 아들 이스마엘의 일로 심히 근심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2-13)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에 어깨에 메어주고 냉정하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어 쫓아버립니다. 15년 동안 함께 지낸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엄마인 하갈에게 빵과 물 한 가죽부대만 주어 쫓아내는 냉정한 아버지가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당대에 큰 부자였으며 20년 전 그가 데리고 있는 용사 318명을 데리고 다섯 왕과 싸워 이길 정도로 강력한 힘과 재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는 그가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보낼 때 옛정과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소와 양과 염소 등 가축 수 천마리를 주어 멀리 가서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배려해야 마땅하지 않은가요? 빵 한 조각과 물 한 가죽부대를 주어 광야로 내쫓는 것은 결국 광야에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는 그날 밤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장차 이삭을 통한 후손, 그리고 메시아를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데 이스마엘이 걸림이 될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정과 사랑을 끊어버리고 이스마엘을 죽여야 하는 아브라함의 고통과 아픔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침내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고 죽게 되자 방성대곡을 합니다. 그동안 사랑받고 함께 지내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의 엄마마저 버림받아 죽게 된 아들 이스마엘의 슬픔과 고통, 분노와 저주가 담긴 그 울부짖음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 (창 21:17-18)

하나님께서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창 21:2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는 오늘날의 이스마엘 후손인 무슬림과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의 갈등과 미움, 분쟁과 증오가 수천 년 동안 이어질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이스마엘을 광야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셨고 그로 큰 민족을 이루시고 12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운언약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불신앙과 불순종 가운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과 약속은 영원하며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마엘과 그 후손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이스마엘 후손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고 나아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마엘 후손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허다한 낙타, 미디안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아들)과 에바 (미디안의 아들)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그두라의 아들인 욕산의 아들)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아들)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 (이스마엘의 아들)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사 60:6-7)

성경은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고, 그의 아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장사를 지냈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창 25:7-9)

그동안 이스마엘은 동생 이삭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삭 때문에 자신의 꿈과 비전이 무너지고, 청소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자신이 버림받은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 그를 향한 미움과 증오가 가득 차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75년의 세월이 흘러 이삭의 나이 75세, 이스마엘의 나이 89세 때 이스마엘과 이삭은 아버지의 장례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서로를 향한 용서와 화해가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역사의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이 결코 서로 화해하고 용서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국가, 민족 간의 온전한 용서와 화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인 오늘날의 무슬림은 사탄과 악한 영들의 미혹으로 이슬람 종교를 따르고 있지만, 그들은 참된 아버지의 사랑에서 버림받은 불쌍한 영혼들이며 잃어버린 영혼들입니다. 이슬람 종교의 알라는 아버지라는 단어도 없으며,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분노와 심판만이 있음을 꾸란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는 이스마엘의 울부짖음과 같습니다. 참된 아버지의 사랑과 품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는 그들의 울음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들을 미혹의 영으로 사로잡고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저주하게 하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과 나라가 온전히 화해하고 용서하는 그 날이 사탄의 마지막이 아닐까요? 그래서 사탄은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무슬림에게 용서의 복음, 화해의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해하고 막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및 민족 간의 용서와 화해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의 화평의 복음, 용서의 복음, 화해의 복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참된 아버지의 품으로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브엘세바 광야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오늘날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스마엘 후손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직도 메시아를 거부하는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서로 화해하고 축복하는, 그래서 둘이 하나 되는 그날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인간의 지혜와 방법,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리더십 칼럼

이스라엘과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

김성간 목사

전도와 선교는 모든 성도와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이며 대위임령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도와 선교는 불순종에 갇힌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방법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경륜에 참예하는 복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선민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벧후 3:9) - 간절하고 긍휼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는 (빌 2:10-11) - 당신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한 새 사람 (One New Man)’, ‘한 몸’, ‘동일한 시민’과 ‘한 하나님의 권속’으로 만드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달성하십니다 (엡 2:11-19). 이러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과 뜻은 하나님의 영원 (Eternity)이라는 관점에서는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9-10)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속한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 영겁 (Eternity)의 인류 구속사 (Redemptive History) 안에서 그 뜻을 성취해 가고 계신 완벽한 하나님의 경륜 (oikonomia, administration, 엡 1:9; 3:2)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특별히 이 글을 통해 우리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뜻이 이스라엘과 이방의 ‘묘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아가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에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 원합니다.

로마서 9장, 10장,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동시에 아주 간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스라엘과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분의 주권적인 경륜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로마에서 예수를 믿은 이방인들)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스라엘/유대인)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29-32)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친히 오신 후에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요 1:11)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됩니다. 즉, 이방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들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거부하게 됩니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의 거부는 단순히 그들의 완악함과 패역함의 불순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실족으로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인 것입니다 (롬 11:8-11).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기에 (irrevocable/취소 불가능) 하나님께서는 계속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도 당신의 신실하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 즉 모든 사람을 당신의 긍휼하심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계획하신 하나님의 경륜은 이스라엘과 이방의 ‘모든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신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 - 이스라엘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 이 불순종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뿐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 속에는 우리가 교회와 성도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이방의 온 열방과 모든 민족을 불순종에 가두셔서 오직 당신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구원 역사의 과정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구원 역사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첫째, 우리는 이스라엘과 이방, 온 열방과 모든 민족들에게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이스라엘)과 온 유대 (이스라엘)와 사마리아 (이방)와 땅 끝 (이방, 온 열방)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obey, 순종하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전도와 선교는 모든 성도와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이며 대위임령 (Great Commission)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도와 선교는 불순종에 갇힌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방법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경륜에 참예하는 복된 일입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1-15)

우리가 이스라엘과 이방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도 믿지도 못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미련하다고 (고전 1:18, 21) 하지만, 우리는 전도와 선교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방법으로 불순종 가운데 갇힌 열방과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믿어 순종케 (롬 1:5)’하는 사명과 특권과 축복을 받고 누리며 하나님의 경륜에 참예합니다.

둘째, 우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돌리며 예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경륜을 선포한 후에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3-36)

불순종 가운데 갇힌 모든 인생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의 크신 긍휼하심으로, 측량할 수 없는 그분의 깊고 풍성한 지혜와 지식과 판단과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며 예배해야 합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 5:12-14)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으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지상에 남아있는 동안, 그리고 천상에서 영원히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계 7:12)을 고백하며, 오직 삼위일체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세세토록 영원히 예배합니다. 모든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로 그분만을 예배함으로 그분의 경륜에 참예하게 합니다.

셋째, 이스라엘과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그분의 경륜 가운데 이 땅 위에 온전히 성취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방으로, 이방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흐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분의 경륜 가운데 속히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부어지고, 예루살렘이 다시 세워질 때까지 우리는 간절히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잠시 넘어진 이스라엘이 이방 (열방교회)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히 ‘한 새 사람’이 될 때까지 우리의 중보기도는 쉴 수 없습니다.

파수꾼은 쉬지 않습니다. 왕의 대로와 온 열방과 모든 민족의 백성이 주님께 돌아올 길을 예비하며 이스라엘과 이방의 만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을 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사 62:6-7; 10)

이스라엘의 왕,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귀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불순종에 갇힌 이스라엘과 이방의 영혼들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하심 가운데 주님께 돌아오는 영적 대추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뜻이 당신의 완벽한 경륜 가운데 속히 이 땅 위에 온전히 성취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함께 하는 기도와 자세

첫째, 언약과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마 6:10)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대로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언약과 약속의 말씀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우리 기도 가운데 그대로 선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그분의 계획과 뜻이 (하늘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 인류의 역사) 속히 이루어지라고 하나님과 합심하여 선포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능력으로 임하게 하는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사 55:1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신 4:31)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 23:19)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영원이라는 관점에서는 다 성취되었지만 우리가 시간과 공간, 이 땅과 역사 가운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의 말씀들을 속히 성취하시라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임하길 간절히 사모하며 믿음으로 선포하는 기도입니다. 만국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믿음의 순종으로 그 말씀들을 우리 기도 가운데 선포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평안 (샬롬)과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완악함이 부드럽게 풀어지도록, 실족하여 잠시 넘어진 그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그들의 눈을 가린 영적 비늘이 떨어지도록, 그들의 마음에 돌들이 제거되도록, 그들이 죽인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영접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 영적 대추수 가운데 온 열방이 돌아오고 이스라엘 위에 민족적 각성과 회개 (National Awakening and Repentance)가 일어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이스라엘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여기에 나오는, 그리고 구약에서 사용되는 ‘평화’라는 단어는 우리가 잘 알고 사용하는 ‘샬롬’입니다. 샬롬은 그저 전쟁이나 문제가 없는 상태의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 그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국어나 영어로 번역된 ‘평화 (peace)’로는 그 성경적 의미의 절반도 채 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샬롬’이라는 인사보다 더 좋고 축복하는 인사는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명령은 그 땅에서 전쟁과 테러가 멈추라는 차원을 넘어 그들을 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온전히 임하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열방 나라들을 위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나라, 온 열방과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선포하는 나라가 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통한 열방과 민족들의 복음화 (이방인의 충만한 수, 롬 11:25, 마 24:14)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각성과 직결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각성과 회복은 마지막 시대 영적 대추수 및 주님의 재림과 직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그들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 (이방의 모든 민족들)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2, 15)

그러나 너무도 안타깝게 아직까지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마 23:39)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곧은 목이 부드러워지고, 그들의 닫힌 눈이 열리고, 그들의 마음에 돌이 제거되고, 실족해 넘어진 그들이 다시 일어나,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아)로 받아들이도록, 온 이스라엘 위에 영적 각성과 회개가 민족적으로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평안 (샬롬)을 구하는 하나님의 경륜에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셋째,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긍휼하심을 간절히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을 불순종에 가두어 두신 우리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2)

이 긍휼하심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잃어버린 영혼을 보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뜨겁게 흐르는 그분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이 긍휼하심은 우리의 죄악 가운데서도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진노하시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합 3:2). 그분의 긍휼하심은 우리를 심판 중에서도 진멸하지 않습니다 (애 3:22).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하심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애 3:23).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함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분의 긍휼하심을 간구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온 열방과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악과 불순종 가운데 있는 잃어버린 영혼에게 당신의 경륜대로 긍휼하심을 베푸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분명히 임합니다. 우리 자신과 특별히 우리 자녀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 위에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이 넘치도록 임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맺는말

이스라엘과 온 이방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신 하나님의 경륜은 당신의 크신 긍휼하심을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로 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에 참예하게 함입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세워 온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우리로 기도하게 함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의 말씀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합시다. 이스라엘의 샬롬과 회복, 즉 온 열방과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긍휼하심을 간구하며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놀라운 경륜 가운데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 땅 위에 온전히 이루시옵소서!”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특별 기고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의 오늘

다비드 프리드만 랍비

1980년에 예수를 믿는 유대인 신자들의 수는 적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알고 있었고 매년 한 곳에서 만나 일주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후 예수를 믿는 유대인의 수가 많이 증가했습니다. 수백 명뿐이던 숫자가 오늘날 약 1만 5천 명 정도 됩니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별로 많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700여 년 동안 예수를 믿는 유대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적은 수이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미래에 더욱더 많아질 것을 압니다.

교회와 지도자 양성 문제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메시아닉 유대인 연합 ⓒ www.pikiwiki.org.il,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이스라엘에서는 교회가 땅과 건물을 사거나 빌리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도 하지만, 건물 주인이 메시아닉 유대인의 모임인 것을 알면 우리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장소를 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건물에서 모이는 일부 회중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신도 개인의 집에서 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도들의 모임의 규모가 평균적으로 작습니다. 가정 모임은 가르치고, 예배하고, 교제하기에 매우 효과적이기에 선호됩니다. 숫자가 적을수록 회원들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필요에 따라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1993년까지 이스라엘에는 교회 지도자를 교육하는 기관이 없었습니다. 1993년에 한 곳이 설립되었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교회 지도자들이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방법,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어떻게 상담할 수 있는지를 배웁니다. 학생들은 또한 성경의 역사, 성경 언어 및 유대 민족의 역사를 배웁니다. 이 모든 과목은 훌륭한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지도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이스라엘 밖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내 교육기관이 메시아닉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경을 연구하는 센터도 있습니다. 이곳도 교육기관과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학습 센터의 목표는 학생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내용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센터에서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요엘, 열왕기상하를 공부했고 이제 막 다니엘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연구는 유대인의 맥락에서 쓰인 성경을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과 관련해 이해를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기회들이 미래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위기와 발전

최근 COVID 위기로 인해 이곳의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만 모였었습니다. 1년 가까이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지금은 성도들이 천천히 대면 예배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COVID로 인해 한동안 모일 수 없었지만, 오히려 이 시간이 교회가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온라인 예배에 참여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각 가정이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COVID 위기와 올해 5월 하마스와의 로켓전인 ‘장벽의 수호자’ (Watchman on the Walls) 작전 중에 기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입니다. 로켓이 이스라엘 중심부를 공격할 때, 전국 다른 지역의 성도들이 대피소에서 숨어 있는 중부 지역 성도들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했습니다. 취약한 지역에 사는 성도들에게 관심과 걱정을 표했습니다. 또한 치열한 전쟁 가운데 영적 지도자들이 몇시간 동안 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을 제쳐두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유대인과 아랍 교회 지도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작년 가을에도 코로나 상황으로 힘들어할 때 이스라엘 성도들과 이집트 아랍 성도들이 함께 긴 시간 기도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이렇게 함께 모이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습니다.

화해의 기도 모임

이스라엘의 모임 중에 유대인과 아랍 신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지지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세 그룹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의 큰 증오, 그리고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가 증가하는 이 시기에 이 세 그룹은 세상의 매우 어두운 부분에서 메시아 예수의 화해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중동 성도들을 이스라엘로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둘러보게 합니다. 여행의 마지막 며칠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됐는지 서로의 간증을 들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매우 격려가 되고, 십여 개국의 중동 신자들을 하나로 연결해 줍니다.

두 번째 그룹은 기도를 위해 매달 모입니다. 이 모임은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와 아랍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깊은 교제 가운데 서로의 일과 전도사역 등을 위해 기도하는 매우 귀중한 시간입니다.

세 번째 그룹은 유럽에 있습니다. 유대인과 아랍 신자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배웁니다. 이 그룹은 규모가 크며, 그들 가운데 화해가 이뤄지는 일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과 아랍 신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사야서 19장은 언젠가 이스라엘과 우리를 둘러싼 아랍 국가, 그리고 이집트가 함께 일하여 사람들을 이스라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대로를 수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사 19:23)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폴란드, 일본, 독일과의 화해와 기도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우리 민족이 겪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주력합니다. 이스라엘, 폴란드, 독일 기독교인들이 함께 활동하며, 이 세 나라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지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밀접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도들 가운데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알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여러 차례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을 초청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방문하여 일본 전역에서 가르치며,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독일 성도들도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인을 초청해 가르침을 구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우리는 화해하고 서로의 공동체를 격려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두 민족 사이 과거의 공포와 고통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사회 활동과 박해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입양을 권장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당 중 한 곳이 이 일을 위해 우리와 제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성장이었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민족을 생각하고 유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성도들의 노력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인으로서 우리는 여전히 ‘아기’ 단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메시아닉 유대인이 자리를 잡은 지 50여 년 밖에 안됐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장해야 할 영역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해지도록 도우실 것을 기대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에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정부는 우리를 전혀 박해하지 않지만, 이민 당국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런 박해를 주도하는 두 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법을 이민국이 무시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박해로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을 잘 극복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랍비 다비드 프리드만 박사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신이며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거주한다. 예루살렘 킹오브킹스 칼리지의 학장으로 은퇴하였으며, 전 이스라엘 성서대학(ICOB) 유태인 및 홀로코스트 연구 강사였다. 예루살렘 다르체이 노암 회중 랍비이며, 3개의 이스라엘-아랍 화해 기도 그룹의 회원이다. 10권의 책(They Loved the Torah, James the Just and At the feet of Rabbi Gamliel etc.)을 저술했다.

특별 기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부르심

최에스라 선교사

오늘날 ‘이스라엘’이란 단어는 교회 안팎에서 공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때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복잡한 팔레스타인 상황과 중동문제, 예루살렘 및 땅과 얽힌 문제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에 이스라엘은 국제외교, 정치, 군사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오래고, 이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은 나날이 증폭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도 근래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이스라엘 회복 운동과 히브리 뿌리 회복 운동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적 반응으로 인해 일각의 이단 시비와 함께 열띤 논란이 있어 온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던, 그저 흘러간 과거의 유물이 된 민족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이스라엘은 세상 가운데, 또 교회 가운데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좋든 싫든 교회는 이스라엘에 대해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갖도록 요청받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더욱 심화할 것이며 또 마땅히 그렇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적으로 이스라엘은 모든 종말론적 시나리오의 중심 주제일 뿐 아니라 구속사 완성의 핵심적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특히 마지막 때인 지금 온 세계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히 이해할 수도, 거기에 동참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이스라엘에 대해 분명하고 올바른 성경적 이해와 입장을 가지는 것은 오늘날 교회에 대한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

이천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을 찾아온 약속된 이스라엘의 왕, 그들의 메시아를 맞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주후 70년과 135년 두 차례의 유대인 반란을 일으켰지만,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열방에 포로로 끌려가 흩어지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화려했던 성전은 불에 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져 버렸다. 이후 유대인들은 지난 이천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예수를 죽인 민족이란 오명을 덮어쓰고 온갖 저주와 멸시, 박해를 받아왔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구약의 이스라엘인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선민, 언약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께 버려졌다고 여겼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탄생한 교회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새로운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을 ‘대체’할 ‘영적인 이스라엘’, ‘새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한 구약에서 성취되지 않았던 이스라엘에 주어진 모든 종말론적 예언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또 신약교회를 통해 이미 ‘영적’으로 다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한 민족, 국가로서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성취될 약속도, 언약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과 계획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겼다. 교회가 ‘진정한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구약의 수많은 이스라엘의 종말적 고토귀환과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도 새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이미 ‘영적으로’ 성취되었거나 장차 성취될 말씀으로 여겼다.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상징으로 이 땅에 남아서 교회에게 하나의 경종과 본보기가 되는 정도였다. 이러한 견해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소위 대체신학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대체신학을 절대 지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많은 명백한 구절들이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교회를 통해 성취되었고,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폐해졌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성경 내에 있지 않고 오직 성경 외부에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주 후 70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멸망과 예루살렘 및 성전의 파괴, 그리고 유대인들의 온 열방으로의 흩어짐이었다. 즉, 그런 역사적 사실이 메시아를 거부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결정적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 유대인들의 포로됨은 정확히 과거에도 한 번, 바벨론 유수 때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바벨론 유수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증거 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파기한 증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70년의 포로기가 끝나면 다시 회복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실제 역사 속에서 그 약속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역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을 뿐, 이스라엘과의 언약 파기의 증거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벌어진 일 역시 바벨론 유수와 같다. 성경은 장차 이스라엘이 온 열방으로 사로잡혀가게 될 것과 열방에서 당할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온 열방으로부터의 고토귀환이 있을 것을 여러 차례 걸쳐 예언하고 있으며, 이는 성경의 예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바벨론 유수와 모든 점에서 유사한데도 교회는 주후 70년의 사건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회복이 성경 예언의 문자적 성취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논리와 태도인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 유대인들의 온 열방으로의 포로됨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바벨론 유수 때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으며 그 자체가 구약의 수많은 예언의 말씀의 성취였다. 또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전 세계로부터의 고토귀환과 이천 년 만의 건국, 예루살렘의 회복 역시 하나님 말씀의 예언의 성취이다. 동시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하나님이 이를 신실히 지키고 계신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스라엘에 대해 대체신학적 견해를 가졌던 마틴 루터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라고 스스로 내세운 증거가 역설적으로 이것이 사실임을 반증한다. 루터는 이스라엘의 고토귀환과 재건국에 관한 성경의 예언 성취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결정적인 성경적 증거로 보았다. 그것은 옳은 견해였다. 그런데도 그가 잘못된 반대 결론을 내린 것은 그러한 일들이 그가 살았던 16세기 초까지는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살아서 유대인들의 고토귀환과 현대 이스라엘의 재건국을 눈으로 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그의 성경적 논리대로라면 그러한 일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지난 이천 년간 이스라엘의 종말적 회복에 대한 성경의 약속을 교회 전체가 다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17-18세기 이래 청교도와 개신교 신학자, 목사 등 많은 저명한 신앙인이 성령의 조명 아래 장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성경의 약속을 문자 그대로 믿는 회복신학적 견해를 가졌으며 이에 관한 다양한 설교와 글을 남겼다. 그러나 대체신학적 견해를 가진 주류 교회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했다. 19세기 후반 이후 시작된 전 세계로부터 유대인들의 고토귀환, 그리고 결정적으로 1948년 이스라엘의 이천 년 만의 재건국, 혹자의 표현에 의하면 세계 신학계에 ‘지진’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났고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은 그간 교회가 지녀온 대체신학적 입장의 타당성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그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성경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이스라엘의 종말적 문자적 회복을 믿는 운동이 신학계와 교회 안에 급격히 확산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교회와 신학계 내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완강하게 대체신학적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하신 약속을 결코 변개하실 수 없는 언약의 하나님은 그분의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고 계신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해 그분의 교회를 깨우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시며, 그 열매로 이스라엘에 대한 교회들의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고 그 이해가 하루가 다르게 열려가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

그렇다면 오늘날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는 무엇인가?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약속과 예언은 차치하고, 그리스도 이후 신약 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분명한 언급을 로마서 11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기 백성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롬 11:1a)

바울은 1절에서 오늘날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하나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의 논증을 시작하고 있다. 그 질문은 “하나님이 과연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라는 질문이다. 여기서 ‘자기 백성’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 곧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자기 백성’은 교회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아니며, 바울 당시의 이스라엘, 그것도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민족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이다. 만약 ‘자기 백성’이 교회나 믿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면, 하나님이 이들을 버리셨는가의 질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놀랍게도 “절대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단호히 대답하고 있다. 이 답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여전히 ‘자기 백성’으로 여기고 계시며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자 언약 백성임을 뜻한다. 로마서 11장 전체는 1절에서 내린 이 놀라운 결론에 대한 바울의 장대하고도 치밀한 성경적, 신학적 논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논증은 26절에 이르러 단언적 선포로 절정을 이룬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1:26a)

여기서 언급된 ‘온 이스라엘’ 역시, 지금까지도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며, 혹자가 주장하듯 그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 곧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온 이스라엘’이 유대인을 포함한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라면 그 말은 결국 ‘예수 믿는 자는 누구나 다 구원 받는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울은 ‘온 이스라엘’의 종국적 구원 및 이방 구원과 연관된 하나님의 진리를 25절에서 교회가 반드시 알아야 할 ‘비밀’이라고 부르고 있다. 바울이 단지 교회가 마침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교회가 반드시 알아야 할 ‘비밀’이라고 했을까? 너무나 당연한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과연 바울이 로마서 11장 전체를 걸친 논증을 펼쳤을까?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1:25-26a)

바울이 말하는 비밀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비밀은 무엇인가? 그 비밀은 25절이 말하듯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완악하게 된 것”과 이어지는 26절의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사실이다. 이 비밀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종말적 민족적 구원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온 열방과 이스라엘을 아우르는 전 인류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와 계획에 대한 비밀이다. 그 비밀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택하심과 넘어짐, 그리고 종국적 회복과 구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바울은 논증의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넘어짐, 즉 이스라엘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온 그들의 민족적 메시아를 거부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는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하는데,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 스스로의 불신앙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방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이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1)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롬 11:8)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복음에 원수가 된 것이 바로 우리, 이방을 인해서 그렇게 된 것임을 확인한다. 또한 19절에서도 이스라엘의 원가지 일부가 꺾여져 나간 것이 그들의 불신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이방으로 접붙임 받게 하려 하기 위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롬 11:28)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 (롬 11:19)

즉 이스라엘이 그들의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은 바로 온 이방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로마서 11장은 거듭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이방 구원을 이루고 난 후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한 민족을 택하사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이방 구원을 위해 그 민족의 눈과 귀를 가리우사 잠시 넘어짐을 허락하셨다. 이를 통해 구원이 이방에 이르러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그 민족이 계속 부분적으로 완악함 가운데 있도록 하신다. 마침내 이방인의 수가 차게 되었을 때 결국은 넘어졌던 그 민족마저 구원하심으로써 온 인류 구원을 이루시는 것, 이것이 바로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비밀이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인간으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을 사용하실까 의문이 들수도 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0-3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눈과 귀를 막고 그들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부분적으로 완악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열방, 둘 모두를 불순종 가운데 두심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의 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의해서 온 열방, 그리고 먼저 부르신 이스라엘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9장 1절에서 고백하듯이, 바울에게는 천 수백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자기 민족이, 정작 그 메시아가 왔을 때는 그를 거부한 일이 너무나 큰 고통이자 의문이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롬 9:1)

그러나 11장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이방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결말지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의 경륜과 비밀을 마침내 깨닫고 나자 바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롬 11:33-34)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

바울은 위의 이유 외에, 로마서 11장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이다. 바울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사건이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사건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26-27)

여기서 언급된 언약은 모세의 언약이 아니라 렘 31:31-34과 겔 36:24-28에서 언급된, 원래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되었으며 장차 이스라엘의 고토귀환 후 성취되기로 약속된 ‘새 언약’, 바로 복음을 가리킨다. 즉, 롬 11:26-27은 원래 이스라엘에 약속된 새 언약이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적으로 성취될 날이 올것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바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1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에는 장차 민족적으로 반드시 성취될 언약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으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됨은 29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

바울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부르심과 은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후회하심이 없다’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뜻은 ‘취소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은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선택과 부르심이 취소될 수 없는 이유를 바로 앞의 28절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택하심이 ‘조상들을 인함’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롬 11:28)

즉 이스라엘이 택함을 입은 것 자체가 이스라엘이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지키시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역이 그 언약을 취소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있어서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 이후 신약 시대에서도 이스라엘을 교회와 구별되는 어떤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실체로, 여전히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과 의미가 있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신학에서는 이런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대체신학은 예수님 이후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과 의미가 있는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구약시대로 끝이 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오직 교회만이 새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이 있는 실체이고 이스라엘 가운데 예수를 믿는자들은 단지 그 일원으로 교회에 포함될 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곳곳에서 이스라엘을 교회와 구별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는 실체로서 언급하고 있다. 특히 로마서 11장과 에베소서 2-3장은 신약시대의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해 깊이 논하고 있다.

접붙임의 관계

로마서 11장에서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상호관계는 접붙임으로 묘사된다. 신약교회는 원래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붙여짐으로 탄생한 존재이다. 또 참감람나무는 그리스도를 거부해서 꺾여진 가지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원가지로 나뉜다. 이 꺾여진 가지의 ‘꺾여짐’에는 자신의 불신앙과, 그 꺾인 자리에 이방을 접붙임으로써 이방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 두 차원이 다 존재함을 앞서 이미 설명하였다. 접붙여진 돌감람나무가지는 참감람나무의 뿌리 (이스라엘에 주어진 언약과 그 언약의 궁극적 성취인 그리스도)로부터 ‘진액’을 원가지와 함께 받아 좋은 열매 (언약에 따르는 모든 축복과 신분)을 얻고 누리게 된다.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접붙여진 돌감람나무 가지는 비록 원가지와 함께 같은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아 같은 좋은 열매를 맺지만, 여전히 원가지와는 구별된다는 점이다. 그 구별은 ‘기능적’ 구별이며 신분이나 특권, 권리나 축복에서의 차별은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꺾여진 가지들조차 장차 하나님께서 그 불신앙을 되돌이키사 다시 참감람나무에 되접붙임 받게 될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롬 11:23-24)

그날이 바로 26절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는 때이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을 포함한 모든 교회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도, 소수의 믿는 유대인들만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꺾여진 가지들의 불신앙으로부터 돌이킴과 되접붙임으로 인한 마지막 날 이스라엘 전체의 민족적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새 사람의 관계

에베소서 2-3장이 규정하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는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한 새 사람’의 관계이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5)

이스라엘과 교회, 이 둘을 나눈 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물어지고, 과거의 원수 관계가 해소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이루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여기서 ‘한 새 사람’을 이루어야 할 ‘이스라엘’은 단지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몇몇 유대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시각은 ‘한 새 사람’의 비전을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 안의 모든 형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차원의 말 정도로 축소하고 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굳이 바울이 여기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따로 거론하여 둘 사이의 하나 됨을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한 새 사람을 이루어야 할 ‘이스라엘’은 신구약 시대에 걸쳐 계속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었고 지금도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로마서 11장에서 말하듯이 장차 그 ‘부분적 완악함’이 거두어져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이루게 될 이스라엘을 염두에 둔 말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한 새 사람’의 온전한 성취는 지금의 이스라엘이 회심하여 ‘온 이스라엘’이 민족적 구원을 얻게 될 때 마침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교회가 ‘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둘이 합쳐져 둘 사이의 구별과 구분조차 없는 어떤 혼합적 실체가 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보는 것은 이스라엘이 사라지고 교회가 곧 새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대체신학적 시각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한 새 사람’이 된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진정한 관계는 에베소서 3장에서 정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3:6)

이러한 관계는 이스라엘과 교회, 각각의 독립적 실체가 구분되면서도 하나님 안에서 모든 권리와 축복을 동등하게 참여하고 누리는, 소위 ‘언약의 동반자’ 관계를 나타낸다. 언약의 동반자 관계야말로 에베소서가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정확한 관계이다. 이러한 언약적 동반 관계는 정확히 로마서 11장에서 말하는 돌감람나무였던 이방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가지, 즉 열방 교회가 원래의 원가지에 대해 갖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로마서 11장의 감람나무의 접붙임의 묘사는 에베소서 2-3장의 ‘한 새사람’의 묘사와 상통하며 일치한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주신 ‘형제 사랑’의 계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이루는 차원의 의미가 있다. 원래 이스라엘과 이방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로 부름을 받았으며, 실제 초대교회 당시의 이스라엘과 교회는 한 형제로서 동거하고 서로 화평을 누렸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초대교회 때 잠시의 동거와 평화는, 로마에 의한 기독교 공인, 교회 내 반유대주의의 심화, 이스라엘과 교회 간의 교량이 될 나사렛파의 단절 등의 과정을 거치며 급속히 깨어져 나갔다. 그리고 기독교 내 유대적 뿌리가 단절되고 이스라엘과 교회 간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특히 대체신학적 시각에 사로잡힌 교회에 의해 근 이천 년간 거듭된 극심한 유대인 박해의 불행한 역사는 둘 사이의 관계를 거의 원수처럼 벌려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약속대로 마지막 날 민족적 회복과 구원을 이룬다 한들, 서로 원수처럼 지내온 교회와 이스라엘이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구속사가 끝난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인간은 더 이상 이 두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죄 사함을 얻게 하셨고 마침내 이 두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 사랑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간의 모든 불화와 원수 관계가 녹아지고 해소되어 형제 사랑의 계명도 이루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고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들을 향한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한 형제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거의 원수처럼 지내왔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은 바로 구속사 안에서 한 형제로 부르심 받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깨어진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장차 그리스도 앞에서 섰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듯이 “네 형제,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교회에 묻지 않으실까? “네가 진정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켰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까? 그럴 때 교회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유대인 구원을 위한 전략 및 도전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유대인들의 구원은 천하 만민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교회의 열방 선교적 사명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종족선교를 이루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이스라엘의 종말적 회복과 이를 통해 이스라엘과 교회가 온전히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은 열방 선교 전체와 맞먹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본 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주님의 재림과도 직결되어 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신구약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의 말씀이 주어져 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 62:6-7)

대표적으로 시 122:6에서는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해 구하라’는 명령이 있으며, 사 62:6-7에서는 주야로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할 파수꾼의 중보 사명에 대한 말씀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마지막 날 모든 교회,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자 부르심이다. 모든 교회는 여기에 동참해야 하며 쓰임 받아야 한다.

간혹 몇몇 교회나 선교사들에게서 발견되는 한 가지 오해가 있다. 모든 교회가 다 이스라엘 사역에 직접 동참해야 한다거나 혹은 모든 선교사, 선교단체가 지금 섬기는 선교사역을 내려놓고 이스라엘 회복 사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독특하며 다양하다. 열방에 대한 땅끝 선교 역시 하나님의 구속사의 완성과 주님의 재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수많은 이들을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이미 부르셨고 지금도 사용하고 계신다. 따라서 모든 교회, 선교사 혹은 선교단체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 없는 한 이미 부르신 곳에서 부르신 선교 사역을 위해 최선으로 섬겨야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회복 역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구속사적 필연이며, 특히 마지막 날이 가까운 오늘날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이루고 계시는 가장 핵심적 역사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에 마지막 시대를 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교회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미 열방 선교에 헌신하는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선교라는 큰 선교적 틀 안에서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가장 급선무는, 교회와 선교단체들 안에 종종 보이는 잘 못된 대체신학에 기반한 편견과 선입관을 내려놓고 이스라엘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를 갖는 것이다.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며,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 이스라엘도, 참 이스라엘도, 영적인 이스라엘도 아니다. 단지 교회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으로서 육적 후손인 이스라엘에 접붙여져 원래 이스라엘에 약속된 모든 언약의 축복에 동참하게 된 이스라엘의 언약적 동반자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 계획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의 성취는 오히려 마지막 날, 세계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역사하심의 중심이 된다. 비록 이스라엘에 주어진 모든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고 또 교회에 영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그러한 성취가 육적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문자적 성취를 무효화시키거나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땅의 약속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에 주어진 모든 언약을 결국은 이루실 것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될 때 마침내 그들의 메시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영적 눈멂과 귀막힘이 제거되고 온 민족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둘째, 우리는 이스라엘 사역과 열방 사역을 마치 제로썸 게임처럼 서로 경쟁 구도로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을 열방 사역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으로 여겨 경계하는 잘못된 피해 의식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피해 의식은 이스라엘이 가지는 구속사적 위치와 열방과의 관계를 모르는 데에 기인한 것이다.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그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 한 나라의 회복과 축복에 그치지 않고 온 열방에 큰 영적 축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직접적인 가르침이 있다. 바로 이러한 성경적 원리 때문에 혹자는 ‘이스라엘은 열방 선교의 열쇠다’라고 말한다. 롬 11:12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이방의 풍요함을 가져왔는데 장차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된다면 그때 세상에 임할 풍요함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2)

이 풍요함은 온 열방에 임할 마지막 때의 대 영적 추수와 부흥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열방 사이에는 신비한 연결이 존재하는데 똑같은 성경적 원리가 이사야서에서도 발견된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사 27:6)

이사야 27장은 마지막 날 이스라엘의 회복되는 모습을 예언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시적 표현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 결실이 “지면을 채운다”라는 말씀이다. 한글로 ‘지면’이라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온 세계, 전 지구를 뜻하며 (실제 모든 영역본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결과, 그 열매가 전 지구를 가득 채운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전 세계 열방 가운데 큰 축복, 즉 부흥과 영적 추수를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회복되는 것이 온 열방에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까? 그 해답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한 나라, 한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열방과 어떤 특별한 관계와 위치에 있는 나라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열방의 장자, 첫 열매,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 장자로서,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온 열방을 대표한다. 한 집안의 아버지와 장자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면 장자를 통해 그 축복은 온 집안에 미치게 된다. 이것이 성경에서 장자권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다. 제사장의 위치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제사장직을 통해 우리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전 지파들에 대해 가지는 신분과 직분,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전 민족, 지파들을 하나님 앞에서 대표하고 중보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제사장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다면 그를 통해 이스라엘 모든 민족이,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인류의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온 인류가 축복을 받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소위 ‘대표성의 원리’는 성경 전반에서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그 언약과 부르심이 취소되지 않았으므로 지금도 열방의 장자요, 제사장 나라이다. 따라서 제사장으로서, 장자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회복된다면 영적으로 온 열방에 놀라운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래부터 주권적으로 정하신 변치 않는 ‘질서’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맞추어 정렬되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온전히 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에 주어진 영원한 약속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겠다”라는 것이다. 이 약속은 한 개인이나, 공동체, 한 민족이나 국가에도 적용된다. 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실까?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편애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 질서 때문에 온 열방이 축복받는 열쇠인 이스라엘이 먼저 온전히 하나님의 축복 안에 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 질서, 성경적 원리를 이해했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거듭,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 (이방인들)에게로라”라고 설파한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열방에 임한 부흥 사건들을 연구한 많은 연구자가 그 부흥들이 이스라엘의 육적, 영적 회복 사건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역시 바로 이러한 영적 질서와 원리 때문이다. 비록 열방 선교로 부르심을 받았더라도 한 선교사나 선교 단체가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 회복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사 큰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부름 받은 열방 선교에 더 풍성한 열매를 위해서, 그렇게 꿈에도 바라 마지않는 온 열방의 부흥을 위해서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 원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는 이스라엘 나라의 종말적 회복과 구원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가르친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교회가 도울 수 있는 사역의 예로는 귀환사역, 중보사역, 위로사역, 전도사역 등이 있다. 귀환사역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땅의 언약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유대인들의 알리야를 돕는 것이다. 중보사역은 예루살렘의 평안 (시 122:6) 및 온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위해 (롬 11:26) 밤낮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파수꾼의 사명을 (사 62:6-7) 감당하는 것이다. 위로사역은 역사적으로 오랜 반유대주의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행해진 교회의 잘못을 그들에게 사과하며 그들의 상처를 달래고 위로하는 (사 40:1-2) 것이다. 전도사역은 그들에게 회복의 기쁜 소식, 무엇보다 예수가 그들의 메시아라는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열방 선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부르심에 구체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까? 가장 우선적이고 현실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길은 역시 기도와 중보사역이다. 모든 선교사와 선교 단체는 세계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부르신 어떤 열방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있든지, 그 부르신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애쓰며 헌신하는 것 외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고 더해야 한다. 혹 이전에 잘못된 대체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먼저 그것을 버리고 성경에 기반한 회복신학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아직 이스라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주위에 최대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경을 열어 가르쳐야 한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국제적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따돌림을 받고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편에 서서 그 땅과 민족, 나라에 대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성경적인 큰 그림과 틀 안에서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유대인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 23:39)라고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 그들의 신랑으로 환영하고 초청할 수 있도록 모든 영적, 육적 차원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나 선교 단체를 부르신 사역에 더 큰 열매를 주시고 축복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에스라 선교사는 왕의 귀환 펠로우십 (Return of The King Fellowship) 선교회의 미국 디렉터이다. 뉴욕주립대 (버팔로) 물리학 박사이자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법학 박사로 미국 특허 변호사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 장로교 신학대학교에서 M.Div.를 하고 현재 왕의 귀환 펠로우십을 섬기고 있다. 왕의 귀환 펠로우십은 이스라엘 교회개척운동을 통한 이스라엘 복음화 사역 및 열방에 신학교와 미션스쿨 개척을 통해 모든 종족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열방 복음화에 헌신하며 이를 통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공동체이다.

특별 기고

벤허에서 예수로

루이스 라피데스 목사

바르미츠바 소년

바르미츠바에서 토라를 읽고 있는 소년

13살이 되기 몇 년 전부터 나는 유대인 전통 성인식 바르미츠바를 통해 ‘계명의 아들’이 되는 기회를 사모하며 기다려 왔다. 바르미츠바는 13세가 된 유대인 소년이 자신이 유대교의 종교적 가르침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예식이다. 그런데 12세에 영화관에서 ‘벤허’를 보게 되었고, 예수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의 바르미츠바가 있던 1960년 3월, 내가 살던 미국 뉴저지 뉴어크는 매우 추웠다. 나의 토라 낭송은 5피트 이상의 쌓인 눈을 뚫고 유대 회당을 찾아온 부모님과 친구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나의 랍비는 내 히브리어 실력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랍비는 나에게 물었다. “루이스, 너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토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니?”

나는 정신이 아뜩했다. 수많은 시간 동안 히브리어로 토라를 읽는 것을 배우고, 부모님이 이 성인식을 준비하기 위해 애쓰신 끊임없는 노력을 기억하면서 나는 랍비에게 “네”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큰 부담을 느꼈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많은 질문이 답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나에게는 감히 물어보지 못한 몇 가지 질문들이 있었다. ‘내가 따르도록 요구받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벤허의 메시지는 무엇이지?’ 만약 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성인식에 참가한 하객들은 숨이 막혔을 것이다. ‘루이스는 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그런 질문을 할까? 영화 벤허의 주인공은 루이스의 성인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류 월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1959년에 제작된 영화 벤허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에 세계를 강타한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중 하나였다. 유다 벤허는 로마 통치 하인 AD 1세기에 이스라엘에 살았던 유대인 귀족이었다. 그의 특별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마인의 노예가 되었다. 유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화는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 유다가 노예로 살아가면서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떠돌이 랍비는 목마른 유다에게 물을 주었다. 유다의 힘들고 지친 삶을 통해서 나사렛에서 온 예수의 그림자가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다는 로마인에 의해 나병 환자촌에 갇힌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게 된다. 유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고,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려와 예수께서 어떤 기적을 베푸시기를 기대한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유다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들의 끔찍한 질병에서 치유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유대인 가족은 유대인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12살인 나는 어떻게 성공한 유대인 왕자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는 이방인의 구원자였다. 나는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줄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년 후, 나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다려 온 구세주요 구속자라는 것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의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베트남에 가다

성인식 이후, 나는 유대교를 멀리했다. 내 관심사는 비틀스와 밥 딜런 그리고 60년대의 반체제 문화로 바뀌었다. 만약 인생의 고통과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바꾸었을 것이다. 십 대가 끝나가면서는 불교가 말하는 깨달음의 길이 내 관심을 끌었다. 경솔하게도 나는 환각성 마약에 빠져 내 천국을 찾고 있었다.

19세 때 경험한 동남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내 삶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나는 미국 육군에 징집되었고 1966년 여름, 해병 디젤 기술병으로 훈련을 받아 수륙양용정에 타게 되었다. 그 후 베트남에서 1년을 복무했다. 나는 괴로움, 고통과 죽음의 한 가운데 내던져 있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하나님의 실존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남베트남의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느꼈다. 해외 파병 기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나는 동남아시아의 밀림에서 전투 중인 아군에 폭탄과 탄약을 수송하기 위해 베트남 연안을 항해하는 화물선에 배치되었다. 갑자기 이 배는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수리를 받게 되었고, 베트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일본 불교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후지산이든 시내산이든 어디서 하나님을 발견하든 상관이 없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다

캘리포니아 해변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 나는 부모님을 떠나 서부 해안으로 이주하였다. 이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시고 각각 재혼하셨다. 아버지는 뉴저지에, 어머니는 펜실베이니아에 살고 계셨다. 나는 베트남의 극심한 더위를 겪은 후, 동부 해안의 추운 날씨를 피하고 싶었다. 나는 ‘누가 인생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눈보라가 몰아치는 뉴저지나 이가 덜덜 떨리는 추운 필라델피아에서 찾을 수 있을까?’라고 조소하며 떠났다.

자동차로 2 주를 달려 미국 대륙횡단을 한 후, 드디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나는 그래픽 아트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운 좋게도 그래픽 아트 사진사로 취직되었다. 주중에는 선불교 사원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고, 주말에는 마약을 탐닉했다.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선셋 스트립 지역으로 이사했다. 1969년, 찌는 듯한 어느 여름밤에 나는 어떤 설교가가 저항의 표시로 7피트 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선셋 스트립 나이트클럽은 그 설교가가 자신들의 잠재 고객들에게 설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 침례교 거리전도자가 나에게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으라고 전도했다. 나는 그 전도자에게 나는 유대인이고 나의 구원자로서 예수가 필요하지 않다고 변론했다. 나는 모세를 통해 이미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모세는 유대인을 위해 왔고 예수는 이방인을 위해 왔다.

침례교 전도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는 구약을 펼치면서 이야기했고 예수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그리고 스가랴 같은 이름을 쏟아냈는데, 그 이름들은 나에게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나는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메시아’를 의미한다는 것을 배웠다. 예수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예슈아’이다. 게다가 신약의 저자들은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다. 그 전도자는 신약성경을 인용하려고 했지만, 나는 충분했다. 유대인으로서 나는 신약성경은 반유대주의 책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대화를 중단했다.

그 전도자와의 대화 끝에 나는 신구약이 모두 있는 성경을 받게 되었고, 그는 성경을 읽어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인지 물어보라고 도전하였다. 나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메시아닉 유대인으로서의 영적 탄생

메시아닉 유대인 상징

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예언에 놀라면서 구약 성경을 훑어보았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고 예언되었고 (미 5:2), 구세주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묘사되며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 예언되었다 (사 7:14). 그는 다윗의 자손이며 (렘 23:5, 33:15),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린다고 예언되었다 (시 2:7, 사 9:6). 내가 히브리학교에 다녔는데 어떻게 메시아의 예언을 놓칠 수가 있었을까?

이사야 52장과 53장을 읽고, 나는 고난받는 종 메시아의 구속적 죽음을 배우게 되었다 (사 52:13-53:12). 그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이다! 그의 죽음은 스가랴서에 묘사되어 있으며, 시편에는 구세주의 몸이 부패하지 않을 것이며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 12: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 16:10)

마침내 나는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한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아들로서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언급되고 있다. 신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예수의 구원 메시지가 특별히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이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약속된 메시아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질문이 생겨났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나의 유대인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가? 나는 내 질문에 대해 모든 대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미 확신한 성경의 진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1969년 8월, 나는 믿음의 최종적인 갈등에 직면했다. 나는 예수를 나의 주,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불교나 다른 어떤 종교적 교리나 실천에서도 이룰 수 없었던 놀라운 내적 평안과 충만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선셋 스트립에서 나에게 복음을 전했던 목사님이 인도하는 비벌리힐스에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열정과 말씀에 대한 갈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가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 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메시아닉 유대인’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사도행전에서 나는 AD 1세기에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수천 명의 유대인을 알게 되었다 (행 2:41, 4:4, 6:7, 9:31, 21:20). 하지만 1969년 예수의 유대인 제자로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뿔피리를 부는 사람 ⓒ מינוזיג - MinoZig,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유대인 전도를 위한 소명

어느 일요일 저녁 예배에 초즌 피플 미니스트리 (Chosen People Ministry, CPM)에서 강사 한 분이 와서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영접했으며 동시에 유대인 유산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 주었을 때, 나는 의자에 그대로 붙은 기분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 강사를 붙잡고 끝없는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나를 주일 오후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다른 유대인 신자들의 성경공부에 초대했다. 나는 점점 더 유대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어떻게 이방인들이 유대교적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당시 나는 LA 아트센터에서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전임사역자로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강하고 느끼고 있었다. 막 결혼을 했을 때,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을 하기 원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텍사스의 댈러스 침례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성경학 교수 몇 분이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이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유대인’이라는 대체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가르침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내 이해를 크게 혼동시켰다.

나는 유대인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을 이미 지나왔다. 그리고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 이방인 형제들로부터 그들이 ‘진정한 유대인’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나는 내가 배운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축복이 이방인에게 흘러간 것을 경고한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원래 그들이 누구였는지 잊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로마서 11장 17절에서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재차 깨우친다. 그들은 참감람나무 뿌리에 ‘참여자’이지, ‘대체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바울은 이와 같이 경고한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 11:20-21)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 제자들은 그들의 유대인 정체성을 굳게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을 환영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 3:7)

이제야 나는 내가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유대인들을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아는 지식에 이르도록 해야 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방인 제자들에게 메시아 신앙의 유대적 뿌리를 가르쳐야 한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나사렛 마을에 있는 접목된 올리브 나무 Photo by Ferrell Jenkins

이방인을 위한 아브라함의 영적 축복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인들이 메시아를 아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사 11:10)

신약성경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훨씬 더 구체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윌 바너는 그의 책 “메시아의 사역: 그리스도의 위기”에서 마태가 이방인들을 책 지지대(Bookends)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예수의 족보에서 시작했고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대위임령으로 그의 복음서를 마무리했다 (마 28:19).(1)

이방인에 대한 예수의 열정은 그의 사역에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라고 가르친다 (마 5:13-14). 그 후 공생애 가운데 로마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신다 (마 8:5-10).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가 이방인에 대한 공의를 나타낼 것이라고 성경의 일부를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마 12:18).

사도행전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이방인들이 교회로 넘치게 흘러들어와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결국 땅끝까지 전파될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행 1:8). 사울 (바울)이 예수님의 소명을 받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그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도구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행 9:15).

베드로가 욥바의 지붕에서 본 환상에서,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에 유대인들에게 금기시되는 음식들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된다. 환상을 본 후 베드로는 이방인 백부장인 고넬료 가정으로 여행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예수의 생명을 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베드로는 욥바 지붕에서 본 환상이 정결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편파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 10:35)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한 후에 성령이 고넬료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임하셨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은 성령께서 유대인들에게 임하셨던 것과 동일하게 이방인들에게 임하시는 것을 보며 놀랐다 (행 10:45).

메시아닉 교회 세우기

히브리어로 쓰인 예수아

이후 나는 캘리포니아 탤벗 신학교에서 구약학과 셈어 연구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나는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LA의 CPM (Chosen People Ministry)과 일하며 하나님을 찾는 유대인 구도자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따르는 새 제자들을 훈련하며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유대인 성도들이 지역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일관된 설명적 가르침, 이방인 신도들과 교제의 어려움으로 에베소서 4장 11-16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되는 축복을 경험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LA지역에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섬길 수 있는 메시아닉 교회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1년 하나님께서 LA지역에 벳 에리얼 (Beth Ariel)이라는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를 세워주셨다.

미국 대부분의 지역교회는 동질적이다. 맛으로 표현한다면 지역교회들의 대부분은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맛이 있다. 모두 바닐라이든지 모두 초콜릿이다. 어떤 교회들은 딸기나 초콜릿 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신약성경이 말하는 많은 족속과 방언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반영하는 현대 지역교회를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한 지역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은 예수의 회복 사역의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신 메시아께서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물어 주셨다.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교회는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만의 교회이거나 이방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한 새 사람’이다 (엡 2:14-15).

무엇보다 나는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영적 형제애를 통해 오는 축복을 느낄 수 있는 메시아닉 교회를 세우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더 유대인처럼 변하거나 유대교로 개종하라는 부담을 느끼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유대인 성도들이 그들의 유대인 정체성과 전통에 편안함을 느끼기를 기대했고, 유대인이 아닌 성도들을 초청해서 메시아 예수의 사역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대인 명절과 풍습들을 함께 나누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했다. 벳 에리얼 같은 메시아닉 교회에서 신도들은 유대인의 절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이스라엘 땅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표현할 수 있으며,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나타내는 유대인 전통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현재 내가 이 사역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벳 에리얼 교회는 새로운 리더십 아래서 계속 사역하고 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5)

위 말씀은 우리에게 메시아의 몸 안에서의 메시아닉 유대인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존재 의미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 제자들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을 남은 자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지역교회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존재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위해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유대인 비신자들에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메시아닉 유대공동체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증인이 되며 하나님께서 국가적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과 하신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시아닉 운동은 지난 50년 동안 힘있게 성장해왔다. 이스라엘 투데이에 따르면 전 세계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수는 10만 명에 이른다. 2017년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안에는 약 2만 명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있다. 미국 내의 메시아닉 교회들의 숫자는 300~400개에 달한다. 각 교회의 평균 성도들의 숫자를 75~120명으로 보면 미국 내 메시아닉 유대인의 숫자는 3만~4만 명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 숫자에는 많은 이방인 성도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 메시아닉 운동은 살아있고 2021년에도 힘있게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결론

내가 바르미츠바 성인식에서 랍비에게 받은 질문으로 돌아가자. “바르미츠바의 모든 요구 사항을 마쳤으니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서약하겠습니까?”

나는 이제 “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소설 속의 벤허와 1세기 예수를 따른 유대인 신자들과 이 시대의 수천 명의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함께 나는 메시아 주님이신 예수의 유대인 제자가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루이스 라피데스는 25년 넘게 로스앤젤레스 메시아닉 교회 벳에리얼의 목사로 섬겼다. 그는 바이올라 대학의 탤벗 신학교에서 구약학과 셈어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Walk Thru the Bible 강사로 일했고, 바이올라 대학의 성경학과 겸임교수로 가르쳤다. 현재, 루이스는 ScriptureSolutions.com 웹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 웹사이트에서 메시아닉 유대학, 이스라엘에 관한 성경 문제, 적절한 성경 해석에 대한 그의 최근 기사를 볼 수 있다.

  1. Will Varner, Messiah’s Ministry, Fontes Press, 2021, pg. 61-62.

연구 논문

이란의 민족 기독교인: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

필립 오 홉킨스(1)

초록

기독교가 이란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란에 살았고 종종 번성했다. 대부분의 주요 기독교 종파에서 온 사람들은 이란을 그들의 고향으로 만들었거나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어느 정도 이 종파들은 교차 혼합되었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본 논문은 구약과 초기 교회사에서 이란과 모든 기독교와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이란과 지역 전반에 현저한 영향을 남긴 두 개의 민족 기독교 그룹 인대(大) 이란의 앗시리아인과(2) 아르메니아인의 기독교(3)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이란의 앗시리아와 아르메니아 기독교 에 대한 설명은 개신교 근대선교 운동이 시작된 현대 시기의 시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요 용어

이란의 기독교, 아르메니아 기독교, 앗시리아 기독교, 이란과 성경, 네스토리우스주의, 단성론, 동방의 교회, 동방 기독교, 박해, 성장

대이란 (Greater Iran)(4) ⓒ Lasunncty,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1. 성경과 초기 교회 역사 속 이란

구약에 있는 11권의 책은 대이란의 땅이나 민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5) 이란의 현 이슬람 정부는 수백 년 전 유물을 보관한 박물관에 성경을 전시하고 있으며, 다니엘, 에스더, 모르드개와 같은 유명한 구약 인물의 무덤이 고레스 왕, 다리오 왕,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국경 내에 있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많은 구약 성경에서 이란 민족은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특히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중요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고레스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사용되며 다윗 왕에게 사용된 용어인 ‘종’으로 불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사야 45:1에서 고레스를 “메시아” 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지명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아케메네스 제국 (550-330 BC)의 정책은 포로 시대 이후 유대교를 형성했다. 아케메네스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고 두 번째 성전을 건설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비유대 국가들과 대조적으로 구약에서의 페르시아에 대한 묘사는 긍정적이다.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집트인, 앗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과 야훼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이야기에 비해 페르시아인에 대한 야훼의 이야기는 극적인 상황이 부족하다. 이 논지의 연장선에서 페르시아인들은 야훼의 반항적인 속국이 아니고 야훼에 의해 무너질 필요도 없으며, 따라서 야훼의 회복도 필요하지 않다. 국가를 대상화하는 모델링에서 페르시아는 긍정적이고 반응하는 상대로서의 모델이다.(6)

기독교의 역사가 파르티아 제국 (227 BC–224 AD)의 중심부에서 시작되면서 이란이 유대교-기독교 신과의 “반응 상대(responsive partner)”라는 개념은 계속된다. 일부 사람들은 마태복음 2:1-11에 나오는 그리스도를 찾아간 유명한 “세 명의 현자”인 박사들이 이란에서 왔으며,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7) 그러나 에드윈 야마우치 (Edwin M. Yamauchi)는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8) 신부 요한 크리소스 톰 (John Chrysostom)은 박사들의 기원으로 페르시아를 언급하고 있다: “그들 (유대인)은 예언자들로부터 배우기를 거부했던 것을 페르시아인을 통해 배웠다. … 세 명의 현자들은 단 하나의 별을 보고 이것을 받아들였고 나타난 그에게 경배했다.”(9)4세기 역사학자 유세비우스 (Eusebius)의 또 다른 설명은 에데사의 왕 압가르와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10) 그러나 이 보고는 아마도 사실보다 우화에 가깝다.(11) 사도행전 저자는 이란의 부족인 파르티아인, 메데인, 엘람인 출신의 유대인들이 오순절 기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언급하고 있다 (행 2:9). 교회 전통에 따르면 마태, 유다, 열심당 시몬, 바돌로매, 도마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첫 12 사도 중 많은 수가 이 지역과 접촉했다. 이러한 설명 중 일부는 전설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신앙 초기부터 이란에 복잡하지만 지속적으로 기독교가 존재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비록 이러한 설명은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그 당시의 사람들이 받아들인 실제 역사적 세부 사항에 근 거한 것이다.(12)

페르시아의 초기 형태의 기독교에 대한 주요 출처는 거의 없지만, 그 시대의 기본적인 역사에 대한 공통된 의견 일치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AD 100년에 그 지역에 있었다.(13) 앗시리아 영지주의자 타티아누스 (Tatian, AD 100–180)는 이란 교회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설명을 제공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이다.(14)에데사 (시리아 안티오키아에서 북동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곳)와 아르벨라 (북이라크)의 대도시 지역은 이란의 기독교가 시작된 곳이며, 니시비스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에서 동쪽으로 140마일 떨어진 곳)까지 발전했으며 이 지역은 363년 이란에 예속될 때까지 이란 기독교가 발전하였다.(15)역사학자 빌헬름 바움 (Wilhelm Baum)과 디트마르 윙커(Dietmar W. Winker)는 이 지역의 많은 상인이 기독교를 동양으로 가져왔다고 추측한다.(16)

파르티아 제국은 상대적인 관용이 있었기에 기독교인들은 거의 박해를 받지 않고 그들의 신앙을 실천했다. 기독교인들은 탄압의 시기에 로마 제국을 떠나 파르티아 지배 지역으로 이주했다. 200년대 초에 기독교인은 국가가 안보를 걱정할 정도로 많아졌다.(17) 일부 역사학자들은 페르시아만 하르크 섬의 기독교 교회 유적지에서 60개의 기독교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제국의 경계에 있는 비샤푸르에는 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다.(18) 서기 222년에 사망한 시리아의 영지주의자 바르다 이산에 따르면 파르스, 메디아, 카샨, 파르티아 지방에 기독교 인들이 있었다고 한다.(19) 제국이 끝날 때까지 파르티아 지역에는 20개의 교단이 있었다.(20) 이란의 교회 확장은 상당했다.

Ⅱ. 이란의 앗시리아인과 기독교의 발흥

1. 사산 제국 (AD 224-651)
a. 신학적 고찰

기독교가 성장함에 따라 특정한 형태의 신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파르티아 통치 지역으로 도망치는 기독교인들 외에도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은 사산 시대에 포로로 이 지역에 들어왔다. 그리스 교회와 아람 교회, 시리아 교회가 생겨났고 각각 고유한 종교적 충성도가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어느 정도 연합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란 (및 일반적인 기독교국)에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라는 두 개의 경쟁적인 사상 학파가 생겨났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이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서구 기독교와 관련되었으며, 안티오키아 학파는 동방 기독교로 알려지고 독자적인 분파를 발전시켰다. 이란과 관련된 안티오키아 학파의 두 종파는 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으로 각각 신학적으로 네스토리아주의와 단성론과 관련이 있다.

서양과 동양의 기독교인은 모두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 속해 있었다. 410년에 이란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더 독립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동방 교회가 셀레우키아-크테시폰 (이라크 소재)에서 독자적 권위의 자리를 만들었다.(21) 424년에는 이란 기독교가 국가교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몇 년 후, 교회가 네스토리우스의 멘토인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의 가르침을 더 가까이서 따르면서 분열은 날카로워졌다. 네스토리아주의는 431년에 에베소 공의회에서 비난을 받았고,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아주의와 단성론은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신조를 발표했다.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두 가지 본성 [신격과 인격]은 혼동 없이, 변화 없이, 분열 없이, 분리되지 않습니다.”(22) 이것은 “위격적 연합 (hypostatic union)”으로 알려져 있다. 486년에 동방 교회는 서방 교회와 완전히 분리되었다.(23) 결과적으로 앗시리아 교회는 이란에서 주목받는 교회가 되었다.

b. 확장과 박해

대이란의 정확한 기독교인 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9세기 ‘시르트 연대기 (Chronicle of Seert)’에 따르면 이란 왕은 자신이 세운 많은 도시에 기독교인들을 배치하고 신앙에 대한 관용을 장려했다. 그러나 새무얼 모펫 (Samuel H Moffett)은 사산 제국 시절 이란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일이 로마보다 더했고 2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극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구인들의 “아시아 초기 기독교인들의 확고한 용기에 대한 놀라운 찬사”는 거의 없었다.(24)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그들 안에서 신앙을 지켜온 반면,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란의 앗시리아 기독교는 확장되었고 페르시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와 전도가 집중되었고, 결국 왕국을 주도하는 기독교가 되었다.(25) 이란의 기독교인의 일상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지만, 기독교 고등교육과 신학 센터가 설립되었고 원주민 지도자들이 개발되었으며, 주교가 세워지고 교회가 증가했다.(26) 한 저술가는 제국에 100명 이상의 주교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제국의 25개 지방 중 18개 지방은 복음화되었거나 기독교 증인이 있었다.(27) 페르시아의 한 왕은 두 명의 기독교인 부인을 두었고, 다른 왕은 기독교인 장례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28) 역사학자 리차드 폴츠 (Richard C. Foltz)는 7세기 말에 이란 서부 지역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으며, 이 시기의 많은 기독교인은 교육을 잘 받았고 ‘문화의 전달자’로 알려졌다고 주장한다.(29) 이안 길먼 (Ian Gillman)과 한스 요아힘 클림카이트 (Hans-Joachim Klimkeit)는 다음과 같은 글에서 제국에서 기독교의 발전을 강조한다. “유프라테스강 하구에서 티그리스강까지, 아르메니아와 코카서스에 이르는 사산 제국의 서쪽 국경에서 기독교의 뛰어난 성공이 있었다. … 무슬림이 정복할 무렵, 소수의 유대인 식민지를 제외한 이들 지역은 순전히 기독교인이 되었다.(30)

당시 주요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신봉자들은 이란의 기독교를 정당한 이유로 반대했다. 조로아스터교 사제 계급은 기독교를 조로아스터교도의 생계와 신앙을 잠재적으로 위협하거나 위협할 것으로 인식하였고, 이 시기에 몇몇 저명한 이란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어났다. 조로아스터교의 출신이 아닌 나르사이 (Narsai, c. 399–c. 501)는 이란 교회의 최초 민족적인 페르시아의 기독교 지도자이다. 아름다운 문장력으로 “성령의 하프”로 알려진 그는 에데사에 있는 학교에서 가르쳤고 (결국 학교장이 되었다) 니시비스의 학교를 복원하여 그곳에서 50년 동안 학교장을 지냈다.(31) 그는 신학을 찬미가집에 담았다.(32) 조로아스터교 출신으로 이란의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였던 마르 아바 (Mar Aba)는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의 동방교회 총대주교였으며 니시비스 학교의 교사였다. 그는 구약과 신약에(33) 대한 주석을 포함하여 많은 학술 저작을 출판했으며(34), 전도자, 정부 관리, 페르시아 왕의 친구였다. 그는 지역 앗시리아 교회 내의 논쟁을 중재하고, 조로아스터교에 반대하는 기독교 결혼을 장려했으며, 일반 신자가 성경을 공부하도록 격려했다. 마르아바는 그의 믿음으로 인해 추방당하고 투옥되었고, 그로 인해 사망했다.(35)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인해 사산 제국 통치 기간에 이란 기독교인에 대한 간헐적 박해가 발생했다. 마르 아바 시대에 많은 조로아스터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기독교는 토착화되었다.(36) 기독교인들이 정부와 평화로울 때조차 조로아스터교 사제인 마기는 기독교인, 특히 조로아스터교 배경을 가진 신자들을 경멸하였다. 순교 이외에 기독교인에게는 다른 형태의 고난이 주어졌다. 때때로 기독교인들은 세금을 이중으로 부과받았고, 교회 중 일부는 파괴되었고 그들의 전반적인 생계는 모욕당했다.

사산 제국은 조로아스터교를 완전히 지지하지 않았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통치 계급의 높은 지위를 얻었다. 사산 제국이 강성할 때는 조로아스터교의 지원이 덜 필요했다. 기독교 박해는 제국이 약해졌을 때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산 제국 통치자들은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면서 조로아스터교도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보였다.(37)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합법화한후, 기독교는 로마의 종교로 여겨졌고 전쟁 기간에 대규모 차별이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로마에 맞서 싸우는 것과 기독교인들을 억압하는 것은 같은 전투의 일부가 되었다. 이란의 첫 번째 주요 박해로 수천 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몇 년후, 기독교인들은 다시 박해를 받았고, 더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개종시키려는 조로아스터교도들의 시도도 있었다.

때때로 기독교인들은 사산 제국에 그들을 박해할 이유를 주었다.(38) 기독교인들은 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을 불태웠고 조로아스터교도들에 대한 부정확하고 거짓된 논쟁을 전개했다. 때때로 이란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인식은 사실이었다. 기독교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때때로 이란 반대 세력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한 저술가는 콘스탄티누스가 페르시아 주교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아(30) 페르시아를 침공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페르시아 기독교인들의 ‘해방자’로 여겼다고 주장한다.(40)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인들은 평화의 시기에 로마 제국의 외교관으로서 사산 제국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41)

2. 무슬림 정복 (AD 651-1256)

이슬람교가 이란에 도착했을 때 이란의 기독교는 로마에 의해 정통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서양의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로마의 박해가 더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심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정복 이전에 페르시아의 총대주교는 이슬람의 예언자이자 창시자인 무함마드에게 사산 제국의 박해에 대한 보호를 요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슬람의 기독교에 대한 통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관용으로 시작했다. 관용은 일반적으로 이슬람 통치에 대한 수용과 충성의 형태로 기독교인들에게 타협을 하게 했다. 어떤 면에서, 많은 사람은 무슬림이 이제 그들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박해와 부패의 위협은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새로운 주권자를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이유를 주었다. 한 앗시리아인 총대주교는 무슬림과의 친밀감을 언급하고 신앙의 유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권위를 부여하신 아랍인들은 아시다시피 우리와 함께 있으며, 기독교를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찬양하고 주님의 사제들과 성도들을 존경하며 교회와 수도원을 돕는다.”(42) 폴츠는 7세기 후반 페르시아 수도사 페넥의 요한을 인용한다. 페넥은 이슬람 정복에 대해 긍정적으로 주목해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무슬림]의 등장을 평범한 것이 아니라 신성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부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그들을 미리 준비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수도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받았고 수도원을 영예롭게 모셔야 한다.”(43)

이슬람 통치의 초기 몇 세기 동안, 무슬림은 이란에서 소수민족이었다. 이슬람의 지배력이 향상함에 따라, ‘우마르 협정(Shurūt ‘Umar)’으로 알려진 정책은 비무슬림들에게 제한을 부과하는 규정이 되었다. 역사학자 밀카 레비-루빈 (Milka Levy-Rubin)은 이러한 제한 중 많은 것들이 이슬람 이전의 비잔틴과 사산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우마르 협정에 대한 사산조의 영향은 우마르 협정의 주요 부분인 기예르(ghiyār)에 있었다. 레비 - 루빈은 기예르의 형성은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명확한 구분을 발전시킨 조로아스터교의 계층적, 계급 기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무슬림들은 이 원칙을 채택하여 비무슬림들을 가장 낮은 계급에 배치하고 종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생활 규제를 하였다. (비무슬림은 이슬람교나 무함마드에 대해 나쁘게 말할 수 없었고,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는 것과, 포교 활동, 십자가와 같은 종교적 상징물 등이 금지되었다)(44) 이전의 조로아스터교도가 기독교인들에게 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45) 삶의 비종교적 측면이 통제되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비무슬림은 세금으로 두 배나 많이 냈고, 법적 권리도 적었고, 공직을 가질 수 없었다.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받는 혜택이 많았지만, 기독교인에 대한 체계적이거나 광범위한 폭력은 없었다. 그러나 때로 수도원이 약탈당하고 무덤이 파괴되거나 특별한 옷을 입도록 요구되었다. 사실상, 무슬림 지배 아래 이란 기독교인들의 처우는 사산 제국과 비슷했다.(46) 즉, 일부 금지와 박해가 있었지만, 말살하려는 광범위한 노력이나 지속적인 노력은 없었다.(47)

사산조와 반대로 무슬림 지배 아래에서는 이란의 기독교가 수적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 또한 번창했다. 이란 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친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파르다우시, 하이얌, 루미, 하페즈, 사디 등 이 시기와 다음 시대의 주요 이란 시인의 소네트들은 이슬람의 맥락을 넘어 기독교 신앙과 긍정적으로 연결된다.(48) 이란 기독교의 교육문화 중심지들이 성장했다. 일부 교육 및 의대 졸업생들은 이슬람 지도자들을 가르쳤다. 영향력 있는 기독교인들은 정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은 행정관, 통역관, 그리고 의사였다. 13세기까지 대부분의 이란 샤 (shah)는 기독교인 의사를 두었고, 11세기 번역가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으며, 10세기 대부분의 철학자는 기독교인이었다.(49)

이란의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다.(51)앗시리아 교회는 인도, 중국, 티베트, 스리랑카를 포함한 아시아의 일부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그들은 600년대에 중국에 있었다.(52) 그들은 800년대에 인도에 있었다. 무엇보다 총대주교 티모시는 선교 활동을 늘렸다. 그는 이란의 길란에 있는 다일람족에 선교사를 보냈고, 이란의 교회와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 지역의 기독교 지도자가 되도록 격려했다. 티모시는 티베트뿐만 아니라 예멘에서도 주교를 임명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어 비문, 기독교 필사본, 그리고 이 시기의 네스토리아 십자가가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일부 비문들은 선교와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을 논하고 있다. 한 그룹의 사본에서, 기독교 자료 (성경의 일부 포함)의 중국어 번역은 페르시아 수도사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53)

3. 몽골 정복 (AD 1256-1500)

이란에서 기독교를 소멸시킨 것은 무슬림이 아니라 몽골인들이었다. 1227년 칭기스칸이 사망할 무렵, 몽골인들은 이란으로 이주했다. 1258년 이란 전체가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몽골의 정복은 이란의 모든 민족에게 가혹했다. CIA 정보분석가 스티븐 R. 워드 (Steven R. Ward)는 이란 고원에서 몽골인들이 천만 명에서 천 오백만 명을 죽였으며, 대부분은 무슬림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인구의 파괴는 철저했으며, 1900년대까지 몽골 이 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54)

몽골 통치의 시작은 종교적 불간섭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이란 기독교인들에게 고무적인 것으로 보였다. 동방 교회의 선교활동 때문에 몽골인들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 기독교인들과 친숙했다. 실제로 일부 몽골 부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초기 칸의 어머니와 정실부인 중 한 명이 기독교를 공언했으며,(55) 초기 6명의 몽골 왕 중 5명이 기독교와 관련이 있었다. 몽골인들은 무슬림 전임자들이 이란 기독교인들에게 부과했던 많은 제한을 풀었고, 이란의 전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의사로서 그리고 다른 중요한 직업으로서 정부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아르메니아 왕은 몽골 통치에서 기독교인들의 초기 성공을 도왔다. 이 시기에 기독교인들은 자유를 남용하고 무슬림들을 학대했는데, 라마단 기간에 술을 공공연하게 마시고(56) 이슬람 사원과 무슬림 옷에 술을 쏟기도 했다. (57)시인 사디는 무슬림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언급했다. “보이지 않는 금고에 사는 아름다운 자여, 당신은 가브르 [이교도]와 기독교인으로부터 생계를 꾸려나간다. 어떻게 적을 배려하면서 친구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58)

십자군 전쟁 동안 몽골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는 바뀌었다. 무슬림들이 득세하고 있었고, 이란 인구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고수하면서 몽골인들은 종교적 관용 정책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몽골 왕 가잔 (Ghazan)의 등장과 그의 이슬람 신앙 고백과 함께 많은 몽골인이 1295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가잔은 다른 신앙에 대해 차별적으로 되었고, 결국 기독교에 대한 집중적이고 대대적인 박해로 이어졌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티무르 (Tamerlane)의 통치와 함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티무르는 수천 명의 기독교인 (및 기타 비무슬림)을 살해하고 교회, 수도원 및 학교를 파괴했다. 쿠르드 지역의 서쪽 지역에 있는 몇몇 교황 선거회의를 제외하고 앗시리아 기독교는 이란에서 중단되었다. 길먼과 클림카이트는 네스토리아 교회의 몰락은 ‘전성기의 교회 파괴’라기보다는 ‘은혜의 쿠데타’에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앗시리아 교회는 세속적인 권력에 너무 많이 의존했고, 이로 인해 정권 교체에 취약했다. 교회는 자신의 영성에 소홀해져 파멸을 초래했다.(59)

우르미아에 있는 성모교회 ⓒ Ali Heidari - , علی حیدری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4. 사파비 제국-팔라비 왕조 (AD 1501-1979)

15세기에 남아있던 앗시리아 공동체는 페르시아인과 오스만인으로 분열되었다. 이란에서 앗시리아인이 가장 많이 밀집한 우르미아 지역에는 1562년에 5개의 주교석이 있었다. 이 안에서 권위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었고, 세 명은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60) “칼데아 가톨릭교회”는 결국 로마 가톨릭의 관할 하에 뚜렷한 전례와 함께 발전하였고 메소포타미아의 앗시리아 기독교인들보다 더 많은 수가 되었다.(61) 이후에 러시아와 다른 강대국들이 도착했다. 서방 교회의 선교사들은 앗시리아인들을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이해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앗시리아인들은 작은 활기를 경험했다. 1960년대에 이란에는 4만 명의 앗시리아인이 살았고, 대부분은 우르미아에 있었다.(62) 그러나 앗시리아 공동체는 지금까지 이란에서 중요한 기독교 종파로 서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Ⅲ. 이란의 아르메니아 기독교

1. 사파비 제국 이전

아르메니아는 다른 나라나 민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경계는 현재의 국경보다 훨씬 더 넓고, 수 세기에 걸쳐 다양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군주는 아르메니아의 영토를 놓고 싸워왔다. 다문화적 영향의 환경에서 아르메니아 기독교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사도 다대오와 바돌로매가 기독교를 그들에게 가져왔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앗시리아 기독교가 번성했던 지역인 에데사를 통했거나,(63) 그리스-로마의 신앙 형태가 지배적이었던 가파도키아를 통해서(64) 아르메니아로 왔을 가능성이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301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직접 유래했다고 믿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라고 부른다. 때때로 정교회와 혼동되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동방 기독교 내에서 독립된 분파를 형성한다.(65) 432년 아르메니아 종교회의는 네스토리아주의를 비난한 431년 에베소 공의회를 승인했다. 435년 아르메니아 교회는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의 저술을 비판했다. 약 100년 후,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공식적으로 단일신학을 채택하여 로마 교회와의 유대관계를 끊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 안에서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다리우스 대왕과 연결되어 있는데, 다리우스 대왕의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 동쪽 계단에 있는 세 번째 사절단이 아르메니아인으로 알려져 있다.66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1500년 이후 이란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파비 제국 이전에 앗시리아인들과 비슷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에데사와 같은 기독교 중심지에 영향을 미쳤고, 과학 및 철학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이란 통치자들의 법정 조언자였다. 어떤 경우에는 아르메니아 교회는 비이란, 비기독교 왕들을 지지했다.(68) 아르메니아 관리들이 이란 정부를 군사적으로 도운 경우도 있었다.(69) 한 작가는 이란 제국을 “아르메니아 교회가 태어날 때 도움을 준 산파”라고 부른다.(70)

아파다나 궁전 계단, 리디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을 포함한 사절단이 왕에게 포도주를 바치는 모습 ©Phillip Maiwald (Nikopol),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2. 사파비 왕조 (AD 1501-1796)

천 년 동안 앗시리아 교회는 이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종파였지만, 공허하게 남겨졌다. 이 시기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어둠의 해’로 명명되었지만(71) 아르메니아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앗시리아인들이 남긴 공백을 채웠다. 앗시리아인과는 교리적으로나 민족적으로 구별되는 이란의 아르메니아인 인구는 유대인과 조로아스터교도보다 적었다.(72) 그러나 새로운 지배자와 함께 이란의 영토에 변화가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은 사파비 왕조의 통치에 있지 않았고, 북서부에서 오스만과의 갈등은 급격한 변화를 만들었다.

1530년부터 사파비 왕조는 아르메니아의 고유 아르메니아인과 나히체반을 이란으로 강제추방하기 시작했다. 이 추방사건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출처의 자료가 빈약하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란으로 이주하는 기간은 약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1603년에 시작되어 1629년까지 지속된 두 번째 주요 강제추방과 관련된 더 많은 증거가 있다. 이것은 군사적 및 경제적 목적 때문이었다. 샤 압바스 1세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고 있었고 그들에게 코카서스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를 공격했다. 샤는 아락세스 계곡(나히체반)에서 초토화 정책을 사용해 그 지역을 파괴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무슬림들을 죽였지만, 숙련된 예술 장인, 협상 기술자, 오스만인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르메니아인들을 남겼다.(73) 그들을 죽이는 대신, 그는 그들을 이란으로 추방했다. 많은 사람이 이송 중에 죽거나 기후로 인해 죽었다. 아르메니아인은 전국의 많은 지역에 배치되었다. 1603년부터 추방된 아르메니아인은 모두 6만 가구, 30만 명 정도였다.(74) 1603년 추방 이후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에서 가장 큰 기독교 종파가 되었다.(75)

이스파한의 아르메니아 정교회 반크 대성당 (1664년 완공)은 사파비드 시대의 유물이다 ⓒ Fabienkhan, CC BY-SA 2.5, via wikicommons

나히체반의 줄파 지역 아르메니아인 그룹은 다른 그룹보다 더 잘 정착했다. 그들은 샤 압바스 1세가 사파비 이란의 수도 이스파한으로 이주시킨 경제적으로 안정된 아르메니아인들의 영향력 있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샤의 호위병들이 지켜주었고, 그들의 법원, 시장, 그리고 아르메니아어로 가르치는 학교를 가지고 있었다. 샤는 심지어 가장 중요한 아르메니아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도 비슷한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뉴 줄파는 거의 주 안의 또 다른 주였다. 1630년까지 이 지역에는 약 8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있었다. 뉴 줄파는 페르시아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음주, 교회 종소리, 교회 건축 등 종교의 자유가 제공됐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만의 행렬을 가질 수 있었고 의복에 대한 제한은 제거되었다. 그들은 이란에 최초의 인쇄기를 세웠고,(76) 첫 번째로 인쇄된 책은 구약의 시편이었다. 그들은 다른 종교 문헌을 제작했다. 선교 역사가 케네스 스콧 라투렛 (Kenneth Scott Latourette)은 뉴 줄파를 이란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한 “종교적 헌신과 배움의 중심지”라고 불렀다.(77)

샤가 아르메니아인들을 보호한 것은 그가 자비로운 지도자였거나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파비 제국이 도래하면서 다른 신앙에 가장 우호적이지 않은 12이맘파 시아파가 이란의 국교로 확립되었다.(78) 샤는 경제적, 정치적 이익에 관심이 있었다. 이란은 중국을 제치고 유럽의 실크 공급국이 되었고, 샤는 신뢰할 수 있고 유능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공동체가 되었다. 투르크멘 귀족 출신의 무슬림 이란인은 비단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샤는 그들을 그의 통치와 상인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유럽인들은 기독교인들과 무역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리고 오스만인들은 무슬림 이란인들과 무역하는 것을 거부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뛰어난 사업가였고, 유럽인 및 오스만인들과 무역 관계를 맺고 있었다. 샤는 아르메니아인의 사업적 통찰력과 그들의 관계 때문에 그들에게 실크에 대한 독점권을 주었다. 이란에서 유럽으로 가는 육로를 제공했고, 유럽 경쟁국들에 의해 통제되는 해상 항로를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그 대가로 아르메니아인들은 샤에게 수입의 일부를 주었고, 샤는 추가적인 수입원을 제공했고 투르크멘인들의 사업을 망쳤다.(79)

아르메니아인들의 기술은 다양했다. 실크 거래 외에도 아르메니아인들은 보석을 모았고 테니스, 볼링, 카드, 시계와 같은 신기한 물건들을 이란에 소개했다. 그들은 또한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했으며, 사파비 법원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1600년대 후반에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바뀌었다. 그들의 많은 특권이 취소되었고 세기말에는 아르메니아인들과 다른 종교적 소수자들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중요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80)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에서 기독교가 양립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로빈 워터 필드 (Robin Waterfield)는 그들의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기독교인이 페르시아의 심장부에 편입되고, 이들의 지속적인 존재는 페르시아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때부터 그들은 (이란인) 항상 헌신적인 기독교 신자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신앙을 버리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거의 그렇게 하지 않았다.(81)

3. 카자르-팔라비 왕조 (AD 1796-1979)

이 기간에 서방 단체에서 온 선교사들이 이란의 기독교를 지배했지만, 아르메니아인들과 관련된 언급이 필요하다.(82) 아르메니아인들은 여전히 국제 무역에 관여했고 정부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얻었다.(83) 체제 안에서 그들은 안전을 보장받았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의회에서 대의원을 받았고, 비무슬림들에 대한 세금도 카자르 시대에 폐지되었다.(84)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 문화에서 존중과 존경을 받았다.

여기에서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전후에서 일어난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터키 정부는 전쟁 활동의 일부였다며,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살해를 부인하고 있지만, 약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인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살해되었다.(85) 이란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의 이스파한에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 기념관을 만들었다. 시란 헌터 (Shiren Hunter)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르메니아인과의 오스만 투르크와의 만남은 그들의 집단정신에 특히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란과 아르메니아 관계는 역사적으로 항상은 아니지만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확실히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에 대해 가혹한 기억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은 이란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여전히 그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의 가까운 환경과 다른 세계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86)

실제로 모하메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은 2004년 기념식 때 예레반의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기념관에 헌화까지 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또한 모하메드 레자 샤 시대에 복음주의자가 되어 현대 개신교 선교에서 역할을 했다. 1970년대까지 이란에는 복음주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목회를 하고 있었다. 일부 하나님의 성회 선교사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의 한 목사인 하이크 요세피안 메흐르의 설교가 TV로 방영되면서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에게 설교할 수 있었다고 한다.(88) 오늘날 아르메니아인들은 현재의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서의 지위를 존중받아 왔지만, 몇몇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전도한 이유로 사망했다.(89)

Ⅳ. 결론

기독교와 이란은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약으로부터 오늘날까지 대이란에는 어떤 종류의 기독교 증인이 있었다. 이 기록에는 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 두 개의 저명한 종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체적으로 앗시리아와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대부분 같은 조건 (간헐적 박해와 관용과 자율성, 과세)을 경험했다. 다만 앗시리아인은 몽골 시대를 거쳐 기독교의 주요 형태가 되었고, 아르메니아인은 사파비 제국에서 신앙의 주요 형태가 되었으며, 그 수는 1980년 이슬람 공화국에서 약 50만 명에 이른다.(90)

앗시리아인들은 종종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복음을 전파하며 동쪽으로 퍼져나갔다. 현대 이라크가 형성되는 동안 사담 후세인 시대를 통해 기독교 소수민족은 보호받았지만, 지금은 이라크와 시리아 이슬람국가 (ISIS)에 따른 박해로 많은 이들이 피난을 갔다. 앗시리아인과 상대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은 대개 이란 민족이나 주변 문화에 전도하려 하지 않았다.(91) 대신 아르메니아인들은 페르시아 사회에 통합되었다.(92) 아르메니아인들은 결국 이란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이란인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으며, 이란이 기독교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란인에게 세계 기독교를 상기시켰으며, 이란인에게 기독교와 이란인이 동시에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기독교 신앙이 이란 문화에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93) 서방 선교사들이 이란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든지 그것은 대부분 1970년대 초반까지 이란 복음주의 교회의 거의 4분의 3을 차지했던 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의 노력에 기반한 것이다.(94)

이 글은 복음주의신학 학회지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Vol. JETS 61:1 (Mar 2018)에 실린 논문이다.

필립 홉킨스는 미국 게이트웨이 신학교 교회사 부교수이며,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이란학연구소 부연구위원이다. 영국의 세인트 앤드류 대학, 그리고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있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대학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강사이다. 그는 "이란과 코카서스"의 편집위원회의 일원이며 응용 신학 및 이란 역사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9/11 직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자발적인 촛불집회 이후, 홉킨스는 이란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문화, 역사, 철학, 종교와 관련된 실질적인 문제들에 관한 대화를 증진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의 연구는 팔라비 시대와 이후의 이란 기독교 역사, 특히 아르메니아인과 앗시리아인의 민족 기독교 공동체, 이란 내 기독교인들의 이념과 민족주의, 이란인들의 서구 기독교 선교에 대한 인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영향력 증가와 함께 그는 이란에서의 미국 기독교 선교 활동에 깊은 관심이 있다.

  1. 필립 오 홉킨스 (Philip O. Hopkins)는 러시아-아르메니아 대학 (123 Hovsep Emin St. Yerevan, Armenia, 0051)의 기독교 및 이슬람교 교수이며 런던 대학교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학교 (SOAS)의 세계기독교센터 연구원이다.
  2. 이란계 앗시리아인은 성경에 언급된 것과 같은 앗시리아인이 아니다. Adam H. Becker, Revival and Awakening: American Evangelical Missionaries in Iran and the Rise of Assyrian Nationalism (Chicago: 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5), 231, U337에서는 '앗시리아인'이라는 용어가 앗시리아 이란인에게 구원론적으로 정확하게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죽음, 구원, 공동체, 전통'을 다루지만 인종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베커는 "앗시리아화 (Assyrianizing)"의 "상상력"으로 고대 앗시리아인들과 현대의 앗시리아인들을 연결시킨다고 말한다.
  3. 네스토리안 교회, 동방 교회, 안티오키아 교회, 동방 시리아 교회 등 앗시리아 기독교에 붙여진 다른 이름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동일한 신앙 분파와 관련이 있다. 이 논문에서는 "네스토리안"이라는 용어를 통용한다. "네스토리안"이라는 용어는 다음의 이유로 꺼려진다. Wilhelm Baum and Dietmar W. Winker, The Church in the East: A Concise History (New York: RoutledgeCurzon, 2003), 21-24에서 일부 앗시리아인들은 오늘날 네스토리아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 용어가 경멸적이고 부정확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때때로 정교회와 혼동되어 왔다.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신학 (칼케돈 공의회)과 실천 (아르메니아 기독교는 동일한 교회 리더십에 복종하지 않는다)에서 정교회와 다르다. 또한 아르메니아 기독교와 아르미니우스 기독교의 차이점에 유의해야 한다. 전자는 민족 (아르메니아인)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후자는 구원론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4. 대이란은 현재의 이란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터키 남동부, 코카서스 남부, 투르크메니스탄 등 주변 지역도 포함하고 있다.
  5. 구체적인 언급으로는 창10:22, 겔 34:24, 대하 36:22-23, 사 44:38, 렘 51:11, 단 5:31, 에 1장, 스 4:7-24, 느 2장, 학 1:1, 슥 1:1이 있다.
  6. Walter Brueggemann,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Testimony, Dispute, Advocacy (Minneapolis: Fortress, 2012), 518.
  7. Peter Clark, Zoroastrianism: An Introduction to an Ancient Faith (Sussex Library of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Portland: Sussex Academic, 2001), 155.
  8. Edwin M. Yamauchi, Persia and the Bibl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0), 481.
  9. John Chrysostom, Hom. Matt. 6.4 (NPNF1 10:80).
  10. Eusebius, Eccl. Hist., 1.12.
  11. Edwin M. Yamauchi, Pre-Christian Gnosticism (Grand Rapids: Baker, 1973), 84-85.
  12. J. P. Asmussen, “Christians in Iran,” in The Cambridge History of Iran, vol. 3: The Seleucid, Parthian and Sasanian Periods (ed. Ehsan Yarshat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2:927.
  13. Richard C. Foltz, Spirituality in the Land of the Noble: How Iran Shaped the World's Religions (Oxford: Oneworld, 2004), 80; Mark Bradley, Iran and Christianity: Historical Identity and Present Relevance (London: Continuum, 2008), 138; and Ian Gillman and Hans-Joachim Klimkeit, Christians in Asia before 1500 (Richmond, UK: Curzon, 1999), 109.
  14. Aziz S. Atiya, A History of Eastern Christianity (London: Methuen, 1968), 247.
  15. John Healey, "The Church Across the Border: The Church of the East and Its Chaldean Branch," in Eastern Christianity in the Modern Middle East (ed. Anthony O'Mahony and Emma Loosley; London: Routledge, 2010), 43.
  16. Baum and Winker, Church in the East, 8-9.
  17. Asmussen, “Christians in Iran,” 928.
  18. W. Stewart McCullough, A Short History of Syriac Christianity to the Rise of Islam (Chico, CA: Scholars Press, 1982), 112.
  19. H. W. J. Drijvers, Bardaisan (Assen: van Gorcum, 1966), 188.
  20. The Chronicle of Arbela (trans. Peter Kawerau and Timothy Króll; CSCO 468; Leuven: Peeters, 1985), 16; online: www.archive.org/details/ChronicleOfArbela1985.
  21. "Chronological Order of the Catholicos/Maphriyono's of the East"; online: http://www.catholicose.org/PauloseII/Catholicate.htm.
  22. F. Schaefer, “Chalcedon, Council of,” The Catholic Encyclopedia (ed. C. G. Herbermann; New York: Encyclopedia Press, 1913), 3:557; online: www.newadvent.org/cathen/03555a.htm.
  23. Waterfield, Christians in Persia, 23.
  24. Samuel H. Moffett,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vol. 1: Beginnings to 1500 (San Francisco: Harper, 1992), 145
  25. R. N. Frye, "The Political History of Iran under the Sasanians," in The Cambridge History of Iran, vol. 3: The Seleucid, Parthian and Sasanian Periods, 1:149.
  26. Robin E. Waterfield, Christians in Persia: Assyrians, Armenians, Roman Catholics and Protestants (London: George Allen, 1973), 30.
  27. Bradley, Iran and Christianity, 139-41.
  28. Foltz, Spirituality in the Land of the Noble, 83.
  29. Ibid., 83, 89.
  30. Gillman and Klimkeit, Christians in Asia before 1500, 115.
  31. "Our Patron Saint: Mar Narsai"; online: www.mnac.nsw.edu.au/Marnarsai.html. See also Sebastian P. Brock, "A Guide to Narsai's Homilies," Journal of Syriac Studies 12.1 (2009): 21–40; online: http://www.bethmardutho.org/index.php/hugoye/volume-index/426.html.
  32. Narsai, Homilies of Mar Narsai (San Francisco: Patriarchal, 1970), 1:128; in Khoshaba Gewargis, "Dialogue Poem"; online: http://www.karozota.com/2009/sidor/marnarsaipoem090718.html. Narsai, Homily 62, in Frederick G McLeod, "Man as the Image of God: Its Meaning and Theological Significance in Narsai," TS 42.3 (1981): 461.
  33. Authur V bus, History of the School of Nisibis (Louvain: Secr tariat du Corpus, 1965), 161 70.
  34. Jacob Neusner, A History of the Jews in Babylonia, vol. 5: Later Sasanian Times (StPB 15; Leiden: Brill, 1970), 92.
  35. Vööbus, History of the School of Nisibis, 170.
  36. A. V. Williams, "Zoroastrians and Christians in Sasanian Iran," BJRL 78 (1996): 39-40.
  37. Ibid., 39, 45.
  38. Waterfield, Christians in Persia, 22.
  39. Stephanie K. Skoyles Jarkins, "the Persian Sage and the Temple of God: A Study of Early Syriac Theological Anthropology" (Ph.D. diss., Marquette University, 2005), 1–10.
  40. T. D. Barnes, "Constantine and the Christians of Persia," JRS 75 (1985): 126–36.
  41. Baum and Winker, Church in the East, 14.
  42. William Ambrose Shedd, Islam and the Oriental Churches: Their Historical Relations (New York: Young People's Missionary Movement, 1908), 99.
  43. Foltz, Spirituality in the Land of the Noble, 90.
  44. O'Mahony and Loosley, Eastern Christianity in the Modern Middle East, 269.
  45. Milka Levy-Rubin, Non-Muslims in the Early Islamic Empire: From Surrender to Coexistence (Cambridge Studies in Islamic Civiliz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163.
  46. Bradley, Iran and Christianity, 143.
  47. Aubrey R. Vine, The Nestorian Churches: A Concise History of Nestorian Christianity in Asia from the Persia Schism to the Modern Assyrians (London: The Independent Press, 1937), 99-100, 마와르디 무슬림 변호사는 비무슬림들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인두세 계약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금지를 요약해서 제공했다. 6개 항목이 있는 두 개의 섹션이 있으며, 전자는 의무이고 후자는 선택이다. 의무사항: (1)꾸란을 존중한다 (2)무함마드를 존중한다 (3)이슬람교를 존중한다 (4)이슬람 여성과 결혼하지 않는다 (5)무슬림을 개종할 수 없다 (6)이슬람의 적을 돕지 않는다. 권장 사항: (1)무슬림과 다른 옷을 입는다 (2)무슬림 건물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 (3)교회 종을 없앤다 (4)공공장소에서 음주 금지 (5)죽은 사람은 매장한다 (6)말을 타지 않는다
  48. Bradley, Iran and Christianity, 32.
  49. Aptin Khanbaghi, The Fire, the Star and the Cross: Minority Religions in Medieval and Early Modern Iran (International Library of Iranian Studies 5; London: I. B. Tauris, 2006), 45, 48, 49.
  50. Atiya, A History of Eastern Christianity (London: Methuen, 1968), 253-71.
  51. Huaiyu Chen, "The Encounters of Nestorian Christianity with Tantric Buddhism," in Hidden Treasures and Intercultural Encounters: Studies on East Syriac Christianity in China and Central Asia (ed. Dietmar W. Winkler and Tang Li; Orientalia-Patristica-Oecumenica 1; M􀀀nster: LIT, 2009), 200.
  52. David Thomas, "Christianity," in The Blackwell Companion to Eastern Christianity (ed. Ken Parry; Chichester, UK: Blackwell-Wiley, 2010), 13.
  53. Baum and Winker, Church in the East, 47-57.
  54. Steven R. Ward, Immortal: A Military History of Iran and Its Armed Forces (Washington, DC: Georgetown University Press, 2009), 39.
  55. Edward Browne, A Literary History of Persia: From Firdawsi to Sa'di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06), 440􀀀41.
  56. Ramazan is the English transliteration of the Persian term most know as Ramadhan.
  57. Vine, Nestorian Churches, 45-46.
  58. 이 영어 번역은 Khanbaghi, The Fire, the Star and the Cross, 180 n. 351.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 언어로는 (음역) 다음과 같다. "Eye kerme key ahz khazahnehyeh a'yeb; doostan ro kojah kani mehroom; gabr va tarsa vazeefeyh khor dahri; tow key bah dashmanahn nazr dahri." Sa'Gulestani Sa'di (ed. Iranparast; Tehran: Fanous, 1977), 3.
  59. Gillman and Hans-Joachim Klimkeit, Christians in Asia before 1500, 151.
  60. Baum and Winker, Church in the East, 112.
  61. For more information see: Anthony O'Mahony, "The Chaldean Catholic Church: The Politics of Church-State Relations in Modern Iraq," HeyJ 45.4 (2004): 435-50; and Suha Rassam, Christianity in Iraq: Its Origins and Development to the Present Day (Leominster, UK: Gracewing, 2010).
  62. Baum and Winker, Church in the East, 112.
  63. Cyril Toumanoff, “Christian Caucasia between Byzantium and Iran: New Light from Old Sources," Traditio 10 (1954): 126.
  64. Simon Payaslian, The History of Armenia: From the Origins to the Present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07), 35.
  65. George A. Bournoutian, A Concise History of the Armenian People: From Ancient Times to the Present (Costa Mesa, CA: Mazda: 1980), 49 and Robert W. Thomson, "Mission, Conversion, and Christianization: The Armenian Example," Harvard Ukrainian Studies 12/13 (1988-89): 32, argue for a later date, sometime after 311 and the Edict of Milan.
  66. Allyn Huntzinger, Persians and the Bible (Woodstock, GA: Global Commission, 2004), 26, and Nina G. Garosian, "Iran and Caucasia," in Transcaucasia, Nationalism, and Social Change: Essays in the History of Armenia, Azerbaijan, and Georgia (ed. Ronald Grigor Suny; rev. ed.; Ann Arbor, MI: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6), 10.
  67. Nigel Allan, "Christian Mesopotamia and Greek Medicine," Herm 145 (1988): 52.
  68. Payaslian, History of Armenia, 134.
  69. Angus Stewart, "The Assassination of King Het'um: The Conversion of the Ilkhans and the Armenians," JRAS 15 (2005): 45-61.
  70. Toumanoff, "Caucasia between Byzantium and Iran," 147, 185.
  71. Samuel Hugh Moffett,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vol. 2: 1500-1900 (Maryknoll, NY: Orbis, 2005), 200.
  72. Khanbaghi, Fire, the Star and the Cross, 111.
  73. 아르메니아인들은 셀주크 침략 당시 아르메니아 난민들이 탈출했던 중세의 길리기아 (터키 남서부)로 갔다. See Robert Lee Wolff and Harry W. Hazard, eds., A History of the Crusades, vol. 2: The Later Crusades, 1189-1311 (2nd ed.; Madison, WI: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69), 630-59.
  74. Vartan Gregorian, "Minorities of Isfahan: The Armenian Community of Isfahan 1587-1722," Iranian Studies 7.3/4 (1974): 664.
  75. Khanbaghi, Fire, the Star and the Cross, 94-96, 111-13.
  76. Gregorian, "Minorities of Isfahan," 665-69.
  77. Kenneth Scott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 vol. 2: Reformation to the Present, 1500-1975 (New York: Harper & Row, 1975), 235-36.
  78. 개신교와 유사하게 시아파에는 다음과 같은 다른 교단이 있다. 12이맘파, 7이맘파, 5이맘파 (그리고 이 종파 내의 분할). 그 구별은 이맘의 계승에 중점을 두었다. 차이점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십시오. ShiaDiversity: Twelver, Fivers, and Sevener"; online: www.faroutliers.wordpress.com/2006/10/12/shiadiversity-twelvers-fivers-seveners, which is taken from Vali Nasr, The Shia Revival: How Conflicts within Islam Will Shape the Future (New York: Norton, 2007), 75.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Allamah Sayyid Muhammad Husayn Tabatabai, Shi'ite Islam (trans. Seyyed Hossein Nasr;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75), 75-84.
  79. Gregorian, "Minorities of Isfahan," 669-70.
  80. Khanbaghi, Fire, the Star and the Cross, 117-20, 128-29.
  81. Waterfield, Christians in Persia, 63.
  82. Hamid Algar, "Religious Forces in Eighteenth- and Nineteenth-Century Iran,"in The Cambridge History of Iran, vol. 7: From the Nadir Shah to the Islamic Republic (ed. Peter Avery, Gavin Hambly, and Charles Melvil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730.
  83. H. E. Chehabi and Vanessa Martin, Iran'Constitutional Revolution: Popular Politics, Cultural Transformations and Transnational Connections (International Library of Iranian Studies 28; London: I. B. Tauris, 2010), 21, 39.
  84. Daniel Tsadik, "The Legal Status of Religious Minorities: Imāmī Shīʿ ī Law and Iran's Constitutional Revolution," ILS 10.3 (2003): 406-7
  85. 유용한 요약 참조 "Q&A: Armenian Genocide Dispute," 2 June 2016, www.bbc.co.uk/news/world-europe-16352745. 앗시리아인도 같은 전쟁 중에 오스만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Ronald G. Roberson, The Eastern Christian Churches (4th rev. ed.; Rome: Pontificio Istituto Orientale, 1993), 8, states: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앗시리아인들은 터키인의 손에 대량 추방과 학살을 당했다. ... 앗시리아 인구의 약 1/3이 사망했다."
  86. Shireen T. Hunter, "Conflict in the Caucasus and the Black Sea Region: Causes and Prospects for Resolution," Hellenic Foundation for European and Foreign Policy (1997): 5 6, in Julien Zarifian, "Christian Armenia, Islamic Iran: Two (Not So) Strange Companions; Geopolitical Stakes and Significance of a Special Relationship," Iran and the Caucasus 12.1 (2008): 130.
  87. Ibid., 131.
  88. Mark and Gladys Bliss to Friends in Christ, March 1973, transcript of typewritten letter, Special Collections, Assemblies of God Archives, Springfield, MO.
  89. Faith J. H. McDonnell, "Iran's Decades of Christian Persecution," Assyrian International News Agency (2 February 2011); online: www.aina.org/news/20110204114914.htm.
  90. "The Status of Iran's Non-Muslim Minorities" (30 July 1980); online: www.cia.gov/library/readingroom/document/cia-rdp85t00287r000101800001-3. Richard Foltz, Religions of Iran: From Prehistory to Present (London: Oneworld, 2013), 122, 이란의 아르메니아인과 앗시리아인 기독교인의 수가 현재 55,000 명 미만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Joshua Project는 아르메니아와 앗시리아 기독교인의 총 수를 약 20만 명으로 추정한다. (www.joshuaproject.net/countries/IR).
  91. Hagop A. Chakmakjian, Armenian Christology and Evangelization of Islam: A Survey of the Relevance of the Christology of the Armenian Apostolic Church to Armenian Relations with Its Muslim Environment (Leiden: Brill, 1965), 62, 아르메니아 교회의 의식주의와 아르메니아 계급의 성례주의와 함께 민족주의가 전도 부족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92. S. H. Taqizadeh, "The Iranian Festivals Adopted by the Christians and Condemned by the Jews,"Bulletin of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10 (1940): 653.
  93. Bradley, Iran and Christianity, 147.
  94. Betty Jane Bailey and J. Martin Bailey, Who Are the Christians in the Middle East? (Grand Rapids: Eerdmans, 2003), 117–18.

특별 기고

함께 과업을 완수합시다

리사 박 목사 (FTT 글로벌전략 담당자)

하나님은 항상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한 세대도 잃은 적이 없으셨고, 이제 시작하는 일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항상 일해 오셨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모든 코로나 팬데믹, 정치적 불안정, 사회적 불안, 지역 갈등, 대량 이주, 자연재해 등을 통해 마주한 모든 도전, 어려움, 갈등, 혼란, 상심,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주께서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이 세상의 모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펼치신다는 것입니다.

현장의 이야기

‘피니싱더태스크 (Finishing the Task, FTT)’(1) 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미전도종족에게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통해 계속 일하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우리는 지난 1년 반 동안의 도전에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많은 사역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사회와 함께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섭리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경험한 증언과 증거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이야기 중 일부일 뿐입니다.(2)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1) 남아시아 지역

2020년 7월, FTT의 남아시아 파트너인 교회개척 지도자팀은 553개 지역에서 7,000명 이상의 지도자를 배출하고 3,500개의 새로운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2021년을 시작하면서 FTT는 하루 동안 653개 지역에서 13,339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파트너들의 보고를 전하며 이 고된 사역의 열매를 축하했습니다.(3)

2) 시사 지역

수도에서 차로 16시간 이상 떨어진 외딴 오아시스 지역인 시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독특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사막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사 지역에 한때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지만, 1300년대부터 그들은 순니파 무슬림이었으며, 700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시사의 대추야자와 올리브를 키우는 농부는 한 남자가 그의 집 근처 나무에서 올리브를 따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낯선 사람을 쫓아내지 않고, 맛있는 대추야자를 나눠주려고 그 남자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 남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사에 온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남자 손님이 농부에게 이사 (꾸란의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꿈에서 이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손님은 복음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농부는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바쳐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시사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시사에는 5개의 가정 교회에 50여 명의 신자가 있으며, 몇몇 지도자들이 그곳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도록 훈련 받고 있습니다.(4)

3) 중앙아시아 지역

중앙아시아에는 5개의 외딴 산간 마을에 소수민족 집단이 살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이 종족들에게 찾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이 종족 집단에는 신자가 없습니다. 2018년 3월, 많은 기도와 금식 끝에 이 나라 신도들로 구성된 팀이 복음을 나누기 위해 위험한 산길을 걸어서 5개 마을 중 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비된 사람에게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을로 다가가던 길에 소를 데리고 걸어가던 한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대화는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이 남성은 복음을 처음 접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심히 괴로워하며 죄책감에서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라는 선물을 받아들였고, 이 종족 최초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그의 집은 이 종족 가운데 첫 번째 교회가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계속 퍼져나가 이전에 용서, 평화, 확신, 자유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5)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사 55:11)

4) 라오스

라오스의 신자들이 가깝고 먼 곳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라오스의 미전도종족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K와 그의 형제 G는 미전도종족인 다단의 지도자를 훈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매주 110cc 오토바이를 타고 다단 시골 마을로 이동합니다. 한 번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 나서 오토바이를 밀면서 수킬로미터를 가야 했습니다. 그때 오토바이를 탄 다단 남자가 그들을 돕기 위해 멈추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필요했던 적절한 부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역자들이 새로운 지도자와 교회를 섬기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이동할 때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에 고무되었습니다. 현재 이 종족에는 350명의 신도와 6개의 교회가 있으며, 지난 분기에 67명이 세례를 받았고, 2개의 새로운 교회가 네트워크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미접촉종족들 가운데 교회가 배가되고 있습니다.(6)

이 이야기들은 2021년 상반기에 파트너들이 저희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FTT 파트너들과 같은 뜻을 가진 네트워크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개인적으로 (안전한 상황에서) 계속 만나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위임령의 과업을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사역자와 그들의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러나 여전히 동아시아, 남아시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 말 그대로 전 세계에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들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그들 대신 죽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아직 듣지 못한 아이들과 여자들과 남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처럼 대위임령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사역자, 영혼을 살리는 데 특별한 열정을 가진 평범한 여성과 남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열방을 제자로 삼고 한 번도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날마다 예수를 전하며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분부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방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손이 일하시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원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고, 가까운 신도들이 미전도종족에게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아직 예수님에 관해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이 있는 곳이면 복음이 가야만 하고 반드시 복음이 갈 것입니다. FTT의 비전은 항상 가장 적은 종족에게, 가장 마지막 종족에게 도달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모두가 복음을 들을 때까지 우리의 목표로 남을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FTT AD2033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FTT의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현재 FTT의 이사이고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공동 창립자이자 담임 목사인 릭 워렌의 지도 아래 FTT의 비전은 더욱 역동적이고 종합적이 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미전도종족에 도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위임령의 성취를 가속화하기 위해 2033년까지 모든 종족과 지역에서 성경 (Bible)과 신자(Believer), 교회 (Body of Christ)가 있게 하자는 세 가지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FTT AD2033의 비전과 3B 목표입니다. 이미 이를 위해 전 세계 선교 단체와 교회의 노력을 조율하기 위한 흥미진진하고 도전이 되는 대화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일을 위해 기도 네트워크가 함께 모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위임령의 목적을 위해 전 세계 성도가 협업하고 협력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비전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교 단체와 교회 외에도 신학교, 기업, 데이터 및 연구, 기술, 성경 기관, 교단, 다양한 기독교 전통에서 온 형제자매 등 전체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교회에서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찾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성이 주는 힘을 현명하고 전략적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최고 리더십 수준에서 보다 건설적이고 투명하며 정직한 대화, 문화 간 소통에서 인내와 능숙함, 그리고 서로 경청하고 배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누구도 대위임령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21세기에 대위임령 성취를 가속화하는 데 진정으로 최적화되려면, 세대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가 그들의 세대를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측면에서 디아스포라 교회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 디아스포라 교회

한반도와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복음이 한국 국민들에게 뿌려진 이후로 선교의 강국이 되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저는 선교 지향적이고 전략적이며, 열정적이고 지략이 풍부하고 탄력적인,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것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는 듯한 열망을 품은 한국교회를 섬겨왔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서울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 밑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조선 시대 때 한국에 온 선교사들과 한국의 기독교 성장을 이끈 국가 지도자들에 대해, 그리고 한국교회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이 시기였습니다. 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랐지만, 새벽기도를 하는 한국 기독교 전통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항상 일을 하시기 전에 새벽기도를 가시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풍부한 정신적 유산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7) 또한 온누리교회 Acts 29 사역과 횃불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대학원 (온누리 자매 교육 기관)(8)을 통해 교회의 동력인 기도의 중요성을 알았고, 교회 전체의 선교적 역동성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토론토로 돌아와 임현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모교회인 참빛장로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2세대 젊은이들을 자유롭게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받았고, 제가 본 세상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매우 기뻤습니다. 지도에서 보거나 혹은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열방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의 일부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형제자매로 보기를 원했습니다. 다음 세대가 그리스도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양육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선교부에서는 미전도종족에 집중하여 국내외 전도여행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이 두 교회에서 목회를 경험하기 전에 솔직히 저는 선교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FTT의 글로벌 전략가로서 저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우리에게 더 시급하거나 의미 있는 다른 목적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한국을 마음에 품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반도에 복음을 전하는 비전을 가지고 온 선교사들에게 한국교회가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우리는 그 은혜를 자유롭게 전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1세기 거의 모든 분야에 세계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인류의 상호 연결 (전 세계적 유행병을 통해 우리 모두가 배운 교훈)과 함께 디아스포라 교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복음 전파를 가속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독교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점을 연결하는 어린이들의 놀이처럼 21세기 복음을 위한 ‘로마의 길’을 만드는 연결점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글로벌 네트워크와 어떻게 협력하여 오늘날까지 우리를 이끌어 준 선교의 추진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미전도종족의 마지막 종족에 도달하는 데 어떤 독특한 기술과 자원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2033년까지 모든 종족과 지역에서 성경, 신자, 교회를 갖도록 하는 목표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5:9b)

또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기도하면서,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자원 중 하나인 1.5세대, 2세대 및 3세대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도와 비전의 계승자입니다. 그들은 또한 역동적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계에서 태어난 디지털 세대입니다. 디지털 매체는 복음을 위한 또 다른 21세기 ‘로마의 길’입니다. 그러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세대와 2세대 사이에 장벽이 될 수 있는 문화적 도전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전들을 장벽이라고 보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더 넓은 시각을 얻고, 대위임령을 위해 지식, 경험, 네트워크와 같은 세대별 자원을 모을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즉, 위에서 언급한 기관 간, 교파 간, 분야 간 협업 외에도 의도적인 세대 간 협업, 통합 및 연속성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6장과 시편 78편 전체에서 세대 간의 제자화의 중요성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세워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5세, 2세, 3세 (그리고 그 이후)는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교회를 이끌고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살피고 양육하라고 주신 아이들입니다. 누구도 영원히 살지 않지만, 그 일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대위임령과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릭 워렌 목사님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모든 유형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어느 누구나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교회와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가 대위임령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의 역량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우고, 추진력을 쌓고, 자원을 통합하고 또한 이전 세대보다 대위임령에 더 나아가기 위해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 우리의 힘을 연합할 때가 아닐까요? 이 세대는 특별히 정보 기술을 통해 빠르고 복잡한 세계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현재 살아 있으며, 앞선 세대의 모든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과거는 더 이상 기회가 없고 미래의 기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에는 추수 사역에 참여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한국 디아스포라 교회는 오늘날 살아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민생활의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했고 인내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정착했습니다. 대위임령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1세기 교회와 그 이후의 교회 전체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21세기에 세계 대위임령을 위한 노력에서 현재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현명하고 자비로우며, 총명하고 대담한 사람인 모르드개는 어린 사촌에서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이 때를 위함”이라고 도전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 4:14)

한국교회와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그리고 더 넓은 한인 기독교 공동체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이 가장 활발히 기여할 때입니다. 대위임령을 위한 시간은 항상 지금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9)

리사 박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 한인 2세 사역자이며, 현재 FTT (Finishing The Task)의 글로벌 전략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캐나다 성서 협회에서 온타리오 및 누나부트 지역 이사로 재직했습니다. 한국, 싱가포르, 캐나다에서 14년간 목회와 교회 사역, 특별히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 사역에 집중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KAICAM)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고든 콘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M. Div)와 성경언어 석사 (MABL)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틴데일 대학 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리사 박 목사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복음을 위해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젊은 세대를 동원하는 일에 열정적입니다.

  1. 피니싱더태스크 (FTT)는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나 성경, 신자, 교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 세계의 교회와 연합하고 촉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운동은 전 세계의 미전도종족 (UUPG)을 추적하고 그들과 접촉하기 위한 데이터 통합을 목표로 200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2033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인 대위임령의 2,000주년을 맞아, FTT는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하고 성경 번역과 관계 형성, 복음화, 간증 사역, 그리고 교회개척 등 보다 광범위한 협동 목표를 위해 교회와 단체들을 결집하고 있습니다. finishingthetask.com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2. 개인/단체 이름 및 지리적 위치와 같은 특정 세부 정보는 보안상의 문제로 변경되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FTT 파트너가 보내온 것이며 FTT 소식지를 통해 공유되었습니다. 사진은 FTT 파트너가 제공한 것입니다.
  3. 2021년 FTT 1월 소식지 참고.
  4. 2021년 FTT 3월 소식지 참고. 더 자세한 내용은 더글라스 콥 (Douglas Cobb)의 책 "And Then the End Will Come: The Completion of the Great Commission and Nine Other Clues that Jesus is Coming Soon" (2021) 참고.
  5. 2021년 FTT 5월 소식지 참고.
  6. 2021년 FTT 4월 소식지 참고.
  7.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2세 지도자들은 전통적인 1세대의 리더십 스타일과 교회 구조에 대해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새벽 기도는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8. 전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모인 영어 과정 있는 공인된 신학교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미전도종족이 있는 곳에서 섬기고 있는 좋은 친구들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간증

이란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

샤힌 사역자 (터키 삼순 교회개척자)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롬 1:5)

제 이름은 샤힌 샤하비입니다. 저는 1974년에 이란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없는 은혜를 베푸셔서 자격 없는 죄인인 저와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켜 주셨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저는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제 삶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경건한 무슬림에서 무신론자로

저는 이란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무슬림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이슬람교를 따랐습니다. 이슬람 기도를 하고 모스크에 가고, 꾸란 공부도 했습니다. 12살이 되던 해, 친구와 욕설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에 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던 사람에서, 말하기 전에 이 말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이것은 저의 모든 행동에 스며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저는 그것이 신이 보기에 옳은 것인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신은 나를 매우 사랑하고 나는 신이 보기에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지만 오직 나만이 경건하고 신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돕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들의 말투와 생각과 행동을 판단하며 진심으로 미워했습니다. 제가 연락하는 사람들의 수는 매일 점점 줄어들었고 제게는 더 이상 친구가 없었습니다. 저는 자유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 대신 예배하면서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차츰 샤리아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많은 기도문을 외웠으며 다양한 기도와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슬람 율법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보복, 지하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 등 이슬람 율법에 대한 많은 모호함에 직면했습니다. 또한 저 자신 역시 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기도와 기원이 아랍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의미를 알 수 없었고, 기도하는 동안 항상 산만해졌습니다. 신 앞에서 잘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해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것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보고 혼란스럽고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샤리아의 법을 남용했고 그들의 잘못을 정당화시키는 방법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을 떳떳하게 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지옥에 가면 받을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꾸란을 암송하며 죄짓는 것을 멈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문들을 외웠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신과의 교제와 평안을 위해 의지했던 종교가 점점 더 혐오스러워졌고, 잔인한 신에 대해 점점 더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 율법은 더이상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저는 그것을 종교인들의 겉으로만 드러나는 행동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점차 이런 남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을 싫어했고, 다른 사람도, 나 자신도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 신앙심이 깊고 경건한 사람들은 더 죄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하게 행동했지만, 경건해 보이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만 샤리아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4년이 흐른 후, 저는 저 자신이 너무 싫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시작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과도, 다른 사람들과도 화해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열심히 기도했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 점차 기도를 중단하고 무신론을 택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우주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인도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표지판을 사람들의 길에 놓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저는 예상치 못하게도 신의 계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저의 이런 사고방식을 이용하셨고, 기적적으로 저를 그분의 한없는 은혜로 부르셔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알리고,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사용하셨습니다.

믿음의 첫 번째 여정: 하나님을 인정하다

제가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았을 때, 제 형이 플로렌스 스코블 신이 쓴 네 권의 책을 주었습니다. 그 책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힘을 얻기 위한 기도 모음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 본 뒤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무의미했지만, 저는 정중하게 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우 바쁘니 틈이 나면 읽겠다고 말하고는 책을 집 한구석에 던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테헤란에서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신청했는데, 매우 이상한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저는 거래가 잘못되어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며칠 밤을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는 형이 준 책을 보았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내일 닥칠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믿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 중 하나는 저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제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이 짐을 당신께 맡겨드리니 날 대신해 이 짐을 져주세요.”

다음날 제가 아주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저도 모르게 이 기도를 했고 그 문제는 기적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부끄러웠고, 하나님의 능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며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 책의 기도를 제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경우에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만 믿었고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두 번째 여정: 다시 신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어느 날 저는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계속 거울을 보며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승객들이 내렸을 때 그는 제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제가 기도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는 “알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고 그에게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마치 신의 사명을 받고 제게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충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꾸란과 하디스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면서 저에게 기도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30분의 장황한 설득 후 마침내 그는 제게 다시 기도를 시작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저는 이 이상한 사건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지만, 매우 신중하고 강박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4라캇 (예배 동작) 기도에 1분이 걸렸지만, 저의 기도는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기도문이 아랍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하는 모든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앵무새처럼 책을 읽지 않았고, 꾸란의 기도와 암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잘못된 길에 들었던 것이고, 이번에는 올바른 길로 가서 건강한 삶을 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시금 저의 사고방식과 말투가 변하기 시작했고, 신의 율법과 계명을 남용하지 않고 신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믿음의 세 번째 여정: 잘못된 길에 빠지다

6개월 후, 직장에서 한 친구가 자기의 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신이 제게 전하라고 하신 메시지가 있어 저와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아흘 알 하크라는 종교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종교는 모든 인간은 50번 태어나고 총 천 년을 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건하게 살면 어느 시대나 천국에 가서 세상에 돌아오지 않지만, 경건하게 살지 않는다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내용은 어떤 영적인 상태에서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에도 같은 상태로 시작해서 거주지, 가족, 재정, 종교적인 지위 및 모든 영역에서 영적인 진화를 이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몹시 나쁜 영적 상태에 있으면, 다음 세상에서 늑대나 나무와 같은 동물의 형태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경건해질 시간과 기회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전생에 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새로운 삶 속에서 완전한 길을 계속할 수 있는 좋은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생명이 남아 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매우 짧으며 가능한 한 빨리 경건한 길을 따르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이것이 저를 위한 징조이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종교에서 말하는 길을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옥으로 가거나 심지어 다른 삶을 위해 세상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앙심이 깊어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항상 기도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꾸란을 암송하며 보냈습니다. 점차 신과의 소통에 대한 집착이 커지면서 기도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저는 다시 샤리아법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엄격했고 다른 사람들을 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대신 일상적인 대화와 농담, 웃음에 낭비하는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천국에 갈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저를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었고, 제 가족생활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삶과 가족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제 삶에 많은 긴장감이 있었고 결혼 생활은 이혼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무력하고 비참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6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저는 어렸을 때 언약을 맺었던 친구를 만나 그에게도 이 종교가 경고하는 위험과 그가 가야 할 길의 어려움을 알리려 했습니다.

믿음의 네 번째 여정: 드디어 만난 복음

제가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 친구는 제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주제에 도움이 될 만한 친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차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고, 우리는 다음날 밤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다음 모임에서 만난 그와 그의 친구는 그들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죄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갈 수 없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해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해 완벽함에 도달할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가 경건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대신 형벌을 받고 우리를 경건하게 하셨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신 앞에서 경건해질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들의 말이 저에게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매우 행복하고 흥분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수년 동안 꿈꿔왔던 하나님이었습니다. 경건해질 수 있는 이 길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몇 번 더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슬람교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기독교에서 해결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기독교에서 좋은 것들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불쾌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저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증오를 느끼지 않았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태어나게 해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조건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마침내 탕자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 방황하던 내가 바로 그 소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신기한 방식으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안전해졌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제 마음을 드렸고 악몽은 끝이 났습니다. 저는 꾸란을 읽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 화를 내는 데 시간을 보내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의 존재를 즐기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위기에 처했던 결혼생활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저의 가장 큰 증거입니다.

이란의 가정교회

제가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기로 결심한 후, 제 친구의 집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의 신앙을 증언하였습니다. 그것은 달콤한 축제였습니다. 모두가 노래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아주 이상했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가득했고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날 이후 매주 친구 집에 가서 기독교에 대해 배웠고, 그들은 내가 가진 많은 질문에 답해주곤 했습니다. 또 우리는 함께 기도했습니다. 한 달 뒤 저는 가정교회모임에 초대받아 함께 했는데, 거기서 제 질문에 답하고 가르쳐 준 사람이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각 가정교회는 목사님의 결정에 따른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정부의 위협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 문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속해 있던 가정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실명, 전화번호, 주소, 직장 등 개인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신도들은 교회 밖에서는 아무런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고, 오직 목사님만이 응급상황에 대비해 신도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임 장소와 요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교회가 모이는 날도 대표자가 발표했습니다. 누구도 가정교회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을 때는 먼저 목사님과 조율해야 했고, 기도 후 목사님의 안내에 따라 보통 목사님이나 교인 두 명이 함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동안에 다른 신도들은 복음이 잘 전파되고 성령이 듣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교회 밖의 새신자이거나 교회 출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음에 목사님이 몇 번 말씀을 나눕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교회로 초대하곤 했습니다. 이란에 있는 교회들은 세례식을 할 때 체포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 때문에 보통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이란 밖의 교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각성

지도: 터키 흑해권역 삼순

이란에서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 공무원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고, 기독교인으로 태어난 노년 층만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목사가 다른 사람의 교회 출입을 허용하면 교회를 폐쇄합니다. 가정교회가 노출되면 엄벌에 처해지기 때문에 이란에는 많은 지하교회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지하교회에 대한 엄격한 감독이 없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새로운 신자들을 학대하는 지하교회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란의 교회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이란 외부의 많은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사역자들은 새로운 신자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전달하고 그들을 정부와 거짓 교사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상의 가정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인스타그램 채널에는 이란에서 우리를 교회로 선택한 많은 이란 방문자가 있고, 그들은 이 채널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 중 몇몇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란에는 많은 신도가 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교회 신도들 외에는 아무도 그들의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 지하 교회와 그 교인의 수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신자가 회원으로 있는 가상의 가정교회도 많기 때문에 이란 신자들의 수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이란에서는 큰 영적 각성이 일어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이란인이 천국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배 인도자로의 부르심

삼순교회 예배 녹화

난민이 되어 터키에 도착한 후, 우리 가족은 얄로바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등대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1년 반 후, 경찰이 우리 가족을 삼순으로 보냈고 저희는 삼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삼순 교회 예배는 통역이 있었고,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성도들은 이어폰을 통해 실시간 통역으로 터키어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교회 예배를 위해 기타를 연주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타를 칠 줄도 몰랐고 기타를 사서 레슨을 받을 돈도 없었습니다. 저는 몇 주 동안 예배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것에 대해 오르한 목사님께 말하려고 고민했습니다. 저 자신도 스스로 적임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부끄럽고 어리석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격려하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마침내 한 달 뒤에 교회 모임이 끝나고 오르한 목사님을 만나서 만약 교회에서 기타를 사주시면 예배 때 연주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르한 목사님은 저에게 기타를 얼마나 잘 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전혀 모르지만 곧 배워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음 짓더니 그냥 가버렸습니다. 저는 스스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한 말을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2주 후, 오르한 목사님이 저를 교회 앞으로 불러서 예배용으로 산 기타를 주었습니다. 교회의 재정이 딱 기타를 살 수 있는 만큼 있었다며, 제가 한 달 후에 예배팀에 합류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퇴근 후 새벽 3시까지 기타 연습을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없었기에 인터넷으로 기타를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는 한 달 뒤 교회 예배 때 부르는 첫 찬송가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사역 초기에는 찬송가를 매주 연주해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찬송가를 늘 려나갔습니다. 이후 탄셀 형제가 예배팀에 합류했고 저는 지금까지 교회 예배 인도로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개척 이야기

시놉교회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세례 전 훈련을 인도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주간 모임은 교회성도의 집에서 교대로 이루어지는 가정교회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이때 얄로바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 삼순에서 페르시아인 교회를 세우려는 한 목사 친구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를 돕기로 하고 1년 동안 주일에는 삼순 교회와 가정교회 모임에도 참석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후 삼순 교회 사역이 활발해지면서 가정교회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삼순 교회가 동쪽으로 170km 떨어진 도시인 오르두에 교회를 개척하였고, 저는 그곳에서 통역하고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삼순에서 서쪽으로 160km 떨어진 도시인 시놉의 가정모임을 섬기도록 저를 부르셨습니다. 매주 주일 삼순 교회 예배가 끝난 후, 저는 가정교회를 열기 위해 시놉에 갔습니다. 동시에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일주일에 6일, 하루 11시간씩 일해야 했습니다. 저는 시간이 부족했고 교회에서 필요한 봉사를 하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놉의 가정교회를 섬기는 데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도들의 집에서 교대로 예배를 드리는데, 때로는 예배 장소로 정한 사람의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결국 급히 장소를 바꿔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경우에 다소 혼란하고 불협화음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가 시놉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외버스를 타야 했는데, 저는 난민 신분이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가려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경찰은 저에게 매주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허가 없이 시놉에 가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시외버스표를 사기 위해서도 경찰의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놉행 티켓을 사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삼순을 떠났다는 것을 경찰이 알게 된다면 저는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시놉 사역사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의 재정적인 지원과 기도로 삼순 교회에서 예배를 섬기며 동시에 시놉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저는 삼순 교회에서 전임 사역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더 나은 섬김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시놉의 교회가 축복을 받고 성장하여 시놉 교회의 예배 장소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삼순 교회를 통해 차를 살 수 있게 해주셔서 시외 여행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시놉, 초룸, 아마시아 등 인근도시로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현재는 경찰의 허가 없이 다른 도시로 여행할 수 없는 점이 저의 유일한 위험요소입니다.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께서 지난 세월 동안 저를 지켜 주셨듯이 앞으로도 계속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에 관해서는 여전히 형제 자매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과 다른 도시로의 여행 금지, 교회 모임의 폐쇄로 인해 교회를 온라인으로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흑해 연안의 페르시아어 사용자들에게 사역하기 위해 흑해 연안 교회 인스타그램 채널을 개설했고, 흑해 연안뿐 아니라 이란 등에서도 방문자가 있습니다. 이후에 교회에서 수요일 예배를 녹화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 신도들을 초대해 예배 참여할 수 있게 했고 녹화가 끝난 후 신앙 훈련을 했습니다. 이 시간은 매우 축복된 시간이었고, 교회가 성장하고 더 연합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비록 우리 교회는 흑해 지역에 있고 우리의 목표는 이 지역에서 사역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삼순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진 도시인 초룸과 아마시아로 인도하셨습니다. 팬데믹 봉쇄 이후 평일에 다른 도시로 여행하는 것이 허락되었을 때, 초룸과 아마시아를 위한 기도와 더불어 우리는 매주 이 두 도시를 찾아가며 신자들과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임을 축복하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매주 초룸에서 터키 신자들을 위한 터키어 교회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임들은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축복하셔서 성도의 수를 끊임없이 늘려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페르시아 교회의 모임이 곧 초룸 교회에서 열릴 것입니다. 올해 우리의 비전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마시아에 페르시아어, 터키어, 아랍어 3개 언어로 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비전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후, 제 안에서 일어난 변화들로 인해 이혼 직전이었던 저희 부부 관계가 치유되었습니다. 비록 제 아내는 이란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이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시절, 그녀는 큰 지지와 공감으로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터키에 와서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그녀의 인내와 지지는 항상 저의 사역을 통해 우리 삶에 들어온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우리 교회 예배, 특히 교회 여성들을 위해 사역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8년부터 신앙을 갖게 된 저의 아이들은 항상 정직함으로 믿음을 지켜왔고 저의 사역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현재 제 딸은 피아노를 치며 교회 예배를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의 지원으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베푸신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영원히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세상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위해 우리를 도와주신 여러분의 아낌없는 기도와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하기를 빕니다.

파트너 칼럼

난민 사역 연합의 비밀

데이비드 박 선교사

아크로폴리스

그리스와 난민

아테네에 오면 시내 중심지에 마치 서울 남산같이 그리고 LA의 그리피스 공원 같은 위치에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보입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언덕 위의 도시를 뜻합니다. 3천 년 역사의 5개 대리석 신전 가운데 아테네의 여신을 기념하는 파르테논이 대표적입니다. 아테네 여신의 조각상인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숭배하는 이 신전은 동정녀를 뜻하며 기원전 447-432년에 세워졌습니다. 이후 6세기 말부터 1458년까지는 파르테노스 마리아, 즉 동정녀 마리아를 기념하는 정교회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아테네 도시제국의 수호신이었던 아테나 여신은 고대시대부터 지혜와 정복을 상징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정교 신학의 431년 에베소 공의회 (Council of Ephesus)에서 테오토코스 (Thoetokos) 즉, 신의 어머니 (Mother of God)로 인정되었습니다.

아야 소피아 (γία Σοφία, Divine Wisdom), 지혜를 선호하는 그리스 정교회는 저희의 선교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스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 세계는 선교 대상이라기보다 봉사의 대상입니다. 저희가 협력하고 있는 그리스 복음 단체 NGO인 헬레닉 미니스트리 (Hellenic Ministries)는 40년 이상 된 선교 단체입니다. 이곳에는 여러 부서가 있고, 70여 명의 선교사가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협력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난민 사역입니다. 또한 그리스 헬라인들을 상대로 하는 노숙자 급식 사역과 그리스어 성경을 시골 지역에 배포하는 사역인 여호수아 작전(Operation Joshua)이 있을 때에도 함께 돕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리스 정교는 복음보다 복종 그리고 말씀보다 관습에 멈춰 있습니다. 모든 종교적 행위를 전문 사제가 대신하는 구조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뿌리가 깊고 깊어서 마치 2,000년 된 나무같이 저희가 이해하기 힘든 질서가 있습니다.

선교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슬림 난민들을 디아스포라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까지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정교회는 난민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3만여 명의 헬라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백여 명의 선교사들 (한인 선교사는 10명 남짓)이 난민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포함한 서구 선교사들은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을 많이 하지만, 많은 이들이 교실 안에서 강의보다 지상대명령을 따른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난민 상황을 보면, 이란 및 아프간 난민들은 그리스에서 평균 3년 반을 모범 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2021년 현재 목도하는 현실은 이들 중 1/3은 독일이나 북유럽으로 진출이 허용되고 1/3은 다시 터키나 이란으로 추방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1/3은 그리스에 남아서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어려운 경제 속에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섬기는 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들을 통해 많은 기적과 열매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난민 선교

구제사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2-24)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이 된 이란과 아프간 지도자 형제들은 믿은 지는 수개월에서 십 년 이하밖에 안되었지만 벌써 수십 번에서 수백 번 이상 성경을 통독한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저희 같이 어릴 적부터 성경에 익숙하고 성경 대학이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외국 사역자들과는 다릅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38-39)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위 말씀을 보며 아직도 표적을 구하는 중동 지역의 유대인들과 지혜를 구하는 서구 유럽의 헬라인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표적’이란 단어는 ‘표시’라는 뜻의 헬라어 세메이온 (shmei'on)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세마 (sema)이며, ‘신호를 보내다, 신호하다, 지시하다, 알리다, 보이다, 가리키다’라는 뜻의 세마이노 (shmaivnw)의 어간에서 추정된 파생어입니다. 여기에는 ‘지시, 신호, 표시, 상징, 징후, 전도, 기사, 표적, 기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슬림이었던 난민 기독교인의 3분의 1은 꿈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또 다른 3분의 1은 꿈으로 예수님을 만난 친구나 친지를 통해서 전도됩니다. 나머지 3분의 1은 내부 전도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지혜를 선호하는 헬라인들의 문화는 저희와 같이 교육 체제로 지식전달이 이뤄집니다. A.W. 토저는 이 세상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사가 거룩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열정을 투자합니다. 교실에서 모든 학생들을 앉혀 놓고 강의나 설교를 통해서 제자훈련을 합니다. 저희에게 익숙한 이 교육 방법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는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표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이었고, 바울 사도가 가르친 최고의 지혜는 알지 못했던 것을 믿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에게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축복입니다. 표적과 지혜의 방법을 통해 전쟁과 궁핍을 피해서 유럽 그리스까지 도달한 난민들이 진정한 축복을 찾을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난민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교입니다.

난민 기독교 지도자 훈련: 연합으로의 부르심

그리스의 팬데믹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2021년 여름, 저희의 협력 단체인 헬레닉 미니스트리에서 그리스에 임시 거주하고 있는 30명의 페르시아인 난민 기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수련회를 개최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외국 선교사들이 캠프를 섬기며 봉사하고 말씀과 강의는 페르시아인 교회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이 인도했습니다. 이번 수련회의 주제는 연합(Unity)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체성 (Identity in Christ)이었습니다. 무슬림 출신 난민 지도자들을 섬기면서 표적과 지혜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 안에서 연합할 수 있는지를 다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난민 기독교 지도자 수련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난민 기독교 지도자 수련회는 총 일곱 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세션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연합’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 사랑, 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어 사는 것이라는 것과 (빌 1:27-2:11),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연합은 각자 받은 소명으로 복잡하게 엮여 있다 (엡 4:1-16)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어진 그룹 토의 시간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통합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기독교인들의 통합을 생각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무엇이 "완전한 통합"을 어렵게 하는지, 페르시아 기독교 공동체의 연합과 관련해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논의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지역에서 일곱 개의 난민교회에서 난민 지도자들과 3개의 제일 큰 규모의 단체 대표들이 모여서 어떻게 서로 협력할 수 있을지를 나누었는데, 부끄럽게도 사역자들의 부족함이 원인이었습니다. 각자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만든 공동체 안에서 다른 공동체의 난민과의 교류를 막고 있었습니다. 교회와 교회 간 협력이 없는 모습을 선교지에서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수련회 도중 이란에서 예배드리는 공동체를 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 선교사들이 모두 떠나자, 이란 기독교인들이 그제야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 협력하고 핍박 안에서 서로 위로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체험하고 있다고 간증했습니다.

두번째 세션의 주제는 ‘우리는 연합하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진리의 메시지, 복음을 듣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믿었을 때, 우리는 약속된 성령으로 봉인되었다는 것과 세상이 창조되기 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오늘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엡 1:3-14)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 일하는 방식, 특히 연합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토의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표적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육신의 몸과 같이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서로 협력할 때에 성령님의 교통하심을 체험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하여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협력하며 의지할 때 서로 지치지 않고 오래갈 수 있으며,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통해서 그의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운동 경기처럼 우리 모두가 한 팀이 된다면 훨씬 재미있고 즐겁게 하나님 나라의 마인드로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비판적 인종 이론 (Critical Race Theory)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억지로 획일성을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의 영향은 학계와 문학 그리고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십자가의 표적으로 죄인들이 “In God We Trust”가 아닌 “We Trust In God”의 자세입니다. 서로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표적으로 보여주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세션의 주제는 ‘요셉의 삶을 통한 용서의 성서적 관점’이었습니다. 과거에 실수한 사람을 용서했지만 진짜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았던 이가 있다면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용서하고, 연합과 평화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유를 가지라 (시 133)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룹 토의 시간에는 우리가 왜 남을 용서해야 하는지, 용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또한 용서 없이 건강한 연합과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지, 용서의 모범에는 누가 있는지를 토의했습니다.
저는 난민 지도자들과 올해 71주기 된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원자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전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사랑의 원자탄 같은 이야기들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참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네 번째 세션의 주제는 '용서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었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과 뜻과 권세 아래 일어난다는 큰 그림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룹 토의 시간에 용서는 우리 삶의 연합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용서에 대한 개인의 견해는 무엇인지를 토의했습니다.
용서는 우리가 할 수 없고 성령님이 능력을 주셔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큰 그림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각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의 세계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진정한 양보와 용서를 구한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나라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720만 명이 방문하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약 1,000년 동안 교회로 사용되었지만, 1458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면서 화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베네치아와 전쟁 중 1687년 지붕과 벽이 폭파되었고 지금은 63개의 기둥만 남았습니다. 현재 45년째 복원 중이지만 벽과 지붕을 다시 옛 모습으로 재건할 것인가 논쟁 중입니다. 벽과 지붕이 없어졌지만 아름다운 기둥들을 가장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조금 떨어진 케라미코스 거리입니다. 이곳은 3,000년 이상 도자기를 생산하던 곳이고 공동묘지가 있는 화장터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금이 지역은 마약범들과 사창가로 변질되어서 관광객들이 꺼리는 곳이지만 동시에 중국인 도매상가와 식당들이 들어선 상업지역입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다수 투표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는데, 이 가운데 2백 년 동안 이어지던 민주주의를 망하게 한 요소 중 하나는 도편추방제였습니다. 시민들이 마음에 안 드는 정치인이나 군인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새겨 놓고 그것이 6,000개가 넘으면 아테네에서 10년간 추방되었습니다. 보복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능한 정치인들과 인재들이 대중에게 미움을 받아 추방 또는 사형을 당했고, 전쟁의 위기에서 지도자가 없어진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승리했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은 일반 시민들에게 미움을 사서 추방되었고, 결국은 페르시아 왕 아크타크세르크세스에게 도지사 임명을 받고 생애를 마쳤습니다. 아테네 해군지휘관으로 가장 유능했던 키몬 장군은 법적으로 추방을 당하자 자기 군함으로 아테네 밖에서 죽을 때까지 아테네를 지켰습니다. 질투와 보복으로 점철된 아테네의 정치는 결국 아테네를 멸망시킨 요소가 되었습니다. 용서가 없는 공동체는 비난과 보복뿐이며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 세션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다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름을 결합하는 네 가지 원칙 (고전 12:22)과, 다름의 결합에 있어서 경계는 무엇인지 (엡 2:19-22), 그리고 장래 우리의 모습 (계 7:9-10)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의 다름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룹 토론을 위해 왜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것들의 결합을 위해 기도했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가 되는 것과 통일성이 없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질문하였고, 신학의 차이 때문에 다른 기독교인들과 어울리거나 함께 봉사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는지, 다른 사역자들과 연합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의했습니다.

난민 지도자 수련회는 바닷가에 있는 헬레닉 미니스트리의 수양관에서 열렸습니다. 그곳의 비스듬한 산기슭은 돌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알바니아 출신 함자 아저씨는 30년 동안 돌을 옮기면서 손가락의 지문들이 다 지워졌습니다. 그분의 손바닥은 마치 탄탄한 가죽과 같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찍어낸 벽돌이 아니라 거친 돌로 칭하셨을까요? 베드로의 이름과 같이 울퉁불퉁한 돌은 서로 짝이 맞으면 퍼즐과 같이 이어지면서 서로 지탱하고 오래가는 건축물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구멍이나 틈이 있는 부분을 다듬어 맞출 수 있다면 혼자보다 능력 있는 믿음 생활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지어져 가는 일을 십자가에서 손바닥에 구멍이 뚫리신 예수님께서 원하십니다.

여섯 번째 세션의 주제는 '신뢰–예수는 어떻게 다른 이를 신뢰했는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다른 이에게 의탁하지 않았는지 (요 2:23-25, 요 8:30-59) 살펴보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신뢰가 중요한 이유 (요 14:1)와 관계에 있어서 신뢰의 중요성 (요 13:13-16, 요 17장)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룹 토론 시간에는 우리는 모두를 동등하게 믿어야 하는지, 먼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누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관계를 신뢰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과제 및 보상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논의하며 개인의 성숙함에 모든 게 걸려 있다고 의견들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지만 책임감과 청렴함 (integrity)에 따라서 공동체가 협력할 수 있고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터로프 (Taarof)는 공동체 안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관습으로 서로 존중하면서 연합을 유지하는 이란/아프간인들의 문화입니다. 한국인들의 갑질 문화와 교회들 사이의 경쟁은 선교지에서 거듭난 영혼들의 성숙과 연합 질서를 무너뜨리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세션의 주제는 '믿음-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있다'였습니다.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신자들 사이에서 신뢰의 역할, 신뢰의 한계와 경계,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연합과 신뢰의 역할, 신뢰와 하나님 왕국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룹 토론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신뢰와 연합이 왜 중요한지, 교회에서 원하는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신뢰의 한계는 무엇이며 우리 모두 신뢰할 수 있는지 질문해 보았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어떻게 행해지는지 토의했습니다.

난민 기독교 지도자 수련회의 마지막 결론은 먼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서로를 향한 신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In God We Trust”는 서로 믿지 못하는 관계를 말해주지만, “We Trust In God”은 믿는 자들의 단결입니다. 연합하는 관계는 먼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서로 신뢰가 가능해집니다. 명예-수치 문화권에서 후견-피후견 관계는 선교지에서 연합을 추구하지만, 한국의 갑을 관계와 미국의 우월 콤플렉스는 서로 분리를 만드는 악입니다. 인종차별의 과거는 반성해야 하지만 사회정의 운동을 통한 손가락질은 용서보다 비난과 혐오를 가져옵니다. 지금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비판적 인종 이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평등을 가져다준다는 이상으로 교계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연합과 획일화는 현저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연합을 위한 실제적인 세 가지

문화 이해 (Understanding Culture)

이란, 아프간 난민들은 유럽 문화와는 달리 터로프라는 예의를 표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보통 어떤 것을 달라고 할 때 다섯번씩 물어보고 나서야 진심을 이야기해줍니다. 서유럽 선교사들은 난민들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돈을 건네준 이후 소식이 없어서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빌려달라는 말은 명예-수치 문화에서 예의상 발언이고 실제로 후견-피후견 관계를 결정하는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선교지에서 현지인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우리 관계가 더욱더 두터워졌습니다. 어렵게 사역하시던 동료 선교사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시고 현지인들과의 관계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무슬림이었던 난민들의 선교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명예-수치 문화와 후견-피후견 관계, 그리고 터로프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난민 형제가 제가 쓰고 있는 카메라를 빌려 달라고 하면 자기가 필요하고 잘 사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에 달라는 예의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한 관심 (Communication with each other)

사실 모든 난민이 궁핍한 배경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 땅에 도착한 일부 젊은 난민 형제들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건강하고 다양한 능력 통해 재물을 모으고 있습니다.

음식을 배급받던 아들 셋인 가족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농사를 짓다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테러가 한창이던 지역에서 세 아들이 혹시 탈레반에게 잡혀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마약 중독자가 될까 봐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웃 친척에게 맡기고 온 땅은 헥터 에이커가 넓은 농지였습니다. 한 젊은 형제는 자기는 외아들인데 아버지는 택시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물어보니 실제로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택시는 50대나 되었습니다. 이처럼 질문과 관심의 대화는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합니다.

존중 (Respect)

그리스에 온 난민들은 하나같이 궁핍해 보이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현재 그리스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영웅이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 불법 이주민 가족에서 태어난 지아니스 아데토쿤보는 아테네 길거리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청년이었습니다. 18살까지 여권과 국적이 없던 소년은 키가 6피트 11인치로 건장했습니다. 동네에서 열심히 농구를 하다가 2013년 미국 NBA 드래프트에서 15번째로 뽑혔습니다. 계속 열심히 운동한 결과 4년 후 2017년에는 기량이 가장 많이 향상된 선수로 선정이 되었고, 지금은 밀워키 벅스에서 NBA 역사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그리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저는 10살 때 장로교회 목사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서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1970년대는 한인들이 많이 없었을 때라서 제가 다니던 LA의 초등학교에 한국인은 저와 여동생뿐이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미술을 공부하고 패서디나 미술대학을 다녔습니다. 인근에 옥시덴털 칼리지라는 작은 사립 대학이 있었는데, 여기 다니는 한인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작은 야외 농구장에서 같이 농구 하자고 조르는 하와이 출신 베리라는 흑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손가락을 다치면 미술 작업에 지장이 될까 봐 절대로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아직도 후회합니다. 그때 그 청년이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표적과 지혜 그리고 연합

난민을 향한 선교는 표적과 지혜가 함께 가는 제자훈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혼들을 추수하는 때입니다. 추수꾼으로 현지에 온 선교사들의 연합은 가장 중요합니다. 새로 예수님을 만난 영혼들의 미래를 위해서 연합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무슬림 배경의 기독교인들은 공동체를 강조하는 이슬람 체제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는 진정한 연합은 참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연합은 난민 기독교 지도자들뿐 아니라 현지의 사역자, 나아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고민하고 함께 이뤄나가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기 위해 서로 이해하고 관심을 두고 존중하고 협력함으로 우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가져오기를 원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 그리고 지혜를 선호하는 헬라인들 사이에는 저희는 끼어 있습니다. 저희의 지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지식이며, 표적은 기도 중의 확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표적과 지혜로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 그리스에서의 난민사역에 귀한 열매가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간증

아랍어 예배의 부흥을 위해

아르칸 사역자(터키 삼순 교회개척자)

이라크에서의 삶

저는 하나님의 종, 아르칸 한나 닛산 슬로피입니다. 원래 제 이름은 아르칸 한나 닛산입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남동생, 여동생 총 5명이고 가톨릭 배경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살았는데 그곳은 모든 지역에 시아파 무슬림이 있습니다. 저와 제 남동생은 시아파 무슬림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행사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시아파 이슬람 모스크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종교를 매우 신봉했습니다.

저는 축구와 태권도에 재능이 있었는데, 어느 날 축구를 하다가 팔이 부러졌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부러진 팔을 절단해야 한다고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성장한 아이의 팔을 어떻게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시아파 모스크에 가서 치유와 축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곳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알카딤 지역에 있는 다른 모스크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가는 길에 저는 문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복하기 원하십니까? 더 나은 회복을 위해 움 알투크 교회에 가세요!” 저는 그의 말을 듣고 교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교회에 가는 길에 제 안에 교회에 가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시아파와 그들의 모스크와 성지를 많이 섬겼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답을 내리고, 마침내 성가족이라 불리는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미사 홀에서 요셉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맞이해주었고 제 팔을 절단하지 않고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는 저에게 다시 돌아와 하나님이 해주신 모든 일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왔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팔을 절단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의 전화였습니다! 수술 날짜가 정해졌고, 수술은 제시간에 이뤄져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퇴원한 뒤 저를 위해 기도해 준 신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교회 안에서 봉사하도록 권면했고, 한동안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신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자유케 하기 위해 그의 생명을 내어놓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그러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요한복음 1장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11절에서 저는 멈추었고, 제가 읽은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1)

그래서 저는 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어린아이가 제게 나타나서 신의 모습이나 형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몸이 뜨거워지면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을 아이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하나님이 흰색 옷을 입고 위대한 의자에 앉아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놀라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말한 이 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리고 홀연히 아이는 사라졌고, 저는 생각에 다시 잠겼습니다.

저는 제 팔을 수술한 의사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시아파 극단주의 단체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저는 그가 어떻게 저에게 주 예수를 의지하도록 격려했는지 떠올렸습니다. 그는 저를 매우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면 치유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유일한 신은 알라이고 그가 오직 무슬림만을 위한 존재라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알라는 저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저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 예수께 간구하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살해된 의사에게 격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고 나쁘게 여기던 제 사고와 관점을 다시 바꿔야 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항상 신을 욕하고 저주하며, 불법 폭력단을 조직하고 모든 나쁜 일을 저질렀습니다. 저의 나쁜 행실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는 자신의 병이 위중하다며 저에게 이사 올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쁜 그룹을 떠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친구들로부터 저를 멀리 떨어뜨려서 신앙으로 인도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사는 마을에 지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에르빌로 갔습니다. 저는 수메르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사미르 선교사와 하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에게 성경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게 책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제들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에 대해 확신도 없고 신에 대한 좋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터키로의 이주

아르칸 가족

이후에 저는 제 아내 후다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마을에 있는 칼데아 하페츠 알-주루 교회에서 결혼했습니다. 첫아들을 낳을 때까지 저는 어떤 교회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책을 연구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슐레이마니야 주의 헤바트 술탄 지역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리조트의 주인은 저에게 보상으로 가족과 함께 터키 여행을 보내주었습니다. 터키를 여행하던 중에 IS가 우리 지역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터키에 가족을 남겨두고 일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이라크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폭력조직의 지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팔을 수술하기 전에 만났던 바로 그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터키에서 사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에게 돌아갔고, 국제 난민등록을 하기 위해 앙카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났고, 이곳에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나이와 외모의 변화 없이 수년 동안 같은 모습으로 저에게 나타난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그리고 삼순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개신교 교회를 섬기는 터키인 오르한 목사를 만났습니다. 오르한 목사는 저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주었고, 다시 교회에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얄로바 지방의 마나라 교회에서 영적인 수양회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두명의 목사를 만났고, 그들은 하나님과 구원의 복음에 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어서 얄로바로 이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다른 도시로 이사하지 말고 여기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자고 저를 격려하였습니다

삼순 아랍어예배

저는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수양회에 참석하여 바티 목사를 만났고, 그는 저에게 이 일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고, 세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제 아내는 저와 함께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참석자들의 환호와 기쁨 속에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 예수님이 저에게 팔을 벌리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영적 탄생을 느꼈습니다.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저는 아랍어로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 안에서와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는 한 명에서 시작했는데, 짧은 기간 안에 예배의 인원이 증가하고 확장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삼순이라는 대도시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라는 성경의 아름다운 구절을 받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의 비전

아르칸 사역

삼순 아가페 교회의 비전은 모든 난민 사회에 봉사하는 영향력 있는 등대로서 교회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터키 사회에서 영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의 구성원들은 어디에 있든지 말씀을 전하고 섬기며 사회와 조화를 이루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임무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수백 명의 제자를 만들 수 있는 수십 명의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성장을 위해 지역 교회를 돕고 준비합니다. 또한 새로운 그리스도 세대에 도달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목회자와 지역 지도자들을 위한 지속적인 제자훈련과 지속적인 리더십 훈련을 통해 지역 교회 리더십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도와 후속 조치 및 제자훈련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젊은이들과 지도자들을 훈련합니다. 우리 교회는 제자양성과 리더십 개발, 인터넷 및 소셜 미디어 서비스 개발과 터키의 모든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3~16세 청소년들에게 기도하고 성경을 외우며 주님의 신성한 가르침과 계명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고 신앙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라는 말씀을 그들이 어떻게 세상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지 양육하고 있습니다.

터키의 모든 지역에 아랍어 신자들이 모이는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또한 아랍어 예배가 열리는 지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삼순, 초룸, 악사라이, 시놉, 에스키쉐히르, 아피욘, 토캇, 아마시아 각 지역 교회 지도자들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현재, 우리는 시바스, 존굴닥, 크리조, 요즈가트에 가정 교회를 세울 계획입니다. 올해 우리가 4개 도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기도동역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르칸 사역

케빈의 성경 이야기

- 두번째 여정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

케빈 권 사역자

우리는 수리아 안디옥을 떠나 길리기아로 지나가면서 여러 지역에서 가정으로 모이는 교회들을 방문하여 은혜와 평강의 인사를 나누었다. 토로스 산맥의 좁은 협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 길리기아 관문(1)을 상징하는 비문이 있는 곳을 지나서 넓은 광야 길을 따라 이동하여 더베에 도착하였다. 더베에서 형제들을 만나서 기쁨의 재회를 하는 중에 우리 일행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인근에 있던 믿음의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지난번에 같이 왔던 바나바와 다른 형제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들의 문안에 바나바와의 다툼을 떠올리며 나의 성숙하지 못했던 대처를 반성하였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였으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더베의 교회로부터 들은 반가운 소식은 루스드라에 있는 디모데가 자주 더베를 찾아와 유대인의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함께 예배하고 더베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찬양하고 떡을 떼며 주님의 말씀이 더베의 교회를 욱 든든히 세워 줄 것을 기도한 후에 루스드라를 향해 떠났다.

디모데를 부름

하룻길을 걸어 루스드라에 도착하여 지체하지 않고 디모데의 집을 찾아 디모데의 할머니인 로이스와 어머니인 유니게에게 문안을 했다. 그러나 디모데는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나 있었다. 디모데의 아버지 부데는 병으로 인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디모데는 우리 일행이 떠난 후부터 더욱 열심히 할머니에게 유대의 역사와 선지자들의 글에 관해서 듣고 배웠으며,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이고니온에 있는 회당까지 가서 회당장에게 가르침을 청해 공부하고 있다고 유니게가 말해주었다. 또한 인근 각지에서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들에 관한 소문이 들려오면 직접 찾아가 교제하고 함께 예배하면서 기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다며 디모데를 자랑스러워하였다.

루스드라 교회의 형제들과 교제 중에 있을 때, 디모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디모데는 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젖살이 보이던 소년이 아니라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실라와 디도에게 디모데를 소개해주고 우리는 그날 저녁 주의 만찬을 함께 나누며 밤이 깊도록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 일행은 디모데에게 전도여행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리고 불법이 판을 치는 세상에 구원에 이르는 주의 진리가 만민에게 미치어 생명과 소망의 길을 보여 주는 일에 함께하는 것에 관해서 디모데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디모데는 우리의 제안을 기뻐하면서도 할머니와 어머니를 두고 먼 길을 떠나는 것에 부담이 있다면서 며칠 동안 금식한 후에 어른들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우리 일행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동행하고 싶다는 디모데의 말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들도 전심으로 믿는 자들이라 그 아들이 며칠 동안 금식한 이유를 알고서는 우리와 함께 떠나는 것을 축복해 주었다.

루스드라를 떠난 후에 방문할 곳이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인데, 그 도시에는 디모데를 헬라인이자 유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또한 앞으로 로마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많은 유대인을 만나게 될 것인데 디모데의 반쪽 유대인됨으로 인해 발생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는 것이 지혜롭겠다는 생각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기로 했다. 실라와 디도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겠다는 내 의견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러나 할례라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장애가 될 수 없듯이, 할례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지혜로운 결정이 아닐까 설명해주었다. 유니게는 언제 다시 아들을 만나게 될지 기약이 없는 이별로 인해 눈물을 보였지만, 우리의 여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겠다면서 우리 모두를 격려해 주었다. 로이스는 딸인 유니게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외조모도 중보할 것이니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라고 외손자인 디모데와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었다.

실라의 권면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

이튿날 일찍 출발하여 이고니온에 도착한 후, 디모데의 안내를 받아 유대인의 회당으로 가서 그곳 회당장과 인사를 하였다. 회당장은 온 땅에 임할 참된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 자로서 예수가 그리스도인가 상고하고 있다고 했다. 안식일이 되어 실라가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을 지나가실 때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하신 말씀(2)으로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당시 예수님과 함께 있던 우리 모든 유대인은 두 가지 일로 놀랐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입에서 그토록 거친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엄청난 수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게 간절히 요청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 여인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셨기에, 아직 유대인의 율법적 테두리 안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그의 후손들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율법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조상들은 모세의 율법에 얽매어 형식에 치우쳐 참된 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세상의 허다한 종교와 같이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본질상 이방인이 아니지만 그들 스스로 이방인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함께 있던 여러 유대인 제자들에게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여 주시면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마음에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긍휼을 진심으로 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로우신 모든 민족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라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해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권면을 했으나, 듣는 유대인 중에 더러는 우리 일행에게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유대인 전체를 모욕한다며 화를 내었다. 이런 저항은 이미 숱하게 경험하였기에 실라와 나는 담담했으나 디모데는 많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디모데와 디도에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기에 진리의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저항과 고난과 박해가 있을 것이라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며 강하고 담대할 것을 부탁하였다.

누가와의 만남

광활한 광야를 지나 꽃들이 흐드러지게 즐비한 산을 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였다. 제일 먼저 회당으로 가서 몇 년 전에 바나바와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 일행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회당장 바수스(3)를 만났다. 그도 여전히 유대의 율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메시아를 이해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와 여러 날을 보내면서 예루살렘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알려주고,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견고히 잡아 그리스도의 일에 끝까지 동참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었다.

얼마 후에 우리 일행은 비두니아(4)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북서 방향으로 이동하였고, 바다를 만나 드로아(5)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하였다. 드로아는 예로부터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곳인데 지금은 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을 연결하는 해상 무역의 중간 기항지 역할을 하는 해안도시이다. 드로아에 도착하기 전부터 심상치 않던 날씨는 급기야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풍우로 변했고, 우리는 한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여관 내부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서로 다투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관 내부를 돌아보다가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이런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거실로 나오니 어제 글을 쓰고 있던 그 사람이 언제 일어났는지 아니면 잠을 안 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제와 같은 곳에 앉아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도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나보다는 나이가 어려 보였지만 피부는 약간 검게 그을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지니고 있어 뱃사람 같지는 않았고 학자처럼 보였다. 나는 길리기아 다소의 바울이라고 나를 소개하면서 그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도 별반 거리낌 없이 자신은 수리아 안디옥 출신이며, 지금은 의사로 배를 타고 여러 곳을 다니고 있는 누가(6)라고 말하였다.

처음 만났지만, 그가 수리아 안디옥 출신이라는 것과 학식이 있는 언어와 지성으로 인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일행들 모두 모여서 누가와 인사를 나누고, 그 후 시작된 대화에서 누가가 그토록 고민하고 있던 것이 바로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대화는 오후를 넘어 밤까지 이어졌고 우리 일행이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복음의 진리를 세상에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실라는 본인이 직접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디도는 안디옥 출신답게 고향 이야기와 지금 안디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디모데의 신앙 간증에도 누가는 귀를 기울였다. 누가는 자신의 어릴 때 이야기부터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알려주었고, 지금은 배를 타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선상에서 병든 자들을 돌보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예수님에 관해서 들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싶다고 했다. 잠시만 있다가 떠날 요량이었던 드로아에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있어 그들과 더불어 한동안 더 머물게 되었고 또한 누가와의 교제도 더욱 깊어졌다.

네압볼리-빌립보

네압볼리 기념교회

별빛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나가 저녁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환상이 보이기 시작하며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마케도니아의 사람이 보이며 내게 손짓해서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 16:9)고 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기도 시간에 일행들에게 주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이야기하면서 비두니아로 가는 것은 우리의 뜻이었으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마케도니아로 보내기 위해서 드로아로 인도하셨다고 말했다. 이미 로마의 여러 지방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옆에 있던 누가가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하자, 이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길임을 깨닫고 곧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드로아에서 아침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출발하여 사모드라게(7)에 도착하여 하룻밤 유숙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에 네압볼리(8)에 도착하여, 북쪽으로 길게 펼쳐진 팡게이온 (Pangaion Hills) 산맥의 일부인 레카니스 (Lekanis) 산을 넘어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에 빌립보(9) 성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빌립보는 에그나티아 가도(10)가 지나가는 요충지로 도시의 여러 대리석 건물의 아름다움도 대단하지만, 로마제국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도로의 규모가 압권이었다.

며칠 동안 성문 안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유를 찾아보았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는데, 미루어 보아 유대인들이 없거나 아주 소수만 있다고 추측되었다. 안식일이 되어 예배드릴 처소를 찾기 위해 성문 밖으로 나가 지각티강(11)가를 따라 걷다가 그늘진 곳에 이르렀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있는 곳과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우리가 예배드리는 곳 가까이 다가와서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유심히 듣기에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여인은 브루기아 지역의 두아디라(12)에서 온 루디아(13)라는 이름을 가진 옷감 장수였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유대인의 성경에 관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루디아가 성경에 관해서 자세히 알기 원하기에 나는 성령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신 이유가 이 여인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빌립보 외곽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함께 갔다. 그 집은 빌립보에 올 때마다 사용하는 자신의 집으로 옷감을 팔기 위해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빌립보

복음을 듣는 중에 루디아와 그 집에 있던 많은 사람은 그동안 장사를 하면서 마음에 거리끼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도 과연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중에 나병 환자의 예(14)를 들었다. 나병에 걸린 열 명의 환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모두 나음을 받았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한 사람은 오직 사마리아 이방인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며 축복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에 나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1-2)

라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것을 권면하였다. 주께서 루디아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고 믿음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날로 루디아가 우리 일행을 강권하여 그의 집에 머물게 하기에, 루디아의 집을 중심으로 빌립보 성내에 있는 여러 사람을 만나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였다.

시간이 되어 기도하러 나가는 중에 귀신들린 여인을 만났는데 우리를 뒤따라오며 소리를 질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귀신들린 여인은 빌립보 지경의 무당들이 사람들의 길흉화복과 점을 치는 데 이용하여 많은 수입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하루는 실라와 둘이 기도하러 성 밖으로 가는데 귀신들린 여인이 나타났다. 내가 심령이 매우 괴로워 그에게 이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행 16:18)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고 그 여인은 쓰러져 마치 죽은 자처럼 되었으나 곧 일어나서 이전과 같지 아니하고 온전한 정신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신 들렸던 여인의 주인인 무당들이 장정들과 함께 와서는 수입원을 사라지게 한 우리를 붙잡아 관청으로 끌고 가서 ‘도시소란죄’라는 명목으로 고소를 하였다. 관원들은 평상시 자신들과 밀착 관계가 있던 무당들의 고소에 앞뒤를 따져 보지도 않고 외지인인 우리 옷을 벗기고 매를 때린 후에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맞은 곳이 너무나 아픈데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발에 족쇄까지 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빌립보 루디아교회 세례터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몸의 거동은 불편했지만 실라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오늘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기도와 찬양을 하는 중에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옥문들이 열리고 우리 발에 차인 족쇄도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실라와 나는 이 지진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경배하였다. 옥문 밖을 보니 우리 발에 족쇄를 채운 간수가 졸다가 깨어서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는 우리가 도망갔다고 생각했는지 칼을 빼내어 자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급하게 우리는 여기에 있으니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외쳤다. 죄인들이 도망가면 그 맡은 간수는 죽는 것이 법이기에 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감옥 안에 그대로 있는 우리를 보고는 족쇄도 풀려 있고 옥문도 열려 있는데 왜 도망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하였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지금 잠시 받는 환난이 가벼운 것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뜻이 있음을 찬송 중에 알았으며, 땅이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족쇄가 풀린 후,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해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았노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을 살리는 분은 예수님이며, 그분이 참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를 믿는 자는 모두 구원에 이른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간수는 눈물을 흘리며 남을 압제하고 억누르는 일만 해온 자기 같은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냐며 실라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간수의 이름은 루키우스(15)라 했는데 가족들에게도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니 모두가 한마음으로 믿었다. 곧바로 지각티 강가로 나가서 모두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 우리는 아침이 되기 전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밤에 우리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걱정한 디도와 디모데와 누가는 수소문하여 우리가 감옥에 갇힌 것을 알고는 이른 아침 감옥으로 찾아왔다. 그즈음 관리가 사람을 보내어 우리를 석방한다고 하기에 로마사람(16)인 우리를 죄도 묻지 않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고 말하였다. 관리들이 우리가 로마사람인 것을 듣고는 두려워하여 와서 우리가 로마시민임을 몰랐다며 정중히 사과하고 그 성에서 떠날 것을 요청하였다. 우리 일행은 더 이상 이 일로 소란해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여 빌립보를 곧 떠나겠다고 약속한 후에 감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으로 돌아왔다. 빌립보에만 계속 있을 수 없기에 며칠 더 머무르면서 루디아와 루키우스에게 죄로 인해 타락한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복음으로 모든 사람을 죄에서부터 구원하여 참된 진리로 참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이르는 길을 십자가를 통해 이루셨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부탁하였다. 관리들이 우리가 계속 빌립보에 머무는 것을 알고는 또 떠날 것을 종용하기에 나는 디도와 누가에게 빌립보에 남아서 빌립보의 교회들을 더욱 든든히 세워줄 것을 부탁(17)하였다. 주의 만찬을 나누며 예배를 드린 후에 실라, 디모데와 함께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암비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데살로니가

루디아가 마련해 준 마차를 타고 암비볼리(18)와 아볼로니아(19)를 거쳐 우리는 데살로니가(20)에 이틀 만에 도착했다. 다음 날이 안식일이라 우리는 아고라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회당을 찾아갔다. 회당장의 이름은 야손(21)이었는데 내가 랍비인 것을 알고는 토라와 선지서 두루마리를 가리키며 말씀을 전하도록 배려 해 주었다. 나는 다른 지역에서 했던 대로 기록된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풀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다. 많은 사람이 처음 듣는 복음에 관심이 있어 더 듣고자 하여 세 번의 안식일 동안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야손의 집에 머물면서 낮에는 여행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고라에 나가서 여러 부역을 하고, 천막을 고치는 일거리들도 받아왔다. 무엇보다 복음의 내용을 자세히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과 회당이나 야손의 집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이나 마을의 광장에서도 만났다. 그들에게 토라에서 말하는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완성되었음을 가르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살로니가의 많은 사람이 복음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자들이 실제로 그들의 잘못된 과거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가 시작되었다. 헬라인인 아리스다고(22)는 친구 세군도와 함께 매일같이 우리를 찾아와 성경의 진리를 듣기에 열심이었는데, 나는 디모데를 그들의 선생으로 붙여주어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데살로니가

어느 날 유대인들이 동네 불량배들을 선동하여 우리를 찾아 야손의 집으로 왔다. 우리가 외부에 있어 만나지 못하자 야손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던 몇몇 형제들을 행정관에게 끌고 가서 로마를 어지럽히는 이상한 종교를 전파하는 자들과 결탁한 자들이라며 고소를 했다. 유대인들이 왜 그토록 우리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로마에 반역하는 자들로 고소를 했기에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일단 야손과 데살로니가 형제들은 귀족 헬라인들이 보증을 서 주어 풀려는 났지만 우리는 데살로니가에서 수배대상이 되었다. 그 밤에 아리스다고와 몇몇 형제들이 우리를 찾아와 지금 데살로니가에 계속 머무는 것은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피신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 일행들 어느 누구도 두려움은 없었으나 우리의 담대함이 혹여나 성장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공동체에 해가 될 것을 염려하여 다음 날 새벽녘에 데살로니가를 떠나기로 하였다.

베뢰아 - 아덴을 거쳐 고린도까지

베뢰아

왼쪽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서쪽으로 한참을 걸어 넓은 평지를 지나 할리아몬 강을 앞에 두고 자그마한 산지를 등지고 있는 베뢰아(23)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어서 회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베뢰아 사람들은 대부분 성품이 부드럽고 관대해 보였다. 또 그들 중에는 유대인의 성경을 듣고 배운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을 거부하지 않고 경청하며 그들이 배운 성경에 비추어 상고해 보는 자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베뢰아 사람들의 순수함과 간절함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이렇게 주께서 미리 예비한 자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통로가 될 뿐이었다. 헬라인으로 유력한 가문의 소바더(24)라는 청년이 있는데 디모데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으며 복음 듣기를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우리와 함께 머물면서 질문하고 배우며 함께 예배했다.

데살로니가에서 우리를 박해하던 자들이 베뢰아까지 찾아와 행정관에게 나를 주동자로 우리 일행이 로마에 반역하는 사람들이라고 소동을 일으켰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언제나 마귀가 훼방하는 것을 경험해 왔지만, 이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끈기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베뢰아의 몇몇 형제들이 일단 나를 먼저 피신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다. 소바더의 아버지 부로가 말 두 필을 준비해서 나는 부로와 함께 말을 타고 바닷가 작은 도시인 메토니(25)로 갔다. 그러나 메토니도 데살로니가에서 가까운 곳이라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며 부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하더니 곧 아덴(26)으로 떠나는 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아덴에 사는 형제들을 만날 겸 같이 동행하겠다며 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나는 베뢰아에 남아있는 실라와 디모데가 걱정되었지만, 부로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덴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우리가 탄 배는 잔잔한 바닷길을 따라 아르테미시온 해협을 지나 삼 일 만에 마라톤 평야의 동쪽 해안에 도착했다. 수백 년 전에 페르시아 왕국과 헬라의 연합군이 전투했던 역사적인 지역을 지나 하룻길을 더 걸어서 아덴에 도착하였다. 부로는 내가 머물 수 있도록 아덴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실라와 디모데에게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베뢰아로 돌아갔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아덴에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어떤 건축물보다도 크고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27)을 비롯하여 그 이름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우상이 도시 곳곳에 가득했다.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단도 있었다. 비록 지금은 옛날의 찬란했던 도시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철학자가 옛 도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덴의 회당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유대인들의 종교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 모여 담론을 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는데, 나는 회당에 오는 사람들에게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해주었다.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말에 호기심과 궁금증에 이런저런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덴에는 신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하는 여러 학파가 있어 항상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신에 관해서 관심이 있었다. 아덴의 권위 있는 몇몇 사람들이 나를 아레오바고(28)로 데려가 내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자 하여 마음으로 주님께서 내 말에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간구한 후에,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행 17:22-31)

라고 하니, 어떤 이들은 내 면전에 대고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냐며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서 이상한 종교를 포교한다며 조롱하였다. 내 말은 들은 사람 중에 스데바나(29)라는 고린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진지하게 꼭 고린도에 와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또한 아레오바고를 관리하는 관원인 디 오누시오(30)는 그의 부인 다마리와 함께 나를 찾아와 복음에 관해서 더 알기를 원하였고, 자세히 듣고는 믿음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디오누시오의 집에서 모임이 시작되었고 모임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귀족들로 복음이 증거하는 것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며 듣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로가 베뢰아로 돌아간 지도 벌써 한 달 여가 지났는데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도 소식이 없어 나는 다시 마케도니아로 올라갈 계획을 했다. 그런데 교제하고 있던 한 형제가 찾아와 고린도(31)에 갈 일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잠시 고민을 한 후에 내가 머물고 있는 집주인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면서 혹시 실라와 디모데라는 자들이 나를 찾아오면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고 고린도로 출발했다.

고린도 사역

고린도 아폴로 신전

굽이굽이 해안을 따라 형성된 길을 이틀 동안 걸어서 고린도에 도착했다. 도시 남쪽에 있는 산 중턱에 보이는 거대한 성곽은 멀리서 봐도 그 규모가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 곳곳의 신전들로 내 마음은 한없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우상들로 가득하고 참된 것에 눈이 가려져 있는 이 세상 앞에서 나는 두렵고 떨리는 연약한 존재였다. 앞으로 고린도에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께 나실인의 서원(32)을 하면서, 고린도에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혼에게 복음이 증거될 것을 간구하며 담대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스데바나를 찾기 전에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다. 회당으로 가는 길에 천막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이 보였는데 외모가 유대인으로 보여 샬롬을 인사하며 다가서자 그도 내게 샬롬으로 대답하며 유대인이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이름은 아굴라였다. 그는 본도(33)에서 태어났으며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한다는 칙령(34)으로 인해 아내인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로 와서 정착했다고 했다. 아굴라는 로마에 있을 때 예루살렘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내게 그 내용에 관해서 아는 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어느 곳을 가든지 성령님께서는 늘 만날 사람을 예비해 놓으셨고 복음이 증거되는 길들도 열어 주셨는데, 나는 아굴라의 집에 머물면서 그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에게 예수님에 관해 매일 증거하고 성경을 가르쳐 주었다. 아굴라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천막을 만들고 고치는 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는 이스트미아 제전(35)이 몇 달 후면 시작하는데 일을 도와줄 수 있는지 요청했다. 나는 경비도 필요했고 고린도에 머물면서 조금 더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어 아굴라와 함께 머물기로 작정하고 천막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후 스데바나와도 만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서 가르쳤고, 스데바나는 세례를 받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그의 집을 주의 만찬과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열어서 주를 믿는 사람들의 수가 날마다 더해져 갔다. 안식일이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회당을 갔는데, 회당장 그리스보는 나이가 많았지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으로 내게 안식일 예배에서 성경을 강론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주었다. 고린도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실라와 디모데가 천막을 고치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부로가 가르쳐준 아덴의 집을 찾아갔다가 내가 고린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이곳에 와서 수소문하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먼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인사시킨 후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 듣기 시작했다.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를 떠나 아덴으로 오기 전에 다시 데살로니가를 들렸는데 빌립보에 머물렀던 디도와 누가도 데살로니가로 내려와 그 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빌립보 모임은 루키우스의 집에서 잘 정착되어 가고 있다고 했는데, 데살로니가에서 몇몇 논쟁이 발생했다고 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한 것과 잘못된 종말 사상이 그들에게 팽배해 있으며,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유대인의 박해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디도는 누가와 함께 내게 오려고 했으나 안디옥에서 온 어떤 사람에게 디도의 형제에게 변고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디도가 누가의 주선으로 드로아로 가는 배를 타고 출발하는 것을 본 후에 실라와 디모데만 내게 오게 되었다고 했다.

에베소 아르테미스 신전 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데살로니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굴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덴을 거쳐 데살로니가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덴에 도착하여 디오누시오의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려는데, 고린도의 더운 날씨에 낮에는 천막을 만들고 밤에는 실라와 디모데도 없이 혼자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강행군으로 인해 몸이 탈이 났는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을 추스르고자 했지만, 기도 중에 성령님이 이번 길을 내게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고는 디모데에게 데살로니가에 가서 교회들을 만나고 오기를 부탁했다. 실라도 같이 보내기를 원했으나 그는 내가 걱정된다면서 내 옆에 남기로 했다. 디모데가 떠난 후에 며칠 동안 아덴에 머물다가 실라와 나는 다시 고린도로 돌아갔다.

헬라인으로 디도라 하는 유스도는 회당 옆에 살면서 회당장 그리스보를 신뢰하며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36)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더 간절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의 집을 기꺼이 열었고 유스도의 집에서도 모임이 시작되었다.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온 가족들도 주를 따르기로 작정하여 나는 그리스보에게, 실라는 그의 가족들에게 같은 날 세례를 베풀었다. 이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 고린도 지역의 유대인들은 더욱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길 뿐 아니라 유대인으로 주를 믿는 자들과 심하게 반목하게 되니, 고린도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이 우리를 주목하게 되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와 데살로니가 교회가 비록 환난 가운데 있지만 기쁨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오직 주만 신뢰하는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디모데가 전해준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과 그들의 온전한 믿음을 격려해야겠다는 생각에 양피지 한 뭉치를 사서 편지를 기록하였다. 데살로니가로 올라가는 믿는 형제 한 명에게 편지(37)를 주면서 데살로니가 아고라 가까운 곳에 있는 회당의 회당장인 야손에게 전달해 주기를 부탁했다.

고린도는 실로 타락한 도시였다.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온 많은 사람에게 우상에게 제사하는 문제와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음란한 일에서 멀어질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가르쳤다. 또한 죄에서 떠난 형제들이 잘못을 회개하면 교회는 마땅히 그를 용납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품어줄 것을 요청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유대인들의 박해는 더욱 심해져 갔지만, 실라와 디모데가 가르치는 일을 함께 하니 고린도의 모임들은 교회로서 뿌리를 내리고 든든히 세워져 갔다. 시의 재무관으로 일하는 에라스도(38), 부유한 가이오(39), 고린도와 에베소를 왕래하며 상업을 하는 자매인 글로에(40), 브드나도와 아가이고(41) 등이 교회의 기둥들이 되었다. 연로한 그리스보의 뒤를 이어 회당장으로 추대받은 30대의 소스데네(42) 는 아굴라의 집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 온 인물로 유대교에 박식한 자였다. 그는 회당장의 위치에서 전통 유대교의 규례를 가르치고 랍비의 역할도 감당하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경을 통해 언약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이심을 회당에서 강론하기에 이르렀다.

아가야의 총독으로 갈리오(43)가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해서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유대인들이 신임 총독에게 찾아가 우리가 로마의 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불법적인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며 고소하였다. 나는 법정에 서게 되었고 유대인들이 총독 갈리오에게 고소한 내용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들의 터무니없는 고소에 항변하려는데, 총독이 손을 들어 나를 제지하고는 “이 고소가 어떤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에 관한 것이라면 내가 양쪽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것이 옳겠지만, 내가 들어보니 이 고소는 너희 유대교의 성경과 언어와 율법에 관한 문제이니 너희끼리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44) 라며 우리 모두를 법정에서 쫓아내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헬라인들과 평소 유대교에 좋지 않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갈리오가 유대교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방금 총독에게서 사함 받은 나를 때리지 않고 회당장인 소스데네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나는 황망하여 총독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군중들의 구타에 상관하지 않고 뒤돌아서 가버렸다.

에베소를 거쳐 수리아 안디옥으로

에베소 아르테미스 신전 터

데살로니가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고린도에 머문 지도 1년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고린도의 모임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가는 것이 보였기에 이 곳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린도의 형제들에게 잠시 동안의 이별을 위한 인사를 나눈 후에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하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아직 주의 말씀이 증거되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다며 우리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기로 했다. 고린도의 동쪽 외항 역할을 하고 있는 겐그레아(45)에 도착해서는 경건한 뵈뵈(46)자매를 만나 그의 집에서 모이는 공동체에게 인사를 했다. 그 후에 해변가에서 머리를 깎고(47) 에베소로 출발하는 배에 탑승했다.

겐그레아를 출발한 지 이틀째 아침에 저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육지가 가까워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유명한 에베소(48)의 아르테미스 신전(49)이었다. 아덴에서 보았던 파르테논 신전의 위용도 엄청났지만 아르테미스 신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항구에 도착하여 대리석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의 화려함에 이미 매료가 되었는지 아굴라에게 연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도시 곳곳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안식일은 아니었지만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니 그 곳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합류하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복음을 증거하였고, 그날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너그럽게 예수님에 관해서 더 듣기 원하였다.

디모데가 배편을 알아보니 안디옥으로 가는 배는 당분간 없고 가이사랴로 가는 배가 내일 있다고 했다. 어차피 겐그레아에서 깎은 머리카락(50)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에 태우기 위해 짐 속에 가지고 있었는데,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안디옥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람 많은 에베소에 일거리도 많을 것 같다면서 남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회당에서 만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및 이 성의 허다한 백성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어야 하겠기에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간구한 후에 가이사랴로 가는 배를 타고 출발했다.

수일 후에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에 들렸다. 예루살렘 교회와 장로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온 열방이 주님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올라갔다. 안디옥에서 모처럼 긴 휴식을 하고 여러 형제들과 교제를 하고 있는 어느 날, 아리스다고가 데살로니가에서 안디옥으로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1. 길리기아 관문 (Cilician Gates)은 길리기아 지방에서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토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협로이다. 관문 옆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돌'이라고 불리는 큰 돌이 있으며, 이 관문을 넘었던 세미라미스, 고레스 황제, 알렉산더 대왕,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 막 7:24-30 참고
  3. 지금 터키의 얄바치에 위치한 비시디아 안디옥 고대도시의 사도바울 기념교회 터에서 발굴된 비문에 바수스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4. 비두니아 (Bithynia)는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을 포함하여 흑해에 이르는 로마 시대의 행정구역이다.
  5. 드로아 (Troas)는 현재 터키 지명 달얀이며, 호메로스의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의 남쪽에 있다.
  6. 누가 (Luke)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여러 문헌을 통해 누가를 수리아 안디옥 출신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로마 귀족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는 어릴 때 화재로 로마 귀족을 구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였고, 후에 어머니는 그 귀족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 누가가 사랑했던 여인이 병에 걸렸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게 고쳐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지만, 그 여인이 죽게 되자 세상에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어머니와 결혼한 로마 귀족의 도움으로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의술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누가는 샴마이 학파의 한 랍비를 통해 유대인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배를 타고 여러 지역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배 위에서 치료받지 못해 죽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함상 의사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확인하는 일들을 했다. 드로아에서 바울을 만나면서부터 온 우주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평생 바울의 선교 동역자가 되었으며, 바울의 순교 이후에는 주로 그리스와 터키 지역에서 활동했다. 의사이면서 역사가이자 저술가로 예수님에 관해서 제자들이 이야기한 것과 본인이 확인한 것 등을 기록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남겼다. 누가의 죽음에 관해서는 비두니아에서 자연사, 스페인에서 자연사, 그리스에서 순교 등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분명한 것이 없다. 터키의 에베소지역에 가면 누가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누가의 유해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로 가져와 안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7. 사모드라게의 현재 그리스 지명은 사모트라키이며 에게해 북쪽에 있다.
  8. 네압볼리 (Neapolis)의 현재 그리스 지명은 카발라이며, 빌립보의 관문 항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9. 빌립보 (Philippi)는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인 필립 2세가 금광개발을 목적으로 세운 도시로 빌립 (Philip)이라는 이름에서 도시의 이름이 유래했다. 로마 시대에는 퇴역한 군인들의 도시가 되었고 이곳의 주민들에게는 로마의 시민이 되는 혜택이 주어졌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0. 로마는 정복지를 다스리기 위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곳곳에 대규모의 도로를 건설하였다. 에그나티아 가도 (Via Egnatia)는 현재 알바니아의 아드리아 연안에서 터키까지 연결되는 약 860km의 도로를 지칭한다.
  11. 지각티 (River Zygakti)는 강이라기보다는 작은 개천이다. 현재 루디아기념교회 앞을 흐르는 이 개천 중간에 세례터가 있다.
  12. 두아디라 (Thyatira)의 현재 터키 지명은 아크히사르이다. 로마 시대에는 주석으로 만든 투구, 면직, 가죽 등의 상업이 발달한 도시로 특별히 자주색 옷감 기술이 발달하여 로마 전역에 공급했다. 루디아가 이곳에 최초로 교회 공동체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자세한 정보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계시록 일곱 교회 중의 하나로 교회에 주는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13. 루디아 (Lydia)는 두아디라 출신으로 유대인들로부터 신앙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상업으로 인한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어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분이 있었고, 두아디라 지역에 복음을 증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 눅 17:11-19 참고.
  15. 간수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당시의 흔한 이름을 임의로 사용했다.
  16. 로마제국에서 로마시민은 다양한 특권이 있었는데, 그중에 바울은 형법으로 기소가 되었을지라도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와 나중에 행 25:11에서는 로마의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장한다.
  17. 고후 7장을 참고해 보면 디도는 고린도 교회와 교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전·후서가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모두 기록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디도는 2차 전도여행 당시에 고린도까지 동행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행 17:1에서 누가는 3인칭 복수를 사용함으로 빌립보에 남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아마도 이때 디도도 누가와 함께 빌립보에 남아서 교회를 굳건히 세운 후에 어떤 사정으로 안디옥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18. 암비볼리 (Amphipolis)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였던 곳으로 빌립보 서쪽으로 60km 정도 떨어져 있다.
  19. 아볼로니아 (Apollonia)는 에그나티아 가도에 있는 로마 시대에 꽤 번성한 도시였으나 지금은 그리스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빌립보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데살로니가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20. 데살로니가 (Thessalonica)는 현재 테살로니키로 불리는 그리스 제2의 항만도시이다. 바울 당시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 인구 약 15만 명의 국제도시였다
  21. 야손 (Jason)은 바울 일행과의 교제를 통해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세우고 교회들을 양육했다.
  22.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Aristarchus & Secundo)는 야손과 함께 데살로니가에 공동체를 만들고 교회를 세운 자들로 추측되며, 아리스다고는 나중에 바울과 로마까지 동행한다. (행 20:4, 행 27:2, 골 4:10, 몬 1:24 참고)
  23. 베뢰아 (Berea)는 데살로니가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있는 소도시이다. 현재 지명은 베리아이며, 도시의 중심부에는 바울이 베뢰아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놓여있다.
  24. 소바더 (Sopater)는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온 베뢰아 사람이다 (행 20:14). 롬 16:21에 기록된 소시바버와 동일한 인물로 여겨진다.
  25. 메토니 (Methoni)는 베뢰아에서 동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에게해의 작은 도시이다. 베뢰아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 도시로 행 17:14에 나오는 바다가 이곳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26. 아덴 (Athens)은 아테네로 현재 그리스의 수도이다. 도시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헬라 시대에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였으며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아크로폴리스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르테논 신전 등 고대 유적들이 남아있다.
  27. 유네스코 로고와도 닮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고대 그리스 건축물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파르테논 신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1호로 알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1978년에 총 12곳이 최초로 등재되었는데,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 세네갈의 고레섬,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이후 1987년에 등재된 그리스의 유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이 단독으로 등재된 것은 아니다.
  28. 아레오바고 (Areopagus)는 전쟁의 신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재판을 담당하는 기능과 여러 사람의 민의를 논의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에 있으며,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행 17:22 이하의 구절이 적혀 있는 동판을 볼 수 있다.
  29. 고전 16:15에서 스데바나 (Stephanas)는 고린도가 아니라 아가야 지방의 첫 열매라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스데바나가 아테네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30. 디오누시오 (Dionysius)는 아레오바고 시의회 의원으로서 기독교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아테네의 2대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31. 고린도 (Corinth)는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가야 지방의 수도이다. 로마, 그리스, 소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활발한 상업활동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이곳에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은 천 명이 넘는 여사제들이 종교적인 매음 행위를 했으며, 고린도 서신에 나오는 고린도 지역 성적 타락의 원인이 된 곳이다. 지금은 고대도시의 일부분만 발굴 및 복원되어 있다. 또한 서쪽 바다인 이오니아 (Ionian Sea)와 동쪽 바다인 에게 (Aegean Sea)를 연결하는 약 6.3km 길이의 고린도 운하가 있다.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인 고린도 운하는 로마 시대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약 1800년 동안 중단을 반복하여 1893년에서야 완공했다.
  32. 나실인이란 남자나 여자나 구분 없이 특정 기간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서원한 사람들로, 구약의 삼손이나 사무엘, 신약의 세례요한은 평생을 나실인으로 지낸 사람들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등의 나실인 규례에 관해서 민수기 6장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중에 행 18:18에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마무리한 후에 행한 일로 고린도에서 어떤 서원을 하나님께 했으며 서원한 대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는 시점에 이런 서원을 했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이다.
  33. 본도 (Pontus)는 현재 터키의 흑해 연안 지역으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많이 정착한 곳 지역 중의 하나이다.
  34.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로마에서 유대인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들 사이에 큰 다툼이 있었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리우스는"이 추방령은 크레스투스에 의해 촉발된 유대인들의 계속되는 소란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크레스투스를 크리스토스의 잘못된 표기로 보면 추방령의 원인이 기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추방령에 의해 로마를 떠난 사람이 약 2만 5천 명이며 그중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포함되어 있다. 1878년 나사렛에서 발견된 돌판에 이와 관련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이 발견되었고, 이를 나사렛 칙령이라 부른다.
  35. 이스트미아 제전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고린도에서 2년마다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서 열리는 축제로 여러 민족이 참석하여 운동경기 및 다양한 행사로 3개월 정도 진행되는 대규모의 행사였다. 수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 축제이기에 천막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바울이 서신서에서 경기 또는 경주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하는데 아마도 이스트미아 제전에서 보았던 운동경기에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6. 로마 시대 다민족 유대교 회당 공동체에는 유대인으로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교인들, 이방인으로 할례를 받은 개종자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유대교의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 세 부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7. 데살로니가전서 편지는 고린도에서 쓰였다는 것에 대부분 학자가 의견을 일치한다. 바울의 처음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인지 갈라디아서인지는 바울의 이동 경로 및 여러 조건에 따라 이견은 있으나, 중요한 것은 바울의 서신서들이 믿음을 이루어가는 초기 교회들을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38. 에라스도 (Erastus) 롬 16:23, 딤후 4:20 참고.
  39. 가이오 (Gaius) 롬 16:23, 고전 1:14 참고.
  40. 글로에 (Chloe)는 고린도의 여신도였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3차여행 때 에베소에서 사역할 당시에 기록된 것으로 고전 1:11로 추측하기는 에베소에도 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1.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Fortunatus & Achaicus)는 고전 16:17에서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방문했다.
  42. 소스데네 (Sosthenes)는 행 18:17과 고전1:1을 통해 회당장으로 바울의 제자가 되어 3차 선교여행 당시에는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지낸 것으로 보인다.
  43. 갈리오 (Gallio)의 본명은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로 그의 형은 스토아 철학의 대가인 루키우스 안네우스 세네카이다. 나중에 로마의 뛰어난 수사학자인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의 양자가 되어 갈리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지역의 델포이에서 발견된 문서에 의하면 갈리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통치 기간 (AD 41-54) 중인 AD 51년에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행 18:12의 '갈리오가 총독 되었을 때'는 바울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구절이 된다.
  44. 행 18:16 참고. 갈리오는 종교적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만일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억지 고소한 내용대로 바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더라면 이 전례를 따라 각 지역의 행정관들도 같은 고소 건에 대해 동일하게 유죄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바울은 박해와 고난뿐만 아니라 법적인 어려움을 안고서 선교사역을 해야 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판례가 최소한 로마제국 내 바울의 선교여행에는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45. 겐그레아 (Cenchreae)는 현재 지명 게그리에스로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1km 정도 떨어진 항구이다. 지금은 옛 항구의 흔적이 바다에 묻혀 있다.
  46. 롬 16:1에서 바울은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라며 로마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으로 뵈뵈 (Phoebe) 자매를 언급하고 있다. 그녀는 바울의 고린도 사역 기간 중에 믿음을 결단한 사람으로 겐그레아 공동체를 세우고 섬기며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꾼이었다. 그녀는 바울 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적극적으로 동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47. 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마무리한 후에 나실인의 서원을 준행했다는 것에 감사하며 머리를 깎은 것으로 보인다. (각주 33, 나실인의 서원 참고)
  48. BC 1500년 경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고 도시를 이루기 시작한 에베소 (Ephesus)는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등과 더불어 가장 큰 도시로 성장하여 기원후 2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린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에베소는 가히 기독교의 요람-바울의 선교사역, 사도 요한의 죽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죽음, 디모데의 사역, 오네시모의 사역,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 첫 번째 교회 등-으로 불리는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현재 터키지명은 셀축으로 터키 제3의 도시인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49. 아르테미스 신전 (The Temple of Artemis)은 고대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건축물 중 하나로 행 19:28에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표현할 정도로 에베소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건물이었다. 현재는 건물이 다 무너지고 오직 기둥 하나만이 남아 있어 그 자리가 그 옛날 아르테미스 신전의 자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허무하게 사라져갈 뿐이다.
  50. 예루살렘 성전에서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나실인의 서원은 온전히 마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