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 2

하나님의 마음이 가득한 터키 땅에서

글: 이선희 집사(하나교회)

고등학교 3학년때 처음 멕시코 선교를 싼시몬 이라는 곳으로 2주 동안 갔다 왔고, 그때 왜 하나님께서 나를 미국 땅으로 부르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 다음해에 다시 싼시몬으로 2주 선교를 갔고 그곳에서 나는 기도 하던 중 환한 불빛이 내 몸 주위를 감싸며 하나님의 손이 내 손을 잡아 주시는 환상을 보고 내 삶을 하나님께로 드리겠다고 선교사로 서원기도를 드렸었다. 멕시코 싼시몬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함께 대학 4년 여름방학을 하나님께 드리며 세계 곳곳으로 한달씩 헌신해서 선교를 갔고 졸업후 결혼해 아이를 낳기전까지 함께 선교지를 다니며 직업선교사(Tent Maker)가 되기를 소망 하였다. 그리고 아이 셋을 낳아 20년이 흐른 지금, 처음 다시 터키로 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 교회에서 가는 일일 멕시코 선교는 다녀 봤지만 다시 해외선교를 가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선교를 가기로 결정한 것은 그날의 이상한 꿈 때문이었다. 꿈을 꾸고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던 중 터키 선교를 가자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하나님께서 나를 강권적으로 부르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를 결심했다. 20년이라는 결혼생활을 통해 어느덧 선교에 대한 나의 마음이 흩어지고 가끔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를 선교사 리스트에사 빼버리신거 같다”는 말를 하며 웃어 넘기곤 했다.

3년전 이상하게 아프기 시작한 엉치뼈가 맘에 걸려 혹시나 뼈에 염증이 생긴건 아닌가 싶어서 병원을 찾았다. MRI와 CT촬영도 해 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통증 부위는 몸 여러 군데로 퍼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아픈 통증이 시작되어 결국 병원에서는 "섬유근육통" (Fibromyalgia) 같다는 진단을 내려 주었다.

섬유근육통은 신경이 근육을 누르고 쪼이면서 몸을 무겁게 마비시켜 손가락 하나도 내힘으로 움직일 수 없게 하고 숨도 쉬지 못하게 하는 그야말로 몸을 괴롭히는 몹쓸 병이다. 원인도 불분명해서 특별히 약도 없기 때문에 진통제를 맞으며 참고 견딜 수 밖에 없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24시간 얻어 맞은듯이 아프고, 무거운 쌀 가마니를 등에 얹고 있는듯 몸이 무겁고, 조금만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민감하게 몸이 반응해서 바로 통증으로 이어진다. 처음엔 여기 저기 뼈가 썩는 듯한, 그리고 송곳으로 찌르는거 같은 진통으로 잠을 자지 못해 이런저런 신경제와 진통제를 사용해 봤지만 결국 부작용이 심해져 눈도 흐려지고, 기억력도 흐려지고 약으로 인해 위도 나빠져서 과민성 대장염까지 한꺼번에 증상이 나타나 소화 불량에 이르기까지 했다.

결혼해서 20년을 개척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맡아 섬기고 구역장으로 섬기며 달려온 나에게 이런 병이 찾아온 것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기게 되었다. 지치고 힘든 아픈 몸 때문에 점점 우울해지는 나의 삶 때문에 사람들도 멀리하게 되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의 반응에도 슬슬 미움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같은 생각마저 들어 하루 하루 눈물 속에서 지내기 일수였다.

터키 선교는 나에게 있어서 왠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손을 내미시고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선교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마음은 뒤로 한 채 내 자신을 위해 터키땅을 밟았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버지 옆에서 죽어라 충성히 일하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고 꾸지럼 듣는 탕자의 형같은 존재였다.

터키 땅을 밟은 첫날부터 나의 온 생각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보여 주실까, 나에게 무엇을 말하시려고 하시는 것일까라는 관심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까지 부르신 이유는 분명히 있으실테니까 하나님께서 무조건 알아서 보여 주세요 라고 그냥 무조건 들이대며 하나님께 알아서 하시라는투로 불만이 가득한 채 던져 버렸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사역을 하고 계신 조요한 사역자와 서향기 사역자를 만나면서 나의 마음은 점점 평온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터키는 이란, 시리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과 종교적인 핍박 속에 도망나온 난민들이 모여 들었고 선교사님 내외분께서는 특히 이런 난민들를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우리 앙카라팀은 매일 아침 함께 식사를 하고 선교사님의 사역센터에서 큐티를 통해 말씀을 나누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예배 시간은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가 임하는 시간이였고, 함께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세쨋날 예배 도중에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이 왔는데 아들이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설사가 시작되고 결국은 쓰러져 병원으로 갔는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해서 응급실로 들어왔다며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다.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에 나는 움찔했다. 왜냐하면 내 마음 속엔 아직도 내 자아가 너무 세게 버티고 있어서 계속 마음 한구석에선 ‘하나님이 날 이곳에 보내셨으니 하나님이 알아서 말씀하세요’ 하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프다는 소리는 마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며 기도하는 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선희야!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고 걱정 되겠니? 나는 내게 하나뿐인 아들을 너를 위해,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너를 사랑하고 용서 했다. 내가 너를 용서 했듯이 너도 용서하고 사랑해야지...' 그 음성은 그동안 내가 아픔에 시달리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며 미움 속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보다 말했던 것에 응답으로 들려왔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내가 너의 육체의 아픔을 안다. 내가 널 위해 고통 당했고 널 죽기까지 사랑했다. 나는 이 민족을 사랑한다. 내가 널 사랑한것 처럼 너도 이 불쌍한 민족을 위해 울고 기도하며 내 사랑을 전하라는 음성으로 들려 왔다. 팀원들이 함께 합심하여 기도해 주셨고 감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앙카라팀의 사역은 조요한 사역자의 인도에 따라 이뤄졌다. 교회도 방문하고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성위에 올라가 터키땅을 바라보며 이 땅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은혜의 땅으로 덮이기를 기도했다. 난민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은 난민들이 와서 필요한 생활 필수품들를 받아 가고 아픈사람들은 약을 받아가기도 하고 그곳에 오시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기도 했다. 재봉틀로 옷이나 가방 지갑등을 만들어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도 돕는다고 했다. 우리 팀은 각각 돌아가며 그곳에 오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물품을 나눠 주는 일 그리고 기도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일을 하며 난민의 집의 역활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들 난민들을 만나고 변화 시키셔서 이들을 통해 이루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비젼을 보여 주시는 것만 같았다.

그 다음 날 우리는 난민들이 사는 집을 방문했다. 그들은 이란에서 온 난민들이였는데 일도 할 수 없었고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하루종일 집에 갇혀 있는 여자와 아이들도 많았다. 그곳에서 만난 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4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30분쯤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얼마나 반가워 하며 좋아하던지... 함께 말은 잘 안통했지만 마음으로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기도해 주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이란에서 부터 도망나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그 영혼이 그 민족들이 하나님을 모른체 의미 없이 외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돌아오는 길에 오으즈 라는 형제가 일하고 있는 커피집에 들리게 되었는데, 오으즈 형제는 마약을 하던 친구로 어떤 분으로부터 우연히 성경을 받고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믿게 되어 마약을 끊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고발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도망을 나와 혼자 터키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오으즈 말고도 하나님을 믿는 이유로 핍박당하고 가족들과도 함께 지낼 수도 없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들었을때,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을 수 없는 이땅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모른다.

그 다음날엔 우리팀이 둘로 나뉘어 거리 노방전도를 나가게 되었다.

선교사님께서 우리가 직접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니타미르라는 아타투르크의 묘소와 앙카라 한국 문화원에 가서 사람들과 만나며 전도도 해 보라고 하셨다. 이곳 터키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외국인에 대한 배려도 좋아서 그 장소들을 찾아가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든 하나님 얘기를 꺼내고 싶어서 적어서 외웠던 단어를 말하며 말을 걸었고, 가지고 온 복음 팔찌도 나눠 주고 캔디도 나눠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공원에서 혼자 앉아 있는 여자분에게 다가가서 살짝 옆에 앉아 이름을 물었고, 놀고 있는 아이가 몇살인지도 물으며 말을 걸어 보았다. 아이 엄마는 방긋 웃으며 좋아해 주었고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나의 말에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내 말에 응답을 해 주었다. 나는 함께 기도해도 괜찮냐고 물었고, 무엇을 기도해 줄까도 물었다. 나는 아이 엄마를 꼭 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드렸다. 하나님께서 분명 뿌려진 씨앗에 일하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으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거리 노방전도에서 돌아왔다.

다음날엔 비가 오는 관계로 우리팀은 선교사님과 함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 방문 할 수 있었다. 구석기 시대부터 그리스와 로마시대까지 아나톨리아 인류사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고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건물과 다양한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터키에 와서 이나라의 역사에 대해 볼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교사의 삶은 그나라의 역사와 모습을 보고 그곳 사람들과 부딪히며 말하고 잠자고 먹고 지내는 것이라고 하며 그 일상을 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문득 조요한과 서향기 사역자님이 터키땅에서 이곳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이 바로 내가 선교사로 헌신해서 선교지에서 살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동안 보여 주셨던 선교지와 선교사역은 못사는 어려운 나라, 어려운 지역에 가서 몇시간을 걷거나, 배를 타거나 육체적으로 고생하고 못먹은 상태로 스킷에 바다워십에 아이들 사역을 중점으로 하는 선교였다. 그러나 이번 터키 선교는 나에게 선교사로 사는 모습은 이렇게 하루하루 그들 속에서 지내는 것임을 보여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두분의 모습이 얼마나 평안해 보이셨는지 나에게 잔잔한 은혜로 다가왔다.

서향기 사모님이 하고 계시는 소망의 상자(쉐도우 박스)사역은 이란분들이 많았는데 돈을 벌 수 없어 생활할 수 없는 이들에게 소망의 상자 클라스를 통해 함께 모여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소망의 상자를 통해 돈도 받을 수 있는 귀한 사역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는 사모님의 인내와 수고가 얼마나 귀한지 감사함이 흘러나왔다.

앙카라 사역을 마친후 이스탄불로 돌아가 뷰육아다 아웃리치 사역에 참석하게 되었다. 뷰육아다 사역은 매년 5만명 이상의 정교회 교인들, 무슬림들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뷰육아다 섬을 방문한다고 하는데, 터키 교회 사역자들이 그날에 이 섬에 모여 말씀을 전하고 성경도 나눠 주고 기도를 해주는 귀한 사역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언덕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끊어지지 않고 줄을 이어가면 자신의 소원이 이뤄진다는 희망을 가지고 삶의 문제들을 해결받고자 이곳에 올라오는 불쌍한 영혼들이였다.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을 모르고 살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우리팀들은 하나님이 생명되심과 주 되심을 알리고자 열심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뤄진 뷰육아다 아웃리치 사역은 몸이 불편한 나에겐 육체적으로는 참으로 쉽지 않았지만, 영적으로는 많은 도전과 깨달음을 준 귀한 사역이였다. 줄을 지어 기도를 받기 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복을 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기도제목은 대부분 아픈 곳이 낫기를 바라거나, 가족의 화목과 자녀의 잘됨이었는데 그 소원이 참으로 소박하고 순수하게 다가왔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 기쁨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께서 이들를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며 그들를 부르고 계실까를 생각하니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모든 사역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마지막날, 각팀으로 흩어져 사역했던 다른팀들의 사역보고와 간증을 통해 함께 기도하며 울며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모든 팀이 함께 모인 이스탄불에서 새벽 예배때 김진영 목사님께서 나를 부르시며 함께 나의 병을 놓고 기도하자고 하셨다. 그때 많은 분들이 나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셨다. 그후 권사님 한분께서 내 옆에 오셔서 말씀해 주셨다.

나에게 손을 얹고 기도 했을때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신다는 확신을 주셨다고 하셨다. 나의 병은 혈에 있는 병이고 신경과 뼈에 있는 병이기 때문에 이런 병은 하나님 말고는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며 당신이 그런 병으로 힘든 시간을 갖다가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고는 나에게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계시니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고 하나님의 보혈에 들어가 그 피로 나음을 입어야 한다고 하셨다.

터키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 지금, 나의 마음은 참으로 평안하고 감사하다.

나에게 이 많은 것들을 마음으로 느끼고 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조금이나마 그 잃어 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나에게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킹덤 스쿨에서 김진영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그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이곳, 내 가정, 내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일에 그 땅으로 순종하고 나아가길 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하시면 나는 그 감사한 일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작고 부족한 종으로 하나님의 놀랍고 크신 일들을 이루시는 것에 함께 하고 싶다.

함께 앙카라 팀에서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장경일 목사님과 김은숙 권사님, 임성덕 집사님, 정귀희 집사님, 그리고 나를 선교지에 갈 수 있게 응원해준 언니 이진희 집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싶고,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준 남편과 가족 그리고 하나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린다.